2022-10-14(금) 금요기도회

제목: 하나님께 쓰임받는 자가 되기 위한 3가지 조건은?(딤후2:20~2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Cn5jSjP6de0  [혹은 https://tv.naver.com/v/30215415 ]

 

1. 들어가며

  사람이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동물처럼 그냥 살아 있으니까 살고 있는 것이고 때가 되면 죽기 위해서 사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사람이 이 땅에서 살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천국 들어갈 준비를 하기 위해서다. 사람은 육체만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영혼을 함께 가진 존재로서 다음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이든지 지옥이든지 사람은 영원히 살 곳을 이 땅에서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그것을 모른 채 살고 있는 이들은 사람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모르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에도 그냥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천국에서 우리가 영원히 갖고 누리게 될 지위와 신분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사는 문제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어찌하든지 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날마다 준비하되 그곳에서 누릴 우리의 지위와 신분을 잘 준비해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잘 쓰임받는 것은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그분의 뜻 안에서 그분이 뜻한 바대로 살아서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때에 우리는 저 나라에서 더 영광스러운 존재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에는 3가지 조건이 있다. 그 조건에 합당하게 사는 자들은 저 천국에서 영원한 칭찬과 영광과 존귀가 주어지게 될 것이다. 

 

2.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한 3가지 조건은 무엇인가?

  하나님께 쓰임받으려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3가지 것을 잘 갖춰야 한다. 첫째, 내가 하나님께 쓰임받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세력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소극적인 조건으로서, 조금 있다가 살펴보겠지만 이것은 '회개'를 통해 가능하다. 둘째, 내가 가진 능력만으로는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을 수 없으므로 주님께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적극적인 조건으로서 '기도'를 통해서 가능하다. 셋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실 때에 주권적인 안배로 사명을 주셨는데, 이 땅에서 우리가 받은 사명을 발견하고 그 사명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조건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알고 사명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3.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 이것은 소극적인 조건으로서, 내가 하나님께 쓰임받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세력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들을 제거하는 일을 가장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늘나라에서 살아갈 준비를 잘 하기를 바라신다. 그래서 주실 것도 많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받을 수 없는 조건에 휩싸여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것을 우리가 받을 수가 없다. 다시 말해 사람이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살아봤자 그 결과를 내가 누릴 수 없다거나 그것을 내가 소유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헛수고일 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적으로 내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을 방해하는 세력을 제거해야 한다. 그 세력은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악한 영들로서 귀신과 뱀들을 가리킨다. 특히 아담의 범죄 이후 사람의 몸은 뱀의 차지가 되었다(창3:14). 그러므로 뱀은 우리가 범죄할 때마다 우리 몸 속을 치고 들어온다. 특히 우상숭배의 죄를 짓게 되면 우리 몸 속에 치고 들어온 뱀들이 3~4대까지 내려간다(출20:5).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이 악한 영들을 제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악한 영들은 우리의 몸 안에 거주하고 있으면서 다음과 같이 주로 3가지 일들로 역사한다. 첫째는 그 영들이 우리를 가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즉 물질의 축복을 받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그래서 내게 물질이 들어온다고 해도 새어 나가게 만들고, 물질을 쌓지 못하게 한사코 방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영들은 주로 우리의 '손'에 붙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영들은 주로 제사를 여러 번 그것도 정성다해 음식을 융숭하게 준비하여 바칠 때에, 부처에게 많은 물질을 바칠 때에 그리고 미신과 잡신을 섬겨 무엇인가를 많이 바칠 때에 쑥 들어온다. 둘째는 그 영들이 우리를 병들게 한다는 것이다. 그 영들은 우리 몸에 들어오면 우리 몸의 각 부분을 붙잡는다. 예를 들어, 제사드릴 때에 절을 하게 되는데 이때에는 악한 영들이 머리에 들어온다. 그래서 두통, 공황 장애, 치매 등을 일으킨다. 그리고 제사 음식을 먹게 되면 위장에 그것들이 들어와 병에 걸리게 한다. 그러면 위경련이 자주 발생하고, 위암 등이 생긴다. 그리고 무당과 점쟁이를 섬기면 무당과 점쟁이에 붙어 있는 시기와 질투의 영, 혈기와 분노의 영, 억압과 착취의 영, 살인의 영 등이 들어와 정신적인 영역에 병이 걸린다. 그리고 이때 자신의 감정을 분노로 표출하지 못하는 사람은 우울증에 걸리게 하고 자살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굿할 때에 끈으로 허리를 묶게 되면 척추 질환에 걸리는 자들도 있다. 셋째는 그 영들이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이때 그 영들은 주로 우리의 다리를 붙잡고 있다. 그리고 부처 불교를 섬기면 이러한 영들로 인해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미신 잡신을 많이 섬기게 되면 늘 손해를 입게 하고, 환경은 막히게 되며, 도움받지 못하고 성공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존귀하게 쓰임받으려면 우선 이러한 악한 영들을 내보내는 일이 시급하다. 그런데 이 일은 오직 한 가지 방법 밖에 없다. 그것은 '회개'하는 것이다. 나와 내 조상들이 지었던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고로 내가 예수님을 믿었어도 나와 내 조상들이 지었던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열심히 살아도 넉넉하게 살 수 없으며, 죽을 때까지 늘 병원 신세를 져야 하며, 하는 일마다 어려움과 역경에 봉착할 것이다. 그러므로 맨 처음 하나님께 쓰임받으려면 자신과 자신의 조상들이 지었던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본 교회에서 '회개기도문'을 구하여 기도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4.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

  내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 이것은 적극적인 조건으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 여러 가지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다. 그것에는 여러 은사들이 있다. 특히 하나님의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그 사역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여러 은사들이 필요하다. 은사에는 일반적인 은사도 있고 초자연적인 은사도 있다. 목회자의 경우는 말씀을 잘 전할 수 있는 일반 은사가 필요하며, 성도들을 잘 돌보기 위해서는 초자연적인 은사로서 환상의 은사,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방언 통역의 은사와 예언의 은사 등이 필요하다. 거기에다가 치유의 은사와 더불어 영분별과 영판단의 은사, 세력을 느끼고 짓밟으며 세력을 쫓아내는 은사도 동시에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은사는 구해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더욱 더 큰 은사들을 사모하라"고 하였고(고전12:31), "사랑을 추구하되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라(고전14:1)"고 했다. 그렇다. 이런 것들은 구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도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고 하지 않으셨던가?(마7:7)

 

5.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한 세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한 세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주관적인 조건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사명과 부르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의 대부분은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그릇으로 쓰실 것인지를 미리 생각하고 우리를 처음부터 그렇게 만드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그릇으로 빚으실 것인가 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관에 달려 있는 것이지 우리의 주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딤후2:20~21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그렇다. 큰 집에는 주인이 쓰려고 여러 가지 용도에 합당한 그릇들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금그릇, 또 하나는 은그릇, 그리고 나무그릇과 질그릇 등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금그릇이라고 해서 귀한 용도로 쓰이고, 나무그릇이라고 해서 천한 용도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나물을 무쳐낼 때에는 나무그릇이 합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토기장이시기 때문에 저마다 다른 그릇으로 우리를 만드신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이러한 그릇으로, 어떤 사람은 저러한 그릇으로 만드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도 베드로는 천국 열쇠를 사용할 사람으로 그리고 할례자의 사도로 만드셨다(마16:19, 갈2:8). 그리고 사도 바울은 처음부터 이방인의 사도로 쓰시기 위해 만드셨다(갈2:8, 행9:15). 그리고 바나바는 위로자와 권면하는 자로 쓰시기 위해 만드셨다(행4:36). 그러므로 저마다 자신의 빚어진 그릇의 용도에 따라 일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께서 빚어주신 그릇의 용도대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으로부터 빚어진 그릇이 작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새로운 용도로 그를 쓰실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겠으면, 영적인 분들에게 물어보아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뚜렷한 사명이 없는 자라도 하나님 앞에 서원하며 기도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러한 기도에 얼마든지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어서 말했다. 불의한 것으로부터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면 어떤 그릇이라고 할지라도 주인께서 귀히 쓰시는 그릇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면 그는 더욱 더 거룩해질 것이며, 주인이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될 것이고, 모든 선한 일을 할 사람으로 준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가 어떤 그릇으로 빚어졌는가를 아는 것이 필요하며, 또한 어떤 그릇으로 빚어졌든지 자신을 더러움에서 깨끗하게 하는 것이 더욱 더 필요하다. 

 

6. 나오며

  그렇다. 사람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으려면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왜냐하면 더러운 그릇이라면 아무리 그것에 귀한 것을 담는다 할지라도 결국 그 안에 담긴 것이 더럽혀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에게는 우리를 천국에 못 들어가게 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악한 영들이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지었던 죄들이나 조상들이 지었던 죄들을 회개하여 악한 영들을 내보내고, 우리가 하나님께 깨끗한 그릇으로 쓰임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주님의 일을 감당하게 되면, 온갖 더러움과 부정들이 함께 묻어 나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기가 너무나 어렵다. 그리고 우리는 적극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때로는 금식하며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을 감당하기에 우리는 턱없이 부족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기도해야 한다. 특히 우리가 감당할 일에 합당한 은사들을 구해야 한다. 은사에는 일반 은사와 영적인 은사 둘 다가 필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이 땅에 보내어졌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목적과 사명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그때 가장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가 있기 때문이다. 

 

 

2022년 10월 14일(금)

정병진목사

 

한 사람이 태어나서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는 무엇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출애굽기 2장에서는 2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나는 실력이요 또 하나는 인격이라고 한다. 둘 중에 하나가 부족할 때에는 한계가 온다. 그리고 끝까지 오래동안 쓰임받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만큼은 2가지가 다 준비될 때까지 강하게 훈련시키셨다. 실력을 위해 40년, 인격을 위해 40년을 준비시켰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모세처럼 80년을 준비시킨 사람은 없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왜 모세를 어렸을 적에 애굽에 보내어 그로 하여금 과외를 받게 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무명의 40년간의 광야가 필요했는지를 파악하게 된다. 지금 당장 쓰임받지 못하고 있다고 원망하지 말라. 그리고 쓰임받고자 하는 열망을 있을지라도 자신에게 실력과 인격이 다듬어졌는지 확인해보라. 인격이 다듬어지지 않는 사람은 언젠가는 반드시 다른 사람을 상처주기 마련이다. 준비하자. 그리고 또 준비해 보자. 그것이 주님께 합당하게 오래 쓰임받는 비결이다. 모세의 80년의 준비, 이제 그 속으로 들어가보자.

 

1. 들어가며

  하나님은 일하실 때 반드시 어떤 사람을 준비시켜서 사용하신다. 출애굽의 영도자 모세도 그중에 한 사람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하나님께서 쓰임받도록 준비되기 위해서는 무엇무엇이 필요한가? 그래서 오늘은 모세의 지도자로서의 준비과정 중에 2가지 부분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모세의 120년의 인생은 크게 3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태어나서 애굽궁중에서 자라난 40년이 제1기다. 그리고 애굽인 살인후 애굽에서 도망하여 미디안광야에서 보낸 40년은 제2기다. 그리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광야에서 40년을 보낸 것이 제3기다. 그중에서 출애굽기 2장은 그의 출생과정(출2:1~10)에 대해 소개하며, 이어서 40살에 일어난 살인사건 및 미디안광야로의 도주사건(출2:11~22)을 다룬다. 그리고 고통중에서 부르닞는 이스라엘백성들의 기도(출2:23~25)가 소개된다. 출애굽할 때가 다 되었다는 증거다. 그중에서 오늘 이 시간에는 모세의 출생과정 이후에 40세까지의 애굽의 궁중생활과 그리고 미디안에서의 40년의 생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왜 그에게 80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2. 사람이 하나님 앞에 쓰임받기 위해서 준비되어야 할 2가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하나님 앞에 쓰임받으려면 무엇 무엇이 준비되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출애굽기 2장의 모세의 기록을 통해서,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의 2가지 조건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수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실력"과 "인격"이다. 주님 앞에 진정 합당하게 쓰임받으려면 먼저는 실력이 갖추어져야 하고, 인격이 준비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둘 중의 어느 것 하나가 부족하거나 혹시 빠져 있다면 그 사람은 쓰임받다가도 그 쓰임에서 제외되거나 오래 쓰임받지 못한다. 일시적으로 잠깐 쓰임받다가 끝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손에 붙들려 오래 쓰임받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2가지가 준비되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모세도 하나님께 쓰임받도록 2가지 것이 준비되어진다. 그런데 그 2가지를 얻는데 모세는 무려 8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먼저, 실력을 갖추기 위해 40년을 보내야 했고, 그리고 나서 인격을 갖추는 데 또한 40년을 보내야 했다. 그만큼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은 쉽고도 어려운 작업이다. 결국 모세는 자신의 나이가 8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게 되고 드디어 애굽와 바로 앞에 서게 된다.

 

3. 모세는 어떻게 실력을 갖춘 자가 되었는가?

  먼저, 우리는 모세가 어떻게 지도자로서의 실력 곧 지혜와 능력을 갖추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자. 모세가 어떻게 실력을 갖추게 되었는지에 대해 출애굽기에서는 기록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정말 중요한 것이 빠져 있을 때에는 어딘가에 반드시 그것을 기록하게 함으로서 보완을 해 주신다. 모세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보자. 노아가 방주를 지었다는 것은 창세기 6~7장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노아는 방주만을 짓지 아니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모세는 당시 의를 전파하기도 하였던 것이다(벧후2:5). 당시의 타락한 세상사람들에게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강력하게 선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창세기의 기록에는 그러한 말씀이 없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노아가 실천해야 했던 또 하나의 사명을 기록하게 하셨으니 베드로사도를 통해서다. 마찬가지로 모세의 제1기 40년도 그렇다. 그가 태어난 이후 잠시동안 유모인 자신의 친모에게서 길러졌다. 그리고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40세가 될 때까지 성장한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바로의 딸의 양자이자 바로의 후보로 길러졌는지 출애굽기에서는 그 기록이 나오지 않는다. 모세의 기록에는 약 35년의 공백기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40세에서 80세까지는  조금이 나오며(출2:11~22), 그리고 80세에서 120세까지는 그가 어떻게 쓰임받았는지가 정말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출3장~신34장).

  그렇다면, 모세는 어떻게 자신의 실력을 길렀던 것일까? 아니 왜 모세는 실력을 길러야만 했던 것일까? 그것은 신약의 스데반설교에 언급된다(행7:22). 그리고 모세가 애굽궁중에서 40세까지 살고 히브리인들을 위해 살기로 마음먹었다는 것도 스데반의 설교에 나온다(행7:23). 그런데 스데반은  모세의 애굽궁중생활 40년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행7:22)" 그랬다. 모세는 약 40년의 시간을 당시 세계최고의 나라에서 지냈으며, 애굽 사람의 뛰어난 모든 지혜를 다 터특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모세는 이제 말과 하는 일에 있어서 능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모세를 애굽궁중에 보내어 과외를 시켰던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켜 천하만국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시 세계최고의 제국인 바로앞에 서게 함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여러분은 장래 바로 앞에 섰는데 주눅이 들어 아무말도 못하는 모세를 생각해보았는가? 지혜가 부족하여 애굽의 술사들의 지혜를 따라가지 못하는 모세를 생각해보았는가? 그러한 모세는 하나님의 명예를 드러낼 수가 없다. 거짓 우상을 섬기는 사람 앞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소개할 자로서 합당하지 않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하나님께서 왜 애굽전역에 모세를 보내어 10가지 재앙을 내리도록 했는지를 말이다. 그것은 애굽사람과 바로로 하여금 여호와가 누군지를 알게 하려고 함이었다. 그러므로 모세는 장차 40년 뒤에 바로 앞에 서서 하나님을 대신해야 할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미리 애굽에 보내 과외를 시킨 것이다.

 

4. 모세가 애굽궁중생활 40년을 보내면서 갖게 된 자의식은 무엇이었는가?

  그리하여 모세는 애굽궁중에서 40년을 보냈다. 그래서 실력도 갖추었다. 그런데 그러한 과정 속에 모세는 새로운 열망이 속에서 차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은 애굽사람이 아니라, 종노릇하며 고통당하고 있는 히브리인의 아들이라는 자의식이었다. 그가 어떻게 그것을 알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출애굽기에서는 침묵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가진 자의식의 꿈틀거림, 다시 말해 그가 히브리인을 자기의 민족으로 여기고 그들을 위해서 자신의 역할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그는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출애굽기가 아닌 다른 성경이 언급하고 있으니, 그 성경은 바로 히브리서다. 히브리서에서는 그가 40살이 될 무렵 그의 속에 있는 강렬한 열망이 무엇이었는지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히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그랬다. 그의 히브리인으로서의 자의식은 어렸을 적에 유모이자 친모였던 요게벳으로부터 듣고 배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애굽궁중에 있으면서도 가까이 살고 있던 히브리인들과 접촉할 기회를 가졌고 그때에 어머니 요게벳이나 누나 미리암 혹은 형인 아론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들었을 수도 있다. 자신이 지금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히브리인 민족의 한 사람이며, 히브리인이 영원히 살 곳은 애굽이 아니라, 가나안땅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애굽에 있는 히브리인들을 구출해내는 어떤 일을 하실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형제 이스라엘 민족을 돌아볼 생각을 했던 것이다(행7:23). 왜냐하면 그가 40세가 되었을 때에(B.C.1486), 그의 강력한 열망이 표출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애굽인 살해사건이었다. 하루는 애굽인과 히브리인이 싸우는 것을 보았다. 그가 보기에는 히브리인이 원통한 일을 당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모세는 애굽사람을 쳐죽인다. 모세는 그의 행동을 통해 자신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히브리인들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깨달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그 다음날 알게 되었다. 

  다음날이었다. 이번에는 히브리인들끼리 서로 싸우고 있었다. 그러자 모세는 어떻게 같은 동족끼리 싸우느냐면서 말리게 된다. 하지만 그의 형제는 모세를 밀치며 말하기를, "누가 너더러 관리와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고 하면서, "어제는 애굽사람을 쳐죽임과 같이 오늘은 나를 죽이려하느냐"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모세는 즉시 2가지를 깨달게 된다. 첫째, 자신이 전날 저질렀던 행동이 무모한 짓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자신의 행동을 통해서 히브리인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자기를 도와줄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히브리인들은 자기를 구원자로서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둘째, 모세의 정적이었던 바로왕 곧 투트모세3세(B.C.1504~1448)에게 자신을 제거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즉시 애굽을 떠나 멀리 달아나게 된다.

  그렇다. 그가 애굽사람을 쳐죽일 정도로 자기 민족을 위해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내면의 상태에 대해 히브리서기자는 이미 모세는 애굽 왕자의 타이틀을 버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모세는 이미 고통당하는 히브리인과 함께 하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행한 행동은 히브리인들의 노예탈출을 위해서 필요한 행동은 아니었다. 하나님이 시키신 방법이 아니라 혈기를 앞세운 자기의 앞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5. 하나님께서 쓰임받기 위한 두번째 조건은 무엇인가?

  그러자 모세는 우선 애굽의 힘이 미치지 않는 지역으로 도망치게 되는데, 오늘날 아카바만(홍해)의 건너편에 있는 미디안땅으로 도망을 치게 된다. 모세는 자신의 실력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펼쳐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혈기를 따라 된 것임을 알고는 그것이 자신에게 자기와 자기 민족에게 화를 가져왔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러자 멀리 도망친 모세는 거기서 무명의 세월을 보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미디안광야에서의 40년이다. 모세가 미디안으로 도망친후, 남자 목자들에 의해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미디안의 제사장의 일곱딸들을 도와 양떼에게 물을 먹도록 도와준다. 그 일을 계시로 모세는 미디안의 제사장 르우엘(이드로)의 집으로 초대되었고 그 집에서 살게 된다. 그러자 모세를 예사롭지 않다고 판단한 르우엘은 그를 맏사위로 맞이한다. 그리하여 십보라와 결혼한 모세는 거기서 아들들을 낳고, 르우엘(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면서 광야 40년이라는 무명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그것은 그의 혈기를 비롯한 인간적인 욕심을 다 내려놓는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을 때까지 말이다.

  그렇다. 사람은 실력만으로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인격도 다듬어야 한다. 인격도 연마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보라. 그분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셨다(마11:29).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맡겨주신 인류 최대의 막중한 일을 끝까지 잘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모세에게는 실력은 있었으나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특히 자신의 혈기 하나도 다스리지 못했던 것이다. 혈기만을 가지고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는 없지 아니한가? 다듬어지지 아니하 인격으로는 오히려 남에게 상처를 주고 아픔을 줄 뿐이다. 그러므로 지도자로서 쓰임받아야 할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상처를 치유받고 주의 일을 시작해야 한다. 모세에게는 그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이 다듬어지게 하는데 모세에게는 4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해다.

 

6. 나오며

  한 사람이 하나님께 붙들려 아름답게 쓰임받기 위해서는 2가지 필요하다. 하나는 훌륭한 실력이요 또 하는 좋은 인격이다. 모세에게 처음 애굽궁중에서 40년이라는 시간은 실력을 갖추는데 필요한 시기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또 하나의 열망이 속에서 싹트고 있었으니 그것은 히브리민족에 대한 자의식이었다. 자기도 고통받고 압제받고 있는 히브리인과 같은 혈통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을 묻지 않았다. 아직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혈기로서 자신의 소원을 이루고자 떨쳐 일어났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과 민족에게 화를 자초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광야로 가야 했다. 거기에 40년의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고, 거기서 인격을 다듬어야 했다. 그러자 이제 하나님께서 그를 쓰시기 위해 그를 찾아 오신다(출3장).

 

2018년 8월 29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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