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04(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이것이 다윗이 드린 묵상기도다(시19:1~14)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IAHdHsQ02_c  [혹은 https://tv.naver.com/v/29009169 ]

 

1. 들어가며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는 구약시대에는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분향단에서 향을 사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분향단의 향을 사르는 것과 주의 사항이 가장 일치하는 기도는 역시 주기도였다. 그런데 주기도문은 매우 균형을 갖춘 모범적인 기도문이었다. 즉 주기도문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기도와 인간의 필요를 위한 기도가 각각 3가지씩 있었으며, 인간의 필요를 위한 기도로 영혼육을 위한 기도이자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필요를 위한 기도로 균형있게 구분되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과연 균형을 맞추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중에서 발성학적으로 보았을 때에 우리의 기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발성학적으로 볼 때에 기도는 크게 부르짖는 기도와 읊조리는 기도가 있다. 다시 말해 '통성기도'와 '묵상기도'가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묵상기도'란 대체 어떤 기도이며, 묵상기도는 언제 드리는 기도인 것인지 그리고 묵상기도를 하면 어떤 유익을 얻게 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통성기도와 묵상기도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우리가 드리는 기도에는 발성학적으로 보았을 때에 '통성기도' 즉 부르짖는 기도가 있으며, '묵상기도' 즉 읊조리는 기도도 있다. 성경에 나오는 빈도수를 보면, 묵상기도보다는 통성기도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많큼 우리의 삶에는 통성기도가 더 많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통성기도는 어떤 경우에 사용하는가? 통성기도는 보통 환란과 고통 중에서 자신을 건져주시기를 구할 때 사용하게 된다(출2:23, 삿3:9). 그리고 시편을 읽어보면 다윗도 자주 부르짖는 기도를 했었음을 발견할 것이다(시18:6, 34:6). 그리고 신약시대의 성도들도 부르짖는 기도를 했으며 또한 그렇게 기도 해야 함이 언급되어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행7:59, 눅18:7).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생활에 통성기도는 매우 필요하고 중대한 기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다윗처럼 묵상으로 기도할 필요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묵상기도는 묵상기도가 주는 놀라운 영적 유익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묵상으로 기도하는 것도 기도의 여러 유형들 가운데 하나에 속하며, 어떤 특별한 목적에 따라 매우 중요하기 쓰이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묵상기도'란 어떤 기도를 가리키는가? 시19:14에 보면, 다윗이 묵상으로 기도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때 '묵상'이라는 말은 '힉가욘'이다 이 단어는 속삭이듯이 그리고 읊조리듯이 기도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다윗이 어떻게 묵상으로 기도했으며, 다윗이 그때 묵상으로 기도함으로 인하여 얻을 수 있었던 유익은 대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자. 

 

3. 다윗은 어디에서 언제 묵상으로 기도하게 되었는가?

  그렇다면 다윗은 '어디에서' 그리고 '언제' 묵상으로 기도한 것일까? 시편19편은 '찬양시'이자 '지혜시'로 알려져 있는 매우 유명한 시편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이 시편은 표제어가 달려 있는데, 표제어에 따르면, 이 시는 '다윗의 시, 인도자(지휘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 이것은 다윗의 기도이기는 하지만 시의 형태로 지어진 것이며, 또한 지휘자를 따라 노래 부르기 위해 지어진 시이다. 그럼, 다윗은 언제 어디에서 이 시를 지은 것인가?

  첫째, 다윗이 대체 '어디에서' 이 시를 지은 것인가? 다윗은 이 시를 어디에서 지었을까? 표제어에는 그것을 살펴볼 수 없으나, 시편 19편에 등장하는 소재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가 어디에서 이 시를 지었는지를 알 수 있다. '하늘과 궁창'(1절), '날과 밤'(2절), '해'(태양)(4절), '정금과 송이꿀'(10절), '반석'(14절)이 나온다. 고로 다윗이 시를 지은 장소는 틀림없이 '광야'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때 그는 광야의 대자연 속에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지혜로 가르쳐준 것들을 듣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는 그 장막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다가 어떤 깨우침을 받은 가운데에 이 시를 지은 것이다. 

  둘째, 다윗은 '언제' 이 시를 지은 것인가? 다윗이 이 시를 언제 지었는지도 사실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11절부터 13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그가 자신의 허물을 낱낱이 깨닫게 되었고 숨겨둔 허물을 고백한 후에 이 시를 지었다는 것과 무엇보다도 알고 있으면서도 죄를 지었던 뻔뻔스러운 자신을 회상하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 시에는 자신의 부하였던 우리야 장군의 아내였던 밧세바와 간음을 행하고 우리야를 죽었던 자신의 과거를 암시하는 말들이 등장한다. 고로 그가 이 시를 지었던 시기는 적어도 밧세바 간음사건과 우리야 살인사건을 겪고 난 후 그 죄로 인해 자신이 징계를 받은 경험을 가졌던 시기 이후였던 것 같다. 인생의 산전수전을 겪은 후에 어느 날 광야의 천막에서 이 시를 지은 것이다. 그리고 그때 묵상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던 것이다. 

 

4. 다윗이 이때 깨달은 진리는 무엇이었는가?

  그렇다면 다윗이 묵상으로 기도하면서 깨달은 진리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2가지다. 하나는 자연에서 배운 계시요 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배운 계시다. 앞의 계시를 '자연계시'라고 부를 수 있겠고, 뒤의 계시는 '특별계시'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그는 대자연 속에서 자연이 들려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1~6절). 그것은 하늘과 궁창이 말하고 있는 메시지를 들었고, 동쪽에서 떳다가 서쪽으로 지는 태양이 말하고 있는 메시지를 들었다. 하지만 하늘과 하늘에 있는 것들과 태양을 창조하시고 이것들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을 노래하고 있다. 불신자의 눈에는 하늘도 그저 보이는 하늘일 것이고 태양도 그저 떠오르는 태양에 불과하겠지만 산전수전을 이미 겪었던 다윗에게 대자연은 아주 훌륭한 교과서였던 것이다. 그때 그의 귓가에는 결코 들리는 소리가 없었어도, 날은 날에게 말을 쏟아내고 있었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해주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묵상기도의 효력인 것이다. 자신의 귓가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그는 자연의 숨결 속에서도 체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 아래 모든 생명체가 빛을 받고 또한 온기를 받아 살고 있는 것처럼, 자신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고 있었다는 비로소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린 것이다. 

  둘째, 그는 장막에서 읽고 있던 율법(토라)를 보면서 또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7~14절). 그는 완전한 토라의 말씀을 읽으면서 자신의 우둔함을 깨닫고 눈이 어두워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을 지혜롭게 하며 자신의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기록된 말씀이 없었다면 그는 자신이 어떤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을 깨달을 수 없었을 것이고, 뻔뻔스럽게 죄를 범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우둔함과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준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5. 다윗은 이때 어떤 기도를 드렸는가?

  자연과 그리고 말씀 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다윗은 그때에 나지막이 그리고 조용하게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다윗이 드린 '묵상기도'라는 것이다. 그는 이때 자연만물을 보면서도 그들이 던지고 있던 메시지를 도무지 듣지 못했고, 기록된 말씀을 읽으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했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의 숨겨진 허물이 있다면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해 달라고 그리고 알면서도 죄를 짓고 있는 뻔뻔스러움에서 자신을 건져달라고 기도하고, 그 죄들이 자신을 지배하지 않기를 기도로 올렸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흠이 없게 되고 죄악으로부터 깨끗하게 해주시기를 간구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때 많이 울면서 기도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왜 과거에는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없었는지를 말이다. 왜 그때에도 똑같은 자연에 자신이 있었었고 그때에도 똑같이 장막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있었는데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는지를 생각하면서, 한없이 부끄러운 자신을 발견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던 날들도 그에게 있었을 것이다.

 

6. 묵상기도의 효력은 무엇인가?

  다윗은 그때 자연만물이 말은 하지 않아도 고요히 자신의 역할을 후대에 전수해주고 있는 놀라운 일들을 보고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있었음에도 나단 선지자가 들려준 '작은 암양새끼'의 비유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었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자 다윗은 이제 그가 과거에 지었던 죄악들을 두 번 다시 짓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기 시작한다. 그렇다. 묵상기도를 하다보면 반드시 인격적인 성숙을 가져오게 된다. 왜냐하면 묵상기도를 할 때에 비로소 나지막히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때 곁에서 조용히 듣고 계시는 주님과 대화하는 기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영적인 깨달음은 통성으로 기도할 때와는 상당히 다른 것이다. 통성기도는 자신의 죄를 내뱉어 악한 영들을 내보낼 때에라 효력이 있는 것이지만, 깨달음의 기도는 오직 묵상기도를 통해서 얻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7. 나오며

  묵상기도란 무엇인가? 묵상기도란 주님이 곁에서 길을 같이 걸어가면서 나의 말을 들어주는 느낌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그것은 주님과 나누는 친밀한 대화이기 때문이다. 그때에 주님께서는 나의 옆에서 친구처럼 나의 말을 들어주신다. 그러므로 그때에는 깨달음이 금방 오게 된다. 곁에서 주님이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 비로소 내가 너무나 분주히 살다보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온 자기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겠노라고 주님께 나지막히 각오를 올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묵상기도'다. 그러므로 묵상기도는 필연적으로 자기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인생의 중대한 깨달음을 얻게 해 준다. 그래서 하나님께 더 열납되는 기도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제는 아침이 되면 동네를 한 바퀴 걸어보면서 자연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보라. 나무도 어제 보았던 그 나무이고 어제 보았던 그 풀들이겠지만 오늘 보는 그것들은 어제의 그것들과 사뭇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그들은 오늘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신의 일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줄 것이다. 그리고 기록된 성경말씀에 귀를 기울여보라. 성경도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들려줄 것이다. 그러한 깨달음이 진정 우리의 입술과 마음으로 연결되어 기도로 나온다면 그것이 바로 '묵상기도'가 되는 것이다. 

 

 

2022년 09월 04일(주일)

정병진목사

 

2022-09-02(금) 금요기도회

제목: 회개기도문과 주기도문으로 기도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유익(눅11:1~4)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s4OVv0n-MdY  [혹은 https://tv.naver.com/v/29009204 ]

 

1. 들어가며

  예수님 당시 세례요한은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방법과 기도할 내용을 가르쳐주었다. 그러자 예수님의 제자들도 자기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가르쳐준 기도가 바로 '주기도문' 곧 주님이 가르쳐준 기도이다. 사실 기도문이 없이도 기도는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범적인 기도문이 없다면 우리는 했던 말 또 하게 되고 아니면 중요한 것들을 빼놓고 기도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어떤 정형화된 기도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기도생활을 하는 이들에게는 기도의 틀이 잡히기까지 매우 커다란 도움이 된다. 기도의 내용의 뼈대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가르쳐준 주기도문 외에도 우리가 회개할 때 사용하는 기도문이 있어왔다. 이것은 20년 전부터 회개기도를 실천해오신 분들이 회개하면서 그들이 회개했던 내용을 모아모아서 만든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회개기도문'과 우리 주님이 가르쳐준 '주기도문'을 비교 분석하면서 이러한 기도문들로 기도했을 때의 유익한 점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2. 왜 우리에게는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하는 것이 필요할까?

  주기도문에 대해 말씀하기 전에 먼저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사용해온 '회개기도문'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그냥 회개기도를 하는 것과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믿는 이들은 자신의 기도에 회개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 정도는 다들 알고 있다. 그러나 막상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음욕을 품었다거나 남을 미워했다거나 함부로 맹세를 하지 않은 경우라면 그것으로 자신의 삶은 괜찮은 것이라고 여기고 회개기도를 잘 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미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사건으로 인하여 자신의 모든 죄들은 다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그리 회개할 필요성을 못 느끼며 살아간다. 심지어 그때 자신의 미래의 죄들도 다 용서되었다고 믿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만약 이 진술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 요한의 말을 성경에서 지워야 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미 목욕한 사람이라도 날마다 더럽혀진 발은 씻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요(요13:10), 사도 요한은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할 때에라야 비로소 그 죄가 깨끗해진다고 말했기 때문이다(요일1:9).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온갖 종류의 죄들의 유혹과 사탄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갈 수 있기에 우리에게 회개기도는 다 필수인 것이다. 만약 우리가 거듭날 때 주님께서 입혀준 흰 겉옷이 심판의 날에 더럽혀진 채 남아 있다면 좋으련만, 땅에 발을 밟고 있는 우리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기에 결국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려면 회개를 해야 하는 것이다(계22:14~15). 

 

3.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하면 어떤 유익이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한다면 어떤 유익이 있는 것인가? 지금으로부터 20년전 우리나라의 믿음의 선배들이 구체적으로 회개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 줄 한 줄 만든 것이 오늘날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회개기도문』이라는 책이다(교회에 문의하기 바람). 우리는 이러한 회개기도문을 통하여 우리가 어떤 죄를 범했는지 구체적으로 낱낱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죄의 종류도 크게 2가지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나는 우상숭배의 죄요 또 하나는 실생활의 죄라는 것이다. 우상숭배의 죄는 하나님이 아닌 것을 섬기며 살았던 모든 종류의 죄들을 가리키는데, 믿음의 선배들은 그것은 십계명에서 찾았었고 그것을 4가지로 정리했으니, 조상에게 제사 드린 죄, 부처와 불교를 섬긴 죄, 무당과 점쟁이를 찾아가 물어보고 시킨대로 행한 죄, 미신과 잡신을 섬긴 죄가 그것이다. 그리고 실생활 속에서 짓게 되는 죄들도 정리했으니 그것은 총 19가지나 된다. 교만과 음란과 거짓, 혈기와 분노, 우울, 근심과 걱정, 불평과 불만, 시기와 질투, 쾌락과 유흥, 조급, 게으름 그리고 의심과 두려움, 인색과 욕심, 누설과 수다, 미움과 무자비, 알콜과 니코틴과 게임 중독이 그것이다. 물론 이것보다 더 많은 종류의 죄들이 있겠지만 대부분 이 범주 안에 들어간다. 그래서 지난 2년 3개월동안 이것을 가지고 그대로 기도해본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함으로 얻는 유익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그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회개기도를 실제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회개할 때에는 두리뭉실하게 기도를 해왔으며, 지은 죄들을 낱낱이 회개하지도 않고 굵은 죄들을 몇 가지 회개하면 나머지 죄들은 다 용서된 줄 알았다. 그리고 예수 믿기 전에 우상숭배하고 살았던 죄들은 예수믿을 때에 다 용서되었기 때문에 그 죄가 나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회개는 구체적으로 낱낱이 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지은 죄로 인하여 우리에게 들어오는 악한 영들은 그 죄로 인하여 들어왔기에 그 죄를 회개할 때에라야 그 영들이 우리에게서 떠나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하면 회개기도를 더 구체적으로 낱낱이 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하면 예수님을 믿었으나 풀리지 않던 문제들을 해결받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매우 큰 회개기도의 위력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고 열심히 산다고 해도 해결되지 않는 많은 문제들을 그리스도인들이 안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예수님을 믿어도 자주 병에 시달린다. 어떤 이는 중한 병이나 불치병을 앓고 살아가기도 한다. 또한 예수님을 믿고 열심이 일을 하여도 손에 재물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부자로 살아가지 못하고 가난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것이다. 또한 어떤 이는 자신은 예수님을 잘 믿었으나 자녀가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어떻게 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잘 안 된다. 왜 그럴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를 고민하고 고민해 보아도 뚜렷히 해결할 방도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회개기도를 해 보니 그것은 우리가 지은 죄가 아니라 우리의 조상들이 지은 죄로 인하여 악한 영들이 우리 가까이 혹은 우리 몸 속에 침입해 들어와서 여태까지 우리를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우리의 조상들이 우상숭배자였거나 우상숭배의 죄를 많이 지었을 경우는 더욱 심각했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이 그러한 죄를 짓고 있었을 때에 우리도 그 조상의 허리에 있었다는 것을 간과했다. 고로 우리가 직접적으로 지은 것은 아니더라도 우리도 우리의 조상과 함께 간접적으로 죄를 지은 것이다. 그러므로 악한 영들도 대부분 자기의 후손에게 들어가는 것이지 아무에게나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회개기도를 하면 이러한 영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게 된다. 그러므로 체력이 좋아지고 시력이 좋아지고 건강이 회복되고 불치의 병이 낫게 되는 것이다. 회기기도를 하게 되면 재정을 막고 있고 재정을 빼앗아던 악한 영들이 떠나가므로 재정이 회복되고 재정이 새어나가지 않는다. 그리고 믿음을 방해하던 악한 영들이 떠나감으로 자녀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고 자녀들의 앞길이 열려지는 것이다. 

  셋째, 회개기도문을 가지고 기도하면 더이상 죄를 짓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렇게 회개기도문으로 기도를 해서 악한 영들은 떠나보내고 자신의 인격을 변화시켜 왔는데, 또 다시 죄를 지어서 인생을 어렵게 만들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아니하는 것이다. 아니 죄를 짓고 살던 우리의 삶이 변화되어 깨끗한 심령과 마음으로 바뀌었는데, 거기에 또다시 죄를 지어 더럽힐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하면 확실히 죄를 덜 짓게 되거나 죄를 거의 안 짓게 된다는 것을 모든 이의 간증이다. 그리고 죄에 대해 더 예민하여져서 심지어 자신의 입술로 거짓말과 같은 것들 즉 둘러내는 말과 같은 죄도 짓지 아니하게 되는 것이다. 

  넷째, 부차적인 유익들도 있으니, 그것으로는 첫째로는 오래 기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하면 적어도 40분에서 1시간정도는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하루에 네 번만 실천하면 하루에 4시간은 거뜬히 기도할 수 있게 된다. 둘째로는 영적인 은사가 뒤따라 온다는 것이다. 악한 영들이 영적인 은사가 내려오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는데, 그것들이 떠나게 되니 영적인 은사가 오는 것이다. 환상이 보이고, 예언과 방언통역이 되어지고, 영안이 열려 천사와 귀신을 보게 되고, 예수님도 보고 천국과 지옥도 볼 수 있으며, 귀신을 쫓아내어 병든 사람을 낫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셋째로는 가족전도가 되어진다는 점이다. 내가 회개를 하여 내게 붙어있는 저주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고 건강과 재정이 회복되고 인격이 달라지게 되니, 이것을 가족들이 알아보고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스스로 고백하기 때문이다. 넷째로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훨씬 더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의 대부분은 그들이 믿음이 없어나 믿음을 배반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인데,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하다 보면 자신의 모든 죄를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 때문이다. 

 

4. 주기도문은 왜 필요한가?

  그렇다면 우리는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하면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되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왜냐하면 회개기도문은 소극적인 것을 처리하는 기도의 방법에 속하기 때문이다. 즉 죄들을 처리하는 방법으로서 회개기도문이 용이한 것이지, 회개기도문이 모든 기도를 포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의 통치가 내 삶에 적극적으로 임하기를 기도해야 하는데 그것은 회개기도문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극적인 죄들을 처리하는 데에는 회개기도문이 탁월하긴 하지만 우리는 회개기도문만으로 기도를 다 했다고 만족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보다 더 적극ㅈ적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기를 기도해야 하고 하나님의 뜻이 나를 통하여 이 땅 위에서 이뤄지기를 기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기도문과 더불어 주기도문이 반드시 필요하다. 주기도문은 회개기도를 포함하지만 보다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기도하는 기도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와 인간의 필요를 위한 기도 사이의 균형을 맞출 수 있어서, 주기도문은 우리에게 매우 좋은 기도문이 되기 때문이다. 

 

5. 주기도문은 왜 풀어서 사용해야 하는가?

  그런데 '주기도문'으로 자꾸 기도를 하다보면 어느새 기도문이 주문이나 암송구절처럼 느껴지게 된다. 그러면 주기도문이 얼마나 우리에게 유익한 기도인 것을 금새 망각하게 된다. 그러다가 주기도문도 어느새 주술처럼 되어버린다. 그래서 이번에 주기도문을 조금 바꾸어보았다. 이 기도문을 가르쳐주신 예수님의 의도와 목적을 따라, 우리의 피부에 와닿게 고쳐본 것이다. 20년전부터 누군가가 회개기도문을 만들어 회개기도를 실제적으로 할 수 있게 한 것처럼, 주기도문을 풀어써 본 것이다. 다음은 100%는 아니더라도 우리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쳐준 의도와 목적에 따라서 주기도문을 풀어써 본 것이다. 

 

하늘에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 

구하기 전에 먼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시는 우리 아버지께 이 시간도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주님, 오늘 하루도 나를 통하여 주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부정한 입술로 주님의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나의 몸과 마음과 모든 영역이 주님의 통치 아래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께서 나의 영원한 통치자가 되어주셔서 나를 다스려 주옵소서.

주님, 오늘도 하늘 안에서처럼 이 땅 위에서도 주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사탄 마귀와 귀신들은 매순간 패배하게 하시고, 우리들로 인하여 주님의 자녀들이 계속해서 탄생하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하늘의 상속자이자 거룩한 신부로 날마다 준비되게 하시고, 나를 통하여 내 가족과 내 이웃에게 천국복음이 전해지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래서 그들이 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그들도 이끌어 주옵소서.

사랑하는 주님, 오늘 우리 가족이 살아가기에 필요한 양식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와 내 나라와 민족에게도 양식을 주시옵소서. 또한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을 도우며 살아갈 수 있도록 떡 반죽그릇과 저의 일터에도 복을 주시옵소서.

자비로우신 주님, 갚을 수 없는 너무나 큰 사랑을 주님으로부터 받았사오니, 이 시간 주님처럼 나에게 죄지은 자들을 저도 용서합니다. 주님, 심판의 날에 저의 작은 이 실천을 기억하시사 내가 지은 죄들도 너그러이 용서해 주옵소서.

주님, 제게 너무나 버거운 시험은 감당할 길 없사오니 제 믿음의 분량에 따라 적당한 시험을 허락하시어 저의 믿음이 성장하도록 도와주시고, 다만 악한 자와 귀신의 세력으로부터 저와 제 가족을 지켜주시고 구원해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6. 풀어쓴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면 어떤 유익이 있는가?

  그래서 풀어쓴 주기도문을 따라 기도를 해 보았다. 그랬더니 놀라운 영적인 유익들이 있었다. 그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드디어 온전하고 균형잡힌 기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회개기도문이 없었을 때에는 회개기도도 제대로 하지 않고 지내왔던 우리들이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하니 회개기도가 제대로 잡히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항상 뭔가 아쉬움이 늘 있었다. 그것은 회개기도문은 잘못된 것, 죄지은 것을 없애는 기도에 속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통치가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를 다스리기를 원하는 것이 회개기도에서는 빠져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주기도문으로 기도를 해보니, 역시 하나님의 통치가 내게 임하여 나와 내 몸과 내 가정과 내 나라와 민족을 다스리기를 기도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강화되고 풍성해졌다. 그리고 그동안에 내 뜻과 내 고집을 주님께 관철시키는 기도를 해왔다면,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다보니 하나님의 원대한 뜻을 구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뤄져서, 악한 영들은 날마다 패배하고 하나님의 상속자가 탄생하며 자신이 예수님의 신부로 단장되기를 기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의 필요만을 주로 간구하게 되는데,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다보니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기를 먼저 기도하는 습관이 생기게 된 것도 놀라운 변화다. 

  둘째,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자신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어지고, 하나님의 통치가 자신에게 임하며, 하나님의 뜻이 자신을 통하여 이뤄지기를 기도하다보니,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 평강은 세상이 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통치하는 영역 곧 이 세상에서 느낄 수 없는 하늘 천국의 기쁨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다. 

  셋째, 자신의 성품과 인격 그리고 신앙이 성숙해지고 성장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이기적인 기도를 해왔는데 풀어쓴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다보니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 그 뜻을 이뤄가는데 자신의 몸이 쓰임받기를 기도하게 되니까, 자신의 인격이 점차 다듬어지고 성숙해지더라는 것이다. 그렇다. 원래 구약시대에는 지성소에서 분향하는 향을 여호와 하나님만을 위해서 만들라고 하셨다. 이때 향은 성도들의 기도들을 일컫는다. 고로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는 사실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구하는 기도여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중대한 사실을 잊고 살았던 우리의 마음에 이제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기도하기 시작했으니 놀라운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인격도 성숙되고 신앙도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주기도의 위력이다. 

  넷째, 하루를 위탁하는 기도를 잘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매일 아침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데 우리는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할 것인지가 막막했다. 그런데 풀어쓴 주기도문으로 하루를 시작하다 보니, 하루가 밝고 희망찬 하루가 시작되더라는 것이다. 하루동안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되기를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기도하다 보니, 하루의 시작이 주님과 함께 시작되고 주님을 위한 하루를 시작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가족과 공동체와 민족이 살아가기에 필요한 하루의 양식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다보니, 하루 하루를 성실히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하루를 위탁하는 기도 중에 주기도문만큼 좋은 기도가 사실 없었던 것이다. 

 

7. 나오며

  우리 주님께서는 어떤 기도를 드리더라도 기도하는 자를 기뻐하신다. 그리고 그러한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해주시기를 기뻐하신다. 하지만 어떤 기도는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는 것도 있다. 그것은 자기를 자랑하기 위한 기도와 이방인처럼 하나님을 전능자로 믿지 못해서 하던 말을 또 반복해서 하는 기도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유대인들의 '외식하는 기도'와 이방인들의 '중언부언의 기도'를 바로 잡고 우리의 영적인 유익을 위해 기도를 가르쳐주셨다. 그것이 바로 '주기도'인 것이다. 하지만 주기도문은 왠지 딱딱하다. 왜냐하면 너무나 거대한 하나님의 뜻이 거기에 담겨있는데 그 언어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기도를 풀어서 사용해 보았다. 예수님께서 원래 의도하신 목적에 따라 기도문을 다시 풀어 써 본 것이다. 그런데 그 효과는 놀라웠다.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우리의 가슴을 열어 젖혔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균형잡힌 기도와 하나님의 평강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또한 주기도는 우리의 성품과 인격을 바꾸기 시작하였고 하루를 위탁하는 기도를 드리는데 매우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주기도문이 이러한 놀라운 능력을 품고 있었는지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한편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기 기도할 때에 먼저 자신의 죄를 회개하기를 기뻐하신다. 고로 기도할 때에 우리는 반드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회개기도를 집어넣어야 한다. 그런데 그때 어떻게 회개할지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회개기도문은 가뭄에 단비가 되어주었다. 그것으로 기도했더니 회개기도가 놀랍게도 실제적인 것이 되었고, 예수믿은 후에도 풀리지 않던 문제들을 하나씩 둘씩 해결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자신이 죄를 짓지 않는 사람으로 변화되기에 이르렀고, 그 외에도 많은 부차적인 유익들을 받게 되었다. 그러다가 풀어쓴 주기도문을 만났으니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에 있겠는가? 문제는 우리가 이것을 실생활에 실천하여 적용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지만 이러한 사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회개기도와 주기도를 통해 기도생활에 놀라운 발전을 있기를 기도해 본다. 이 모든 일을 우리에게 행하신 우리의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2022년 09월 02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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