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하강해(15) 여호와의 이상적인 종이었던 다윗이 저지른 엄청난 범죄(삼하11:1~27)_2022-01-21(금)

https://youtu.be/QvK_VD2UWDs [혹은 https://tv.naver.com/v/24773781 ]

 

1. 다윗의 평생에 있었던 가장 어두운 사건이자 그의 인생에서 최대의 오점을 남긴 사건은 무엇이었는가?

  다윗은 참으로 훌륭한 인물이었다. 그의 성품은 온화했고 성실했으며, 권위를 인정할 줄 알고 자신의 할 일에 대해서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의 신앙심은 더욱 뛰어났으니 그의 신앙심은 어릴 적부터 잘 갖추어진 채 있었다. 최소 그가 15세 이전에 목동으로 지낼 때에 불렀던 찬송들은 또 얼마나 감미로운 것이었는가? 그리고 그의 신앙은 그가 15세 되었을 때에도 이미 진가가 나타났다. 즉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과의 싸움에서도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왕이 되었을 때에도 그는 가장 먼저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성에 안치하는 일을 했으며, 전쟁하면서 늘 펄럭이는 휘장 가운데 둔 하나님의 법궤가 마음에 걸리자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지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자 그러한 마음이 나단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 전달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깊은 감동을 느끼셨다. 그리하여 그에게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위대한 언약을 해 주었으니, 이름하여 다윗 언약(삼하7:8~16)이다. 그리고 그는 은혜를 저버리는 파렴치한 자가 아니라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가슴 따뜻한 사람이었다. 다윗 자신을 위험한 현장으로부터 빼내어 살려 준 친구 요나단의 우정도 잊지 않았고 그의 아들 므비보셋을 자신의 아들이자 왕자처럼 살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던 그였지만 그만 커다란 실수이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부하 장수의 아내 밧세바와 불륜을 일으키고 곧 임신이 되자 그것을 무마시키기 위해 자신의 부하 장수 우리야를 죽여 없애도록 요압장군에게 시켰던 것이다. 

 

2. 다윗이 저질렀던 2가지 중대 범죄는 율법에 따르면 어떤 처벌이 기다리고 있는가?

  한 마디로 다윗은 2가지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하나는 밧세바와 간음죄를 저지른 것이었고 또 하나는 우리야 장수를 죽인 것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가 저지른 죄는 하나는 '간통죄'요 또 하나는 '살인 교사죄'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율법에 따르면, 이러한 범죄를 저지른 자는 어떻게 처리하라고 되어 있는가? 첫째, 간음죄(간통죄)는 간부와 음부 둘 다 반드시 죽이라고 되어 있다. 출애굽기에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레20:10)"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살인죄(살인 교사죄) 역시 살인자를 반드시 죽이라고 되어 있다. "만일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레24:17)" 고의로 살인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살인을 당한 형제는 살인자를 죽일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다윗은 의도적으로 그리고 고의적으로 살해를 교사했으니 다윗은 죽어 마땅한 죄를 범한 것이다. 그것도 2가지 죄를 한꺼번에 범했으니 말이다. 

 

3. 다윗은 왜 이토록 악한 일을 저지르게 되었는가?

  그렇게 선하고 온화하고 정직하며 바르게 살았던 다윗이 왜 이토록 커다란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일까? 물론 거대한 안목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면, 이 사건은 아무리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할지라도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에게는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사건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의 직접적인 요인을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은 3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 근 10년 동안 계속해서 전쟁에서 승리하다 보니 이제는 그것을 누릴 때가 되었다고 자만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는 30세에 왕이 되어 숱한 전쟁을 치렀으며 그리고 모두 승리하였다. 그리고 부하 장수의 권유로 그랬는지 아니면 스스로 선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전쟁에 나가지 않게 되었고 자신의 부하 장수들만 전쟁터에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이러한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때 다윗은 자신은 이제 이만한 삶을 누리고 살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평안히 궁에 거하다가 이런 사건과 마주한 것이다. 아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죽는 그날까지 자신의 삶에 만족하거나 누리며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러다가 죄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그의 영적인 긴장이 풀렸기 때문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피비린 내나는 전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가 진정 부하와 나라를 사랑하는 왕이었다면 그는 그 시간에 제사를 드리든지 기도하고 있어야 옳다. 하지만 그는 낮잠을 잤고 밤에 일어나 옥상을 산책하다가 그만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에게 영적인 긴장이 풀린 시각에 그러한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렇다. 사탄은 디윗이 영적인 해이에 빠져 있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셋째, 다윗에게 권력이 주어져서 수많은 부인들을 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생각에 부인을 한 명 더 두는 것은 그리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아니다. 아무리 권력을 쥐고 있다고 할지라도 한 남자의 한 아내라는 결혼 원칙을 어기면 아니 되는 것이다. 다윗은 이 원칙을 어겼기에 왕자들의 난을 직접 보게 되는데, 그는 자기가 살아 있는 동안에 최소 3명의 아들들이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4.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다윗의 간음죄와 살인죄 그리고 탐욕죄가 가르쳐 주는 영적인 교훈은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 아무리 경건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죄를 지을 수 있으며, 죄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고 말했다. 아무리 성화되고 위대한 성군으로 인정을 받은 자라도 얼마든지 다시 범죄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둘째, 통치 권력이 잘못 사용되었을 때에는 큰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 개인의 권력 남용이라고 할지라도 이 죄는 나라의 통치자가 지은 죄이기 때문에 다윗 자신 뿐만 아니라 온 나라가 큰 고통을 겪게 된다. 셋째, 일단 한 번 범죄에 빠지게 되면 양심이 마비되기 시작하고 한 번 마비된 양심은 더 큰 죄를 서슴없이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다윗의 범죄는 비록 간음죄에서부터 시작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의 범죄는 아주 잔인한 형태의 범죄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5. 다윗이 저질렀던 이 사건 뒤에는 무슨 일이 뒤따르게 되었는가?

  아무리 은밀히 죄를 범하였더라도 하나님은 다 아시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죄는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배우겠지만 다윗의 이러한 중대한 범죄는 첫째, 엄청난 징계가 따라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어떠한 중대한 죄를 범하였어도 용서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회개'라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2022년 01월 21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 회개(35) 회개할 자범죄는 무엇인가?(16) 욕심(탐욕)의 죄(마19:167~22)

https://youtu.be/KcHxBrOaRZs [혹은 https://tv.naver.com/v/17729497  ]

 

1. 욕심의 죄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욕심이란 분수에 넘치게 무엇을 갖고자 하거나 누리고자 하는 욕망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욕심은 죄로 치닿을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런데 욕심 그 자체가 다 죄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욕심"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에피뒤미아"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문맥에 따라 긍정적으로 쓰일 때에는 "갈망, 소욕"이라고 번역되기도 하고, 부정적으로 쓰일 때에는 "정욕, 욕심, 욕망, 탐욕"이라고 번역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인가를 얻고자 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것을 다 죄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무엇을 향하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결론적으로 살펴보면, 자기의 육신을 위하여 추구하는 것이 되면 결국에 가서 죄가 되는 것이며, 자신의 영을 위하여 추구하는 것이 되면 그것은 죄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 장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약1:14-15 오직 각 사람이 시험(유혹)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2. 육신을 위한 사람의 욕망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사람이 자신의 육신을 위해 품는 욕심에는 3가지가 있습니다. 모두가 다 육신을 위한 것 곧 이 땅의 것이요 죽으며 없어질 것들입니다. 그중, 첫째는, 더 가지려는 욕심이 있습니다. 자기나치게 소유하려는 마음입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는데 더 가지려하는 끝없는 소유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욕심에는 물질욕, 권세욕, 자리욕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정상적으로 얻기가 어려우니까, 권모술수의 죄를 짓기도 하고, 거짓의 죄를 짓고, 폭력의 죄를 짓고, 모함의 죄를 지으며, 더 나아가서는 살인의 죄를 짓기도 합니다. 둘째, 더 높아지려는 욕심이 있습니다. 이것이 좀 잘 포장되면 "세상적인 성공"이라는 말로 포장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의 실체는 "교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창세기3장에 보면, 인간의 첫타락이 나오는데, 그것은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뱀의 말을 듣고는 자신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말에 그만 자신도 하나님처럼 되고 싶다는 욕심을 갖게 됩니다. 그러자 선악과의 열매는 그녀의 눈에 보기에 더이상 금단의 열매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보기에 좋아보였고, 먹음직스럽게도 보였으며, 그것이 하나님과 같이 되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럽게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뱀(사탄마귀)이 하늘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탐해서 지은 죄를 인간에게 그대로 주입한 것입니다. 이처럼 분수에 지나치게 되면 다 죄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 더 즐기려는 욕심이 있습니다. 이것은 지나치면 쾌락과 음란의 죄로 이어지게 되며, 유흥의 죄로도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은 세상에 대한 욕심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일2:15-16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3.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자청년의 욕심은 무엇이었나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부자청년은 세상의 물질에 욕망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모르나 그는 부자인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영생도 갖고 싶었습니다. 그는 물질은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지만 영생도 가졌으면 하는 생각에서 주님께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십계명을 지키고 있느냐고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것은 어려서부터 지켜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가 당시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 수 있도록 다음의 한 가지를 권면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재물이 많은 고로 근심하며 돌아가게 됩니다. 그는 재물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청년의 인생목적은 재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는 그것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이 땅의 것을 내려놓기가 이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려놓을 수가 있다면 그는 천국에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4. 위치나 직분에 대해서 분수에 넘치는 욕심을 갖는 것도 죄인가요?

  그렇습니다. 위치나 직분은 사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은사와 달란트에 따라 정해주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때가 되면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과 지식이 부족한데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닌데도 시기와 질투심 혹은 자리에 대한 강한 욕망으로 인해 자기가 가질 수 없는 것까지 탐하게 될 때는 실수를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민수기 16장에 보면, 고라당의 탐욕이 등장합니다. 레위지파 중에서 고핫자손이었던 고라가 육체적으로는 장자였던 르우벤 자손의 몇몇 사람들과 족장 250명과 더불어, 모세와 아론에게 제사장 직분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와 아론이 지도자와 제사장 된 것은 그들 스스로 구하여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세우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그 사람에 대한 안배를 통해서 이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능력과 지식이 다르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수에 지나친 욕심을 품었던 고라일당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그들의 가족은 산 채로 음부 속으로 떨어지게 되었으며, 족장 250명은 하늘에서 내려온 불에 의해 그만 타죽고 말았습니다. 

 

5. 어떻게 하면 욕심을 죄를 이길 수 있나요?

  그렇다면, 어떻게 할 때 욕심의 죄를 이길 수 있습니까? 그것은 첫째로, 분수에 지나친 욕심을 품어 "욕심의 영"을 불러들인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욕심의 영이 들어와서 또다른 온갖 종류의 죄를 짓게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이 세상의 것에 대해서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딤전6:7~8). 왜냐하면 육신을 위해서 너무 많은 것을 추구하게 되면 그것이 죄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6:24). 셋째, 하늘의 영적인 것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의 소욕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이 만약 보이는 것이요 물질적인 것이요 이 세상의 것이라면, 다 하나님으로부터 좇아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소욕(갈망)은 성령의 열매들을 가져오는데, 이러한 것에는 오래참음이요 온유함이요 절제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육체의 소욕은 원수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쟁과 음란, 술취함, 방탕함 같은 것들입니다. 지금 내가 육체의 소욕을 좇고 있다면 빨리 돌이켜야 하며, 성령의 갈망을 좇아 행하는 삶을 사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2021년 01월 05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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