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97) 바울은 왜 로마시민권을 사용했을까?(행22:17~30)_2023-01-18(수)

https://youtu.be/x16p4r_6aiY [또는 https://tv.naver.com/v/32508657]

 

1. 바울은 언제 로마 시민권을 사용했는가?

  바울은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일생에 두 번 로마 시민권을 사용했다. 한 번은 제2차 전도여행 중, 빌립보 감옥에 갇혔다가 출옥될 때에 사용하였고(행16:37), 또 한 번은 제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갔을 때, 군중들에 의해 위협을 당하고 천부장에 의해 채찍질을 당하기 직전에 한 번 더 사용하였다(행22:25). 

 

2. 예루살렘에서 바울은 왜 로마 시민권을 사용했는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로마의 시민권을 사용한 이유는 그가 부당한 처벌을 받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천부장이 흥분한 유대인들로 인해 자신을 죄인으로 취급한 나머지 부당한 형벌을 가하려고 시도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선, 자신은 로마 시민인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재판 절차 없이 자신을 쇠사슬로 결박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행21:33~34), 흥분한 유대 군중들의 소요를 진정시키기 위해 백부장더러 바울을 채찍질하여 심문하라고 했기 때문이다(행22:24). 

 

3.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는 어떤 특권이 있는가?

  로마에서는 로마 시민으로 태어났거나 혹은 정부의 고위층 사람들 혹은 로마를 위해 특별히 공헌했던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주었다. 그러나 편법으로 로마 제국의 지방 행정관에게 뇌물을 주고 시민권을 사기도 하였다. 로마의 글라우디오 황제 때에는 그의 아내였던 메살리니와 장관들도 로마 시민권을 팔아서 돈을 모았고 그것을 사사로이 썼다고 전해진다. 당시 로마 시민권은 로마의 35개 종족(가문)의 명단에 기록되어 있었으며, 자신이 거주하는 지방 자체 문서에도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통념상 돈으로 산 시민권은 출생 시민권보다 열등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다시 말해 바울은 이미 자신이 시민인 것을 증명하는 문서가 호적 공문서 보관서에 보관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로마 시민인 자는 자신이 로마 시민이라고 말하면 되었다. 그렇다면 만약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로 자신을 로마 시민이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사형이었다. 그러므로 함부로 로마 시민인 체 할 수 없었다. 더욱이 로마 시민인 자를 재판도 하지 않고서 결박하거나 채찍질하거나 감옥에 가두는 것은 로마의 법을 어기는 것이 되어, 그렇게 불법을 저지른 자는 자신이 대신 그 형벌을 받거나 그것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 관직을 박탈당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는 지방에서 판결한 내용이 부당하다고 판단되면 로마 황제에게 항소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바울은 태어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였다(행22:28). 아마도 바울의 조상들 중에 누군가가 로마 시민권을 취득하였을 것이며, 그래서 바울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로마 시민으로 태어난 채 있었던 것이다. 

 

4. 이때 왜 천부장은 바울을 도와주려고 했는가?

  이때 로마의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바울이 로마 시민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바울이 로마 시민이라고 말하자, 그것도 태어나면서도부터 시민권을 가진 자 곧 출생 로마 시민권자라고 말하자, 그는 기겁을 하였다. 왜냐하면 자신은 로마 시민권을 얻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그것을 어렵게 얻었는데, 바울은 조상적부터 로마 시민이었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로마 시민인 바울을 죄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쇠사슬로 결박을 하였고, 또한 매질을 하라고 시켰으니, 큰일 날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바울의 결박을 속히 풀어 주게 했다. 그리고 그가 정식으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그에게 자신을 변호할 기회도 주었다. 그래서 바울은 유대의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자신을 변호할 수 있게 되었다(행22:30). 

 

5.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사용한 것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복음 전파자는 세상 법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복음을 전파하는데 부당한 처우를 받았을 때에 억울하게 당하고만 있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는 복음을 전파할 기회를 더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이 가진 로마 시민권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그의 조상들부터 갖게 하신 일종의 특권과도 같은 것이었다. 한편 베드로는 로마 시민권을 갖지 않았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파할 때에는 많이 숨어 다녔다. 하지만 바울은 로마 시민이었기에 복음을 전파할 때에 결코 자신을 숨기지 않았다. 그만큼 로마 시민권을 가지면 잇점이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에 교회와 복음 전파자들도 마찬가지다. 법을 잘 모르는 성도들에게 법을 남용하여 집행하려는 악한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파하려고 하는 자는 세상 법에도 익숙해야 한다. 그리고 부당한 처우를 받지 않아야 한다. 법이 정하는 합법적인 울타리 안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숨어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2023년 01월 18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95) 자신을 죽이려한 예루살렘 시민들 앞에서 바울은 어떻게 자신을 변호했는가?(행21:37~22:21)_2023-01-06(금)

https://youtu.be/P21_asblAXw  [혹은 https://tv.naver.com/v/32238524]

 

1.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유대인들에게 붙들렸을 때에 어떻게 했는가?

  바울이 예루살렘에 구제헌금을 전달하고 그리고 그곳에 있는 유대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건 방문을 시도한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당도했을 때, 그는 2가지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그것은 첫째, 믿는 유대인들의 불신과 오해에 부딪힌다. 하지만 그 문제는 야고보 장로의 주선으로 어느 정도 극복하게 된다. 문제는 두 번째 난관이었다. 둘째, 오리지널 유대인들의 불신과 오해와 더불어 잘못된 추측으로 인한 살해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통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바울을 보고 가만 두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보기에 바울은 유대인과 율법과 예루살렘을 멸시하는 자로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바울이 예루살렘 성안에서 이방인인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와 함께 다니는 것을 보았을 때에, 바울이 드로비모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가 성전을 더럽힌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더 이상 바울을 그냥 놔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결국 바울을 죽이려고 시도하였다. 

 

2.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 했을 때 누가 바울을 보호해 주었는가?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그를 붙들었을 때, 성전 문이 닫히면서 거기에서 엄청 큰 소동이 일어났다. 그런데 그와 같은 사실은 즉각 로마 군대의 천부장의 귀에 들어갔고 천부장은 즉시 군대를 이끌고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바울을 붙잡아 쇠사슬로 결박한다. 그리고 우선 로마 군대 주둔지인 진영 안으로 데리고 가도록 명령한다. 그런데 사실 바울에게는 전혀 예상치 않은 보호 조치였다. 그때 진짜로 바울을 구할 사람이 있었다고 하면 그들은 수만 명이나 되는 믿는 유대인들(행21:20)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중에 단 한 사람도 바울을 살려내기 위해 쫓아온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로마 군대의 천부장을 통해 바울이 죽지 않도록 보호하신 것이다. 

 

3. 바울은 어떻게 천부장을 설득하여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얻었는가?

  그때였다. 바울이 진영으로 붙들려 가고 있었을 때, 바울은 천부장에게 청원을 한 것이다. 그런데 천부장이 그의 청원을 들어주게 된다. 그렇다면 바울은 대체 천부장에게 무엇을 청원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그를 죽이려고 몰려온 군중들(유대인들)에게 변명할 기회를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바울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도 정확하지도 않은 상태였고, 또한 그렇게 많은 유대인들이 하나같이 바울을 죽이려 하는 상황에서 천부장이 바울에게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부장은 바울의 말을 듣고 그에게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준다. 그럼 그때 천부장은 왜 바울에게 변명할 기회를 준 것일까? 그것은 첫째, 바울이 천부장에게 유창한 헬라어로 부탁을 하였기 때문이다(37절). 그때였다. 천부장은 아마도 깜짝 놀랐을 것이다. 그가 유식한 사람들이 쓰는 헬라말로 자신에게 부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부장은 헬라말을 그렇게 잘하는 사람이 무슨 이유 때문에 붙잡혔는지도 궁금하게 되었을 것이다. 처음에 천부장은 예전에 소요를 일으켜 자객 4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에 잠적한 애굽인 정도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바울은 점잖은 사람이었고 정중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둘째, 바울이 천부장에게 자신은 유대인이지만 작은 마을이 아닌 길리기아의 다소 시의 시민이라고 소개했기 때문이다(39절). 이는 바울이 무식한 사람이 아니라 어느 정도 배운 사람으로서, 교육 수준이 높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소 시민은 대부분 잘 살았기 때문에, 바울이 돈이 없어 가난한 사람들을 선동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자 곧바로 천부장은 그에게 말할 수 있는 권리를 허락해 준다. 

 

4. 바울은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유대인들에게 어떻게 변호했으며 설득했는가?

  그러자 바울은 로마 군대의 진영에서 성전쪽으로 내려오는 층대(계단)에 멈춰 선 후 손짓을 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사실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도 바울에게 어떤 죄목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그가 무슨 말을 할른지 궁금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자 정말 갑자기 장내가 조용해졌다. 하지만 바울은 곧바로 말을 시작하지는 않았다. 군중들의 외치는 소리가 없어질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그리고 많은 침묵이 흐르자 그때에 바울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놀라운 사실은 그때 바울은 자신이 억울하다는 말부터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거기에 모여든 유대인들에게 깎듯이 예의를 갖추어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히브리어 곧 아람어로 말을 시작했다. "남자들인 형제들과 아버지들이여"라고 말이다(행22:1). 사실 에베소에서 온 유대인들이 그 군중들을 선동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는가? 그것은 2가지다. 하나는 바울이 유대인과 성전과 예루살렘을 무시한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이방인을 성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성전을 더럽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울의 변명은 유대인들을 존중하는 말부터 시작했던 것이다. 군중들은 더 조용해졌다. 왜냐하면 바울이 이방인 지역에서 살았다는데 그가 오리지널 아람어를 유창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예루살렘에서도 복음을 증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5. 바울은 그때 그들에게 무엇을 말했을까?

  그렇다면 바울은 로마 진영의 층계에서 유대인들을 향해 과연 무슨 말을 했던 것일까? 우선 알아야 할 것은 그가 자신은 죄가 없다는 것부터 변명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많이 억울했을텐데 바울은 그런 말을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그때 그가 말한 것은 첫째, 자신도 저들과 같이 율법에 열성을 가진 사람의 하나였다고 말했다는 것이다(행22:3). 그리고 둘째, 자신이 유대인이지만 왜 이방인 지역에 가서 예수님을 증언하는 삶을 살게 되었는지를 말했다. 그것은 그가 다메섹에서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으며, 또한 그분으로부터 어떻게 이방인 지역으로 파송을 받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25년 전에 자신들이 죽였던 예수님을 아직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분은 죽었지만 다시 살아나셔서 몇 년 뒤에 바울을 찾아오셨고 바울에게 복음 전파의 사명을 주셨다고 바울이 말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그들에게 바울은 자신들을 예수믿는 자가 되게 하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들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저런 놈은 세상에서 없이 해 달라고 천부장에게 외치기 시작하였다. 그렇다. 누구든지 처음부터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고 주님을 믿으려 하지 않는 자는 누가 그들에게 무슨 간증을 하고 또한 그들에게 그 무슨 말을 들려준다고 할지라도 믿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진실해야 한다. 그리고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럴려면 이전에 가지고 있던 선입관을 버리고 냉정하게 말씀을 들으면서,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지를 귀담아 들으려는 마음을 소유해야 한다. 

 

2023년 01월 06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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