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신년 첫주일이다. 올 한 해 과연 우리를 무엇을 붙들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하는 말씀이다. 사실 올 해 저마다 개인적인 기도제목과 소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회개와 천국복음을 외치는 교회로서 성도들이 붙들어야 할 진짜 소원은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천국복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헤아려,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가 되는 것이며, 천국에서 왕노릇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알고 실천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2022-01-02(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우리가 정말 붙들어야 할 복음은 어떤 복음인가?(마3:1~3)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HXBxlYp9ONM [혹은 https://tv.naver.com/v/24416671 ]

 

1. 들어가며

  성도가 신앙생활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가진 불치병에서 치유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는다. 어떤 이는 무당이 되기 싫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이는 예수믿어야 사회생활을 잘 할 것 같아서 또는 부자가 되고 싶어서 예수님을 믿기도 한다. 하지만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자신의 영혼이 구원을 받기 위함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영혼이 구원받는다는 것을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지은 죄를 사함받는 것을 가리키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인가? 결국 이것도 종합해 보면 자신의 영혼이 천국가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목적은 다양할 수 있으며, 또한 저마다의 진술이 다 틀렸다고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전파하신 복음은 대체 무엇이며, 그것은 천국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가? 그리고 예수님을 소개하도록 하나님께서 선구자로 보냈던 세례자 요한은 이것에 대해 무엇을 말했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회개와 천국복음을 외치는 교회로서, 올 한 해동안 우리가 붙들어야할 말씀으로서 천국복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보고, 나는 과연 어떠한 천국 복음을 붙들아야 하고 또한 사모해야 할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예수께서 전파하신 복음은 어떤 것인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전파하신 복음은 어떤 것인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에 대해 마태복음 기자는 딱 3가지로 기록하고 있다(마9:35). 그것은 첫째, 회당에서 가르치셨고 둘째, 천국(왕국)복음을 전파하셨으며 셋째,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고 했다. 즉 예수께서는 '교육'과 '전도'와 '치유' 사역을 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것들을 분석해보면, '교육'은 우리의 혼(souls)의 영역과 관계된 것이며, '전도' 즉 복음전파는 우리의 영의 영역과 관계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치유'는 우리의 육체에 관련된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의 문제들을 해결해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음을 알 수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천국복음 전파다. 왜냐하면 천국복음을 받아서 영이 복을 받아야 진정한 복을 받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사항은 왜 예수께서 전파하신 복음은 천국복음이었는 하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종교개혁자들의 후손이니만큼 자신이 받은 복음을 사도바울이 전해준 이신칭의의 복음이라고 알고 있다.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이 소식은 참으로 가물에 단비와 같았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이신칭의의 복음을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은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으셨는가? 그러나 믿음으로써 '생명' 혹은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은 하셨다(이신득생)(요5:24).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신칭의의 복음이 아니라 천국복음을 전파하신 것이다(그렇다고 이신칭의의 복음이 성경에 없다거나 틀렸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예수께서 전파하신 천국복음에 주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분이 들려주고 싶어했고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고 싶어했던 그것을 우리가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3. 우리는 왜 천국복음에 주목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에 외치셨던 '천국복음'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예수께서도 역시 세례자 요한처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외치셨다(마4:17). 즉 천국에서 들어가기 위해서는 회개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더욱이 주님을 부르는 자라 할지라도 모두가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마5;20, 7:21). 

마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예수께서는 우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는 더 나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다(마5:20). 그리고 주님을 찾는다고 해서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하셨다(마7:21). 그러니까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의롭다 함을 얻는 이신칭의의 구원과 예수께서 말씀하신 천국복음은 약간 다른 것이다. 이신칭의는 믿음으로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것까지 가르쳐준다. 그렇지만 의롭다함을 얻는 자가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되어 의롭다함을 받은 자라 할지라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천국에 그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하지 않는 자는 못들어가는 곳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천국복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믿어야 한다. 

 

4. 예수께서 말씀하신 천국이란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천국'이란 대체 어떤 곳인가? 성경에서 딤후4:18을 제외하고 한글성경에서 '천국'이라는 말은 마태복음에만 나온다. 총 36번에 걸쳐 나온다. 그런데 그 용어는 정확히 '하늘들의 왕국'이라는 단어다. 영어로는 'The kingdom of the heaves'인 것이다. 여기서 '하늘'을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사용한 것은 하늘을 3개이기 때문이다. 즉 새들이 날아다니는 곳이 첫째 하늘이고, 해와 달과 별들이 떠다니는 곳은 둘째 하늘이며, 하나님이 계시는 셋째 하늘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왕국'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왕이 통치하고 다스리는 나라를 가리킨다. 아직까지 이 세상에는 왕이 통치하지 않는 나라들도 더러 있다. 대통령이나 수상이 다스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하늘나라 곧 천국은 왕이 다스리는 나라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고 외친 이유는 하늘들의 왕이 오시기 때문에 그 왕을 영접하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들이 '천국'이라고 할 때에는 자신의 영혼이 죽어서 들어가는 저 하늘나라, 즉 저 멀리 삼층천에 있는 하늘나라를 생각하는데, 실은 그분이 왕으로 통치하는 장소가 왕국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살 때에 예수님을 믿은 자라도 자신의 삶과 영혼에 그분이 왕이 아닌 자는 결국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것이다. 왕의 통치를 거부한 자는 결국 하늘들의 왕국에 못들어가는 것이다. 

 

5. 천국복음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천국복음'이란 어떤 복음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2가지 의미를 지닌 것이다. 그것은 첫째로, 회개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복음을 가리킨다(마3;2, 4;17). 왜냐하면 천국은 죄가 들어갈 수 없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를 지은 사람이라면 그는 반드시 회개하여 자신의 죄를 깨끗히 씻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야 한다. 이때 자신의 죄를 용서함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개하는 것이 필요하며, 하나님의 생명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자는 생명을 얻고 죄사함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기하면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은 사실상 틀린 것이다. 그러한 말씀은 성경에도 나오지 않을 뿐더러 실제로 믿기만 해서 천국 들어갈 자는 없기 때문이다. 둘째, 천국에 들어가는 자라 할지라도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가 있음을 알려주는 복음을 가리킨다. 그렇다. 천국에 들어간다고 해서 다 왕노릇하는 존재가 되지는 않는다.  천국에 들어가는 자들 중에는 섬기는 자의 신분으로 들어가는 자도 있기 때문이며(마20:26~27), 섬김을 받는 왕의 신분으로 들어가는 자도 있기 때문이다(계5:10). 그러므로 우리는 마태복음을 더욱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에서는 누가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가 되는 것인지, 누가 천국에서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인지를 알려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약 예수님을 믿었다면, 회개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되기를 힘써야 한다. 그리고 회개하고 있어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되었다면, 이제는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가 되기를 힘써야 한다. 그렇다. 천국복음이란 단지 믿음을 통하여 구원받는다는 복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죽을 때 자신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게 해 주는 복음을 가리키며, 천국에 들어가서도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가 있다는 복음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6. 천국에는 누가 들어가며, 어떤 자가 천국에서 왕노릇하는가?

  천국에는 누가 들어가며 거기에서 누가 왕노릇하는 자인지 알려주는 말씀은 마태복음에서 계속해서 언급된다. 그중에서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말씀이 바로 마태복음 25장의 말씀이다. 마태복음 25장에서는 천국에는 과연 누가 들어가며, 누가 왕노릇하는 자가 되는지를 알려준다. 그것은 3가지 비유에 나타나 있다. 첫 번째는, '열 처녀의 비유'다(마25:10). 이 비유는 모두 믿는 이가 다 신랑의 집에 들어가 혼인잔치 하기를 사모하지만 준비했던 자들만이 들어간다는 비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자는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고로 나는 예수님을 믿는 자이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안일하고 있다가는 그날 천국 문이 닫혀 못 들어가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두 번째는, '달란트의 비유'다(마25:30). 달란트 비유는 종들이 주인에게 받은 달란트를 받아서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성 안에 들어갈 사람과 성 밖에 쫓겨날 사람이 결정된다는 비유다. 이때에 악하고 게으른 종은 성 바깥으로 내어쫓겨나며 거기서 슬피 이를 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비유의 핵심은 성 안에 들어가기를 정말 사모한다면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양과 염소의 비유'다(마25:34). 이 비유는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행했느냐에 따라 천국에서 받을 상속분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혹 어떤 이는 천국이 아닌 불못에 던져질 자도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자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물려받아 왕노릇하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주님으로부터 상을 받을 준비를 미리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천국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라고 해서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성 안으로 들어가기를 준비를 해 온 자 곧 회개하고 충성한 자가 들어가는 장소인 것이다. 그리고 이 땅에서 충성한 만큼 그 분량대로 천국에서 기업도 얻게 되고 거기에서 왕노릇하는 대상과 영토도 주어지게 될 것이다. 

 

7. 구약시대에 천국에 들어가는 것과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것의 예표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구약시대에 우리 믿는 이들이 장차 받을 천국복음의 예표가 있는가? 있다. 그중에서도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과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구원에 대한 예표가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항상 미리 보여주시어 소망을 갖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모세'와 '다윗'이라는 인물이다. 구약시대에 구원받는 교회의 모형이 성막과 성전이라고 한다면, 구약시대에 천국입성과 왕노릇하는 모형은 가나안 땅과 이스라엘의 왕국이라고 할 수 있다. 모세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어 광야로 나오게 한 후 선택된 자 모두를 가나안 땅에 입성시킨 인물이다. 한 마디로 그는 모든 사람을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이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다윗은 모세와는 다르다. 다윗은 이 땅에 왕으로 살았던 사람들 중에 유일하게 하늘에서도 왕노릇하는 사람이 된 인물이다. 한 마디로 다윗은 과연 천국에서 어떤 사람이 왕노릇하는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모델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모세를 연구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서도 왕노릇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윗과 그의 자녀들을 연구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모세와 다윗은 천국입성과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의 모형으로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마태복음에서는 처음부터 다윗에 대해 집중조명하여 말씀하고 있다. 마태복음 1장에서는 예수님의 조상들 41대 가운데 오직 다윗에게만 '왕'이라는 칭호를 붙여놓았다(마1:6). 그리고 2장에서는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부르고 있다(마2:1). 그리고 예수님께 나아와 문제를 해결받으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그분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외치고 있다(마9:27). 다윗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왕의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8.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의 모델로서 하나님께서 사용한 다윗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럼,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왕노릇을 하지 못한 채 바깥으로 쫓겨난 사람의 예표는 누구인가? 그는 바로 '사울왕'이다. 반대로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사람의 대표는 누구인가? 그것은 '다윗왕'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왕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되기를 사모하고 있다면, 그는 왕노릇하는 자가 되기를 더더욱 사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울과 다윗의 일대기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중에서 사울은 실패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비록 이 땅에서 왕이 된 사람이지만 그는 죽어서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버림을 받았다. 참으로 사울은 비운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가 그렇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매우 교만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고 거역했으며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챘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잘못한 것이 분명한데도 그는 핑계를 대며 회개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버림받은 자의 대표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다.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았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께 묻고 행하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자기는 백향목 궁에 거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집은 펄럭이는 휘장 가운데 둘 수 있겠느냐면서 그는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를 지어드리겠다고 말한 사람이다. 그는 매사에 그러하였다. 더욱이 그도 실수할 때가 있었다. 그도 사람이기 때문에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다윗은 낮은 자세로 엎드렸고 진실로 회개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죄를 용서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나라도 더욱 확장시켜 주셨다. 그가 도망다니던 10여년 동안에는 그에게 400~600명의 부하들 밖에 없었지만, 그가 유다지파의 왕이 되었을 때에는 한 지파의 왕이 되어 7년 6개월동안 다스릴수 있었고, 그리고 전 이스라엘의 왕으로 33년 반을 통치할 수 있었다. 그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그는 겸손했고 충성했으며, 주님을 사랑했고 주님을 최고 우선 순위로 정하고 산 자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무엘하 강해를 통해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9. 나오며

  이제 2022년의 새 해가 밝아왔다. 올 해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까? 올 해는 그동안 배우고 들었던 말씀 중에서, 우리가 듣기는 들었으나 정확한 의미를 잘 모른 것이 있다면 그것을 정확히 배우고, 또한 자신의 삶에 직접 실천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실천해볼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올 해는 보수하고 보완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혹 우리가 잘못 배운 것을 놓고 거기에 무엇인가를 쌓아올린다면 그날에 우리가 쌓아올려놓은 것은 다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에서 잘못되었는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고쳐야 한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하지 않은 부분들을 수선해야 한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서 왕노릇하는 데에 합당한 삶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왕노릇하기에 합당한 삶을 이 땅에서 살아보아야 한다. 그래야 주님 오시는 날에 기쁨의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도 왕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세례자 요한도 초림의 예수를 그렇게 준비하고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그도 왕의 오실 길을 닦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회개케 하는 일이었다. 그렇다. 우리도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왕이 오심을 모든 백성에게 전했다. 그리고 그는 유유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30년을 준비해온 그는 예수님에게 모든 영광을 돌려드리고 6개월 뒤에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자신의 말대로 그는 살다가 갔다. 그러니 천국에서 그는 24장로의 반열에 드는 자가 되었고, 왕노릇하는 자로서 최고봉에 서 있는 자가 되었다. 이제는 우리 차례다. 우리도 회개하고 충성하여 그 왕국에 들어갈 준비와 그곳에서 왕노릇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것이 올 해 나에게 주어진 하늘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2022년 01월 02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에서 이긴다는 의미는 무엇이며 어떻게 이기는가?(계15:1~4)_2019-06-17(월)

https://youtu.be/eZkhRx2WBso

 

1. 요한계시록 2~3장에 보면,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에서 보낸 편지 가운데 "이기는 자"에 대한 축복이 들어 있습니다. 어떤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까?

  그 축복들로는 첫째,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될 것이다(계2:7). 둘째, 둘째사망의 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계2:11). 셋째, 감추었던 만나를 받고 흰 돌을 받게 될 것이다(계2:17). 넷째,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고 새벽별을 받게 될 것이다(계2:28). 다섯째, 흰 옷을 입게 될 것이고, 생명책에서 이름이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 아버지 앞과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자신의 이름이 인정받을 것이다(계3:6).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할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 성의 이름과 그분의 새 이름이 그 사람 위에 기록될 것이다(계3:13). 일곱째, 예수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해 줄 것이다(계3:21) 등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2.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 "이긴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요한계시록에서 "이긴다"는 뜻은 "굴복시킨다. 정복한다(conquer)"는 의미라기보다는 "승리한다(triumph. win)" 혹은 "이겨낸다. 극복한다(overcome)"는 의미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결국 이긴다는 것은 사탄마귀의 시험을 이겨내어 죽음을 맞이하게 때에 자신의 영혼이 둘째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죽음을 맞이하게 될 때에 마귀가 있는 지옥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두고 이긴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성도들이 이기려면 무엇인가가 상대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이겨야 할(이겨내야할, 극복해야 할) 상대는 대체 누구입니까?

  성도들이 어떤 싸움(영적 전쟁)에서 이겨내야 할 상대는 크게 3가지입니다. 첫째는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입니다(계15:2). 여기서 "짐승"이란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불신세력(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 계13:1~10)과 더불어 교회내에서 거짓된 가르침으로 성도들을 미혹하는 세력(땅에서 올라오는 짐승, 계13:11~18)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더불어 짐승의 우상과 그 이름의 수(경제시스템)이 첫번째 우리의 상대입니다. 둘째는 용(사탄마귀)입니다(계12:11). 용은 옛뱀이자 사탄마귀로서 하늘에서 떨어진 천사장 루시퍼를 가리킵니다. 셋째는 열 뿔입니다(계17:14). 이들 "열 뿔"은 세상의 왕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짐승의 머리에 난 뿔들로서 짐승이 하는 일을 돕는 세상 왕들을 가리킵니다.

 

4. 성도들이 짐승과 용과 열뿔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도들이 대적들을 이기려면 2가지가 필요합니다(계12:11). 하나는 "어린양의 피"입니다. 어린양의 피는 모든 죄를 사해주는 도구이자 근거입니다. 결국 성도들이 대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회개하면 대적들이 성도들을 결코 이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그들의 증언하는 말씀"입니다. 이는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자요 주 하나님이신 것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켜내기 위해서 때로는 죽임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죽어서 내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이긴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5. 성도들이 핍박과 고난의 현장에 맞부딪힐 때에 결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대적자들은 결코 성도들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대적자들은 우리 성도들의 육체의 목숨을 앗아갈 수는 있지만 우리의 영혼을 빼앗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마10:28~29). 그들이 설령 우리의 목숨을 빼앗는다고 해도 그들은 결코 우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죽고 나면 우리는 그들과 영원히 이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두 번 다시 우리의 대적들을 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은 죽여도 영혼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 앞에서 비굴하게 행동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그들이 우리로 하여금 천국가는 지름길로 안내해주고 있으니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죠. 더욱이 사람이 죽는 일에 있어서는 단 한 건도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되어지지 않는다고 했으니, 목숨 하나 때문에 벌벌벌 떨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2019년 6월 17일(월)

정병진목사


주께서 이 땅 위에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무엇인가? 주님의 온전한 제자를 만들라고 세우신 것인가? 한 때는 그렇게 알고 제자훈련에 매진하던 때가 있었다. 또 어떤 이는 불행한 이 세대에 행복을 찾아주기 위해서, 혹은 사람들로 하여금 3중축복(물질과 건강과 자녀의 복)을 받게 하기 위해 교회를 주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는 아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성도들(천국보내는 성도들)을 산출해내야 교회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교회를 이 땅 위에 세워나가야 교회라고 불리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께서 지금도 미리 예비해두신 신실한 당신의 종들을 통해 이뤄가고 계신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주의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인가? 아니면 열심히 기도하는 일인가? 아예 자신이 주의 종이 되어버리는 것인가? 아니면 선교사가 되는 것인가? 물론 이런 것들이 틀리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핵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주께서 이 땅 위에 교회를 세우신 목적을 알아보고, 주께서는 그 일을 어떻게 이뤄가고 계시며, 성도들은 어떻게 그 일에 동참할 수 있고 복을 받을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다시 말해, 이 땅 위에 있는 교회들이 꼭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어떤 이는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이 땅에 구원받은 성도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만들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자기가 제자되고 다른 이들을 제자삼기 위해서 교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어떤 이는 복음을 전파하라고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셨으니 교회의 존재목적은 복음전파에 있다고도 말한다. 모두가 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가장 큰 목적 한 가지를 말하라고 한다면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그것은 만약 우리가 교회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이것에 대해 전혀 모르거나 무관심하고 있다면 그는 교회가 존재할 목적을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오늘은 교회의 창립기념주일을 맞아,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며, 과연 우리교회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신 목적대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무엇에 미흡한지 그리고 우리교회가 고쳐야 할 것이 있다면 어떤 방향으로 고쳐나야 할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교회의 존재목적과 신앙생활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왜 이 땅 위에 교회를 세우려고 하셨을까? 그리고 제자들에게 꼭 그 일을 하라고 부탁하셨던 것일까? 우리는 교회생활을 통하여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첫째는 어느 누구에게서도 얻을 수 없는 마음의 위안과 평안을 얻을 수 있다. 둘째는 기도를 통해서 삶을 필요를 채우고 또 얻을 수 있다. 셋째는 세상에서 치유할 수 없는 중병이나 불치병이라도 치유할 수 있다. 넷째는 부모와 자녀 등 모든 이들과 인간관계를 맺으며 서로 사랑하며 아끼는 법을 배울 우 있게 된다. 그렇다면 교회생활을 통해서 반드시 얻어야 할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말하라고 한다면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그것이 바로 교회의 존재목적일텐데 말이다. 교회생활을 하면 다른 부수적인 혜택을 얻을 수 있겠지만 반드시 얻어야 할 것이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이 바로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요, 신앙생활하는 목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2가지다. 첫째, 죽어서 내 영혼이 천국가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며(딤후4:18), 둘째, 사람이 신앙생활하는 목적은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면류관을 얻는 성도가 되기 위함이다(딤후4:7~8, 2:12)

 

3. 신앙생활의 첫번째 목적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먼저, 사람이 신앙생활하는 첫번째 목적에 대해 알아보자. 그것은 자신이 죽었을 때 자신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딤후4:18). 만약 교회가 분명 교회이긴 한데, 교회가 천국보내는 성도들을 산출하지 못한다면 그 교회는 더이상 교회가 아닌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빗가뻔쩍한 교회이지만 주님 보시기에 그 교회는 교회가 아닌 것이다. 성도들을 천국에 들여보내주는 교회가 참된 교회요 진짜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이 땅 위에 세우시고자 했던 교회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마16:18).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죽을 때에 자신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그것은 믿음과 회개를 통해서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신 일을 믿어야 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 구원얻는 것이다(막1:15, 마4:17).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아들의 신분으로 오시어 인류가 지은 죄값을 처리하셨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의 타락 직후부터 말씀하신 것인데, 구약시대에는 그를 "메시야"라고 불렀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메시야를 보내 인류를 구원해주시겠다고 무려 350가지 이상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그분이 진짜 오셨는데, 나중에 보니 그분은 바로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하나님 자신이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려면, 첫째, 인류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믿어야 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아들로서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해야 할 일이 있으니, 그것은 지은 죄들을 자백해야 하는 것이다. 즉 회개하는 것이다(마4:17). 그렇다. 사람이 구원받으려면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 하신 일을 믿지 않은 죄를 회개해야 한다(요16:9). 그리고 자신이 지은 낱낱의 죄를 자백해야 하는 것이다(요일1:9). 그래야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어내기 때문이다(요일1:7,9, 계7:14). 어떤 분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피가 자동적으로 죄를 씻어준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예수님의 피는 인류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도 남음이 있는 효능을 지닌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할 때에 비로소 그분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어주기 때문이다(요일1:7,9). 그렇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우리의 죄가 자동적으로 다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두 번 다시 회개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 번 믿음으로 우리의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도 다 용서받아버렸기 때문이다.

 

4. 신앙생활의 두번째 목적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둘째로, 사람이 신앙생활하는 목적은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면류관을 얻는 성도가 되기 위함이다(딤후4:7~8, 2:12). 이 목적이 바로 오늘 우리가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주제다. 천상에 계신 예수께서는 A.D.95~96년경 소아시아에 있는 라오디게아교회에게 편지를 써보내라고 명령하셨다. 이 편지에는 그들 교회의 상태를 언급하고 있는데,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겁지도 아니한 교회가 가장 힘써야 할 것이 2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첫째는 열심히 내되 계속해서 열심을 내라는 것이었고, 둘째는 회개하되 단호하게 회개하라는 것이다(게3:19). 라오디게아교회는 믿음에 있어서 부족한 교회는 아니었다. 또한 세상적으로 볼 때에는 비할 데 없이 축복받은 교회 가운데 하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물질적으로 풍족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물질적으로 부적함이 없이 누리고 사는 교회였다. 하지만 그들을 영적으로 진단해보았을 때에 그들은 한 마디로 거지였다(계3:17). 그들은 영적은 가난했으며 가련했고 벌거벗은 채(옷을 입지 않은 채)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러므로 만약 그들이 믿음과 회개를 통해서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천국에서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빈털털이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강력하게 그들을 권고하셨다. 천국에 들어와서 그들이 누릴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그들은 희희낙낙거리고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누리고 있는 것은 어마어마했다. 그들은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에 부족함이 없었고 매우 풍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천국에서 누릴 상급은 전무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열심을 내라고 하셨다. 그리고 단호하게 끊을 것은 끊고 붙들어야 할 것은 붙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라오디게아교회는 무엇을 붙들어야 하며, 무엇에 열심을 내야 했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영적인 것으로서, 자신이 영혼에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받을 것들(면류관,기업,상급,영광)에 열심을 내라는 것이었다. 천국에서 받을 그것을 얻기 위해 열심을 내라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일은 한 번으로 끝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열심을 내라"는 명령은 헬라어로, "현재 명령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반복적으로 계속적으로 그렇게 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호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 뒤에 "과거 명령법'을 사용하여 회개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의 잘못된 가치관과 목표를 단호하게 고쳐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5. 천국에  들어가서 우리의 영혼이 누릴 것들을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성도들이 영적으로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서 받을 것들을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가야 천국에서 누릴 것들을 충만히 준비할 수 있을까? 그것은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기교회들은 과연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위해 자신의 모든 물질과 시간과 달란트와 은사 심지어 목숨까지도 드렸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은 2가지였다.

  첫째, 그들은 교회를 세우는 일에 열심을 냈다는 것이다.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인하여 처음으로 이 땅에 세워진 교회는 예루살렘교회였다. 하지만 이들은 예루살렘교회가 탄생한 이유를 잘 몰랐다. 그들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것조차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가진 자들의 헌금을 받아서 가난한 자들을 돕는 데에 집중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나타난 결과는 참담했다. 누가 많이 가져가고 누가 못 가져갔다고 하면서 서로 치고 박고 싸웠기 때문에, 그것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기와 원망의 말이 계속 쏟아져나왔다. 그것이 교회를 세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성도들을 양육하고 배출하는 데에 온 힘을 기울여야 했고, 그것이 이루어졌으면 이제는 교회를 세우는 일에 올인해야 했지만 그들은 다른 일에 집중하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예루살렘교회는 얼마 못가서 핍박으로 인하여 산산히 흩어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가서 교회를 세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교회를 세우는 지도자를 돕는 일에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렸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늘에서 얻을 상급과 면류관을 위해 힘써야 할 두번째의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좀 폭넓게 말하면, 주의 일을 감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의 일을 감당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떤 이는 자신이 교회에 나가서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어떤 이는 자기가 선교사가 되어 선교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자기가 주의 종이 되어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모두가 다 틀린 것은 아니나, 정확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참된 교회를 세우는 주의 종을 돕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참된 교회를 세우는 지도자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를 세워놓았는데, 천국에 들어갈 성도를 배출하지 못한 채 지옥에 떨어지는 성도들을 배출한다면, 교회는 아니 세우느니만 못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우는 주의 종들에 의해 교회가 세워질 때 가장 좋다.

  사실 오늘날까지 교회의 성도들이 천국가고 지옥가고 하는 데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것의 십중팔구는 교회의 지도자들인 주의 종들이다. 이들에 의해 교회에 출석하는 영혼이 지옥에 떨어지기도 하고 천국에 들어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세가 될수록 참으로 올바른 주의 종을 만나야 한다. 그런데 초기교회의 사례를 보니, 하나님께서는 맨날 구제에 빠져 그러한 문제 해결에만 급급해하는 예루살렘교회를 버리셨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이방인으로 구성된 안디옥교회를 세워서 그 일을 감당케 하셨다는 것이다. 아무나 가서 교회를 세울 수는 없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미 만세전부터 택정해놓은 사람을 불러서 그 일을 감당케 하신다. 그가 바로 사도바울이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일평생 죽을 때까지 긴 전도여행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때 평신도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울선교팀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다. 선교비도 충당하는 일이다. 혹은 직접 가서 바울의 사역을 도울 수도 있다. 이것을 한 마디로 줄인다면, 교회를 세우는 주의 종들을 협력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 성도들이 가장 열심이 해야 할 일은 다른 것에 있지 않다. 천국보내는 교회를 세우는 주의 종에게 협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세운 종들을 도와 천국보내는 성도들을 낳는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이다.

 

6. 어떻게 교회를 세우는 주의 종을 도울 것인가?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을 보면, 성도들이 교회를 세우는 주의 종을 돕는 방법이 나온다. 그것은 4가지다. 첫째, 그것은 중보기도하는 일이다. 이것은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이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골4:2~3). 둘째, 자신의 직업을 통해서 주의 종들을 돕는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였다. 로마에서 쫓겨나 고린도에 왔던 장막만드는 부부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일터에서 바울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게 되었고 그가 감당해야 할 일이 장막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인 것을 직감하게 된다. 그러자 그들은 자신의 직업으로 일평생 바울을 돕게 된다. 셋째, 어렵더라도 선교비를 충당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바울은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은 선교사였다. 하지만 선교비는 이내 떨어지고 말았다. 2차전도여행 때에는 중간에 전도비가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하지만 유럽의 첫성이었던 마케도냐의 빌립보교회는 바울팀에 선교를 보냈다. 하지만 그들이 넉넉해서 보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많은 시련 가운데 있었지만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선교를 보내주었다(고후8:2~4). 하늘의 자녀가 되게 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그들은 잊지 않았고, 그들을 힘닿는대로 표현했던 것이다. 넷째, 직접 사람을 협력자로 보내 돕는 것이다. 또한 빌립보교회는 훗날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지낸다는 소식을 듣고는 늙은 바울곁에서 바울을 시중들 사람을 파송하는데 그가 바로 에바브로디도라는 청년이다. 그런데 그가 얼마나 열심히 바울을 시중들었던지 바울은 그에 대해서 이렇게 편지에 썼다.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의 목숨을 돌보지 아니했다(빌2:30)"고 말이다. 그는 바울을 섬기는 일이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로 알고 죽기까지 충성했던 것이다. 그렇다. 평신도로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무슨 거창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로 섬기며, 자신이 가진 직업으로 섬기며, 물질로 섬기고, 직접 손과 발로 섬기는 것이다.

 

7. 교회를 세우는 지도자를 돕는 성도들이 받은 복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는 참된 지도자들을 섬겼던 성도들을 어떻게 복을 주셨을까? 첫째, 자신의 직업으로 섬겼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자신의 일생을 마치기까지 자신의 직업을 잃어버리지 않고 바울을 도울 수가 있었다. 그러자 바울은 그들 부부를 자신의 동역자라고 불렀다(롬16:3). 한편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을 동역자라고 불렀는데, 그들의 이름의 하늘의 생명책에 있다고 하였다(빌4:3). 그렇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부부도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을 것이다. 둘째, 환난 중에서도 선교비를 충당했던 빌립보교회는 바울로부터 자신의 기쁨이자 면류관같은 성도라는 칭함을 받게 되었고, 그들이 필요할 때에는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기적을 맛볼 것이라는 바울의 말을 들었다(빌4:1,19). 셋째, 죽도록 헌신하다 병들었던 에바브로디도는 주님께서 긍휼을 베풀어주시도록 질병에서 깨끗이 나았고 다시 빌립보교회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교회를 세우는 주의 종을 섬기는 자들을 하나님은 긍휼히 여겨주시기 때문이다(빌2:27).

 

8. 나오며

  많은 이들은 그리스도의 일을 아주 고상하게 생각하거나 거창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일은 고상하거나 거창한 것만이 아니다. 또한 자기가 총대표가 되어 어떤 업적을 남겨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름도 없고 빛나는 것이 아니더라도 진짜 천국보내는 주의 종들을 돕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이다(빌2:30). 그러므로 내가 일반 성도로서 주의 종들을 섬기는 일을 쉽게 생각하지 말고 또한 작게도 보지 말라.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시 12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너희를 영접하는 것은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것은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한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으리라(마10:40~41)" 그렇다. 주님의 종을 영접하는 것이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 성도로서 주의 종을 섬기게 되면, 내가 받는 상급은 주의 종이 받는 상급과 동일하다는 것도 잊지 말라. 이것을 알고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을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18년 7월 15일(주일)
정병진목사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자가 받게 되는 축복은 무엇인가? 그것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하늘의 영적인 축복으로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 땅에서 부차적으로 받는 복이 있으니 그것은 저주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예를 구약의 아브라함의 경우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사실 그가 하나님을 만나기전까지 그의 집안은 저주 가운데 머물러 있었다. 그의 큰형이 아버지보다 훨씬 먼저 죽었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도 이유없이 임신이 불가능했다. 그들 집안의 저주가 자기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이었다면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나쁜 사람이라면 자기의 아내만을 탓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커다란 영적인 비밀이 숨겨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비슷하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사건사고나 우환이나 질별이 안 생기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면 그것은 뭔가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귀신은 저주받은 영이다. 귀신이 치고 들어오는 통로가 어딘가에 열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늘은 그 영적인 문제의 해결의 열쇠를 찾아보자.

 

1. 들어가며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자에게는 과연 어떤 은혜가 주어지게 되는 것일까?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는 죽을 때에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믿고 회개를 했다고 해서 모두가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죽는 날 생명책에서 자신의 이름이 지워질 자도 있기 때문이다(정확히는 아주 많다)(계3:5). 그러므로 한 번 얻은 구원이라도 그것을 지켜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럼, 얻은 구원을 지켜내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핍박을 견디는 인내가 필요하며, 미혹에 넘어졌더라도 회개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즉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지 않는 것과 넘어지더라도 다시 회개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 이 시간은 정말 온전한 믿음과 온전한 회개를 한 자가 받을 축복들가운데 덤으로 주어지는 축복에 대해 나누고자 한다. 다시 말해, 오늘은 믿고 회개하는 자가 얻게 될 부차적인 축복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한편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덤으로 얻는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덤으로 받는 축복을 누릴 수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사람이 축복받는 비결은 무엇이며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떻게 되는가?

  사람은 과연 어떻게 해야 복을 받고 살 수 있을까? 이것저것 이유들이 있지만, 그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구약시대에 유대인이었다면 율법말씀에 순종해야 하며, 신약시대에 태어났다면 마태복음에 나오는 산상수훈이나 계2~3장의 말씀들을 순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반대로 어떤 자가 복을 얻지 못하고 저주를 받게 되는지 아는가? 그것은 율법말씀에 불순종하거나 산상수훈과 같은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그것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여 네게 이를 것이니(신28:15)" 그렇다. 누군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면 그에게 저주가 임하는 것이다(신28:15).

  그렇다면 "저주"란 대체 어떤 것인가? 일반적으로 악담이나 독설 같은 것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히브리어를 보면, 저주에는 2가지 본질적이 뜻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복되고 의로운 상태가 소멸되는 것 내지는 그러한 상태를 잃어버리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자신의 선택된 현재의 위치보다 더 낮은 상태로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3. 아브라함의 가문에 임한 저주과 새로운 변화는 무엇인가?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이라는 인물도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의 가문 전체가 저주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 결과로서 첫째, 그의 큰형인 하란이  아버지 데라보다 일찍 죽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자연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죽는 일은 결코 복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둘째, 자기도 결혼은 했지만 자식을 얻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해야 할 집안이 그만 저주에 휩싸여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가문에 왜 이처럼 저주가 임했던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집안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일을 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상숭배다(수24:2). 율법해설서인 미쉬나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갈대우르에서 우상을 제조하여 판매하는 우상제조업자였다. 그러니 저주가 자기의 대에만 있지 않고 자손 3~4대에까지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출20:5).

  그런데 그러한 아브라함의 생애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셨던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2자기를 명령하셨다(창12:1~2).첫째는 그의 본토 친척 아버지집의 떠나라는 것이었다. 거기에 남아있으면 반드시 우상숭배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주실 약속의 땅을 향하여 떠나라는 것이었다. 믿음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분을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새로운 민족을 일으켜 세우실 것이고 그와 그의 후손들이 영원히 거할 거처까지 함께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결국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믿음의 대장정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의 결단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저주의 늪에서 벗어나 축복받는 인생으로 그를 바꾸어주게 된다.

 

4.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사건사고와 질병와 우환이 발생하는가?

  그런데 이러한 사례는 비단 그때만 있는 일이 아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가정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고 있다는 성도들 중에도 식구들 중에 누군가 일찍 죽는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자식을 낳지 못하는 일들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데도, 저주의 결과들이 떠나지 않고 있는가? 그것을 진단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의 경우를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아브라함의 경우는 그의 집안의 우상숭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가문이 저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우상숭배를 그치는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우상숭배의 거쳐였던 자신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났던 것이다. 사실 우상숭배의 죄는 죄들 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죄에 해당한다. 십계명의 1계명과 2계명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죄이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그 죄값을 3~4대까지 묻겠다고 말씀하셨다(출20:5).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그를 질병의 침상에 던지거나 주변의 사람들로 하여금 환난에 처해지게 할 것이며 자신의 자녀가 죽게 되는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계2:20~23).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을 따라나섰지만 그 후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들을 따라갔을 때 역시 그에게 상속자는 태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범죄를 시인하고 할례를 받은 후 그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여기서 그가 받은 할례는 신약의 세례로서 회개를 의미한다. 그가 하나님을 믿고 따랐지만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회개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역사하신 것이다. 곧바로 아브라함의 처는 임신하였으며, 1년 뒤에 상속자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비단 우상숭배의 죄를 짓지 아니했다고 해서 저주의 삶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요5장에 보면, 중풍병자에게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도록 다시는(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요5:14)" 그렇다. 사람에게 다가오는 저주의 증상들은 거의 다 범죄 때문에 일어나는 것들이다. 사실 범죄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저주의 결과들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든지 아니든지 상관없이 범죄는 우리를 저주가운데로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5. 신약시대 이후 사건사고와 우환과 질병의 실체는 무엇인가?

  구약시대에 저주는 사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의 직접적인 결과다. 하지만 신약시대에는 그 양상이 조금 다르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는 없던 귀신들이 나타나 활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실 영적으로 저주를 풀어보면, 귀신이 그를 붙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귀신들이 바로 저주받은 영이기 때문이다(막9:25). 그들이 하늘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타락하여 하늘에서 쫓겨날 때 그들은 저주를 받았다. 우선 그들의 모양이 흉측하게 바뀌었다. 그들의 우두머리였던 루시퍼는 용의 모습으로 변했고, 그 밑에 있던 부하들은 뱀과 전갈의 모습으로 변했다(눅10:18~19). 그러므로 그들이 사람 속에 들어가게 되면, 저주받은 자신의 상태를 그대로 표현하였다. 눈멀고 귀먹은 사람들이 발생했고, 미친 사람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사고나, 질병이나 우환들에는 반드시 귀신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의 1/3을 귀신을 쫓아내는 데에 사용하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저주로부터 온전히 벗어나려면 귀신을 제거해야 한다. 귀신이 자신의 삶에 역사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6. 저주의 실체인 귀신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인가?

  그러면, 귀신이 내 삶에 역사하지 못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귀신이 우리에게 침투해 들어오는 경로를 차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귀신은 어떤 통로를 통해서 우리에게 접근해오는가? 그것은 범죄의 통로를 통해서다. 우리가 범죄할 때 귀신들이 그것을 빌미로 우리의 삶에 개입해들어오는 것이다. 요일3:8에 의하면,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다고 하였다. 그렇다. 범죄할 때 사탄마귀가 그의 졸개인 귀신들을 보내어 우리의 삶에 개입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때부터 저주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저주가 나타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회개하는 일이다. 죄를 깨끗히 제거하는 일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만일 회개하기만 하면 그리스도 예수의 피가 우리의 죄를 깨끗히 씻어준다고 약속하고 있기 때문이다(요일1:7,9). 반대로 만약 우리가 범죄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을 때에는 귀신들이 얼마든지 우리의 삶에 진치고 있을 수가 있다. 그러면 저주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예수님을 믿고 있는 자라고 귀신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안심하지 말라. 귀신들은 우리가 범죄하면 우리를 침투해 들어올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죄를 짓게 되면 마귀에게 속하기 때문이다(요일3:8). 그들이 부여받은 권한을 가지고 믿는 자라도 공격해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아야 하고, 예수께서 왜 사람이 되어오셨으며 십자가에서 죽으셨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지은 죄들을 용서받아 더 이상 귀신의 공격을 받지 않으려면, 이처럼 믿음과 회개가 필요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은 죄를 짓지도 않았고 이미 다 회개했기 때문에 더 이상 회개할 것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삶에 귀신이 치고 들어온 흔적이 있는데, 어찌 회개할 것이 없다고 우기는다는 말인가? 혹시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잘 모르겠다면, 그는 구약의 율법의 말씀을 다시 읽어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불어 마음의 죄까지도 말씀하고 있는 산상수훈의 말씀과 계2~3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읽어보기를 바란다. 그러면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죄가 발견되면 즉시 회개해야 한다. 회개는 저주를 물리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회개없이 우리는 죄사함을 받을 수도 없으며, 저주를 물리칠 수도 없다. 만약 우리가 죄사함을 받지 못하면 우리는 종국에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을 것이다. 더욱이 회개없이는 우리가 귀신의 공격에 대항할 수가 없을 것이이다. 고로, 회개없이는 저주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 저주를 받고 있는지도 모른채 숱한 어려움을 겪고 만신창이가 된 다음에 회개할 것인가? 그리고 저주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지도 모른 채, 날마다 하나님을 향해 원망의 삿대질을 할 것인가? 아니다. 문제는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회개가 안 된 것이다. 회개가 아직 덜 된 것이다. 온전한 회개를 하지 않았으면서도 자신은 다 회개했다고 주장하지 말라. 어떤 죄는 몰래 숨겨둔 채, 다 회개했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회개한 것이 아니다. 회개가 온전히 이루어졌으면 자동적으로 저주가 떠나가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저주가 떠나가는 것이 시간적으로 약간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라.

  혹시 자신이 온전히 회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주가 있다면, 그때는 즉시 다음 단계에 돌입해야 한다. 예수의 이름으로 저주의 실체인 귀신을 꾸짖어 쫓아버리는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계신 이보다 더 크시기 때문이다(요일4:4). 어떤 귀신도 우리의 몸을 어거할 수 없다는 것을 알라. 우리 안에 계신 주께서는 전능자요 온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신데, 누가 감히 우리 몸 속에 남아있어서 주인행세를 하려 한다는 말인가? 그런 놈들은 가만 두어서는 아니 된다. 꾸짖고 내쫓아버려야 한다. 그렇다. 온전한 회개만이 바로 우리를 저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해준다.

 

7. 나오며

  사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그때까지 지은 모든 죄를 다 회개한다. 그래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태어난다. 그때 그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영생이 주어지며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도 기록된다. 하지만 그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해서 더 이상 죄를 짓지 아니하는 것은 아니다. 죄된 본성이 자기 속에 있는데 어떻게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다는 말인가? 귀신들이 우리 주변에 멤돌면서 생각을 심어주어 죄를 짓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지은 죄들에 대해 쉽게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잘못된 가르침을 받아서, 한 번 믿으면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도 다 용서받는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말이다. 회개하지 않는 죄는 용서받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한 것이지, 그 사건 자체가 자동적으로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는 못한다. 그러므로 예수믿는 자라도 자신의 죄를 자백함으로 용서받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죄사함을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저주로부터 해방받는다. 그래야 저주의 영들인 귀신들이 더이상 역사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회개하면 귀신들이 침투해들어오는 통로를 없애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생각나는 모든 죄를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혹시 자신에게 죄가 생각나지 않는데도 저주가 자신에게서 머물러 있다면, 성경을 다시 읽기를 바란다. 그래서 자기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찾아보기 바란다. 그리고 즉시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즉시 죄는 용서될 것이고 죄없는 우리에게 귀신들은 더 이상 역사할 수가 없게 된다. 그렇다. 이러한 영적인 진리들을 믿고 행하는 자들이 행복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저주에서 완전히 해방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18년 1월 21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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