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면 모두가 다 천국에 들어가서 왕같은 제사장으로 사는 것인가? 모두가 다 면류관을 쓰고 살며, 좋은 대저택 같은 천국집에서 사는가? 만약 믿음만으로 그렇게 되어진다고 주장한다면, 신약성경에서 아주 많은 말씀들을 찢어내고 파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서 누리게 될 지위와 신분은 대체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또한 누가 면류관을 쓰며, 누가 좋은 천국집에서 사는가? 여기, 그것을 알려주는 핵심적인 말씀들이 빼곡히 들어있다.

2022-03-20(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천국복음(25) 천국에서는 정말 차등상급이 존재하며 왜 있는 것인가?(마5:11~12,19)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Zt95AXLcSZw [혹은 https://tv.naver.com/v/25773014 ]

 

1. 들어가며

  산상수훈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천국'이다. 산상수훈의 처음과 중간 마지막이 '천국'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상수훈의 시작을 보라. 그것은 팔복으로 시작된다. 그러면 그 복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천국이 그들의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중의 복은 천국 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구약시대에는 메시야의 탄생을 위하여 이스라엘에게 육신적인 복을 허락하셨다. 건강하게 사는 것, 물질이 풍성하게 되는 것, 자손이 번성하는 축복을 더하신 것이다. 왜 그랬는가? 그것은 오직 한 가지, 그 민족이 메시야가 이 땅에 탄생하도록 도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께서 탄생하신 뒤에 이제 복은 달라졌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복을 선언하실 때에 그것은 이 땅의 복이 아니라 '하늘'의 복이었다. 그리고 육신의 복이 아니라 '영혼'의 복이었으며, 일시적인 복이 아니라 '영원한' 복이었다. 이것은 결국 한 마디로 천국 복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천국에서 받을 복은 대체 무엇인가? 그러한 복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가? 그리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모두가 다 똑같이 받게 되는 복이 천국 복인가? 아니면 차등이 있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천국에서 누릴 복은 어떤 것이며, 그 복은 어떻게 해야 받을 수 있으며, 왜 천국에서 복이 차이가 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2. 예수께서 산상수훈에서 들려주신 천국의 핵심 주제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산상수훈의 말씀을 통해서 들려주신 천국은 대체 어떤 말씀이었는가? 그것은 딱 3가지다. 첫째는 천국 입성 조건에 관한 말씀이었다(마5:20, 7:21). 즉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믿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간다고 한 번도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우리들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는 더 풍성해야 한다고 하셨다(마5:20). 그리고 예수님을 향하여 '주여 주여' 외친다고 해서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다. 그만큼 천국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둘째, 천국에서 받게 될 상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다. 천국에서 받을 상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마5:11~12). 셋째, 천국에서 얻게 될 지위와 신분에 관하여 말씀해 주셨다(마5:19). 천국에 들어가게 되면 다 똑같은 지위를 갖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각기 다른 지위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에는 큰 자가 있고 작은 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에 대해서 알려면, 그곳에 어떻게 들어가는지만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받아 누릴 상과 그곳에서 받을 지위와 신분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3.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가면 얻게 될 상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가면 얻게 될 상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것에는 다음과 같이 3가지가 있다.

  첫째는 천국에서 얻게 될 지위와 신분에 관한 상이 있다(마5:19, 눅22:29~30, 마20:26~27). 여기서 천국에서의 지위와 신분을 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우리가 수고한 대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천국에 가면 성도들은 어떤 지위와 신분을 가지는가? 그것은 크게 '다스리는 자'와 '섬기는 자'로 나뉜다. 여기서 '다스리는 자'는 다시 '왕 노릇하는 자'와 '다스리는 자'로 나뉜다. 천국에 가면 그가 어떤 신분을 지녔는지는 예배드릴 때에 확인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예배드릴 때에 보면, 어떤 사람이 어느 보좌(자리)에 앉는지의 여부에 따라 그의 지위와 신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천국의 보좌 자리는 총 144,000석인데, 그것은 다시 70줄의 계층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중에서 1~6번 줄까지는 왕 노릇하는 자이며, 7~70번 줄에 앉은 자는 다스리는 자가 된다. 그리고 나머지 서 있는 모든 성도들은 섬기는 자들로서, 예배드릴 때 다 서서 예배를 드린다. 그렇지만 이들도 자기 집에 가면 섬기는 자들이 있다.

  그렇다면 천국에서 얻게 될 지위와 신분은 어디에 나오는가? 그것은 예수께서 천국에 대해 들려주신 말씀 속에 나온다. 오늘 본문의 산상수훈에도 역시 나온다. 천국에는 큰 자가 있고 작은 자가 있다는 것이다(마5:19). 그리고 천국에서는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자가 큰 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18:4). 그리고 부자 청년을 책망하시면서 들려준 말씀에 따르면, 천국에 가면 왕 노릇하는 자가 있다고 말씀하셨다(눅22:29~30). 그렇다면, 천국에서 성도들이 섬기는 자요, 종으로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 있는가? 있다. 그것은 바로 마태복음 20:26~27의 말씀이다. 그런데 이 말씀을 우리말에서는 잘못 번역하고 있다.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번역해 놓았기 때문이요,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한다고 번역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문은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장차 섬기는 자로 있을 것이다"인 것이며,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장차 종으로 있을 것이다"인 것이다. 한글성경 자체로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이 번역은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예수께서는 천국에서도 섬기는 자가 있고, 종이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신 것이다. 동사가 아예 다르다. 즉 천국에서 큰 자가 되고 천국에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이 땅에서 섬기는 자나 종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장차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다스리는 자로 있을 자도 있고 섬기는 자로 있을 자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왕 노릇하는 자가 있다는 것은 열 므나의 천국 비유에서도 나온다. 그 비유를 보면, 한 므나를 받았는데 열 므나를 남긴 착한 종에게 주인되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열 고을의 권세를 준다. 이것은 열 고을에서 왕 노릇하는 자가 되게 하신다는 뜻이다. 고로 우리는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지위를 가진 자가 있고, 섬기는 자 즉 일하는 자의 지위를 가지고 살아가는 자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둘째, 천국에서는 면류관(승리관)의 상이 있다(벧전5:3~4, 딤후4:7~8). 천국에는 자신의 머리에 면류관을 쓰고 있는 사람도 있고, 면류관을 쓰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은 자신의 머리에 면류관을 쓰지 않는 자로서 섬기는 자로 살아간다. 왜냐하면 면류관은 이 땅에서 주와 복음을 위해 수고하고 애쓴 자만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천국에 가 보면 천국 성도들 중에 어떤 이는 면류관을 20개 이상 쓴 자도 있다. 천국에서는 그 면류관을 머리에 쓰지만 겹쳐 쓸 수가 있다. 그리고 그 무게가 이 지구의 무게와는 다르다. 그러므로 천국에 가면 다양한 종류의 크기와 모양을 갖춘 면류관을 쓴 자들을 보게 될 것이다. 특히 천국의 면류관은 그 테두리에 박힌 보석의 크기와 모양과 갯수에 따라서 상의 크기를 가늠할 수가 있다. 사도 바울도 사도 베드로도 역시 이러한 면류관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것을 책에 남겨 놓았다. 그 중에서 베드로는 '영광의 면류관'을 보았다(벧전5:3~4). 그리고 바울은 다양한 종류의 면류관을 보았는데(딤후4:7~8), 그는 '썩지 않을 면류관'(고전9:25), '소망과 기쁨과 자랑의 면류관'(살전2:19), '의의 면류관'(딤후4:8)을 보았다. 그리고 야고보와 사도 요한도 역시 '생명의 면류관'을 보았다(약1:12, 계2:10)

  셋째, 성도들이 천국에서 받을 상에는 천국 집도 있다(고후5:10, 요14:1~3). 성도들이 장차 천국에 들어가서 살 곳을 가리켜 흔히들 '천국 집'이라고 부른다. 이 천국 집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때에 그 건축 재료를 올려 보낼 수 있다. 이때 올려 보내는 건축 재료는 천사들이 가져다가 집을 짓는다. 그런데 이 집은 오직 이 땅에서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있을 때에 올려 보낸 건축 재료로만 지어진다는 것이다. 천국에 들어가면 더 이상 그 집은 지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 있을 때에 좋고 튼튼한 건축 재료를 그곳으로 올려 보내야 한다. 이 때 올라가는 건축 재료는 대체적으로 우리가 예배드릴 때에 올라간다.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성경읽고, 성경을 묵상할 때에 그곳에 올라가는 것이다. 

 

4. 천국에서 상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천국에서 상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만히 믿고 있기만 하면 천국에서의 지위가 올라가고, 면류관을 쓰게 되고, 좋은 천국 집이 지어지는가? 결코 아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때에는 사실 은혜로 값없이 받는다(롬3:23~24). 하나님의 생명을 받고 죄사함을 받는 문제는 우리 인간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저 주신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후에 우리 대신 고난당하시고 죽으심으로 댓가를 지불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우리에게 은혜로 값없이 주어진다. 하지만 그렇게 주어진 것이기에 천국에서 우리가 받을 상도 역시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서 상을 받으려면 이 땅에서 심어야 하는 것이다. 심는 대로 거두기 때문이요(갈6:7), 주님께서도 일한 대로 갚아 주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22:12).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가서 우리가 받을 상은 우리가 이 땅에 살 때에 준비해야 한다. 그러면 그 상을 어떻게 준비할 수 있는가? 어떻게 준비할 때에 천국에서 높은 지위와 많은 면류관과 좋은 천국 집을 받게 되는가? 예수님의 말씀과 더불어 성경 전체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은 4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첫째, 깨끗해져야 한다(딤전2:20~21). 죄를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더러운 그릇이 되어 쓰임받으면 별로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깨끗한 그릇이 되어서 쓰임받아야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 깨끗하지 않은 상태에서 쓰임받으면 천국에서 결코 큰 자가 될 수 없으며, 올려 보내는 천국 건축 재료도 좋지 않은 재료가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쓸 면류관도 없게 된다. 

  둘째, 낮아져야 한다(마18:3~4). 이 땅에서 우리가 천국으로 좋은 건축 재료를 올려 보내려면 겸손해야 한다. 생색내기를 하거나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서 행하는 것들은 좋은 건축 재료가 되지 못한다. 그리고 좋은 지위를 갖게 하지 못한다. 이 땅에서 높아지기를 원하는 자는 천국에서 섬기는 자, 종의 지위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상얻기를 바라는 자는 어린아이처럼 낮아져야 한다. 

  셋째, 주님께서 맡겨 주신 일에 충성해야 한다(계2:10). 주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무엇인가를 맡기셨다. 그러므로 은사와 달란트를 가진 자는 그것을 맡기신 분의 뜻에 부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종으로서 주인의 말씀에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기까지다. 당신도 그렇게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런 자는 반드시 천국에서 높은 지위를 얻게 될 것이다. 많은 면류관도 쓰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넓고 좋은 집에서 살게 될 것이다. 

  넷째, 마지막으로 헌신해야 한다(마10:41~42). 여기서 헌신한다는 말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자신은 목사님들처럼 천국복음 말씀을 맡아서 전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어떻게 주의 일을 하느냐고 말이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천국복음 전파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못해도 그 상에 동참하는 방법을 일러 주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면 선지자의 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천국복음 전파를 위해 힘쓰는 자들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하면 그 상을 결코 잃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직접 복음을 전파하지 못한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가 없다. 선지자요 복음 전파자를 도우며 그 일에 참여하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을 도와 복음 전파에 힘썼던 사람들은 지금 천국에 들어가서 큰 자가 되어 있고, 면류관을 쓰고 있으며, 넓고 큰 대저택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라. 

 

5. 나오며

  누가 천국에 들어가는가? 누가 천국에서 큰 자라 불리우게 되는가? 누가 천국에서 면류관을 쓰는 성도가 되는가? 누가 보다 더 하나님 보좌의 가까운 곳에 집을 짓고 살게 되는가? 그것은 모두가 이 땅에서 수고하고 일하고 충성한 만큼인 것이다. 구원은 은혜로 주어지지만 천국에서 누릴 상과 지위는 결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생각해 보라. 일평생 죄짓다가 마지막에 가서 회개하여 겨우 천국에 들어간 사람과 일평생을 주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헌신한 사람이 어찌 천국에서 똑같은 집에서 살겠으며, 똑같이 면류관을 쓰겠으며, 똑같은 지위를 누리겠는가? 아니다. 천국에 들어가 보라.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 있는 80평의 대저택에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저 멀리 성벽 가까이에서 0.8평 되는 텐트와 같은 집에서 사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144,000석의 보좌가 놓여 있어도 자기가 마음대로 그 보좌에 가서 앉을 수 있는지 가서 한 번 확인해 보라. 천국 안에 섬기는 자와 종으로 참여한 자는 그 보좌에 결단코 앉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미 결정된 보좌 자리에서 단 한 줄도 앞으로 가서 앉을 수 없다. 이미 정해진 좌석에만 앉아서 예배를 드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행한 대로 받는 보상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아무것도 행하지 않은 사람은 당연히 천국에서 받을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것을 깨우치라고 주님께서는 '달란트의 천국비유(마25:16~30)'와 '므나의 천국 비유(19:12~27)'를 들려주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제야 비로소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어떡하나?" 하고 실망하지는 말라. 왜냐하면 마태복음 20장에 나오는 '포도원 품꾼에 관한 천국 비유(마20:1~16)'를 보면, 비록 오후5시에 부름받아 일한 자라도 그날 하루치의 품삯을 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평가는 절대 평가가 아니라 상대 평가이기 때문에, 우리가 오후5시까지 주님께 쓰임받을 기회가 없어 쓰임받지 못했다는 것을 모른 채 하실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이러한 사실을 알았다면 지금부터 시작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그의 왕국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눅12:31~32). 그러나 그냥 주시지는 않으신다. 그분은 공의로운 분이시니까. 왜 주님께서 상이라는 것을 하늘에 준비해 놓으셨는지를 곰곰히 생각해 보라. 그것은 우리가 구원받은 이후 하늘에서 받을 상을 알고 지금부터라도 더욱더 각성하고 깨어 분발함으로 그 상을 다 받기를 진정 바라시기 때문이다. 

 

2022년 03월 20일(주일)

정병진목사

 

 

 

 

천국! 우리는 사실 천국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 장차 천국에 들어갈 사람인데 정작 천국에 대해서 관심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장차 우리가 들어갈 천국은 대체 얼마나 넓은 곳인가? 그리고 천국에서 나는 어느 동네에 가서 살게 될 것인가? 그리고 천국에서 내가 차지할 기업은 어떤 방식으로 결정되는 것이며, 내가 거주할 집은 또 어떻게 준비되어지는가? 이 모든 궁금점이 이 한 편의 설교 속에 들어있다. 2021-08-08(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천국에서 내가 거주할 장소와 천국 집은 어떻게 준비되는가?(요14:1~3)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Kfd7LrCSQss [혹은 https://tv.naver.com/v/21757560 ]

 

1. 들어가며

  천국에 가면 성도들이 받을 상이 있다. 그것에는 3가지가 있다. 하나는 성도가 144,000석의 보좌 자리에 앉는 것이며, 또 하나는 여러 종류의 면류관을 쓰는 것이며, 마지막 하나는 자기를 위해 마련된 천국집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보좌 자리'는 사실 아무나 차지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거기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이긴 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죄와  싸워서 이긴 자가 되어야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도 보좌 자리는 아무나 차지할 수는 없다. 거기는 24장로 외에 144,000명의 이긴 자들에게만 그 자리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면류관'은 다르다. 보좌자리보다는 얻기가 훨씬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맡겨진 임무에 충성하여 끝까지 그 일을 완성한다면 누구나 다 거기에 해당하는 면류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비록 생명의 면류관 이나 승리의 면류관 그리고 충성의 면류관을 쓰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섬김이나 봉사의 면류관, 사랑과 긍휼의 면류관은 쓸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천국에서는 누가 자기의 천국 집에 들어가서 살게 되는가? 누구나 가능한 것인가? 그리고 천국 집은 대체 어떻게 생겼으며 규모는 또한 어떠한가? 그리고 천국에서 내 집을 얻기 위해서 나는 이 땅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서 오늘은 우리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차지할 땅과 그 집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천국에서 영적인 존재들의 거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천국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존재는 누구인가? 그중의 하나는 천사들이고 또 하나는 이미 천국에 들어가 있는 성도들이 그들이다. 천국에 있는 인격적 존재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예배하는 것인데, 그때 천사와 성도가 함께 찬양을 부른다는 것을 한 번 상상해보라. 그렇다면 그들은 어느 장소에서 예배하는 것일까? 천사는 하늘에서 날고 있고 사람은 땅에 서서 찬양하는 것일까? 그런데 아니다. 실제로 천국에 가서 보면, 하나님의 보좌를 기준으로 왼쪽 편에는 천사들이 찬양을 드리고 있고, 오른쪽에서는 성도들이 찬양을 드리기 때문이다.

  그럼, 예배를 드리지 않을 때에는 천사들은 어디에 거주하고 있으며, 성도들은 어디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우리는 천국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장차 제자들이 천국에 들어오면 살 거처가 분명히 있다고 장소적으로 말씀하셨다. 어딘가에 성도들이 거주하는 거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사실 하나를 들려준다. 그것은 "아버지의 집 안에" 성도들이 "거주할 장소들"이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요14:2). 

  요한계시록에 보면, 천국은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했다(계21:1). 천국에도 하늘이 있고 땅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거기에서 아버지의 집은 어디에 있는가? 요한계시록 21~22장에 따르면, 아버지의 집은 새 예루살렘 성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그 성의 한 가운데에 아버지의 보좌가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거주하는 장소는 아무래도 새 예루살렘 성 안인 것이다. 자,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한 번 성경을 좀 더 살펴보자. 요한계시록 21:16~17에 따르면, 새 예루살렘 성은 그 도시가 네모가 반듯하게 생겼고, 길이와 너비가 높이가 같다고 했다. 그리고 그 길이는 12,000스타디온이라고 했고, 성벽도 144규빗이라고 했다. 여기서 성의 크기인 12,000스타디온은 하늘의 완전수 12에다가 1,000을 곱한 숫자이며, 성벽의 크기로서 144규빗은 하늘의 완전수 12에다가 다시 한 번 하늘의 완전수인 12을 곱한 것이다. 이는 영적으로 볼 때, 그 도성의 크기는 구원받은 성도들을 받아들이기에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성벽의 두께가 144규빗이라는 말은 이 성벽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것을 그냥 문자적으로 실제하는 숫자라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이 성의 크기는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2,220km정도인 큰 성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1스타디온은 약 185m이기 때문에, 천국은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다 똑같이 2,220km나 되는 아주 커다란 성인 것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430km이니, 이 거리에 비하면 다섯 배가 더 되는 크기가 천국의 예루살렘인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길이와 너비가 2,220km일 뿐만 아니라 높이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성은 오늘날 우리 지구에서 생각하는 성의 개념을 초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성의 맨 아래에서 맨 위까지의 거리가 무려 2,220km나 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 성의 높이를 12개의 층으로 나누어서, 거기에 사람이 거주시킨다고 한다면, 한 층마다 185km를 쓰는 것이다. 혹 그것을 24개 층으로 나누어서 사람을 거주하게 한다면, 한 층마다 92,5km의 높이를 쓰는 것이 된다. 그러니 현재 지구의 아파트의 층고(3m)하고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 성에서 거주할 사람은 천국에 들어오는 모든 성도들을 다 감당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각하건데, 새 예루살렘 성의 맨 꼭대기 층이 아마도 요한계시록 21~22장에서 소개하고 있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생명수가 흘러나와 동쪽방향에 있는 진주문 쪽으로 흘러가고 있고, 그 강 좌우에 정금길이 있어서 생명나무들이 즐비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성의 층층의 어딘가에 성도들이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물론 그 성의 어딘가에는 또한 천사들이 살고 있는 영역도 있을 것이다. 

 

3. 천국에서 성도들은 아무데서나 흩어져서 사는 것인가?

  천국에서 천국 집에 대해 말하려면 우리는 먼저 천국에서 성도들이 거처하는 장소가 어떤 구역일까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그 거처가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새 예루살렘 성의 여러 층들의 어떤 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그 층의 아무데서나 자기 집을 짓고 살게 되는 것인가? 아니다. 성도들은 결코 천국에서 자기 집을 아무데서나 짓고 거기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그 땅에서 사는 것이며, 예수님께서 천국에 들어오기 전에 지어주신 그 집에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에 가면 내가 사는 주소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영안이 열려서 천국에 갔다오신 분들에 의하면, 천국은 각각 동네 이름이 있다. 그리고 동네마다 돌과 같은 이정표에 그 이름들이 쓰여 있는데, 예를 들어, "아브라함 동네", '이삭 동네", "야곱 동네" 등으로 쓰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동네의 이름은 24장로들의 이름이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구원받은 모든 성도는 천국에 들어가면, 24장로의 이름이 쓰여있는 어떤 동네에 가서 사는 것이다. 그것도 아무데서나가 아니라, 주님께서 그 사람에게 주신 땅과 그 땅 위에 지어진 집에서 사는 것이다. 물론 부끄러운 구원을 받아서 천국에 들어온 자는 집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왕노릇하는 144,000명의 집에서 가서 시녀 노릇을 하거나 경호원 노릇을 할 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기가 사는 동네가 각각 따로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 동네" "제50구역 오른쪽에서 세번째 집" 등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다. 오늘은 아브라함 동네에서 살다가 내일은 요셉 동네에서 사는 것이 결코 아니다. 정해진 마을, 정해진 구역에서 사는 것이다. 

  그럼, 나는 천국에서 어떤 동네에 가서 사는 것인가? 이미 천국에 들어가서 살고 있는 사람들들을 영안으로 보면, 그들이 사는 동네라도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자기가 사는 동네는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했느냐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기가 이 세상에서 살 때에 아브라함처럼 처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하여 가문을 일으키면, 주님께서 그는 아브라함 동네에 가서 살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선교사들처럼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놓아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았다면 우리는 '이삭동네'에 가서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날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외치고 살았다면, 그는 '세례요한의 동네'에 가서 살게 되는 것이다. 

 

4. 천국에서 내가 거주할 땅의 크기는 어떻게 정해지는가?

  그렇다면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자기 집이 지어질 땅(대지)은 대체 어떤 원리로 정해지는 것인가? 아무데나 여기는 "내 땅"이라고 정하고 살면 되는가? 그것은 아니다. 2주 전에도 살펴보았지만, 천국의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 드릴 때에도 지정된 좌석과 장소에서 예배드린다고 말씀 드렸다. 그렇다. 천국에서 예배를 드릴 때에도 지정된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하물며 자기가 사는 땅을 돌멩이로 선을 그어서 살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주 예수께서 정해주신 구역에, 주 예수께서 주신 땅에 있는 집에서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에 하신 말씀을 생각해보라. 복있는 사람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하셨다(마5:5). 그리고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므나의 비유를 보면, 왕노릇을 할 자도 자기가 더 남긴 분량 만큼을 고을들을 차지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니 자기가 사는 구역은 어떤 사람은 왕노릇하는 구역일 수도 있고, 성벽에 가까운 구역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신앙생활을 잘 해서 하나님 보좌 가까이에 있는 넓고 아름다운 땅에서 사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5. 천국에서 우리가 거주할 집의 크기와 모양 그리고 내부 인테리어는 어떻게 준비되는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자신이 살 동네와 또한 자신이 살 집에 대해서 들어보았다. 이 모든 것은 다 천국에 계신 우리 주님께서 안배해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주님께서 안배하신다고 할지라도, 실제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주님도 참작하신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 집은 대체 어떻게 천국에 지어지는 것일까?

  우리가 살 집도 위의 경우와 아주 비슷하다. 분명히 천국 집도 다 예수님께서 지어주시는 것이 맞다(요14:2~3). 하지만 주님이 직접 짓는 것은 아니다. 주님께서 건축천사를 시켜서 집을 짓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럼, 건축천사는 어떻게 집을 짓는가? 그것은 기록천사로부터 건축재료를 전달받아 짓는 것이다. 그럼 기록천사는 어떻게 생명책과 행위책에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행위를 기록하고 있는가? 그것은 그 사람이 태중에 잉태되어 2개월 정도 되었을 때에부터 두 명의 기록천사가 달라붙은 후, 그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한 것이다. 만약 그가 정말 주님 보시기에 잘 했던 것이 있다면 그 일의 중요이력은 생명책에 기록되고 그리고 세부사항은 행위책에 기록될 것이다. 그러면 그 기록을 따라서 건축천사가 그 사람이 장차 들어와서 살 집을 천국에 짓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우리가 사는 동네나 우리가 살게 땅 그리고 우리가 살게 될 집은 다 우리가 장만하는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의 결정권자는 다 우리 주 예수에게 달려있다. 그리고 천국집의 규모와 크기와 모양 그리고 그 속에 있는 가구나 인테리어 등은 다 우리가 이 땅에서 올려보내는 건축재료에 따라서 주님이 명령으로 지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취향과 성품을 너무나도 잘 아시기 때문에 우리의 성품과 취향에 따라 우리의 집을 아름답게 지어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도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천국집도 화려하게 지어질 것이며, 이 땅에서 심플한 것을 좋아하면 천국집도 심플하게 지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 땅에서 행한 일이 참으로 많은 자는 아무래도 천국의 대지도 아주 넓고 큰 것으로 주어질 뿐만 아니라 집도 매우 크게 지어질 것이다. 특히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들의 집들은 거의 대저택 수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땅에서 올려보낸 것이 없는 사람은 천국에서 땅의 크기도 작을 뿐더러 집도 작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천국에 미처 집을 장만하지 못하고 올라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매우 행복함을 느끼며 살아갈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은 더이상 악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 집이 없어서 공원이나 잔디밭에서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혹시 24장로의 대 저택에 들어가서 시녀노릇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천국에 있는 집의 모양도 각 사람의 취양과 성격에 따라 독특하게 꾸며질 것이다. 노아의 집은 방주처럼 생겼기 때문이며, 다윗의 집은 악기처럼, 그리고 고멜의 집은 화려한 그리스 신전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또한 실내 인테리어를 좋아하는 사람은 거실과 침대, 서재와 주방 등이 아기자기하게 혹은 우아하고 멋지게 꾸며져 있을 것이다. 

 

6. 어떻게 하면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내가 거주할 땅과 천국집과 인테리어를 풍성하고 아름답게 준비할 수 있는가?

  천국집에 있어서 최대의 관건은 어떻게 할 때 천국의 땅과 천국 집을 보다 더 규모있게 크고 아름답고 준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성경말씀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3가지 조건에 따라 되어진다. 

  첫째,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섬기고 봉사한 만큼 건축재료가 천국에 올라가서 지어지는데, 오직 주의 이름으로 주님의 영광을 위해 한 것만이 지어진다는 것이다(계22:12, 눅17:10).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믿기 전에 선행을 했던 그 어떤 것도 천국에서 집으로 지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의 이름으로 한 것일 뿐, 주의 이름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 이름을 내고 자기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서 행하는 모든 것은 천국에 올라갈 때 건축재료가 아주 조금밖에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둘째,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할 때도 그것이 건축재료가 되어 올라간다는 것이다(계8:3~5). 특히 우리가 하나님을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고, 마음을 다해 주님을 찬양하여 주님께 영광돌리면 주님께서 그 제물을 향기롭게 받으셔서 그것이 천국의 좋은 건축재료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집을 잘 장만하려면 찬양하고 기도할 때에도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감사할 때도 주님의 이름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주님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에도 그것이 건축재료가 된다. 그러므로 전도를 많이 한 자는 천국집이 더 아름답게 지어진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사람을 회개시킬 때에는 전도하는 것보다 5배로 천국집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셋째, 무엇보다도 주의 말씀과 주의 종의 말에 순종할 때에 천국집이 더 잘 올라간다는 것이다(삼상15:22). 사람이 누군가의 말을 순종하며 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모세를 보라. 그는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엎드려 순종했다. 그랬더니 그는 천국에서 24장로가 되었으며, 천국에서도 대저택을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후계자였던 여호수아도 보라. 여호수아는 모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따르고 순종했다. 그랬더니 천국에서도 24장로가 되었으며, 그의 집도 대저택 수준이다. 그렇다. 순종이 제사보다 더 나은 것이다. 내가 예배를 잘 드렸다고 해서 나는 괜찮다고 만족할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에 과연 순종하고 있는지, 주의 종의 가르침을 따라 순종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떤 분은 천국에 있는 집이 우리가 죄를 범할 때마다 허물어진다고 간증하는 분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그것은 원칙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천국에 올라간 건축재료는 이미 예수님의 의해 결산되어서 그 분량에 따라 건축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범죄했다고 해서 이미 올라간 건축재료를 없애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그렇게 해서 아름답고 훌륭한 집을 건축해놓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가 나중에 타락하여 계속해서 범죄한 뒤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가 죽을 때에 그 집이 허물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도 죽기 전에 회개하고 죽는다면, 천국에 들어갈 수는 있겠으나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그가 이미 지어놓은 집에서 사는 것이 아니며, 작아진 집에서 살게 될 것이다. 

 

7. 나오며

  믿음이란 예수믿고 단지 구원받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죄의 권세로부터,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죽음으로부터 벗어난 구원 즉 1차적인 구원만을 받았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것도 전적인 우리 주님의 구속의 은총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모두는 다 광야에 있다. 그러니 생각해보라. 출애굽은 해서 광야에 나왔지만 그곳에서 원망불평하며 살았던 자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리고 가나안(천국)을 기업으로 주신다는 주님의 말씀은 믿지 못했던 출애굽1세대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다 광야에서 하나같이 죽고 말았다. 즉 그들은 최종적으로 주어지는 구원 곧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을 받지 못한 채 죽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교훈에다가 특벽히 오늘은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우리가 받을 상으로서, 천국의 기업과 천국의 집에 관한 말씀을 들었다. 이 어인 은혜인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받은 것이다. 내가 회개를 깨달아 회개를 통해 천국에 들어가게 된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인데, 우리는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어떤 영광스런 존재로 살아가는지, 거기에서 어떤 영광을 누리고 살아가는지를 듣게 되었다. 그런데 이 은혜를 그냥 흘려버려서 되겠는가? 회개하자. 회개없이는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없이 때문이다. 그래서 회개를 실천하고 있다면, 이제는 나의 남은 삶을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 그분은 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던 분이시다. 그래서 이제라도 우리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리며 살아보자. 그리고 주님의 말씀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고 순종하며 살아보자. 그래야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서도 우리를 위해 준비해 두신 천국집에서 우리가 영원히 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1년 08월 08일(주일)

정병진목사

 

천국에 들어가면 누가 면류관을 쓰게 되는가? 그리고 성도들이 쓰게 될 면류관에는 실제로 어떤 것들이 있는 것인가? 경주에서 승리하는 자만 그리고 복음을 위해서 목숨을 내어놓았던 순교자들만 면류관을 쓰는 것인가? 천국에서 쓸 면류관은 주의 종들만, 사명자들만이 받는 것인가? 아니다. 여기 천국에서 실제로 쓰게 될 면류관에서 관한 가장 확실하고도 정확한 정보가 우리를 지금 기다리고 있다. 2021-08-01(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천국에서 면류관은 누가 쓰는가?(딤후4:7~8)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CwWIX2wiLxc [혹은 https://tv.naver.com/v/21645982 ]

 

1. 들어가며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받을 상은 무엇인가? 그것에는 3가지가 있다. 하나는 '보좌'자리요, 또 하나는 '면류관'이며, 마지막 하나는 '천국집'이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누가 어떻게 이것을 차지하는지를 잘 모른다. 천국에 들어가면 누구나 다 왕같은 제사장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천국에서 모든 성도들이 한 자리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상상해보라. 서로간에 겹쳐서 예배를 드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보다도 앞선 자리에서 예배드릴 자가 있음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천국에서 그 자리는 지정좌석제라는 것을 천국에 들어가보면 알게 될 것이다. 한 번 정해진 자리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서 어떤 자리에서 예배드릴 것인지를 대비해야 한다. 이것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 받게 될 면류관과 천국 집도 잘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은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우리가 머리에 쓰게 될 '면류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과연 '면류관'이란 어떤 것을 가리키며. '누가' 쓰는 것이며, '어떤 자'가 받게 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혹시 그동안 면류관에 대해서 듬성듬성 알고 있었다면 오늘은 종합적으로 그것을 살펴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가 이미 준비해놓은 면류관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앞으로 받아쓰게 될 면류관은 무엇이며 또한 그것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살펴보자.

 

2. 천국에서 받을 상 3가지는 무엇이며, 어떻게 받는가?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받을 상급은 무엇인가? 그것은 방금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보좌'자리와 '면류관'과 '천국집'이 있다. 그런데 이 3가지는 갑자기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전부 다 이 세상에서 준비했던 것을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은 어떤 자가 받게 되는가?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겠지만, 먼저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보좌'자리는 얼마나 충성했으냐 그리고 얼마나 깨끗한 자가 되었느가에 따라 결정이 된다. 그런데 이 보좌자리는 대부분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사명을 주어서 보낸 자들에게 주어지게 될 것이다. 물론 몇 몇은 아닌 자리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 성도로서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살았고 지금 살고 있는 인류를 계산해보면 약 250~280억 정도인데, 그 중에서 보좌자리를 차지할 사람은 144,000명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반 성도들이 정말 기대하고 소망하고 바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역시 '면류관'과 '천국집'이다. 이것은 사실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면류관'은 어떤 자가 받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그의 충성에 따라, 주어진 과업을 인내함으로 완성한 것에 따라 주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국집'은 그가 얼마나 충성했으며 또한 얼마나 순종했는가에 따라 주어지게 될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 관하여는 다음 주에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3. 면류관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성도들이 천국에서 받을 '면류관'이란 대체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면류관(冕旒冠)'을 한자로 살펴보면, '면류관 면(冕)' 자에다가, '깃발 류'(旒)에다가, '갓 관(冠)' 자다. 즉 '면류관'이란 3부분을 합쳐놓은 개념이다. 즉 맨 위에 있는 네모난 붉은 부분으로서 '면'에다가, 달롱달롱 달려있는 구슬들(우리나라는 보통 9개)을 꿰놓은 것으로서 '류'에다가, 마지막으로 머리부분이 들어가도록 동그란 생긴 아랫 부분으로서 '관'을 합쳐놓은 것을 면류관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국어사전에서는 면류관이란 “제왕(帝王)의 정복(正服)에 갖추어 쓰는, 직사각형(直四角形)의 판에 많은 주옥(珠玉)을 꿰어 늘어뜨린 관(冠)”을 의미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천국에서 성도들이 쓸 '면류관'은 세상 사람들이 쓰는 면류관과는 다르다. 천국에서 성도들이 쓸 면류관은 쉽게 말하자면, '티아라'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동그란 원형의 금색이나 은색의 띠 같은 것에 각종 보석이 물려있는 장신구가 바로 천국에서 성도들이 받을 면류관인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알려진 면류관은 '승리관' 내지는 '월계관'이다. 하지만 천국에서 쓸 면류관은 그러한 것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월계관'은 월계수나무 잎으로 동그랗게 만든 것인데, 천국에서 받을 면류관은 각종 보석이 물려있는 티아라의 관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둥글다는 측면에 있어서는 예수께서 쓰셨던 '가시면류관'을 상상하면 되겠다. 

  그렇다면 성경 자체가 말씀하고 있는 '면류관'이란 어떤 뜻일까? 신약성경과 초기교회 문헌과 그리고 그리스 로마의 고전문헌을 총망라하여 집필된 헬라어사전('바우어 헬라어 사전')을 보면, '면류관'은 '스테파노스'라는 단어이다. 그리고 그 뜻은 크게 2가지로 나온다. 하나는 그 단어의 원뜻으로서 "야자수 가지로 엮은 예수에게 씌운 가시관"을 지칭한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긴 승리자에게 씌우는 화관(월계관)" 혹은 "하늘에서 내린 상의 상징으로서 요한계시록에서는 금 화관으로서 뛰어난 지위를 가진 자의 머리 장식"이라고 나와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2차적인 의미인데, 그것은 '상, 보상, 보수' 혹은 '명예, 자랑, 장식이 되는 것'이라고 쓰여 있다. 고로 우리는 하늘에서 받을 면류관을 월계관 정도로 한정해서는 아니 된다. 물론 면류관은 승리한 자에게 주시는 '승리의 면류관'도 있다. 하지만 천국에서 받을 면류관이 전부다 '승리의 면류관'은 아니다. 다시 말해, '면류관'은 주님께서 천국에서 성도들의 머리 위에 씌워주는 티아라처럼 생긴 화관으로서 상으로 주어지는 것인데, 이것은 그 사람이 일생동안 이 땅에서 수고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명예 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주님에게는 자랑이 될만한 하며 기쁨이 될 만한 것이다. 

 

4. 천국에서 받을 면류관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가?

  그렇다면,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받을 수 있는 면류관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사도 바울을 비롯한 신약성경의 기자들은 천국에서 성도들이 받을 면류관에 대해서 성경에 기록해 두었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성도들이 받을 면류관이 어떤 것들인지는 우리도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천국에서 성도들이 받을 면류관은 한 가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조금 있다가 살펴보겠지만, 천국에서 성도들이 머리에 쓸 면류관에는 '승리'의 면류관도 있고, '충성'의 면류관도 있으며, '생명'의 면류관도 있다. 즉 다양한 종류의 면류관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양과 생김새와 크기도 각각 다르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 박혀있는 보석의 종류도 그 크기와 종류와 생김새가 각각 다르다. 왜 그러한가? 그 이유는 한 사람이 이 땅에서 준비한 것만큼 천국에서 준비되기 때문이다. 즉 이 땅에서 수고한 대로 충성한 대로 면류관이 결정되도 각종 보석으로 치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에는 성경에 기록된 면류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 나와있는 면류관은 응당 있을 면류관이지만,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더 많은 면류관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혹시 보좌자리에는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면류관 만큼은 꼭 받아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5. 천국에서 면류관은 누가 씌워주며 언제 받는 것인가? 

  그러면, 천국에서 면류관은 누가 과연 씌워주는 것인가? 그것은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딤후4:7~8). 지난 주에 천국에서 '보좌'자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준비해주시고 그 자리에 앉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마20:23). 그렇다. 144,000명이 차지하는 '보좌'자리는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것이며, 그 자리는 그 자리를 차지하기에 합당한 자들이 나중에 앉게 될 것다. 그런데 면류관은 하나님의 아버지께서 씌워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씌워주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명의 완성도에 따라 그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즉 주 예수께서 이 땅에 어떤 사람을 내려보내실 때에 어떤 사명을 주어보내시는데, 과연 그것을 완성했는지에 따라서 면류관을 씌워주시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꼭 이런 자들에게만 면류관을 씌워주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를 따라서도 성도들에게 면류관을 씌워주신다. 그리고 이미 우리들 중에는 그러한 사명을 다 완수하여 천국에 이미 면류관이 준비되어진 사람도 있다. 

 

6. 천국에서 면류관은 대체 누가 어떻게 받는 것인가?

  그렇다면, 천국에서 성도들이 받게 될 면류관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과연 누가 받는가? 성경에는 여러 종류의 면류관이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면류관은 다 이름들이 있다. 예를 들어, 천국에 들어가 성도들 중에는 어떤 성도는 '충성'의 면류관, '섬김'의 면류관, '사랑'의 면류관을 받을 자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성도는 '생명'의 면류관, '인내'의 면류관 '충성'의 면류관을 받을 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면류관은 그 사람이 어떤 일에 헌신했으며 어떤 일에 충성했는지를 따라 주어진다. 

  그러므로 천국에서부터 이미 사명을 받고 이 땅에 온 자들은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거기에 따른 면류관을 쓰게 될 것이다. 어떤 이는 '충성'의 면류관을 머리에 쓰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이 땅에 살 때에 오로지 주님이 말씀하셨던 그 사명에 온전히 충실했기 때문이다(딤후4:7~8,계2:10). 또 어떤 이는 '생명'의 면류관을 머리에 쓰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생명을 주님께 바쳤기 때문이다(계2:10). 또 어떤 이는 '승리'의 면류관을 쓰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달려갈 길을 끝까지 완주하여 경주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고전9:24~25). 또 어떤 이는 '의'와 '영광'의 면류관을 쓰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주님으로부터 받는 영광스러운 일을 끝까지 믿음을 지키면서 완수해 냈기 때문이다(딤후4:7~8,벧전5:1~4). 또 어떤 이는 '인내'의 면류관을 머리에 쓰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시련과 유혹으로부터 끝까지 자신을 지켜냈기 때문이다(약1:12).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에 이렇게 정의를 했다. '면류관'은 충성과 인내로 받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다. 충성한 자 그리고 끝까지 인내로서 사명에 충실한 자가 면류관을 받게 되는 것이다. 

 

7. 천국에서 쓸 면류관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렇다면 천국에서 성도들이 쓸 면류관에는 위에서 말한 것들만 있는가? 아니다. 다른 면류관도 있다. 그러므로 면류관은 모든 성도들이 다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우리가 받아쓸 면류관에는 이미 사명대로 충성한 자가 받는 것도 있지만, 우리 주님께서 보실 때에 이 땅에서 그가 행한 일이 너무나 주님에게 자랑이 되고 기쁨이 되며 소망이 될 때에도 씌워주시기 때문이다. 그것에 대해서는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에 언급하고 있다. 즉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스테파노스)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살전2:19)" 그렇다. 면류관은 꼭 승리자 혹은 사명자 혹은 순교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성도들 중에서 이 땅에서 살았던 모습이 우리 주님 보시기에 정말 기쁨이 되었을 때에도 주님이 씌워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들은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누구나 면류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면류관을 쓰기 위해 힘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본인이 사명자가 아니었더라도 받아 쓸 수 있는 면류관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러한 면류관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아마도 20가지 이상은 되어 보인다. 그 예를 든다면 다음과 같다. 순종의 면류관, 섬김의 면류관, 사랑의 면류관, 봉사의 면류관, 긍휼의 면류관, 온유의 면류관, 나눔의 면류관, 열정의 면류관, 가르침의 면류관, 영혼살림의 면류관, 따뜻함의 면류관, 순수함의 면류관, 꿈을 이룸의 면류관, 진리를 사모함의 면류관... 그렇다면 이러한 면류관 중에 나는 과연 어떠한 면류관을 받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자. 

 

8. 나오며

  요한계시록에 보면 이러한 말씀이다.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3:10)" 이는 빌라델비아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그 교회 성도들 중에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고 인내로서 그 말씀을 지켜낸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이미 어떤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그것을 빼앗기기 않도록 하라고 주님이 말씀하셨다. 그렇다. 천국에 갔을 때에에 우리가 쓸 면류관은 절대 갑자기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다 이 땅에서 살아낸 흔적을 따라 주님께서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 성도들 중에 그가 게으르고 나태하고 불충성했는데도 천국에서 면류관을 받아쓸 리는 없을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면류관은 우리가 이 땅에서 충성한 만큼, 그리고 우리가 수고한 만큼, 그리고 우리가 인내해서 맡은 일을 완수한 만큼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주님께서 나를 보시고 "너는 나에게 소망이었고, 너는 내 기쁨이었으며, 너는 내 자랑이었다"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그러한 자에게 주님께서 면류관을 씌워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자에게도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이라고 했다(딤후4:8). 그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이 땅에서 정말로 충성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목숨을 걸고 신앙의 지조를 지켜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연 지금 어떠한가? 과연 나는 천국에서 면류관을 받을 만한 합당한 자인가? 만약 그것이 지금까지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부터라도 다시 시작해보자. 그래서 천국에서 주님이 주신 면류관을 감격적으로 받아쓰는 영광스러운 성도가 되어보자. 건투를 빈다. 

 

2021년 08월 01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회개와 천국복음(07) 구원에 있어서 행위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약2:20~26)_2020-07-28(화)

https://youtu.be/5ii0UAL_etQ  [혹은 https://tv.naver.com/v/14998914  ]

 

 

1. 구원의 필수조건은 무엇인가요?

  구원의 필수조건은 "믿음과 회개"입니다(막1:15).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을 믿은 후부터 성도는 날마다 회개하여 성결한 삶을 살다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2. 왜 행위들이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는 것인가요?

  행위들이 구원이 조건이 되어버리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첫째, 얼마만큼 행위들을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으므로 구원이 요원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믿음과 회개가 부족할 경우, 행함으로서 그것들의 부족한 면을 메우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행위를 많이 한 사람은 자신의 행함(자기의 의)를 드러내어 자랑하게 되고, 행함이 없는 자를 비난하거나 멸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믿는 자들의 구원에 있어서 행위는 왜 염두해 두어야 하는 것인가요?

  믿는 자들이 구원을 받는 데에 행위가 구원에 전혀 상관이 없다고 딱 잘라서 말할 수는 없습니다(약2:14). 하지만 행위를 구원으로 조건이라고 단정하고 말해서는 아니 됩니다. 왜냐하면 눅23장에 나오는 한 편 강도는 행위가 없었어도 그날 낙원(천국)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손치더라도 우리는 행위를 무시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야고보 장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했고(약2:26), 그러한 믿음은 결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약2:14). 그렇다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것을 언급하고 있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는 야고보서와 충돌되는 것이 아닌가요? 얼핏 보기에는 그렇게 보이겠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둘은 바라보는 시점이 약간 다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가 시작으로서의 칭의를 말하고 있다면, 야고보서는 믿음생활을 끝마칠 무렵 인생을 뒤돌아볼 때에 말하는 칭의 곧 완성단계에서의 칭의를 말하고 있기 때무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은 믿음이 있었다고 말은 하지만 인생의 말기에 행함의 열매들이 그에게서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사실 헛 것인 것이 분명합니다. 고로 야고보서는 마무리단계로서의 칭의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칭의를 말하는 기준점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는 처음 출발점을 가리키고 있다면, 야고보서는 마지막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4. 믿는 자들의 구원에 있어서 행위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구원에 있어서 믿는 성도의 행위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요? 그것은 크게 3가지 정도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째, 성도에게 있어서 행위는 나 자신이 구원을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가늠케 해주는 척도(바로비터)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행위의 열매들은 자신이 지금 온전한 믿음과 회개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척도의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 장로는 행위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약2:14)",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

  둘째, 성도에게 있어서 행위는 심판의 기준이 되므로 나로 하여금 언제나 심판을 대비하게 도와주는 것이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날 심판받는 기준은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우리의 행위들입니다(계20:12,22:12). 각자 자신의 행위를 따라(행위책에 기록되어 있는대로) 각자 심판을 받는 것이지 믿음대로 심판을 받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자신에게 믿음에 따르는 열매로서의 행위들이 보이지 않을 때에, 그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그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 바로 행위들입니다. 그럼, 이러한 행위들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도덕법으로서 "십계명"입니다. 구약의 의식법(절기법, 음식법, 제사법, 성결법)은 이미 예수께서 완성하심으로 폐기되었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지켜야 할 법으로서 천국헌법은 도덕법인 십계명뿐입니다. 십계명법은 마음과 말과 행동을 규정하고 있는 법이었는데, 예수께서 오셔서는 행동의 법까지 마음의 법으로서 확장시키셨습니다. 즉 마음으로 미워하며 살인죄요, 마음의 간음해도 간음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믿음을 따라 심판받을 자처럼 살 것이 아니라 십계명법에 따라 심판받을 자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마25장에 보면, 양과 염소의 심판의 비유가 나오는데, 이때 영영한 불의 형벌에 들어갈 자는 왼편에 있는 자들로서 그들은 말만 하고 행동에 옮긴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마25:41~46). 

  셋째, 마지막으로 성도에게 있어서 행위는 만약 그가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가 된다면 천국에서 상급이 되기 때문에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천국에 들어가서 받게 될 상급은 크게 3가지인데 그것은 "살 집(저택)"(요14:1~2)과 "면류관"(딤후4:7~8)과 자기를 섬겨줄 "천사들"(히1:14)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급은 끝없는 시간 안에서 영원히 주어질 것이기에, 우리는 마치 상을 얻기 위해 달려가는 자처럼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언제나 자신도 "하나님이 위에서 주실 부름의 상을 위해 계속해서 달려가고 있다(빌3:12~14)"고 하였으며,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는 "너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아니할 줄 안다(고전15:59)"고 분명히 가르쳐주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오시면 상이 있을 것입니다(계22:12). 그러므로 행위들는 천국에 들어갔을 경우에는 그것이 상으로 도로받을 것들이 되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5. 바울은 구원의 과정을 마치 무엇과 같다고 비유하였나요?

  바울은 구원의 과정을 마치 경주자로 비유했습니다(고전9:24~27, 빌3:12~14, 딤후4:7~8). 그는 성도들에게 상얻기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경주자라고 했습니다. 고로 오늘날 우리가 "나는 상을 얻기 위해 신앙생활을 한다"는 말은 지극히 정상적인 말이며 지극히 온전한 구원관의 고백인 것입니다. 성도들 중에는 "나는 천국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굳이 부지런히 봉사하고 헌금할 필교가 있었어? 그런 것은 천국에서 받지 않으면 되지 뭐!"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는 마치 상을 얻는 것을 구원얻는 것처럼 생각하며 달려가야 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받을 상은 영원무궁토록 내가 누릴 축복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020년 07월 28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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