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26(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예레미야강해(18)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가 왜 게헨나(지옥)로 불리게 되었는가?(렘19:1~15)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gVKJGafqtMw [또는 https://tv.naver.com/v/33751102]

 

1. 들어가며

  예레미야는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너무너 필요하고 중요한 말씀이 가득하다. 특히 종말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을 앞두고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를 예레미야는 저미어오는 가슴으로 전한다. 그런데 우리는 예레미야서를 통하여 천국과 지옥의 실제모습이 어디에서 연유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말씀을 접할 수가 있다. 그것은 힌놈의 골짜기에 관한 예언에 나온다. 우리는 예레미야서 7장과 19장 그리고 32장에서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를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는 말은 어떤 것이며, 이것이 신약의 예수님께서 지옥에 관해 말씀하신 것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구약의 모든 말씀은 신약의 모형이자 장차 도래할 새로운 세상에 대한 모형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 예레미야 19장은 대체 어떤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가?

  예레미야 19장은 예레미야의 본론부(2~51장) 가운데 제1부 12가지 단편예언(2~25장) 가운데 제8예언에 속한다. 제8예언은 18장부터 20장까지의 말씀인데, 여기에는 토기장이가 그릇을 빚고 있는 장면과 옹기 파괴를 통하여 온 우주와 인류역사에 관해 절대주권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그 중에서 예레미야 19장은 옹기파쇄의 장소로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더러 백성들의 어른들과 제사장들 중의 어른 몇 명을 데리고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서 거기에서 토기장이의 옹기를 깨뜨릴 것을 말씀하고 있는 부분이다. 결국 예레미야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서 토기장의 옹기를 깨뜨리면서 이렇게 예언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셨다.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 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와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읍을 무너뜨리리니 도벳에 매장할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하리라"(렘19:11).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옹기그릇을 굳이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가서 깨뜨리라고 한 것일까?

 

3.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는 어떤 골짜기인가?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는 여호수아가 장차 정복할 예루살렘의 남쪽과 서쪽의 골짜기를 언급할 때 처음으로 등장한다(수15:8, 18:16). 그런데 남유다의 12대 아하스 왕과 14대 므낫세 왕이 이곳에서 자신의 자식을 불사르는 제사를 드리게 된다(대하28:3, 33:6). 그때 그들이 섬겼던 신은 암몬자손이 섬기던 '몰록'(말곰, 밀곰)이라는 신이었다(왕상11:5, 11:7). 그런데 이것은 인신제사로서 율법에서 가장 강력하게 금지하는 제사였다(레18:21, 신18:10). 그런데 다윗의 후손이 이러한 죄를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므낫세의 손자였던 요시야 왕(남유다 10대 왕)이 이것이 율법에 어긋나는 행위라는 것을 알고 그 장소를 더럽혀 그곳을 쓰레기 소각장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는 다시는 그곳에서 자기자식을 몰록신에 바치지 못하게 하고자 원천적으로 그 길을 차단한 것이었다(왕하23:10). 하지만 남유다의 범죄를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의 옹기를 사서 그곳으로 가서 그곳에서 옹기그릇을 깨뜨리면서 남유다가 이렇게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선포했던 것이다. 

 

4. 왜 하나님께서는 남유다의 멸망을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가서 상징적으로 보여주라고 하신 것인가?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남유다의 멸망의 모습을 흰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가서 시현하도록 시켰는가 하는 것이다. 사실 성경에 등장하는 지명이나 인명 하나하나에도 다 어떤 뜻이 들어있다. 하물며, 남유다의 멸망의 모습을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시현하도록 명령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갖고 있었던 어떤 의도는 없었을까? 아니다. 분명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끝내 우상과 다른 신들을 섬기는 자들이 장차 들어갈 영원한 멸망의 처소 곧 지옥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시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요시야 왕 이후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측면에서 장차 불신자들과 범죄한 자들이 들어가게 될 지옥이 어떤 곳인지를 충분히 연상시기에 충분한 장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첫째, 그곳은 꺼지지 않는 유황 불이 타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흰놈의 아들의 골짜기는 예루살렘의 남쪽과 서쪽에 위치한 골짜기로서, 매일 쓰레기들이 태워지는 장소가 되었다. 그러므로 쓰레기 소각장으로 사용되던 이곳은 불과 유황이 계속해서 타고 있는 장소로서 영락없이 지옥을 연상시켜주기에 충분했다. 

  둘째, 그곳은 구더기가 시체를 파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그곳은 도저히 맡을 수 없는 심한 악취가 진동하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2023년 02월 26일(주일)

정병진목사

마태복음에 보면 "거기서 슬피우며 이를 갈리라"는 말이 딱 6번 나온다. 그런데 다 똑같은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지옥이라도 다 똑같은 지옥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떤 곳은 그냥 '바깥'이고 또 다른 곳은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이지만 형벌 받는 곳도 있다. 그리고 불과 유황이 타고 장소도 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러한 곳에 들어가는가? 우리는 절대 이러한 곳에 가지 말아야 한다. 2022-03-06(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천국복음(14) 슬피 울며 이를 갈 자들은 누구며 그들은 어디로 가는가?(마24:45~5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_Wsbzi6Hrw4 [혹은 https://tv.naver.com/v/25536855 ]

 

1. 들어가며

  천국에 들어가는 자는 모두가 다 왕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인가? 과거에는 다들 그렇게 알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 사실로 밝혀졌다. 성경의 기록과 그곳에 갔다가 오신 분들의 간증을 살펴보면, 천국에도 신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이것은 나중에 자세히 다루게 될 것이다). 그런데 지옥도 마찬가지다. 지옥에 떨어지는 자가 다같이 똑같은 지옥으로 떨어져 고통받는 것이 아닌 것이다. 죄에 따라서 그들이 들어가는 지옥도 각각 다르다. '지옥'이라는 개념을 단순히 그냥 유황 불못이라고만 생각하면 안 된다. 지옥의 정확한 개념은 어둠이 가득한 장소로서, 빛되신 주님의 임재가 더 이상 없는 곳이 곧 지옥인 것이다. 그러므로 지옥에도 차등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곳에 들어가는 지옥의 장소가 각각 다른 것이다. 최소한 성경이 말해 주고 있는 지옥은 세 등급이 있다. 그리고 세부 항목으로 들어가면, 더 많은 종류의 지옥이 있다. 그런데 한 가지 공통적인 사실은 그곳이 어떤 등급의 지옥이든지 상관없이 그곳에 들어가는 자는 반드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지옥으로 쫒겨났다든지 아니면 그곳에 떨어지게 되었다든지, 그러한 사람이 그곳에서 받게 될 고통은 대체 어떤 것이며, 그들이 들어가게 되는 지옥의 장소가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우리 믿는 이들은 죄들을 회개하고 주님께 충성하여서 꼭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2. 지옥에는 어떤 등급이 있는가?

  하나님이 임재가 없는 곳, 그곳이 바로 지옥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옥에는 어떤 등급이 있는가? 성경에 보니, 지옥에 떨어지는 자가 느끼는 공통적인 체험은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간다'는 것이다. 마태복음에서 이 표현은 총 6번 나온다(마8:1~12, 마25:28~30, 마22:11~13, 마24:48~51, 마13:41~43, 47~50). 그리고 누가복음에서 1번 더 나온다(눅13:28). 그런데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갈게 되리라)'는 표현만 나오지 않을 뿐 그와 똑같은 상태를 표현하고 있는 부분은 더 있다. 그렇지만 오늘은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지옥의 등급이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이 표현이 쓰인 성경 말씀을 나눠 보면 크게 세 장소가 있다. 첫째는 그냥 '바깥'이라는 장소다. 여기서 '바깥'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엨소'라는 단어인데, 이것은 '바깥' 혹은 '외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둘째는 '바깥 어두운 데'라고 번역된 장소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을 보면, '더 바깥쪽의 어두움 속'이라고 해야 옳다. 셋째는 바깥 어두운 장소의 맨 바깥 아래쪽에 위치한 곳으로써 유황불이 타고 있는 장소가 있다. 이곳은 유황 냄새가 가득하고 항상 불이 타고 있다. 그렇지만 매우 어둡다. 그래서 성경은 이곳을 '영영한(영원한) 불'이 타는 장소라고 하든지, 아니면 '풀무불(불의 구덩이)'이라고 하든지, 아니면 '불과 유황이 타는 못'(불못) 혹은 '게헨나(불타고 있는 쓰레기 소각장=지옥)'라고 표현하고 있다. 

 

3. 성밖에는 누가 남겨지거나 쫓겨나게 되는가?

  지옥 중에서도 그래도 고통이 가장 덜한 곳은 '밖(바깥)'이라는 장소다. 여기서 '바깥'이라 함은 새 예루살렘성의 바로 바깥쪽을 가리킨다. 이곳에는 새 예루살렘성 안으로 들어갈 자격을 갖추었으나,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해서 천국에서 밀려난 자들이 간다. 그러므로 이곳에서는 거듭나지 아니한 불신자들을 찾아볼 수는 없다. 이곳에 있는 사람은 과거에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기는 했지만 그의 이름이 지워진 사람이다. 

  그럼, 성 바깥에는 대체로 누가 가는가? 성경의 말씀에 따르면, 여기에는 열 처녀 중에서 미련한 다섯 처녀가 가는 장소요 그들이 남겨지는 장소다(마25:10). 여기서 미련한 다섯 처녀란, 그가 믿는 자로서 신랑되신 예수님을 마중 나가기는 하였지만, 충분한 기름을 준비하지 못해서 결국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여, 혼인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를 가리킨다. 여기서 '기름'의 용도는 신랑을 마중 나가기 위한 것으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신랑과의 만남을 위해 자신의 결혼 준비물로서 들고 가야 할 것임을 알 수 있다. 모든 성도는 죽기 전까지 이것을 준비해야 한다. 만약 이것을 준비하지 못한 자는 그가 성도라 할지라도 그날 성밖으로 밀려나고 말 것이다. 

 

4. '바깥 어두운 데'는 어떤 장소이며 누가 들어가게 되는가?

  좀 전에도 살펴보았지만 성경에서 '바깥 어두운 곳'이란 '더 바깥쪽의 어두움 안'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곳은 그냥 단순히 성 바깥이라는 표현보다 더 고통받는 곳이다. 이곳은 그냥 바깥보다 더 어둠이 있는 곳이며, 예루살렘 성전으로부터 더 멀리 떨어진 곳이다. 마찬가지로 '바깥'이라는 장소와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역시 과거에 생명책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었으나, 그 이름이 지워진 자들이 가는 장소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과거에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었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러니까 제대로 신앙생활을 했다면 새 예루살렘성 안으로 들어갈 뻔했던 사람이었지만 그렇게 못했기에 새 예루살렘성으로부터 쫓겨난 자들 아니면 밀려난 자들이 가는 장소인 것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슬피 울며 이를 간다는 말은 자신이 살아 생전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던 것을 한탄하는 것을 표현한다.

  그럼, 누가 이 장소에 들어가게 되는가? 성경에 따르면, 첫째는 이미 언약(약속)을 받았지만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고 회개하기를 거부했던 유대인들이 가는 장소다(마8:11~12). 그때가 되면 동쪽과 서쪽으로부터 많은 이방인들이 새 예루살렘성의 문을 통과하여 그 성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영광의 광장 안으로 들어가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본래 왕국의 아들들은 오히려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에게 먼저 주어진 기회를 헌신짝처럼 발로 차버렸기 때문이다. 둘째는 앞의 표현과 조금은 비슷하지만, 비유로서 먼저 초청을 받았으나 실제 혼인 잔치의 초청을 거부한 자들이 가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마22:1~10). 이 이야기는 마태복음 22장의 왕의 혼인 잔치의 비유들 중에 첫 번째 비유에 해당한다. 그럼 이 비유에서는 누가 바깥 어두운 데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하는가? 그것은 예수님으로부터 혼인 잔치의 초청을 받고도 거절한 채 세상 일에만 몰두한 자들이다. 그들은 혼인 잔치에 초대받았는데도, 밭을 사러 가고, 사업하러 가고, 장가가는 일만을 계속해서 몰두했기 때문이다. 셋째는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이 가는 장소다(마25:26~30). 왜냐하면 그도 역시 주님의 종이긴 하였지만 그는 악하였고 게을렀으며, 주인에게 쓸모없는 종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찌하든지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한다. 그분은 선한 분이요 자비로운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에게 달란트를 맡겨 주신 그분의 기대에 부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죽어서 더 바깥쪽의 어두움 안으로 쫓겨나고 말 것이다. 

 

5. 바깥 어두운 데는 어떤 종류가 있는가?

  그렇다면, '더 바깥쪽의 어두움 안'에는 어떤 장소들이 있는가? 성경에 나오는 표현만 빌리자면, 그곳은 세 군데 정도로 확인이 된다.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은 장소들이 있을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성경에는 세 장소가 나온다. 첫째, 그냥 '더 바깥쪽의 어두움 안'이 있다(마8:11~12, 22:1~10, 25:26~30). 이것은 방금 앞에서 언급한 바대로, 유대인들이나 먼저 초청을 받았으나 거부한 자들이나 한 달란트 받았던 악하고 게으르고 쓸모없는 종이 들어가게 된다. 둘째, 제한받는 '더 바깥쪽의 어두움 안'이 있다(마22:11~13). 이곳에는 누가 들어가는가? 그것은 예복을 입지도 않았는데 새 예루살렘성 안에서 진행되는 혼인 잔치에 들어간 사람이다. 그런데 이들의 모습을 보니 손발이 묶여 있다. 왜 그런가? 이들은 죽은 후에 이미 심판을 받아 성 바깥으로 쫓겨난 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성 안의 혼인 잔치에 나아간 것이다. 왜냐하면 새 예루살렘성의 문들은 항상 열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열려 있는 문을 통과하여 성 안의 영광의 광장까지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불법이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겁없이 그러한 행동을 한 것이다. 그러자 왕되신 주님께서 그의 손과 발을 묶어서 더 바깥쪽의 어둠 안의 제한받는 장소에 던져버린 것이다. 셋째, 형벌을 받는 '더 바깥쪽의 어두움 안'이 있다(마24:50~51). 이곳에는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악한 종이 들어간다. 그는 하늘에서부터 이미 자신의 사명을 받고 이 땅에 온 자다. 그런데도 그는 사명을 멀리한 채 세상 술친구들과 짝하여 먹고 마시는 일을 했다. 더욱이 믿음으로 살려는 동료 종들을 때렸던 자다. 그러자 주님께서도 이러한 자들은 엄히 때리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외식하는 자(위선자)가 받는 벌을 받게 하신다고 하셨다. 그는 더 바깥쪽의 어두움 안에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그는 주인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도 주의 일을 미룬 채 세상을 즐기는 일에 취하였기 때문이다. 

 

6. 영영한 불이나 불못, 불구덩이에는 누가 들어가는가?

  이제는 마지막으로 지옥의 맨 바깥 부분으로서, 사람이 죽으면 밑으로 뚝 떨어지면서 들어가는 불타는 장소가 있다. 이곳에 타오르는 불을 마태복음에서는 '풀무불(불의 구덩이)'이라고도 하고(마13:42,50), '영영한 불'이라고 한다(마25:41).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는 이곳을 '유황이 타는 불타는 연못(계21:8)' 곧 '유황 불못'이라고 한다. 이곳에 들어간 자는 거기에서 아주 끔찍한 형벌을 받는다. 그리하여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럼 대체 누가 이러한 끔찍한 장소에 들어가게 되는가? 첫째, 다른 형제를 실족하게 하는 자나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들어간다(마13:41~43). 이들은 아마도 교회 안에 속해 있기는 하였지만 가라지였을 것이다. 그렇다. 남을 실족하게 하거나 하나님의 법을 깨뜨리고 멸시하는 자는 반드시 불못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 둘째, 의인들 중에서 악인들이 간다(마13:47~50). 주님은 마지막 날이 되면 의인들이라 지칭되는 성도들 중에서 악인을 갈라낼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있어서 무가치한 사람들이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골라 먼저 불못에 보내는 것이다. 셋째,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 등장하는 '염소들'이 이곳에 들어갈 것이다(마25:40~46). 이는 불타는 이곳에 떨어져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넷째, 주님을 믿었지만 비겁하게 주님을 부인한 자와 믿지 않는 자와 가증한 자들 그리고 십계명을 어겨서 살인하고, 간음하고, 점치고, 우상 숭배하고, 거짓말하는 자들이 이곳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계21:8).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섯째, 짐승(적그리스도)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들의 이마 혹은 손에 표를 받게 되는 자들이 이곳에 들어갈 것이다(계14:9~11). 그곳은 불과 유황으로 인한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는 장소다. 

 

7. 나오며

  누가 과연 그날 심판을 받은 후에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인가? 그들은 상당수가 불신자이겠지만 그들 중에는 신자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왜냐하면 믿는 자라 할지라도 그의 이름이 하늘에 있는 생명책에서 지워지게 되면 그냥 성 밖으로 내쫓겨 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가 되었으면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혹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해가 지기 전에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하늘에 있는 행위책에 자신의 죄목이 기록되지 아니 한다. 그리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인데도 행하지 않고 게을러서 일하지 아니하는 자는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믿고도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반드시 더 바깥쪽 어두움 안으로 쫓겨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는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아무 이상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믿는 자라도 우상을 숭배하면 그도 불못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우상 숭배자를 비롯하여 음행하는 자, 살인하는 자, 거짓말하는 자도 역시 불타는 지옥이 그의 최종 운명의 장소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달란트가 주어져 있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받을 기업을 준비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천국에서 누릴 신분과 상을 준비하게끔 우리에게 주신 위대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천국에서도 들어가는 자의 신분과 상이 각각 다르듯이, 지옥에서도 죄의 경중의 차이에 따라 지옥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불타는 지옥에 결단코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천국에 들어가서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물려받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날마다 회개하라. 그리고 주님께서 자기에게 맡겨 주신 일에 순종하고 충성해야 한다. 

 

 

2022년 03월 06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종말신앙(14) 새 예루살렘 성 바깥은 지옥인가(마25:1~13)_2021-09-01(수)

아침묵상입니다.https://youtu.be/Nhob-SNkymo  [혹은 https://tv.naver.com/v/22220770  ]

 

1. 천국 곧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누가 들어가는 곳인가?

  천국 곧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의 비유를 보면, 신랑의 오심을 잘 준비했던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들어간다(마25:10). 그런데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간 처녀를 요한계시록에서는 '어린양의 신부'라고 표현하고 있다(계21:2,9). 다시 말해서, 열 처녀의 비유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혼인잔치는 바로 그 성 안에서 진행된다. 그러므로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7년 대환난 기간 중에 공중에서 펼쳐진다는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신부가 신랑의 집인 거룩한 성에 들어갈 때에 혼인잔치가 진행되는 것이며, 그때 성에 들어간 처녀의 신분이 어린양의 신부이자 어린양의 아내로 변하는 것이다(계21:9).

 

2. 예루살렘 성 안에는 누가 들어갈 수 없는가?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의 비유를 보면, 예루살렘 성 안에는 미련한 다섯 처녀가 못 들어가고 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보니,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성 밖에 남겨진 자들이 누구인가를 보니 첫째, 회개하지 못해 자신의 죄를 씻음받지 못한 자들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성 밖에 있다(계22:15). 그리고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자들도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계21:27). 그렇다. 성 밖은 누가 들어가는가? 죄를 지었으나 자기를 두루마기를 빨지 못해서 옷이 더럽힌 자들이 들어가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고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남겨진 것이다.

 

3. 성 밖은 천국인가?

  성 밖은 결코 천국이 아니다. 성경에서는 오직 새 예루살렘 성만을 천국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마4:17, 계21:14~15). 그곳에는 눈물도, 사망도, 애통하는 것도, 곡하는 것도, 아픈 것도 다시 있지 않다(계21:4).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자기의 더럽혀진 두루마기를 빨아야 하는 것이다. 죄를 남김없이 회개해서 더러운 옷을 예수님의 피로 씻어내야 들어가는 곳이 거룩한 성인 것이다.

  그렇다면 미련한 다섯 처녀가 들어가지 못하고 남겨진 '성 밖'이란 대체 어떤 곳인가? 주님께서는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 그것을 사러 간 동안에 성 밖으로 나오셔서 여분의 기름까지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함께 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주여 주여"하면서 열어달라고 외치는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들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성 밖에 남겨진 처녀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마25:12)" 그렇다. 성 밖은 주님의 임재가 없는 장소다. 주님의 임재를 상실한 곳이 바로 성 밖인 것이다. 그것도 "영원히". 그렇다고 이곳을 천국의 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왜냐하면 주님의 임재가 없는 곳을 어찌 천국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예수님께서 서머나 교회에게 주신 말씀에 보면, 이기는 자라야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한다고 하셨다(계2:7). 그런데 성 밖은 둘째 사망이 있는 곳이다. 이기는 자만 둘째 사망을 받지 아니하고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둘째 사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 사망'이 육체와 영혼이 영원히 분리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둘째 사망'이란 하나님와 우리 사이가 영원히 분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임재를 잃어버린 성 밖을 천국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곳은 실질적인 '지옥'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4. 주님께서는 성 밖에는 어떤 종류가 있다고 말씀하셨는가?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성 밖에는 3종류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첫째, 열 처녀의 비유에서는 '문 밖'(곧 영적으로 새 예루살렘 성의 12진주문 밖)이라는 장소가 나온다(마25:10). 그리고 둘째, 달란트의 비유에서는 '바깥 어두운 데'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장소가 있다(마25:30). 마태복음 24:51에 보면, 슬피 울며 이빨을 가는 장소는 또한 채찍질을 당하고 외식하는 자가 벌받는 장소라고 나온다. 그렇다면 이곳을 '천국'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순 없다. 이곳은 지옥의 한 켠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곳은 형벌 받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는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이라고 장소가 나온다(마25:41). 이곳이야말로 불과 유황이 타는 불못임이 정말 분명하다. 고로 우리는 성밖은 지옥이라고 말해야 하고, 다만 지옥에도 차등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주님의 임재가 없는 곳, 형벌을 받는 곳, 영원한 불이 타오르는 곳. 왜냐하면 이처럼 지옥도 다양한 장소가 있는 것이다. 

 

5. 어떻게 하면 우리도 장차 거룩한 성 안에 들어갈 수 있는가?

  천성에 들어가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다. 예수님을 믿고 끝까지 신앙의 지조를 지킬 뿐만 아니라 철저히 회개하는 것이다(계22:14). 회개 없이는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성 밖에 남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회개하지 않은 자는 형벌 받는 장소로 쫓김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불과 유황이 타는 못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어떤 형식이든지 그곳은 한 번 그곳으로 떨어지면 결단코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장소다. 고로 우리는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철저한 회개생활만이 천성에 입성하는 온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룩한 성에 들어가더라도 거기에는 왕노릇하는 자도 있고 섬기는 자도 있다(계21:24, 마20:26~27). 그러나 천국에서의 신분이나 지위는 이 세상에서의 상하관계, 주종관계와는 완전히 다르다. 비굴함이나 수치심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곳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에 보다 더 충성해야 한다. 착하고 충성된 자라야 열 고을의 권세도 차지할 수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눅19:17). 날마다 회개하라. 그리고 죽기까지 충성하자. 이것이 우리의 미래를 가장 잘 대비하는 방법인 것이다. 

 

2021년 09월 01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종말신앙(13) 새 예루살렘 성 바깥은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가?(마25:1~13)_2021-08-31(화)

https://youtu.be/Pk6ZjtU3TxA  [혹은  https://tv.naver.com/v/22220313 ]

 

1. 새 하늘과 새 땅에 있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누가 들어갈 수 있는가?

  주님의 재림 이후 백보좌 심판이 있을 것이다(계20:11~15). 그리고 나면 온 우주는 불에 타 없어질 것이다(벧후3:10~12). 그러면 하늘에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지게 된다(벧후3:13,계21:1).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에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내려온다(계21:2). 그렇다면 그곳에 누가 들어가게 되는가? 요한계시록 21~22장에 보면, 그곳에는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가 들어가는 것이다(계19:7~9, 21:2, 9). 그리고 그때 어린 양의 아내가 될 사람은 자기의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 곧 어린 양의 피에 자기의 죄를 회개하여 자기들의 옷을 희게하는 자들이 된다. 그러므로 자기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지 않는 자는 거룩한 성에 들어갈 수가 없다. 

 

2. 자기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 자는 어디에 있게 되는가?

  부활 승천하신 예수께서는 자기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지 않는 자는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없으며, 그들은 성 밖에 있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해 주셨다(계22:14~15). 왜냐하면 자기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지 않는 자는 생명책에 그 이름이 이미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라도 그 이름이 지워질 것이기 때문이며, 그러한 자는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계21:27). 

계22:14-15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15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계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그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3. 성 밖은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가?

  부활 승천하셔서 보좌에 앉아 계신 예수께서는 자기의 두루마기를 빠는 자라야 12진주문을 통과하여 성 안에 들어갈 권세가 주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계21:14). 그런데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던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께서는 회개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마4:17). 이 두 말씀을 합해서 보면, 첫째, 회개하는 자라야 새 예루살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며, 둘째, 천국은 곧 새 예루살렘 성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 성 밖은 천국이 아니다. 성 밖은 조금 있다가 살펴보겠지만 혼인 잔치에 참여하지 못한 자들이 가는 곳이다. 

 

4.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 성은 각각 어떻게 다른가?

  '천국'이라는 단어는 디모데후서 4:18을 제외하고는 오직 마태복음에서만 나오는 특별한 단어다. '천국'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보면, '하늘들의 왕국'을 가리킨다. 즉 장소적으로 하늘에 있는 왕국을 가리키는 것이다. 여기서 '왕국(헬, 바실레이아)'은 왕이 다스리는 영역, 왕의 다스림이 있는 곳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천국이란 하늘에 있는 장소로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님의 완전한 다스림이 있는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용어도 있다. 여기서 '나라'라는 용어도 사실은 '왕국'이라는 단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왕국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곳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도 주 예수께서 왕으로 다스린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날 바리새인들이 물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이라고 대답하셨다. 그렇다면,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디인가? 그곳은 예수님의 재림 이후 셋째 하늘에 펼쳐지게 될 장소다. 거기의 한 중심에 '새 예루살렘 성'이 있다. 그러므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천국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디인가? 그곳은 새 예루살렘 성 바깥을 가리키는데, 이곳은 죄를 지었으나 철저히 회개하지 못한 자가 가게 되는 장소다(계22:15). 그리고 '새 예루살렘 성'은 새 하늘과 새 땅 위에 내려온 하나님의 집과 같은 성이다. 거룩한 장소다. 예수님의 집인 것이다. 이곳에는 오직 거룩한 어린 양의 신부들만이 들어갈 수 있다. 

 

5. 열 처녀의 비유에서 '천국'은 어디인가?

  우리는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첫 번째 비유인 '열 처녀의 비유'에서 열 처녀가 둘로 갈라지는 것을 본다. 하나는 문 밖에 남겨진 미련한 다섯 처녀들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문 안으로 들어가서 혼인 잔치에 들어가게 되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이다. 그런데 이 열 처녀의 비유를 가지고 서사라 목사는 '열 처녀'가 천국을 가리킨다고 말하면서, 미련한 다섯 처녀도 열 처녀에 들어 있으니 다섯 처녀가 남겨진 장소도 천국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레 성 밖도 천국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틀린 해석이다. 그녀가 보았던 것은 성 안에 있는 사람들과 성 밖의 사람들이었다. 그것까지는 성경에 나와 있으므로 제대로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성 밖도 천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은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 해석하는 근거는 천국이 마치 열 처녀와 같다고 했다는 것을 두고 말하지만 그것은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첫째, 문장을 잘못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5:1의 말씀은 열 처녀가 천국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누가 과연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지를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열 처녀가 천국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열 처녀가 신랑을 맞으러 나가는 상황이 천국의 어떤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곧 처녀라도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되어야만 성 안에 곧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비유다. 그리고 둘째, 주님께서 모르겠다고 외면당한 미련한 다섯 처녀를 천국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천국은 주님으로부터 외면을 당한 사람이 있는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열 처녀는 대체 누구인가? 그리고 그들이 지녔던 등과 기름은 무엇을 의미하며, 혼인 잔치 집의 문은 대체 누구의 집의 문인가? 신부 집인가 아니면 신랑 집인가? 그것은 내일 좀 더 살펴보도록 하자. 

 

2021년 08월 31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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