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59) 복음과 예수님을 모르게 되면 일어나게 되는 일들(행14:1~7,19)_2022-10-25(화)

https://youtu.be/AyMPLOGBEF4  [혹은 https://tv.naver.com/v/30434626 ]

 

1. 유대인들은 왜 바울 일행이 복음전하는 것을 싫어했는가?

  유대인들은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고 그들을 싫어했다. 한편으로는 시기 질투했으며 또 한편으로는 분노하였다. 왜냐하면 첫째, 유대인들은 바울과 바나바가 율법을 모독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바울과 바나바가 모세의 율법으로서는 의롭다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행13:39). 둘째, 유대인들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있어서 오직 하나님은 유일한 한 분 하나님 여호와 뿐이신데, 바울과 바나바는 하나님에게 아들이 있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행13:23,33).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보기에 바울과 바나바는 신성을 모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그들을 없애버려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2. 1차 전도여행 중에 바울과 바나바가 전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1차 전도여행의 핵심 지역은 비시디아의 안디옥이었다. 그곳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전했던 것은 딱 2가지였다. 하나는 '복음'이었고 또 하나는 '예수님'이었다. 첫째, 바울 일행은 오직 '복음'을 전했다. 여기서 '복음'이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에게 주어진 복된 소식이라는 뜻으로, 율법으로서는 도무지 얻을 수 없는 칭의와 죄사함 그리고 영생을 전했기 때문이다(행13:39,38,48). 다윗의 씨로서 약속하신 자손인 예수님으로 인하여(행13:23),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하심을 얻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전했던 것이다. 사실 이것은 율법으로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다시 말해, 율법도 하나님의 말씀이기는 하지만 율법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즉 율법이란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게 해 주는 법으로서, 사람을 정죄하는 법이지 죄사함을 주는 법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해 주어,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초등 교사)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율법이 구원을 주는 것으로 알고 그것을 신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자신도 복음을 알기 전까지는 율법을 최고로 여겼고, 율법을 모르는 자는 저주를 받을 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복음을 깨닫고 보니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바울 일행은 오직 '예수님'을 전했다. 예수님은 다윗의 씨로서 약속된 메시야라고 전했다(행13:23).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행13:33). 이는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것을 전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직 한 분 뿐이며 그분은 오직 '여호와'라고 믿고 있던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한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으면서도 그것들이 오직 하나님의 아들로 오실 예수님을 증언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요5:39). 

 

3. 복음과 예수님을 몰랐던 유대인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복음과 예수님을 몰랐던 유대인들은 복음과 예수님만을 전하는 바울을 싫어했고 결국에는 죽이려고까지 하였다. 먼저 첫째로, 비디시아 안디옥에서는 경건한 귀부인들과 도시의 통치자들을 동원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였다(행13:50). 그곳에서 바울 일행이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한사코 방해한 것이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유대인들은 벌써 종교적인 힘과 정치적인 세력을 동원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조직적으로 바울 일행이 복음을 전파하지 못하도록 방해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그 다음 선교지였던 이고니온에서는 이방인들과 도시의 통치자들을 설득하여 사도들을 능욕하였고 돌로 쳐서 죽이려는 계획까지 세웠다(행14:5). 그렇지만 그러한 계획을 간파했던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을 피하여 이고니온을 도망쳐 나왔다. 그리고 루스드라로 향했다. 셋째로, 이어진 선교지였던 루스드라에서는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쫓아온 유대인들이 드디어 바울을 만나 그를 돌로 치고 말았다(행13:19). 그때 바울은 쓰러졌고 그들은 바울이 죽은 줄로 알았다. 그리고 바울의 몸을 성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생명을 거둬가지 않으셨다. 그래서 그곳에서 다시 일어난 바울은 계속해서 또 복음을 전할 수가 있었다. 

 

4. 복음과 예수님을 모르는 자는 주로 어떤 일을 자행하는가?

  복음과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은 놀랍게도 진실로 복음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인다는 것이다. 중세시대만 해도 천주교는 자기들의 교리를 따르지 않는 자들을 핍박하고 고문하고 죽였으니 무려 6천만 명을 죽였다고 한다. 이는 바울이 아직 복음과 예수님을 모를 때에 그가 행했던 것과 비슷한 것이다(행9장). 바울도 그때에는 예수믿는 자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고 때리고 거짓 증언하게 하고 심지어는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았었다(행22:19~20, 26:10~11). 그렇다. 그런데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자들은 대체 누구인가? 그들은 악한 자, 사탄 마귀를 따르는 자들이다(요10:10). 진실된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의 교리를 따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절대 남들을 핍박하거나 죽이거나 하지 않는다. 자기가 핍박받고 죽임을 당했으면 당했지 남을 그렇게 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자신의 교리와 신학을 따르지 않는다고 남을 정죄하고 이단으로 몰아가는 이들이 더러 있다. 그런데 그건 아니다. 우리가 진정 복음과 예수님을 좇는 자들이라면 우리는 교리와 신학을 따라갈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가야 한다. 

 

5. 복음과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복음과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따르지 않고 다른 것을 따라가는 자들을 가만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한사코 자신의 주장만 옳다고 한다. 성경이 과연 누구와 그리고 무엇을 증언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형식적인 교리에 매여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들의 잣대를 가지고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되, 심지어 남을 핍박하고 죽이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고 자행하게 된다. 둘째,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를 놓칠 뿐만 아니라 성경을 보면서도 그것을 깨닫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진리를 사모하는 자는 오직 진리의 말씀인 성경만을 따라간다. 그렇지만 교회의 역사 가운데 결의한 교리나 결정을 진리로 아는 자들은 성경보다 교리나 결의를 더 우위에 놓고 그것으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한다. 그러므로 그런 자들은 진리에 이르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경륜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오직 성경 말씀을 진리의 말씀으로 믿고 따라가야 한다. 그래야 실수를 면할 수 있으며, 잘못된 것을 추구하지 않고 진리만을 따라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2022년 10월 25일(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14)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는 무엇인가?(13)(계5:6~14)_예배와 관련하여(02)_2022-05-13(금)

https://youtu.be/9STBc1dej0M  [혹은 https://tv.naver.com/v/26825471 ]

 

1. 요한계시록 5장에 의하면 예수께서 하나님이신 증거는 무엇인가?

  요한계시록 5장에 의하면, 어린양이신 예수께서 모든 피조물(네 생물들, 24장로들, 천천만만의 천사들, 천상의 피조물)에 의해 찬양과 경배를 받으신다. 천상의 모든 천사들이 노래하는 것을 보니(계5:12), 이는 그들이 주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과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계7:11~12). 고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께서 찬송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계5:11~12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계7:11~12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2. 천국에서 성도들이 드리는 예배와 이 지상에서 드리는 예배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천상에서 드리는 예배는 이 지상에서 드리는 예배와 조금 다르다. 먼저, 천상에서 드리는 예배를 살펴보자. 천상의 예배는 이 지상에서의 예배와는 달리 천사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이들이 주님께 드리는 것은 찬송(새 노래)과 기도다(이것들 중에서 예수께서 재림하시어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되면 더 이상 기도도 드리지 않을 것이지만). 그리고 그 예배의 시작은 엎드려 경배하는(절하는) 것이다. 특히 24장로들처럼 면류관(승리관=스테파노스)을 쓰고 있는 자는 예배드릴 때에 자신이 쓰고 있는 그 면류관을 벗어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던진(드린) 후에 새 노래로 찬송을 드린다. 그런데 지상에서 드리는 예배는 오직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 곧 성도들이 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예배를 드릴 때에 성도들이 주님께 드리는 것은 '찬송'과 '기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물(헌금)'도 드린다. 그러니까 3가지를 주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성도들에게 3가지 은혜를 주신다. 첫째는 말씀(생명의 양식)을 주신다(말씀 선포를 통하여). 둘째는 피와 살을 주신다(성찬식을 통하여). 셋째는 복을 주신다(축도를 통하여). 그렇지만 천국에서 드리는 예배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은 없다. 이미 다 주셨기 때문이요 모든 것을 다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가르칠 필요가 없고, 더 이상 피와 살을 주실 필요가 없다. 그리고 복도 이미 다 받은 상태이기에 더 이상 주실 복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을 때에 예배를 잘 드리자.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배를 보시고 갖가지 종류의 복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3. 천상에서든 지상에서든 예배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엇인가? 

  천상에서 예배를 드리든지 아니면 지상에서 예배를 드리든지 예배드릴 때에 가장 중요한 핵심은 '찬송'을 하는 것이다. 찬송은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예배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추도 예배와 장례 예배도 사실은 예배 형식으로 예배드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 찬송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잘 모른다. 추도 예배와 장례 예배를 하나님께서 결코 안 받으신다는 것을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를 위해 죽은 자를 놓고 예배드리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신다. 이것은 구약도 그랬고 신약도 그랬다. 그러므로 죽은 자의 유가족들과 장례식장에 악한 영이 역사하지 못하도록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곳에서 죽은 자 곧 사자를 위하여 예배드리면 안 된다. 그 예배를 하나님께서 안 받으시기에 악한 영들이 와서 대신 받기 때문이요, 그러면 반드시 그 예배를 드린 자들 중에 누군가는 악한 영을 받게 되고 그 사람에게서 저주가 나타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실 예배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찬송인 것이다. 그러므로 찬송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 건성건성 부르지 말라. 찬송을 마지못해 하는 식으로 하지 말라. 찬송은 감격적으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과 어린양의 이름을 높이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4. 네 생물들과 24장로들이 주 하나님께 어떤 찬송을 올려 드리고 있는가?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쓸 당시(AD.95년경)나 지금이나(2022년) 4생물들과 24장로들이 드리는 예배의 모습은 거의 변함이 없다. 다만 달라진 것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좀 더 많아졌다는 것 정도 뿐이다. 그렇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천상의 존재들은 하나님께 어떤 내용의 찬송을 부르는 것인가?

  첫째,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에게 올려 드리는 찬송부터 살펴보자. 이때 네 생물들은 밤낮 쉬지 않고 찬송하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노래하고 있다(계4:8, 사6:3참조). 이들이 이렇게 찬송하는 것은 이들은 가장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어떠하심 곧 하나님의 속성을 찬송한다는 뜻이다. 특별히 '거룩하다'는 말의 뜻은 그분은 우리 인생들이나 피조물과는 구별되어 있다는 뜻이요, 그분은 깨끗하다(순결하다, 더럽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 이어서 24장로들이 주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 드리는데 그 내용은 그분만이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한데 그 이유는 그분이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이요, 창조된 만물이 하나님의 뜻대로 있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만물이 그분에 의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이다(계4:10~11). 이는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다는 뜻이다. 

  둘째, 주 예수님 곧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에게 올려 드리는 찬송을 살펴보자. 요한계시록 5장에는 두루마리의 인봉을 떼시기에 합당하신 어린양이 등장한다. 이분은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으로서 예수님을 가리킨다. 그런데 어린양 앞에서 노래하는 찬송가의 내용이 역시 또 다르다는 것이다. 즉 요한계시록 5장에서는 24장로들의 찬양과 천천만만의 천사들 그리고 천상의 피조물이 올려 드리는 찬송의 내용이 다 다르다. 이것은 다음 문항에서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5. 천상에 있는 존재들이 어린양에게 올려 드리는 찬양의 내용은 대체 무엇인가? 

  그렇다면 천상에 있는 존재들이 어린양에게 올려 드리는 찬송의 내용은 무엇인가? 첫째로, 24장로들의 찬양의 내용을 살펴보자(계5:9~10). 그것은 어린양께서는 두루마리를 열기에 합당하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3가지 말한다. 첫째는 그분은 일찍 죽임당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그분이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왕국) 가운데서부터 사람들을 피로 사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셋째로, 그분이 그들을 하나님 앞에서 왕국과 제사장으로 만드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째로, 이제는 천천만만의 천사들의 찬송 소리를 들어 보자. 그들은 큰 음성으로 이렇게 찬양하였다. "죽임을 당한 어린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도다(계5:12)" 이것은 이미 구속 사역을 완성하여 한 무리의 사람들을 얻으신 그분은 7가지의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7가지의 내용이 천사들이 주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에서 그 순서만 약간 다를 뿐 다 똑같다는 것이다. 7가지로 찬양했기 때문이다. 셋째로, 천상의 모든 피조물들의 찬송 소리를 들어 보자. 이들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면서 찬양을 한다. 이들은 자신이 피조물인 것 만큼 올려 드릴 찬송이 다 4가지이다.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주님께 돌려드린다. 

 

2022년 05월 13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한계시록의 기독론(07)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는 무엇인가(06)(계1:5)_예수님은 창조와 새 창조의 주이시다_2022-05-04(수) 

https://youtu.be/ItAsmSdwga4  [혹은 https://tv.naver.com/v/26610482 ]

 

1. 요한계시록 3:14에 의하면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증거는 무엇인가?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증거는 대단히 많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요한계시록 3:14에 말씀에 따르면, 그분은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심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타나심(표현)의 시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홀로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존재에 대해 아무도 알지 못했고 또한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주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심으로 인하여 이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시간과 공간을 만드시고 그 안에 어떤 것들을 창조하시자 비로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최소 그분이 전지전능하신 분이신 것이 그분이 창조하신 만물 가운데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하셨다(골1:16). 그리하여 모든 만물이 '그분 안에서' 존재하게 되었으며, '그분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이 통하지 않고 생겨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므로 모든 만물은 그리스도에게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분이 아니었다면 온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곧 나도 역시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2. 예수께서 하나님이 행하신 '창조의 시작'이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는 또 다른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께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창조의 시작이라는 말은 그분이 시작하셨으니 언젠가는 그분이 끝내신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에 관한 선언에서 "나는 시작이요 마침이다"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계22:13). 그러므로 시작하신 그분이 곧 끝낼 때가 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분은 왜 창조사역을 시작하신 것인가? 그분이 창조사역을 하실 때에는 분명히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그 일을 행하셨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최소한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창세기'라는 성경책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세기와 다른 예언자들의 말씀을 통하여 왜 하나님께서 창조사역을 시작하셨는지를 알 수가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도 창조사역의 목적이 달성되면 그분이 다시 모든 것을 끝내실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 아침에 샷다를 들어 올릴 때에는 무엇인가 하려는 것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목적이 완성되면 주인도 이제 그 샷다를 내라게 될 것이다.

 

3. 왜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는가?

  그렇다면 창세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왜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을까? 그것은 단 하나의 목적 때문이다. 사실 이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제일 먼저 하늘들을 창조하셨고, 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수종하여 일할 천사들(하늘들의 군대들)(창2:1)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지구를 창조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것들은 다 첫째 날에 창조하셨다(창1:1, 2:1, 출20:11). 그런데 일반적으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첫째 날에 빛만을 창조하셨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아니다. 그날 마지막에 그냥 그 빛이 지구에 있게 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빛은 어디서부턴가 있던 빛을 오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지구를 창조하셨을 때에 지구에는 이미 물이 있었다고 나온다. 그것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끌어오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구 땅 덩어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지만 빛과 물은 이미 어딘가에 있던 것을 지구로 가져다놓은 것이다. 여기서 '빛'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태양은 넷째날에 창조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빛이 와서 사람들에게 비출 때 사람들은 그 빛 안에 생명이 있음을 보았고, 세상에 비추는 그 빛을 예수님이라고 불렀다(요1장). 그리고 물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었는데 이것을 요한복음에서는 '성령'이라고 칭한다. 그런데 빛이나 물은 다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하나님으로터 나온 빛과 물 곧 예수님과 성령님을 통하여 생명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은 반드시 이 땅에 살고 있을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4. 하나님의 첫 창조(옛 창조)의 목적은 대체 무엇인가?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창조를 시작하셨는가? 왜 하나님은 지구를 창조하셨는가?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에서다.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사45:18. 슥12:1). 그런데 이것은 인간의 창조의 기본바탕(조건)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 인간 창조의 진짜 목적은 아니다. 왜냐하면 보이는 피조물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영이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는데, 이는 이 영이 영원히 하나님께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지구는 일종의 밭과 같은 것이다. 농부가 밭을 일구고 콩을 심는 것은 결국 많은 콩을 얻기 위함이다. 이 콩을 얻기 위해 농부는 밭을 갈고 돌을 제거하고 씨를 뿌린 후에는 밭에 있는 잡초도 제거해준다. 그리고 가을이 되어 콩을 수확하게 되면 농부는 콩만 곳간에 들이고 나머지 콩대는 불살라 버린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살게 하신 것은 한 무리의 사람들을 얻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천국에서 영원토록 사는 사람을 얻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하늘의 비밀을 알려주고 들려주어도 그것을 믿기 싫어한다면 그 누구도 그를 강제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최고의 사고작용을 할 수 있는 뇌를 주셨으니 인간을 이것을 통하여 자연만물이 돌아가는 이치를 살펴보고 이 모든 것이 왜 만들어졌고 이것이 어떻게 현재 돌아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뜻이 들어있는 성경책이 주어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인간을 만든 뜻과 목적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에 대해 한 마디로,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들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엡1:5). 그런데 그냥 단순한 아들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공동상속자가 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엡3:6). 이것을 요한계시록의 표현으로 소개하자면, 천국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하는 자를 얻기 위함인 것이다. 

 

5.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렇다면 천국에 들어가면 누가 왕노릇을 하게 되는가? 천국에서 예수님은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시다(계1:5). 그렇다면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땅의 왕들"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나중에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이들은 이 땅 이 지구에 있는 땅의 왕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천국에 있는 땅의 왕들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이 지구에 있는 땅의 왕들과 천국에 있는 땅의 왕들과 관련지어진 예수님의 호칭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시다. 그런데 욯나계시록 1:5에 나오는 "땅의 왕들의 통치자"는 천국에 있는 땅의 왕들을 통치자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천국에 있는 땅에서 왕노릇하는 자는 누구인가? 천국에 들어가면 아무나 다 왕노릇하며 살까? 아니다. 천국에는 다양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최소 4종류의 신분을 가지고 있다. 첫째로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들로서 '땅의 왕들'이라는 신분을 가진 자들이 있다. 그리고 둘째로, 자신의 집에 섬기는 자들을 둔 자들 곧 섬김을 받고 사는 신분의 사람들이 있다. 셋째로, 남의 집에 들어가 시녀와 경호원 등으로 섬기며 사는 자들도 있고, 넷째로, 그냥 평민처럼 사는 자들도 있다(이 부분은 '천국복음'이라는 다른 메시지를 통해서 확인해 보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에 왕노릇하는 신분을 가진 자들로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창조의 가장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천국에서는 왕노릇하는 자들이 대체 얼마나 되는가? 사실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성경전체 기록과 천국간증을 토대로 검토해보면,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는 그리 많지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천국백성 중에서 보좌에 앉는 144,000명들이 통치하는 자들인데, 이러한 144,000명 중에서 1번 줄에서 6번 줄의 보좌에 앉는 자들만이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참고로, 천국의 144,000석의 보좌는 총 70줄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에서의 삶은 바로 천국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신분을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천국에서 누릴 영원한 지위와 신분이 결정되는 것이다. 

 

2022년 05월 04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06)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는 무엇인가(05)(계4:10~11)_2022-05-03(화)

https://youtu.be/CxT21ZS9uFc [혹은 https://tv.naver.com/v/26610426 ]

 

1.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것은 어떻게 알려지게 되었는가?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주 하나님이셨다. 그러다가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계실 때에는 사람들이 그분이 주 하나님이신 것을 잘 몰랐다. 그러다가 그분이 죽고 부활하심으로 그분이 누군지를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죽은 자는 절대 다시 살아서 나타나실 수가 없는데, 제자들 앞에 쑤욱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을 닫았지만 그냥 들어오신 것이다. 그리고 구운 생선도 받으시고서 잡수셨다(눅24:42~43). 그리고 순간적으로 사라지셨다. 그분은 죽고 이제 부활체를 입으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분은 원래 부활승천이후 주 하나님이셨던 상태로 되돌아가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적어도 60년이 지난 후에 기록된 책인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것을 고스란히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2. 요한계시록에는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것이 어떻게 증거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을 보면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첫째로 존재론적 측면에서 볼 때 그분은 주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스스로 계신 분, 세세토록 살아 계신 분이시기 때문이다(계1:17~18).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서는 그분이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요(계1:4,8, 4:8, 11:17, 16:5), 한 때는 죽음을 겪으셨지만 다시 살아나 영원토록 살아 계신 이로 존재하고 계시기 때문이다(계1:18). 둘째 그분은 사역적인 측면에서도 주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이다(계2:22~23). 그래서 그분은 만물의 창조주이셨다. 모든 것을 그분이 시작하시었으며 앞으로 그분이 모든 것을 끝내실 것이다.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시기 때문이다(계2:17, 22:13). 셋째로 호칭적인 측면에서도 그분은 주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주님이자 하나님이시며, 보좌에 앉으신 이요, 대주재이시다. 그래서 어린양으로 표현된 예수님께서 주 하나님과 똑같이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는 것이다. 

 

3. 요한계시록에서는 주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이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

  요한계시록에서는 주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심이 인간의 대표자들인 먼저는 '24장로들'에 의해서 그리고 '천사들'에 의해서 선포되고 있다. 첫째, 천국에서 구원받은 자들의 대표자로서 24장로들이 주 하나님을 찬송할 때에 다음과 같이 찬송했기 때문이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당신은] 영광과 존귀와 권능(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만물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물들이 당신의 뜻 때문에 있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물들이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계4:11) 그렇다. 24장로들은 모든 만물이 주 하나님께서 창조하셔서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과 그분의 뜻 때문에 존재하고 있으며, 모든 만물들은 그분이 창조하셨기에 그분이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고 찬양하고 있었다. 둘째, 천국에서 천사들이 주 하나님이 창조주이신 것을 증거하였기 때문이다. 즉 요한계시록 10장을 보니, 한 힘센 천사가 주 하나님을 가리켜 "세세토록 살아계신 이"가 하늘과 그것 안에 있는 모든 것들과 땅과 그것 안에 있는 모든 것들과 바다와 그것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다고 선언을 하였기 때문이다(계10:6). 그리고 세 천사 중 한 명의 천사가 말하기를 "[너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왜냐하면 그분의 심판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희는] 하늘과 그리고 땅과 그리고 바다와 그리고 물들의 샘들(원천들)을 만드셨던 이를 경배하라"고 하였기 때문이다(계14:7). 그렇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것들 안에 있는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것도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골1:15, 출20:11, 창2:1). 그리고 그것 안에 온갖 것들을 다 만드셨던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으로 존재하게 된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이신 그분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이다. 

 

4. 요한계시록에서는 창조와 관련하여 예수님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을 창조와 관련하여 딱 2가지를 표현하고 있는데, 하나는 그분을 옛 창조를 시작하신 이로 표현하고 있다(계3:14). 또 하나는 새 창조를 시작하신 이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계1:5). 먼저 그분은 옛 창조를 시작하신 이이시다. 그분은 발에 끌리는 옷을 입으시고 일곱 금촛대('교회'를 상징함) 사이를 거니시는 인자 같은 이로 묘사되었는데, 그분은 사도 요한더러 일곱 교회에게 편지를 보내게 하신다. 그때 각 편지들마다 서두에서 그 편지를 보내고 있는 이가 누군지를 말씀하신다. 그런데 그분은 예수님이시다(계1:13~20). 그런데 그중에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편지를 보내실 때에 그분은 당신을 3가지로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에 세 번째 소개가 바로 당신 스스로를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근본'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보면, '기초, 근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아르케)'이라는 단어다. 한 마디로 한 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가운데 창조의 시작을 예수님이 비로소 열었다는 것이다. 그분을 통하지 않았다면 창조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만물은 첫째로, '그분 안에서', 둘째는 '그분을 통하여', 그리고 셋째는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이다(골1:16).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다. 왜냐하면 하늘들과 땅 위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분을 통하여 그리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된 채 있기 때문이다"(골1:16). 사실 라오디게아 교회는 골로새 교회와는 떨어진 교회가 아니다. 그러므로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는 라오디게아 교회에서 읽혀지고 있었으며,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골4:16). 그러므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골로새서가 증언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고 놀랍기만 하다.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신 이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

  예수께서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라는 뜻은 무슨 뜻인가? 이는 주 하나님께서 모든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예수께서 그 시작을 여셨던 분이라는 뜻이다. 즉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만물이 생겨날 수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렇다. 만물은 다 그분 안에서 비로소 창조되었으며, 그분을 통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분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다(골1:16). 그러니 그분 안에서 창조되지 아니한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요1:3). 고로 그분은 모든 만물의 창조자가 되시며, 또한 만물의 주인이시다. 심지어 사탄 마귀와 귀신들의 주인까지 다 주 예수님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이 자신을 창조한 주인을 몰라보아서는 아니 된다. 그런데 이 땅에 살고 있는 생명체는 다 주님을 알아보고 기뻐하지만, 인간만이 그분을 거역하는 이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렇게 능력있는 자들 곧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다 자신을 창조하신 이를 경배하고 찬양드리는데, 인간만이 자신의 창조주를 소홀히 생각하고 어떤 이는 아예 경배하지도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에서 주는 박사를 수십 개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만약 그가 예수님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꽝인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 살 때 그가 빌딩을 수백 채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가 예수님을 모른다면 그의 인생은 꽝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존재의 근원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자들은 죽으면 저 하늘나라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될 것이다. 아니 그들은 자신을 창조한 이를 경배하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은 죄로 인하여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고로 우리는 우리의 목숨이 붙어있는 그날까지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022년 05월 03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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