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21(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예수님께서 가르쳐준 올바른 기도방법은 어떠한 것인가?(마6:9~10)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cer8OkQV-PI  [혹은 https://tv.naver.com/v/28776794]

 

1. 들어가며

  기도란 무엇인가? 우리는 자주 이런 질문을 던진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것이 그리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도를 했을 때 과연 내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가 되었는지도 늘 기도생활의 관건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더불어 과연 내가 드린 기도가 하나님께 기뻐하시고 열납하시는 기도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도 역시 기도생활의 핵심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몇 주간 동안 기도의 원형이자 원리인 성막의 분향단에서 향을 사르는 법과 향을 제조하는 법을 깊이 살펴보았다. 그래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기도의 원리들을 살펴볼 수 있는 놀라운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오늘은 구약시대 분향의 원리와 더불어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올바른 방법과 내용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지난 주에는 분향단에서 다른 향을 살라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면 오늘은 기도할 때에는 왜 하나님을 위해서 향을 사르라고 했는지를 주기도문과 관련하여 살펴볼 것이다.  

 

 2. 예수님께서는 기도할 때에 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를 먼저 하라고 하셨을까?

  구약시대의 성막의 분향단을 공부해 보니 그것은 우리가 과연 어떤 기도를 드려야 올바른 기도를 올리는 것인가에 그 촛점이 맞춰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만큼 구약의 분향단이 주기도를 향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주기도문은 그것의 구조가 구약의 향제조법과 매우 닮아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기도는 인간의 필요를 중심으로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를 먼저 구하라고 말씀하신 것인가? 그것은 당시 사람들이 잘못된 기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대인들은 외식하는 기도에 익숙해져 있었고, 이방인들은 중언부언하는 기도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당시 유대종교지도자들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회당이나 큰 거리 어귀에서 기도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기도하는 것은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도를 하는 것이 되어서 이미 자기의 보상을 받은 채 있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방인들은 자기들이 믿는 신이 말을 많이 해야 들을 줄을 생각하고는 같은 말을 반복해서 기도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된 제자들은 그렇게 기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나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기도할 것을 가르쳐주셨다. 그것이 바로 주기도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는 잘못된 기도의 방식들과 내용드을 바로잡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였던 것이다.

 

3. 주기도문의 3대 특징은 무엇인가?

  우리가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를 대할 때에는 보통 그 기도가 예수께서 말씀해주신 기도의 완전한 모범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주기도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주기도문의 구조가 구약의 십계명의 구조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첫째로, 구약의 십계명이 주기도처럼 하나님을 위한 것과 인간을 위한 것으로 나누어 있기 때문이다. 즉 1계명에서 4계명이 하나님을 위한 계명이듯이 주기도의 앞의 3가지 기도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5계명에서 10계명이 인간을 위한 계명이듯이 주기도의 뒤의 3가지 기도도 역시 인간의 필요를 간구하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로는 십계명의 앞의 4가지 기도가 주기도문의 처음 순서와 그대로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십계명의 1~2계명 곧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고, 우상을 만들거나 절하거나 섬기지 말아야 한다는 계명은 주기도문에서 기도의 대상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기도에서는 오직 하늘들 안에 계신 이이신 아버지에게만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3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하는 계명인데, 주기도의 앞의 첫번째 기도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기를 원하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4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계명인데, 주기도의 앞의 두번째와 세번째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뜻이 이뤄지기를 기도하라는 것으로서, 안식일을 지켜 행할 때에 안식과 질서가 바로 잡히는데, 주기도의 두번째와 세번째의 기도가 이뤄지면 이 우주에 안식과 질서로 바로 잡히기 때문이다.

  둘째, 주기도의 앞의 3가지 기도가 수동태 능동태 수동태 구문인데, 예수님께서 일러주신 기도하는 과정과 이와 똑같다는 것이다. 그렇다. 주기도의 앞의 세 가지 기도 중에 첫 번째 기도는 사실 수동태 구문으로 시작한다. 즉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기를 간구하라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이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는 것에는 어떤 다른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도 있음을 뜻한다. 그리고 그리고 두 번째 기도는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능동태 구문이다. 이것은 어떠한 다른 어떤 요인일지라도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하는 것을 방해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버지의 능동적인 의지가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의 기도는 다시 수동태 구문이다. 이는 아버지의 뜻이 이뤄지게 되기를 기도하라는 것이다. 이는 이 기도가 어떤 다른 요인에 의해 방해받을 수도 있음을 뜻한다. 그렇다. 조금 있다가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는 일과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데에는 아버지의 의지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의 기쁜 순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기도가 둘 다 수동태 구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자유의지를 가진 천사와 인간의 자발적인 순종이 있어야 함을 매우 강하게 암시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사와 인간 중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과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일에 대해 거역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사와 인간이 하나님의 이름과 뜻을 거역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능동적으로 그 일에 간섭하여 강제로라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실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조가 영락없이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는 기도의 구조와 똑같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기도의 응답이 역시 수동태, 능동태, 수동태 구문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나 문을 두드렸을 때에 그것은 하나님의 의지가 같이 반영되는 것이어서 우리가 구하는 것을 받는다거나 문이 열려지게 하는 것은 우리의 기도만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닐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찾아서 발견하는 문제는 능동태 구문인다면 전적으로 우리 책임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 우리가 무엇인가를 요청했다면 찾는 것은 우리가 오롯이 해야 할 몫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문이 열려지는 것은 역시 우리 힘만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되어진다는 것이다. 

  셋째, 주기도의 도입과 본론이 구약의 성막법의 분향단 및 항제조법의 주의사항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구약의 분향단법에서 주의사항이 분향단에서는 절대 다른 향을 사르지 말라고 하셨는데, 우리 주님께서도 기도할 때에는 이방인처럼 기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약의 향제조법에서는 대제사장 자신이 냄새를 맡기 위해서 절대 향을 만들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올려드리기 위해서 향을 만들라고 하셨는데, 주기도 역시 자기자랑을 위해서 결코 기도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실제로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사역할 때에 향을 사르게 되면 지성소의 피비린내가 사라지고 머리가 상쾌해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지만 실제 은혜는 우리 인간이 받기 때문이다.

 

4. 주기도문의 앞의 3가지 기도는 과연 우리가 어떤 기도를 하라는 의미인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주기도문의 앞의 3가지 기도를 하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첫째,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기도하라는 말은 아버지의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기를 기도하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그동안에 하나님의 이름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들에 의해서 그리고 그분이 선택했던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서 더럽혀져 왔기 때문이다. 먼저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이름이 하나님이 맨 처음에 창조하신 영물인 일부 천사들에 의해 더럽혀졌기 때문이다. 이는 타락한 천사들인 귀신들 때문이다. 이들은 지금도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하나님의 뜻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을 버젓히 행하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보이지 않을 뿐더러 인간보다 훨씬 더 큰 능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 곧 이스라엘 민족에 의해서도 하나님의 이름은 욕되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애굽에서 구원받고 가나안 땅을 선물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애굽의 신들과 가나안의 우상들을 섬기고,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에는 저는 것과 병든 것과 눈 먼 것을 드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버려 이방민족에게 포로로 끌려가게 했으니 그들이 이방나라의 피지배 민족이 되어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다(겔20:30). 특히 하나님의 이름을 업신여기는 일은 일반 백성들보다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이 더 하였으니, 제사장들의 파렴치한 모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말1:6).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제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제자들은 이전의 천사들이나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을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제 성령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그분의 이름이 하나님의 자녀들로 인하여 더럽혀지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들의 말과 행동으로 인하여 불신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아버지의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왕국)가 오게 하기를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그분의 통치가 이 땅 위에 그리고 우리 성도들의 몸과 마음에도 임하기를 기도하라는 뜻이다. 사실 하나님의 왕국과 그리고 천국은 그 개념이 조금 다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왕국이 상태적인 개념이 강한 용어라면 천국은 장소적인 개념이 강한 용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주기도문에서 말씀하신 것은 상태적인 개념으로서 하나님의 왕국을 사용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기를 기도하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이 땅 위에는 여전히 사탄의 왕국이 존재하며 그들이 통치하고 있는 영역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우리가 악한 영들의 통치를 받지 않도록 악한 영들의 우두머리인 사탄과 싸워서 3대0 판정승으로 승리하신다. 그리고 제자들에게귀신쫓는 권세와 능력을 주시고 이제는 믿는 자들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귀신을 쫓아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이 기도하는 것이 좋다. "아버지, 저에게도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내 몸이 이제 주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을 주님께서 나타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내 몸과 마음이 온전히 주님의 통치 아래에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내 몸과 마음이 주님의 통치 이외에 그 어떤 세력도 통치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이제는 주님만이 나의 왕이요 주인이라는 것을 드러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셋째, 아버지의 뜻이 하늘들 안에서 나타나게 되고 있듯이 이 땅 위에서도 나타나게 되기를 기도하라는 것은 천국에서 이미 악한 영들이 쫓겨나서 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쫓겨나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천국에서 하늘의 상속자로 입성하고 있듯이 이 땅 위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탄생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사실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은 생활의 하나님의 뜻이나 단순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뜻이 하늘 안에서처럼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즉 이 땅에서 필요하거나 이 땅 위에서 있게 되어야 할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하늘에서 필요하거나 하늘 위에서 있어야 할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가리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살전5:16~18)이나 '선을 행함으로 인하여 고난받는 것'(벧전3:17),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사역자가 되는 것'(고전1:1), '거룩함'(살전4:3~4)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하늘에서는 더이상 필요없건 이미 이루어진 상태에 있기 때문에 주기도문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있다. 다시 말해 하늘 안에서 이미 일어난 일이거나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이 여기서의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크게 2가지다. 한 가지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창조된 천사들은 언제나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천국에서 쫓겨나 불못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회개하고 충성하여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을 상속자들이 되어 천국에 입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의 성취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만세 전에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엡1:4~5,3:6). 

 

5. 나오며

  오늘날의 하나님의 자녀들치고 기도에 대한 소망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도를 잘 하지 않는다. 어느새부턴가 기도해도 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그것은 둘 중의 하나의 기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사람에게 보이려는 외식하는 기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방인처럼 중언부언의 기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이 섬기는 신들과는 달라서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우리에게 어떤 필요가 있는지를 다 아시고 있다는 것이다(마6:8).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이방인처럼 기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럼, 이방인들은 어떻게 기도하고 있는가? 그들은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만 쭉 주섬주섬 되뇌이다가 그만 기도를 끝내버린다. 때론 정성을 다해 많이 기도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신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신의 기쁘시고 온전한 뜻이 자기를 통해 이뤄지기를 기도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의 뜻이 성취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너희들은 그렇게 기도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되어지고, 하나님의 통치가 오게 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되 하늘 안에서처럼 이 땅 위에서도 이뤄지기를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자기의 질병을 고쳐달라고 하는 기도를 드린다고 치자. 그때에는 어떻게 기도하면 좋겠는가? 여기, 그 예를 하나 들므로 오늘의 말씀을 마치려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제가 악한 질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제 몸과 마음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를 소망합니다. 제가 악한 영에 시달려서 주 예수님을 믿는 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하지 않게 행동한 악한 영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패배하게 하여주시고, 그 악한 영들이 떠나가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아닌 그 어떤 영들에게도 내가 휘둘리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오직 주님만이 나의 주인이시며 나를 다스리는 왕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 주님, 이제는 주님만이 나를 다스려 주옵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통치가 온전히 임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악한 영들은 패배하게 하시고, 내가 주님의 자녀인 것이 드러나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제가 건강을 되찾게 됨으로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온전히 주님의 이름만 높여드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22년 08월 21일(주일)

정병진목사

 

과연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시험하시는가? 왜 예수께서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말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라고 가르쳐주신 것인가? 주기도문의 마지막 간구의 핵심은 시험과 악한 자로부터의 보호에 대한 간구다. 이는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시험하시는 분이니까 그렇게 좀 안 해 달라고 부탁하라는 말인가? 그런데 왜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에서는 "악한 자로부터 구해달라"는 뒷문장이 전부 빠져있는가? 왜 인간의 필요에 대한 간구에 악한 자가 등장하고 있는가? 이러한 영적 비밀은 인간에 필요에 관한 세번째 간구에 들어 있다.

2019-09-07(토) 2019년도 9월 특별새벽집회 여섯째날
제목: 주기도문강해(07)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마6:13)
https://youtu.be/lZUc5tZ6TT0


1. 들어가며

우리는 지난 월요일부터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주기도에 관하여 말씀을 듣고 있다. 그중에서 어제는 인간의 필요 가운데 두 번째 기원으로서, 죄용서의 간구에 관한 말씀을 들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죄용서에 관한 말씀을 하실 때에 죄의 용서라는 단어가 아니라 빚의 탕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이유를 살펴보았다. 그것은 죄용서의 의미가 사실은 죄에 대해서 더 이상 묻지 않으신다.”는 의미에 가까운 뜻이었고, 지옥에 갈 죄를 용서받은 것에 대해 남의 죄를 용서하는 실천적인 삶이 뒤따르지 않는 사람은 장차 죽음 후에 서게 될 심판의 때에 자신의 죄를 용서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사실 우리는 일만 달란트를 빚진 것을 탕감받은 자로서 나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할 줄 알아야 하며, 그것을 실천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죄용서는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무수한 죄를 용서받은 것에 대한 일종의 감사의 표현과도 같은 것이며, 그것은 결국 마지막 날 나 자신의 심판의 잣대가 된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이제 오늘은 주기도의 마지막 기도 제목으로서, 인간의 필요에 있어서 세 번째 기원인 시험이나 악한 자로부터의 하나님의 보호에 대한 간구에 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한다.

 

2. 인간의 필요를 위한 세 번째 간구는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우리 믿는 이들이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필요를 위한 3가지 간구와 아울러 우리의 필요를 위한 3가지 간구를 할 것을 가르쳐주셨다. 하나님에 관한 필요는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와 뜻에 관한 간구였고, 인간에 관한 필요는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과 용서와 보호에 관한 간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중에서 인간의 필요에 관한 세 번째 간구는 하나님의 보호에 대한 간구. 그런데 이 문장은 두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개역성경으로 보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그런데 이 문장에서도 뒷문장에 생략된 것 단어가 하나 있다. 그것은 우리를이다. 이제 헬라어 원문에 따라 세 번째 간구를 직역해보자. “그리고 당신은 우리를 시험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지 마시고, 오히려 악한 자로부터 우리를건지시옵소서”. 그런데 누가복음에 나오는 주기도문에 의하면, 뒷 문장 전체가 나오지 않는다. 즉 누가복음은 그리고 당신은 우리를 시험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지 마소서로 끝난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악한 자로부터 건짐을 받도록이라는 문장에서 공통분모와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것은 시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봄으로 파악할 수 있다.

 

3.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시는 분이신가?

먼저 우리는 인간의 필요를 위한 두 번째 간구에서도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누구의 용서가 먼저 있어야 했는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세 번째 간구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논란이 되는 문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누가 시험하는가에 관한 문제. 세 번째 간구는 과연 우리가 시험받을 때에, 과연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는가 아니면 다른 존재가 시험하는 하는 문제.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는가? 만약 이러한 문구가 올바른 표현이라면, 주님의 이러한 세 번째 간구는 다른 곳의 성경말씀과 충돌될 수가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야고보서에 나오는 말씀이다.

1:13~14[직역] 시험을 받고 있으면서, 아무도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시험을 받는다고 [계속해서 말하지 말라. 왜냐하면 하나님은 악한 것들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그분은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각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속한 욕심에 이끌림을 받으면서 그리고 [그것에] 유인을 받으면서 시험을 받는다.

그렇다. 야고보서에 의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결코 시험하지 않으시며, 악한 것들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신다. 다만 우리가 시험을 받는 것은 욕심에 이끌려 미혹을 받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사람을 시험하는가? 결론적으로 사람을 시험하는 존재는 사탄마귀(1:13, 22:31,46, 고전7:5). 그래서 마귀는 시험하는 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4:3, 살전3:5).

1:13 [예수께서]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22:31,46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너희는]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고전7: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4. 성경에서 시험혹은 시험하다는 단어의 뜻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성경에서 시험이라는 단어의 뜻부터 정리해보도록 하자. 헬라어로 시험이라는 단어는 페이라스모스라는 명사인데, 이 단어는 동사 페이라조에서부터 나왔다. 그런데 이 단어의 뜻은 다양하게 쓰였다. 적어도 3가지의 의미가 있다. 첫째, “시련을 겪게 하다의 뜻이 있다. 이러한 뜻은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1:12)”는 문장에 잘 나와 있다. 둘째, “유혹하다. 걸려넘어지게 하다, 죄짓게 하다는 뜻이 있다. 예로, 예수께서 겟세마네동산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유혹에 빠지지(들어가지) 않게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에 나온다(22:40). 셋째, “테스트하다. 검사하다는 뜻도 있다. 그것은 고린도후서에 나오는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라(고후13:5)”는 말씀과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11:17)”라는 문장에도 나온다. 특별히 마지막에 쓰인 뜻은 도키마조”(입증하다, 검사하다)라는 단어와 그 뜻이 동일하다. 그런데 이 단어는 위에서 말했던 3가지 용례를 모두 포함하는 문장으로 훨씬 많이 쓰인다. 그러므로 이 시험이라는 단어가 문장에 따라 다른 뜻으로 쓰이기는 하지만, 많게는 위에서 말했던 3가지 의미를 함께 폭넓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사람을 걸려넘어지게 하거나 유혹하여 죄짓게 하는 의미로서의 시험은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5. 하나님께 우리를 시험 안으로 데려가지 말아달라고 기도하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인간을 위한 세 번째 간구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 안으로 데려가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초기 교부였던 터툴리안은 우리로 사탄에 의한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라는 뜻이라고 해석했고, 라틴어본 불가타성경을 편찬한 제롬은 우리로 우리가 극복할 수 없는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소서라고 해석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앞에서 살펴보았지만, 이 문장은 우리가 약할 때에는 사탄의 유혹에 들어가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의미일 수도 있으며, 시험으로부터 시련의 시험을 잘 통과하여 하나님 나라의 상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라는 의미임도 살펴보았다. 또한 이 기도는 우리가 시험에 들어서 주님을 부인하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의미도 동시에 포함되어 있음도 살펴보았다.

 

6. 인간의 필요를 위한 세 번째 간구에서 주의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이 세 번째 간구에서 우리가 가장 유의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누가복음의 주기도문과 마태복음의 주기도문을 비교해 볼 때 알 수 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은 마태복음에 비해 짧다. 왜냐하면 오히려 악한 자로부터 우리를 건지시옵소서라는 문장이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태복음에는 이 문장도 있고 그리고 당신은 우리를 시험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지 마소서라는 문장도 같이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우리가 시험 안으로 들어갔을 때에 초신자나 믿음이 약한 자가 거기서 빠져나오기가 힘들 때가 있는데, 그것은 악한 자의 유혹이 있을 때라는 것이다. 우리말성경에는 악한 자를 중성명사로 번역하여 그냥 이란 단어로 번역해놓았지만 이 문장은 중성명사로 해석하기보다는 악의 실체인 악한 자마귀라고 번역함이 더 원문에 가깝다고 하겠다. 고로, 마태복음에서는 덧붙여 다만, 악한 자 마귀로부터 건져달라는 기도를 더 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7. 나오며

주기도문 가운데 인간의 필요를 위한 간구는 우리의 양식과 용서와 보호에 관한 말씀이지만 좀 더 분석해보면, 그것은 인간의 육체와 마음과 영을 위한 간구라는 사실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약 악한 자인 사탄마귀의 속성과 특징과 역사방식을 잘 헤아리지 못하고, 주기도마저 하지 않는다면 마귀에게 속아 넘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마귀의 유혹과 속임수를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며, 그들의 손길로부터 우리를 건져주실 것도 기도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역사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면 즉시 대적기도를 통해서 그들 세력을 물리치는 기도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2019년 9월 7일(토)

정병진목사 


우리 주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으나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인간에 대해서도 너무나 잘 아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준 기도는 단지 하나님의 필요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분은 인간의 필요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필요만큼이나 소중하게 여기셨다. 3대3의 비율로 기도를 가르쳐주셨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사람을 위한 제일 처음 필요는 육체의 생존을 위한 양식이라고 하셨다. 그것도 개인의 양식이 아니라 "우리의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특별히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했는데, 이것의 진정한 뜻은 무엇인가?

2019-09-05(목) 주기도문강해(05)
제목: 주기도문강해(05)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6:11)
https://youtu.be/GMi2yeGJnCg

1. 들어가며

우리는 어제까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필요에 관한 3가지 기도(기원)에 대해 배웠다(6:9~10). 오늘부터 3일 동안은 인간의 필요에 관한 3가지 기도(기원)에 대해 배우고자 한다(6:11~13). 사실 예수님은 사람이시면서 하나님이셨던 분이다. 그래서 그분은 하나님으로서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계셨다.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너무나 잘 아시고 있다. 그러므로 그분은 하나님을 위한 필요만 기도하지 않고 우리 인간의 필요를 위한 기도도 하라고 하셨다. 역시 예수께서 가르쳐준 기도는 균형잡힌 기도에 틀림없다.

 

2. 하늘과 땅의 필요는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필요가 무엇이며 사람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기도의 대상에 대한 호칭에서도 이미 말씀하셨다. 그것은 하늘들 안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라는 표현이다. “하늘들 안에 계시다는 말은 하나님을 지칭하는 표현이며, “우리의는 우리 인간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그래서 먼저 우리는 하늘의 필요에 대해 배웠다. 그것은 하나님과 관계된 것으로서 하나님의 거대한 계획(경륜)이자, 우주적인 것에 관한 기원이었다. 그러나 오늘부터 우리는 땅의 필요에 관해 배우게 될 것이다. 특히 사람에 대한 기도는 (4기원)”용서(5기원)”보호(6기원)”에 관한 기도인데, 그것을 풀어보면, 것은 육체에 관한 기도요, “마음에 관한 기도이며, “”(사탄마귀)에 관한 기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사람들은 영혼육을 가진 사람이기에 자신의 육체가 굶주리게 되면 생명이 위태롭게 되고, 자신의 마음이 상하게 되면 모든 것이 다 뒤틀리게 되어 있으며, “영적인 외부적인 요소를 제어하지 못할 때에는 저주 가운데 살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기에 사람의 3가지 구성요소로서, 육체와 마음과 영에 관한 문제를 놓고 항상 기도해야 한다. 한편, 하늘의 필요가 2인칭단수대명사인 당신의” “이름과 나라와 뜻에 관한 것이었다면, 땅의 필요는 1인칭복수대명사인 우리의” “양식과 용서와 보호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그중에서 오늘은 사람이 갖는 제일 처음의 문제로서, 육체의 생존에 관한 문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3.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제일 첫 번째 기도는 무엇인가?

사람에게 필요한 제일 첫 번째 기도제목은 육체의 생존에 관한 문제. 그것은 양식(, )”에 관한 문제다. 인간은 육체를 가졌기에 먹지 않으면 생존할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육신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에게는 빵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6:11)” 그런데 이 본문도 우리말성경으로 보면 중요한 수식어가 하나 빠져 있다. 그것은 양식앞에 1인칭복수대명사로서 우리의라는 수식어가 빠져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양식은 나의 양식이 아니며 우리의 양식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주님의 기도의 제4기원은 우리의 양식을 우리에게 달라는 기도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주시는 시간은 오늘이며, 그리고 그 양식도 풍성한 양식이나 쌓아놓을 양식이 아니라, “일용할양식인 것이다. 고로 헬라어원문에 따라 제4기원을 직역해보면 다음과 같다. “[당신은] 일용할 우리의 양식을 오늘 우리에게 [단번에] 주옵소서.

 

4. “일용할 양식이란 대체 어떤 양식을 가리키는가?

일용할”(개역개정) 또는 필요한”(새번역)으로 번역된 헬라어 에피우시오스(epiousios)”는 사실 그 뜻이 명확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신약전체에서 오직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에서 각각 한 번씩 나오기 때문이다. 또한 당대의 어떤 그리스 문헌에서도 이 단어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단어의 어원을 통해 이 단어의 의미를 찾아볼 수밖에 있다. 먼저, “에피우시오스는 전치사 에피(epi)”에다가 우시오스(ousios)”가 합쳐진 단어다. 그래서 만약 이 단어가 에피에다가 이에나이(ienai, 오다,가다)”라는 단어와 합쳐진 경우라면, 이 단어의 뜻은 오고 있는 날을 위한내일을 위한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한편 이것이 에피(epi)”에이나이(einai, 있다.존재하다)”와 합쳐진 경우라면, 이 단어의 뜻은 존재를 위한”, “필요한”, “생존을 위한이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마태복음에 나오는 주기도문에 따르며, 전자의 해석은 좀 어색하다. 왜냐하면 그 양식을 오늘달라고 기도해야 하는데, 내일을 위한 양식을 오늘달라고 기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아마도 오늘을 위한이거나 생존을 위한혹은 필요한의 뜻이었을 것이다. 앞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인간의 필요는 딱 3가지로 요약되는데, 그것의 처음에 육체를 위한 필요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단어의 가장 효과적인 번역으로는 생존에 필요한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제일 좋은 번역이라고 본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양식에 대하여 나를 위한 양식이 아니라 우리의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양식(먹을 것)을 구하되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양식(먹을 것)을 구할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양식을 구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출16장에서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양식이 내려주실 때에, 그날그날에 필요한 양식만 내려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양식도 한 사람이 한 가족을 위해 새벽에 나가서 거둬들이라고 했다는 것과 매우 관련이 있는 것이다(16:16,21). 다시 말해, 양식은 개인이 아닌 우리의 양식으로서 최소 가족을 위한 양식이었지, 결코 개인의 배부름을 위한 양식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것을 달라고 할 시기가 먼 미래가 아니라 오늘이라고 하신 것은 필요한 양식을 구하되 그것을 먼 미래를 위해 쌓아놓아 그것을 축적하는 용도로서 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5. 주기도의 네 번째 기도제목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영적인 비밀은 무엇인가?

고로 우리는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네 번째 기도제목 곧 [당신은] 생존에 필요한 우리의 양식을 오늘 우리에게 [단번에] 주옵소서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영적인 비밀들은 이런 것이다.

첫째, 우리는 주기도를 매일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기도제목들은 몰라도, 오늘 우리가 배우는 네 번째 기도에서는 오늘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하나님께 생존을 위한 양식을 달라고 기도할 때, “어제의 양식을 오늘 달라고 기도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16장의 만나를 보면, 해가 내리쬐면 그날 내린 만나는 그 시간에 녹아서 없어졌다). 둘째, 이것은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고 자신을 삶을 위탁하며 살게 해달라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제4기원은 먼 미래에 필요한 양식을 달라고 하는 기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 우리의 기도는 생존을 위한 양식을 구하는 정도여야지 결코 비축할 양식을 위한 기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축적해놓기 위해 과도한 양식을 구하는 것에서 결국 싸움이 발생하게 되고 좀 더 크게 되면 국가와 민족의 전쟁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에 필요한 양식을 얻을 수 있음에 늘 감사하자. 그리고 오직 나의 생존만을 위해 양식을 구하거나 나의 안녕을 위해 그것을 쌓아두려는 욕심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의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만큼 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특히 주님께서 말씀하신 양식()”이란 사람의 생존을 위한 일상적인 음식을 구하라고 하신 것이지 그것을 펑펑 쓰고 즐기기 위한 잔치 곧 고기와 포도주와 같은 것을 구하라고 하는 기도가 아니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넷째, 사람이 자신의 육체의 보존을 위해 양식을 달라는 기도드리는 일을 결코 죄악시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이 기도를 하게 하신 것은 인간의 육체가 살아가려면 반드시 육체의 생존을 위한 음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했기 때문이다. 다섯째, 더불어 이 기도가 오직 육체의 양식만을 위한 것이었다고 단정해서도 아니 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육체에게는 떡이 필요하지만, 영혼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도 필요하기 때문이다(4:4).

 

6. 나오며

그러므로 우리가 생존을 위한 양식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되, 육체의 양식과 영혼의 양식을 위하여 비는 기도를 꼭 매일 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육체의 양식을 위해 비는 기도를 두고 너무 세상적이라고 치부하지도 말라. 육체가 강건할 때에 우리의 몸도 하나님의 병기로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식을 구하되 내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고 축적하기 위한 과도한 욕심으로 구했다면 그것을 내려놓고 이웃에게 베풀기를 원하는 기도를 드리기를 바란다. 잘못되면 그것이 사회와 국가까지 병들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만의 필요가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의 필요를 위해 오늘도 양식을 구함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답게 살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19년 9월 5일(목)

정병진목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간구는 대체 어떤 기도인가? 예수께서는 왜 제자들에게 이러한 기도를 드릴 것을 명하셨을까? 이 세번째 간구는 하나님의 나라가 오도록 기도하라는 두번째 간구와는 또한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가? 왜 누가복음에 나오는 주기도문(눅11:2~4)에서는 하나님에 관한 세번째 간구가 나오지 않는 것인가? 뜻이 하늘 안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 위에서도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기도 속에는 무엇이 전제되어 있는가? 그때 하늘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이 땅에 어떤 일이 일어나야 세번째 간구가 성취되는 것인가? 오늘은 주기도문의 이러한 세번째 간구에 대해 살펴보자.

2019-09-04(수) 2019년도 9월 특별새벽집회 셋째날
제목: 주기도문강해(04)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마6:10)
https://youtu.be/5xuNIHHpFMs


1. 들어가며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셨던 주기도문(6:9~13, 11:2~4)은 십계명의 형태를 닮았다. 앞에 하나님에 관한 것이 나오고, 나중에 인간에 관한 것이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주일부터 세 번의 시간을 통해, 지난 주일낮예배에는 기도의 대상에 대해 배웠고, 그제와 어제는 기도의 내용가운데 하나님의 이름그분의 나라(왕국,통치)”에 관해 배웠다. 그런데 기도의 내용도 십계명처럼 하나님의 필요에 관한 기원이 3가지가 있고, 인간의 필요에 관한 것 3가지가 있다. 하나님의 필요는 이름과 나라(통치)와 뜻에 관한 것이며, 인간의 필요는 양식()과 용서와 보호에 관한 것이다. 그것 중에서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에 관한 필요들 가운데 세 번째의 간구로서 하나님의 뜻의 성취에 관한 말씀을 살펴보려고 한다.


2.“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이름 및 하나님의 나라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마태복음에 나오는 주기도문(6:9~13)은 누가복음에 나오는 주기도문(11:2~4)과 조금 다르다.

11:2-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하라

먼저, 기도에 대상에 있어서 마태복음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의라는 수식어가 더 나온다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에 관한 기원 가운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세 번째 기원이 마태복음에만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누가복음에는 하나님의 뜻에 관한 기원이 빠져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제1기원인 하나님의 이름과 제2기원인 하나님의 나라와 매우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되면, “하나님의 왕국이 도래하기 때문이요, 또한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3기원인 하나님의 뜻의 성취가 하나님에 관한 제1기원과 아물러 제2기원의 결과에 해당하므로 누가복음에는 이 기원이 빠져있다고 보는 것이 올바른 견해라고 하겠다.

3. 하나님에 관한 세 번째 기도제목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하나님에 관한 세 번째로 어떤 기도를 할 것을 명하셨는가? 우선적으로 한글성경에서는 주기도의 세 번째 기원은 제 1기원과 제2기원과 마찬가지로, “당신의라는 수식어를 번역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헬라어원문에는 (you)”가 들어 있기에, “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라고 번역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말 성경에는 장소에 관한 전치사들도 다 생략되어 있다. 그러면, 이제 헬라어원문에 따라, 3기원의 기도를 번역해보자. 그것은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하늘 안에서처럼 역시 땅 위에서도이다. 이 기도는 사실 두 문장이 쉼표를 사이에 두고 하나로 연결된 하나의 기도문이다.

4.“하나님의 뜻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러면, “하나님의 뜻(쎌렘마 투 데우)”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특별히 여기에 있는 하나님의 뜻이란 예수께서 아버지의 뜻이라고 지정하셨으니, 여기서 나오는 하나님의 뜻이란 예수님의 개인적인 뜻이 아니며(26:39), 일반적이며 보편적인 뜻도 아니다. 사실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뜻에 관한 여러 가지 말씀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일상생활 가운데 성도를 향한 보편적인 하나님의 뜻으로서 항상 기뻐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살전5:16~18)”도 있고,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벧전3:17,4:19)”도 있다. 또한 바울이 개인적으로 받은 하나님의 뜻에는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어 쓰임받는 것(고전1:1, 1:1, 1:1, 딤후1:1)”도 있으며, 재림을 앞둔 성도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뜻은 자신의 거룩함(살전4:3)”이라고 바울은 언급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이란 다른 누구의 뜻이 아니라 예수님의 아버지의 뜻을 가리킨다(6:10).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알고 기도할 줄 알아야 한다. 먼저는,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계셨을 때에 예수님을 향한 아버지의 뜻이 있었다. 그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서 사람으로 태어나신 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류를 위한 구속을 성취하는 것이었다(26:39).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한 전 과정에 불과한 것이었고, 궁극적으로는 구속을 성취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 주기도문이 말하려는 진정한 하나님의 뜻이다(6:39~40).

6:39-40[직역]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그분이 이미 내게 주신 채 있는 모든 것을 내가 그것으로부터 잃지 아니하고 오히려 마지막 날에 그것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라 40 왜냐하면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바라보고 믿는 모든 자가 영생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장차 일으켜 세우리라

그러므로 죄인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잃어버리지 않고 그들로 하여금 천국에 들어가게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18:14).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내 소원()을 내려놓고 주님의 바램()을 우리가 결단하여 선택해야 하며, 이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구원받도록 하나님께 청원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하신 것이다.

5. 왜 하나님의 뜻이 이 땅 위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 하셨는가?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을 때에, 그 뜻이 하늘 안에서처럼 이 땅 위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이 문구에 따르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었을 때에는 하나님의 뜻은 이미 하늘에서는 성취가 된 상태에 있었다. 즉 하나님이 계신 셋째하늘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이미 성취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이라는 단어가 단수명사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땅 위에는 아직까지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지 않은 상태에 있었다. 즉 주기도문의 제2기원 즉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라고 하셨을 때처럼,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기를 방해하는 세력이 그때도 이 땅 위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 땅 위에서도 성취되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글성경에서는 장소에 관한 전치사를 번역하지 않아서, 어디에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었고 또한 어디에서는 아직 성취되지 않았는지가 불분명하다. 그러나 헬라원문성경은 분명하게 가르친다. 하나님의 뜻은 셋째 하늘 안(in)에서는 이미 성취된 상태에 있는데, 이 땅 위(upon)에는 아직 그것이 완전히 성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탄과 그의 부하들(귀신들)로 구성된 사탄의 왕국이 이 땅 위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시대가 지나고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어느 시점에, 사탄과 그의 졸개들인 귀신들이 하늘에서 쫓겨났었다. 그들이 거기서 하나님의 뜻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피조물이었지만, 창조주인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과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거부하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상속자가 되는 것도 싫어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셋째하늘에서 내쫓아버린 것이다(12:7~9). 그때는 아마 예수께서 탄생하기 직전이 아닌가 추측된다(12:1~6).

12:7-9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천사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천사들)도 싸우나 8 [그가] 이기지 못하여 다시(더이상) 하늘 []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 큰 용이 내쫓기니(던져졌으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미혹하고 있는) 자라 그가 땅 []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그렇다. 그때에 사탄마귀와 귀신들이 한꺼번에 음부(지옥)으로 내던져졌다. 그렇지만 용과 그의 졸개들은 그때부터는 땅 위로 올라와서 대놓고 인간을 유혹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사탄은 죄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함으로 사망의 음부의 열쇠를 빼앗기고 말았으며(1:18), 무저갱에 갇히게 되었다(20:1~3). 그렇지만 이 세상 최후의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 직전에 사탄마귀는 하나님께서 잠깐 놓아줄 것이다. 하지만 오늘도 여전히 그는 무저갱에 갇혀서 지상에 올라오지 못한 상태에 있음을 알라. 다만 그의 졸개들만 음부의 문들을 통해 올려보내어 그가 그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올라올 때가 세상 끝날이다.

6. 나오며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하늘 안에서 이뤄진 것처럼 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저갱에 있는 사탄마귀를 결박하는 기도와 이 땅 위에서 활동하는 귀신들을 내쫓는 대적기도를 해야 한다. 그리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해주어야 한다. 그러면 전 우주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계속해서 성취되어질 것이다.

 

2019년 9월 4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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