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02(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신앙의 대상을 하나님으로 바꾸었을 때 베풀어지는 놀라운 은혜(수2:1~15)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ofjMIS9-PLc  [혹은 https://tv.naver.com/v/29634973 ]

 

1. 들어가며

  설교의 주제는 크게 두 종류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회개와 순종을 강조하는 설교다. 그리고 또 하나는 사랑과 은혜를 강조하는 설교다. 오늘은 이것들 중에서 은혜와 긍휼을 강조하는 말씀을 정해 보았다. 사실 신약성경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역시 '은혜'라고 할 수 있다. 값없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을 보통 '은혜'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약성경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인애(인자)'일 것이다. 히브리어로는 '헤쎄드'이다. 헤쎄드는 '인애, 인자, 자비, 긍휼, 친절, 호의' 등으로 번역되는 단어인데, 이것이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제일 큰 속성의 하나로 등장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약성경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헤쎄드)이 영원하다는 말씀을 자주 듣게 된다(시105:5,59:17). 그리고 오늘 말씀에도 등장하고 있다(수2:12). 왜냐하면 하나님은 원래가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분이시고 긍휼하심이 풍성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이방인이었다가 헤쎄드의 은혜를 받았던 사람은 대체 누구였을까? 우리는 그러한 사람의 하나로서, 여리고성의 기생 라합을 들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은 기생 라합의 생애에 나타난 헤쎄드의 은혜를 나누어보려고 한다. 그렇다면 기생 라합은 과연 어떤 하나님의 헤쎄드의 은혜를 받은 것일까? 그리고 그녀가 헤쎄드의 은혜를 받게 된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던 것일까? 

 

2. 기생 라합은 어떤 여인이었을까?

  사람에게는 별명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라합에게도 별명이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 앞에 꼭 '기생'이라는 말이 붙어다닌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라합'이라는 사람은 '여호수아서'에서만 나오는 이름이다. 그리고 신약성경에서는 라합이라는 이름이 세 군데에 걸쳐서 나오는데, 하나는 마태복음 1장(마1:5)에 나오고 이어서 히브리서 11장(히11:31)과 야고보서 2장(약2:25)에도 나온다. 그런데 히브리서와 야고보서에서는 라합이라는 여인의 이름 앞에 별명이 붙혀져 있다. 그것은 '기생'이라는 것이다. 그럼 '기생'이라는 단어는 어떤 뜻인가? 이것을 히브리어나 헬라어로 보면, '창녀'라고 되어 있다. 왜 그녀에게는 '창녀'라는 별명이 붙어다니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녀가 구약시대의 사람으로서 가나안 땅의 이방여인이었고 좋지 않은 신분을 가진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행동을 통해 메시야의 조상에 그녀의 이름을 올려놓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유대 랍비들은 그녀를 어떤 여인으로 보고 있을까? 그들은 하나같이 그녀를 창녀로 보지 않는다. 여관집 주인으로 본다. 왜냐하면 수2:1의 말씀에 따르면,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떠났던 두 명의 정탐꾼이 그녀의 집 안으로 들어가 묵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두 명의 정탐꾼이 그 중요한 순간에 쾌락을 즐기기 위해 창녀의 집에 들어갔을 리가 없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조심스럽게 그녀의 집이 아마 여관집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왜냐하면 그녀가 여관집을 운영했기에 가나안 땅 근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식을 다 들어서 알고 있었을 것이요, 자기의 가족들에게도 신임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의 집에 정탐꾼들이 묵으러 들어온 것이다. 

 

3. 라합은 정탐꾼들을 어떻게 대우했을까?

  당시에 여리고 성은 외지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면 반드시 들러서 가야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그러므로 다른 어떤 곳보다도 여관업이 성행했다. 그런데 라합 당시에 여리고 성은 아주 긴장하고 있는 상태였다. 왜냐하면 질풍노도처럼 밀려오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정복 소식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성에 들어오는 사람을 면밀히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그 성이 외인 두 사람이 들어왔다. 이 소식은 금새 왕에게 들어갔고 왕은 사람들을 라합의 집에 보낸다. 그들은 기생 라합의 집을 찾아와서는 "그들을 끌어내라"고 명령하였다. 하지만 기생 라합은 시치미를 뚝 떼고 그러한 사람이 온 것까지는 맞으나 해가 지기 전에 성문을 통해 빠져나갔으니 빨리 좇아가면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사실은 정탐꾼들을 자신의 옥상 위에 있는 삼대 속에 숨겨놓은 후였다. 병사들이 그를 추격하러 떠나자 그녀는 정탐꾼들이 잠들기 전에 올라가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미래를 부탁했고 그들을 안전하게 창문을 통해 밖으로 탈출하도록 도와주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집이 성벽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추격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3일동안 피해있을 장소까지 알려주고 먹을 것도 준비해 주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정탐꾼 두 명은 안전하게 여호수아의 진영으로 복귀하게 된다. 

 

4. 왜 기생 라합은 정탐꾼들을 숨겨주기로 결정한 것인가?

  자기 집에 손님으로 들어온 두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녀는 매우 고민했을 것이다. 첩자가 자기 집에 들어왔다고 왕에게 보고할 것인가에 말 것인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신중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그동안 남들로 들어왔던 소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이들을 과연 왕에게 고발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이들을 숨겨주어야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추격자들을 성밖으로 내 보낸 후, 그녀는 옥상에 있는 그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자신의 속내를 밝힌다(수2:9~11). 그것은 왜 그들을 숨겨주고 있는지를 그들에게 말한 것이다. 첫째, 여호와께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 게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벌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는 신의 이름이 누군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역사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를 정확히 예측하고 있었다. 둘째, 여호와가 어떤 분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에 거대한 홍해물을 마르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요단 저쪽에 있는 거인족의 두 왕들 곧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전멸시켰다는 소식도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하나님을 제저할 수 있는 가나안 민족은 없다고 내다보았다. 셋째, 라합은 오직 여호와만이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최고의 신이라고 보고 있었다. 그녀가 여호와 하나님을 알기 전에 무신론자로 살았었는지 혹은 가나안의 어떤 신을 섬기고 살았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녀의 마음 속에는 이미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라는 신앙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두 사람이 자기 집에 들어온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그녀는 생각했을 것이다. 장차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멸망을 피하기 위해서는 정탐꾼으로 찾아온 두 명을 안전하게 숨겨주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다가 혹시 발각되더라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와 함께 정탐꾼들을 숨겨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다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목숨이 경각간에 달린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부탁을 한다. 자신이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었으니 장차 이스라엘 민족이 여리고 성을 정복하러 올 때에, 자기와 자기의 부모와 형제들도 살려달라고 말이다. 

 

5. 기생 라합으로 굳은 결단으로 인해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정탐꾼들이 안전하게 돌아간 뒤 여호수아는 군대를 이끌고 여리고 성을 정복하러 쳐들어간다. 그러나 가나안 전쟁의 첫 번째 전투인 만큼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시키신 방법대로 전쟁을 한다. 여리고성을 날마다 돌면서 일주일을 보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돈 후 함성을 질렀다. 그러자 성이 안쪽으로 와르르 무너졌다. 그런데 기생 라합과 그 집안에 있던 가족들과 무려 친족들까지 살아남았다. 왜냐하면 정탐꾼들과 약조하기를 그 집에 빨간 줄을 매달아놓으면 그 집안 사람들을 살려주기로 약조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칠 때에 두 명의 정탐꾼들을 보낸다. 그래서 빨간 줄이 쳐져 있는 그녀의 집안에 있는 사람들을 이스라엘 진영으로 데려다 놓는다. 그리고 성 안의 모든 사람들을 쳤다. 그때의 전쟁은 사실 '헤렘'전쟁이었다. 생명있는 것이라면 사람이든지 동물이든지 무론하고 다 죽이는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여리고 성 사람들이 다 죽던 그 마당에 오직 기생 라합과 그 집안에 있는 가족들 그리고 그녀의 친족들만 살아남게 된다. 그런데 그녀가 받은 축복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정탐꾼들의 한 명으로 추정되는 유다 지파의 사람 살몬과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녀가 아들을 낳게 되는데, 그 아이가 바로 룻기서의 주인공은 '보아스'다. 보아스는 다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으며, 이새가 다윗왕을 낳았으니(마1:5), 그녀는 다윗왕의 고조 할머니가 되었고,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직계조상이 된 것이다. 그렇다. 그녀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목숨만을 구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유다 지파의 조상이 되었고, 메시야의 조상이 되는 큰 축복을 받게 된 것이다. 

 

6. 그녀가 그때 행한 말은 거짓말이었는가 그녀의 기지였는가?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정탐꾼들을 살리기 위해 그들을 잡으러 왔던 자들에게 그녀가 한 거짓말이다. 그것은 그녀가 기지를 발휘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거짓말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했던 거짓말의 죄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성경에서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하게 나와 있다. 그것도 십계명의 아홉번째 계명으로 떡 하니 규정되어 있다(출20:6). 그리고 신약성경에는 거짓말하지 말라는 규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는 자는 불못에 던져지게 될 것이고,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못 들어가게 되며, 성밖에 있을 것이라고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계21:8,27,22;15). 그렇다. 거짓말하는 죄는 지옥형벌을 면치 못하는 죄에 해당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아마도 하나님을 대적하던 마귀의 제일 속성이 거짓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를 속였던 말이 사탄마귀의 거짓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행한 거짓말의 죄는 작은 죄가 아니었다. 큰 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성경의 기자들은 그녀를 '믿음의 여인'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며(히11:31), 그녀의 행동을 의로운 행동이라고 평가하고 있다(약2:25). 대체 어찌되었길래 그녀가 했던 거짓말의 죄는 어디로 사라져버리고 그녀를 믿음의 여인이라고 평가하는 것인가?

  

7. 기생 라합은 어떻게 되어서 헤쎄드의 은혜를 입게 되었을까?

  우리는 여호수아 2장의 말씀을 통해서 그녀가 정탐꾼들을 살리기 위해서 분명하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녀가 한 거짓말의 죄를 일단 덮어두셨다. 그것은 그녀가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일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녀가 모든 신들 중에 여호와를 자기의 하나님으로 믿는 신앙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여호와를 자신의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을 수도 있었으나 기꺼이 스스로 하나님을 자기의 신앙의 대상으로 정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매우 기뻐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행한 거짓말의 죄는 그냥 간과해주신 것이다. 그녀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야말로 너무나 큰 중대한 결정이라고 하나님께서는 보시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혹은 예수님)을 자신의 신앙의 대상으로 결정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그것은 하나님, 지금으로 말하면 예수님을 자신의 신앙의 대상으로 결정할 때에 그 전에 지었던 모든 죄를 간과하심으로 용서해주시는 것이다. 너무나 중대한 결정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 인생의 주인이자 주권자를 하나님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오늘날에도 역시 사람은 예수님을 믿기 전의 사람과 믿은 후의 사람뿐인 것이다. 예수님을 믿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의 주인을 자신에게서 예수님으로 이동시켰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전에 그가 어떤 죄를 지었든지 상관없이 그 죄를 눈감아주시는 것이다. 그때에 그는 이제 죄가 없다고 하늘에서 선언해주시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는 그녀가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신으로 믿기로 결정한 것을 크게 보시고 그녀가 지었던 거짓말의 죄를 눈감아주셨던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자비의 은혜' 곧 '헤쎄드의 은혜'라고 부르는 것이다. 

  사실 신약성경에서도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 사람이 자신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 지었던 낱낱의 죄를 다 회개하지 않아도 그를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주신다고 약속하고 있다(엡1:7, 벧전1:18~19). 처음으로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섬기기로 결단하게 되면 골고다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로 그 사람이 지었던 죄를 덮어버리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인들이 지금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만약 예수 믿기 전에 지었던 모든 죄를 다 회개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에 들어간다면 이 세상 사람 중에 그렇게 해서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행동으로 지은 죄 뿐만 아니라 말과 마음으로 지은 죄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그 사람이 예순미을 믿기로 결정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전에 지었던 죄들은 용서해주시는 것이다. 여기서 '용서해주신다'는 말은 '없는 셈으로 쳐주신다. 없다고 선언하신다'는 뜻이다. 그 죄가 있기는 있지만 그 죄를 거론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이다. 그 죄가 천국에 들어가는데 문제가 되게 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이것은 구약시대에 보아스의 아내가 되었던 모압 이방여인이었던 룻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그녀의 민족이 섬기고 있던 그모스를 버렸다. 그리고 시어머니 나오미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시아버지가 죽고 남편도 죽고 아주버니도 죽었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다시 자기 민족으로 돌아가서 재가해서 살라고 했다. 하지만 시어머니를 따라가면 평생 과부로 시어머니를 공양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시어머니를 따라갔다. 그것은 자신의 시어머니의 하나님을 믿고 따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날개의 그늘 아래 들어온 그녀를 어여삐 보셨다. 그래서 믿음 좋은 보아스를 만나서 결혼하게 해 주신 것이다. 그렇다.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섬기는 자는 자비의 은혜 곧 헤쎄드의 은혜를 입게 되는 것이다. 

 

8. 기생 라합이 입게 된 두번째 헤쎄드의 은혜는 무엇이었는가?

  그런데 기생 라합이 여호와 하나님만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기기로 결정한 것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결단을 매우 귀하게 보시고 그녀가 바라고 원하는 일들까지 덤으로 허락해주시었다. 그것은 여리고 성 사람들이 다 진멸되는 상황에서도 ,그녀의 부모와 남녀 형제들 심지어 그녀의 친족들까지도 다 살아남아 구원받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수6:23). 그렇다. 누군가가 최초로 하나님 혹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최초로 예수믿는 그 사람 때문에 그 사람의 가족들까지도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자신의 신앙의 대상으로 선택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두번째 헤쎄드의 은혜인 것이다. 처음으로 예수님을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모신 자들은 이처럼 특별한 은총을 주어진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 이방인이었던 로마 장교 고넬료도 자신이 예수님을 자신의 신앙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게 되자, 자기와 자기의 집안 식구와 그리고 그때 함께 그 집에서 복음을 들었던 자신의 친족들과 가까운 친구들까지도 다 구원받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행10:2,24,44~46). 그것은 고넬료 뿐만 아니다. 사도 바울도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지만 그때 간수에게 전도할 기회가 있을 때에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당신은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리하면 당신과 당신의 집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행16:31)"라고 외쳤던 것이다. 그리하여 간수가 예수님을 믿게 되자 자기와 자기의 가족들이 다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아 최초로 빌립보에도 교회가 탄생하게 된다(행16:31~34). 그렇다. 처음으로 예수님을 자신의 신앙의 대상으로 받아들인 자에게는 자신의 가족도 구원받을 수 있는 특별한 은혜를 허락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생 라합처럼 하나님을 선택하는 자들이 받을 수 있는 두번째의 헤쎄드의 은혜인 것이다. 

 

9. 나오며

  우리 교회처럼 회개를 외치면서, 회개 없이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하니까, 어떤 분들은 회개하지 않은 한 개의 죄라도 남아있다면 그 사람은 구원을 못받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이것은 헤쎄드의 은혜를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처음으로 예수님을 자신의 신앙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그가 예수 믿기 전에 지었던 죄들이라도 다 용서받게 된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너무나 귀하고 또한 중대한 일이기 때문에 그 전에 지었던 죄들을 하나님께서도 눈감아주시는 것이다. 그래야 죄인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고 천국에도 들어갈 수 있는 것이지, 예수 믿기 전에 지었던 과거의 모든 죄들을 낱낱이 다 자백해야만 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간다고 한다면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회개도 평소 때 늘 하나님께 회개를 해 오던 자가 마지막 죽는 순간에 그동안 회개하지 못해 남아있던 죄들도 다 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지, 평소 때에는 한 번도 회개하지 않다가 그날 죽을 때에 "하나님, 지금까지 지었던 모든 죄를 용서해주세요"라고 기도한다고 해서 헤쎄드의 은혜가 베풀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진실로 회개하는 삶을 살았던 자가 죽을 때에도 미처 그동안 회개하지 못했던 죄들이 한꺼번에 용서되는 은혜가 베풀어지는 것이다. 그만큼 예수님을 믿기로 결정한 것만큼 자신의 일생에서 있어서 중대한 결정은 없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는 평소 때에 자신이 지었던 죄들을 회개하는 자라야 그때 회개할 때에 나머지 죄들도 용서받는 것이며, 또한 죽기 직전에 다 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임을 알라. 

 

 

2022년 10월 02일(주일)

정병진목사

 

 

2022-09-30(금) 금요기도회

제목: 죄들을 사함받는 것과 깨끗하게 되는 것은 같은가 다른가?(골1:13~14과 요일1:9)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B8GMdPok3s4  [혹은 https://tv.naver.com/v/29600871 ]

 

1. 들어가며

  사람은 과연 어떻게 해서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모든 죄들을 다 사함을 받는가 아니면 회개를 할 때에 비로소 죄사함을 받는가? 어떤 선교 단체에서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몇몇 말씀을 인용하여, 믿는 자는 속량 곧 죄들의 용서를 받기 때문에 믿기만 하면 다 죄용서를 받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 나머지, 어떤 믿는 이들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심지어 아직 짓지도 아니한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받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이러한 분들에게는 한 번 구원받았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어떻게 죄사함과 구원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는가? 이것을 푸는 열쇠가 나중에 보시면 다 아시게 되겠지만, 바로 죄사함을 받는 것과 자신이 깨끗하게 되는 것을 구분하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을 끝까지 다 들을 수 있다면 속죄와 구원에 관한 거의 모든 의문점들은 다 해소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나누는 말씀이 죄사함과 구원에 관한 모든 궁금증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풀어준다거나 혹은 가장 바르게 해석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가르쳐준 부분까지만 우리는 이해하고 또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2. 사람은 회개해야만 죄용서를 받을 수 있는가?

  사람은 진정 회개할 때에라야 죄용서를 받게 되는가? 대부분의 성도들은 회개를 해야만 지은 죄가 용서받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문제를 구원과 연관지어 질문해 보면, 대부분 성도들은 믿기만 해도 구원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그때 함께 죄용서를 받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것이 성경적인 가르침인 것인? 회개해야 죄용서를 받는가 아니면 예수님을 믿기만 해도 죄용서를 받는 것인가?

  사실 우리가 성경을 보고 이해할 때에 주의할 점 한 가지는 성경의 어떤 한 구절만을 똑 떼어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 전체에서 그 구절과 저촉되는 구절이 있드면, 한 개의 구절만으로 어떤 논리를 세워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죄사함의 문제는 두 가지가 다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회개해야 죄사함을 받는다는 말씀도 있으며, 동시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죄사함을 받는다는 말씀도 있는 것이다.

  먼저, 성경 말씀 가운에는 우리가 회개할 때에 비로소 죄사함을 받는다고 되어 있다는 것이다. 

행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눅24: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그런데, 성경의 다른 곳에 있는 말씀들을 보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주인이 바뀐 사람도 죄사함을 받는다는 말씀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골로새서 1:13~14의 말씀을 따르면,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자가 그 아들 안에서 속량 곧 죄들의 용서를 받는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말씀에는 회개해야 죄사함을 받는다는 말씀이 들어 있지 않다. 또한 엡1:7의 말씀을 살펴보아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속량 곧 죄사함을 받는다고 되어 있다. 이러한 종류의 말씀은 좀 더 성경에 있다. 아래의 말씀들을 보라. 

골1:13-14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엡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벧전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히9: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다. 사실 사람이 구원받는 문제는 먼저는 죄들을 사함받아야 비로소 가능하다. 그런데 골1:13~14의 말씀이나 엡1:7 등의 말씀을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속량 곧 죄들의 용서를 받는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엡2:8~9의 말씀과 연관지어 살펴보면, 구원의 문제는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분이 나의 죄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 그가 믿는 믿음에 달려있다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 

엡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이는 사람이 믿음을 통해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는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자신이 지은 낱낱의 죄를 다 고백해야만이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이 아님을 우선 확인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사도행전 10~11장에 나온다. 그것은 이방인이었던 고넬료의 집에 베드로가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때 그들이 베드로가 전했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듣고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행10:43-44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그런데 이때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은 자들은 대부분 이방인 불신자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자리에는 이미 하나님을 믿고 있었던 고넬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의 집안의 사람들과 그의 친척들과 그의 가까운 친구들도 같이 와 있었기 때문이다(행10:2,24). 그런데 이때 고넬의 집에 있었던 불신 이방인들이 베드로의 설교말씀을 들을 때에 죄사함도 받았고 동시에 성령도 받았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자신이 과거에 지었던 죄들을 하나하나같이 자백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사함을 받았고 성령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사실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죄사함과 맞물려 중요한 변수가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죄사함을 받았더라도 하나님의 생명을 받지 못했다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것이다(요3:5). 이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주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물'이란 회개를 가리키는 것이며, '성령'은 생명주는 영이신 보혜사 성령을 가리킨다는 것이 주된 해석이다. 고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죄들을 사함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명은 원래 하나님에게만 있었던 것인데 그것이 아들에게 주어졌으며(요5:26), 아들은 자신의 육체 안에 들어있는 그 생명을 해방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다음, 그 생명을 성령을 통해 믿는 자들에게 보내주시고 있다(고전15:45). 그러므로 예수 믿는 자들이 성령을 받을 때에 비로소 아버지의 생명을 받아 거듭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자식)가 되는 것이다. 고로 자기 안에 성령이 없는 자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결국 사람은 죄사함을 받아야 하고 그리고 또한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야 최종적으로 구원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원은 엡2:8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믿음을 통하여 주어진다고 나와 있다. 예수님이 과연 누구시며, 그분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믿게 될 때에 그 사람의 죄가 용서함 받게 되고 그때 성령을 받아서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고로 우리가 여기서 정리할 수 있는 사실은 사람이 처음 믿을 때에는 죄사함도 받고 성령도 동시에 받는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처음 믿을 때에 믿음을 통하여 죄들도 용서 받고 성령도 받는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3.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지은 죄들은 자동적으로 용서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치자. 그래서 그가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로 오신 분이심을 믿고, 그분이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음을 믿었다고 치자. 그리고 그분이 부활승천하여 생명주는 영이신 성령이 되셔서 믿는 자들에게 들어오심으로 자신도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다고 치자. 그러면 그는 분명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가 처음으로 자신이 영원히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주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행16:30). 그러나 사람은 믿는 날 죽지 않는다. 그 뒤에서 수년을 수십년을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온 몸이 깨끗해졌어도 발은 더럽혀지는 것이다(요13:10). 그렇다면 예수 믿고 난 뒤에 지은 죄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 중에 상당수는 예수님만 믿으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흘리신 피로 인하여 죄용서를 이미 다 받았기 때문에,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 용서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지은 죄들에 대해서는 굳이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죄가 천국가는 데에는 지장을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다. 요한계시록의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지은 죄들은 회개해야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즉 첫째로, 예수 믿고도 회개하지 않은 죄가 남아 있는 자는 못에 던져진다고 했다(계21:8). 그리고 둘째로, 예수님을 믿고 있는 자인데도 지금 죄를 지고 있는 자는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계21:27) 성밖으로 던져질 것(계22:15)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계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계22:15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지은 죄들은 반드시 예수님의 피로 씻어서 자신의 더럽혀진 겉옷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계22:14, 7:14). 고로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죄들을 처리하지 못하는 자는 그 죄 때문에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었던 자라도 죄와 마귀에게 지는 자는 하늘에 있는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질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3:5). 고로 예수님을 믿었던 자라도 그 뒤에 자신이 지은 죄들은 반드시 처리하여 구원받기를 바란다. 

 

4.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지은 죄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지은 죄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그것은 그 죄를 자백함으로 용서를 받아야 하고 깨끗함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이렇게 가르쳐주었다.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렇다. 여기서 '우리'라는 대상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가리킨다. 사도 요한을 포함하여 이미 생명을 가진 자들을 가리키기 때문이다(요일1:1~2). 그런데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믿었던 자들이 죄를 지었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주었다. 그것은 반드시 지은 죄를 자백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이 어떠어떠한 죄를 지었다고 낱낱의 죄를 시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때에 2가지 일이 일어난다고 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그가 지은 죄들을 용서받는다고 했다. 그런데 이것은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즉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행위책으로부터 그 죄가 없다고 선언하신다는 것이다. 참고로 '용서하다'는 말은 죄를 완전히 없애버린다는 뜻은 아니다. 이 단어는 '아피에미'라는 단어로서, '내버려두다. 떠나게 하다, 보내버리다, 면제하다, 탕감하다. 용서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런데 그 기본 의미가 '내버려두다'이다. 그러니까 죄를 지었으나 그가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피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믿었던 자이고 자백했기 때문에 죄를 없는 셈 쳐주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죄를 자백함으로 용서를 받는 것은 사실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하나님께서 그 죄를 처리해주는 일이다. 그러면 자기 안에 이미 생명을 가지고 있고 또한 죄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자신이 지은 죄들을 낱낱이 자백한 자에게는 또 하나의 결과가 주어진다고 했다. 그것은 그가 모든 불의(의롭지 못한 것들)로부터 깨끗함을 받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죄를 자백하면 죄용서도 받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깨끗함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깨끗함을 받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로서, 죄로 더럽혀진 우리의 몸이 깨끗함을 받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어떻게 더럽혀지는 것이고 또한 자백했을 때에는 어떻게 깨끗하게 되는 것인가? 그것은 악한 영들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악한 영들로 인해 더럽혀지고 또한 깨끗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악한 영들은 그 속성이 더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귀신들을 가리켜 '더러운 영'이라고 했다(막1:25).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짓게 되면, 더러운 영이 우리 몸에 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몸이 더렵히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하늘의 행위책에서 우리의 죄목이 지워질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우리 몸에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도 떠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깨끗함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지은 죄들은 반드시 그 죄들을 낱낱히 자백함으로 죄용서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몸이 깨끗함도 받아야 하는 것이다. 

 

5. 왜 우리는 예수 믿기 전에 지었던 죄들이나 조상들이 지었던 죄를 자백하는 회개를 해야 하는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에, 자신의 죄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 때문에에 자신의 죄는 다 용서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지은 죄들을 자백하지 않는다. 그러나 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죄를 용서받는 것과 깨끗함을 받는 것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죄를 용서받는 것은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깨끗함을 받는 것은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죄가 없다고 선언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깨끗해지는 것은 우리 몸에 있는 악한 영들을 떠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 죄용서를 받고 성령을 받은 자라도 반드시 예수 믿기 전에 지었던 자신의 죄들을 자백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악한 영들이 우리 몸에 속에 남아 있어서 온갖 저주들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자가 되었어도 여전히 가난에 허덕이게 되고, 질병에서 시달리게 되고, 자신과 자녀의 삶에 저주가 가득한 것이다. 그리고 그 죄가 우상숭배와 관련된 것이라면 그 죄값으로 인하여 악한 영들은 자기의 후손 3~4대까지 내려간다. 그래서 자기의 후손들을 괴롭힌다(출20:5). 그런데 요즘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예수 믿기 전에 지었던 죄들을 자백하는 것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었어도 여전히 가난과 질병과 저주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아니. 이러한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특히 자신이 예수 믿기 전에 지었던 죄들 뿐만 아니라 자기의 조상들이 지었던 우상숭배의 죄들까지도 함께 자백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과 자신의 후손들이 가난과 질병과 저주 가운데서 헤매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교회에서 말씀하는 '회개기도문'을 가지고 기도해보라. 이것은 자기와 자기의 후손들을 위해서 매우 유익한 것이 될 것이다.

  한편 예수 믿기 전에 지었던 죄들이나 조상들이 지었던 죄들 때문에 우리가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조상들이 지은 죄로 인하여 내가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내가 예수 믿기 전에 지었던 죄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였던 그때에 다 용서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죄들로 인해 악한 영들이 우리 몸 속에 들어와 있어 내 몸이 더럽혀진 채 있는 것이다. 그러면 아무래도 악한 영들로 인하여, 내 속에 있는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할 것이요, 자신의 몸이 깨끗해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난 후에 지은 죄들은 자백해야 하겠지만 예수 믿기 전에 지었던 죄들과 조상들이 지었던 우상숭배의 죄들로 자백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6. 예수 믿고 난 후에 지은 죄들 중에 하나라도 회개하지 않는 죄가 남아있으면 그는 구원받지 못하는가?

  어떤 믿는 이들 중에는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도 지은 죄들 중에 만약 한 가지라도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다면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은 구원받을 수 없느냐고 질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2가지 죄에 관하여 놀라운 장치가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될 때에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께서 지은 죄를 책망해 주심으로 우리가 회개하는 것을 도와주시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께서는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에 무슨 일을 하시는가? 그것은 죄를 깨닫게 해주고 죄를 책망하시어 즉시 죄를 회개하도록 도와주신다(요16:8).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이들 가장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성령님이시다. 성령께서 죄를 책망하실 때에 해가 지기 전에 죄를 자백해야하기 때문이다. 또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잘 따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행여나 성령을 근심하게 하거나 성령을 소멸시켜 버린다면 그가 죽는 날에 성령께서도 그를 떠나가실 것이기 때문이다(엡4:30, 살전5:19). 이는 성령께서는 원래 이 다음 시대(세상)까지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 계시도록 보내주신 분이 지만(요14:16), 성령의 인치심은 우리의 몸이 구속받는 그날까지 유효한 것이기 때문이다(엡4:30).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에 민감해야 한다. 그분이 죄를 책망하실 때에 즉시 죄를 자백함으로 용서를 받고 깨끗함을 받아야 한다. 이처럼 예수 믿고 난 후에 지은 죄들은 성령께서 책망하심으로 그 죄를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진정 그가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라면 그는 성령의 책망하심을 따라 죄를 자백해야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설령 우리가 지은 죄를 다 자백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늘 회개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면 죽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 죄를 다 용서해주시기 때문이다. 그것의 예표는 바로 레위기 16장과 히브리서 9장에 나오는 대속죄일 제사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에는 속죄제사를 드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1년에 한 번은 온 회중의 죄를 한꺼번에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라고도 하셨다. 이것이 바로 일년에 한 차례 있는 '대속죄일 제사'다. 이 제사는 이스라엘 온 회중이 지은 죄를 한꺼번에 사하는 제사다. 그러므로 평소 때에 속죄제사를 드려왔던 자려면 혹시 알지 못해서 혹은 깨닫지 못해서 제사하지 못했던 죄라도 그때 한꺼번에 용서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약에 들어와서도 우리가 매일 성령의 음성을 쫓아 죄를 회개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은 자라면, 혹시 미처 회개하지 못해 남아있는 죄라 할지라도 우리가 죽는 날에 하나님께서 그 죄를 다 용서해주신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지은 죄가 한 개라도 남아있어서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면, 사실 이 세상에서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한 사람도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생각나는 모든 죄를 자백하는 회개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자는 하나님께서도 아시고 그날에 우리의 모든 죄를 죄를 다 삭쳐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체험적으로 볼 때에, 우리가 진실로 회개할 때에 이전에 죄를 지었으나 회개하지 못했던 다른 죄들도 한꺼번에 용서된다는 측면도 간과할 수는 없다. 

 

7. 나오며

  예수께서는 최종적으로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22장의 말씀을 통하여 믿는 자들에게 자기의 두루마기(겉옷)를 빠는 자가 복이 있다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다(계22:14). 자백하는 회개를 통하여 자기의 더렵혀진 옷들을 예수님의 피로 씻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자는 이 땅에서 자기의 몸이 깨끗하게 될 뿐만 아니라, 죄용서도 동시에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자백하는 회개를 통해 먼저는 악한 영들이 자기의 몸으로부터 떠나갈 것이다. 또한 자백하는 회개를 통하여 하늘에 있는 행위책에서도 그 죄가 용서됨으로 그는 생명나무에 나아갈 수 있으며 열두 진주문들을 성에 들어가는 권세도 주어질 것이다. 그렇다. 이처럼 죄를 회개하는 일이야말로 예수 믿는 자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구원과 형통의 관건이 되는 것이다. 예수 믿기 전에는 예수님을 믿은 것이 구원의 최대의 관건이라면, 예수님을 이미 믿고 있는 자들은 회개가 구원의 최대의 관건이 되는 것이다. 회개하라.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지었던 죄들이나 지금 짓고 있는 죄들이나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만 새 예루살렘 성에서 쫓겨나는 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는 불못에 던져지는 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예수 믿기 전에 지었던 죄들이나 조상들이 지었던 죄들까지도 회개하라. 그러면 우리 안에 들어와 역사하고 있는 악한 영들이 떠나감으로 우리는 점점 더 깨끗해질 것이다. 그러면 양안이 열려 예수님을 볼 자도 있을 것이다. 천사를 볼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은 태어날 때부터 저주 가운데서 고통받는 일이 절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조상들의 죄를 회개 안 했다고 해서 지옥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죄까지도 회개한다면 우리에게는 매우 큰 유익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 땅에서 부요하게 살 수 있으며, 건강하게 살 수 있고, 자신의 앞 길이 형통하게 열려지기 때문이다. 영육간에 유익한 회개생활, 정말 우리에게는 필수적인 삶이 아닐 수가 없다. 

 

 

2022년 09월 30일(금)

정병진목사

 

믿는 이들 중에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었지만 예수께서 그녀의 죄를 용서해주셨다는 말씀을 듣고는, 예수께서는 어떤 죄를 짓더라도 다 용서해주시는 분이라고 쉽게 판단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러한 용서는 앞으로 우리가 어떤 죄를 지어도 좋다는 허용인가, 아니면 과거에 지은 죄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으니 주님께서 대신 담당해주시겠다는 뜻인가? 그런데 오늘날 개인구원예정론과 성도의 견인교리와 맞춰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들이 더러 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별 상관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믿는 자가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았을 때에는 어떻게 되는가?

2020-05-10(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죄용서, 과연 죄를 지을 자유에 대한 선언인가?(요8:1~11)
https://youtu.be/EhaRYWjomnM [혹은 https://tv.naver.com/v/13765139 ]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 사람을 대하시는 방식에 커다란 변화가 생겨났다. 그것은 언제였는가? 그것은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인가? 우리는 지난 주일낮예배를 통하여 그 말씀을 들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심판의 하나님에서 사랑의 하나님으로, 정죄의 하나님에서 해방의 하나님으로, 징계의 하나님에서 용서의 하나님으로 바뀌었음을 들었다. 이는 곧 구약적인 경륜이 신약적인 경륜으로 바뀌었음을 뜻한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무서운 하나님에서 긍휼을 베푸시는 사랑의 하나님으로 바뀌었음을 배웠다. 그렇다면, 이제 무슨 죄를 짓더라도 예수님께 나아와 죄를 고백하기만 하면 용서받게 되는 시대가 되었으니, 어떤 죄를 짓더라도 다 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죄용서가 과연 우리가 미래에 죄를 지어도 좋다는 자유에 대한 선언인지를 살펴보고자한다. 오늘 우리는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위대한 하나님의 경륜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영악한 존재인지를 적나나하게 들여다볼 것이다.

 

2. 예수님의 죄용서에 대한 선언은 과연 미래에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선언인가?

  예수께서 오심으로 사실 엄청난 변화가 생겨난다율법의 시대에서 복음의 시대로 넘어가기 때문이요, 정죄의 시대에서 용서의 시대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던 율법은 크게 2가지를 말하고 있었다. 하나는 하나님의 법을 통하여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사람은 율법을 통해 자신이 죄인인지 의인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도덕법인 "십계명"법은 자신이 어떤 죄를 짓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게 해주는 율법의 근간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20)"이라고 언급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율법은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시며 장차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를 알려준다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셔서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를 예표하고 있는 또 다른 법도 역시 율법의 하나인 것이다. 특히 이것들은 의식법으로 주어진 것들로서 곧 안식일법을 포함한 절기법, 정결법과 음식법과 제사법들이다. 이러한 의식법들은 장차 하나님께서 보내주실 메시야가 어떤 존재이며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를 알려주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보자. "안식일"은 예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죄짐을 짊어지고 가는 모든 인생들에게 참된 안식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예고하는 법이다(마10:28~30). 그리고 유월절에 희생당하는 "어린양"은 인류를 대신하여 죽으실 속죄양이 누구며 어떻께 죽을 것인지를 알려주는 법이다(고전5:7). 그런데 바로 그분 곧 인류를 구원할 구원자로서 예수께서 오신 것이다. 고로 예수께서 오심으로 인하여, 구약의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것이 성취되기에 이른다. 그렇기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다 이루셨다"(요19:30)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때 예수께서는 사람이 율법을 지키지 못함으로 받게 될 온갖 종류의 저주와 형벌을 다 받으셨다. 다시 말해, 신22:22~23에 의거하여 예수께서는 저주의 나무(십자가)에서 죄값을 치르셨고 거기서 숨을 거두셨다(갈3:13). 그리하여 그후부터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 안에 있으면,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놀라운 혜택을 다 누릴 수가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통하여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바로 그 목적을 드러내셔야 했다. 그중에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 바로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 사건이다. 그 여인은 이른 아침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손에 질질 끌려왔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그녀를 예수님 앞에 세워놓고, 율법에는 이런 여자들은 돌로 쳐죽이라고 했는데(레20:10, 신22:22),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묻는다. 참 난감한 질문임에 틀림없다. 만약 그녀를 돌로 치라고 한다면 예수께서는 율법을 준수자가 되지만, 이 세상에 있는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의 사역과는 상충되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며, 만약 그녀를 살려주라고 명령한다면, 율법을 어기는 사람이라고 매도되어, 그가 메시야가 아니라고 비난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누구신가? 그분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요,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한 분 하나님이 아니신가? 그러자 예수께서는 허리를 굽혀 땅을 글자를 쓰시더니 일어나 "너희들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7)"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어른으로부터 시작하여 한 사람씩 뒷걸음치더니 다 도망치고 말았다. 왜냐하면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더 많이 죄를 짓기 마련인데, 양심의 가책을 받은 그들이 더이상 그곳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했다. "여인아, 너를 정죄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그리고 그 여인 대답하였다. "주여, 아무도 없나이다". 그러자 예수께서도 "나도 너를 유죄판결하지 않는다. 너는 가서 지금으로부터 더이상 죄를 짓지 말라(요8:11)"고 하셨다.

  그렇다면, 그날, 예수께서 그녀를 유죄판결하지 아니하고 죄를 용서해준 것은 과연 앞으로도 어떤 죄를 지어도 좋다는 허용의 말씀인가? 아니면 과거의 죄값은 예수께서 담당할 것이니 앞으로는 죄를 짓지 말도록 하라는 당부인가? 그렇다. 예수께서 그날 그 여인의 죄를 용서해주신 것은 그녀가 지었던 과거의 죄들에 대한 용서인 것이었지, 앞으로 마음껏 죄를 지으라는 허용이 아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과거에 지었던 죄들에 대한 값을 예수께서 대신 담당하심으로 용서해시겠다는 말씀인 것이지, 앞으로 죄를 얼마든지 지어도 좋다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만약 이 여인에 과거에 지었던 죄 때문에 그순간에 돌에 맞아 죽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녀는 결국 구원받지 못하고 말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품으신 계획들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고로, 이제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와 달리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곧 대신 죄값을 감당할 것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고 죄용서를 구하여 죄사함을 받으라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은 어떠한가? 예수님을 믿으면 어떤 죄든지 다 용서받을 수 있다고 하니, 이제 자신은 어떤 죄를 짓더라도 다 용서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고는 죄를 지어도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되고 있는 것이다.

 

3. 미래에 죄를 지을 죄들에 대한 용서까지 더 확고하게 만들어주는 2가지 교리는 무엇인가?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위와같이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믿고 과거의 죄를 용서받은 자에게 교회가 너무나 쉽게 사죄권을 남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과거와 현재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죄까지도 다 용서받은 것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누구든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고 지은 자범죄들을 회개할 때에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지, 한 번 믿은 것으로 인하여 미래의 죄까지도 다 용서함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계속해서 갖도록 만들어주는 잘못된 교리가 2가지가 있으니, 그것의 하나는 개인구원예정론이요, 또 하나는 "성도의 견인"이라는 교리다. 먼저, 개인구원예정론부터 살펴보자. 사실 개인구원예정론은 중세를 열었던 신학자 어거스틴이 최초로 만들었고, 종교개혁자 칼빈이 완성한 바 있는 교리다. 그러나 성경에는 개인에 대한 구원을 만세전에 예정해놓았다는 말씀은 단 하나도 없다. 다만, 어떤 개인이나 국가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쓰시겠다고 정해놓은는 사역적인 예정은 더러 있다. 그러나 다시 말씀드리지만, 개인에 대한 만세전 구원예정은 결코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자를 구원하기로 불특정다수를 예정해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빈이 개인구원예정론을 완성함에 따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칼빈의 교리는 세뇌되기 시작하였고, 결국 죄를 지어도 자신을 구원받을 것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두번째로, "성도의 견인교리"가 성도들의 구원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 번 예수님을 믿은 자는 결코 구원에서 탈락되지 않으며 어떠한 시험과 난관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뚫고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는 교리를 맹신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갑게도 사람의 구원은 믿는 그 순간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기는 하지만, 구원은 죽는 그날에 완성된다는 것을 잘 모른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믿어 이미 구원을 받은 자라고 할지라도, 다시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을 때에는 죽는 그날에, 그에게서 성령이 떠나감으로(요14:16), 그가 버림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고전9:27). 그날에 이기는 자가 되지 못한다면, 이미 생명책에 기록된 자신의 이름일지라도 그날 지워질 수도 있는데 그것을 잘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계3:5). 다시 말해, 한 번 예수님을 믿어 중생한 자는 결코 죽는 그날까지 성령께서 떠나가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죄를 짓게 되면 그날에 용서받지 못한 채 멸망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히10:26~29).

 

4.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경고하시는 2가지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믿는 이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남겨두신 2가지 경고장치가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첫째는 징계다. 하나님께서 죄를 짓는 자들에게 징계를 내리시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나, 십계명법을 그대로 남겨두시어, 하나님과 사람을 향하여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 징계를 내리시는 것이다. 징계에는 질병과 가난, 저주와 고통, 귀신들림 등의 다양한 형태가 있다. 예를 들어, 요한계시록 2장에 보면, 두아디라교회의 성도들이 거짓선지자 이세벨의 가르침을 따라 음행을 저지르게 되고 예수 믿으니까 괜찮고하면서 우상의 제물을 먹어 우상숭배행위를 자행하자, 주님은 그 교회를 엄히 책망하신다. 만약 그녀가 만약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녀를 침상에 던질 것이라고 경고하셨고, 그녀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자도 자신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겠다고 말씀하셨으며, 그녀의 자식들을 살해할 것이라고까지 경고하셨다(계2:20~23). 사실 신약시대 이후의 성도들은 죄를 짓는다고 해서 즉시즉시 징계를 받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받을 징계들을 이미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감당해 버리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죄를 지어놓고도 그것이 지옥에 떨어지게 하는 죄인 줄로 모르고 죄를 짓는 성도들이 있으니까, 하나님께서는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여러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징계를 내리시는 것이다. 그것은 그렇게 해서도 죄인들이 돌이켜 회개하여 구원받으라고 하시는 안타까움의 마지막 표시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징계가 쏟아지면 기뻐하고 감사하라. 그리고 철저히 자신의 죄를 회개하라. 그래야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요한복음 5장에 보면, 38년된 중풍병자가 나은 후 그를 만나 주님께서 들려주셨던 말씀이 있다.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5:14)" 이 말은 무슨 뜻인가? "내가 너를 치료해준다마는 다시 네가 죄를 짓게 된다면 더 심한 것이 생길 수도 있다"는 뜻이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치료불가능한 38년이나 된 중풍병자를 말씀 한 마디로 치료해주셨다.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병에서 낫게 되었으니 앞으로 죄를 지어도 좋다는 허용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 더이상 죄짓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죄를 짓게 된다면 주님께서는 더 심한 것을 허락하실 수도 있는 것이다. 고로, 신약의 징계는 회개해야 할 사람이 회개하지 않고 있거나 회개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자를 위한 최후의 경고장치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구원받은 자도 탈락할 수 있다는 여러가지의 경고의 말씀들이다. 다시 말해, 믿는 자라도 계속 죄짓고 회개하지 않을 시에게는 회개할 기회를 영영 안 주시겠다고 예고하심으로 분명하게 그들이 회개할 것을 경고하신 것이다. 특히 이러한 구원탈락가능성에 대한 경고는 히브리서, 야보고서, 유다서와 공관복음서와 요한계시록 등에 집중되어 있는데, 예수께서도 무리들에게 열매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불에 던져져 살라질 것이라고 말씀하셨고(마7:19), 주의 이름으로 귀신축사를 하고, 예언하고, 능력을 행했어도 그날에 주님으로부터 "나는 너를 모른다"고 할 자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셨다(마7:22~23).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도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못보고도 떨어져나간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다고 경고하였다(히6:4~6). 그런 자는 버림을 당하여 불살라질 것이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접했더라도 고의로 계속해서 죄를 범했을 때에는 그를 위하는 속죄제사가 없을 것이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남아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였다(히10:26~27).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도 첫사랑을 회복하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는 자는 촛대를 옮겨버릴 것이라고 경고하셨고(계2:5), 생명책에서 이름이 기록된 자라도 그 이름을 지워버릴 것이라고 경고하셨다(계3:5). 고로 우리는 이미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이지만 구원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기억하고 날마다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할 것이다. 회개하기만 하면 누구은지 어떤 죄든지 다 용서를 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5. 나오며

  오늘날의 성도들은 이미 예수께서 구속사역을 완성하여 인류의 모든 저주와 질병과 고통까지도 다 담당해버린 이후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우리가 죄를 짓는다고 해도 징계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더 나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러다가 죽는 날에 성령께서 나를 떠나가실 수가 있기 때문이다. 죽는 날에 버림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범죄했을 때에 내게서 징계가 나타나는 사람이라면 정말 하나님께 감사할 사람이다. 적어도 그것이 내가 사생자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신약성경이 얼마나 경고하고 있는지를 우리는 항상 마음에 두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을 죄에 더럽혀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혹시 실수해서 넘어졌다고 하면 즉시즉시 일어나 회개를 통해 그 죄를 씻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죽는 날에 그만 멸망으로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번 중생을 얻어 구원받은 자는 이 세상 끝날까지 성령은 떠나가지 아니하신다고 약속하셨다(요14:16). 그러나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는 죽는 날 버림받는다는 것을 명심하고서, 날마다 죄를 회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것은 죄를 지어도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앞으로 자유롭게 죄를 지으라고 허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하는 것이다. 잘못 행하다가 큰 코다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2020년 05월 10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수많은 자범죄들은 언제 한꺼번에 깨끗히 씻겨지며 용서함받는가?(요일1:5~7)_2019-07-11(목)

https://youtu.be/AMIWs43RODQ

 

1. 사람은 자신의 죄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사람의 죄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죄들(sins)이 있습니다. 즉 자기 안에 들어있는 죄된 본성이 밖으로 표출되어 나타나는 열매들로서, 죄들이 있는데, 이것을 영어로는 "죄들(sins)"이라고 부르며, 신학적으로는 "자범죄"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또 한 종류의 죄가 있으니 그것은 죄(Sin)입니다. 이것은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사탄의 본성이 사람 안에 주입된 것으로 그것을 "죄된 본성(sinful nature)"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는 "원죄(original Sin)"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로마서를 통해서 이것을 구분하자면, 롬1:1~5:11까지는 죄들(자범죄)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롬5:12~8장까지는 죄(원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어성경을 펴놓고 한 번 비교해 보십시오, 처음에는 죄들(Sins)이 나오지만 나중에는 죄(Sin)가 나올 것입니다.

 

2. 사람은 자신의 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사람은 자범죄(sins)와 원죄(Sin)를 다 처리해야 합니다. 그럼, 자신의 자범죄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그것은 회개함으로 용서함을 받아야 합니다. 즉 사람은 자신이 지었던 죄들을 자백함으로 회개할 때에 자신이 지었던 죄들을 용서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즉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께서 2천년전에 골고다에서 흘리신 피가 자신의 죄를 용서해줄  줄을 믿는 믿음 안에서, 자신의 죄를 자백할 때에 용서받을 수가 있습니다(요일1:9). 하지만 죄(Sin)는 처리방법이 다릅니다. 죄(Sin)는 아담이 사탄의 말을 들었을 때에 이미 사람의 육체 속에 이미 들어와 사람의 본성이 되어버린 죄성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우리 인간의 육체가 깨져서 죽는 날까지 자기 속에 계속해서 남아있는 죄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죄된 본성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우리는 반드시 죄된 본성이 나를 지배하는 옛사람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박아 죽음에 넘겨야 합니다. 그래야 더이상 죄된 본성이 올라오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게 되면 우리는 죄(Sin)로부터 완전한 해방을 받게 됩니다. 한 마디로, 자범죄는 자백함으로 용서받으며, 원죄는 옛사람을 죽음에 넘기움으로 해방받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3. 자백하지 않은 자범죄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럼, 자백하지 않은 자범죄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원칙은 모든 자범죄들은 고백할 때에 용서함받게 됩니다(요일1:9). 그러나 우리가 모든 자범죄들을 다 낱낱이 회개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 일인지도 모릅니다. 다 기억이 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람이 지은 자범죄들을 한꺼번에 깨끗히 씻김을 받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둠에서 벗어나 빛가운데로 나아와 그분과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요일1:7).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철저히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게 되며,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고 그분이 베풀어주시는 속죄의 은총 앞에서 한없이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한 마디로 "본질적인 회개"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에는 속죄의 놀라운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혹 그때까지 고백하지 못했던 자범죄라도 다 한꺼번에 다 씻겨지는 체험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자범죄들을 다 자백하지 않아도 용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로는 모든 자범죄들을 낱낱히 회개해야 합니다.

 

4. 만약 본질적인 회개를 하지 않는 자들은 어떤 상태로 살아갑니까?

  만약 어떤 사람이 본질적인 회개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는 자신의 죄가 정말 자백할 때 용서받았는지에 대하여 확신이 잘 서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의 본질적인 죄를 회개했던 자는 자신의 죄가 정말 깨끗하게 씻겨졌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기에, 자신이 죄를 자백하면 그 죄들이 깨끗하게 씻겨진다는 것을 알고 회개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일생에 몇 번 있지 않는 일이기에, 우리는 평소 때에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는 죄들을 늘 자백함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회개는 자범죄를 회개하다가 어느날 불현듯 찾아오게 됩니다. 그러한 날이 갑자기 오게 되는 거지요. 그때에는 사람마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대개 눈물이요 콧물이 폭포수처럼 흘러서 쏟아지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의 속죄의 은총에 감사가 넘치도록 넘치게 됩니다.

 

5. 자신이 이러한 본질적인 회개를 했다는 것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습니까?

  사람은 일생에 한 두 번 정도 이러한 본질적인 회개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세상이 완전히 달라보입니다. 자연만물이 얼마나 영롱하고 아름답게 보이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었던 지난날의 모든 죄가 다 용서함 받았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그때부터는 어떤 상황이 발생해도 주님을 부인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나 자신의 죄를 위해 엄청난 희생의 댓가를 치렀는데, 그분을 모른다고 부인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더불어 하나님께 보은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분이 베풀어주신 구속의 은총에 보답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는 주님께 자신의 물질을 드리고 시간을 드려도 그것이 아깝지가 않습니다. 더 드리지 못해서 죄송한 마음 뿐이죠. 이것이 바로 본질적으로 죄를 회개한 자가 누리게 되는 참된 은총이요 기쁨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러한 체험이 함께 하길 빕니다.

 

2019년 7월 11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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