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할 때에 최대의 적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꼭 이렇게까지 회개해야 하는가?" 하는 의구심도 있을 것이고, 가족이나 지인들의 반대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회개하다보면 같은 죄를 계속해서 반복해야 하니 지루함과 답답함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많이 졸립게 된다는 것이다. 하품이 많이 나온다. 왜 회개하려고 하면 이렇게 졸리운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늘은 회개할 때에 부딪히는 실제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2022-05-06(금) 금요기도회 제1부

제목: [우상숭배죄회개(15)] 회개할 때 지루함과 졸음을 없애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느1:5~7)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aEEikpWhybM  [혹은 https://tv.naver.com/v/26808150 ]

 

1. 들어가며

  우리는 왜 회개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이 회개하는 데에는 2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그것이 구원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회개와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막1:15). 이때 처음으로 하는 회개는 '회심으로서의 회개'라고 할 수 있으며(눅15:18~20), 그 뒤에 짓는 자범죄를 회개할 때에는 '자백하는 회개'라고 말할 수 있다(요일1:9). 온 몸을 씻었으면 발만 씻으면 되기 때문이다(요13:10). 그리고 또 하나는 죄에 대한 벌(저주)로부터 해방을 받으려면 회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부분 우상 숭배의 죄(1~2계명 어긴 죄)에 해당하며, 그것은 자신이 지은 우상 숭배의 죄라기보다는 조상들이 지은 우상 숭배의 죄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부분의 회개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리하여 이러한 죄를 회개하는 자를 이단이니 삼단이니 정죄하기에 바쁘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는 실재하고 있으며, 거기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는 자는 저주로부터 해방되는 회개에 대해 결코 비방하거나 정죄하지 않는다.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가 죄의 벌(저주)로부터 해방되는 회개를 할 때에 나타나는 증상 중에서 '지루함과 답답함' 그리고 '졸음'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아무쪼록 이러한 방법들이 진실로 회개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작지만 길잡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 회개의 최대의 적(敵)은 무엇인가?

  회개를 하려고 하는 자에 있어서 가장 큰 적(敵)은 무엇인가? 그것은 '지루함'도 아니며, '졸음'도 아니다. 그것은 '의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의심'에다가 조금 더 살을 붙다면 회개 자체를 '거부하는 것(반대)'이다. 즉 회개에 대한 거부와 반대 때문에 사람들은 회개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회개하려고 할 때 가장 큰 반대는 이미 성도라고 불리는 자들의 반대가 제일 크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먼저, 반복적으로 그리고 내가 짓지도 아니한 죄를 회개할 때마다 늘 자신의 마음 가운데 '내가 이렇게 회개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회개의 바른 길일까?'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며, '내가 이렇게 회개한다 정말 내 조상들이 지은 죄가 용서되며, 내 속에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이 나가는 것일까?'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회개의 최대의 적은 '의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반대'는 우리의 의심을 더욱 더 확정하게 만들어 주는 나쁜 조미료와 같은 것으로서, 믿음 좋다고 일컬어지는 분들이 조상의 죄를 회개하는 것에 대해 잘못 되었다고 말한다거나 그것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면 금방 그 말에 동조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회개의 두 번째, 세 번째의 적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지루함과 답답함' 그리고 '졸음'이라고 할 수 있다. 회개 기도문을 가지고 반복적으로 기도하다 보면 같은 기도 제목을 가지고 또 기도해야 한다는 지루함과 답답함이 자기 앞에서 늘 서성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회개할 때 반드시 처리해야 할 것은 '지루함과 답답함'이다. 그리고 이어서 회개할 때 자꾸 터져나오는 '졸음'을 어떻게 이길 것인가 하는 것이다. 

 

3. 회개의 세 번째 적인 '졸음'을 이기는 방법은 무엇인가?

  회개의 최대의 적(敵)부터 시작하여 두 번째 적을 다루고 그리고 세 번째 적을 다루어야 하겠지만, 두 번째 적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 먼저 짧은 세 번째 적으로서 '졸음'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회개할 때면 왜 졸음이 자꾸 그리고 마구 쏟아지는가? 왜 하품이 절로 막 나오는가? 그리고 회개하다 보면 졸려서 내가 과연 어디까지 회개했는지를 헷갈릴 때가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회개하다가 졸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회개할 때에 졸리는 현상은 왜 발생하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은 회개할 때 졸리고 하품나오는 현상은 귀신이 떠날 때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올바른 해답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회개할 때 졸립게 만들고 하품 나오게 하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귀신'이기 때문이다. 물론 하도 오랜 시간 동안 회개하다 보면 졸리울 수도 있다. 그러므로 졸립다는 것을 무조건 귀신 탓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지만 십중팔 졸리는 이유는 자신의 피곤함 때문만이 아니라 기 속에 들어 있는 귀신들의 방해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성도들이 회개하면 이 귀신들이 자기가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졸립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할 때에 졸립다는 것이 느껴지시는 분들은 자기 안에 악한 영들이 아주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을 우선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회개할 때 나타나는 졸림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실제적으로 기도하다가 이런 경험을 하는 자는 다음과 같은 3가지 방법을 적용해 보는 것을 권해 드린다. 첫째, 졸립게 되면 즉시 잠깐이지만 아예 휴식을 취해 버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육체의 피로와 함께 졸리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때에는 차라리 한 10분에서 30분 정도를 맘 편히 쉬는 것이다. 그리고 깨어나서 정신차리고 회개를 하는 것이다. 둘째는 걸어 다니면서, 돌아다니면서 회개를 하라는 것이다. 회개 기도문을 가지고 기도하다 보면 읽었던 줄을 또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도 있다. 눈이 스스로 감겨서 어디를 읽고 있었는지를 갈리는 것이다. 그때에는 더 이상 앉아서 회개하지 말고 일어나서 걸 다니면서도 회개하기를 권해 드린다. 발 움직이고 걸어 다서 회개하면 졸리는 상태가 거의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졸리운 기운이 그만 달아나 버리기 때문이다. 셋째는 똑같은 톤으로 기도문을 읽거나 회개하지 말고, 큰 소리를 내면서 회개하되, 죄지은 인물이 나올 때마다 다른 음색으로 바꾸어 회개하거나, 손동작이나 발동을 하면서 회개하는 것이다. 그러면 졸리움을 이기면서 회개하는 데에 많이 도움이 될 것이다. 

 

4. 회개할 때 지루함과 답답함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실 회개의 최대의 적은 역시 '의심'과 주변의 믿는 자들의 '반대' 때문이다. 이때 주변의 믿는 자들이 회개는 하되 굳이 조상의 죄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겠느냐 하면 주춤하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이미 저주를 다 담당하셨으니(갈3:13) 우리가 받을 저주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는다고 말하면 진짜로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귀신들도 거들어 왜 자꾸 조상들이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하느냐면서 의심을 불러 일으키고 또한 주변의 믿는 자들이 반대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보면 회개를 중단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알 것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는 것은 맞는 말씀이다(갈3:13). 그러나 이것은 일종의 원칙 같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가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진실이자 사실이며 꼭 그렇게 되는 공식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 진술이 사실이 되려면 중간에 밟아야 할 과정이 있는 것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수학 공식이 하나 있다고 하자. 그 공식은 어떤 조건에서든지 그 안에 숫자 값을 대입하기만 하면 항상 똑같은 결과를 산출하게 된다. 그런데 공식을 알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답을 얻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공식에다가 자기 자신을 집어넣어야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집어넣을 때에 비로소 공식값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집어넣지도 않은 사람이 이미 공식에 따라 답이 나왔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마치 배가 고파 있는데, 앞에 놓여 있는 밥을 보면서, 이것을 먹으면 배가 부르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두고 나는 이미 배부르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일단 숟가락을 들어야 배가 부르게 되는 것이지 생각만 하고 원칙만을 되뇌인다고 해서 배가 부르지는 않는 것이다. 죄사함이 이루어지려면 우리의 회개가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회개할 때에 대부분의 성도들은 똑같은 죄목들을 계속해서 읽고 또 읽어야 한다. 그러므로 회개 기도문에 나오는 죄목들이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단조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졸립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잘못된 사고 내지는 사탄이 우리를 회개하지 못하게 만드는 방해 작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이겨내는 자가 결국 회개도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5. 회개할 때 지루함과 답답함을 이기게 해 주는 5가지 실제적인 처방전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똑같은 죄를 반복하며 회개하는 것이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에는 어떤 조치를 취하면 회개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가? 사실 이 문제에 대하여 정답 따로 있지는 않다. 저마다 회개하면서 자기만의 특별한 노하우를 발견하고서 그대로 회개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회개하는 습관을 제대로 바꾸려면 최소 약 1년여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회개하면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보았을 때 효과적이었다고 생각되는 5가지 실례를 함께 나누려고 한다. 

  첫째, 처음에는 무조건 '회개 기도문'에 나오는 한 가지 죄의 제목을 그대로 쭉 읽으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사'의 죄라고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이 부분을 그대로 읽어 내려가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나열해 둔 죄목을 읽으 자기와 자신의 부모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를 다시 마음에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둘째, '회개 기문' 책을 읽을 때에 죄목에 따라 이미 자신이 지었던 죄들이 떠오르게 되면 그때에는 회개 기도문 대로 기도하는 것을 잠시 중단한 채, 그 죄를 통회하면서 회개하는 것이다. 혹은 그때 읽으면서 기억나는 죄가 있는 대목에 밑줄을 그어 놓는 것이다. 그리고 다 읽은 후에 그 밑줄 그어진 죄를 놓고 깊이 회개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직접 경험했거나 자신이 직접 보았던 죄를 중심으로 회개해야 통회 자복하는 마음이 더 생기게 된다. 

  셋째, '우상 숭배 회개 기도문' 책으로 회개를 할 경우에는 한 가지 죄목에 대해 자기 조상의 세대의 수만큼 회개하는 것이다. 그전에는 회개 기도문을 가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회개했다고 한다면, 이번에는 자기의 조상이 지은 우상 숭배의 4가지 죄목을 가지고 하나씩 하나씩 회개하되, 각 대마다 끊어서 한 번씩 처음부터 끝까지 회개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조상의 시조때까지 회개를 하는 것이다. 자기의 시조가 35대라면 35대가 지은 죄까지 35번을 회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회개하는 것은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왜하면 한 세대가 지은 죄에 따라 그들이 지었던 죄의 내용들을 반복적으로 회개하다 보 회개했던 죄를 또 반복해야 하는 지루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1대 부모의 죄부터 회개하기 시작하여, 5대까지 회개하고, 또 10대까지 나누어서 회개하고, 또 20대 30대까지 회개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회개할 수 있다. 그리고 옆에 '회개 기도표'를 놓고 기록하면서 회개하면 회개의 진척도를 볼 수 있어 더 낫다. 참고로, 회개했으면 반드시 '십자가 세우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회개하는 것은 내 속에 있는 악한 영들이 떠날 준비를 시켜 주는 것이요, 십자가를 세우는 것은 그것들이 떠나가도록 명령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넷째, 우상 숭배 회개 기도문을 가지고 회개할 경우에는 각 세대의 조상의 이름과 그의 부인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회개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 조상 3대의 증조할아버지 할머니의 성함이 '정만숙'과 '김상문의 딸 김해 김씨'라고 하면,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친가 3대의 할아버지 정만숙과 그의 부인 김상문의 딸 김해 김씨가 무지하고 무식하여..."이런 식으로 회개를 하는 것이다. 4개의 우상 숭배의 죄에 최소 7번 이상씩 이름을 넣을 수 있도록 '우상 숭배 회개 기도문'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기 조상들의 이름을 기억하면서 회개하게 되고, 그 조상들의 부인들의 이름과 가문까지 기도하게 되기 때문에 상당한 효과가 있다. 즉 그냥 "친가 3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무지하고 무식하여..."라고 기도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영이 잘 빠져나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몸속에 들어 있는 수천 수만의 악한 영들이 지금 누구 죄를 회개하고 있는지 서로에게 묻다가 "바로 너야"라고 지적해 주기 때문에, 그 세대에 들어온 악한 영이 그때 빠져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어느 선조 때에 들어온 영인지를 귀신들도 다 듣고 있기 때문에 누가 떠나야 하는지를 그들도 알고 떠나게 되는 것이다.

  다섯째, 회개 기도할 때 하나님이 보여 주신 환상을 통해 더욱더 구체적으로 지은 죄를 회개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 회개를 하게 되면 기도할 때에 그 세대에 지은 죄가 환상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그러면 그 죄를 놓고 회개하면 더욱더 효과적으로 회개할 수가 있는 것이다. 환상과 꿈은 하나님의 간접적인 계시의 통로이기 때문에, 이것을 회개에 활용하고 적용하는 것도 좋은 것이다. 물론 환상이나 꿈에는 유의미한 것이 아닌 것도 들어 있다. 하지만 진실로 회개하면서 가다 보면 점차 유의미한 환상과 꿈이 나타난다. 사실 요셉도 꿈는 자였고, 다니엘도 꿈꾸는 자였지 않았는가? 그렇다. 깨끗하고 진실한 성도들이 기도하다가 받은 환상 기적은 우리를 더 전문적으로 회개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가져다 줄 것이다. 

 

6. 나오며

  회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수적이다. 회개없이는 천국도 못 들어가고, 저주(죄에 대한 벌)로부터도 빠져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그리스도인들이 될 때에 회심의 회개를 하며, 또한 자기가 지은 자범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회개를 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자기의 조상들이 지은 죄까지 회개해야 하는 데에 나아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 이유는 첫째로 그것은 내가 짓지 아니한 죄라고 생각되기 때문이요, 둘째는 조상들이 지은 죄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적인 실상은 다르다. 십계명의 말씀에 조상들이 지은 우상 숭배의 죄는 3~4대까지 벌하겠다고 주님이 직접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출20:5). 그 벌이 무엇인지를 영으로 살펴보니, 악한 영들이 자기의 몸속에 들어오는 것이요, 자기가 죽으면 그 영들이 자기의 후손에게 내려가는 것이었다. 특히 엄마의 모태에 잉태되는 순간부터 악한 영들이 치고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 이후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치고 악한 영이 들어 있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오직 예수님만 예외이시다). 이것을 두고 아담의 원죄가 유전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자기의 죄 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죄를 다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우상 숭배의 죄를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온갖 저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악한 영들은 저주받은 영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개할 때에는 죄를 지을 때마다 한 마리의 영들이 들어온 것이니, 회개할 때에도 나와 내 조상들이 지은 죄의 숫자만큼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 세대마다 각각 따로 따로 한 번씩 회개를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인 것이다(물론 시간은 훨씬 더 많이 들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기 생각에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할 것이고, 믿는 가족들과 지인들의 반대도 매우 심할 것이다. 그리고 지루함과 답답함과 그리고 졸음과의 싸움도 해야 한다. 하지만 해 보라. 해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회개하여 5년, 10년, 30년을 회개했다고 쳐보자, 하늘은 투명해질 것이다. 내 속은 더할 나위 없이 깨끗해져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내 자식과 손자에게 물려줄 악한 영들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오, 주님, 우리에게도 그러한 날이 속히 오게 하여 주소서!!!"

 

2022년 05월 06일(금)

정병진목사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좋지 않은 가문이나 좋은 않은 혈통을 지녔다면서 비관하거나 불평하는 자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과연 온당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있던 저주도 끊어지는 법인데(갈3:13), 어찌 자신의 현재 상태가 좋지 않다고 그것을 비관만 하고 있을 것인가? 세상에 지질이 못난 자들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자신이 물려받은 혈통적인 조건만을 들이대면서 날마다 불평만을 쏟아내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결코 쓰지 아니하시며 복을 주시지도 아니하신다. 사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자신의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부모의 씨 속에 내가 들어있었고 범죄에도 동참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혈통이 어떻게 후손들에게 유전되는지 그리고 좋지 않은 유전적 조건 안에 내가 속해 있을 때에 과연 어떻게 해야 축복된 인생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지 그래서 장차 구원의 은총을 받게 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들어가며

  이 세상 사람치고 자신이 태어나지고 싶어서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 부모에 의해서 태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태어남의 결정권은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있었기 때문에 출생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주어진 문제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더라도 태중에 아이를 창조하신 분은 오직 조물주되신 우리 주 하나님이시기에, 한 사람 출생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태어나서 보니, 내 부모가 저주받은 가문과 혈통이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아니 내 부모가 축복을 약속받은 가문과 혈통이었다고 또한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만큼은 확실하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구원받는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혈통적인 조건에 따라 결정되도록 놔두지는 않으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구든지 어떤 혈통에서 태어났는지간에 구원의 문제는 개인의 선택에 맡겨두시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노아의 세 아들이었던 셈과 함과 야벳의 혈통에 따른 후손들의 구원의 문제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내가 만약 현재 셈의 후손이었다면 그리고 함의 자손이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노아는 몇 명의 아들을 두었으며, 노아의 아들들의 후손은 어떻게 되었을까?

  노아는 세 명의 아들들을 두었다. 셈과 함과 야벳이 그들이다. 그들이 홍수이전에는 부모의 신앙을 잘 이어받았기에, 온 세상을 심판하는 물의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홍수에 일어난 사건은 그들의 후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 사건은 바로 노아의 포도를 심은 후에 포도주를 먹고 취해 벌거벗은 채 있는 장면을 함이 보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림으로 시작되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벌거벗은 채로 있다는 것을 발설하는 것이 그리 큰 문제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그것은 언약의 계승자인 아비에 대한 모독이요, 아버지의 실수를 떠벌려 떠벌려 공개함으로 집안을 대표하는 가장의 인격과 권위를 매우 실추시키는 일이었다. 함이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는 있었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말이다. 하지만 그것을 떠벌리지는 말았어야 했다. 자식으로 하여금 그것을 보게 한 것은 분명 노아의 실수에 해당한다. 그만 노아가 포도주를 먹되 취하도록 마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부끄러운 모습은 감추는 것이 자식된 도리인 것이지 부모의 실수를 남들도 알게 한 것은 결코 옳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결코 부모를 공경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저렇게 행동해서는 되겠어?"라고 하는 생각 자체가 아버지를 모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함이 떠벌린 것은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행한 것 같지도 않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넷째아들 가나안과 함께 그와 같은 사실을 떠벌린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중에 노아가 술에서 깨어나 노아가 세 명의 아들들에게 예언적인 선포를 하게 될 때에, 노아가 함이 아니라 함의 넷째아들인 가나안을 저주했기 때문이다.

 

3. 윗사람 아니 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위임받은 자에 대한 고발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윗을 보라. 다윗은 이미 자신의 장인이었던 사울왕에게서 하나님의 성령이 떠나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자기를 죽이려고 3천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자신을 추격해 왔는지까지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다윗에게는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몇 번의 기회도 찾아왔다. 하지만 다윗은 그렇게 행하지 않았다. 결코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적이 있던 왕을 해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다윗은 자신의 윗대에서 일어난 잘못된 것에 대해 결코 들추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한 때 사용한 자들에게 대한 권위를 함부로 무너뜨리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울왕을 치는 일은 하나님만이 행하실 일이라고 판단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장자교단이었던 우리 통합측의 어느 교회에서 부자세습에 관한 이슈가 매우 뜨겁다. 어찌되었든지 은퇴하신 목사님이 은퇴후 2년이 지나서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해주었고, 그것이 합법적이었음을 총회재판국의 판결을 통해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제가 보기에도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그 교회를 물려받아 대를 이어 목회할 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러한 일들은 세상사람들의 눈에 보기에도 권력과 부의 대물림이라 판단할 수 있기에, 세습방지법을 그것도 그 교회에서 총회를 열어 교단적으로 통과시켰었다. 그런데 그법이 무효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총회재판국이 잘못된 판단을 내렸기에 재판국의 판결이 무효임을 주장하여 다시 판결하도록 해야 할 것인가? 어떤 분들은 그 교회의 부자세습의 부당성을 확실히 알리기 위해서 교인들에게 싸인을 받아서 투고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틀린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부당한 것이었는지 교인들이 나중에 판단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기독교계의 복음전파를 방해하는 일이었는지에, 나중에 그 교회가 책임져야 할 일이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교회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정리하여 그것을 알리는 일이 과연 해야 할 일인가는 많이 생각해 볼 일이라고 판단된다.

 

4. 혈통적인 조건이 구원에 영향을 미치는가?

  그렇다면, 혈통적인 조건이 자신의 구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 없다고 말할 수 있지만 절대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조건이 안 좋은 것을 물려받는 것이지 그것이 자신의 구원의 운명을 가를만큼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이가 시다고 해서 자식의 이가 시다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믿음과 회개를 통해서 구원이 결정되는 것이지 그것이 부모의 혹은 조상들의 잘못의 대물림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아로부터 저주받은 함의 자손들은 영원히 구원받을 사람이 나오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아니었다. 함의 넷째아들이었던 가나안의 일곱족속 중에서도 여호수아의 정복시기에 살아남은 족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바로 히위족속들이다. 히위족속들은 기브온에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자신의 기지로 여호수아의 군대에 정복당하지 않게 되었고, 이스라엘 중에 남아 나무 패며 물긷는 자가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들은 레위지파의 직무를 대행하는 자가 되었으며, 그들을 일컬어 "느디님사람들"이라고 부르게 된다(대상9:2). 자신이 저주받은 혈통이라고 해서 저주받아 꼭 지옥에 가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한 분만을 섬기는 자에게는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함이 저주를 받기는 했지만 그것은 육적인 저주였지 영적인 저주는 아니었다. 그러므로 함의 자손들 중에서도 구원받은 자들이 많이 나올 수가 있었다. 특히 함의 첫째아들이었던 구스(에디오피아)의 후손들 가운데, 스바여왕이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솔로몬의 아이를 낳음으로 인하여, 그 민족이 유대인(팔라샤유대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다. 특히 사도행전에 보면,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유월절 절기를 지켜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중에 빌립집사를 만나 구원받아서 에피오피아가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사실은 유명한 이야기다. 또한 함의 셋째아들이었던 붓(리비야)의 후손들 중에는 구레네사람 시몬이 있다. 그가 예루살렘에 유월절을 지키러 왔다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된다. 하지만 그의 집안이 얼마후 로마교회의 핵심인물이 된다. 흑인이라고 해서 모두 저주를 받아 지옥가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5. 나오며

  그러므로 자신의 혈통적인 조건을 저주받은 운명이라고 비난하거나 비관하지 말라.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들은 자신의 부모를 공경할 줄 알아야 한다. 부모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이 세상에 태어나 존재하고 있다면 우리는 누구든지 천국자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천국에 들어가느냐 마느냐는 부모가 결정해주는 것은 아니다. 어느정도 영향을 끼칠 수 있지만 그것이 결정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며 구원은 하나님과 일대일인 것이요, 나의 자유의지의 선택에 따른 열매이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알아 구원받기를 원하며 회개하게 이르시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구원받을 기회는 누구든지 열려있는 것이다. 혈통적인 조건이 좋지 않아도 얼마든지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신약에 들어와서, 수로보니게 여인을 보라. 그녀는 바알과 아세라의 우상숭배의 근거지인 두로와 시돈출신이다. 그래도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긍휼함을 받았다. 구약시대에 모압여인 룻을 보라. 그녀는 아브라함의 조카 룻을 통해서 태어난 후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와 재가함으로 남편인 보아스를 만났는데 결국 증손자인 다윗을 보게 되었으니 그녀는 메시야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감사하자. 내 조건을 가지고 불평의 이유를 대려고 하지 말고, 내 조건에 감사할 조건들을 찾아보자. 그러면 나도 아니 내 때에 축복의 사람이자 축복의 조상으로 바뀔 수 있다. 건투를 빈다.

 

2018년 8월 26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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