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31(수) 수요기도회

제목: 요한복음강해(11) 예수께서 행하신 첫 표적과 이 사건이 주는 영적인 의미(요2:1~12)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6AxoOHhg1fE  [혹은 https://tv.naver.com/v/28949313 ]

 

1. 들어가며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맨 처음에 무슨 일로 시작하셨을까? 공관복음서에서는 예수께서 첫 번째 사역을 어떻게 시작하셨으며 또한 그때 어떤 기적을 행하셨는지 명확하게 나오지 않지만 요한복음에서는 그것이 분명하게 나온다. 그것은 갈릴리 가나에 있는 어떤 혼인잔치 집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다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이것을 예수께서 행하신 '첫 표적'이라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대체 물을 포도주로 만든 사건이 어떤 종류의 사건이었길래 사도 요한은 그것이 예수께서 행하신 '첫 표적'이라고 그렇게 힘주어 말하고 있는가? 또한 물을 포도주로 만든 사건이 주는 영적인 의미는 대체 무엇인가? 예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사건은 진정 마리아가 예수님께서 부탁하신 것을 들어주신 일에 불과한가 아니면 더 큰 영적인 의미를 함유하고 있는 것인가? 

 

2. 예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사건은 단순 부탁에 대한 수락인가 아니면 어떤 다른 의미가 있는가?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맨 처음에 행하신 일은 물을 포도주로 만든 일이다. 이것은 갈릴리 가나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것인가? 우리는 여기서 2가지 가정을 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예수께서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가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물을 포도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다. 즉 이것은 마리아의 청을 들어주다가 생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예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일은 이것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표적이라는 것이다. 이 일은 단지 예수께서 어머니의 부탁을 들어준 정도가 아니라 이 사건을 통해 제자들에게 무엇인가를 말씀하시려는 의도가 있으며 또한 예수님 자신에게도 이 사건이 주는 어떤 의미가 있기에 그렇게 했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둘 다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만약 그때 마리아의 청원이 없었다면, 이러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요, 또한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려는 의도가 없었거나 자기자신에게도 어떤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아니었다면 이러한 일을 행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먼저, 예수께서 이 사건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의도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11절에 나와 있다. 예수께서 이 표적을 행하심으로 그분의 제자들의 그분을 믿었다고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사건 직전에 예수께서는 6명의 제자들을 뽑으셨다. 그들 중에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안드레와 이름이 안 나오는 제자(이는 사도 요한임에 틀림없다)가 있다. 그리고 안드레의 전도와 예수님의 부르심으로 인하여 제자가 된 베드로, 요한의 형제 야고보 그리고 예수께서 직접 불러내신 빌립과 그의 친구 나다나엘(바돌로매)이 그들이다. 그런데 이들중 안드레와 요한은 세례 요한을 통해 예수님이 누군지를 간접적으로 들었다. 그것은 그분이 첫째,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자, 둘째, 먼저 계신 이요, 셋째, 성령이 머물러 계신 이이며, 넷째, 성령으로 세례주는 이이자,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개를 받았다. 그런 후에 제자들은 점차로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분을 랍비이자, 그리스도,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기록한 이, 요셉의 아들이며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이스라엘의 임금(왕), 인자라고 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세례 요한의 소개와 자신들이 알고 있었언 것을 바탕으로 한 간접적인 신앙고백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이 진정 누구신가를 알아야 했다. 그것은 예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심으로 인하여, 그분은 못하실 것이 없는 전능자이시자, 만물의 창조자이신 것을 그들이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이어서 예수께서는 자기자신에게는 어떤 목적으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것인가? 우리는 이 사건을 쓰고 있는 사도 요한을 통하여 이 사건이 예수께서 행하신 '첫 표적'이라는 사실을 듣게 된다. 이는 이 표적이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원문상으로 보더라도 이것이 "표적들의 시작"이라고 나오기 때문에, 이 표적은 이어서 등장하게 될 다른 표적들의 샘플이 되며, 또한 그것들과 매우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해준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 사건의 서두에서 아직 당신이 표적을 일으킬 때는 아니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이 기적을 행하셨기 때문에 이 사건은 예수님에게도 매우 큰 의미가 들어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그럼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께서 자신의 때에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표적이라는 것이다. 

 

3. 예수님은 자기자신에게 어떤 의도로 이 표적을 행하신 것인가? 

  이 사건의 발단은 예수의 어머니께서 예수님에게 이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진 사실을 이야기함으로 시작된다. 포도주가 떨어지지 않았다면 아마 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졌고 포도주가 떨어진 사실을 그의 어머니가 예수님에게 이야기함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어머니와 예수님 그리고 제자들은 왜 이 잔치자리에 참여하게 된 것인가?

  우리는 이 사건이 갈릴리 가나에서 일어났으며, 이때 예수의 어머니는 잔치의 주관자로 참여하고 있었고,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잔치에 초청받은 자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이는 예수께서 어머니의 부탁이할지라도 꼭 들어주어야 할 위치에는 있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여기서 잠깐 초대받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누군지를 살펴보자. 제일 첫 번째로 들어갈 제자는 아마도 나다나엘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다나엘은 갈릴리 가나 출신의 제자였기 때문이다(요21:2). 그리고 예수께서 그를 처음 만나셨을 때에 그가 앞으로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그에게 말씀해주셨기 때문이다(요1:50). 고로, 제자들 중에 우선 순위로 초대된 자는 아마도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이었을 것이고, 이어서 다른 제자들도 같이 초대되었을 것이다. 또한 예수님도 이 잔치에 초대되었다. 아마도 예수님은 이 잔치의 주인공과 어떤 인척관계가 있었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예수님의 어머니는 이 잔치에 초대받은 것이 아니라, 잔치의 주관자로서 등장한다. 즉 그녀는 이 잔치의 마실 것들을 담당하는 봉사자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본문에는 또한 '연회장(잔치의 최고주관자)'이 나온다. 그는 이 잔치에서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주관하는 최고 책임자였다. 이때 예수의 어머니는 이 잔치의 마실 것의 주관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만약 포도주가 떨어진 것이 문제가 되었다면, 그것은 예수의 어머니에게는 좀 난처한 상황이 되는 것이고, 총 책임자는 신랑이든지 신부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예수의 어머니는 포도주가 떨어진 문제를 연회장이나 신랑이나 신부에게 말하지 않고 예수님에게 부탁을 한다. 그리하여 이 사건이 예수님과 관련된 사건이 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4절을 헬라어에서 직역해 보자. "[그것이] 무엇입니까?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여인이여! 나의 때(적절한 시간)는 [아직] 다다르지 않고 있나이다" 그렇다. 포도주가 떨어진 일은 사실 마리아의 잘못도 아니며, 예수님의 잘못은 더더욱 아니다. 예수님은 이때 포도주가 떨어졌다면 야단치거나 섭섭해할 입장인 것이지 책임질 입장은 아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말 한 마디가 예수님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들이 포도주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3절). 그때 예수께서는 포도주가 필요하다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반응하셨는데, 이는 '포도주'가 자신에게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알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내 때가 아직 다다르지 않았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사건은 예수님에게도 어떤 커다란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4. 예수께서 말씀하신 '나의 때'란 어느 때를 말씀하신 것인가?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나의 때(호라)"는 어떤 시각을 가리키는 것인가? 여기서 '때'는 '호라'라는 단어로서 그 의미가 '가장 좋은 시간, 적합한 시간'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이 때란 예수님에게 있어서 필연적으로 일어나야 할 어떤 사건의 때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예수께서 자기 자신이 직접 포도주가 되거나 아니면 포도주를 풍성하게 만들어야 할 때는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장차 그렇게 되어질 일에 대한 예표로서, 자신이 직접 포도주를 만들겠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때'란 매우 의미심장한 말인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에게 있어서 '나의 때'는 어떤 때를 가리키는 것인가?

  예수께서 요한복음에서 말씀하고 있는 '나의 때'는 적어도 3가지 의미로 나온다. 첫째는 그가 죄인들의 손에 팔리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실 때를 가리킨다(마26:45).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자기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을 위한 대속물로 내어주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말하였다(요7:30,8:20,13:1). 

요7:30 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요8:20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요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그리고 둘째는 그가 죽으신 후에 영광을 받으실 때를 가리킨다. 즉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값을 피로 대속하시고 다시 부활하실 때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죽으시기 전에 이렇게 기도하시고 말씀하셨다(요17:1,12:23). 

요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요12: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는, 그분이 재림하시어 거룩한 신부들을 취하여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들어갈 때를 가리킨다(마26:45, 계19:7~9). 이것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나의 때'의 완성에 해당하는 때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이 땅에서 거룩한 신부들을 얻으시어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마26: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계19:7-9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5. 예수께서는 첫 표적을 왜 혼인잔지집에서 셋째날에 일으키신 것인가?

  고로 우리가 이 사건을 바라볼 때, 우연히 잔치집에서 포도주가 떨어짐으로 예수께서 자신의 어머니의 부탁을 받아 단지 물을 포도주로 만든 사건으로 바라볼 수 없다. 하지만 예수님의 삶에 있어서 우연은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필연적인 것이고 사건마다 어떤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예수께서 돌아가시던 시각에 예루살렘에 개기일식이 있었지 않았는가? 그런데 개기일식이라는 것이 갑자기 일어나고 싶다고 해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시고 운행하게 하실 때부터 이미 작정된 일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첫 표적을 행하실 것도 이미 만세전에 작정된 대로 되어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첫 표적이 '셋째 날에' 어떤 '혼인잔치 집에서'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라고 말할 수 없다. 

  고로 이 사건은 사실 '셋째날'에 일어난 사건은 우연이 아니며, 동시에 '혼인잔치집'에서 일어난 것도 우연히 아닌 것이다(1절). 왜냐하면 이 사건의 시작을 사도 요한은 '셋째 날에'로 못 박고 있기 때문이다. 이 날이 셋째 날이었다는 것은 사도 요한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1장에서 '이튿날에'라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오듯, 이 사건이 언제 일어났었는 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세례받으시던 날이 첫째 날이요 그리고 그 다음 날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일컬었다. 그날이 또한 둘째날이었다. 그리고 다시 하루가 지나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 언급하였다. 그날은 적어도 두 명의 자신의 제자가 예수님을 따라가게 되었던 셋째 날이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있은 후에 다시 셋째 날이라고 했으니(요2:1), 이날은 실제로는 여섯째 날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섯째 날이란 대체 어떤 날을 가리키는가? 그 날은 한 마디로, 천지창조 때에 아담과 하와가 창조되던 바로 그날이요 이 둘이 하나가 되던 결혼식 날이었다. 다시 말해 예수께 여섯째날에 이 기적을 행하셨다는 것은 창조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계신다는 뜻이다. 그때는 아담과 하와만이 결혼하던 날이었지만, 앞으로 언젠가는 예수님과 성도들이 신랑과 신부로 참여하는 결혼식을 치를 날이기 때문에, 미리 예표적으로 이날에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것이다. 그리하여 잔치의 기쁨을 한층 더하신 것이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이 날을 '여섯째 날'이라고 하지 않고 '셋째 날'이라고 기록한 것은 예수께서 셋째 날에 부활하셔서 영광을 얻으시는 날도 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 등장하는 소품까지도 이 사건이 창조의 마지막 날이자 동시에 안식의 날을 앞 둔 여섯째 날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것은 유대인의 정결 의식(율법)에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봉사자들이 이 여섯 항아리에 아구까지 물을 채웠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여섯째 날 맨 마지막 시간에 사람인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이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6. 사람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어떻게 해서 이러한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이 사건을 바라볼 때 예수님의 측면에서 이 사건을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우리 인간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사람에게 왜 기적이 필요하며 또한 어떻게 해야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지도 알려준다. 

  첫째로, 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함께하는 기적이 필요한 것인가? 그 답은 간단하다. 인간의 계획이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예상치 않은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신랑이 이 결혼잔치를 위해 얼마나 꼼꼼하게 잔치계획을 세웠겠는가! 잔치에 먹을 것이 떨어지거나 마실 것이 떨어진다면 신랑에게는 아주 수치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랑은 보다 더 철저하게 준비를 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포도주가 동이 나서 모자라게 된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이다. 그런데 그 시각에 어디가서 포도주를 마련해 온다는 말인가? 그런데 그곳에 전능자께서 함께 하고 있었다. 

  둘째로, 어떻게 될 때 사람에게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될 때 사람에게도 기적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이 사건에 따르면 3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이런 일이 있을 때에는 예수님께 청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찾아서 부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그 일은 마리아의 몫이었다. 마리아는 이 잔치의 주관자의 입장이었기에 그것에 대한 책임을 일부 수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포도주가 떨어진 문제를 예수님과 의논한 것은 아주 잘한 것이다. 또 하나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도 역시 마리아의 몫이었다. 그녀는 그동안 예수님을 잉태할 때부터 아주 특별한 소식들을 접해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브리엘 천사가 그녀에게 나타나 그녀에게 잉태될 자는 성령으로 잉태될 자이며, 장차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어질 것이라고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기가 탄생하던 날에 베들레헴의 목자들이 와서 그녀에게 말하기를 그 아이는 이 세상을 구원할 구주이며 그리스도이자 주님이라는 것을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동방박사으로부터 그 아이가 왕으로 오셨다는 것을 들은 것도 있었고, 예수께서 12살 때에는 성전을 자기의 '아버지의 집'이라고 말했던 것도 가슴에 새겨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이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무슨 일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러므로 그녀는 그 문제를 연회장이나 신랑과 의논하지 않고 예수님에게 가져간 것이다. 그분은 모든 것을 수행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그 잔치집의 일꾼으로 봉사하고 있었던 봉사자들의 순종이다. 우리말 성경에는 그때 일하던 일꾼들을 '하인들'이라고 번역해 놓았지만 실제는 '하인들(둘로스)'가 아니라 '봉사자들(디아코노스)'이다. 이들은 자원하여 그 잔치일을 도우러 온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봉사자들에게 마리아가 말했다. "그가 혹 너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너희는 그대로 행하라(5절)" 이는 예수께서 그들에게 시키는 일이 혹 사리에 맞지 않고 이상하게 들릴지라도 이의를 제기하지 말고 즉시 행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들이 그대로 시행한 것이다. 빈 여섯 개의 돌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운 것이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예수께서 이제는 그것을 떠다가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셨다. 그때 연회장은 이미 포도주가 된 채 있는 물을 마시고는 감탄을 하면서 신랑을 불러 칭찬을 한다. "모든 사람은 처음에 좋은 포도주를 내놓는 것이 일반이오. 그리고 그들이 취하게 된 때에 더 못한 것을 내놓기 마련이라오. 그런데 당신은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간직한 채 있었소(10절)". 사실 찬사는 예수께서 받으셔야 마땅한 것이지만 새로 맛 본 포도주가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인지를 몰랐던 연회장은 신랑을 칭찬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당신이 행하신 일도 감추신다. 얼마나 겸손한 미덕인가?

 

7. 나오며

  예수께서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신 첫번째 표적은 물을 포도주로 만든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마리아의 부탁에 대한 결과이지만 실제는 제자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이 사건은 예수께서도 앞으로 자신의 공생애를 어떻게 꾸려가야 하는지를 알게 해주는 표적이었다. 즉 예수께서도 자신을 어떻게 십자가의 제물로 바치며 또한 죽고 부활하신 다음에는 장차 천국에서 진행될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지를 염두해두시고 행하신 기적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예수께서 전능하신 창조주이자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또한 이 사건을 통하여 모든 인생은 자신의 계획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그렇더라도 그러한 위기를 타계할 방법이 예수님에게 있음을 배우게 된다. 그것은 곧 '기도'(청원)와 절대적인 '믿음'과 절대적인 '순종'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지금 내게 진정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이 사건의 사람들처럼 주님을 경험하고 주님의 능력을 맛보는데,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내게 필요하고 부족한 것이 있다면 지금 그것을 구하고 믿음으로 반응해보자. 왜냐하면 예수께서 항상 우리 곁에 계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예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된다. 그때에는 우리도 역시 물떠온 봉사자들처럼 놀라운 기적을 맛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08월 31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11)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는 무엇인가?(10)(계19:11~16)_예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01)_2022-05-10(화)

https://youtu.be/H7cGOuiF-Mg [혹은 https://tv.naver.com/v/26808488

 

요한계시록의 기독론(11)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는 무엇인가?(10)(계19:11~16)

회개와천국복음(정병진) |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11)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는 무엇인가?(10)(계19:11~16)_예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01)_2022-05-10(화) https://youtu.be/H7cGO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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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께서 전능하시다'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라는 뜻은 그분이 못하실 것이 없는 분이라는 것을 말한다.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는 예수께서도 역시 못하실 것이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2.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 중에 어떻게 자신이 전능자이심을 나타내셨는가?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주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 이 땅 안으로 들어오셨다. 그리고 3년 반의 공생애를 이 지상에서 사셨다. 그때에 그분은 자신이 못하실 것이 없는 분이시라는 것을 드러내셨는데, 왜냐하면 그분은 당신에게 찾아온 모든 사람들의 문제 하나라도 할 수 없다고 하시면서 그냥 보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그분은 당시 38년된 중풍병자를 고쳐 주셨고, 나면서 소경된 자의 눈을 뜨게 하셨으며, 죽은 지 나흘된 나사로도 살려 내셨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말씀 한마디로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였으며, 바다 위로 걸어 오시기도 하셨다. 또한 그분은 하나님이기에 낙원에 가 있던 구약의 두 인물들 곧 모세와 엘리야를 불러오실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분은 전능한 분이시기에 이 세상의 임금(왕)인 사탄 마귀를 세 번씩이나 이기셨으며, 사탄을 무저갱에 가두실 수 있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으며 음부에 내려가셨지만 죽은 지 3일 만에 그분은 스스로 다시 살아나셨으며, 거기에서 걸어 나오실 수가 있었다. 그분은 육체를 입고 있을 때에도 여전히 주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 

 

3.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는 뜻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는 것은 그분이 못하실 것이 없으시다는 것인데 그것은 대체로 4가지 뜻을 가진 것이다. 첫째는 그분이 창조주이시다는 뜻이다. 못하실 것이 없으신 분만이 없는 것을 창조해 내실 수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그분이 구원자라는 뜻이다. 그분는 못하실 것이 없으시므로 망가진 어떤 것이라도 다시 회복시켜 놓으실 수 있으며, 원래 가지셨던 뜻대로 모든 것을 마무리하실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서 주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계1:8)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기 선언으로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려 주는 놀라운 표현인데, 이 말의 깊은 뜻은 그분이 시작하시고 그분이 끝내신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며, 그분만이 모든 것을 시작하실 수 있고, 그분만이 모든 것을 완성하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셋째는 그분이 통치자라는 뜻이다. 그분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는데, 만약 그분이 당신이 만드신 창조물을 다스리고 통치하실 수 없다면 그분은 전능한 자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그분의 손 안에 있어야 하는 것이요 그분의 주권하에 있어야 그분이 전능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주 하나님은 바로 그러한 분이시다. 넷째는 그분이 심판자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전능자이시기 때문에 당신의 뜻에 복종하는 자에게는 상을 주시겠지만 만약 그분의 뜻을 거역한다면 누구를 막론하고 그를 심판하여 처벌할 수 있을 때에 그분을 전능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을 심판하시는 분으로서, 어떤 자에게는 상을 주시겠지만 어떤 자에게는 벌을 내리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님께서 바로 이러한 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해서도 확인해 볼 수가 있는 것이다. 

 

4. '주 하나님'에 대한 다른 표현이 곧 '전능하신 이'이다. 요한계시록과 신약 성경에서는 전능하신 이에 대해서 몇 번 말씀하셨는가?

  신약 성경을 읽어 보면, 하나님이 전능하신 이(전능자)라고 직접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말씀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총 10번 밖에 안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능하신 이'에 대한 단어가 요한계시록에서만 총 9번 나온다는 사실이다. 나머지 하나는 고린도후서 6:18에 나올 뿐이다. 즉 신약 성경에서는 주 하나님께서 곧 전능하신 이라고 하는 표현이 오직 요한계시록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그분이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라는 표현은 총 7번에 걸쳐서 등장하고 있다(계1:8, 4:8, 11:17, 15:3, 16:7, 19:6, 21:22). 그리고 나머지 2번은 '하나님 전능하신 이'로만 나온다(계16:14, 19:15).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은 종말에 관한 계시를 담고 있는 책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누군지를 소개해 주는 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에 대한 7가지 사용 용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전능하신 이는 주 하나님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서,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라고 스스로 자신을 표현하신 이이시며,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이시다(계1:8). 둘째, 전능하신 이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서 표현되는 분으로서 거룩하신 분이자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계4:8). 셋째, 전능하신 주 하나님은 큰 능력으로 왕 노릇하시는 분이시다(계15:3). 넷째, 그분은 위대하시고 놀라우신 분으로서 만국의 왕이 되시며 그분의 길은 의롭고 참되시다(계15:3). 그분이 바로 이 세상의 강을 건너 천국에 들어가서 왕 노릇하고 있는 만국의 왕들 위에서 왕 노릇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다섯째, 그분은 전능자로서 참되고 의로움으로 심판하시는 분이시다(계16:7). 그분은 재판을 굽게 하지 않으신다. 여섯째, 그분만이 전능자이시기에 모든 만물 위에서 왕 노릇하실 수 있으시다(계19:6). 마지막으로 일곱째,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신데, 인류의 구원을 위해 그분이 육신을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기에 그분은 어린양으로도 표현되시는 것이다(계21:22). 

 

5. 현재 하늘에 계신 예수께서 전능하시다는 것을 사도 요한은 어떻게 요한계시록에 기록하였는가?

  예수께서 천상에서 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은 요한계시록에서 여실히 증거되고 있다. 왜냐하면 첫째, 그분이 만물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소개에서 자신을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신 이'라고 밝히셨기 때문이다(계3:14). 또한 둘째로, 그분은 구원자요 완성자이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7장에 보면, 짐승을 이기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노래를 하는데, 그들은 이렇게 노래하였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계7:10)". 그렇다. 모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그분 안에서 그분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다(골1:16). 그때 그분은 어떤 뜻과 목적을 가지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는데, 나중에 재림하실 때에는 그분의 뜻과 목적을 다 이루시고는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신 것이다(계21:6). 그리고 셋째로, 그분은 통치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당신이 창조한 모든 만물의 통치자이시며(계19:15~16, 19~20), 무엇보다 이 지상의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시며, 동시에 천국에 들어가서 천년 동안 왕 노릇하고 있는 이들 곧 천국의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기도 하시기 때문이다(계1:5~6, 15:3). 마지막으로 넷째, 그분은 심판주이시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분이 인자(사람의 아들)가 됨으로 인하여 모든 이들에 대한 심판을 맡으셨기 때문이다(요5:22,27). 그러므로 맨 나중에는 신자이건 불신자이건 다 그분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마25:31~32, 고후5:10, 계20:11~15). 특히 모든 악의 세력들이 장차 한꺼번에 주 예수님께 대항하는 전쟁을 벌일 터인데(아마겟돈 전쟁), 그때에 주님께서는 심판주로 오셔서 그들을 모조리 쳐부숴 버릴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만이 심판주로서 전능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2022년 05월 10일(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07) 창조의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출6:2~3)_2021-02-02(화)

https://youtu.be/kgDTVqsnY-o  [혹은 https://tv.naver.com/v/18258272  ]

 

1. 없는 것을 창조하시고 또한 만드실 수 있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어야 하나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우리가 현재 믿고 있는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실 수 있으시려면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창조의 하나님이시자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창17:1,35:11,계1:8).

 

2. 창세기의 위대한 세 인물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나요?

  모세더러 애굽왕 바로의 압제하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탈출을 지시하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셨을까요? 출6:2~3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나는 여호와이니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라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전능의 하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전능자(엘 솨다이)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요?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는 말은 사실 2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그분은 못 하실 것이 없다는 뜻이며, 또 하나는 못 아실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분이 못 하실 것이 없다는 것은 창세기의 기사들에 나오며, 그분이 못 아실 것이 없다는 것은 욥기서의 기사들에 나옵니다. 사실 구약성경 가운데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것을 소개하고 있는 말씀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은 모두 48회 정도가 나올 뿐인데, 그중에서 창세기에서는 6번 나오고(창17:1, 28:3, 35:11, 43:14, 48:3, 49:25). 그리고 욥기서에 31번 나옵니다. 그리고 나머지가 조금 있을 뿐인데, 출애굽기에 1번, 민수기에 2번, 룻기서에 2번, 시편에 2번, 이사야서에 1번, 에스겔서에 2번, 요엘서에 1번 나옵니다. 

 

4. 창세기와 욥기서에 전능하신 하나님은 어떻게 소개되어 있나요?

  창세기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역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초자연적인 능력을 행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특히 아브라함은 100세에 경수에 끊어진 아내를 통해 아들 이삭을 낳았으며, 이삭은 우물을 빼앗기거나 양보했지만 그가 판 우물마다(에섹, 싯나, 르호봇)에서 항상 생수를 내주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품삯을 정할 때에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튼튼한 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즉 점있는 것이나 아롱진 것이나 얼룩무늬있는 양이 결코 유전학상으로는 나오기 힘든 양들이었는데, 그가 우물 곁에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놔두자 그러한 양이 태어났던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지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또한 나중에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얻은 식구들과 두 떼나 되는 양떼를 거느리고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거느니라고 죽이러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그는 얍복강에 홀로 남아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자 하루 아침에 형 에서의 마음이 변하여 동생을 용서해주었고 오히려 동생의 길을 안내해주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나님은 전능자로 각인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욥기서를 보면, 하나님은 못 아실 것이 없는 분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욥은 자기는 잘 안다고 자처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 호되게 야단을 맞아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창조된 만물의 오묘함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욥기서 1~2장에 보면, 욥은 하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조금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욥기서는 심판을 결코 굽게 행하지 아니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지어다(욥5:17)", "하나님이 어찌 심판을 굽게 하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느냐(욥8:3)", "네가 어찌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이 온전히 알겠느냐(욥11:7)", "하나님은 단정코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단정코 불의를 행치 아니하시고(욥34:10)", "하나님은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욥34:12)"... 그래야 그분이 심판주가 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험했다고 말한다면, 그는 못 하실 것이 없는 하나님을 경험했다는 뜻이며, 또한 못 아실 것이 없는 하나님을 경험했다는 뜻이 됩니다. 고로 "전능자"란 없는 것을 있게 만드시는 창조의 하나님과 심판을 공의롭게 하시는 심판의 하나님을 일컫는 칭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전능하신 하나님은 신약시대에 어떻게 자신을 나타내셨나요?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전능하신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신 후에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그런데 하늘에 오르셨던 그분이 사도요한을 통해 자신이 누군지를 소개해주셨는데, 그것은 그분이 자신을 "주 하나님 곧 전능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계1:8). 이러한 묘사는 요한계시록에 무려 7번이나 나옵니다(계1:8, 4:8, 11:17, 15:3, 16:7, 19:6, 21:22). 그런데 그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계22:13). 그분이 자신을 소개하실 때에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이요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계22:13)"고 소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이러한 전능자를 자기의 마음 속에 모시고 있으며, 그분께 기도함으로 그분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번 창세기 강해를 통해서 우리가 계속 배우고 있기는 하지만, 모든 만물은 다 인간을 위해 창조된 것이었음을 새삼 다시 느낍니다. 우리 인간을 이렇게 귀한 존재로 창조하신 하나님께만 오직 영광돌립니다. 

 

2021년 02월 02일(화)

정병진목사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인가? 여호와이시다(출3:14~15). 그렇다면, "여호와"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존재적으로 볼 때 3가지 의미가 있으며(출3:14~15,6:3~5), 과정론적으로 볼 때 2가지 의미가 있다(출6:6~8).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자신을 존재론적으로 그리고 과정론적으로 소개하시려 하신 것일까? 그것은 우선적으로 모세가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잘 알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이 애굽왕 바로나 애굽인들도 하나님이 누군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타나 "나는 여호와이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이 누군지를 소개해 주신다. 그리고 자신을 "나는 여호와이니라"고 말씀하신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도 알려주신다. 그것이 바로 출6:2~8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출6:2~8은 구약성경 가운데 하나님이 누군지를 가장 설명해주는 성경본문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자신을 "나는 여호와이니라"고 소개했으며, 그렇게 말씀하신 근본적인 의도는 무엇인가?

 

1. 들어가며

  B.C.1446년경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이제 바로에게 다시 서기 전에 모세에게 자신을 "나는 여호와니라"라고 뚜렷히 말씀하신다(출6:2~8). 모세는 처음에 이 말씀의 의미가 무슨 뜻인지를 잘 몰랐다. 그는 아직 여호와를 잘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을 "여호와"라고 소개하기 전까지, 자신이 누군지에 대해서는 대체로 2가지 정도로만 소개해 주셨다. 그것의 하나는 전능의 하나님, 전능자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나 자신을 전능의 하나님(엘샤다이)라고 소개하신 것이다(창17:1, 창28:3, 창35:11). 그리고 더불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아주 놀라운 약속을 해 주셨다. 그 약속은 인간이 하는 것과는 달라서 결코 변치 않을 약속이었으며 반드시 지켜져야 할 약속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그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같은 족장들에게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전능자요 약속하시고 약속하신 것을 지키시는 이라고 소개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더 자세하고도 확실히 소개하신다. 그것은 이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도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라는 것을 알고 있기는 하였으나(창15:7,28:13) 그들은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타나 자신을 "나는 여호와니라"고 말씀하심으로 자신이 누군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셨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는 여호와니라"라고 말씀하신 의미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던 근본적인 취지와 목적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것을 살펴보고자 한다.

 

2. 하나님께서 자신을 여호와라고 소개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자신의 민족을 애굽으로부터 탈출시키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이 누군지를 알기를 원했다. 그리고 이어서 애굽왕 바로와 애굽인들도 여호와 하나님이 누군지를 알기를 원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단숨에 애굽에서 탈출시킨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경고와 그리고 그것의 실행과 기적으로 하나님이 누군지를 그들에게 알리시 시작하셨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여호와 하나님이 누군지를 잘 알아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모세였다. 그가 여호와가 누군지를 알아야 여호와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확히 소개하고 또한 바로에게도 소개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을 믿고 어떤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도 아랑곳 하지 않고 꿋꿋이 출애굽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2차례에 걸쳐서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누군지를 소개하셨다. 한 번은 모세가 미디안 땅의 시내산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였고(출3:6~23) 또 한 번은 모세가 바로에게 찾아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광야로 가서 절기를 지키게 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바로 자신은 여호와를 모르니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하면서 오히려 고된 노역을 더 가중시키자 실망하여 돌아나올 때였다(출6:1~9).

  먼저 첫번째로, 출3장의 시내산에서 모세가 양떼를 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타나 자신을 여호와라고 소개하셨다(출3:14). 그것은 히브리어로 "예흐에 아쉐르 예흐에(I am that I ma)"라는 말이었다. 여기서 "예흐에"라는 말은 "하야(be)"동사에서 나온 단어로서, "나는 있는 나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크게 2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나는 스스로 있는 나다" 곧 자존자라는 뜻이며, 또 하나는 "나는 있게 하는 나다" 곧 전능자 내지는 창조자라는 뜻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계속해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소개하셨다(출3:15). 그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나 그들과 언약을 맺으신 분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반드시 지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고로 출애굽기 3장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는 여호와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분은 자존자요 전능자(혹은 창조자)이시며, 약속하시며 약속하신 것을 지키는 신실하신 분이라는 뜻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세번째로 출6장의 애굽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여호와라는이름의 다른 뜻을 2가지나 더 가르쳐주셨다. 그것은 첫째, 그분이 구원자(구속자)라는 것이다(출6:6).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서 너희를 속량하여(출6:6)" 그렇다. 그분의 이름에는 이미 "구원자"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여호와께서 구원자이시라는 뜻이 바로 예수라는 신약의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사실이다(마1:21). 그리고 이어서 둘째, 그것은 그분이 심판자라는 것이다(출6:6). 만약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분이 구원자가 되신다면, 애굽사람에게 그분은 심판자가 되실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편 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내셨지만, 애굽과 바로왕과 애굽사람들 그리고 애굽신들은 심판하신 것이다.(출6:6, 12:12, 겔7:27).

  그런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는 여호와니라"라고 소개하신 것을 분류하면, 크게 다음의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것은 존재론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은 자존자요, 전능자(혹은 창조주)이며, 신실하신 이이다. 그러나 과정론적으로 볼 때에 그분은 "구원자요, 심판자"라는 것이다.

 

3.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을 여호와로 소개하신 근본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자신이 누구며 어떤 일을 하실 것인가를 모세에게 소개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어떤 의도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민족은 자기들을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건져내신 이유를 알아야 한다. 그것을 알지 못하면 애굽에서 탈출했으나, 그들에게 출애굽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출해내신 목적을 그들이 상실하는 것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셨으며, 애굽을 심판하셨는가? 그것은 다음의 2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그분이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이 되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요(출6:7), 또 하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했듯이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으로 들어가서 살게 하기 위함이었다(출6:7).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이 자신을 여호와로 말씀하시는 근본적인 두 가지 목적이 한 구절에 나와있는 말씀이 레위기에 나온다는 사실이다. 그 말씀은 레위기 25:38이다.

레25:38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며 또 가나안 땅을 너희에게 주려고 애굽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그렇다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민족의 하나님의 되고자 하신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의 첫째는 여호와 아닌 것이 다른 존재가 이스라엘민족의 하나님이 될 수 없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레26:1, 사42:8, 45:5~7, 욜2:27).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 한 분 외에 다른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에 불과한 것으로서, 산천초목이거나 해와 달과 별들이거나 아니면 하늘에서 내려온 타락한 천사들인 사탄마귀와 귀신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을 하나님으로 알고 섬겨서는 결코 죄를 용서받을 수도 없고, 죽은 다음 천국에도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어떤 죄를 짓고 살았으며 이제부터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시려고, 십계명을 알려주셨으며, 그들이 죄를 지었으나 용서받을 수 있는 방법은 제사와 회개와 같은 방법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레26:1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 조각한 것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
사42:8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사45:5-7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6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7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욜2:27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그리고 그것의 둘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가나안땅으로 상징되는 천국에 들어가서 살기를 바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천국에 들어가서 살기에 합당한 자가 되도록 하나님께서는 여러가지를 분부하시고 명령하셨다. "너희는 거룩하라. 너희는 죄를 지어 너희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 너희는 내가 준 계명들을 지켜라. 너희는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하지 말라."라는 등의 말씀으로 말이다. 그러므로 성도도들의 순례의 최종목적지는 천국이 되어야 한다. 천국이 최종목적지가 아닌 자들의 삶과 열매들은 죽음과 동시에 다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게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갈대아우르에게 이끌어낸 이유가 가나안땅을 주려고 하는 것이었다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셨으며(창15:7), 또한 야곱에게도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처럼 똑같이 말씀하셨다(창28:13).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우르에서 불러내신 이유는 오직 그에게 천국을 주시려고 계획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는 천국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시다.

창15:7 또 그(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창28: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4. 나오며

  하나님은 누구신가?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여러 가지로 말씀하신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나는 여호와이니라"고 말씀하신 경우가 가장 많다. 무려 155회나 그 표현을 사용하셨다. 그중에서 창세기에서는 2번, 출애굽기에서는 16번, 그리고 레위기에서는 39번, 민수기 5번, 신명기에서 2번 사용되었다. 모세오경 외에도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서부터 스가랴서까지 "나는 여호와이니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셨다. 그렇다면 당신에 대한 많은 설명 중에 굳이 "나는 여호와이니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종합해보면, 그것은 존재론적으로 볼 때, 당신이 자존자요 전능자(창조주)이시며, 약속하시고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이라는 뜻이며, 과정상으로 볼 때, 그분은 구원자요 심판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처럼 존재론적으로 그리고 과정론적으로 모세에게 당신 자신을 소개하신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분이 이스라엘을 구원해내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려고 하심이며, 당신을 하나님으로 믿고 따라오는 자들에게 천국을 선물로 주시려 함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광야같은 교회생활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 되지 못한다면 그는 헛되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는 긍극적인 목적이 천국가기 위함이 아니라면 그것도 지금 신앙생활의 노정에서 지금 이탈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저와 여러분은 꼭 구원자로 오신 여호와 곧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이자 구주로 믿고,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감으로, 천국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2018년 10월 5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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