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과연 언제 오실까? 그때가 과연 얼마나 남았을까요? 어느 교단에서 말하는 것처럼, 마지막 시기에 있을 7년대환난 전에 오시는 것일까요? 아니면 7년대환난 후에 오시는 것인가? 그리고 7년 대환난은 정말 맞는 주장인가? 성도들의 휴거는 환난전에 있는가 아니면 주님의 지상재림시에 일어나는 것인가? 두 증인의 활동 시기는 언제이며, 대환난 시기에 남겨지는 음녀는 대체 누군가? 주님의 재림의 시기와 대환난에 관련한 모든 비밀이 여기에 있다.

 

2022-04-24(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천국복음(52) 최종회_주님은 과연 언제 오시는가 환난전인가 환난후인가?(계22:16~2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sCzeIy4ah-w [혹은 https://tv.naver.com/v/26517477 ]

 
 

1. 들어가며

  주님은 과연 언제 오실까? 그것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 날짜와 시간을 예언했다. 우리 시대에 겪었던 가장 큰 미혹은 '다미선교회'였다. 그들은 1992년 10월 28일 자정에 온다고 했다. 하지만 오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이단들이 역사적으로 수두룩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가르쳐준 것만큼 알면 되고 성경이 말하는 것만큼 그날을 준비하면 된다. 그렇다면 주님이 오실 즈음에는 어떤 일들이 있는가? 과연 '7년대환난'이라는 것이 있는가? 그리고 성도들은 환난전에 휴거되는 것인가? 그리고 주님의 재림은 공중강림과 이중재림이라는 2가지로 재림하시는가? 아니면 지상재림 한 번 뿐인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1,260일이나 42달 그리고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어떤 의미인가?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666표를 찍을 때에는 언제인가? 참으로 궁금한 것이 많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그것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는가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주님 오실 때에 관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이것은 지금 우리 시대에 어느 시간대 위치해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그날을 깨어서 준비하자는 데에 있다. 종말의 때에 관한 갖가지 이론이 너무나 많다. 어떤 학설을 따라가든지 그날을 깨어서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날에 이르러 주님을 부끄럽지 않게 준비시켜준다면 그것으로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2. 주님이 언제 오시는지에 관한 기준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주님께서 언제 오시는지에 관하여는 대체로 환난전에 오신다는 것과 환난후에 오신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환난 중간에 오신다는 이야기도 만만치 않다. 여기서 '환난'이라는 말은 '대환난'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보통 '7년대환난'이라고 언급되는 환난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대환난'의 기간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놀라운 사실은 요한계시록에서는 '7년대환난'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럼, '7년대환난'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가? 사실 7년대환난이라는 말은 다니엘 9장에 나오는 다니엘의 70이레에 관한 예언에서 유래한 것이다(단9:24~27). 70이레 가운데, 마지막 한 이레(7년)가 인류의 마지막 시기에 도래한다고 생각하고 그 기간을 7년으로 잡은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다니엘 9장에서는 69이레(483년)가 지난 후에 공백 기간이 있고 그리고 나서 미래의 어느 시기에 나머지 1이레(7년)가 온다고 말씀이 없다. 다니엘의 70이레는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려는 영이 난 후로 줄곧 70이레의 기간이 있을 것임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환난의 기간과 관련하여 요한계시록에서는 '1,260일'(계11:3, 12:6) 혹은 '42달'(계11:2, 13:5) 혹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계12:14)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한 달을 30일로 계산하면 이 기간은 '3년반'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보통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분들은 전3년반과 후3년반이 있다고 가정하고 이것을 합쳐서 7년을 계산하기도 한다. 그리고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표현도 다니엘서에 나오기 때문에(단7:25, 12:7), 그것이 바로 '7년대환난'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의 경우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주장하는 교단에서는 7년 대환난과 환난전 휴거를 기정사실로 믿고 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에는 7년 대환난이라는 기간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예수께서는 7년 대환난에 대해 말씀하셨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예수께서 이 기간에 대해 언급하셨다면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직접적으로 하신 말씀은 결코 거기에다가 더하기나 빼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혹시라도 예수께서 7년 대환난을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어떤 이론이든지 재고해야 할 것이며 그것을 기정사실화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요한계시록이라는 말씀과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에 말씀하신 종말에 관한 말씀을 서로 비교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혹시 둘 중의 하나의 말씀을 골라야 한다면, 우리는 전적으로 먼저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에 하신 말씀을 선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종말의 때에 관한 말씀들은 거의가 다 상징적이거나 환상의 이미지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에 말씀하신 환난의 기간은 환상이나 상징의 이미지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말과 관련지어서 '환난'에 대해 언급하려 한다면 우리는 우선적으로 공관복음에서 기록하고 있는 말씀을 우선적으로 보아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이 최우선하는 것이다. 설령 사도요한이 언급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3.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주님의 재림은 환난전에 있는가 환난후에 있는가?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가운데 제자들에게 종말의 때에 관한 말씀을 들려주셨다. 그리고 주께서 언제 어디로 오시는까지도 말씀해주셨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첫째로,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짜와 그 시간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고 하셨다는 것이다(마24:36). 그것은 아들의 권한 밖에 있기 때문에 아들이신 예수님도 모르고 천사들도 모른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날짜와 그 시간을 계산하려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다만 징조를 통해서 그날이 가까이 가까이 왔음을 알고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마24:42). 왜냐하면 깨어있는 자가 그날에 남겨둠을 당하지 않고 데려감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마24:40~41). 이 말씀은 종말의 어느 시기에 도래하게 될 '휴거'사건을 말씀하신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종말의 때와 관련지어서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주님께서는 환난 후에 오신다는 것이다(마24:29~31). 환난후 휴거에 관하여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해주셨다. 

마24:29-31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1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그렇다. 주님께서는 환난 후에 구름을 타고 하늘로부터 오실 것이다. 그때 주님께서는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어 당신의 택하신 자를 불러 모으실 것이다. 이것을 두고 '휴거'라고 말한다. 또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환난이란 단순히 환난이 아니라 '대환난'이라고 하셨다(마24:21). 마지막 시기에 있을 '대환난'은 창세로부터 그날까지 없었던 환난일 것이며 또한 그 후에도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마24:21). 그러므로 만약 주님께서 그 대환난의 날을 감하지(단축하지) 않으신다면 모든 육체가 구원얻지 못할 것이므로, 주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환난의 날을 감해주실 것이라고 하셨다(마24:22). 그러므로 설령 7년 대환난이나 전3년반 내지는 후3년반이라고 하는 환난의 시간이 실제한다고 할지라도, 그 날들은 분명히 감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환난의 기간을 산술적으로 '7년' 혹은 '3년반'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옳은 일이라고 할 수 없다. 

 

4. 요한계시록에는 주님의 재림과 환난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주님의 재림과 환난에 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 주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즉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어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의 예언이나 묵시 등을 적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환상과 예언과 묵묵시가 기록된 요한계시록은 마태복음 24장과 마가복음 13장과 누가복음 17장과 21장의 말씀을 완전히 익힌 후에 추가적으로 보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주님의 재림과 종말의 시기와 환난에 대하여 기본이 공관복음서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후에 요한계시록을 보면 요한계시록이 열리게 된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의 말씀에 나와있는 주님의 재림과 환난의 기간에 대해서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가?

  첫째, 주님은 일곱번째 나팔소리와 함께 하늘(공중)에 오신다고 하셨다(계11:15). 이때 울려퍼지는 일곱 번째 나팔소리는 공관복음서에는 "큰 나팔 소리"(마24:31)라고 표현되어 있고, 사도 바울은 그것을 "마지막 나팔 소리"(고전15:51), "하나님의 나팔 소리"(살전4:16)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주님의 재림의 최종적인 징조를 말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불게 하시는 나팔소리인 것이다. 그런데 이 나팔소리가 요한계시록에서는 모든 재앙이 끝난 후에 울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소한 첫째 화(다섯 번째 나팔 재앙)와 둘째 화(여섯 번째 나팔 재앙)가 지난 후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계속해서 다른 각도에서 설명할 것이다.) 고로 모든 성도들은 첫째 화와 둘째 화를 다 겪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환난의 일부분이 될 것이다(마24:21). 그럼, 일곱 번째 나팔소리와 함께 주님이 하늘에 오신다는 것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그것은 주 하나님의 칭호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한 분 하나님이신 주 하나님에 대한 칭호로서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는 표현이 세 번이나 나온다(계1:4,8,4:8). 그런데 일곱 번째 나팔소리 이후에 주 하나님에 대한 칭호가 바뀌어져 있다. 일곱 번째 나팔소리 이후에는 "전에도 계셨도 이제도 계신 이"라고만 나오기 때문이다(계11:17, 16:5). 왜냐하면 "장차 오실 이"라는 말씀이 이미 성취된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이 이미 하늘(공중)에 오셨기 때문이다. 

  둘째, 하늘(공중)에 오신 예수께서는 셋째 화(일곱 번째 나팔 재앙)가 적그리스도 치하에 내려지기 전에 성도들을 휴거시킨다고 하셨다. 고로 휴거된 성도들은 아마도 일곱 대접 재앙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일곱 대접 재앙이 적그리스도 치하에 쏟아지는 기간은 매우 짧은 기간일 것이므로 성도들 모두가 다 환난의 시기를 통과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다만 주님께서는 대환난의 날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대환난의 끝 어느 부분에서 성도들을 휴거시키실 것이다. 그런데 그 날짜와 그 시간이 언제인지가 요한계시록에서도 뚜렷하게 나와 있지 않다. 다만, 일곱번째 나팔 재앙 때에는 신실한 성도들이 공중으로 불려 올라가서 주님을 영접한 후에 아마겟돈전쟁을 치르실 주님의 뒤를 따른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예수께서는 처음에는 어린양으로서 두루마리의 계시들을 하나씩 열어보이시다가(계5~8장), 다섯 번째 나팔(계9:1~12)과 여섯번째 나팔(둘째 화)(계9:13~21)이 울려퍼진 이후, 이제 작아진 두루마리를 사도 요한에게 넘겨주고는(계10장), 금면류관을 쓰신 채 구름 위에서 낫을 휘둘러 땅의 곡식을 거두실 것이다(계14:14~16).

  셋째, 성도들의 휴거 후 남겨진 성도들은 음녀에게 속한 자들이라고 하셨다(계17~18장, 14:8, 16:17~21). 그러므로 땅의 곡식이 추수된 이후에 이 땅에는 불신자들(적그리스도에 속한 자들)과 음녀에 속한 성도들만이 남게 될 것이다. 여기서 '음녀'라 함은 신앙의 정절을 지키지 못한 채 세상과 짝하여 살아가는, 양다리 신앙을 가진 성도들을 가리킨다(계17~18장). 이와 반대로 해를 옷입은 여자에게 속해 있는 처녀들이 있는데, 이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그분만을 따라가는 자들이다(계14:1~5). 이들은 세속에 물들지 않은 진실한 신앙인들로서 환난의 끝부분 어느 시점에 휴거되어 공중으로 올라가게 될 것이다. 그럼 음녀는 언제까지 지구상에 살아남아 있는가? 그것은 일곱 번째 나팔 재앙인 일곱 대접 재앙들을 다 받기까지 이 세상에 남아 있을 것이다(계16:17~21). 그래서 이들은 주님께서 아마겟돈 전쟁(혹은 곡과 마곡의 전쟁)이 치르기 직전까지 남아서 환난을 다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음녀로 표현되는 큰 성 바벨론이 일곱 번째 대접 재앙 때에 비로소 주님으로부터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의 잔을 받고 처절하게 파괴될 것이라고 말씀하였기 때문이다(계16:17~21)

  넷째, 성도들의 휴거 후 예수께서는 이미 천국에서 함께 따라온 천국의 성도들(천년왕국 성도들)과 천사들 그리고 알 수 없는 어느 시점에 휴거시킨 성도들과 함께 아마겟돈 전쟁(곡과 마곡의 전쟁)을 치를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성도들의 휴거는 일곱인에 해당하는 일곱 나팔 재앙 중에서 여섯 번째 재앙(둘째 화)까지 받은 후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싯점이 어느 때인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둘째 화가 있은 후 셋째 화가 이르는 어느 시점에 진실한 성도들이 먼저 휴거된다는 것이다. 먼저 휴거되는 목적은 성도들이 받을 환난이 너무 크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열처녀의 비유ㄹ르 보면, 지상에 재림하실 신랑을 마중 나가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때 신랑되신 예수께서는 이미 천국에 들어가서 왕노릇하고 있는 성도들(천년왕국 성도들)과 함께 그리고 그분의 천군천사들과 함께 공중으로 오실 것이다. 그리고 진실한 성도들을 먼저 휴거시키실 것이다(이때는 그때 죽은 자가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살아있고 남아있는 자가 그 뒤를 이어 홀연히 변화되어 공중으로 휴거될 것이다). 그리고 인류 최후의 영적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을 치르실 것이다(참고로 이때 치를 전쟁은 아마겟돈 전쟁인데, 이 전쟁이 곧 곡과 마곡의 전쟁이다. 이러한 사실은 정병진목사의 요한계시록 52주 강해를 참고하기 바란다.) 

  다섯째,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첫째 화(다섯째 나팔 재앙)와 둘째 화(여섯째 나팔 재앙)가 주님 오시기 전까지 게속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환난을 겪는 것이다. 사실 일곱 인의 내용은 일곱 가지 나팔 재앙 중에서 여섯 번째 나팔 재앙까지는 모든 성도들도 다 받을 재앙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일곱나팔 재앙을 순서대로 보면, 처음 네 나팔은 '지해강천(地海江天)'의 재앙을 일으켜 각 장소 곧 땅과 바다와 강과 하늘 생물의 1/3을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치는 재앙 3가지가 올 것인데, 그것은 다섯 번째 나팔 재앙(첫째 화)이요 여섯 번째 나팔 재앙(둘째 화)이다. 첫째 화를 통하여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이 다섯 달 동안 황충(메뚜기) 재앙을 만나게 될 것이다(계9:1~12). 그리고 둘째 화를 통하여 지구에 사는 1/3의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이다(계9:13~21). 여기까지는 모든 성도들이 다 받는 재앙인 것이다. 그리고 일곱째 나팔 재앙의 어느 시기에, 그것도 끝무렵 쯤에 성도들의 휴거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여섯째, 첫째 화와 둘째 화의 기간 중에는 다음과 같은 일들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첫번째는 이 기간은 두 증인이 활동하는 끝자락이 될 것이다(계11:3~13). 왜냐하면 두 증인의 활동기간이 1,260일인데, 이 기간은 시작지점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 기간이 끝나는 시점에 대해서는 정확히 말씀하고 있다(계11:7).

  계11:7 그들(두 증인)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그렇다. 두 증인의 활동이 끝나는 시점에 사탄이 올라온다. 즉 이때 무저갱으로터 올라오는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계13:1~10)도 아니요,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계13:11~18)도 아니다. 천년왕국의 마지막 시기에 주님이 무저갱에 갇혀 있는 사탄마귀를 잠깐동안 놓아주게 됨으로 그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260일이라는 기간은 그 기간이 영적인 기간인지 아니면 진짜 마지막 끝자락의 시기에 도래할 실제적인 기간인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주님께서 승천하신 이후부터 시작된 환난의 날은 주님의 재림시까지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부터 혹은 마지막 시기의 어느 시점에, 바다짐승과 땅짐승이 연합하여 성도들을 죽이게 된다고 하였다(계13장). 그것이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데, 이러한 환난은 초기교회 때에도 있었다. 표를 받지 아니하면 매매를 하지 못하게 하여 그리스도인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고, 황제를 "주 하나님"으로 숭배하지 않는 자는 다 죽이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러한 일은 지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사탄마귀가 올라와서 짐승과 거짓선지자와 더불어 활동하는 잠깐의 기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시기 동안에 성도들은 다 환난을 받게 될 것이다. 참고로 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지상에서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하늘에 올라간 성도들이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것을 가리킨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병진목사의 요한계시록 52주 강해를 참고하라). 그리고 사탄의 감금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에 이미 일어난 일로서, 죄없는 예수님을 죽인 것 때문에 지상에서 활동하던 사탄마귀가 무저갱에 갇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 자신을 대신하여 다른 짐승 곧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과 그리고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을 시켜 그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천년왕국의 끝 무렵에는 그 놈이 직접 올라와서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일 것이다. 그리고 최종의 시기에 짐승(첫째 짐승=바다짐승)과 거짓선지자(둘째 짐승=땅짐승)와 연합하여 세상 만국을 미혹하고 땅의 왕들을 미혹하여 아마겟돈 전쟁 곧 곡과 마곡의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세번째는 이 기간에 해를 옷입었던 여자가 광야로 가서 1,260일동안 양육받을 것이다(계12:6~17). 사실 여기에 나오는 1,260일 곧 42달 혹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그것이 산술적인 숫자인지 영적인 숫자인지는 예단하기가 쉽지 않다. 왜나하면 해를 옷입은 여자가 광야로 가서 1,260일동안 양육을 받는다고 하였는데, 그 여자가 광야로 가는 시기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 아이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승천하는 직후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자가 광야로 가서 양육받은 기간(1,260일)은 예수님의 승천이후 재림 때까지의 모든 기간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환난이 지속되다가 어느 시기가 되면 진짜 1,260일이라는 기간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그때에는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진실한 성도들을 매매를 못하게 할 것이고 짐승과 그의 우상을 경배하지 않는 자는 죽일 것이다. 그런데 이 시기가 도래하면 주님께서는 초자연적으로 성도들을 광야에 숨겨 양육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첫 열매로서 예수님을 낳고 그 뒤로 이기는 성도들을 산출하였던 바, 해를 옷입은 여자를 주님께서는 환난 중에서 지켜주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짐승에 의하면 죽임당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허락하심 하에 일어날 일이 될 것이며, 그런 자가 순교자의 숫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네번째는 이 기간동안 성전(교회의 성도들)이 이방인들(만국)에게 의해 짓밟힐 것이다(계11:1~2).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11장 첫 부분에서 이방인들(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에드네'로서 '만국')이 '거룩한 성'을 42달 동안 짓밟을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나오는 '거룩한 성'이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가리키는데, 42달이라는 기간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기간도 실제적인 기간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기간을 가리킨듯 보인다. 그리고 거룩한 성 또한 상징적인 장소라고 보인다. 왜냐하면 이 시간에 만국이 성도들을 핍박하는 기간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또한 요한계시록에서 새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백성들 곧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거주하는 공간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42달의 기간은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까지의 전 기간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앞에서 언급한 '두 증인'이 활동하는 기간이나, 해를 옷입은 여자가 도망하게 광야에서 양육받는 1,260일이나 사실은 다 같은 기간인 것이다. 

  네번째는 이 기간에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과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성도들이 핍박하여 죽이기도 할 것이다(계13장). 이때 바다에서 올라오는 첫째 짐승(일명 '적그리스도'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제국의 왕)와 땅에 올라오는 둘째 짐승(일명 '거짓선지자'로서 교회의 지도자)는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일 것이다. 왜냐하면 첫째 짐승(바다짐승)이 사탄으로부터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길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계13:7). 이 때는 성도들에게는 인내가 참으로 필요할 것이다(계13:10). 더욱이 첫째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이제 둘째 짐승(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으로서, 교회 가운데서 활동하는 '거짓선지자')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첫째 짐승을 위하여 표를 만들라고 하고, 짐승의 표(666표)를 받지 아니하는 자들을 죽일 것이 때문이다. 이것은 초기교회로부터 시작된 것이지만 마지막 시기에 더 활성화될 것이다.

  다섯번째는 이 시기에 하늘에 있는 보좌자리인 144,000석의 자리에 이기는 성도들로 거의 다 채워질 것이다(계6:9~11, 14:1~5). 그리고 나머지는 셋째 화(일곱번째 나팔=일곱가지 대접 심판들)의 직후에 채워짐으로 완성될 것이다. 지금 천국에 있는 144,000석의 보좌 자리는 거의 다 채워진 상태에 있다. 몇 몇 자리가 비어있기는 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이 마지막 시대에 그 자리들이 채워질 것이다. 그 자리가 채워지면 주님이 오신다. 그 빈 자리가 채워지는 기간이 곧 1,260일이며, 42달이며,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될 것이다. 

 

5. 주님이 공중으로 오시는 그 시점에는 무슨 일이 있는가?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언제 하늘(공중)으로 오실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통하여 그 싯점을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주님의 오심은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 같을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살전5:3). 그러므로 그날을 준비하지 못한 자들은 그날이 도둑처럼 임할 것이다. 하지만 깨어있어 그날을 준비하고 있는 자들에게는 그 싯점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둠에 있지 아니하는 자들은 그날이 도둑같이 임하지 않는다고 사도 바울은 말했다(살전5:4). 그러므로 진실한 성도들은 그날이 언제쯤 될 것인지를 예상하고 있다가 부름을 받고 공중으로 들려올라갈 것이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천국에 이미 들어가 있는 성도들과 그의 천사들과 함께 과연 언제 공중으로 오시게 되는가? 그리고 그때쯤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을 것인가?

  첫째, 이 때 쯤에 이제 마지막 재앙인 셋째 화(일곱번째 나팔재앙=일곱대접 재앙들)가 시작될 것이다. 이 시점은 무저갱으로부터 용(짐승)이 올라와서 두 증인을 죽임으로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계11:7). 왜냐하면 성도들은 '첫째 화'와 '둘째 화'는 동일하게 받지만 적그리스도 치하(음녀 포함)에 내리는 '셋째 화'는 받지 않을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여기서 '셋째 화'라는 것은 일곱 번째 나팔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일곱 가지 대접 재앙들을 가리킨다(계16장)

  둘째, 셋째 화의 시작 시기를 다른 관점으로 본다면 그때는 천년왕국이 끝나는 시점으로서 하나님께서 무저갱에 갇혀 있는 용을 잠깐 놓아주는 기간이 될 것이다. 거의 확실하건데 셋째 화는 진실한 성도들은 받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무저갱에 갇혀있던 사탄이 올라와 죽이는 환난은 실로 무시무시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날을 감하지 않는다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오히려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환난의 날들을 감하신다고 하셨다. 이 시기가 바로 그 시기인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천년동안(상징적인 기간으로 많은 시간을 가리킴) 왕노릇하던 성도들이 주님과 함께 하늘군대의 대열에 참여할 즈음에, 주님께서는 미가엘 천사(?)를 지켜서 무저갱에 갇혀있는 사탄마귀를 잠깐 놓아줄 것이다. 그것도 일시동안만 말이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모아서 아마겟돈 전쟁을 일으키라고 주시는 특별기간이다. 그러므로 이 때에 이 땅에 남겨진 성도들은 쭉정이나 음녀와 같은 성도들 뿐일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진실한 성도들이 휴거되어 하늘로 올라간 상태이므로 사탄 마귀는 명목상이지만 남겨진 세속적인 성도들을 핍박할 것이다. 그러면 대부분의 성도들은 짐승에게 경배하고 그의 표를 받아 사탄의 편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도 극소수는 깨닫고 짐승을 경배하지 않으며,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할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 몇몇은 순교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18장에 보면, 음녀 곧 세상과 짝하여 사는 성도들이 죽임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놀랍게도 음녀가 짐승에 의하여 멸망을 당한다. 무저갱에서 사탄마귀가 올라오기 전까지, 음녀는 첫째 짐승과 놀아났다. 그래서 사탄을 대신하는 첫째 짐승을 힘입어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진찌 짐승 곧 사탄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는 것이다. 

  셋째, 일곱째 나팔이 울려퍼지면 용이 올라와서 마지막 대환난(대대적인 핍박과 살해)이 시작될 것이다. 그렇다. 주님은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오실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먼저 공중으로 오실 것이다. 그렇다고 환난전 휴거론자들이나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주의자들처럼 주님이 공중에서 7년동안이나 머물러 혼인잔치를 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천국에 들어가서 진행되는 어마어마한 행사이기 대문이다. 그 일을 공중에 잠시 머무는 동안 진행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재림하시어 공중에서는 7년동안 모든 성도들과 함께 혼인잔치를 하고, 지상에서는 유대인들이 남아서 핍박을 받다가 적그리스도를 거부하고 구원을 받는다는 설정은 처음부터 잘못된 설정인 것이다. 비록 본인이 혈통적으로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그때 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인내로 구원을 받는 것이지 적그리스도의 치하에서 고난을 겪는다고 구원받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천년왕국의 끝부분에서 사탄이 올라온다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믿는 사람들이 그의 살륙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지혜로운 다섯 처녀 처럼 댓가를 지불하여 기름을 준비해 놓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날 남겨져서 사탄의 핍박을 받게 될 것이다. 그날이 되어셔 부랴부랴 준비하지 말고 지금부터 기름을 준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날의 핍박은 너무나 크기 때문에 견디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기 전에 미리 회개하여 깨끗한 자녀가 되고 주님께 드릴 옥합을 준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6. 나오며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만큼만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더이상 나아가려해도 아니 되고, 이미 나와있는 말씀인데 없다고, 모른다고, 아니 알 것 없다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환난의 날이 곧 도래할 것이다. 마지막 시기에 있을 환난은 이전보다는 더 극심한 환난이 될 것이다. 최근까지 뜸하였는데 갑자기 코로나 전염병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청황색말). 그리고 곡과 마곡의 땅인 러시아가 유대인이 대통령으로 시무하고 있는 우크라이를 침범하여 전쟁을 시작하였다(붉은 말). 그리고 조금 있으면 극심한 기근이 찾아올 것이다(검은 말). 그렇지만 천국 복음 전파는 마지막 시기에 더욱 더 불타오를 것이다(흰 말). 이미 네 가지의 인들이 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 순교자의 호소가 뒤따라올 것이다. 이것이 다섯번째 인이 떼어지는 것이다. 순교자들이 채워진다는 것은 극심한 성도들의 핍박과 살해가 일어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여섯째 인이 떼어질 때 해와 달과 별들에게 이상한 징조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님이 재림하시는 것이다(마24:29~31). 순교자들의 채워진다는 것은 짐승과 거짓선지자에 의한 핍박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곧 있으면 이 마지막 시기에 이 환난은 더 극심하게 적용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누구든지 환난의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환난을 견뎌낼 신앙의 준비가 필요하고 일상생활을 영유하기 위한 준비도 같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면 얼마후에 사탄이 놓이게 될 것이다. 이때에 주님께서 하늘로 오시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정확한 시기는 알 수는 없어도, 주님께서 진실한 성도들을 공중으로 불러올릴 것이다. 이것이 바로 '휴거'인 것이다. 그리고 지상에는 적그리스도 치하에 일곱 대접 심판들이 내려질 것이다. 음녀가 되어 세상과 짝하여 살던 양다리 신앙 성도들은 이때 남겨질 것이다. 그래서 사탄짐승에 의한 극심한 박해를 겪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은 주님을 부인하고 짐승을 경배하고 666표를 받겠지만 그래도 몇몇의 극소수의 사람들은 그때에 회개할 것이다. 아마도 이들을 위한 중보기도가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휴거된 성도들의 기도가 이들을 순교의 자리에 들어할 것이다. 그러나 그 숫자는 많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금새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회개하고 천국복음을 전파할 시기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지금처럼 좋은 시기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회개하려면 지금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천국을 사모하고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 시대에 주님의 주시는 주님의 마지막 자비이기 때문이다. 

 

 

2022년 04월 24일(주일)

정병진목사

 

지금 코로나의 현상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 가야 하는가? 정부에서 내렸던, 비대면 예배 행정명령에 대해 우리는 저항해야 하는가 아니면 방역강화조치에 적극 협력해야 하는가? 그리고 전염병의 창궐은 정말 종말의 징조인가? 아니면 지나가는 일인가? 왜 하나님께서는 교회에게 지금과 같은 이런 상황을 허락하셨다고 보는가? 여기, 주님께서 말씀해주시고 교회 역사가 들려주는 해답이 있다. 
 
2020-08-30 주일낮예배
제목: 코로나를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가?(눅21:7~19)
https://youtu.be/oszGt9Ne2Fg [혹은 https://tv.naver.com/v/15515848  ]

 

 

1. 들어가며

  지난 8월 14일부터 제2차 코로나 감염예방을 위한 정부정책이 시행됨에 따라 교회들이 모두가 문을 닫고 비대면 온라인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비대면온라인예배를 할 수 없는 한국교회가 70%를 차지한다는 이야기도 들리는데, 큰 교회는 큰 교회대로,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비대면 상황 가운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비대면예배가 언제 끝날 것인지 대해서는 아무런 기약도 없다. 그런데 이 틈을 타고 전염병의 창궐이 마치 주님재림의 징조인량 떠들어대는 기독교 이단들도 더러 있다. 그렇다면 제2차 코로나의 창궐을 맞아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비대면예배를 기독교탄압이라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의한 발생하고 있는 전염병은 대체 어떤 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가?

  코로나19는 동물에서 사람으로 옮겨온 신종 바이러스에 의한 호흡기 질환이다. 그런데 과거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병의 예는 인류 역사 가운데서 계속되어 왔다. B.C.1446년 출애굽시대에도 애굽에는 전염병이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이나 그때나 종류만 다를 뿐 계속해서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이 있어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치사율보다는 전염성이 매우 강해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는 것이 그 특징이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폐렴을 유발하고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에게는 사망에게도 이르게 한다. 사실 이 질병 자체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감염된 사람으로 인하여 주변의 사람들마저 자가격리조치를 받아야 하고, 건물에 폐쇄조치가 내리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질병에 의한 가장 큰 피해당사자는 바로 "교회"라는 것이다. 성도도 국민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숫자적으로 보았을 때 대한민국 국민의 1/4이 기독교인이므로 숫자적 측면에서도 단연코 앞설 뿐만 아니라, 감염률이 엄청 높은 변종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해 서울에 있는 사랑제일교회가 감염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교회는 코로나의 온상이 아니냐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것을 두고 국가에서 교회에 대해 비대면예배를 드릴 것을 강제로 명령함으로써, 졸지에 교회는 종교의 자유를 박탈당하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특히 부산과 경남을 중심으로 비대면예배 거부운동이 펼쳐짐에 따라, 교회는 자기들만 아는 이기적이고도 오만한 집단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정부의 비대면예배 강행명령은 과연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보야야 하는가? 아니면 국민건강을 지켜내기 위한 필요불가결한 조치라고 보아야 하는가? 또한 교회는 비대면예배를 거부해야 하는가? 아니면 정부의 방역조치에 협조해야 하는 것인가? 이쪽 측면에서 보면 이것이 맞는 것 같지만, 저쪽 측면에서 보면 저것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성도들은 어느 위치에 서 있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이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해 가야 하는 것인가?

 

3.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렇다면,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은 정말 종말의 징조라도 되는 것인가? 최근 들어와 코로나의 창궐을 종말의 징조로 보려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렇다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우리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의 파괴예언 직후, 그 일이 언제 일어나며 그때가 될 때에는 어떤 징조가 있는지를 묻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되면 거짓선지자과 거짓그리스도들이 일어날 것이며 그들은 "내가 그다"라고 말할 것이나 끝은 아니라고 하셨다. 그리고 주님 재림전까지 4가지 일이 동시에 펼쳐질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전쟁들과 지진들과 기근들과 전염병들"이다. 여기서 눈겨여볼 것은 네 번째인 "전염병"이다. 그러면, 전염병은 종말의 징조인가? 그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전염병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나마 우리에게 알려진 전염병은 14세기에 있었다. 유럽발 흑사병으로 인해, 당시 유럽인구 약 7,500만명에서 2억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온 후 전염병은 그 양상이 약간 달라진다. 왜냐하면 동물의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전이되면서 발생하는 신종바이러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2년에는 사스가, 2009년에는 신종플루가, 그리고 20215년에는 메르스가 유행했다. 하지만 현대로 올수록 치사율이 높아진 것 만큼은 사실이다. 그래서 올 해 전까지는 전염성이 약했다. 하지만 올 출연한 코로나19바이러스는 정말 무섭다. 치사율은 낮으나 감염성이 매우 높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형인 GH형의 감염은 더욱 더 심각하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제2차 코로나의 주범은 우한형(S형)도 아니고, 대구형(V형)도 아니다. 그것은 유럽형(G형) 중에서 GH형에 해당한다. 최고의 감염력을 지닌 바이러스인 것이다. 그러니 확진자 중에 깜깜이형이 무려 20%나 차지한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우리는 놀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보다 더한 바이러스의 출현이 예고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동물에 기생하고 있는 바이러스가 160만종이나 되는데, 그중에서 연구되어 알려진 바이러스는 고작 300종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앞으로 어떤 바이러스가 출현하여 인간을 감염시킬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4. 전염병 이후 지구에서 일어날 일들은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전염병 이후에 지구에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눅21:10-11)" 그렇다. 전쟁과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지구에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후에는 하늘에서 무서운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 또 다른 하나의 재림징조가 있다. 그것은 이 말씀이다.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 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눅21:12-13)" 그렇다. 전염병과 하늘의 대재앙 사이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대한 대대적인 핍박과 감금과 살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대한민국과 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염병은 재림의 징조라기보다는 그 전단계의 마지막 일이라고 보아야 한다. 즉 예수님의 승천이후 계속되고 있는 중요한 한 가지 일이라고 보시면 될 것이다. 진짜는 이 전염병의 시기가 지나게 될 때, 성도들에 대한 핍박과 순교가 시작될 것이고, 하늘에서 일어나는 대재앙이 뒤따를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때 하늘로부터 구름을 타고 주께서 재림하실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 하늘에서는 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비단 하늘만의 일은 아니다. 바다와 땅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다. 우선 하늘에서는 해와 달과 별들에 어떤 징조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최소한 별들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다에서는 어떤 우는 소리에 인해 사람들은 기절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땅 위에서는 큰 지진이 나서 섬과 도시들이 한꺼번에 침몰되는 일도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정말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같은 전염병 따위에 놀랄 이유가 없다. 더 크고 더 엄청난 일들이 우리들 앞에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5. 전염병 이후 교회에서 일어날 일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전염병 이후 교회에서는 어떤 일이 있을 것인가? 신약시대에 메시야의 오실 길을 예비했던 세례요한은 예수께서 오신 이후 재림 때의 일을 단 두 구절로 압축해서 말했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3:11-12)" 그렇다. 예수님의 재림전까지는 부지런히 복음이 전파될 것이고 그래서 세례받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 시기가 끝나게 되면, 예수께서 키질을 시작하실 것이다. 여기서 "키질"이란 키로 곡식을 까부는 일로서, 쭉정이는 더  멀리 날아가게 만들고, 알곡은 주인 가까이에 계속에서 더 모여들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다 타작마당을 깨끗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마3:12). 그렇다. 주님 보시기에 교회는 타락마당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이때까지 타작마당에 놓인 곡식들을 정리할 차례가 온 것이다. 그것을 정리하기 위해 그것들을 전부 모아다가 까불 것이다. 그래서 알곡은 곳간(천국창고)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불못)에 던져넣게 될 것이다. 고로 전염병이 끝나가면서 성도들의 핍박받는 시기로 넘어가는 지김의 시기는 바로 성도들이 알곡과 쭉정이로 나눠지는 시기인 것이다.

 

6. 사도요한이 보았던 말세에 일어날 일들은 어떤 순서로 일어나는가?

  A.D.95년경 사도요한은 소아시아 앞바다에 있는 밧모섬에 갇혀있었다. 그런데 그때 하늘로 올라간 사도요한은 말세에 되어질 일들을 본다. 그때 하늘에는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의 두루마리를 한 어린양이 나오더니, 그것을 하나씩 뜯어보게 된다. 그러자 미래에 되어질 일들이 한 장면이 나오기 시작한다. 총 7개의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것들은 네 장면과 세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순서는 마태복음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것과 동일했다. 그중에서 처음 4개의 인을 떼니, 4마리의 말들이 튀어나왔는데, 첫 번째의 말은 흰 색이었고 두 번째의 말은 붉은 색, 세 번째의 말은 검은 색, 네 번째의 말은 청황색이었다. 그리고 그 말들 위에는 탄 자가 있었는데, 그것은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해석해보면, 첫째 말은 복음전파를 의미하고, 둘째 말은 전쟁을 의미하며, 셋째 말은 기근을 의미하며, 넷째 말은 전염병에 의한 사망을 의미한다. 이것이 예수재림 전까지 이 세상에서 일어날 일들이다. 그것을 사두경마의 하나의 그림으로 요약한 것이다. 그러니까 전염병은 주님의 재림 전까지 계속될 지구의 역사 가운데 하나인 것이지 종말의 징조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린양이 이번에는 다섯째 인을 떼시자, 순교자들의 호소가 들려왔다. 그리고 여섯째 인을 떼자, 해와 달과 별들에게 무서운 일들이 보여졌다. 그리고 땅에서 대지진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일곱째 인을 떼자, 일곱 개의 나팔소리와 함께 우리 주님이 오셨다. 고로, 우리는 계시록에 나오는 "순교자들의 호소"는 전염병 이후에 있을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핍박과 지도자들의 순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후에 해와 달과 별들에게 있을 무서운 일들과 땅 위에서 일어날 대지진이야말로 종말의 마지막 징조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때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해가 총담같이 검어질 것이고, 달은 핏빛처럼 붉어지며, 별들은 대풍에서 흔들려 떨어지는 설익은 과일처럼 떨어질 것이다. 그러니 지금 전세계적으로 요동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은 그 전전단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결코 놀랄 것은 아니다. 이보다 더 큰 엄청난 자연재앙이 예고되어 있기 때문이다. 

 

7. 전염병의 끝자락을 살고 있는 성도들은 지금 무엇에 대비해야 하는가?

  고로 전염병의 끝자락에 살고 있는 지금의 성도들은 앞으로 되어질 일들에 잘 대비하여 흔들림없는 신앙생활을 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서 성도들은 첫째, 지금이야말로 알곡과 쭉정이를 나누는 시점으로 알고, 자신이 쭉정이로 분류되지 않도록 배나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사실 전도의 시대는 이제 끝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전도는 더이상 힘들 것 같다. 코로나의 제2차 유행과 맞물려, 교회가 코로나를 퍼뜨린 장본인처럼 취급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부 비대면예배 거부운동이 대두됨에 따라 교회와 목사는 이제 사람이 아닌 것처럼 취급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들에는 성도들과 목회자들의 실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들이 대대적으로 교회에 대한 비난 기사를 부풀려 마구 쏟아냄으로 인하여, 교회는 이제 기피대상 1호가 되어버렸고, 혐오집단화 되어버렸다. 교회는 자기들끼리만 챙기는 이기적인 집단인 것처럼 도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와 목회자의 실수가 있었고 허물이 있다고 할지라도, 예수님마저 동일선상에 놓아서는 안 되는데 세상사람들은 그것을 잘 모른다. 사실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사람의 영혼을 문제를 다루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분명 교회가 이 지경이 되기까지는 교회가 저지른 과오들도 있었을 것이다. 부흥성장만을 목표로 예수만 믿으면 구원받다고 알려주고, 예수를 믿으면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받았다고 가르쳤으니, 죄짓고도 회개치 않은 사람이 얼마였던가! 그러다보니 교회는 부패의 온상이라 불리기에 일조한 것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의 일로 인해 교회는 사회악이라고 불리게 되어버렸다. 그렇다손치더라도 예수님은 그러한 분이 아니시다. 그분을 통하지 않고는 우리는 죄를 이길 수 없으며, 천국에 들어갈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기에 현장예배가 어려울수록 더욱 더 깨어서 기도하고 회개하고 더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한편 지금 정부에서 교회에게 내린 비대면예배조치에 대해, 종교의 자유에 대한 탄압이요 기독교탄압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더러 있다.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현장에 나와 예배하는 것으로 저항하는 것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도 성전이 파괴되었지만 70년동안 구약백성들은 다 성전없이 신앙생활을 했다. 그리고 초기신약의 성도들도 4세기 중반까지는 예배당없이 신앙생활을 했다. 정부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지 말라고 강요하거나 불이익을 준다면 그때 우리는 저항해야 한다. 마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말이다. 그리고 다니엘 시대처럼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더라도 기도는 쉬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행할 때에 불이익을 준다고 하면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면 된다. 그것이 기독교인의 저항이다. 몇몇 교회 어르신들은 현장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하지만, 초대교회는 현장예배에 목숨을 걸었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주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알고, 지금은 교회의 역사에서 배워야 할 때인 것이다. 

  그리고 둘째, 앞으로 다가올 마지막의 재림의 징조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곧 있으면 하늘에서 무서운 일들이 일어날 것이고, 바다는 밤마다 이상한 소리를 내어 사람들을 혼절시킬 것이다. 그리고 땅 위에서는 지진이 일어나 하루 아침에 도시들이 사라지고 섬들도 침몰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요한계시록에 보니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살게 할 자는 살게 하시고 보해주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혹 내가 죽음의 상황에 놓인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회개하고 믿음을 지킨다면, 언제라도 주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지금이야말로 내 가족을 전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알고 전도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 전염병으로 인해 교회의 전도는 사실상 거의 끝나가고 있다. 하지만 가족은 다른 것이다. 가족은 계속 얼굴을 쳐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성도들의 대대적인 핍박의 시기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보여주셨다. 그것은 형제가 형제를 대적하여 일어나고, 부모가 자식을, 반대로 자식의 부모를 죽는 데에 내어준다고 하셨다(마10:21~22). 그렇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고난받고 감옥에 갇히고 재산을 몰수당하고 핍박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러면 가족 중에 믿지 않는 자가 자기집에 있는 믿는 자를 고발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이 시기야말로 가족전도의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할 때 가족전도를 잘 할 수 있을까? 올 해 들어와 회개를 실천해보니, 회개가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개야말로 자식들이나 부모 속에 들어있는 귀신들을 무력화시키고 쫓아내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불신 가족의 몸 속에 있는 한 복음을 듣지 못하게 할 것이고 믿지 못하도록 방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믿는 우리가 조상들이 지었던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한다면 귀신들이 약화되고 곧 떠날 것이다. 그러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깨끗한 마음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때 우리가 말씀대로 기도하면서 사는 진실한 성도로 살게 되면, 불신가족이라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고로 지금부터 회개기도를 시작하라. 회개기도할 줄을 모르면 본 교회의 회개기도문을 가져다가 읽으면서 기도해보라.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8. 나오며

  그렇다. 동물에서 사람으로 전이되는 전염병이 출현하고 있는 지금의 시기는 이제 대대적인 성도들에 대한 핍박으로 이어지는 바로 그 중간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지금의 시기는 알곡과 쭉정이를 나누기 위해 주님께서 키질을 하고 있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믿음이 없거나 주님을 가까이 하지 않는 자는 이때 주님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시기다. 하지만 반대로 이런 때일수록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여 신앙에서 떨어져나가지 않도록 힘써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면 그는 점점 더 알곡쪽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시기가 우리 성도들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마음을 풀어놓지 말고 긴장의 끈을 더 동여매여 한다. 그리고 더 회개기도에 집중하여 자기가족을 전도해야 한다. 그리고 더 큰 무서운 천체와 커대란 자연재앙이 일어난다는 것을 미리 알고 그날을 잘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것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우리는 지구에서 천국으로 이사가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때일수록 오히려 두려워하는 다른 세상사람들을 보듬어줄 수 있는 담대한 믿음을 갖춰야 한다. 그런 자들에게 하늘의 복이 있을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20년 08월 30일(주일)

정병진목사

요한계시록에 보면, 네 마리의 말과 그것 위에 탄 자들에 대한 환상이 나온다(계6:1~8). 이는 어린양되신 예수께서 장차 되어질 일이 기록된 두루마리의 일곱개의 인들 가운데 처음부터 넷째 인까지를 뗄 때에 보여진 장면이었다. 그때 네 마리의 말과 그것 위에 탄 자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백마과 홍마와 흑마과 청황색마와 그것 위에 탄 자였다. 그렇다면, 그중에서 백마와 백마를 탄 자는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적그리스도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인가?

2019-11-17(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흰 말과 그 위에 탄 자는 과연 적그리스도인가?(계6:1~8)
https://youtu.be/gzYxQb-Rg3U


1. 들어가며

  주님께서는 과연 언제 오시는가? 어떤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당장 오실 것만 같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그것은 우리 신앙의 핵심적인 논조가 아닌 것도 같다. 너무 빨리 오신다고 하면 조급함 때문에 중요한 것을 놓칠 수가 있고, 너무 늦게 오신다고 하면 나태해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각오를 지닌 채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곧 적그리스도가 등장하고 휴거가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인들으로 봉한 두루마리에서 첫째 인을 뗄 때에 나오는 흰 말과 그 말 위에 탄 존재를 적그리스도라고 해석한다. 과연 이 해석은 올바른 해석이며, 흰 말과 그말 위에 탄 존재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래서 오늘은 일곱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하여 어린양이 첫째인을 떼시는 장면을 가지고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일곱인은 재앙인가 아닌가?

  요한계시록을 해설해놓은 여러가지 책들이나 주장들을 살펴보면, 어린양되신 예수께서 떼신 일곱 개의 인들을 대부분 "재앙"이라고 해석하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일곱인들의 재앙과 일곱나팔들의 재앙과 일곱대접들의 재앙으로서 3중재앙이라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해석이 과연 요한이 쓴 묵시(계시)를 잘 해석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특별히 일곱 인에 대한 해석 가운데, 둘째 인과 셋째 인과 넷 째인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의 학자들이 일치된 해석을 내놓고 있다. 말과 그 탄자를 각각 "전쟁"과 "기근"과 "사망"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째 인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흰 말과 그 위에 탄 자를 "적그리스도"라고 해석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그렇다면, 흰 말과 그것 위에 탄 자를 과연 "적그리스도"라고 해석해도 되는 것인가?

 

3. 무엇이 바른 성경해석의 기준이 되는가?

  그러나 성경을 해석하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원칙을 주의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문자적인 해석이다. 본문이 기록된 헬라어나 히브리어 원문을 살펴보고, 앞 뒤의 문맥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러면 거의 대부분 성경해석에 대한 가닥이 잡힐 것이다. 하지만 요한계시록과 같은 경우는 그 내용이 거의 환상과 상징으로 기록된 채 있기 때문에, 그냥 문자 그대로 해석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보자. 요한계시록 12:1에보면, "해로 옷을 입은 여자"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 여인의 발 밑에는 달이 놓여 있다. 그리고 그녀는 머리 위에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쓰고 있다. 이것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이러한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야 옳다. 어떻게 사람이 해(태양)로서 옷입고 있을 수 있으며, 달을 발로 밟고 있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러므로 이런 경우는 다른 잣대로 해석을 해야 한다. 그래서 두번째의 해석방법이 필요하다. 그것을 상징이나 은유로  해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징을 아무렇게나 대입해서는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해석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성경의 묵시들(계시들)은 이미 다른 곳 특히 구약에서도 언급된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징이나 은유를 해석하려 할 때에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선례를 찾아보아야 한다. 그럴 때에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 갈 것인가가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번째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과연 예수께서는 어떻게 해석했으며, 사도들은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만약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해석한 방법과 사례가 아닌 다른 방법과 사례로서 성경을 해석하고 있다면 그는 이단이나 사이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예를 들어, 민수기 21장의 장대 위에 높인 달린 놋뱀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보자. 그런데 예수께서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장대에 달린 놋뱀에 대해서 언급하신 적이 있다. 그것이 곧 십자가에 위에 달리신 죄없으신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당시 독뱀에 물려 죽어가는 자들이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쳐다볼 때에 살게 되었던 것처럼,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바라보는 자는 죄로 오염되어 죽어가는 영혼들이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회사 가운데 그 본문에 대하여 어떤 해석을 해 왔는가를 참고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본문을 해석하는 데에 참고할 만한 것들이 많이 보여지게 될 것이다. 이처럼 성경해석은 문자적인(문맥적인) 해석, 상징적인 해석, 예수님과 사도들의 성경해석, 교회사적인 해석을 통하여 가장 바른 성경해석을 찾아볼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성경의 원저자로서, 요한복음 14~16장에 나오는 보혜사 성령의 도움없이는 바르게 성경해석을 할 수 없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4. 일곱인의 해석에 대한 핵심적인 단서 내지는 열쇠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어린양에 열어젖혔던 일곱인으로 봉인된 두루마리 안의 첫째 인과 둘째 인과 셋째 인과 넷째 인에 대한 해석의 핵심적인 단서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가장 먼저 본문의 문자나 문맥을 통해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이 본문에는 그것이 요한계시록 6:8에 기록되어 있다. 사망으로 [동물이나 사람이] 죽는 4가지 방법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검(칼)과 흉년(기근)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이라고 했다. 그런데 누가 해를 받아서 죽게 될른지는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사람이나 동물 무두가 다 해를 받지 않나 싶다.

  그런데, 우리는 계6:8의 말씀을 통하여, 동물이나 사람이 죽어나가는 4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것들 모두가 다 첫째 인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에 의한 사망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붉은 말과 그것 위에 탄 자는 "칼"로 인한 "전쟁"을 상징하고, 검은 말과 그것 위에 탄 자는 "흉년"으로 인한 "기근"을 상징하며, 청황색 말과 그것 위에 탄 자는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곧 둘째 인과 셋째인과 넷째인을 뗄 때에 나오는 말 탄 자는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에스겔나 예레미야나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에 다 나온다. 그런데 사람을 죽이는 또 한 가지 방법이 추가로 더 들어 있다. 그것은 "땅의 짐승들"에 의한 사망이다(겔5:17, 14:21). 사람이 짐승들의 공격을 받고 죽어나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짐승들은 단순히 그냥 짐승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자'와 '곰'과 '표범'이 대제국의 황제들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며, 그 배후에는 사탄마귀의 부하들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계13장).  고로, 요한계시록의 첫째 인은 칼과 기근과 전쟁과 짐승에 의한 재앙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아니 다른 종류의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어야 한다.

 

5. 첫째인을 뗄 때에 출현한 흰 말과 그 말 위에 탄 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첫째인을 뗄 때에 출현했던 흰 말과 그것 위에 탄 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말이 흰 말이라는 것 때문에 말탄 자는 계19장 11절에 나오는 "그리스도"가 아닌가를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리스도는 두루마리 책을 떼고 있는 상황이기에 "그리스도"라고 해석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따른다. 더불어 넷째인을 뗄 때에 뛰어나온 말 탄자를 "사망"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흰 말을 타고 있는 자는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에 대한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은 둘째 인을 뗄 때에도 동일하다. 즉 둘째 인에 떼어질 때에 붉은 말과 그 말 탄 자가 튀어 나왔는데, 그것은 칼로 인한 전쟁이라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흰 말과 그것 위에 탄 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첫째, 일곱인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부터 살펴보자. 요한계시록 1장에 보면, 가슴에 금띠를 띠고 흰 옷을 비고 나타나신 예수께서 사도요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네가 본 것들과 지금 있는 일들과 장차 될 일들을 기록하라(계1:19)" 결국 요한계시록 1장은 "네가 본 것들"에 해당하며, 요한계시록 2~3장은 "지금 있는 일들"이고, 요한계시록 4~22장은 "장차 될 일들"에 해당하는 것이다. 고로, 일곱인은 전부 재앙을 가리키는 아니라, "장차 될 일들"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승천이후 재림 때가지는 결코 재앙만 있지 않다. 복음도 전파될 것이고, 순교자고 나올 것이고, 자연에 재앙도 있을 것이며, 기근과 지진, 전염병이 창궐하고 귀신의 공격도 지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곱인을 무조건 "재앙"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서는 아니 된다. 예를 들어, 다섯째인이 떼어질 때에는 이미 죽임당한 성도들이 천국의 제단 아래에서 자기들의 피를 신원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는데, 이는 재앙(화, 심판)이라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흰 말과 그것 위에 탄자를 그리스도라고 해석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자. 흰 말과 그것 위에 탄 자를 "그리스도"라고 해석하는 데에는 장차 지상에 재림하실 그리스도가 백마(흰 말)을 타고 오시기 때문이다(계19:11). 하지만 두루마리의 일곱 인을 떼시고 있는 분이 어린양이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좀전에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흰 말과 그것 위에 탄 자를 "그리스도"라고 해석하기에는 조금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셋째, 흰 말과 그것 위에 탄 자를 "적그리스도"라고 해석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자. 흰 말과 그것 위에 탄 자를 사탄이라고 해석하는 데에는 일곱인이 재앙이라는 관점과 사탄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이라는 관점에서 그렇게 해석하는데,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말을 탄 자가 쓰고 있는 면류관을 보면 "적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흰 말을 탄 자의 머리에 쓰고 있는 "면류관"은 "디아데마(왕관)"이 아니라, "스테파노스(승리관,면류관,월계관)"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한 번도 사탄이나 사탄 쪽에서 일하는 자가 "면류관"을 썼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다섯째 나팔 때에 올라오는 황충들이 자기들의 머리에 왕관을 쓰고 있었는데, 그것도 면류관이 아니라, 금같은 면류관 비슷한 것이라고 나올 뿐이다(계9:7). 성경에서 면류관은 오직 예수님과 이겼던 성도들만 쓸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도 죄와 마귀와 죽음을 이기셨고, 성도들도 예수님을 힘입어 죄와 마귀와 죽음을 이기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흰 말과 그것 위에 탄 자"는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문자나 문맥을 통해서 파악할 수 없다면, 그후로는 상징적인 해석을 시도해봐야 하며, 그것도 안 되면 예수님과 사도들은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24장에 보니, 예수님의 해석이 나온다. 마24장에 보면,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 있을 징조들"이 무엇인지에 관해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둘째 인과 셋째 인과 넷째 인에 관해서 직접적으로 말씀하셨다. 즉 "전쟁"이 있을 것이고(마24:7),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이며(마24:7), "전염병"이 있을 것(눅21:11)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더불어 거짓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의 출현도 있을 것(마24:4~5,11)이라고 했는데, 이들은 바로 사망으로 역사하는 마지막 도구들로서 "땅의 짐승들"이 그것에 해당한다(계6:8). 그렇다면, 흰 말과 그것 위에 탄 자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일"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마24:14). 즉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 그렇다. 흰 말과 그것 위에 탄 자는 복음전파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첫째로,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만이 "면류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로, 한 번 이기고 끝마치는 일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기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계6:2). 뿐만 아니라 셋째로, 일곱인이 전부 재앙으로 볼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승천이후 재림 때까지 있어질 일이라고 볼 때에도 복음전파가 가장 타당한 해석이 되기 때문이다.

 

6. 나오며

  그렇다. "복음전파"는 예수님 때에나 예수님의 제자들 때에만 있을 일이 아니다. 그리고 가장 잘 나가던 19세기에만 있을 일도 아니다. 이것은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지속되어야 할 일이다. 주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28:18~20). 고로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일을 멈추어서는 아니 된다. 특히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열심을 내야 한다. 이것이 마지막에 전해야 할 복음이기 때문이다. "회개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해야 한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것은 증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누가복음 24:47에 의하면, 그것은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를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민족에게 증언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다(눅24:47~48). 이 일을 위해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제자들에게 보내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눅24:49). 그렇다. 우리는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행1:8). 이것은 비바람이 몰아쳐도 해야 일이며,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해야 할 일이다. 그것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두 증인"의 사역과 일치한다(계11장). 그렇다. 복음을 증거하자. 그런 자들에게 승리의 면류관이 쓰여질 것이다(계6:2, 2:10, 3:11). 주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지켜주실 것이다(계3:10~11). 주님께서 부탁하신 사명을 완수하기 전까지 주님은 그를 붙들어주심으로 죽지 않게 하실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 복음을 증거하자. 오직 천국복음을 증거하는 성도들이 되자.

 

2019년 11월 17일(주일)

정병진목사 


이 지상에 성도들이 드리는 기도는 어떻게 하나님에게 전달되는 것일까? 놀랍게도 이 지상의 성도들이 드리는 기도는 천국에 있는 구원받은 성도들을 대표하는 24장로들의 대접에 차곡차곡 쌓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 안에 기도가 가득 차게 되면, 기도담당 천사에 의해 향과 더불어 불에 살라져서 연기가 되어 하나님께 드려지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흠향하시고 천사를 통해 응답하신다. 또한 이러한 성도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축복이나 재앙을 내리시신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마지막때가 가까울수록 심판의 응답이 훨씬 더 증가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은 성도들의 기도 및 그 기도의의 응답으로 진행되는 일곱나팔재앙 중에서 처음 네 나팔 재앙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1. 들어가며

  요한계시록의 대부분은 상징 및 환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은 상징과 환상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실체요 사실들도 들어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상징과 실체를 구분하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일곱째인을 떼실 때의 장면 곧 일곱나팔재앙 중에서 처음 네 나팔 재앙들은 상당부분은 상징적인 모습들 혹은 비유들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이 밧모섬에 보았던 것이 모두가 다 실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사도요한은 당시 오늘날 우리들이 사용하는 자동차나 스마트폰을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과 비슷한 용어를 빌어서 진술할 수밖에 없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어린양께서 일곱째인을 떼실 때에 나타난 모습들 가운에 처음 네 나팔재앙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일곱째인이 떼지기 직전, 반 시간동안의 고요의 침묵과 짧은 단편계시 곧 성도들의 기도가 어떻게 하나님께 올라가고 또한 응답되는지를 어떻게 보았을까?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성도들의 기도의 전달과정 및 응답과정과 더불어 처음 네 나팔재앙의 모습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요한계시록의 전체적인 구성은 어떠한가?

  요한계시록의 전체적인 구성은 계1:19에 근거에 따라 구분한다. 첫째, "네가 본 것들"은 계1장에 나오는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일곱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인자같은 이를 가리키며, 둘째, "지금 있는 일들"은 계2~3장의 일곱교회들에게 주신 말씀들이며, 셋째, "장차 될 일들"은 계4~22장까지 나오 천국의 모습이나 환상들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그러니까 A.D.96년 당시 요한계시록 4장부터 22장까지가 바로 장차 될 일들을 기록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렇다고 해서 계4~22장에 등장하는 모든 기록들이 다 A.D.96년 이후의 일들만을 기록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것들은 하나님께서 촛점을 맞추어 인류의 시작부터 마지막 때까지의 있을 일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시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장차 될 일들"에 대해서 이제 살펴보고자 한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도 사도요한에게 보여주고 들려주었던 "장차 될 일들"은 무엇일까? 그것을 한 마디로 말하라면, 일곱인의 비밀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장차 될 일들"이란 어린양에 의해서 일곱번째 인이 떼어질 때, 사도요한의 시야에서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일곱인의 비밀에 관한 책"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이다.

 

3. 처음 여섯째 인들이 떼어질 때 일어나는 현상들

  그런데 우리는 지난 시간들을 통해서 일곱 인들 중에서 처음 6가지 인들(6장)과 그리고 중간계시(7장)에 대해 살펴보았다. 일곱인들은 넷과 셋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처음 4개의 인들이 떼어질 때 4개의 말들과 4명의 말탄 자들이 등장한다. 이때 말을 탄 자들은 실제가 아니라 어떤 것을 상징하고 있는데, 그때의 말들은 흰 말과 붉은 말과 검은 말과 청황색말들이었다. 그리고 이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복음전파'와 '전쟁' 그리고 '기근'과 '주로 전염병에 의한 사망'을 의미할 것이라고 말씀해드렸다. 그리고 이어서 다섯째 인에 떼어질 때에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향단 아래에 있던 순교자들의 호소가 등장한다. 그 호소는 어떤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지만 순교자들의 호소에 의해 심판을 시작하신다. 왜냐하면 순교자들이 밤낮 쉬지 않고 "자기들의 피를 빨리 신원해 주시기를(갚아 달라)"는 하나님께 기도드렸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천국에 들어가 있지만 그곳에서 이 땅을 비는 천국백성인 성도들의 기도에도 귀를 기울이고 계신다. 특별히 이미 천국에 들어는 순교자들의 호소에 더욱더 민감하시다. 그러자 여섯째인에 떼어졌을 때,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이 큰 타격을 받았으며 하늘에서 이상한 징조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자 오직 이 세상의 환낙을 즐기며 살던 권력있는 자들이나 부자들도 다 보좌 위에 앉으신 이의 얼굴과 어린양의 진노에서 자신의 피할 길을 찾아나선다. 그때 사도한은 그들을 향하여 경고의 메시지를 날린다. 그것은 "그들을 위한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는데 어디를 가려고 하시오(계6:17)"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요한계시록 8:1절 이하는 요한계시록 6장의 마지막 구절인 17절과 더불어 이어진다. 그 중간에 들어있는 중간계시에는 육적인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인치심과 보호를 정확히 들려주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는 환난을 통과하여 변화된 몸을 입고 천국으로 올라가고 있는 셀 수 없는 수많은 무리들에 대한 환상이 펼쳐진다.

 

4. 일곱째인이 떼어질 때에는 있었던 반시동안의 침묵과 어느 천사의 기도의 상달 및 전달의 모습들

  그리고 이제 일곱번째 인이 어린양에 의해 떼어진다(열어젖혀진다). 그러자 잠깐이지만 반시동안 하늘이 침묵을 지킨다(계8:1~2). 폭풍전야를 연상케 한다. 앞으로 뭔가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긴장시키는 고요함이다. 그리고 나자, 일곱천사가 나타나 일곱나팔 불기를 예비한다.

  그리고 아주 조그마한 중간계시가 등장하는데(기8:3~5), 그것은 한 천사의 금향로를 통하여 하늘의 제단(향단)에 드려지는 기도의 상달과정과 응답을 보자. 사도요한은 이때 어떤 한 다른 천사를 보게 되는데, 이 천사의 손에는 금향로가 들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향이 건네졌다. 그러자 그는 이미 성도들의 기도에다가 향을 살라 항의 연기와 함께, 성도들의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올라가게 한다.

 

5. 요한계시록에 등장하고 있는 "성도들"은 이미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일까 아니면 이 지상의 성도들일까?

  그렇다면, 천사가 하늘 향단 앞에서 향을 피울 때, 함께 올라간 성도들의 기도는 누가 드린 기도일까? 첫째 가능성은 천국에 있는 성도들이 드린 기도일 가능성이 있다. 구체적인 대상으로는 24장로들(계5:8)이거나 순교자들(계6:9~10)일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가능성은 이 지상에 있는 성도들이 드린 기도일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 등장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이라는 단어는 다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을 지칭하고 있기 때문이다(계13:7,10, 14:12). 사실 요한계시록 1~3장 이후에 "교회"라는 용어는 더이상 요한계시록에 나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교회와 비슷한 개념으로서, "성도들"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것은 아마도 진짜 환난의 때가 되면 교회로 모이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요, 사람들이 타락하여 교회에 출석하는 것조차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6. 천사들의 중보에 의한 기도의 상달과 응답

  이때 한 천사는 금향로에 성도들의 기도를 받아들인 후에, 자신이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향을 불살라 그것의 연기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올라가게 한다. 이것은 이 지상에서 드린, 환난과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이 드린 기도가 하나님께로 어떻게 상달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계5:8에 보면, 24장로들의 2가지 사역들이 나온다. 물론 24장로들의 사역에 찬양(예배)과 기도하는 일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계5:8에 나오는 장로들의 두번째 사역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도하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기도의 대접에 이 지상에 드리고 있는 성도들의 기도를 채우는 일을 한다. 왜냐하면 이때 24장로들에게는 각각 금대접이 들려져 있고, 그 대접 안에는 향이 가득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도요한은 이 향이 바로 성도들의 기도들(계5:8)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천국에서 신구약의 성도들을 대표하는 24장로들의 손 안에는 금대접들이 있는데, 그 안에 계속해서 향을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상 위에서 드리고 있는 성도들의 기도가 금대접에 차곡차곡 쌓이기 때문이다. 이어 금대접 안에 향이 가득 차면, 이 때 기도를 담당하는 천사에 의해 향이 더해져 불에 살라진 후에 성도들의 기도는 향연이 되어 하나님께 전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흠향하시고 그들에게 응답해주신다. 이때 나타나는 기도의 응답으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우레와 음성과 번개"가 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상에서는 앞의 3가지 요소와 더불어서 지진(계8:5)이 나며 큰 우박(계11:19)이 쏟아지는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 무엇인가 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렇듯 성도들의 기도가 하나님께서 상달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기도의 응답을 내려주심을 살펴볼 수 있다.

 

7. 처음 네 나팔 재앙의 순서와 모습들

  이제 이어서 일곱천사들 중 네 명의 천사들이 차례대로 나팔을 분다(계8:6~12).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더니 땅의 1/3이 파괴된다. 그리고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더니, 바다의 1/3이 파괴된다. 그리고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더니, 강물의 1/3이 파괴된다. 그리고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더니, 하늘의 1/3이 파괴된다. 그리고 이어서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넷째 생물일 가능성이 높다)가 큰 소리로 "화 화 화"가 있을 것이라고 외쳤다. 이는 다섯째와 여섯째와 일곱째나팔소리를 인함이다(계8:13, 9:12~13).

  여기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첫째, 하나님에 의한 심판의 집행은 다 성도들의 기도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성도들의 기도 때문에 나팔들이 울려퍼지기 때문이다. 둘째, 사람의 죽음은 환경파괴로 인한 죽음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장차 사탄과 귀신들에 의한 직접적인 공격이 성도들에게 나타날 것을 암시한다. 셋째, 파괴가 범위가 1/3을 못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네번째 인을 떼실 때에 땅의 1/4이 죽게 된 것에 비하면, 강도가 좋 더 세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일곱째인 가운데 처음 네 나팔재앙은 왜 다 파괴가 아니라 왜 1/3뿐인가? 그것은 2/3를 통해서 사람들이 목숨을 연명하게 될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그때에라도 회개할 기회를 그들에게 주시고 싶어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 중에 긍휼을 베푸신다. 그리고 기도가 얼마나 우리의 삶에 중요로 작용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말해준다.

 

8. 나오며

  여러분은 지금도 기도하고 있는가? 말씀을 잘 알고 있다고 해서 신앙의 기초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지 말라. 기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우리에게 끊임없이 어려움이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라도 결코 흔들려서는 아니 된다. 이것을 위해서는 말씀공부와 아울러 기도하는 습관을 통해 저축된 기도자산을 확보하라. 기도는 곧 저축이요, 환난의 때와 위기의 때에 작용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 그리고 기도없이는 하나님께서도 일하실 수 없다는 것까지도 꼭 기억하라. 그리고 최선을 다하라.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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