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29) 천상에서 예수님은 인자(人子)같은 이이시다(계1:13)_2022-06-03(금)

https://youtu.be/sq8fP61yf0g  [혹은 https://tv.naver.com/v/27142676 ]

 

 

1. 예수께서 자신을 칭할 때에 사용했던 칭호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예수님을 지칭하는 칭호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런 것에는 "주", "그리스도(메시야)", "하나님의 아들", "다윗의 자손" 등의 칭호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칭호들은 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칭하는 칭호들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스스로를 어떻게 칭하였을까? 요한복음을 읽어보면 예수께서는 스스로를 '아들'이라는 용어를 참 많이 사용하셨다. 이는 다름 아닌 '아버지'와의 관계를 두고 자신를 칭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에서 "아들'이라는 칭호는 곧 예수께서 '아들'이자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것 말고도 사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인자'라는 또 다른 칭호를 많이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공관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께서는 자신을 가리키는 말을 대신하여 "인자'라는 칭호를 많이 사용하셨던 것을 알 수 있다. 즉 예수께서는 '인자'라는 칭호를 마태복음에서 29회, 마가복음에서 14회 그리고 누가복음에서 27회, 도합 70회를 사용하셨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도 예수께서 자신에 대한 칭호로서 '인자'라는 칭호를 무려 12번이나 사용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그러한가? 이는 예수께서 그만큼 '인자'라는 칭호를 즐겨 사용하셨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2. 예수님은 왜 자신에 대한 칭호로 '인자'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셨는가?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자신에 대한 칭호로서 '인자(人子)'라는 용어를 참 많이 사용하셨는데, 어떤 경우에 이러한 칭호를 사용하신 것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내가"라는 말 대신에 사용하신 것 같다.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19:28)" 그렇다. 예수께서 '인자'라는 칭호를 사용하실 때에는 "내가'라는 말을 대신하여 그렇게 사용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내가'라는 칭호 대신에 왜 굳이 '인자'라는 칭호를 사용하신 것인가? 그것은 예수님 자신이 누군지를 감추기 위한 것이다. 이는 듣는 이로 하여금 혹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단죄하여 예수님에게 돌로 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예를 들어보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마9:6)",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요6:62)" 그랬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비록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실은 하나님이셨지만 우선 그것을 감추어야 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사람들이 부인할 수 없게금 증거들은 남긴 채 십자가를 지셔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라는 말을 사용하려 하실 때에, 혹시 그 말을 잘못 듣게 되면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판단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자신을 일부러 '인자'라고 표현하신 것이다. 

 

3. 예수님에 관한 칭호들 가운데 '인자(人子)'라는 칭호는 어떤 의미인가?

  그렇다면, '인자'라는 칭호의 본래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인자'라는 말을 헬라어 원문을 따라 그대로 보면,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은 '예수께서는 사람이시다'라는 뜻인데, 그분이 동정녀 마리의 몸을 빌려 이 땅에 태어나셨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분은 자신을 '사람의 아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분은 원래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이 땅에 오신 분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분의 아버지는 그를 이 세상에 보낸 분으로서 '하나님' 자신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는 자신을 '아들'이라고 칭하셨다. 그러므로 이때 그분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 외에도 '인자(사람의 아들)'라는 칭호를 참 많이 사용하셨다. 이는 예수께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인 것이이다. 즉 자신은 동정녀(처녀)의 몸에서 탄생한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인자'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신 것이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이셨지만 사람으로서 태어나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인자'라는 불리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이것이 '인자'에 대한 첫 번째 방면의 뜻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뜻이 있다. 그것은 그분이 인류의 대속제물로 자신을 내어주기 위해 사람으로 오셨다는 것을 항상 자신이 기억하고 새기기 위하여 그렇게 자신을 부르신 것 같다. 왜냐하면 사복음서를 읽어보면, 인자라는 용어는 예수께서 자신이 고난받고 핍박받으며, 사람들에 의해 넘겨지시고,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시며, 그리고 무덤에 묻히시는 것과 관련지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자'에 대한 두번째 방면의 뜻이다. 예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마17: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마18:3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마26: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하시더라 

요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마12: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눅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그렇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음을 늘 기억하고 되새기기 위해서 자신에게 늘 '인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신 것이다. 

  그리고 '인자'에 대한 세번째 뜻이 있다. 그것은 그분이 장차 심판주로 재림하시어 상을 줄 자에게는 상을 주시지만, 벌받을 자는 면제하지 아니하시고 그를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강조하기 위한 것것이다. 고로 사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의 사역 중에서 재림에 관한 말씀을 증거할 때에는 꼭 자신을 '인자'라고 칭하셨음을 알 수가 있다. 

 

4. 예수께서 인자가 되심으로 인하여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런데, 예수님의 자기낮춤식의 '인자'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어떤 은혜를 부어 주기 위함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인자가 되심으로 인하여 2가지 권한을 아버지로부터 받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는 죄사함의 권한이다(마9:6). 이것은 예수께서 인자가 되어서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내놓으심으로 가능하게 된 것이다. 또 하나는 심판하는 권한이다(요5:27). 이는 예수께서 자신을 낮추시어 사람이 되셨기에 한 분 하나님의 권한 가운데 그분이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도 요한복음에서 언급하기를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요5:27)"고 말씀하셨다. 고로 예수께서는 인자가 되심으로 인하여 여러가지 유익을 얻으신 것이다. 그것은 죄사함을 주는 것이요, 심판하는 것이다. 

 

5.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인자와 같은 이는 어떻게 모습인가?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의 공생애를 기록하고 있는 사복음서를 제외한다면, '인자'라는 용어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예수께서 육신을 벗으신 후에는 '인자'라는 칭호가 거의 사용되지 않는 것이다. 사복음서 외에는 딱 4번만 사용되고 있는데, 한 번은 스데반이 죽기 전에 인자를 보고 사용한 표현한 것이고("인자가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 것을 내가 보노라, 행7:56)", 또 한 번은 사람을 지칭할 때에 즉 그것이 단지 동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의미로서 히브리서에 1번 사용되고 있다(히2:6). 그리고 나머지 둘은 요한계시록에만 나오는 표현들이다. 그것은 천상의 예수님은 이제 '인자와 같은 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국에서 '인자와 같은 이'라는 표현은 대체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첫째로, 예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에는 인자(사람의 아들)였지만, 이제 천상에서 예수님은 더이상 인자는 아니시며, 다만 인자의 모습을 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상에서 그분은 더이상 "인자'라고 불릴 수가 없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그분을 '인자와 같은 이(닮은 이, 유사한 이)'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다시 오실 심판주로서의 예수님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렇게 사용한 것이다(계14:14). 그렇다. 예수께서 다시 '인자와 같은 이'라는 칭호를 받게 된 것은 그분이 이미 공중에 와 계실 때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얼마후 잘 익은 곡식들을 추수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인자같은 이'라는 칭호는 그분의 재림과 더불어 사용되고 있는 표현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여기서 예수께서 '인자'라는 칭호를 사용했다는 점을 통하여, 우리의 미래를 잘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원래 하나님이셨던 예수께서 자신을 낮추시고 '사람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셨고 또한 그러한 삶을 사셨기 때문에 그분의 이름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 된 것처럼, 우리들도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처럼 자기를 낮추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큰 지위를 가지려면, 귀신도 많이 좇아야 하겠지만, 스스로 낮은 자가 되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고 복음을 위해서 물질로 헌신하는 자라야 하기 때문이다. 

 

2022년 06월 03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17)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는 무엇인가?(16)(계1:10~18)_인자같은 이이신 예수님(1)_2022-05-18(수)

https://youtu.be/qo8ZXbMhiAY  [혹은 https://tv.naver.com/v/26877378 ]

 

1.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에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하여 보았던 예수님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사도 요한이 주의 날에 영 안에 있게 되었을 때에 보았던 것은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닐고 계시는 인자(사람의 아들)같은 분이었다(계1:12~13). 그런데 그분은 다름 아닌 주 예수님이셨다. 왜냐하면 그분의 모습은 영락없이 구약 성경에 나오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 곧 여호와 하나님이셨으나(단7:9, 10:5~6, 12:6~7) 그분이 "나는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계1:18)"고 말씀하심으로 그분이 예수님이신 것을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사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보았던 인자 같은 이의 모습은 구약 시대에 나타난 여호와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결국 이날 사도 요한이 보았던 예수님의 모습은 구약 시대에 여러 선지자들이 보았던 여호와 하나님의 모습과 거의 흡사하다 하겠다. 특히 다니엘이 첫 번째로 보았던 '네 짐승의 환상'에 나오는 하나님의 모습과 그리고 네 번째로 보았던 '힛데겔 강가의 환상'에 나오는 사람 같은 신(하나님)의 모습과 거의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사도 요한이 그날 무엇을 보았는지를 헬라어 원문으로 살펴보자. 

계1:13~16[헬라어 직역] 촛대들 한 가운데 안에, 발까지 이르는 옷을 이미 스스로 입은 채 있는, 가슴들 가까이에 금띠를 둘러서 맨 채 있는 인자(사람의 아들)(정관사 없음)와 닮은(유사한, 비슷한) 분을 [보았다]. 14 그런데 그의 머리와 털들은 양털(정관사없음)처럼 희였고, 눈처럼 희였다. 그리고 그의 눈들은 불의 불꽃과 같았다. 15 그리고 그의 발들은 풀무 안에서 빨갛게 달아오른 것 같은 놋쇠와 닮았다(비슷했다). 그리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았다. 16 그의 오른손 안에는 일곱 별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의 입으로부터 [밖으로] 두 날을 가진 날선 칼(검)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해와 같이 그의 능력 안에서 빛나고 있다.

 

2. 다니엘이 보았던 첫 번째 환상 가운데 하나님의 모습은 어떠한가?

  바벨론의 벨사살왕 원년(B.C.577년경)에 다니엘이 보았던 첫 번째 네 짐승의 환상 가운데 있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다.

단7:9~10 내가 보니 왕좌[들]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10 불이 강처럼 흘러 그의 앞에서 나오며 그를 섬기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서 모셔 선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그렇다. 다니엘이 첫 번째의 네 짐승의 환상 가운데 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아서 심판하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보좌에 앉으신 이의 모습이 영락없이 사도 요한이 본 예수님의 모습과 흡사하다(계20:4,11~15). 왜냐하면 첫째로, 이때 심판하는 좌석들이 하나님의 보좌 한 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른 보좌들이 곁에 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하나님의 보좌 옆에 있던 보좌들은 24보좌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계20:4). 고로 이것은 그때 다니엘이 하늘에서 펼쳐지고 있는 실제의 광경을 본 것이 아니라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심판하시는 장면을 미리 내다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로, 보좌 위에 좌정해 계시는 분 곧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의 모습이 예수님과 똑같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았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세 시대에 그려 놓은 삼위일체의 그림을 보면, 보통 성부는 흰 머리카락을 하고 있고 성자는 검은 머리카락을 하고 있는데, 이는 요한계시록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과는 다른 것이다. 이는 구약의 여호와로 계시된 분이 곧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3. 다니엘에 보았던 네 번째 환상 가운데 하나님의 모습은 어떠한가?

  이어 다니엘이 바사 왕 고레스 제3년(B.C.549년경)에 세이레(21일) 동안 금식 기도를 한 후에 보았던 하나님의 모습은 이렇다. 그때 다니엘은 강 이쪽 편에 가브리엘 천사장이 서 있고 강 저쪽 편에 미가엘 천사장이 서 있는 것을 보았는데, 강물 위쪽에 있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에게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듣는다(단12:5~7). 그런데 그 사람 같으신 신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그것은 다니엘 10:5~6에 이렇게 나온다. 

단10:5~6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더라 6 또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 
  그렇다. 다니엘이 본 사람 같이 생기신 분은 흰 세마포 옷을 입고 있었고, 허리에는 순금 띠를 띠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번개빛처럼 비추고 있었고, 그의 눈은 횃불 같았으며,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았다. 그리고 그의 말소리는 많은 무리의 소리와도 같았다. 이는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인자같은 이와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다니엘이 구약 시대에 지켜본 하나님의 모습이 곧 A.D.96년경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분과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 시대에 나타난 하나님이 곧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가 죽고 부활하신 뒤 하늘에 오르시어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닐고 계시는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4. 왜 사도 요한은 자기가 보았던 분을 인자 같은 이라고 말했는가?

  사도 요한이 그날 밧모섬에서 보았던 예수님의 모습은 '인자 같은 이'라고 하였다. 그럼, 왜 사도 요한은 그분을 '인자 같은 이'라고 표현한 것인가?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는 그것이 구약 성경에 이미 나온 표현이기 때문이다. 즉 다니엘이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 앞에 인자 같은 이가 인도되는 모습을 보았으며, 또한 그에게 왕국을 다스리는 권세가 주어지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단7:13~14). 이는 장차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속죄 사역을 마치시고 하늘에 올라가 만왕의 왕으로 등극하는 것을 미리 내다 보았기 때문이다. 

단7:13~14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두 번째는 그날 사도 요한이 본 분은 과거 육체를 입으셨던 예수님과는 많이 다른 모습의 그분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사도 요한이 예수께서 살아 계실 때에 보았던 것은 그의 옷이 희어져서 그 옷으로부터 광채가 나되 세상에서 빨래하는 사람이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진 것을 본 적이 있다(막9:3). 하지만 예수님의 얼굴이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은 것을 보지는 못했는데, 그날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분은 차마 얼굴을 쳐다볼 수 없을 정도였으며, 그 위엄에 눌려 엎드러져 벌벌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그분은 사람인 듯 하나 사람이 아닌 상태의 그분을 가리켜 '인자 같은 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5. 인자 같은 이의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무엇인가?

  그런데 그날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보았던 예수님의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그분이 과연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분은 한 마디로 '교회'에 관심이 깊으셨다. 왜냐하면 첫째로 그분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기 전에 사도 요한에게 음성부터 들려주셨는데, 그것은 일곱 교회에게 편지를 써 보내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계1:11). 둘째로, 그날 예수께서는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닐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오는 일곱 금촛대는 일곱 교회를 뜻한다(계1:20). 셋째로, 그분의 오른손에 무엇인가를 쥐고 있었는데 그것은 일곱 별들이었기 때문이다(계1:16). 그런데 그 일곱 별들은 바로 일곱 교회의 사자(메세지 전달자)였다(계1:20). 그렇다. 천상에 계신 예수께서는 지금도 오로지 교회와 교회의 메시지 전달자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교회이기 때문이요, 그러한 교회의 메시지 전달자를 통하여 지금도 천국에 입성하는 성도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2022년 05월 18일(수)

정병진목사

 

다니엘의 기도는 점점 깊어진다. 그의 21일 작정기도와 금식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인다. 사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사람에게 나타나신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창18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타나셨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결정이었다. 하지만 다니엘의 경우는 다르다. 다니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힛데겔 강가의 환상"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다니엘서 10장을 통하여 어떤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이며, 기도에는 어떤 영적 비밀이 들어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이제 기도의 놀라운 세계로 한 번 들어가보자.

2020-07-01(수) 수요기도회
제목: 다니엘강해(17) 힛데겔 강가의 환상 중 첫번째 예언(단10:1~11:4)
https://youtu.be/XiZRQj3k1y4 [혹은 https://tv.naver.com/v/14578271  ]

 

 

1. 들어가며

  다니엘 7장부터 12장까지는 총 4가지의 환상과 묵시가 들어있다. 7장에는 "네 마리 짐승"에 관한 환상 및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나오며,  8장에서는 "수양과 숫염소"의 환상과 2,300주야 계시가 나온다. 그리고 9장에서는 이스라엘 민족과 예루살렘의 장래에 관한 계시인 "70이레"의 묵시가 나온다. 그리고 단10~12장에는 "힛데겔 강가"에서 다니엘이 보았던 묵시가 등장한다. 특히 단7~12장에 나오는 4가지 환상과 묵시 중에서 다니엘10장~12장에 나오는 계시를 일컬어 흔히들 "힛데겔 강가 환상" 혹은 "힛데겔 강가의 묵시"라고 부른다. 다니엘은 놀랍게도 세 이레 기도 후에 힛데겔 강가에서 자기 앞에 현현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게 된다. 그리고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앞으로 인류역사에 전개될 큰 전쟁에 관한 환상들을 보고 또한 듣는다. 그렇다면, 다니엘은 어떻게 되어서 환상을 보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가 보았던 환상은 어떤 것이었으며, 그때 나타나서 다니엘에게 설명해준 환상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오늘 말씀은 힛데겔 강가의 환상의 서론(단10:1~2) 및 첫번째 계시(단10:21~11:4)에 해당한다. 우리는 이 환상의 서론부분을 통하여 성도의 작정 및 금식기도가 얼마나 중요하며, 기도하면 하늘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기도응답은 언제 주어지는지 등에 관한 영적인 비밀들을 배울 수가 있을 것이다. 

 

2. 다니엘은 언제 힛데겔 강가의 묵시를 보게 되었는가?

  그렇다면, 다니엘은 언제 이 묵시를 보았는가?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바사왕 고레스 제3년(단10:1)". 그런데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정보에 따르면, 이때는 B.C.536년으로서, 다니엘이 약 85세쯤 되었을 때 본 환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확한 연대기의 기록에 따르면, 다니엘이 이 묵시를 보았던 "바사왕 고레스 제3년"은 B.C.549년이다. 왜냐하면 고레스가 왕권을 잡은 해가 정확히 B.C.551년이었기 때문이다. B.C.551년 고레스는 바벨론에게 포로로 잡혀진 사람들에게 귀환령을 허락했으며, 고국에 돌아가 자기들의 신전을 짓고 살라고 해방하는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그때는 메대왕 다리오(B.C.575~540년)가 아직도 여전히 집권하고 있던 시기다(참고로, 다리오는 고레스의 외할아버지다). 그러므로 다니엘이 힛데겔 강가의 묵시를 보게 되었던 해는 메대왕 다리오(B.C.575~540)가 아직도 통치하던 시기였음을 알 수 있다(참고, 성경과학연구소 김명현교수 책 참조). 

  그렇다면, B.C.549년 쯤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때는 B.C.551년 고레스의 칙령에 따라 1차포로귀환 허가를 받은 유다백성들 중 약 5만명이 B.C.550년 바벨론을 떠나 예루살렘에 막 도착했을 때였다. 그리고 그 이듬 해인 B.C.548에 유대인들은 드디어 제2성전 건축을 시작한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지금 고국으로 되돌아간 사람들의 안녕과 그들에 의한 안전한 성전건축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그 때 다니엘의 나이는 약 64세정도였을 것이다. 

 

3. 다니엘은 무슨 기도를 드렸는가?

  다니엘은 그때 세이레(21일)을 작정하고 금식으로 기도하고 있었다(단10:2). 그는 그때 앞으로 이 세상에서 일어날 큰 전쟁에 관한 환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장차 일어날 헬라제국에서 올라오는 북방왕에 의한 남유다의 유린의 핵심이었다. 북방왕은 곧 새로 짓게 될 성전을 더럽힐 것이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지할 것이고, 멸망하게 하는 가능한 것을 세울 것이고 했다. 그러자 다니엘은 세 이레동안 작정하며 금식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이 장차 당할 일에 대해 하나님께 긍휼을 간구하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4. 다니엘이 기도하자 하늘에서 벌어진 일은 무엇이었는가?

  다니엘이 작정하고 금식하며 기도하자 2가지 일이 일어났다. 하나는 그가 하나님 앞에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했던 첫날(B.C.549년 1월 3일)에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가브리엘 천사를 파송한 것이었다(단10:12).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작정하고 기도하면 기도를 시작하자마다 응답해주신다. 또 하나는 다니엘의 기도로 인하여 하늘에서 영적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즉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가지고 내려오는 가브리엘 천사장을 바사왕국의 군주(대장,두목,통치자)인 수호신(천사장, 아마도 루시퍼였을 것)이 막아섰다는 것이다(단10:13). 그러자 21일동안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오지를 못했다. 그런데 21일이 지난 후 1월 24일이 되자, 가장 높은 군주(천사장)의 하나인 미가엘이 가브리엘을 도와주므로 가브리엘은 마지막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할 일을 와서 알려준다. 그렇다. 기도하면 선한 영들과 악한 영들 간의 전쟁이 일어난다. 물론 모든 전쟁은 선한 영들의 승리로 끝난다. 하나님께서는 그때에 악한 영들보다 훨씬 더 강한 천사를 파송하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아니, 그럼, 바사왕국의 군주(천사장)가 가브리엘을 막아서므로 가브리엘이 21일동안 다니엘에게 오지 못하고 지연된 것이 아닌가?" 혹은 "천하의 미가엘 천사장이라 할지라도 바사왕국의 군주인 루시퍼를 처리하고 못하고 3주동안이나 싸우고 있었다는 말인가?"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추측이다. 왜냐하면, 가브리엘이 21일동안 다니엘에게 오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의 허락이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바사왕국의 군주를 처리할 수 있는 자는 최고의 군주(천사장)였던 미가엘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12장과 20장에 보면,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사탄마귀)과 그의 천사들로 더불어 하늘에서 전쟁을 펼치는데, 그때 용과 그의 천사들도 싸우지만 이기지 못하고 쇠사슬에 결박당하여 하늘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렇다. 미가엘이 능력이 없어서 루시퍼를 못 물리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의도가 있어서 그를 그냥 놔둔 것이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기도응답을 막아서고 있는 루시퍼를 그냥 두시었는가? 그것은 다니엘을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다니엘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내려가셔서 하셔야 할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죄많은 인간이 어떻게 감히 하나님을 직접 뵈올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이 21일동안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자신을 정결케 하여 하나님의 현현을 준비하도록 루시퍼의 방해를 그대로 두신 것이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21일간 기도로서 계속해서 자신을 정결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5. 다니엘에게 나타난 세마포 옷을 입으신 분은 대체 누구인가?

  다니엘이 힛데겔 강가에서 21일동안 금식하며 기도를 마치던 날 곧 그의 금식기도가 끝나는 날(1월 24일), 한 사람(남자)가 힛데겔의 강물 위에 공중에 서 있는 것을 본다. 그때 다른 사람도 다니엘과 함께 있었지만 무섭고 두려워 도망치고 숨어버린다. 그러므로 그 환상은 오직 영안이 열린 다니엘만이 홀로 보게 되었다. 그때 장면을 잠깐 정리하면 이렇다. 힛데겔 강을 사이에 두고 이쪽 편에서는 가브리엘 천사가 서 있었고, 저쪽 편에서는 미가엘 천사가 서 있었다. 그리고 강물이 흘러내려오고 있는 위쪽 부분의 공중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신 것이다(단12:5~7).

  그때 다니엘은 똑똑히 세마포 옷을 입고 공중에 서 있는 분을 보게 된다. 그분은 세마포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허리에는 우바스에 나오는 순전한 금띠를 띠고 있었다. 또한 그의 몸은 황옥빛이었으며, 그의 얼굴은 번개빛처럼 반짝이고 있었고, 그의 눈은 이글거리는 불꽃 같았으며,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았다. 그의 말소리는 많은 군중의 소리와도 같았다. 

  그렇다면, "세마포옷을 입으신 사람"은 대체 누군가? 어떤 사람은 그를 "미가엘 천사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안식교...). 하지만 그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모습은 부활승천하신 예수님 곧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오실 이이자 전능한 하나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계1: 13~16). 천상에 계신 예수님을 A.D.95~96년경 사도요한이 보았는데, 그때 예수께서도 다니엘 때와 같이 발에 끌리는 세마포옷을 입고 있었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셨다. 그리고 그의 머리털은 흰 양털같이 새하얗고 눈 같았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았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놋) 같았으며,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았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서는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았다(계1:13~16). 그렇다. 그리고 천상의 예수님을 직접 보았던 사도요한처럼 다니엘도 세마포옷을 입으신 이를 보자마자 똑같이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었다(계1:17). 그들은 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본 것이다. 

  또한 "세마포옷을 입으신 이"는 당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에스겔 선지자가 본 보좌 위의 하나님의 모습과도 역시 흡사하다(겔1:26~28). 고로 우리는 "세마포옷을 입으신 분"이 전능한 한 분 하나님의 현현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성육신으로 사람 앞에 나타나기 전의 하나님의 모습인 것이다. 그런데 사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직접 나타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에게 한 번 나타나셨고, 다니엘에게 두번째로 나타나신 것이다. 그만큼 다니엘의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상달되는 아주 특별한 기도였던 것이다. 그의 삶과 그의 기도가 하나님으로 하여금 직접 이 땅에 사람의 모습으로 다니엘을 찾게 만든 것이다. 

 

6.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들려준 1차소식은 무엇이었는가?

  그렇다면 그때 나타난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어떤 소식을 들려주었는가? 그 소식은 크게 4부분이다. 첫째, 곧 바사제국이 멸망당하고 헬라제국이 세워지지지만 능력있는 한 왕이 죽은 후 그의 왕권은 그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그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예언이 그것이다(단11:2~4). 둘째, 남방왕와 북방왕 사이의 전쟁에 관한 예언이 나온다(단11:5~20). 셋째, 비천한 북방왕에 의한 이스라엘의 유린당함에 관한 예언이 나온다(단11:21~45). 넷째, 마지막 날에 있을 대환난과 성도들의 부활과 상급에 관한 예언이 나온다(단12:1~3). 

  그중에서 다니엘 11:2~4은 가브리엘 천사가 들려준 큰 전쟁에 관한 첫번째 소식이다. 가브리엘은 이 소식을 전해주기 전에 "은총을 받은 다니엘"을 향하여 힘을 북돋아주면서, 자신이 왜 왔는지를 그에게 들려준다. 이때 가브리엘은 자기가 돌아가면 바사왕국의 군주와 다시 쌔우게 될 것이고, 자신이 떠나간 후에는 헬라왕국의 군주가 또 올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모든 일들은 이미 진리의 책에 기록된 대로 일어나는 것이며, 그때 자기를 도와서 헬라군주와 대항해줄 자는 이스라엘의 군주인 미가엘 뿐이라고 하였다(단10:21). 하지만 자기도 미가엘 천사장을 도와준 일이 있음을 말하기도 하였다. 즉 가브리엘도 메대사람 다리오 원년에는 미가엘을 도와준 일이 있었다고 말한 것이다(단11:1). 이렇듯 선한 천사장들끼리는 서로 도와주는 일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나서 가브리엘은 첫번째 큰 전쟁에 관한 소식을 다니엘에게 들려주었다(단11:2~4). 그것은 바사 나라에서 고레스 이후에 3명의 왕들이 더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단11:2). 그들은 곧 바사왕 제2대 캄비세스2세, 제3대 스메르디스, 제4대 다리오1세를 가리키는 것 같다. 이때 바사왕 다리오1세는 B.C.490년 수십만 대군을 일으켜서 헬라와 전쟁을 치르는데, 그는 아테네 전투에서 대패하여 물러나게 된다(이 전투가 그 유명한 '마라톤 전투'다). 그러자 돈이 많은 바사의 제5대왕이 일어났으니 그가 바로 저 유명한 "아하수에로"로서 "크세르크세스"왕이다. 그는 10년 뒤 B.C.480년에, 헬라의 아테네를 공격하고 그곳을 쑥대밭을 만들었다. 하지만 해전에서 대패하여 나라가 쇠잔하게 되는데, 그 해전이 바로 저 유명한 "살라미스 해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후 헬라제국에서 "한 능력있는 왕"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가 바로 헬라제국의 대제 "알렉산더 대왕"이다(B.C.334~324). 그는 비록 10년 밖에 통치하지 못했지만, 그의 강성한 나라가 그만 사후 사방으로 나뉘게 될 것이며, 그의 왕의 자리도 그의 아들에게로 넘어가지 아니하고, 그 외의 다른 사람에게서 넘어간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알렉산더 사후 두 아들들 모두가 암살당하게 되고, 헬라제국은 이제 4명의 부하장수들 곧 리시마쿠스, 카산더(카산드리), 셀류커스, [프]톨레미에게로 나뉘어 넘어가게 된다(단11:3~4). 

 

7. 나오며

  우리는 이상의 말씀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 앞에 작정하고 금식으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신다. 둘째, 모든 기도는 영적 전쟁을 수반한다. 특히 기도를 가져가고 가져오는 자와 그것을 막기 위한 사탄진영의 싸움이 있다는 것이다. 셋째, 어떤 사탄의 세력도 하나님의 군대를 막을 수는 없다. 넷째, 기도응답이 지연되는 이유도 사실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따른 것이지 사탄이 힘세고 강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섯째, 사람이 직접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그것은 사람을 거의 죽음직전의 상태로 만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죄성을 가진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여섯째, 우리의 기도는 기도를 하기로 작정한 날에 이미 하나님의 응답이 준비되고 시행된다는 것이다. 일곱째, 중요한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가브리엘이 직접 가져온다는 것이다. 일곱째, 이 세상 제국의 흥망성쇠는 이미 기록된 진리의 책대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여덟째, 세상 제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왕들까지도 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세워지고 폐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 다니엘서 10장은 기도에 관한 놀라운 비밀들을 우리에게 많이 알려준다. 우리도 더욱 더 기도에 힘써야 하겠다

 

2020년 07월 01일(수)

정병진목사

중고등학교시절, 세계사를 공부할 때에 많이 힘들어 했다. 왜냐하면 나는 고등학교 2학년에 때에 처음으로 교회에 출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샌가 목사가 되었고 벌써 23년이 지났다. 그런데 지금 기독교의 역사가 곧 세계사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구약시대에는 세계의 역사가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펼쳐졌고, 신약시대에는 로마제국과 로마카톨릭으로 중심으로 펼쳐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회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결코 세계사를 꿰뚫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세계제국의 흥망성쇠를 명쾌히 알려주는 네 짐승에 대 환상과 장차 미래에 되어질 일을 알려주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에 관한 이야기가 오롯이 깃들어 있다.

2020-05-13(수) 수요기도회
제목: 다니엘강해(10) 다니엘이 들었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의미와 하나님 보좌에 대한 환상(1)(단7:9~28)
https://youtu.be/aeRa_TQWiUE [혹은 https://tv.naver.com/v/13786807  ]

 

1. 들어가며

  총1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다니엘서의 핵심 중의 핵심은 무엇일까? 뭐니뭐니해도 그것은 다니엘 7장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다니엘7장은 다니엘이 직접 보았던 4가지 환상 가운데 첫번째 환상에 대한 기록인데, 다니엘 7장의 첫번째 환상은 이 세상제국들의 흥망성쇠와 적그리스도의 출현에 이르기까지의 인류의 모든 역사가 총망라된 환상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두 번의 시간을 통하여, 이 환상의 시작되었던 4마리 짐승들에 관해 살펴보았다. 첫 시간에는 앞에 나오는 세 마리 짐승(사자, 곰, 표범)에 관한 환상을 보았고, 지난 시간에는 넷째짐승에 관한 환상을 살펴보았다. 오늘은 이 넷째짐승에서 올라온 10뿔 가운데 3뿔을 뿌리채 뽑아버리고 등장하는 한 작은 뿔의 정체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이 작은 뿔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며, 인류역사 가운데 어떻게 이 뿔이 나타났으며, 이 뿔이 성도들을 괴롭히는 기간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대체 어느 정도되는 기간인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이 환상에 바로 뒤에 있는 재림하시는 인자같은 이의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보좌가 어떤 것이며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2. 다니엘서의 7장의 위치는 어디인가?

  다니엘 7장은 다니엘서의 분수령과 같은 장이다. 왜냐하면 다니엘서가 1장부터 6장까지는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직접 경험한 신앙승리의 사건을 보도하고 있지만, 다니엘 7장부터는 다니엘이 직접 보았던 4가지 환상들이 나오는데, 그 중에서 다니엘 7장은 그 첫번째 환상으로서, 환상 가운데 백미 중의 백미라고 할만큼의 놀라운 환상이 등장하고 있기 대문이다. 왜냐하면 인류 역사 가운데 대제국들의 흥망성쇠가 어떻게 펼쳐질지를 한 편의 환상으로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데, 이때 성도들은 과연 이러한 대제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주의 재림시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지가 적나나하게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3. 다니엘이 본 네 마리 짐승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렇다면, 다니엘은 이때 자신의 시대 이후 이 세상제국의 역사가 어떻게 펼쳐질 것을 보았는가? 그것은 네 마리의 거대한 짐승의 모습으로 보았다. 거대한 네 바람이 하늘에서 바다로 불어닥치자, 그곳으로부터 네 마리 짐승들이 차례대로 올라오는데, 첫번째 짐승은 독수리의 날개를 달고 있는 사자같은 짐승이었다. 이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을 의미한다. 그리고 두번째 짐승은 세 갈빗대를 물고 있는 곰이 나오는데, 이는 리디아와 바벨론과 이집트를 물리친 메대와 바사제국의 고레스왕을 의미한다. 그리고 세번째 짐승은 네 개의 날개를 달고 있는 표범같은 짐승인데, 네 개의 날개가 있었다. 이는 신속히 세상 나라들을 정복했던 헬라(그리스)제국의 알렉산더대왕을 상징한다. 왜냐하면 이후 10년만에 알렉산더가 죽고 이 거대한 나라가 카산더, 리시마쿠스, 셀류커스, 프톨레미라는 장수들에 의해 분할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후 등장하는 넷째짐승이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짐승을 끝으로 주님의 재림시까지 다른 제국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니엘이 그날 보았던 넷째짐승은 세상에 있던 어떤 짐승과 비교될 수 없는 무서운 제국이었다. 이때 다니엘이 보았던 이 짐승은 매우 사납고 무섭게 생긴 짐승이었는데, 이 짐승의 핵심은 이발과 발에 있었다. 이빨은 쇠이빨로서 무엇이든 물어뜯고 먹어치웠기 때문이요, 나머지는 10개의 놋발로 짓밟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후 그 짐승의 머리에서 10개의 뿔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중에서 3개의 뿔이 뿌리채 뽑히더니, 그 사이에서 한 "작은 뿔"이 올라왔는데, 이 뿔은 다른 뿔과는 달리 사람처럼 두 눈을 갖고 있었으며 말하는 입이 있었다. 그리고 그 입에서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넷째짐승은 어떤 제국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헬라제국을 제압하고 올라온 "로마제국"이라고 거의 모든 성서학자들이 해석한다. 왜냐하면 로마제국은 헬라를 정복하고 올라왔는데, 이 제국은 그 어떤 제국보다 강포했으며, 잔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제국의 번영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A.D.476년이 서로마제국이 무너짐에 따라, 로마나라는 10개의 게르만 민족에게 차례로 점령당하게 되는데, 그때 로마를 차지한 나라가 바로 다니엘이 본 "열 뿔"이기 때문이다. 그때 등장한 열 뿔은 오늘날에 와서 영국(앵글로색슨), 프랑스(프랑크), 독일(알레마니), 스위스(부르군드), 이탈리아(롬바르드), 스페인(서고트), 포르투칼(수에비)과 다른 세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나머지 세 나라(헤룰리, 반달, 동고트)는 차례대로 동로마 황제에게 멸망을 당하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이 세 나라는 당시 아리우스 이단에 속한 지역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세 나라들이 멸망당한 후, 그 나라들은 동로마황제에 의해 로마의 시내에 있는 로마감독에게 선물로 주어진 바 된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자들을 비롯하여 오늘날 거의 모든 성서해석학자들은 이 "로마의 감독(훗날 교황)"이야말로 바로 "작은 뿔"이라고 해석한다. 왜냐하면 A.D.330년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으로 천도를 단행함에 따라, 로마감독은 이제 서로마지역에 있는 모든 교회들을 대표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이후 로마교회 감독이 점차로 정치세력화가 되어감에 따라, 훗날에는 옛 로마 지역에 있는 왕들을 지배하는 세력으로 급부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역사를 보면, A.D.378년에는 로마의 주교 다마수스(Damasus)가 당시 로마황제 유스티아누스가 가지고 있던 이교도의 최고제사장직인 최고승원장직(폰티펙스 막시무스)를 넘겨받아서 자신이 그 제사장이 되었고, A.D.533년에는 유스티아누스가 로마교회의 감독을 "전 세계의 교회의 머리"라고 선언하게 됨으로 서로마교회의 위상은 한층 더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A.D.538년에는 로마황제가 로마교회 감독에게 세 나라(헤룰리, 반달, 동고트)의 영토를 선물로 바치고, A.D.590년에는 로마교회의 감독 그레고리1세가 "교황"이라는 칭호를 얻게 됨에 따라, 종교와 정치는 사실상 하나로 연합된 세상의 제국이 탄생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로마의 바티칸시국이 되는 것이다. 로마의 시내의 한 가운데 있는 바티칸 시국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로마카톨릭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우두머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니, 고로 우리는 로마의 교황이야말로, 넷째짐승의 열 뿔 사이에서 세 뿔을 뽑아버리고 올라운 한 작은 뿔(적그리스도)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4. 작은 뿔이 전 세계를 지배하고 성도들을 핍박하는 시기로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얼마 정도의 시간인가?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전 세계가 콘스탄틴 대제의 기독교공인 이후 급속히 종교화됨에 따라 참된 성도들이 계속해서 죽어나가기 시작하더라는 점이다. 로마제국에서 올라온 하나의 작은 뿔이 권력을 휘어잡더니, 이제는 거대한 뿔이 되어서 이 뿔의 말을 듣지 않는 순전한 기독교인들을 종교재판으로 몰아가서 핍박하고 죽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을 참칭하는 교황에 의해서 말이다. 그렇다면, 로마카톨릭에 의해 성도들은 언제까지 핍박을 받고 죽어가는 것인가? 다니엘은 그 시기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고, 그 환상을 해석해주는 천사(아마도 가브리엘 천사장)로부터 듣는다(단7:25).

  그렇다면, 교황권에 의해 순전한 기독교인들이 핍박받고 죽어나가는 시기는 대체 얼마큼일까? 지금까지 기독교 역사에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놓고, 수많은 해석들이 등장했는데, 그 해석들은 크게 2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다. 하나는 오늘날 안식교에서 그것을 해석하는 것처럼 그 시기를 1,260년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오늘날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듯 그것을 3년반(1,260일, 혹은 42달)로 보는 것이다.

  먼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1,260년으로 보는 안식교의 해석부터 살펴보자. 이것은 현재 안식교(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에서 해석하는 것으로서, 여기에 나오는 "때(히, 잇단)"를 "해(year)"으로 계산하는 방식이다(단11:13). 그렇게 되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3년반이라는 기간이 된다. 이것을 날짜로 계산하게 되면 1,260일이 되는데, 이것을 다시 하루를 1년으로 환산하는 해석법에 따라(겔4:6, 민14:12) 계산하면 1,260년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해석이 교황이 일어나서 득세하다가 그 위세가 꺾이는 것을 1,260년으로 보는 것이다. 로마의 황제에 의해서 세 뿔 중에서 마지막 주자였던 동고토족이 멸망한 연도는 A.D.538년이다. 여기에 1260년을 더하면, A.D.1798년이 된다. 그런데 이 때는 프랑스 혁명정부의 베르띠에장군이 이탈리아로 내려가 바티칸에 침입, 교황 피우스 6세를 사로잡아 프랑스의 감옥에 쳐넣었던 해였다. 그런데 교황은 이듬해에 옥사하게 된다. 그러므로 안식교에서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1260년을 지칭한다고보고, 그 해에 교황권이 종식됨으로 인하여 단7:25의 말씀이 성취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올바른 것인가?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야 그들의 마음이겠지만, 이 해석은 그렇게 설명하기가는 합당치 않다. 왜냐하면, 작은 뿔이 성도들을 괴롭게 하는 기간이 지나면 넷째짐승이 멸망을 당하고 주님이 재림하신다고 되어있는데, 1798년이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 주님의 재림은 아직까지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둘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1,260일로 보는 세대주의자들(환난전휴거론자)의 해석을 살펴보자. 이 견해는 미국의 세대주의에서 온 것인데, 실은 그 이전으로 올라가보면 로마카톨릭의 신부 리베라(A.D.1537~1591)의 성경해석에서 따온 것이다. 종교개혁이 일어날 무렵, 루터와 칼빈, 멜랑히톤이나 부처 등 대부분의 종교개혁자들은 요한계시록 13장에 등장하는 열뿔가진 짐승을 곧 교황이라고 해석하였다. 이는 계13장에 나오는 "열뿔가진 짐승"을 단7:25에 나오는 "작은 뿔"과 동일시한 것이다. 왜 종교개혁자들은 그렇게 해석했는가? 그것은 조금 있다가 다니엘 9장 강해 시간에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70이레"에 대한 환상을 해석하면서, 리베라신부는 70이레의 마지막 한 이레를 "7년대환난"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한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하고 자기가 성전에 앉아 하나님이라고 하는 이가 적그리스도로 등장할 것인데, 그가 곧 계13장에 나오는 "열 뿔"이라고 해석했다. 왜냐하면 종교개혁자들이 교황을 계속해서 적그리스도라고 공격하기 때문에, 그것을 무마하도록 리베라신부에게 시킨 것이다. 그러자 리베라신부는 적그리스도는 그때의 교황이 아니라, 미래 어느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나타나게 될 유럽연합의 총통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이 해석을 영국의 다비(A.D.1800~1882)가 미국으로 가졌가고, 이러한 견해가 미국의 스코필드(A.D.1843~1921)가 쓴 스코필드성경에 실림에 따라 결국 미국에서 세대주의가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견해를 미국에 유학을 갔다온 한국의 목회자들이 다수 수입하여 우리나라에도 세대주의적 전천년설(환난전휴거설)주의자들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므로 세대주의자들은 마지막시대 어느 시기 곧 한 이레(7년)의 후3년반을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때에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의 7년간의 평화협상을 깨고 환난을 시작하여 유대인들을 죽이는 시기가 곧 한 이레의 후3년반(1,260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합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 해석에는 가장 큰 맹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니엘의 "70이레"의 한 이레를 69이레 후에 있을, 먼 미래의 일로로 떼어놓고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짐승에 의한 하나님 백성들의 핍박기간은 꼭 7년대환난의 후3년 반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그 짐승은 창세이후로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혀왔고 핍박하고 죽여왔기 때문이다(계13:8, 17:8).

 

5. 요한계시록의 관점으로 볼 때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어떤 기간일까?

  그렇다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가장 좋은가? 그것은 이 표현이 한 번 더 고스란히 등장하는 요한계시록의 해석을 따라가는 것이다(계12:14). 사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다니엘서에 2번 나오고(단7:25,12:7), 요한계시록에 단 한 번 나온다(계12:14). 그러나 그 개념은 정반대의 개념으로 등장하고 있다. 다니엘에서의 그 기간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환난받는 기간을 뜻하고 있지만,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보호받고 양육받는 기간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광야로 도망친 한 여자(여인)은 누구인가? 요한계시록 12:1부터 등장하는 이 여자는 용과 대쟁투를 벌이는 여인이다. 이 여자는 원래 해를 옷입고 달을 밟고 있었으며,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쓰고 있었다(계12:1). 이는 창37:9에서, 야곱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제들을 생각나게 한다. 고로 이 여인은 구약시대로 치자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낳은 여인으로서,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을 산출했던 모체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 정말 중요한 사명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그 여인이 메시야를 낳아야 하는 것이다.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아이를 낳는 일이다(이것은 육적 이스라엘의 사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 여자가 낳을 아이가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르실 남자아이라는 점에서 인류를 구원하러 오실 예수님을 그녀가 낳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계2:27,19:15). 그런데 이 여자가 해산할 무렵, 큰 붉은 용이 하늘의 별들(천사들) 1/3을 끌어들어 그 아이를 잡아먹으려고 함께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태어난 아이가 사명을 마치고 하늘로 승천해 버린다. 그러자 용이 화가나서 분풀이를 여자에게 해댄다. 그래서 그 여자에게 갑자기 독수리가 날개가 주어진 채, 그녀는 광야로 날아가서 그곳에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받게 된다(계12:14). 그리고 거기서 이기는 남자아이들을 계속해서 산출하게 된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예수님을 출산했던 여인이 광야로 도망쳐 보호하고 양육받는 기간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그러나 동시에 이 기간은 여자가 용으로부터 핍박을 받는 시기이기도 하다. 한편 사도요한은 여자가 양육받는 기간을 "1260일"이라고도 기록하였다(계12:6). 고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1,260일"이라는 것과 동일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1,260일"은 어떤 기간을 가리키는 것일까? 정말 산술적으로 3년반(42달)의 기간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아니올시다"이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 등장하고 있는 모든 숫자는 다 산술적인 숫자가 아니라 상징적인 숫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7"이라는 숫자와 "12"라는 숫자를 보자. "7(=3+4)"은 이 땅에서의 완전수를 가리키고, "12(=3*4)"는 하늘에서의 완전수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땅에 보내어신 하나님의 영은 "일곱 영들"이라고 나타나며(계1:4,4:5),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는 "일곱교회들" 혹은 "일곱금촛대들"이라고 나온다(계1:20). 그리고 이 땅에 펼쳐진 미래의 일들이 기록된 두루마리에 찍힌 도장도 "일곱"이다(계6:1). 그리고 이 땅에 임할 재앙도 "일곱나팔재앙"으로 나타나 있고(계8:1~2), 짐승 치하에 내릴 마지막 재앙들도 "일곱대접"이라고 표현되어 있다(계16:1). 그리고 천국에서의 완전수가 "12"인 것 만큼, 천국에 "24장로들" 이 있다. 이는 구약의 구원받은 백성들의 대표자들인 12와 신약의 구원받은 백성들의 대표인 12가 합쳐서 24라는 숫자를 이루는 것이다(계4:4). 시온산에 서있는 구원받은 백성들의 총수가 144,000명인데 이는 구약의 구원받은 백성들의 수인 12와 신약의 구원받은 백성들의 수인 12가 곱해진 숫자에다가(12*12=144), "많은 수"를 의미하는 1,000이 곱해질 때, 144,000명이라는 숫자가 나오는 것이다. 고로,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숫자는 다 상징적인 숫자라고 보면 된다. 고로 "3년반(1,260일)"이라는 숫자는 "7년"의 절반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는 그 기간이 완전히 긴 시간이 아니라 그리 길지 않은 절반의 기간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 1,260일이란 대체 어떤 의미로 쓰였을까? 그것은 제가 전했던 요한계시록강해(52강)을 살펴보면 자세히 나오는데,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는 광야로 도망친 여자(하나님의 백성들을 산출하는 모체로서,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나타내며 신약시대에는 교회를 나타냄)가 광야도 도망가서 보호받고 양육받는 기간을 나타낸다(계12:6,14). 둘째, 두 증인(예수승천이후 모세와 엘리야처럼 율법과 선지자의 후예로서, 구약시대에 제2성전을 지었던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처럼 왕과 제사장으로 활동하는 자들이자, 성령의 기름을 흘려보내는 감람나무와 같은 존재이고, 칭찬만 받았던 서머나와 빌라델비아의 두 촛대 교회의 대표처럼 활동하는 인물)이 십계명준수와 회개를 외치며 복음을 전파하는 기간을 가리킨다(계11:3,4,10). 그런데 셋째로, 이 기간(42달)은 이방인들(이방핍박자들을 상징)에 의해 성전(교회를 상징)이 짓밟혀지는 기간이기도 하다(계11:1~2). 넷째로, 사탄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두 마리의 짐승에 의해 성도들이 핍박을 받는 기간(42달)이기도 하다(계13:5). 참고로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고 지키는 기간으로 쓰일 때에는 "1,260일"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지만, 성도들이 핍박하고 고난받고 죽임당하는 기간으로 쓰일 때에는 "42달"이라는 용어로 쓰였다는 점은 숫자를 암송할 때 기억할 둘만하다.

 

6. 주님의 재림은 언제 있으며 1,260일은 언제 끝나는가?

  그렇다면, 주님은 언제 있는가? 다르게 질문한다면, 1,260일은 언제 끝나는가? 우리는 앞의 문단에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시작되는 시점을 살펴보았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직후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사탄에 의한 간접적인 핍박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즉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실 때에 사탄은 죄없는 예수님에게 사망권세를 사용한 탓에 불법의 댓가로서 무저갱에 갇히게 된다. 다시 말해 그의 사망권세가 그때부터 상당히 제한을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천년동안 무저갱에 갇혀 있게 된다(계20:1~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죽이고 음부에 끌어가는 일은 쉬지 않고 있으니, 자신의 화신들(높은 계급의 귀신들)을 지상으로 올려보낸다. 그것이 바로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두 마리의 짐승 곧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과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 이야기다. 그리고 두 증인이 사역을 마치는 날, 즉 하나님의 종들이 회개와 천국복음 전파 사역을 마치는 날(사명이 끝나는 날), 하나님께서 무저갱에 갇혀 있는 사탄을 풀어준다(계20:1~3). 그리하여 아마겟돈전쟁(=곡과 마곡의 전쟁, 그 이유는 저의 요한계시록강해를 참고하시기 바람)이 터진다. 그때 무저갱으로부터 사탄마귀가 올라오면서 맨 처음 주의 종들인 "두 증인"을 죽인다(계11:7, 17:8). 그리고 땅에 있는 모든 왕들을 끌어모아 예수님을 대적하는 최후의 전쟁을 벌인다. 그것이 아마겟돈전쟁이다(계17:11~14, 19:17~12). 그리고 이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즉시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다(계19:11~16). 고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기간은 예수님의 승천이후 재림직전까지 성도들이 하나님의 대적인 사탄마귀과 귀신들 그리고 그것들이 쓰는 사람들에 의해 핍박받는 기간을 가리키는 것이다(한편으로는 말씀과 기도로 준비하는 자에는 보호받고 양육받는 기간이기도 하다). 이것을 다니엘 7장의 말씀에 따르면, 주님의 재림은 "작은 뿔"에 의하여 성도들의 핍박을 받는 기간이었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지난 직후에 있을 것이다(단7:11~14, 25~27)

 

7. 나오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 66권의 기록자들은 서로 다르다. 적어도 42명 이상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경의 원저자는 누구인가? 그분은 바로 성령이시다. 왜냐하면 성경의 기록자들이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성경을 기록했기 때문이다(딤후3:16, 벧후1:21). 다니엘서에서 장차 되어질 일을 보여주셨던 분은 누구신가? 다음 주에 배우겠지만 그분은 바로 "지극히 높으신 이"이시다(단7:22,25,27). 자존자이면서 시작과 끝이신 분 곧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다니엘에서 나오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그런데 이 시간은 환난과 핍박의 기간임과 동시에 보호와 양육기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대적자들에 의한 핍박과 고난의 시기를 준비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는 환난후에 오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24:29~30). 고로 우리 성도들은 곧 있으면 불어닥칠 환난을 대비해야 한다.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둘째인과 셋째인과 넷째인)이 계속되지만 회개와 천국복음전파(첫째인)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순교자들의 호소(다섯째인)와 해와 달과 별들의 이상이 있을 것이고(여섯째인), 그 다음에 일곱째인을 떼실 때에 주님의 재림이 있을 것이다. 지금 전세계는 어떠한가? 코로나전염병(넷째인)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곧 있으면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는 순교의 시대가 찾아올 것이다. 그날을 대비해야 한다. 죽으면 죽으리라고 생각하고 신앙으로 맞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지조있는 신앙과 및 사자굴 속에 던져졌지만 보호받았던 다니엘의 신앙으로 철저히 준비하고 무장해야 하는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20년 05월 13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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