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67) 바울은 어떻게 디모데와 의사 누가를 동역자로 얻을 수 있었을까?(행16:1~10)_2022-11-11(금)

https://youtu.be/eHTIrll9s8c  [혹은 https://tv.naver.com/v/30686848 ]

 

1. 바울은 2차 전도여행 때에 어디에서 누구를 동역자로 얻게 되었는가?

  바울은 A.D.49~52년 까지 진행하였던 2차 전도여행의 초기에 두 명의 동역자를 얻게 된다. 이때 바울은 청년 디모데를 얻었고 또한 의사였던 누가를 동역자로 얻게 된다. 이때 디모데는 루스드라에서 그리고 의사 누가는 드로아에서 전도 수행원으로서 두게 된 것이다. 

 

2.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은 어떤 코스로 진행되었는가?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은 1차 전도여행을 했던 곳을 다시 방문하여 그곳에 있는 형제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특히 이방인들의 구원의 문제를 확실하게 알리기 위해 자신이 전도했던 지역을 다시 방문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더베'와 '루스드라' 그리고 '이고니온'과 '비시디아 안디옥'을 차례대로 방문한다. 그리고 예루살렘 총회에서 결정했던 바, 주께 돌아오는 이방인들이 주의해야 할 것 4가지를 그들에게도 전달해 주었다. 그것은 곧 '우상의 제물과 음행,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남갈라디아에 위치한 교회들은 믿음이 더 단단해졌고, 믿는 이들의 숫자 또한 더 늘어났다. 그런데 다음이 문제였다. 이제는 어디로 가서 복음을 전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바울은 먼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라볼 때 서남쪽에 위치한 '아시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시도하였다. 하지만 성령께서 거기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도록 막으셨다. 그러자 바울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을 통과하여 서북쪽에 있는 무시아를 향하여 올라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북동쪽에 위치한 비두니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수님의 영께서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시아 가까운 드로아 항구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때 바울에게 밤에 환상이 주어진다. 그것은 에게해의 건너편 마케도냐인이 나타나 "마케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달라"는 환상과 더불어 음성을 듣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아시아와 비두니아가 아닌, 유럽 대륙으로 이동하여 복음을 전파하게 됨으로써 복음이 수리아와 아시아를 넘어서 유럽까지 전파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3. 바울은 청년 동역자 디모데를 어떻게 얻게 되었는가?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초기에 '더베'를 갔고 그곳을 지나서 '루스드라'를 향하였다. 그런데 거기에서 바울은 '디모데'라는 신실한 청년을 만났다. 그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아마도 약 1년 전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에 그때 전도를 받았든지 아니면 그 후에 루스드라의 성도들에 의해 전도를 받았든지 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청년은 참 믿음이 좋았다. 왜냐하면 유대인이었던 어머니 유니게와 외할머니 로이스로부터 신앙 교육을 잘 받은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3대째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이방인)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아직까지는 할례를 받지 않은 채 있었다. 그렇지만 디모데는 어찌나 믿음이 좋던지, 루스드라 뿐만 아니라 옆 도시인 이고니온까지 소문이 자자하게 나 있었다. 그러므로 이를 눈여겨본 바울이 그를 동역자로 삼고자 원했다. 하지만 그가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에 있었기에, 앞으로의 복음 전파의 걸림돌인 '할례' 문제를 해결하고자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였다. 이는 전도할 때 유대인들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디모데는 이때부터 바울 선교팀에 합류하게 되었고 바울이 죽는 날까지 그를 돕는 동역자가 될 수 있었다. 디모데는 일종의 바울의 후계자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진정 디모데를 동역자로 취할 수 있었던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즉 누군가를 진정 자신의 동역자로 얻는 비결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목숨을 내걸고 복음을 전파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루스드라라는 도시는 바울이 1차 전도여행 때에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다가 돌에 맞아 죽임을 당했던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때 바울은 죽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살려 주셨는데,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던 그곳에서 바울은 다른 한 명의 사람을 건져내어 자신의 동역자로 삼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마치 스데반이 죽어가면서도 자신을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바울을 얻으셨던 것처럼 말이다. 

 

4. 바울은 어떻게 의사 누가를 동역자로 얻을 수 있었는가?

  이어 바울은 디모데와 함께 다시 전도여행을 계속하였다. 그런데 전도의 길이 좀처럼 열려지지 않는 것이었다. 남갈라디아서에서 아시아로 말씀을 전하려고 했을 때에는 성령께서 그를 막으셨고, 무시아의 드로아에서 비두니아에 가서 전도하려 했을 때에는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바울은 많이 지쳤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그때 바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런데 아쉽게도 사도행전에는 그 이유가 수록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바울이 그때의 상황을 갈라디아서에 남겨놓았다. 바울은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갈4:13~15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4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15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그랬다. 육체의 약함 때문에 바울은 전도여행을 계속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단연코 '건강 문제'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때 그가 얼마나 아팠든지 바울은 드로아에서 자신의 약함을 치료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병원에 들러서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그때 만난 이방인 의사가 바로 '누가'라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때 바울이 안질에 걸렸다고 주장하지만, 그 정도 가지고 의사 누가가 바울 선교팀에 합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의사가 달라붙지 않으면 안되는 바울의 육체의 상황이 있었기에, 의사 누가가 성령의 감동을 받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바울을 치료하기 위해 그에게 달라붙은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즉 바울이 의사 누가를 동역자로 얻게 된 것은 그가 목숨을 내놓고 복음을 증거하다가 그때 얻은 육체의 약함 때문에 자신의 육체를 치료했는데, 이때에 의사 누가를 만났고, 누가는 바울 곁에 붙어 계속해서 그를 치료해야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의사 누가는 그때 바울과 그의 동역자인 실라 그리고 디모데로부터 무엇인가를 들었을 것이다. 아니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엇인가를 지시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의 동역자가 된 것이다. 

 

5. 하나님께서 동역자를 붙여 주시는 2가지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 하나님께서 동역자를 붙여 주시는 이유는 딱 2가지다. 하나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목숨 걸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도 그에게 동역자를 붙여 주신다는 것이다. 자신의 일을 하다가 잘 안되면 다른 일을 찾거나, 아니면 다른 일을 병행하는 할 때에는 하나님께서도 그에게 동역자를 붙여 주시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상황에서도 오로지 자신의 사명에 목숨 걸고 충성할 때에, 하나님께서도 동역자를 붙여 주시는 것이다. 또 하나는 복음 전파를 위해 몸마저 돌보지 못한 채 일하려 할 때에 전도자의 건강도 중요함으로 하나님께서 육체의 건강을 돌볼 자를 그에게 붙여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사가 바울에게 달라붙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드로아에 있을 때에 바울은 거의 녹초가 되었든지 아니면 번아웃이 된 상태에 있었지 않았나 싶다. 그러므로 의사의 눈으로 볼 때, 그냥 내버려두면 바울이 사역을 얼마 감당하지 못할 것 같으니까, 바울 곁에 바짝 달라붙어 그를 치료하기 위해 누가가 동역자가 된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복음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놓는 자를 기뻐하시고 그에게 동역자를 붙여 주신다. 그리하여 바울은 자신의 후계자가 될 만한 디모데를 동역자로 삼을 수 있었고, 자신의 평생에 주치의였던 의사 누가를 만나게 된 것이다. 
 

2022년 11월 11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 강해(02) 사도행전, 누가 왜 썼는가?(행1:1~5)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vG9RWr5MRo  [혹은 https://tv.naver.com/v/27209983 ]

 

1. 사도행전의 저자에 대한 외적인 증거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다. 여기서 '사도들'이라 함은 1~12장까지는 '베드로'를 지칭하는 것이요, 13~28장까지는 '바울'을 지칭하는 것이다. 사도행전의 전반부(1~12장)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복음전파가 기록되어 있으며, 후반부(13~28장)은 안디옥을 중심으로 하는 복음전파가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사도행전은 베드로가 쓴 것인가 아니면 바울이 쓴 것인가? 그런데 둘 다 아니다. 놀라운 사실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누가복음과 요한복음 그리고 사도행전까지 4복음서와 사도행전에 저술자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자세히 찬찬히 읽어보면, 요한복음도 누가 썼는지를 알려주는 단서가 들어있고, 사도행전도 역시 누가 썼는지 그 힌트가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사도행전은 성경 외의 기록이나 자료들 가운데 익히 누가 썼다고 하는 것이 있을까? 있다. 그것은 교회사적인 증거와 고고학적인 증거들인데, 먼저, 교회사적인 증거를 보면, 초기 교부들이 공히 다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가 썼다고 기록하고 있다. 초기 교부들이었던 이레네우스(A.D.130~202)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A.D.150~215) 그리고 터툴리안(A.D.155~240)도 다 사도행전은 누가가 썼다고 전해주고 있으며,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이와 같은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한 세대가 지난 후 기독교인들의 역사가였던 유세비우스(A.D.260~340)도 다음과 같이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저자였던 누가가 썼다고 전해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성경 외적인 증거를 보면,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가 쓴 것이다.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제3권 제4장 '사도들의 초대후계자'에서 유세비우스는 "누가는 안디옥 태생의 의사로서, 바울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고 나머지 사도들과도 잘 알고 지냈다. 그는 자신이 그들에게서 얻은 영적인 치유 기술의 개요를 두 권의 영감된 책으로 남겨주었는데, 그중 한 권이 '누가복음'이다. 그는 이 복음서에서 자신은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가 되고 일꾼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기록하였고, 모든 일에 있어서 그들을 따라갔다고 증언하였다. 또 한 권의 저서는 '사도행전'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로부터가 들은 것이 아니라 그가 친히 목격한 일들을 기록한 것이다."

 

2. 사도행전의 저자가 누군지를 알려주는 내적인 증거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사도행전의 저자가 누군지 알려주는 내적인 증거는 없는가? 있다. 성경 안에 증거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도행전의 기록과 누가복음의 기록과 바울서신의 기록에서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요약하면 첫째, 사도행전의 저자는 사도행전이 자신의 두 번째 기록인 것을 밝혀놓고 있다는 사실이다(행1:1~2).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행1:1-2)" 그렇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데오빌로'라는 각하(고위관리)에게 먼저 써서 드린 글이 있다고 사도행전을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그 글은 바로 '누가복음'을 가리킨다. 누가복음의 서두가 이렇게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다(눅1:1-4)" 그렇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수신자가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도행전의 저자는 먼저 누가복음을 써서 데오빌로 각하에게 보냈으며, 그리고 이어서 사도행전도 써서 보낸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가 꼭 '누가'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둘째로, 그 증거는 사도행전과 바울의 편지들 속에 나온다. 그것은 다음 시간에 살펴보도록 하자. 

 

 

3. 사도행전의 저자였던 누가에 대한 고고학적인 증거와 기록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그럼, 사도행전의 저자였던 '누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소아시아의 에베소의 입구에 가 보면, '누가의 묘'라는 것이 있다. 그럼, 어떻게 되어서 누가의 묘가 에베소 입구에 있게 된 것일까? 우선 역사적인 기록들을 보면, A.D.60~62년 어간에 누가는 로마의 바울 곁에 머물면서 누가복음을 기록하였으며, 이어 A.D.63년경에는 사도행전을 기록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약간의 시간적인 오차는 있을 수 있다). 그리고 A.D.67년이나 혹은 68년경에 바울이 네로 황제의 의해 목이 잘려 순교한다. 그러자 그후에 누가는 어떻게 되었을까?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바울의 순교이후 누가(Loukas)는 데살로니가로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거기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그 도시의 우상숭배자들에 의해 순교했다고 한다. 그러자 그때 그의 시체를 에베소에 있는 사도 요한이 가져다가 에베소 도시 앞에 매장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무덤이 있었는데, 그 무덤이 누가의 무덤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단서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비석같은 것안데, 거기에 보면, '십자가' 표시와 더불어 '황소'가 그려져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 무덤의 주인이 누가라는 것을 말해 준다는 것이다. 

 

4.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어떤 사람인가?

  그렇다면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헬, 루카스)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위에서 잠깐 살펴보았지만, 교회역사가였던 유세비우스는 누가를 '안디옥 출신의 의사'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는 분명히 의사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도 역시 골로새 교회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를 "사랑받는 의사 누가"라고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골4:14). 그리고 초기교부였던 이레네우스(A.D.130~202)도 누가를 '바울의 동역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레네우스는 "바울의 동역자였던 누가가 바울이 전파한 복음을 기록하였다"(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제5권 제8장)고 말했던 것이다. 고로 우리는 성경의 기록을 통해서도 누가가 의사였으며, 바울의 동역자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안디옥 출신이라는 것은 성경 외의 기록에서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교회역사가였던 유세비우스가 그를 안디옥 출신의 의사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터키 성지순례를 가서 보면, 가이드들이 에베소에 있는 누가의 묘 앞에서 누가에서 대해 소개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데, 성지순례의 가이드에 따르면, 누가는 원래 로마의 판사였던 '푸리스쿠스'가 부리는 종의 자식이었다고 한다. 누가의 아버지 '엔자'와 어머니 '이리스' 모두가 푸리스쿠스의 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엔자의 헌신적인 죽음을 보고는 '푸리스쿠스'가 엔자와 이리스를 노예에서 해방시켜 자유인이 되게 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하필 누가는 프리스쿠스의 아들인 '디오도로스 시리누스'의 딸 '루블리아'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루불리아'가 그만 말라리아 열병으로 죽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자신이 사랑하는 자를 빼앗아간 원수와 싸우기 위해 누가가 의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결국 의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안디옥에서 바울을 만나 기독교로 개종하였고 바울의 선교를 도왔다고 한다. 만약 이러한 진술이 바른 것이라면, 우리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읽을 때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누가복음이  다른 복음서에 비해, 여자들과 소외되고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람 취급받지 못하던 베들레헴의 목자들의 아기 예수 경배(눅2:8~20), 유대인들로부터 개 취급받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10:15~37), 사람 취급 받지 못했던 세리의 기도(눅18:9~14), 가버나움까지 따라 와서 예수님을 섬기던 여인들의 이름들(눅8:2~3) 등은 누가복음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기사들이기 때문이다. 

 

5. 사도행전의 저술 목적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왜 누가는 누가복음 외에 이어서 사도행전을 기록한 것인가? 그것은 누가복음의 기록목적을 통해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다. 의사 누가는 누가복음의 서두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동행하여 따라다닌 채 있는)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교육받았던)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알도록 하기) 함이로라(눅1:3-4)" 그렇다. 누가복음은 시작부터 예수님의 목격자가 되었고 말씀의 사역자가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것을 그대로 저술하려고 붓을 든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정확히 기록하여서 데오빌로에게 전해주려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것이다. 그중에서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고, 사도행전은 두 사도였던 '베드로와 바울의 행적'을 중심으로 기록한 것이다. 그것도 전혀 불순물이나 거짓말 등이 전혀 들어가지 않게 하여서 기록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누가는 이렇게 쉽지 않은 일을 하게 된 것인가? 그것은 그가 바울을 만나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복음사역자들과 복음을 알기를 원하는 이방인들로 하여금 예수님과 성령의 역사가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하고자 두 권의 책을 신중하고 그리고 철저하게 고증을 거쳐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기록은 곧 이방인들도 복음을 듣고 구원자를 만나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복음서이자, 베드로와 바울의 신실한 복음전파 행적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2022년 06월 07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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