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29(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노아가 받은 은사는 대체 무엇이었는가?(창6:5~22)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7g8nTvj4sn4 [또는 https://tv.naver.com/v/32764038]

 

1. 들어가며

  노아는 당대에 완전한 자였다. 다시 말해 흠이 없는 자였다. 그때 노아의 나이는 500세 정도였다. 그러니까 노아는 무려 500년간을 하나님과 함께 걸어갔으며, 의롭게 살았고, 하나님 보시기에 흠이 없이 살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노아는 어떻게 되어서 흠없는 완전한 자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인가? 그가 받게 되었던 놀라운 은사들은 무엇이었으며, 그가 받아들인 악한 영에는 어떤 것이 있었는가? 우리는 노아의 삶과 은사 그리고 악한 영의 역사를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으며, 나도 어떤 은사를 사모해야 하는지, 어떤 악한 영들에 주의해야 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2. 노아는 어떻게 되어서 흠없는 완전한 자로 살 수 있었는가?

  노아는 자기의 조상 3대가 아주 경건한 믿음의 선배들이었다. 아버지는 '라멕'이었고 그리고 할아버지는 '므두셀라' 그리고 증조할아버지는 '에녹'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전부다 신앙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는데 그때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계시를 받는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므두셀라'라고 지었다. 그 이름의 뜻은 '그가 죽을 때에 그것을 보낼 것이다'라는 것으로 심판을 예고하는 계시가 들어 있는 이름이었다. 비록 에녹이 일찍 승천하는 바람에 노아는 에녹과 함께 살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할아버지 므두셀라로부터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노아는 자신의 아버지 '라멕'으로부터도 역시 아주 중요한 사실을 들었다. 그것은 자신의 이름에 관한 이야기다. 그것은 자신의 이름을 '노아'라고 지은 이유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안위,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서 어떤 일을 이루실 것임을 암시받은 것이다. 그러자 노아는 자신의 조상들로부터 이러한 가르침을 받으면서 살았기 때문에 그는 인생을 허투루 살 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는 500세까지 기도에 집중하는 삶을 살 수가 있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도 그를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칭하신 것이다. 

 

3. 노아가 받은 은사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노아가 받은 은사는 무엇인가? 감사하게도 노아는 믿음의 조상들 때문에 많은 영적인 은사를 물려받을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 시대 당시에 다른 모든 사람들이 걸어가는 넓은 길로 가지 않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대체 그는 어떤 은사를 받았던 것인가? 그가 받은 은사를 정리하면 적어도 9가지 은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첫째, 그의 가장 탁월한 은사는 말씀에 대한 분별력의 은사를 받았다는 것이다(창5:21~29). 그래서 그는 일종의 선지자처럼 살아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가 그렇게 된 것은 그는 조상들로부터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았을 뿐만 아니라 말씀을 들으면 그것이 어떤 종류의 말씀인지를 분간할 수 있는 은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선지자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500세 된 이후에 방주만 만든 것이 아니라 방주를 만들기 위해 고용한 사람들과 구경꾼들에게도 늘 회개의 메시지를 전파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그는 기도하고 간구하는 은사를 받았다(창6:9~10). 그는 참 많이 기도한 사람이었다. 무려 500년을 자식도 낳지 않고 기도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실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선악과의 비밀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악한 영들(뱀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것을 이기지 못하는 자는 가인처럼 혈기와 분노, 시기와 질투심을 통해 살인까지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자기가 자식을 낳는다고 해도 과연 그 자식을 끝까지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래서 퍽 많은 시간을 기도에 힘썼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와 하나님 사이에는 영적인 통로가 열려 있었다. 그 공간 사이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셋째, 그는 바른 길로 인도하는 은사를 받았다(벧후2:5). 그래서 그는 어떤 길이 바른 길이요 어떤 길이 파멸의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자신의 자식들을 바른 길로 인도했으며, 당시 세상 사람들에게도 바른 길을 제시할 수 있었다. 

  넷째, 그는 순종하는 은사를 받았다(창6:22, 7:5). 그가 500살까지는 기도하며 살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방주를 만들고 그 안에 살아 숨쉬고 있는 동물을 들여 넣고 그들이 먹을 양식을 준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 그는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말씀을 들어도 순종하려는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섯째, 그는 건축하는 은사도 받았다(창6:14~16,21~22). 그가 언제 하나님으로부터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을 받았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방주 건조 명령을 받았을 때에 그는 적어도 520세는 더 되었을 것이다. 야살의 책에 의하면, 그는 595세에 방주 건조 명령을 받았으며, 5년간 방주를 지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사실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가 방주만 지은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서 임시로 살게 될 모든 동물들의 식량까지 준비한 것을 보면, 너무 오랜 세월 동안 방주를 지은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가 지은 방주는 당시에는 실로 상상하기 어려운 크기였다. 300규빗 50규빗 30규빗의 방주는 오늘날 축구장 크기 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작은 배 하나 건조하는 것도 어려운데, 노아가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큰 방주를 지었다는 것은 그에게 건축의 은사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여섯째, 그는 열심히 일하는 은사를 받았다(창6:22). 그는 나이를 먹었지만 지칠 줄 모르고 일할 수 있는 체력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쉬지 않고 방주를 지어 하나님께서 그에게 환상으로 보여 준 바 바로 그 방주를 그대로 지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일곱째, 그는 유혹을 뿌리치는 은사를 받았다(창6:1~3,5~6). 그는 세상 사람들이 편한 길로 넓은 길로 가고 있었을 때 그 길로 가지 않았다. 믿음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 길은 비록 좁은 길이었지만 그 길이 생명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여덟째, 그는 승리의 은사를 받았다(창6:9).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부여하신 사명 곧 방주를 짓고 동물들을 들여보내 그들을 보전하라는 말씀을 그대로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던 인물이었다. 그것은 힘든 작업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세 아들들과 자부들 그리고 고용한 일꾼들과 함께 끝까지 방주를 지어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홉째, 그는 비밀을 아는 은사를 받았다. 그는 장차 되어질 일을 알았다. 장차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류와 지구를 심판하실 것인지를 알고 그것에 대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기 자식 만큼은 멸망의 길이 아니라 생명길로 인도할 수 있었다. 

 

4. 노아가 불러들인 악한 영은 무엇이었는가?

  사실 노아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에 준비된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께 쓰임받기 전까지 적어도 500년 이상을 기도로 준비해 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인류의 시조 아담(1대)과 7대 조상 에녹(7대)과는 함께 살지 못했지만, 다른 모든 믿음의 조상들 곧 셋(2대), 에노스(3대), 게난(4대), 마할랄렐(5대), 야렛(6대), 므두셀라(8대), 라멕(9대)과 교제함으로 믿음의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가 방주 건조 명령을 받을 때에는 흠없는 자가 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회개하여 자신의 몸으로부터 악한 영들을 내보내었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방주 지을 동안에 발생했다. 왜냐하면 그때 노아에게 거절의 영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방주 공사를 돕기 위해 고용한 사람들과 구경꾼들에게 회개할 것을 전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때 노아에게 들어온 거절의 영은 결국 홍수 이후에 혈기와 분노의 영과 함께 자신의 손자 가나안을 저주하는 일로 나타나게 된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사람들로부터 거절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홍수 이후에 드디어 사건이 터졌다. 그것은 자신이 포도농사를 지은 후 포도주를 마시고 취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그만 술 취한 나머지 옷을 입지 않은 채 누워 있는 것을 아마도 그의 손자 가나안이 본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사건 이후로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가나안이 먼저 보았을 것이고 그것을 자신의 아버지 함에게 전한 것 같다. 그러자 함은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주지 않고 형제들에게 그것을 누설하고 말았다. 그때 만약 함이 자신이 본 사실을 덮어버렸다면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함은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주지 못했다. 그것을 누설함으로 자신은 그러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자신을 미화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권위를 실추시켰다. 그러자 화가 난 노아는 가나안을 저주했다. 그가 그의 형제들의 종들의 종이 될 것이라고 말해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 함의 자손들은 여전히 셈과 야벳의 후손들에게 처절히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거절의 영이 내 몸안에 있으면 여러 다른 영들과 결합하여 매우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노아는 500년 이상을 회개하고 기도했기에 다른 24장로들에게는 발견할 수 없는 놀라운 사람이 될 수 있었으니, 그것은 노아 안에서 교만의 영과 음란의 영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 치고 교만과 음란의 영은 조금씩이나마 있는데 노아에게는 이것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5. 노아가 받은 은사의 특징은 무엇인가?

  노아는 사실 믿음이 좋은 조상들을 두었다. 그리고 본인도 500년 이상을 기도하면서 회개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정말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창세기 기자는 그를 의로운 사람이자 그 시대에 흠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던 것이다(창6:9). 그러나 방주를 지으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회개를 전파할 때에 수많은 거절을 받음으로 인하여 거절의 영이 자신의 몸에 들어왔다. 그리하여 그렇게 해서 받은 상처들은 결국 자신의 흠을 들추어내고 누설하는 함과 가나안에게 저주하는 일을 낳고 말았다. 이것을 제외한다면, 우리는 노아가 정말 훌륭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일생에 받았던 은사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가 받은 은사는 일종의 분별력의 은사로서 무엇이 바른 길이요 무엇이 멸망의 길인지를 알고 전해 줄 수 있는 자로서, 선지자의 은사를 받았다고 정리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는 아마도 신약으로 치자면 세례 요한과 같은 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는 믿음의 조상들이 들려준 말씀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새겨들음으로서 때를 분별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충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그가 비록 능력을 행하고 기적을 행하는 은사를 받지는 못했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바른 길을 제시해 줄 줄 아는 지도자의 은사를 받았다는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을 외치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가지고 끝까지 회개를 외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셋째, 그는 자신의 내면을 깨끗이 하는 은사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500년 이상을 기도하였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을 깨끗한 그릇이 되게 함으로, 하나님께서 불러 쓰시는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기도의 은사를 통해서 순종과 충성의 은사로 겸비할 수 있었던 것이다. 

 

6. 나오며

  노아는 사실 엄청난 영성가다. 그것도 기도로 다져진 영성가다. 노아는 무려 500년 동안이나 경건생활에 힘써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식도 낳지 않으면서 경건생활을 유지해 왔던 것이다. 그러니 방주를 만들기 전까지 노아는 사실 에녹보다 더 훌륭한 영성가였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거절의 영 때문에 그는 조금 아픔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가 500년 동안 쌓아왔던 기도와 또한 주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그를 하늘에서 보좌 자리 1번을 차지하게 하였고, 24장로의 반열에 들게 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경건생활과 회개생활을 하고 있을까? 50년은 아니더라도 다만 5년 동안만이라도 회개하라고 한다면, 우리는 과연 아무런 불평없이 회개할 수 있을까? 노아 앞에서 우리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노아를 통해 기도와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것 없이는 깨끗한 그릇으로 쓰임받을 수 없기 때문이요, 천국에서도 주님의 보좌에 더 가까이 가지 못하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 회개하자. 그래서 깨끗한 그릇으로 자신을 준비하자. 

 

 

2023년 01월 29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69) 왜 사도 바울은 점치는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냈는가?(행16:16~19)_2022-11-16(수)

https://youtu.be/kAEuxx7xkMs  [혹은 https://tv.naver.com/v/30826703 ]

 

1.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에 빌립보에서 기도하러 가다가 만난 여종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에 빌립보에서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만난 여종은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이었다.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퓌돈 영을 가지고 있는 어린 여종'이었다. 여기서 '퓌돈'이라는 말은 '퓌돈 신' 혹은 '점치는 영'을 가리킨다. 그렇다. 이 젊은 여자는 점치는 영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에게 점을 쳐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고용된 사람이었다. 즉 어떤 주인들에게 고용되어 점을 쳐주어서 자기의 주인들에게 이익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2. 그녀의 외침은 어떤 것이었나?

  그런데 그녀는 바울 일행을 뒤따라가면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이런 그들은 구원의 길을 여러분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행16:17). 그녀가 외치는 소리만을 점검한다면 그녀는 정확한 말을 내뱉고 있는 것이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여러 날을 외치고 다녔다.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귀신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말이나 거짓말만 하는 것이 아니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귀신들도 사실적인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바울은 그녀의 외침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그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하여 그녀에게서 귀신을 쫓아버렸다. 그러자 즉시 그녀에게서 귀신이 떠나갔다. 그러자 그녀는 더 이상 점을 칠 수가 없었다. 

 

3. 바울은 왜 그녀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야 했는가?

  바울이 그녀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그녀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바울이 그녀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야 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적어도 3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그녀가 계속 말하고 다니는 것을 그냥 놔두면 그녀와 바울은 한 영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취급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실 그녀에게 들어 있는 영은 귀신이요, 바울에게 들어 있는 영은 성령이기 때문에 둘은 서로 다르다. 그런데 그냥 놔둔다면 사람들은 같은 영에 속한 자들이라고 취급할 수 있다. 그러면 복음 전파에 많은 방해가 될 것이다. 둘째, 그녀 속에 있는 영(귀신)보다 사도 바울 속에 있는 영(성령)이 훨씬 더 쎄다는 것을 분명히 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녀 속에 있는 영은 귀신으로서 피조물이며, 바울 속에 있는 영은 성령으로서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셋째, 귀신에 매여 있어서 귀신에게 일평생 종노릇하며 살아가고 있는 그녀를 불쌍히 여겨서 그녀를 귀신의 세력으로부터 놓아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녀에게서 귀신이 떠나가고 난 후 그녀는 빌립보교회의 성도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4. 성도 속에서 역사하는 영이 귀신의 영인지 성령인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오늘날에 교회 안에서도 무엇을 보았다 혹은 무엇을 들었다고 하시는 분들이 더러 있다. 심지어 교회에서 직분(이를테면 '권사')을 가진 분이 예언을 해 준다고 하는데 잘 맞춘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그분에게로 몰려가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 성도들 가운데 무엇을 보거나 들었다고 한다든지 아니면 예언을 해 준다고 할 때, 그것이 귀신이 역사하는 것인지 성령이 역사하고 있는 것인지를 구분하는 방법은 대체 무엇인가? 만약 자기가 영안이 열린 사람이라면 그 사람 속에서 역사하는 영이 어떤 종류의 영인지를 영안으로 보아서 금방 판단할 수 있겠지만, 보통 사람의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간 분별하기 힘들다. 그때에는 2가지 방법을 써 보라. 첫째, "권사님, 혹시 천사가 보입니까?"라고 질문해 보라. 만약 그 권사님이 천사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분을 멀리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성도가 영 분별의 은사를 지녔다면 천사도 보고 귀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천사는 볼 수 없고, 귀신만 보인다면 귀신이 역사하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라. 이런 분들은 보통 양신(성령과 악령)이 동시에 역사하고 있다. 둘째, "권사님의 조상들 중에서 1~4대 안에 무당이 있습니까?"라고 물어보라. 만약 무당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분을 멀리해야 한다. 양신이 역사하고 있을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특히 회개를 모르는 사역자라면 더 더 위험하다. 

 

5.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귀신을 잘 쫓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실 사도 바울은 영적인 계급이 매우 높았기에, 단번에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으며, 또한 귀신도 그녀에게서 즉시 떠나가게 되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들이 귀신을 쫓아낼 때에 귀신을 잘 쫓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자신의 영권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영권이 높아야, 어떤 귀신이라도 복종하고 떠나가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나의 영적인 계급을 높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영적 계급이 낮은 귀신을 쫓아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영적인 세계는 일종의 조폭 세계와 비슷하여, 철저히 계급 조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신의 영적인 계급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3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기도하되, 회개하는 기도를 많이 하여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만약 자신이 회개하지 않으면, 귀신이 자신의 몸에 많이 남아 있어서 귀신들끼리 서로 알고 장난쳐 버린다. 그러므로 귀신을 잘 내쫓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둘째, 기도하되 귀신을 쫓을 수 있는 은사를 달라고 주님께 기도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능력 행함'의 은사와 '영 분별'의 은사를 구하라. 여기서 '능력 행함'의 은사는 기적을 행하는 은사이면서 또한 귀신을 내쫓는 은사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귀신을 잘 쫓아내려면 '능력 행함'의 은사를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만약 더 구체적으로 구하려면, 귀신을 내쫓는 은사, 귀신을 짓밟는 은사, 귀신을 태워버리는 은사, 귀신을 잘라버리는 은사, 귀신을 느끼는 은사를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사역자가 되어 사역하려면 여기에다가 '영 분별'의 은사를 구하는 것이 좋다. '영 분별'이란 그 영이 선한 영인지 악한 영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은사를 가리킨다. 셋째, 회개를 하고 은사를 구했으면 직접 은사를 사용해야 한다. 다시 말해, 사역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직접 귀신을 쫓아보는 것이다. 그러면 내 영적 계급보다 더 높은 계급을 가진 귀신은 명령해도 잘 안 나갈 것이다. 때로는 그놈들이 나에게 덤벼들 수도 있다. 그래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계속해서 명령해야 한다. 그러면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도 나의 영적 계급을 높여 주신다. 사실 태어날 때부터 높은 계급을 가진 자는 없다. 다 '소위'라는 계급부터 시작하여 소령이 되고 소장이 되고 대장이 되는 것이다. 해 보라.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2022년 11월 16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65) 사역자에게 있어서 제일 큰 축복은 무엇인가?(행15:22~35)_2022-11-09(수)

https://youtu.be/PBhhFaElyC8  [혹은 https://youtu.be/PBhhFaElyC8 ]

 

1. 주의 사역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주님으로부터 사명을 받고 일하는 사역자들은 무엇이 제일 필요한 것일까? 우선은 사역자로서의 부르심과 자질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부르심이 없는 사역자는 끝까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수행하지 못하며 힘들 때에는 그만 둘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을 돕는 동역자들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일은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겨운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정적으로 뒷받침받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에도 사람이기에 먹고 입고 자고 이동하고 잠자기 위한 물질이 꼭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2. 사도 바울의 삶에 있어서 어떤 만남의 축복이 있었는가?

  사람이 받는 축복 가운데 가장 귀한 축복 가운데 하나는 만남의 축복이다. 누구를 만나느냐가 인생의 방향과 진로를 결정해 주기 때문이다. 사람은 보통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을 따라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과 교제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그 사람의 축복의 향배도 결정된다고 말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최대의 전도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그가 만난 동역자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매우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첫째로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 그로부터 악한 영을 뽑아주고 성령의 은사를 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 일은 다메섹에 있는 형제 아나니아가 해 주었다. 둘째로, 그가 변화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예루살렘에 가서 사도들과 친교의 교제를 나누려 할 때에는 바나바라는 사람이 자신을 믿어 주어서 사도들과 야고보에게 친교의 악수를 나누도록 주선해 주었다. 그리고 셋째로, 홀로 선교여행을 떠나야 했던 2차 전도여행 때에는 실라(실루아노)가 동역자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바울을 도와주는 사람이 생겼다. 

 

3.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의 동역자인 실라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바울의 사역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던 세 번째의 사람은 예루살렘교회의 '실라'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의 가장 중요한 동역자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예루살렘교회의 평신도였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그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다(행15:22).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 총회의 결과를 안디옥교회에 가서 전해 줄 사람으로 지목되었다. 그런데 당시 이방인의 구원의 문제로 인하여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으로 왔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처음으로 총회가 열렸다. 이는 이방인들의 구원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과연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 가능한 것이냐 아니면 그것으로는 안 되고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도 지켜야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종 결과는 사도들의 대표였던 베드로의 구원론이 그대로 받아들여졌고, 유대인들을 위해 이방인들이 주의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야고보의 의견이 그대로 수렴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총회의 결정 사항을 안디옥교회에 전달해 줄 자가 필요했다. 그래서 편지와 더불어 유다와 실라가 선택되었는데, 이 둘은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로서 그 일을 감당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은 예언을 할 수 있는 선지자로서(행15:32), 개인적으로 사람을 만났을 때에 그를 권면하고 위로할 수 있는 영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 둘은 사도들과 장로들이 써 준 편지를 들고 안디옥교회를 방문하게 되었고 그것을 전달해 주었다. 그러고 나서는 자신의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교회로 되돌아갔다. 

 

4. 주의 사역자들에게 꼭 필요한 3대 축복이자 기도 제목은 무엇인가?

  바울에게는 놀랍게도 그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주변에 있어서 바울을 도와 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것들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의 사역자들에게 꼭 있어야 할 것은 대체 무엇일까? 아니 그렇게 되어지도록 기도할 제목이 있다면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보통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주의 종은 자신의 부르심을 잘 감당할 수 있는 합당한 은사를 받아야 한다. 사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사가 다 부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사역과 사명에 합당한 은사가 부어진다. 그중에서도 복음을 전달할 사역자들에게는 설교의 은사, 환상의 은사, 치유의 은사, 귀신쫓는 은사 등은 꼭 있어야 한다. 둘째, 자신과 함께 사역을 감당할 신실한 동역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의 일은 혼자서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의 일은 대부분 팀 사역을 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바울에게는 어떤 동역자가 있었는가? 감사하게도 바울에게는 여러 종류의 동역자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그에게는 복음전파 사역의 동역자가 꼭 있었다. 그러한 사람으로는 먼저는 바나바와 실라가 있었고, 청년 디모데와 의사 누가도 있었다. 셋째, 자신의 복음전파 사역에 필요한 물질을 후원하는 선교 후원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 곳으로 이동하면서 복음을 전파하려면 물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울에게는 이러한 선교 후원자가 꼭 있었다. 2차 전도여행 때에는 빌립보에서 만난 자주장사 루디아가 있었고, 고린도에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있었다. 이들은 바울의 대표적인 후원자였다. 이들은 바울이 안디옥교회로부터 선교 후원비를 받지 못하게 되었을 때 바울의 든든한 선교 후원자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교사 바울은 그 험난한 선교여행을 잘 마칠 수가 있었던 것이다. 

 

5. 오늘날 성도들은 사역자들을 위해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가?

  예나 지금이나 영적인 세계에 있어서 항상 통하는 법칙은 제자가 스승을 능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성도의 영성은 주의 종의 영성을 능가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교회가 항상 힘써야 할 것은 말씀과 복음을 전하는 주의 종들에 대한 충분한 기도이다. 주의 종들에게 영권과 인권과 물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부어 주시어 주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역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의 종에게 신실한 동역자를 붙여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교에 필요한 물질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성도가 주의 종과 함께 하늘나라를 준비하는 동역자들이 되는 것이다. 동역이 어찌 말씀 사역과 물질 후원 뿐이겠는가? 왜냐하면 기도의 동역이야말로 그 어떤 동역보다도 가장 필요한 동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성도는 주의 종들을 통하여 양질의 양식을 받아서 누리면서 하늘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되며, 주의 종들은 성도들의 기도와 더불어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사역을 펼쳐나갈 수 있게 된다. 그럴 때 비로소 교회는 주님의 쓰심에 합당한 교회로 발돋움할 수가 있는 것이다. 

 

 

2022년 11월 09일(수)

정병진목사

 

2022-11-04(금) 금요기도회

제목: 사무엘이 받은 은사와 나의 은사는?(삼상3:1~1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XSqvFhVLbRQ  [혹은 https://tv.naver.com/v/30583455 ]

 

1. 들어가며

  그리스도인으로 살다 보면 자신에게는 과연 어떤 은사가 주어져 있으며 또한 앞으로 어떤 은사를 사모하고 기도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또한 자신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은사가 있다고 하는데, 그럼 나는 과연 부모로부터 어떤 은사를 물려받았는가 하는 것도 궁금하다. 은사는 일종의 선물이다. 또한 모든 은사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것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있다. 그러므로 훌륭한 부모를 만난다는 것은 상당한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로서 구약시대의 가장 유명한 사사이자 최종 사사였던 사무엘 선지자의 경우를 통하여 우리가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은사는 대체 무엇이며, 또한 각자의 사역을 위해 어떤 은사가 필요한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 가운데 내가 간구할 은사는 대체 무엇인지를 찾아보고자 한다. 

 

2. 사무엘은 대체 누구인가?

  사무엘은 이스라엘 최대의 사사이자 최종 사사이다. 그런데 그는 사사(재판관)로서만 일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선지자와 제사장의 일도 겸해서 행했으며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던 통치자이기도 하였다. 구약시대의 인물치고 이렇게 많은 직임을 맡아서 사역했던 사람이 사실 없을 것이다. 특히 그는 다윗을 왕으로 기름부어 세운 선지자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있어서 사무엘은 정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귀한 인물로 쓰임받기까지 그에게는 아주 특별한 일들이 있었다. 그것은 그의 부모로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사무엘이 좋은 은사를 받게 된 데에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3. 사무엘은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가?

  사무엘의 부모는 '엘가나'와 '한나'였다. 그의 부모는 에브라임 지파의 땅으로서, 두 개의 고지로 이루어진 숩 족속이 거주하던 땅에 살았다. 그렇다고 그의 아버지 엘가나는 에브라임 지파 사람은 아니었고, 레위 지파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 에브라임 땅 안에 있는 레위 지파 성읍에 그가 거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엘가나는 정실부인이었던 한나와의 사이에 자식을 두지 못했다. 그러자 두 번째 부인을 취하여 자식들을 낳았으니, 두 번째 부인의 이름은 '브닌나'였다. 그런데 두 번째 부인이 자식을 여러 명 낳기까지 한나는 여전히 자식을 낳지 못했다. 그런데 브닌나가 자꾸 한나를 놀리고 괴롭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한나는 실로에 있는 여호와의 성막에 올라갈 때마다 울고 먹지 않고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엘리 제사장이 여호와의 집 문설주에 앉아 있을 때에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하나님께 서원하며 기도를 하였다.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1:11~12)".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마침내 그에게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주셨다(삼상1:20). 그래서 사무엘은 '들으심' 곧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뜻으로 그 이름이 지어진 것이다.   

 

4. 한나가 가진 은사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한나가 가지고 있던 은사는 무엇일까? 어떤 이는 구약시대의 사람에게는 은사가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건 아니다. 구약시대에도 여전히 성령께서 역사하시어 은사를 주셨기 때문이다. 다만 경륜적으로 성령께서 사람의 영 속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방언과 방언 통역의 은사만 나타나지 않았을 뿐 대부분의 은사가 그때에도 다 있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에게는 주의 음성을 듣는 은사가 있었고, 엘리야나 엘리사에게는 '능력 행함'의 은사, '치유의 은사', '소생의 은사'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엘가나의 아내였던 '한나'에게는 어떤 은사가 있었던 것일까? 사무엘상의 기록을 살펴보면, 그녀에게는 적어도 5가지 은사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기도하는 은사'가 있었다(삼상1:10~12,15,17, 2:1). 그녀는 매년제를 드리면서 여호와의 성막에 올라갔을 때에 그냥 있지 않았다. 그리고 거기에서도 원망과 불평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는 기도를 드렸다. 그녀는 자신의 서러운 마음을 하나님께 기도로 풀었던 여인이었다. 그랬다. 그녀는 기도하는 여인이었다. 그래서 통성으로 기도할 줄도 알았고, 금식하며 기도할 줄도 알았으며, 서원하는 기도도 알았던 것이다. 둘째, '기도 응답의 은사'가 있었다(삼상1:27). 그녀가 하나님께 아들을 달라고 기도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무엘을 주셨다(삼상1:19~20). 그리고 그 이후에도 하나님께서 그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3남 2녀라는 자식을 더 주셨다(삼상2:21). 셋째, '주님의 종을 신뢰하는 은사', 곧 '믿음의 은사'가 있었다. 어느 날 그녀가 울며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을 때에 엘리 제사장이 그녀를 나무랬다. 그녀가 포도주를 먹고 취하여 기도하는 줄로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포도주에 취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서러운 마음을 주님께 쏟아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자 엘리가 말하기를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삼상1:17)"고 축복했다. 그러자 그녀는 "당신의 여종이 당신에게 은혜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는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었다. 그는 주의 종의 말을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뢰하고 믿었던 것이다. 넷째, 그녀에게는 '주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은사'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이 죽고 사는 것, 가난하게 되거나 부하게 되는 것, 낮게 되거나 높여지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삼상2:6~8). 그러니 자기 자신에게 아들이 생기는 것과 안 생기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섯째, 마지막으로 그녀에게는 '주님께 헌신하는 은사'도 있었다(삼상1:28). 그는 어렵게 자식을 얻었지만 그렇게 해서 얻은 아들이라 할지라도 그녀는 하나님께 그 아이를 기쁨으로 바칠 수가 있었다.  

 

5. 사무엘이 받은 은사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태어난 사무엘이 받은 은사는 대체 무엇이었는가? 사실 사무엘은 정말 훌륭한 부모를 만났다. 왜냐하면 자식이 아직 생기기도 전에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하는 부모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부모가 가지고 있던 은사를 물려받도록 해 주셨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은 거의 받지 못한 놀라운 은사들을 그에게 덤으로 주셨다. 그러면 사무엘은 어떤 은사를 받은 것인가? 사무엘이 받은 은사는 적어도 7가지 이상이 된다. 

  첫째, 사무엘은 부모로부터 '기도하는 은사'와 '기도 응답의 은사'를 받았다(삼상12:23). 왜냐하면 구약시대의 인물 중에서 사무엘만큼 기도를 많이 한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말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삼상12:23). 그랬다. 사무엘은 기도의 사람이었고 또한 기도 응답을 받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엄마의 기도의 은사가 사무엘에게로 그대로 내려온 것이다. 

  둘째, 사무엘은 '주의 음성을 듣는 은사'와 '주의 형상을 보는 은사'를 받았다(삼상3:10,21). 이것은 한나의 기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선물로서 사무엘이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주신 은사이다. 그래서 사무엘은 아주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고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가 있었다(삼상3:10,21). 고로 그는 평생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았으며 주의 음성을 따라 순종하며 살 수가 있었다. 

  셋째, 그는 '말의 응답의 은사'를 받았다(삼상3:19). 그가 말하면 그 말이 그대로 성취되는 은사를 받았으니, 그가 하는 말은 곧 하나님의 말과 같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말을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기 때문이다. 

  넷째, 그는 '통치의 은사' 곧 '다스림의 은사'도 받았다(삼상7:15~17). 사무엘이 사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가 하나님께서 세운 선지자인 줄을 알았으며, 그가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 사이를 순회하면서 통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기의 집이 있는 라마에서도 모든 백성이 그의 말을 잘 따라주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통치와 다스림의 은사가 있었던 것이다. 

  다섯째,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은사'를 받았다(삼상15:11, 22~23). 그는 사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를 아는 은사를 받았다. 그러므로 그의 말은 하나님의 심정을 대변하는 말이 되었다. 

  여섯째, 마지막으로 사무엘은 '왕을 세우는 은사'를 받았다(삼상10:1, 16:13). 사실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은 '왕'을 세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특히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다윗왕을 세우기 위해 그는 이 땅에 파송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사무엘은 다윗을 왕으로 세우기 이전에 먼저 사울을 기름부어 왕으로 세웠으며(삼상10:1), 이어서 다윗을 왕으로 기름부어 세울 수가 있었다(삼상16:13). 오늘날에도 이와 비슷한 은사를 가진 분들이 있으니, '주의 종을 생산하는 은사'를 가진 자가 있고, '주의 종을 양육하는 은사'를 가진 분들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은사들을 종합하여 보면 사무엘은 자신의 부모로부터 '기도하는 은사'와 '기도 응답의 은사'를 물려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를 이 땅에 보내실 때에 그의 사명에 따라 특별 은사를 주신 것도 있다. 그러한 은사에는 '주의 음성을 듣는 은사'와 '주의 형상을 보는 은사'가 있다. 또한 그가 받았던 은사들은 주로 '일반 은사'들에 속한 것들이다. 그것은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사이자 선지자 그리고 제사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하는 데에 꼭 필요한 은사들이었다. 그러한 은사들에는 자신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있고, 사무엘이 간구하여 받은 것도 있다. 

 

6. 오늘날 평신도들과 주의 종들에게 필요한 은사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렇다면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는 어떤 은사가 필요한 것인가? 우리가 기도하고 은사를 가진 훌륭한 부모를 만났다면 아마도 우리 몸 안에 은사들이 붙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조상의 세대들의 영들이 많아 은사가 발현되지 못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부모는 자식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잘 나타날 수 있도록 꼭 회개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그래서 은사를 덮고 있는 악한 영들을 제거해 주어야 한다. 그러면 그동안 나타나지 아니하던 은사들이 나타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은사는 꼭 자신의 직임에 맡는 은사가 주어질 때 은사가 빛을 보게 된다는 것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용하지 않을 은사를 구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손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은사를 구할 때에는 자신의 직분에 따라 자신의 직임에 맡는 은사를 구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평신도에게는 어떤 은사가 필요하며, 주의 종들에게는 어떤 은사가 필요할까?

  먼저, 평신도에게는 어떤 은사가 필요한 것인가? 평신도들에게는 사실 사역자들에게 있는 '특별 은사'보다는 '일반 은사'가 더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우선적으로 필요한 일반 은사들로서는 '기도하는 은사, 기도 응답의 은사'가 가장 필요하다. 기도는 성도들의 삶에 최우선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섬김'의 은사, '재물'의 은사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와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섬김과 물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서 성품의 은사들도 필요하다. 성품의 은사로서는 '충성, 온유, 절제, 사랑, 인내' 등의 은사가 필요하며, 찬양대원이나 교사로 봉사하는 분들에게는 '찬양(노래)'의 은사와 '가르침'의 은사, '지혜'와 '지식'의 은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장로들에게는 '지도력'의 은사, '설득'의 은사 등이 필요하다. 

  둘째, 그럼 주의 종들에게는 어떤 은사가 필요한가? 주의 종들은 말씀을 전해야 하며,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성도들을 건져내야 하기 때문에, 일반 은사와 특별 은사 둘 다가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주의 종들은 '특별 은사'를 더 많이 간구해야 한다. 일반 은사로서 '설교를 잘하는 은사'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영의 세계를 모르면 악한 영들로부터 성도들을 지켜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의 종들은 '특별 은사'로서,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 그리고 '환상'의 은사를 구하여야 한다. 그래서 성도들의 영적 상태를 진단하고 그들의 앞길을 인도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귀신을 쫓아내는 은사'와 '귀신을 짓밟는 은사, '귀신을 느끼는 은사' 등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악한 영들이 성도들을 짓누르고 있고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들 분별의 은사', '영 판단의 은사', '영안이 열리는 은사'가 필요하며, 성도들의 사명을 알려 줄 수 있는 '방언 통역의 은사'와 '예언의 은사'도 필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의 종들은 '치유의 은사'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자주 아프기도 하고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7. 나오며

  사실 은사는 너무나 좋은 것이다. 하지만 자기 안에 악한 영들을 제거하지 못한 상태에서 은사를 받아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면 양신(양쪽의 신, 곧 성령과 악령)이 역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자신의 은사가 과연 성령이 주신 은사인지 귀신이 주고 있는 은사인지를 구별하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은사를 구하는 자는 보다 철저한 회개를 먼저 행해야 한다. 그리고 더욱이 더이상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죄를 짓게 되면 악한 영들이 우리 몸에 달라붙어 자신에게 있는 은사를 나타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는 은사도 밀어내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더라도, 부모가 기도를 많이 하고 은사를 가진 부모라면 더욱 더 좋은 일이다. 혹 그러한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면 자기가 기도하여 신령한 은사를 주님으로부터 받으면 된다. 그리고 그것을 후손에게 물려주면 된다. 그리고 기왕이면 자기 주변에 영적 은사자가 있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더욱 좋다. 은사란 하나님께서 개인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주시는 특별한 선물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사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은사의 잘못된 사용과 부작용을 철저히 숙지하고 은사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은사를 자기 가족 구원을 위해, 교회를 위해, 오늘도 병들어 신음하고 고통받고 상처받고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자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 그리하여 회개하고 천국 들어가는 백성이 많아지도록 힘써야 한다. 그것이 우리 성도들의 기본적인 사명이기 때문이다. 

 

2022년 11월 04일(금)

정병진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