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96) 왜 유대인들은 바울의 전도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을까?(행22:1~23)_2023-01-17(화)

https://youtu.be/N7QhkUad_mM [또는 https://tv.naver.com/v/32508627]

 

1. A.D.58년경 유대인들은 왜 바울을 죽이려 했는가?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왔을 때에,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것은 바울이 3가지를 무시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3가지는 무엇인가? 그것은 유대인들이 목숨처럼 생각하는 것으로서 유대인 선민사상과 율법과 성전이었다. 그것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3차 전도사역을 행하고 있었을 때, 그 모습을 지켜보았던 에베소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와 있는 바울을 보고서 그렇게 고소한 것이다. 

행21:28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바울)은 각 처에서 우리 백성(유대인)과 율법과 이 곳(성전)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2. 유대인들이 목숨처럼 생각하는 3가지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유대인들은 지금도 여전히 3가지 것을 목숨처럼 귀중하게 여긴다. 그것은 자신들(유대인들)의 선민사상과 율법과 성전에 관한 그들의 믿음이다. 첫째, 그들은 선민사상이 대단하였다. 하나님께서 자기 민족만을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아브라함이 언약백성이 된 것은 그가 할례를 받음으로 시작되었다고 믿고는, 할례를 받으면 언약백성이 되는 것이요 그런 자만이 천국에 들어간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만이 선민이라고 하는 자긍심이 아주 대단했던 것이다. 둘째, 그들은 이 세상 모든 민족 가운데 율법을 받은 백성이라고 하는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세상 어떤 민족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자기 민족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들을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던 것이다. 셋째, 그들은 자기들만이 하나님을 모신 성전을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그러므로 성전도 그들 나름대로 구획을 정해놓고는 그것을 철저히 지켰다. 그들은 성전을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영역(제사장의 뜰)과 이스라엘 성인 남자들이 들어가는 영역(이스라엘의 뜰)과 여인들이 들어가는 영역(여인의 뜰)으로 나눠 놓았다. 그리고 그 너머 바깥쪽을 '바깥 마당'이라고 하였다. 바깥 마당에는 이방인들도 허용해 주었다. 그러므로 성전 안에 들어오면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아주 더 선명해진다. 

 

3. 바울이 나중에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바울은 자기도 처음에는 '유대인'과 '율법'과 '성전'을 목숨처럼 여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목표에 따른 과정에 불과한 것으로서,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 그럼, 그때가 언제였는가? 그것은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부터다. 그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유대인과 율법과 성전을 목숨처럼 생각하고는 그것을 위해 살았다. 하지만 그렇게 소중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 자체가 궁극적인 구원 곧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는다. 다시 말해, 그것들은 궁극적인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유대인의 씨로서 오신 분으로서, 율법과 성전의 실체이신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결국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으며, 천국에도 못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랬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신 궁극적인 목적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성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 있었던 것이다. 

 

4.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율법과 성전을 주신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럼,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율법'과 '성전'을 주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첫째,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지상의 만민 중에서 구별하여 세우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를 낳아 줄 민족이 필요했기 때문이며, 메시야를 통해 자기 민족이 구원받을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도 구원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사실 아브라함의 42대손으로 예수님을 낳는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약속된 메시야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자기 민족을 구별하여 세운 목적도 상실했다. 결국은 세상 모든 민족(만민)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어 구원얻도록 도와주고 가르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기 민족만 선민으로 여기고 자기 민족만 구원받을 것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왜 율법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셨는가? 그것은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있는지를 보고서 깨달으라고 주신 법이다. 즉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이 '이렇게 죄를 지었는데, 그러면 어찌할꼬?'라는 생각을 갖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메시야를 붙잡고 그분을 믿어서 죄사함을 얻고 구원을 받으라고 주신 법이 율법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의 역할로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그 율법을 다 지켜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아니다. 율법은 죄를 깨달으라고 주신 법이며,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 주어진 초등교사였던 것이다. 

  셋째, 성전의 의미는 대체 무엇인가? 성전이란 원래 건물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모시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토록 목숨처럼 여기는 성전은 원래는 성막에서 시작된 것이다. 성막은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지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솔로몬이 성전을 지음으로 건물로서의 개념이 생겨났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성전 건물 자체를 신성시하게 된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우상숭배로 물들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방 민족에게 넘겨버린다. 그리고 그때에 성전도 함께 파괴된다. 다시 포로 귀환 후 성전을 짓게 되는데, 유대인들은 여전히 그 성전에만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인 법궤가 제 2성전 안에 없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오셔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예수님의 몸이 성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예수께서 죽고 오순절에 성령 하나님을 믿는 이들 속에 보내 주셨으니, 성령이 오신 다음부터 하나님이 계신 장소는 이제 믿는 이들 곧 교회가 되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여전히 껍데기에 불과한 성전을 목숨처럼 붙들고 있었다. 

 

5. 왜 유대인들은 바울의 전도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바울의 호소는 간단한 것이었다. 유대인의 존재 목적을 제대로 알고, 이제는 율법과 성전의 실체이신 예수님을 붙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 누구도 바울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도 역시 그토록 목숨처럼 여겨온 것들을 하루 아침에 포기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목적이 아니라 과정을 목숨처럼 붙들고 있는 그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이라 아니 말할 수 없다. 그렇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잠시 사용한 민족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 민족 자체를 우상시하였다. 그리고 율법이나 성전은 실체이신 예수님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을 실체인 것처럼 붙들었다(히10:1, 골2:16~17). 그래도 그것을 통해 자기들이 얻고 누리고 있는 특권이 매우 컸기에 그들은 여전히 그것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종교개혁 이후의 세대인 우리들에게 '오직 믿음'은 매우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오직 믿음'이라는 슬로건은 어느새 값싼 구원론으로 전락해 버렸으며, 쉽게 구원받고 쉽게 천국가는 티켓 정도로 여기게 되어 버렸다. 아니다. 바울이 '오직 믿음'을 말한 것은 율법의 의식적인 행위(안식일 준수, 할례, 정결법 등)를 통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실체이신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얻는 것이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와전된 믿음 지상주의는 이제는 믿고 회개하는 것조차 행위 구원론을 따라가는 것이라면서 매도하고 있으며, 행함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이라고 하면 율법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정죄하기까지 한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믿음 지상주의가 아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믿고 회개함으로 얻는 것이요, 우리의 충성과 헌신을 통해서는 천국에서 우리가 누릴 영원한 지위(신분)와 상급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2023년 01월 17일(화)

정병진목사

예수믿는 사람들은 정말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가?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갈3:13의 말씀에 따라, 자신은 이미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났기에,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해석이 정말 맞는가? 만약 그게 옳다면, 왜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십계명을 한층더 강화시켜, 마음에 음욕만 품어도 간음한 것이고,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살인한 자라고 말씀하셨을까?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보면, 십계명을 어긴 자들은 왜 불못에 던져질 것이라고 경고하는가? 고로 우리는 무엇이 죄이며,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를 빨리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더이상 나와 내가족과 자녀들이 저주를 받지 않을 것이며, 죽어서도 불못에 던져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십계명 중에서 어떤 계명에 걸려 있을까?

2019-07-26(금) 금요기도회
제목: 우리는 진정 무엇을 회개했어야 했는가?(롬5:12~14)
https://youtu.be/DYB6G6qyNG4


1. 들어가며

  예수님을 믿게 되면 모든 저주에서 벗어나며 심판을 받지 아니하며 결국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는 그러한가? 그렇지 않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질병에 시달리고 있으며, 땀흘려 수고해보지만 결국 수고만 할 뿐 내 것이 되지 못하고 그것이 또한 쌓이지도 않는다. 자녀의 문제는 여전하고 오히려 애태우는 일만 생긴다. 왜 그럴까? 사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결과를 보면 무엇인가 분명히 문제가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진정 놓쳐버린 구원의 요소이자 축복의 열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래서 이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죄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죄의 종류 2가지는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러면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회개해야 할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2. 무엇이 죄인지를 알게 해주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말씀을 주신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신11:28과 갈3:13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우상을 섬기게 되면 저주를 받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롬6:23에 의하면, "죄의 삯(품삯)은 사망"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롬5:12에 의하면, 사망은 다름아닌 "죄의 열매"라고 말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저주를 받고 사망에 이르는 것은 그가 다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로 사람이 저주를 받지 않고 사망을 당하지 않으려면 먼저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다시 말해 죄용서를 받아야, 저주도 받지 아니하고 죽음(둘째죽음)도 맛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이 죄를 지었는지 안 지었는지를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 그런데 사실 그것을 아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어떤 생각을 품고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을 했든지 그 결과를 지켜보면 된다. 자신의 저지른 어떤 결과가 저주(질병과 재앙 같은 것)로 나타나고, 결국에 파멸(죽음)이 라는 것이 뒤따라오는 것이면 그것은 죄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하여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자신이 결코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어떤 죄를 짓게 되었을 때에는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말씀으로 미리 알려주셨다. 그것이 바로 "율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내가 "이러이러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게 되면, 이러이러한 결과를 받게 되리라"고 미리 알려주는 말씀이 바로 율법말씀인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말씀이란 우리 믿는 이들에게는 더할나위없이 고마운 것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어떤 법을 만들어놓고는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을 "죄"라고 명명하시기 위해 율법을 만드신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가 장차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장차 이렇게 살게 되면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미리 아시고 그것을 알려주신 것이 율법말씀이기 때문이다.

 

3. 죄를 깨닫게 되었을 때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람이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2가지가 필요하다. 그것은 첫째로, 어떤 죄를 짓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기록된 율법말씀을 살펴보는 것이다. 둘째, 혹 율법말씀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의 결과를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에게서 저주와 파멸이 나타나게 되면, 그것은 죄라고 판단하면 된다.

  그렇다면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죄를 처리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죄를 처리해 주어야 저주도 사라지고 폐망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죄는 어떻게 처리될 수가 있는가? 그것은 우리 대신 피흘려 죽는 예수님의 대속의 방법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다(고전15:3~4, 마20:28). 사실 하나님께서 일찌감치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범죄할 것을 다 아시고 있었다. 그래서 장차 아담이 범죄하게 되면 어떤 대속의 방법을 쓸 것인지도 다 계획해 놓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아담이 범죄하고 말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흠없는 속죄제물을 통한 대속의 방법을 사용하셨으니, 이는 대신 피흘려 죽으심으로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죽을 수 없고, 사탄에 시험을 받지도 않지만, 사람의 형벌을 대신 받으시고 죽기 위해서 사람이 되신 것이다. 다시 말해, 죽을 수 없는 하나님이 죽을 수 있는 사람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신 것이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고로 죄를 지었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회개하여 자신의 죄를 용서받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죄를 용서받으려면 3가지 절차가 필요하다. 첫째, 죄를 인식해야 한다. 그것이 죄인지를 깨닫는 것이다. 이 때에는 구약의 율법말씀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둘째, 죄를 시인해야 한다.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하나님에게 아뢰는 것이다. 셋째, 죄를 용서달라고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것이다. 자신이 무슨무슨 죄를 지었으니, 예수님의 피로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사실 가룟유다는 죄를 인식하고 죄를 시인했지만 하나님이신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예수님께 아뢰고 용서를 구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가룟유다는 자신의 죄값으로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다. 넷째, 죄를 멀리해야 한다. 예수님께 죄를 아뢰어 용서를 받았는데, 다시 죄를 짓게 되면 되겠는가? 그러면 떠나간 귀신도 다시 돌아오고야 말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나 자신이 죄를 인식하고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다면, 그는 두 번 다시 동일한 죄를 반복해서 짓지 아니해야 하는 것이다. 죄를 멀리해야 하는 것이다.

 

4. 죄의 2가지 종류는 무엇인가?

  죄란 자신이 행하고 있는 어떤 생각과 말과 행동의 결과가 반드시 저주와 파멸(죽음)을 가져오는 것을 가리킨다. 신구약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은, 사람이 짓는 죄에는 2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요(요16:8~9) 또 하나는 사실상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이 죄다(계21:8).

  그렇다면, 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인가? 그것은 만약 누군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인간은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롬5:12~14, 롬6:23에 의하면,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있었으며,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율법 때문에 죄가 무엇인지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참으로 고마운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지켜야 할 율법에는 "의식법"과 "도덕법"이 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제사법을 비롯한 의식법을 성취하러 오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다 완성하셨다. 그리하여 율법 중 "의식법"은 폐지되고 말았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의식법 중에 제사법의 규정에 따라 속죄제물로 이 세상에 오셨고 대제사장이 되시어 골고다 언덕에서 최종적으로 속죄제사를 드림으로 모든 인류의 죄값을 지불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게 되면 예수님의 속죄제사의 효력을 받아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다 용서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공생애의 마지막 무렵에 당신을 대신하여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성령이 오시면 죄에 대해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책망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즉 예수께서는 성령께서 오시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를 책망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요16:8~9). 다시 말해, 예수님을 믿지 않고서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에, 성령이 오셔서 하는 일은 예수님을 믿지 않은 죄를 책망하신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인류의 죄값을 대신 처리하지 않으면 죄를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하나님께서 구원자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을 믿지 않으면 사실 백약이 무효인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분이 하신 일을 믿는다면 무슨 죄를 지었더라도 용서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둘째로, 무엇인 죄인가? 그것은 구약의 율법 중에서 "도덕법"을 지키지 않은 것이 죄다.  여기서 도덕법이란 "십계명"을 가리킨다. 율법 중에서 의식법은 예수께서 완성하심으로 폐지되고 말았으니, 오늘날 우리가 의식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죄가 되는 것은 율법 중에서 도덕법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오셨어도 도덕법인 십계명은 한 가지도 폐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첫째, 예수께서 오셔서 십계명은 한층 더 강화시켰기 때문이다(마5~7장). 그리고 둘째,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 장차 심판의 잣대로서 십계명을 사용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 7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에 의하면, 무엇이 죄인가가 나오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자가 핍박과 환난 때문에 주님을 부인하는 것이 죄이며,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이 죄라라고 나온다. 십계명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에베소교회는 제5계명(영적 부모를 공경하지 않음)을 어기고 있었고, 버가모교회와 두아디라교회는 우상에게 경배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는 죄(제2계명)과 음행(제5계명)의 죄를 범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데교회는 영적으로 죽어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여 흰옷을 입으라고 권면하고 있다. 그리고 라오디게아교회는 세상적으로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는 교회였지만 영적으로는 가사상태에 있었다. 이것은 제4계명을 범하는 것이다. 일주일에 하루는 세상의 육적인 모든 일을 쉬고 자신의 영을 위하여 힘써야 했지만 그들은 영적인 일에는 완전히 게을렀고 오직 돈 버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주님께서는 짐승과 짐승의 우상을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는 자들(제2계명)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세세토록 고문(원문참조)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계14:9~11). 그리고 계속해서 인류의 속죄자로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거나 부인하는 죄와 십계명을 어기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진다고 말씀하셨다(계21:8). 고로 우리는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이 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5. 나오며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의 삶속에서 수많은 저주와 재앙이 나타나고 있는데도 그것이 죄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을 잘 안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갈3:13에서 예수께서 자신을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 예수께서 속량하신 죄는 의식법의 죄와 도덕법의 죄다. 그런데 의식법의 죄는 예수께서 완성하심으로 폐지되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저주받을 리가 없다. 다만 우리가 주의해야할 죄는 도덕법을 어긴 죄다. 십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여전히 죄가 되는 것이요, 그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믿어도 이 땅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고(계2:22~23), 죽은 다음에는 저 세상에서 불못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계14:9~10, 21:8). 한 번 생각해보라. 예수님도 믿고 점치러도 다니는데 그 사람이 과연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십계명을 주의하여 보고, 나 자신이 어떤 계명에 걸려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1~2계명에 걸려 있다면 그는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과 자기자식에게도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다. 그리고 죽어서 지옥형벌을 면치 못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십계명을 범하지 말라. 혹시 범한 죄가 있다면 즉시 회개하라. 회개하면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죄용서를 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단, 자살한 죄는 용서가 안 된다).

 

2019년 7월 26일(금)

정병진목사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도록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최소한 가족을 이루며 살아야 하고,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자기의 존재의 의미를 느끼며 만족을 누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살다보면 본의아니게 실수하는 일도 생기고 때로는 가끔씩 의도적으로 죄를 짓는 경우가 있다. 배가 고파서 도둑질할 수도 하고, 내면에 숨어있는 탐심과 성욕 때문에 남에게 재산과 신체에 해를 끼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온 세상은 강한 자와 권력있는 자가 지배하는 폭력의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종노릇하는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일정한 법도를 세워 사람끼리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을 공평하게 처리하게 하셨으니, 그것이 바로 "재판법(시민법)"이라는 것이다. 재판법에는 크게 상해배상법과 손해배상법, 약자보호법 등이 있다. 그런데 이 법을 집행하는 데에는 일정한 내면의 규칙들이 있다. 첫째로, 공평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억울한 일이 발생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셋째로, 뻔뻔스러운 자는 응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넷째로, 사회적인 약자라도 항상 보호받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송사의 일들을 처리하게 하셨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019-01-30 수요기도회
제목: 출애굽기강해(22) 재판법(2) 상해보상 및 손해배상에 관한 규례(출21:18~22:17)
https://youtu.be/Q9rN5rUSq2Q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지켜야할 규범으로서 거룩한 율법을 주셨다. 이러한 율법에는 크게 도덕법(십계명)과 의식법 그리고 재판법(시민법)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재판법"이라는 도덕법인 십계명을 지키면서 혹은 십계명을 어길 때에 나타날 수 있는 분쟁사건에 대한 판결법을 가리킨다. 그중에서 출21:18~33에서는 "상해배상법"을 말씀하고 있으며, 출22:1~17에서는 "손해배상법"을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출22:18~28에서는 이스라엘의 소수 약자들에 대하여 배려하는 법이 나오고, 마지막으로 출22:28~31에서는 종교생활을 위한 선한 규례가 나온다. 그중에서 오늘은 상해상법과 손해배상법, 소수약자보호법, 종교생활의 질서법이 나온다. 오늘은 이것들 중에서 율법을 주신 목적과 그것에 따른 규례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상해배상법이란 어떤 것인가?

  출20장에 나오는 십계명(출20:11~17)이 율법을 이루는 근간의 법이라고 한다면, 이 법에 근거하여 일상생활에 발생하는 사건들에 관해 옳고 그름을 심판하는 기준이 바로 "재판법"(혹은 시민법)이다. 이러한 재판법은 출21장부터 23장에 걸쳐 나온다. 그중에서 맨 처음 나오는 것이 바로 "상해보상법"(출21:18~36)이다. 이것은 사람이나 짐승에게 해를 끼친 것에 대해 어떻게 배상하는 지에 관한 법규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첫번째로 사람끼리 상해를 입힌 경우를 말씀하셨다(출21:18~27). 먼저, 사람이 서로 싸우다 상대방에 신체에 상해를 입힌 경우에는 살아있느냐 죽었느냐에 따라 차등의 판결을 내리라고 하셨다. 죽지 않고 살아있을 때에는 손해배상금과 아울러 치료를 지불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죽으면 큰 일이다. 죽도록 쳤다는 것은 살해의도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아 사형에 처하도록 하셨다(출21:12). 그런데 똑같이 사람을 쳤는데도 자신의 종이었을 경우는 다르다. 종이 죽지 않고 며칠이라도 살아있으면 주인에게 벌을 면해주라고 하셨다. 이는 주인의 재산상으로 손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당시 종은 주인의 재산의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싸우다가 임신한 여인의 아이를 낙태케 했을 경우는 임신한 여인의 남편의 청구대로 보상하되 재판장의 판결에 따라 벌을 내라고 하셨다. 그러나 낙태 외에 다른 해를 입게 되었으면 동해보복법으로 처벌하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눈은 눈으로 이[빨]은 이[빨]로"라고 상해배상법을 말씀하셨을까?(출21:23~25) 상대방이 나를 해하려 하는대로 그렇게 똑같이 보복하라고 그렇게 명령하신 것인가? 그것은 그만큼 상대방의 인격과 목숨을 귀히 여기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사람들은 하나님의 의도를 모르고 보복법으로 생각했다. 그러자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 그러한 문제는 보복의 차원으로 해결하지 말고, 더 큰 사랑으로 안으라고 하셨다. 악한 자가 오른뺨을 치면 왼편도 돌려대며, 고발하는 자가 속옷을 가지고자 하면 겉옷까지 가지게 하며,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면 십리를 동행해주라고 말씀하셨다(마5:38~42).

  이제 두번째로는 소가 들이받아 사람을 상하게 하거나 죽게 했을 경우다(출21:28~32). 이때에는 소의 주인에 대한 책임도 같이 물게 하였다. 즉 주인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데 소가 사람들을 들이받아 죽이면 소만 죽이면 되었다. 하지만 소가 사람을 들이받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방치했다고 사람을 죽이며, 소도 죽이고 소 주인도 죽이라고 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속죄금만 내는 경우도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어린아이라고 할지라도 동일하게 처리하라고 하였다. 한편 소가 종을 들이받아 죽일 경우에는 당시 종은 재산(물건)이었기에, 소는 죽이고 소 주인은 종의 주인에게 은 30세겔을 배상하라고 하였다. 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가축이지만 관리소홀로 인한 책임을 주인도 져야 한다는 판결이다.

  세번째로는 타인의 짐승이나 짐승끼리 해를 입한 경우다(출21:33~36). 타인의 짐승이 내가 파놓은 웅덩이에 빠져서 죽으면 죽은 짐승은 내가 갖고 살아있는 짐승으로 배상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두 소가 싸워서 하나의 소가 죽으면 죽은 소와 살아있는 소를 반분하라고 하였다. 하지만 한쪽 소가 받는 버릇이 있는데도 방치했다면, 죽은 소는 자신이 갖고 상대방에게는 산 소를 주라고 했다.

 

3. 손해배상법이란 어떤 것인가?

  "손해배상법"은 남의 것을 도둑질하거나 위탁받았으나 손실을 입혔을 경우와 남의 집의 처녀를 범했을 경우에 대한 배상판결법을 가리킨다(출22:1~17). 먼저 첫번째로, 이웃의 재물을 도둑질했을 경우다(출22:1~4). 이때는 도둑질한 흔적을 없앤 경우도 도독질한 물건이 남아있는 경우에 따라 처벌이 다르다. 도둑질한 소나 양을 잡어먹었거나 팔아치워버렸는데 나중에 이것이 발각되었을 때에는 소는 5배를 갚으라고 하셨고, 양은 4배를 갚으라고 하셨다. 그러나 자기집에 도둑질한 물건이 있을 경우네는 2배를 물리라고 하셨다. 이는 큰 죄를 지을수록 벌을 크게 받게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도둑질에 대해 우발적으로 일어났으면 벌을 적게 하라는 것이다. 이는 같은 도둑질이라고 우발성과 의도성에 따라 처벌을 달리하라고 하신 것이다.

  두번째로, 자신의 가축에 대한 관리소홀과 화재로 인하여 이웃의 재산에 피해를 준 경우다(출22:5~6). 내 짐승이 남의 밭의 농작물을 먹게 한 경우에는 자기밭의 제일 좋은 것으로 배상하라고 하셨고, 밭을 태우다가 소홀로 남의 밭을 태울 경우에는 반드시 불놓은 자는 반드시 배상하라고 하셨다.

  세번째로, 위탁받은 이웃의 물건에 손해를 입힌 경우다(출22:7~13). 위탁받은 물건을 본의아니게 도둑맞았을 경우에는 그 사실을 재판장에게 아뢰고 사실이면 벌을 면제받을 수 있었다. 혹 도둑이 잡히면 도둑이 2배를 물어주면 되었다. 혹 위탁받은 짐승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경우에는 위탁받은 자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무고함을 맹세하면 벌을 면제받게 하였다. 하지만 위탁받은 물건이 탐이 나서 그것을 훔쳐놓고 오리발을 내밀 경우에는 재판장의 판단에 따라 배상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위탁받은 짐승이 맹수에 의해 찢긴 경우에는 그 증거가 있으면 배상의 책임을 면하게 해 주었다.

  네번째로, 빌려 온 물건에 피해를 준 경우다(출22:14~15).빌려온 것이 그 주인이 없을 때에 상하거나 죽으면 반드시 배상하라고 했으나, 사고발생시 주인이 그곳에 함께 있었으면 벌을 면제하라고 했다. 빌린 자가 차용료를 지불한 경우에는 빌려온 것이 상하거나 죽어도 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다섯번째로, 처녀를 범한 자에 대한 경우다(출22:16~17). 정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범했을 때에는 남자(총각)가 반드시 처녀의 아버지에게 결혼지참금을 주고 그 여자를 반드시 자기의 아내로 삼으라고 하였으며, 만일 이때 처녀의 아버지가 자기의 딸을 주기 싫어하면 결혼지참금에 해당하는 돈만 배상하라고 하셨다.

 

4. 종교적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하라고 했는가?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종교적 범죄자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죽여 그 벌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고 하셨다(출22:18~20). 첫째로, 무당은 반드시 죽여 없애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무당을 용납하게 되면 귀신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짐승과 교접하는 자(수간하는 자)도 반드시 죽이라고 하셨다. 이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사람이 스스로를 짐승과 같이 만드는 행위로서 매우 부정한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셋째로, 우상숭배자도 반드시 죽이라고 하셨다. 왜나하면 우상은 없는 신을 일부러 만들어서 섬기는 행위인데 그러면 그 물건에 귀신이 달라붙게 되어 사람이 귀신의 종이 되기 때문이다.

 

5. 사회의 약자들은 어떻게 보호하라고 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약자들에게 관심이 많으시다. 특히 이방 나그네(객)와 과부와 고아들이 그것이다(출22:21~27).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이방나그네라고 하여서 그들을 절대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과거에 애굽에 있을 때에 나그네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거의 교훈과 시절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잊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라는 것이다. 둘째로, 과부와 고아는 남편을 잃거나 부모를 잃은 아이들로서, 사회적인 약자들인데, 하나님은 이런 자들은 절대 해롭게 하지 말라고 했다. 만약 이들이 부르짖는다면 반드시 그 기도를 듣고 그 기도대로 행하시겠다고 했다. 그래서 전쟁으로 죽게하고 자기의 아내는 과부가 되게 하고 자기의 자식들은 고아가 되게 하신다고 하셨다. 그만큼 과어 여자와 아이는 사회적으로 약자였던 것이다. 셋째로 돈을 빌려간 자에게 채권자같이 독촉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라고 했다. 특히 겉옷을 담보를 맡았으면 저녁에는 꼭 돌려주라고 했다. 그것은 밤에 그들의 이불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회적인 약자들에 대해서는 긍휼을 베풀라고 하셨다.

 

6. 종교생활의 질서를 위해서는 어떻게 하라고 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종교생활을 위해서 세운 질서를 지키고, 하나님께 대한 우선순위를 지키며, 부정한 고기는 먹지 말라고 하셨다(출22:28~31). 첫째로, 재판장과 지도자를 모독하거거나 저주하지 말라고 하셨다. 성도들은 종교지도자들이나 정치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나라를 정의롭고 평화롭게 다스릴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로, 밭의 소산이나 나무의 열매 그리고 소와 양의 첫열매를 주께 먼저 드리라고 하셨다. 성도의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둘 때에 복이 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도 맏아들은 바치라고 했다. 하지만 나중에 맏아들은 레위인으로 대신 바치라고 하셨다. 이는 사람도 하나님의 소유인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넷째로, 죽은 짐승의 고기는 먹지 말고 개에게 던지라고 하셨다. 이는 부정한 것과 접촉하지 말라는 것이자, 엉겨붙은 피를 먹지 말라는 것이다.

 

7. 나오며

  그렇다. 사람이 서로 함께 어울어져 살다보면 여러가지 문제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람 내면에는 여러 가지 욕구들, 예를 들어 소유욕(탐심), 쾌락욕(성욕) 등이 있어 그것이 계속해서 올라온다. 그리고 사고를 쳤을 때에는 그 일로부터 도망치고자 말을 둘러대거나 거짓말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자기만 피해를 입으면 괜찮겠지만, 남에게 피해와 재산상의 손실을 입혔을 때에는 사과만 하고 그냥 끝낼 수는 없는 것이다. 재산상으로 손해를 입힌 것에 대한 응당의 처벌을 받고 배상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판법에는 재산상으로 남에게 해를 입혔을 경우 어떻게 배상할 것인가에 대한 다방면의 기준들이 제시되어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첫째, 판결이 반드시 공평과 정의롭게 행하여 어떤 사람도 억울함이 없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자기가 행한 잘못한 일에 대해서 뻔뻔스럽게 응하는 자는 반드시 응당의 처벌을 받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회개자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은 그 누구라도 용서받고 살 수 있는 길을 찾아가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1월 30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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