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을 오늘날 모든 기독교인들도 여전히 지켜야 하는가? 그리고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밤에 제자들과 체결하신 '새 언약'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오늘날 유월절과 새 언약을 왜곡시켜 사람을 미혹하고 있는 이단들은 이 단어들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고 있는가? 그들은 무엇을 잘못 알고 있으며, 잘못 믿고 있는가? 그들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약점은 무엇이며, 오늘도 우리들은 어떤 의미로서 유월절과 새 언약을 준수해야 하는가?

2021-11-21(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이단들이 말하는 유월절과 새언약, 무엇이 문제인가?(눅22:14~23)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at9PzWkvMRU [혹은 https://tv.naver.com/v/23740239 ]

 

1. 들어가며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새 언약'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육신을 가지신 예수께서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전날 밤,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후 그분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절기를 지키면서 저녁식사를 하셨다. 그리고 유월절 식사를 마치신 후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찬식을 제정하셨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서 그것을 당신의 몸과 피라고 하시면서 그들과 '새 언약'을 체결하셨다. 그때 예수께서는 무교병의  떡을 가지고서 그것은 그들을 위하여 주는 당신의 몸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잔을 들고서는 그것은 그들의 속죄를 위하여 흘리는 바 당신의 피로서, '새 언약'을 체결하신다고 하셨다. 이 언약은 구약시대에 세우셨던 '옛 언약'과는 비교할 수 없기에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천오백년동안 지속되어온 유월절을 끝내셨다. 그리고 주님의 몸과 피로서 당신을 믿고 따라오는 제자들과 새 언약을 체결하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신종 이단들은 유월절과 새 언약의 개념을 예수님의 말씀과는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다르게 적용하고 있다. 그럼 그들은 대체 유월절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으며, 새 언약을 어떤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것인가? 특별히 오늘은 '성찬주일'을 맞이하여 이단들이 사용하고 있는 '새 언약'과 '유월절'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그들이 얼마나 성경을 왜곡시키어 사용하고 있는지, 왜 그들은 그렇게 중요한 성찬식을 행하지 못하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하나님의 교회(안상홍증인회)는 왜 오늘날도 여전히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3. 하나님의 교회, 무엇이 문제인가?

 

 

 

4. 신천지에서는 왜 이만희를 '새 언약의 사자'라고 말하는가?

 

 

 

5. 신천지, 무엇이 문제인가?

 

 

 

6. 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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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21일(주일)

정병진목사

 

오늘은 성찬주일을 맞이하여 왜 이단들이 성찬식을 행하지 않는지 그 이유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것을 함께 나누면서 우리는 성찬식이 갖고 있는 새 언약으로서의 놀라운 능력과 그것의 효능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보았다. 성찬식은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에 불과하지만 거기에만 그치지 않는 놀라운 능력이 들어 있다. 그것은 대체 무엇이며, 왜 그러한 증상이 발생하는가? 여기 그 해답이 있다.

2021-11-21(주일) 주일낮2부예배
제목: 왜 우리는 오늘도 계속해서 성찬식을 행하는가?(눅22:19~20)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hRAF9akRE1s [혹은 https://tv.naver.com/v/23695702 ]

 

1. 들어가며

  한국에서 자생한 토종 이단인 '신천지[증거장막성전]'와 '하나님의 교회[안상홍증인회]'에서는 성찬식을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특히 신천지는 성찬식이라는 자체가 아예 없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증인회에서도 역시 성찬식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성찬식을 하지 않는 대신 유월절을 지킨다. 유월절 식사는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개의 이단이 주장하는 대표적인 사상은 바로 자기들이야말로 '새 언약'을 지키는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새 언약'이라는 단어가 바로 예수님께서 성만찬 때에 약속하신 언약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 언약'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며, 이것은 예수님의 성만찬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교회의 성찬 주일을 맞이하여, 성찬식이 곧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알아보고, 새 언약은 어떻게 세워졌으며, 그 도구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새 언약을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과연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2. '새 언약'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새 언약'이라는 말은 구약성경에 보면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 가운데 처음 등장하는 단어다. 장차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체결하실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정말 예수께서 오셔서 자신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과 '새 언약'을 체결하셨다(눅22:20, 고전11:25). 

  그렇다면, 첫째, '언약'이라는 단어의 의미부터 알아보자. '언약'이라는 말은 구약성경에 사실 많이 나오는 단어다(164회).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베리트'라는 단어인데, 그 뜻은 '협정, 조약, 체결, 약속'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과 세운 협정들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노아와 세운 언약(무지개 언약)이 있고, 아브라함과 세운 언약(횃불 언약, 할례 언약)도 있으며, 이스라엘 백성과 세운 언약(유월절 언약, 시내산 언약)도 있다. 

  둘째, '새 언약'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옛 언약을 갱신하고 새롭게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옛 언약이 약하고 부족하고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기 때문에,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께서 당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과 다시 언약을 체결하시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왜 제자들과 세우는 언약을 가리켜 '새 언약'이라고 명명하신 것인가? 그것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제자들과 체결하시겠다는 뜻인가? 그건 아니다. 왜냐하면 '새 언약'이라는 단어에 사용된 '새(로운)'는 단어가, '이전에 없었으나 지금 새롭게 생겨난'이라는 뜻의 새로운('네오스')라는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존재했던 것보다는 더 훌륭한' 혹은 '이전에 이미 예표되어 있었으나 그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이라는 뜻의 새로운('카이노스')라는 단어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신약성경에서 '카이노스'의 '새로운'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용례를 살펴보면, 공관복음서에서는 '새 교훈, 새 포도주, 새 계명, 새 방언'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고, 사도 바울도 이 단어를 사용했으니, '새 사람, 새 피조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누가복음과 히브리서와 고린도전서에 보면, '새 언약'이라는 단어가 있으며, 요한계시록에 보면 거기에는 '새 이름, 새 노, 새 예루살렘,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새 언약을 체결하셨다고 하는 말은 이전에 없던 전대미문의 언약이 아니라, 구약시대에 이미 사용된 언약을 계승 발전시키고 갱신시켜,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한 언약을 체결하셨다는 것을 뜻한다. 

 

3. 옛 언약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이전에 하나님께서 체결하셨던 '옛 언약'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노아나 아브라함과 더불어 세운 언약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와 세운 언약을 가리킨다. 이러한 언약에는 출애굽기 12장에 나오는 '유월절 언약'이 있고(렘31:31~32), 출애굽기 19~24장에 나오는 '시내산 언약'이 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러한 언약을 체결하신 것인가?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께서 유월절 언약을 체결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속박에서 건져내어 구출하시고, 그들을 죽음의 재앙으로부터 건져내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당시 애굽 땅 전역에 장자 죽음의 재앙을 내릴 것인데, 이 재앙을 피하고 결국 애굽의 속박에서 탈출하려면 유월절 예식을 지키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1월 14일 해질 때에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좌우인방과 설주에 뿌렸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시내산 언약을 체결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알게 하려고 도덕적 계명들 그들에게 주시기 위함이었고, 그래서 죄를 범한 것을 깨우침을 받은 자로 하여금 속죄 제사법을 통하여 죄사함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옛 언약의 핵심은 유월절 양의 죽음과 속죄양의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옛 언약 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을 지켜야 했다. 그리고 속죄 제사를 드림으로서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었다. 

 

4. 왜 예수께서는 옛 언약을 끝내고 새 언약을 체결하시려고 하신 것인가?

  그렇지만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유월절은 거의 준수되지 않았다. 그러니 자신 조상들이 어떻게 애굽에서 구출되었는지를 그들은 곧 잊어버리게 되었다. 몇 명의 왕들(히스기야왕 요시야왕)과 포로 귀환 시대의 에스라 때에 유월절이 지켜지기도 했지만, 그때에 지켜지는 유월절은 피까지 바르는 유월절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장자 죽음의 재앙을 면제받기 위해 치러한 어린양의 값진 희생을 그들은 기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첫 번째 유월절을 제외하고 유월절은 오직 절기의 식사를 하는 것으로만 지켜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죽어가는 제물의 값진 희생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다른 장치를 고안하셨다. 그것이 바로 성막법에 나오는 속죄 제사다. 그러나 이것도 제사의 특성상 자신이 자기의 죄를 깨달아 드려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대부분은 나 몰라라 하는 경우도 많았고, 백성의 지도자들도 처음에는 죄없는 짐승의 죽음을 보고 슬퍼하고 아파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자 그러한 마음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예수님 시대에 이르러서는 유명무실화되어 거의 형식으로만 남아 있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더 이상 옛 언약 하에 있는 유대인들로부터 구원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아시고, 이제 자신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과 더불어 새 언약을 체결하게 되신 것이다. 예수께서 구약 언약을 갱신하여 새롭게 새 언약을 체결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분이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체결했던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요8:24~25, 28, 58).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제 구약의 유월절 언약이나 시내산 언약보다 더 강력한 언약을 세우려고 하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이제 참된 유월절 양으로 죽으시고(고전5:7), 참된 속죄 제물로 죽으셔서(요1:29), 유월절과 속죄 제사의 뜻을 이어받을 뿐만 아니라, 구약의 언약보다 더 강력한 혜택을 믿는 자들에게 베풀어 주시기 위함이었다. 

 

5. 예수님의 몸과 예수님의 피는 왜 구약시대 언약의 제물과 피보다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가?

  이제 우리는 왜 예수님께서 구약의 언약을 그대로 놔두어 그것을 수정하여 사용하지 않으시고 새 언약을 체결하실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찾아보도록 하자. 왜냐하면 '새 언약'이라는 말 속에 이미 그러한 하나님의 의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예수님께서 새 언약을 체결하실 때에 사용하신 제물 및 그 피가 이전에 구약시대에 사용했던 제물 및 그 피와 비교할 수 없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대체 무엇이 달라진 것인가?

  첫째, 제물이 달라졌다. 구약시대에는 흠없는 양과 소 같은 짐승이 유월절 양과 속죄 제물로서 사용하였다. 그런데 새 언약에 사용되는 제물은 그러한 짐승이 아니었다. 죄 없는 예수님의 몸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제물이 된 것이다. 그것도 사람의 몸만이 제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그 몸이 제물로 사용되신 것이다. 우리는 사실 요한복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요1:14). 그러므로 한 번의 죄에 한 번 사용되는 제물과 예수님의 몸은 그 효력에 있어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구약시대에 짐승의 제물은 하나의 죄에 한 번 바쳐진다면 그 제물은 두 번 사용할 수 없었다. 제물은 살아 있는 것으로만 사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제물의 피가 달라졌다. 구약시대 사용된 피는 다 짐승의 피였다. 그런데 짐승의 피는 계속해서 흘러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일정한 양이 있기 때문이다. 그 피를 다 쏟고 나면 짐승은 죽는다. 또한 한 번 흘려진 피는 그때 그 제사에 한 번 사용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짐승의 피를 두 번 다시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는 달랐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분이었기에 그 피 또한 이 세상의 물질세계에 제한받는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죽었지만 자신 안에 생명이 있어서 부활하실 수 있었듯이, 예수님의 피 또한 한 번 사용하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분의 몸과 피는 이 물질세계에 제한받지 않으시고 항상 살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몸은 지난 2천 년 전에 골고다 언덕에서 제물로 한 번 드려졌지만 두 번 다시 드려질 필요가 없다. 그분은 항상 살아 있어서, 그분의 제물되심은 계속 유효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분의 피 흘림은 한 번 흘리신 것이지만 계속해서 살아 있는 피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분을 의지하여 나아가기만 하면 그분의 피가 계속해서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하실 수가 있는 것이다. 

  셋째,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달라졌다. 왜냐하면 제물을 드릴 수 있는 사람의 제한이 철폐되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는 언약의 백성들 곧 오직 할례받은 히브리 유대 민족만이 유월절을 지키고 속죄 제사를 드릴 수가 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오셔서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제한을 철폐하셨다.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예수께로 나오면 받아 주시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우리 안에 들어 있는 양 뿐만 아니라 우리 밖에 있는 양들을 위해서도 자신의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멀리 있던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가까워졌다고 언급하였다(엡2:17~18).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제물과 제물의 피의 효능이 탁월하게 향상된 것이다. 사실 구약시대에는 제물을 드리는 사람도 할례받은 민족에게만 제한되어 있었고, 제물도 반복해서 쓸 수 없었으며, 피 또한 새로운 짐승의 피가 계속해서 흘려져야 했지만, 예수님의 몸과 예수님의 피는 한 번 드린 것이었으나 영원히 유효한 특별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분이 이 물질세계를 초월해 계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피 흘림은 하나님께서 피를 흘리신 것이 된다. 또한 구약시대에는 제사를 드리려면 꼭 성전에 나가서 제물을 드려야 했으나, 예수님 때부터는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아도 어디서든지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리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는 시대가 되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러므로 예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유월절 양과 속죄 제물로 죽으신 이후부터 모든 믿는 이들은 옛 언약보다 더 강력한 새 언약 하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6. 왜 오늘날 예수믿는 사람들은 성찬식을 행하는가?

  왜 오늘날 예수믿는 사람은 성찬식을 행하는가? 그것은 새 언약을 우리가 잊지 않기 위해서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몸과 하나님의 피로 세워 놓으신 새 언약을 우리와 맺으음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지금도 성찬식을 행하는 것이다. 그분이 참 유월절 양과 참 속죄양이 되시어 죽으셨기에 우리는 죽음의 재앙을 면할 수 있게 되었음을 감사하고 성찬식을 행하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을 통하여 악한 사탄 마귀에게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었기 때문에 성찬식을 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해 주신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더라도 즉시 회개하기만 하면 우리의 죄를 속죄하여 더 이상 죄의 형벌을 받지 않아도 되게 해 주셨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성육신의 값진 희생을 높이지 아니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행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 오늘도 성찬식을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새 언약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이렇게 성찬식을 행하는 것은 이것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예수님께서 당신이 오시는 그날까지 행할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행하는 것도 있다(눅22:19). 하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이미 예수께서 2천 년 전에 이루어 놓으신, 엄청나고 위대한 희생 언약을 계속해서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하고 그것을 기념하며 또한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하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성찬식을 행하는 것이다(고전11:26). 

 

7. 왜 이단들은 성찬식을 행하지 않는가?

  이제는 왜 이단들이 성찬식을 행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말할 때가 되었다. 이단들은 겉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실은 이단의 교주가 재림 예수인 것을 믿게 하기 위해서 성경을 사용하고 예수님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진짜로 성찬식을 행하게 되어버리면, 그 예식을 통하여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일이 발생하게 될 것이고, 그분의 피로서 자신의 죄가 용서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이단에서는 결단코 성찬식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성찬식은 모름지기 죄사함은 오직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예수님과 그분의 피를 통해서만 일어난다는 것을 알려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단들은 성찬식을 통해서는 자기들의 뜻을 이룰 수가 없기에 성찬식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짜로 성찬식을 행하게 된다고 하면, 그들은 자신에게 더 엄청난 큰 사태가 벌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성찬식을 행하지 않는다. 이제 고린도전서 11:27~30을 읽어 보라. 만약 누군가 성만찬을 합당하지 않게 행하게 되면 성만찬을 행한 사람들이 약하게 되고 병들게 되고 죽는 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나와 있다. 그러므로 어찌 이단들이 자기의 죽음을 각오하고서 성찬식을 행하려고 하겠는가?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신천지는 결단코 성찬식을 행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에서도 유월절을 지키자고만 할 뿐, 성찬식을 행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8. 나오며

  루터교를 제외한 모든 개신교에서는 사실 성찬식을 많이 행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반드시 행하는 것이 이 성찬식이다. 성찬식에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이유가 들어 있고 영원한 속죄를 가져다 주는 혜택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의 성육신과 죽음을 기억하게 하고 그것을 효과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은 오늘도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이다. 오직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사람되시어 죽으신 하나님을 우리는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 우리는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때에 예수께서도 성령을 통하여 당신이 2천 년 전에 골고다에서 행하신 일이 우리의 속죄와 구원을 위한 것이었음을 더욱 깨닫게 하신다. 그도 그럴 것이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5장에서 이 땅에 예수께서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분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증언하는 것이 셋이 있다고 말하였다. 그것은 '성령'과 '물'과 '피'라고 하였다(요일5:5~8). 이것들 중에서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대신하여 오신 영이기 때문에 그분은 예수께서 하신 일을 믿도록 도와주신다. 그리고 그분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사시다가 죽기 전에 다 쏟아 놓으신 '물'과 '피'도 역시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오셔서 피 흘려 죽으셨음을 증거해 주고 있다(요19:34). 왜냐하면 그분의 육신이야 그분이 죽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실 때에 하늘로 가지고 가지만, 그분이 이 땅 위에 남겨두신 피와 물은 여전히 이 세상 어딘가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지금 우리들은 엄청나게 축복받은 세대다. 민족의 제한이 철폐되고 어디서든지 회개하만 하면 속죄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우리는 나를 위해 이 모든 일을 행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더욱 돌리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분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게 되도록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무슨 죄를 지었더라도 꼭 회개하여서 속죄함을 받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분이 들어오기를 그렇게 간절히 바라시는 천국에 꼭 들어가기를 바란다. 그것이 그분에게 영광돌리는 가장 귀하고 가장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2021년 11월 21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왜 우리는 예수께서 죽으시고 또한 부활하신 날은 잘못 알게 되었는가?(막16:1~9)_2020-04-14(화)

https://youtu.be/x4kEEVp3boQ [혹은 https://tv.naver.com/v/13350722 ]


1.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왜 중요한가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복음의 핵심 중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께서 죽으셨는가 하는 것은 인류의 죄사함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요소가 되기 때문이며, 왜 그분이 다시 살아나게 되셨는가 하는 것은 그분이 인류를 위한 속죄사역이 진짜였으며 그것을 하나님께서 받아주셨는가를 알려주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고 한다면 그분의 죽음은 자신의 죄로 인한 죽음인지 아니면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죽음이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고로 복음이라고 하면 나중에는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고전15:1~4).


2. 예수 그리스도는 언제 돌아가셨으며, 언제 다시 살아나셨나요?

  예수께서는 언제 돌아가셨으며, 언제 다시 살아나셨나요? 보통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금요일 오후3시에 돌아가셨으며, 일요일 새벽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알고 있을 것입니다. 혹 그렇게 알고 있다고 하여 그 사람의 구원이 흔들리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예수님의 부활하심은 역사적인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의 주가 되시는 예수께서 언제 죽으셨고 언제 부활하셨는지를 정확히 안다는 것을 우리가 갖고 있는 믿음에 한층 더 신뢰를 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왕이면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바, 사실대로 믿고 따라간다면 더욱 더 신앙을 견고하게 할 수 있어서 우리자신에게 매우 유익할 것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정확히 언제 돌아가셨나요?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정확히 언제 돌아가셨을까요?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유월절 양잡는 날에 돌아가셨다고 말입니다(막14:12). 그러면 그날은 언제입니까? 그날은 유대력으로 1월 14일(수) 오후3시입니다. 그런데 그 날짜를 오늘날의 대부분의 성도들은 1월 13일 금요일 오후3시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지금은 과학과 천문학의 발달로 인하여 예수께서 돌아가시던 해가 언제였는지 알 수 있으며, 무슨 요일에 예수께서 돌아가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시던 해(A.D.4030년)의 유월절은 1월 14일(수)이었습니다. 태양력으로는 4월 3일(수)이었습니다. 예수께서서는 유월절 양이 되시어(고전5:7), 유월절의 예언을 따라(출12:6), 정확히 유월절 당일이었던 1월 14일(수) 오후3시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실제의 날.jpg

[이 자료는 성경과학연구소(김명현박사)의 강의자료집에서 가져왔음을 밝힙니다]

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정확히 언제 살아나셨나요?

  그럼, 예수께서는 언제 살아나셨을까요? 보통은 일요일 새벽에 살아나셨다고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럴 개연성이 있는 성경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막16:9). 그런데 막16:9의 말씀을 헬라어원문으로 보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번역문만 읽으신 분들은 대체로 예수께서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셨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잘못된 번역입니다. 예수께서는 죽으셨다가 정확히 삼일삼야 후에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삼일삼야라고 함은 예수께서 죽으신지 정확히 3일 밤들과 3일 낮들이 지난 후에 살아나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마12:39~40에서, 예수께서 직접 그렇게 말씀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즉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마12:39~40)"이라고 언급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유대력으로 1월 14일(수)인 유월절 당일 곧 유월절 양을 잡는 날 해질녘인 오후3시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것이 맞다면, 3일밤을 지내고 또한 3일낮을 지낸 후, 예수께서는 토요일(17일) 오후3시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다만, 예수께서 이미 부활해 계신 이후, 일요일(18일)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비로소 자신을 나타내 보이셨다는 것은 맞는 표현입니다(막16:9헬라어원문).


5.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살아나신 날을 잘못 알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문제는 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신 날을 오늘날 우리가 잘못 알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예수께서 돌아가시던 주간에 두 번의 안식일이 있었다는 것을 계산하지 못했던 것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돌아가시던 주간에는 무교절의 안식일(무교절의 첫날)과 주간의 안식일이 하루 걸러서 두 번이나 있었던 주간이었습니다(이것은 아래에 그림으로 첨부합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안식일이라는 글자가 나오면 예전에는 무조건 그것을 주간의 안식일(토요일 안식일)로만 계산을 해버렸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돌아가시던 날은 유월절(1월 14일)이었고, 그나른 수요일이었으며, 그 다음날(목요일)이 바로 무교절의 첫날로서, 절기의 안식일이었던 것입니다(민28:17~18). 참고로, 이스라엘의 안식일에는 2가지가 있으며, 매주간의 일곱째날은 주간의 안식일이라고 부르며, 명절 안식일도 있는데, 그것은 총 7번 있습니다. 그날들은 무교절의 첫날(1.15)과 마지막날(1.21), 칠칠절(3.5일경), 나팔절(7.1), 속죄일(7.10), 초막절의 첫날(7.15)과 마지막날(7.22)입니다(민28~29장). 그러니까 예수께서 돌아가시던 날은 유월절날로서 무교절 명절의 예비일이었으며, 무교절의 첫날은 바로 명절의 안식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평일로서 16일(금)이 있었습니다. 그날은 주간의 안식일(17일) 하루 전날로서, 주간의 안식일의 예비일인데, 이 날에 막달라 마리아가 이미 예수께서 돌아가신 것을 알고서 향품을 사다 두었습니다(막16:1). 그리고 주간의 안식일(17일)을 계명을 따라 쉰 후(눅24:1), [주간의] 안식일을 다음날(18일) 새벽에 무덤을 찾아온 것입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간의 안식일과 명절(절기)의 안식일을 구별하기 위해서, 명절의 안식일은 큰 날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요19:31, 7:37). 고로 막16:2에 나오는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는 말은 헬라어원문을 보면, "안식일들[이 지난 후] 첫날 몹시 이른 아침에 해가 떠오른 후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주간에 무교절의 안식일도 있었고, 주간의 안식일도 있었기 때문에 복수형을 쓴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을 주일 새벽으로 착각하게 된 둘째 이유는 막16:9의 말씀을 잘못 번역한 데서 나온 오류입니다. 왜냐하면 막16:9에 대한 개역성경의 말씀은 "예수께서 안식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에...막달라 마리에게 먼저 보이시니"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헬라어원문은 "그분이 일어나신 후에, 안식일[이 지난 후]의 첫째가는 날의 새벽에...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나타나게 되셨다"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빨리 이러한 오류들이 속히 교정되어서,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날에 대한 정확한 실제를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2020년 04월 14일(화)

정병진목사

사람은 어떻게 구원받는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가? 사실 사람의 구원의 여정은 구약시대 이스라엘민족들이 겪었던 출애굽 여정에 고스란히 다 담겨있다. 이스라엘 민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들어가려면, 2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유월절 절기를 지키는 것이다. 이는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유월절 양으로 믿되, 회개하여 그분의 피로 과거의 죄를 다 사함받으며, 그분을 고기로 섭취하여 생명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무교절의 절기를 지키는 것이다. 유월절의 절기를 지켰다면, 이어지는 7일간(완전수)은 무교절을 지켜야 한다. 이때는 집안에 누룩이 있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런 자는 이스라엘로부터 끊어지게 될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유월절을 지키게 된다. 그러나 이 다음이 중요하다. 자기의 내면에 숨어있는 묵은 누룩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요, 누룩의 가르침들을 수용해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 매주 구원론에 관한 잘못된 가르침을 제거해야 하고, 외식된 삶을 제거해 나가야 한다. 이것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초태생을 거룩히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이것은 당시에 레위인의 성별로 바뀌었고, 오늘날은 주의 종들의 성별로 바뀌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장자와 짐승의 초태생 대신 하나님께 드려진 자들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이러한 사람들을 고맙게 여겨야 한다. 이제 유월절의 규례와 무교절의 규례 그리고 초태생의 구별에 관한 영적인 진리를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자.

2018-11-07 수요기도회
제목: 출애굽기강해(10) 무교절의 규례와 출애굽여정의 시작(무교병과 할례와 초태생 구별의 영적인 의미)(출12:15~13:16)
https://youtu.be/8QX16q8rQRE


1. 들어가며

  이스라엘민족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최대의 사건은 뭐니뭐니해도 "출애굽"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사건으로 이스라엘이 다시 탄생했다고 보아도 될만큼 어마어마하게 큰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출애굽 사건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드러낸 사건이요, 하나님께서 구원자이심을 드러낸 커다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신약의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자로서의 이름인데, 그 뜻은 "여호와가 구원하신다" 혹은 "여호와는 구원자이시다"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민족에게 있어서 출애굽의 사건은 오늘날 구원자이신 하나님(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리고 출애굽의 사건 직후에 주어진 유월절양을 먹는 규례와 무교절의 규례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그리고 장자 및 초태생 죽음 후에 주어진 장자 및 초태생의 구별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시려 하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유월절과 무교절 그리고 초태생의 구별에 관한 말씀을 통하여,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고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유월절에 있어서 어린양의 피 이상으로 양고기에 대한 말씀을 배우게 될 것이며, 무교절에 반드시 제거되지 않으면 안 되는 누룩의 교훈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초태생 구별에 나타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요구하는 사항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다.

 

2. 유월절 양으로 오신 예수님

  출애굽기는 토라(율법서)의 한 권으로서 메시야에 대한 상징으로 가득차 있는 책이다. 특히 출애굽기에서는 그분이 유월절 양으로 처음 묘사된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린 만나와 반석에서 솟아난 생수 그리고 성막을 통해서 장차 오실 메시야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풍성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그중에서 출12~13장에 나오는 유월절양은 무엇을 예표하는 것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장차 피흘려 죽으시어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고, 양고기를 먹게함으로 자신의 생명을 나눠주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출12~13장에서는 메시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어떤 말씀들을 우리에게 들려주는가?
  첫째, 장차 오실 메시야는 흠없고 일년된 어린양이자 수컷으로 예표되어 있다(출12:5). 그렇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흠없는 양 곧 죄없는 어린양으로 오셨다. 이것을 위해 위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리셨다. 그리고 아들로 오셨다(사9:6, 7:14, 창3:15). 둘째, 어린양은 1월 10일에 취해져서 4일동안 검사를 받은 후에 14일날 해질녁(오후3시)에 죽는다. 그렇다. 예수께서도 일요일에 예루살렘 입성하여 4일동안 종교지도자들로부터 검사를 받으셨다. 첫째는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로부터 검사를 받으셨다(마21:23~27). 둘째는,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로부터 검사를 받으셨다(마22:15~22). 셋째는 부활이 없다고 하는 사두개인들로부터 검사를 받으셨다(마22:23~33). 넷째는 마지막으로 바리새인들로부터 검사를 받으셨다(마22:34~46). 그러나 단 한 그룹에서도 예수님의 잘못이나 허물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들로부터 흠없다고 인정을 받으신 것이다. 그리고 1월 14일 해질녁인 오후3시에 돌아가셨다. 셋째, 어린양은 2가지 역할을 감당했으니, 하나는 어린양의 피가 이스라엘사람들의 집의 좌우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짐으로 죽음의 천사가 그의 집 사람들을 치지 않고 넘어가게 했다. 그리고 또하나는 어린양의 고기를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이 구워서 먹음으로 출애굽할 힘을 얻게 해 주었다. 다시 말해 어린양은 속죄의 피와 생명공급이라는 2가지 역할을 감당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도 이 땅에 오시어 피흘려 돌아가심으로 인류의 속죄를 이루셨고, 자신의 몸을 내어주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해 주셨다. 그러므로 오늘날 믿는 이들은 회개를 통해 예수님의 피로 자신의 죄를 용서받게 되며, 그분을 믿을 때에 생명의 영이신 성령을 받아 아버지의 영원한 생명을 분배받는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우리의 유월절양이신 예수께서 희생되셨음을 언급하고 있으며(고전5:7), 사도요한은 예수께서 세례요한의 안수를 통하여 세상 죄라 전가받아 세상죄를 없이하는 어린양이 되셨음을 분명하게 언급하였다(요1:29). 그렇다. 예수께서는 구약시대 속죄제사의 경우처럼 인류의 모든 죄를 인류의 대표자인 세례요한의 안수를 통해 넘겨받으셨다. 그러자 그 다음날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보고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다. 그제만 해도 그는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아니었다. 하지만 세례요한의 안수를 통해서 세상죄를 전가받은 예수께서는 세상 죄를 없이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셨고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에서 내놓으심으로 인류의 죄값을 치르게 되신다.

 

3. 무교절은 무슨 절기며, 무교병은 무엇을 의미하고, 이때 절대 자기 집안에 있게 해서는 안 될 "누룩"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유월절양은 장차 오실 예수께서 속죄의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값을 치를 것과 양고기를 제공해주심으로 그분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생명을 얻을 것임을 알려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유월절의 절기를 지키는 것만으로 끝낼 것을 주문하지 않으셨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다음날부터 7일동안(1월 15일 ~21일) 무교절을 지킬 것을 명령하셨기 때문이다(출12:15~18).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유월절을 지키는 것만으로 절기를 끝내라고 말씀하지 아니 하시고, 이어서 무교절의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일까? 그것은 오늘날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 자들이 그 다음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단서다. 왜냐하면 유월절을 지킨 자가 무교절 기간에 힘써야 할 것이 누룩이 절대 집 안에서 발견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출12:19).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하루와 무교절 7일동안 누룩이 들어가지 않는 고낭의 떡(무교병)을 먹어야 했다. 그런데 이때에는 누룩없는 빵만을 먹어야 했던 것이 아니라 집안에서 아예 누룩을 제거했어야 했다. 특히 여기서 "7"이라는 숫자는 완전수를 가리키는 것으로,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을 받고 생명을 얻었으면 그날부터 자신의 목숨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누룩을 자기가 속한 영역으로부터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영적으로 볼 때, "유월절 양"은 우리의 속죄와 생명공급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메시야의 예표다. 그리고 7일동안 이어지는 무교절에는 누룩이 들어 있지 빵인데, 이는 누룩의 신속한 부패성을 지적한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음식에 누룩이 들어감으로 십시간에 그 음식이 부패해져감을 지적한 것이다. 결국 무교절 때에 무교병을 먹으라고 하심은 사람을 죄로 오염시키고 더럽히는 그 어떤 가르침이나 외식을 허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적은 누룩일지라도 그것은 온 덩이를 부풀게 하는 만큼(마13:33, 갈5:9, 고전5:6), 무교절의 기간에는 절대 자기 집 안에 누룩을 보이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기간 "7일"}이라고 함은 "7"이라는 숫자가 이 땅에서의 완전수인만큼 이 땅에 사는 모든 날들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유월절 양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고 유월절의 절기를 지키고 이어서 일평생을 누룩을 제거하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사실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도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여러번 당부하셨다. 이때 누룩은 빵을 부풀게 하는 물질적인 누룩이 아니라, 사람을 죄와 외식으로 오염시키고 부패시키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교훈(가르침)과 외식을 주의하라는 말씀이었다(마16:6,11~12, 눅12:1).

 

4. 유월절과 무교절의 규례가 가르치고 있는 구원관은 어떤 것인가?

  그러므로 유월절과 무교절의 규례를 살펴보면, 사람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2개의 절기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하나는 유월절을 지켜야 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무교절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유월절 절기가 양의 피를 바르는 것과 양의 고기를 먹는 것이 핵심 골자라면, 무교절의 절기는 자기 집 안에서 누룩을 제거하여 누룩이 결코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핵심골자다. 왜 그런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약 집 안에 누룩이 보이게 하는 자는 이스라엘로부터 끊쳐질 것이라고 경고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끊쳐진다"는 말은 이스라엘공동체로부터 추방된다는 말이 될 수도 있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고로, 만약 무교절의 기간동안에 누룩을 제거하지 못한 자는 결국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공동체로부터 이탈하여 지옥의 멸망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 사람이 유월절양을 믿는 것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이어지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자기의 내부에 여전히 남아있는 누룩을 날마다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이란 누룩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유월절양이신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는 이들로 가득하다.

 

5. 유월절을 지킬 때 양고기를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유월절 규례 중에서 우리가 특별히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유월절양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대체 누군가 하는 것이다. 첫번째 유월절은 B.C.1446년 1월 14일에 있었다. 이때는 누구라도 유월절양의 피를 바른 집 안에 있기만 하면 그는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가 있었다. 거기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닌 자들도 있을 수 있었다. 곧 셈족계열의 사람들과 이집트인도 있었다면 그들은 그날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그들이 이방인이었다고 하더라고 그날에 그들은 죽임당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해부터 지켜지는 유월절 절기에는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이나 거류민(나그네) 그리고 품꾼들은 유월절양을 먹을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출13:43~45). 하나님의 언약백성의 표시인 할례가 유월절양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분짓는 중요한 잣대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할례'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사실 "할례"는 아브라함과 관련이 깊다. 그는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지만, 자신이 가진 믿음을 인치는 표시로서 할례를 처음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84세되던 해에 비록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기는 하였지만(창15:6), 그는 죄된 본성으로부터 완전히 탈출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만 자기 아내 사라의 말을 듣고 첩을 들여 육적인 자식인 이스마엘을 낳게 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곁을 13년간 떠나셨고 아브라함의 99세에 다시 찾아오신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행할 것을 명령하셨다(창17:10~11). 아브라함더러 다시는 육체로 행하지 않겠노라고 자기의 살에 표시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할례는 일종의 회개의 도구다. 다시는 육체의 본성을 따라 행하지 않겠다는 표시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할례는 무할례시에 받았던 칭의를 확고히 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했고(롬4:11~12), 또한 육적인 몸을 벗는 행위라고도 말했다(골2:11). 그러므로 이미 예수께서 골고다에서 피흘려 죽으신 후에 태어나는 사람들은 유월절이 찾아오면 회개를 하면서 말씀을 섭취해야 하는 것이다. 당시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은 어느 누구도 양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마음에 할례를 받아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회개하지 않는 자는 양고기인 말씀을 먹을 수가 없다고 하신 것이다. 말씀을 들어도 그것이 자신의 영혼을 위한 생명의 양식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6. 하나님은 장자와 짐승의 초태생 대신에 왜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구별하여 바치라고 하셨는가?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초태생을 구별하여 거룩히 바치라고 명령하셨다(출13:11~12). 이는 하나님께서 애굽인의 장자와 짐승의 첫것을 죽이시는 유월절에, 이스라엘 백성들 중의 장자만큼은 죽지 않고 살아남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장자와 초태생이 죽어가는 대신에 어린양이 대신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백성들은 자기집의 장자를 다 하나님께 바칠 수 없었기에,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서 레위지파(레위인들)을 구별하여 하나님께서 바치라고 명령하셨다(민3:12~13). 그래서 그후부터는 이스라엘 12지파 사람들 중에 오직 레위지파만이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구별되어 하나님께 거룩히 쓰임받게 된 것이다.

  더불어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께서 유월절양이 되어 죽으실 때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값을 주고 모든 죄인들을 사셨다는 것이다(고전6:20).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피의 희생을 통해서 믿는 자들을 사셨기 때문에, 이제 성도들의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고전6:19b~20)"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주님의 소유라고 생각하여 주님께 온전히 드리고 있는가 아니면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 주님의 피값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진작 마귀의 소유가 되어서 지옥형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로 오셔서 자신의 핏값을 내주고 우리를 사셨다. 그러니 이제 우리의 몸은 더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며 주님의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사람만이 될 수 있다(롬12:1). 그러므로 앞으로의 시간은 내 시간은 없으며, 내가 가진 재산도 사실은 내 재산이 아니다. 다 주님의 시간이며, 주님의 재산인 것이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물질의 십일조를 거룩한 바치는 행위요, 주일성수는 시간의 십일조를 바치는 거룩한 십일조인 셈이다. 그런데 이것도 아깝다고 하기도 하고, 싫다고 말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이런 자들은 자기가 어떻게 되어서 애굽에서 탈출하게 되었는지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아니 그 일을 모른다고 입을 씻어버릴 사람들이다. 아니다. 그렇게 해서는 아니 된다. 믿는 성도의 시간과 물질의 주권은 우리 주님에게 있다. 그분이 쓰시기에 합당한 삶으로 드려야 한다. 우리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타고 오셨던 나귀가 되어야 한다. 주님이 필요하시다고 하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자가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을 아는 자요, 그런 자가 주님의 은총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인 것이다.

 

7. 나오며

  오늘은 믿는 이들은 예수님을 유월절 양으로만 안다. 더욱이 유월절양이라고 해도 유월절양의 피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이 유월절 양으로 오시어 우리 대신 죽으셨기에, 더이상 받을 심판이 우리에게는 없으며, 그러니 죽는다면 자신은 당연히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바램일 뿐이다. 유월절양은 피만이 흘려주신 것이라, 자신의 몸으로 양식으로 주셨기 때문이다. 유월절 양의 피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를 상징하는 것이지만, 양의 고기는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더욱 더 놀라운 사실은 모든 사람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도착하려면,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어서 무교병의 절기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니다. 유월절은 하루만 지키면 되는 절기지만, 무교절은 7일동안 지켜야 할 절기이다. 그런데 무교절의 첫날도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고 했으며, 마지막 날도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고 하셨다. 둘 다 절기의 안식일이 되었던 것이다. 예수께서 돌아가시던 해에는 유월절의 안식일, 무교절의 안식일, 제7일의 안식일이 차례대로 오는 해였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3일3야를 캄캄한 음부 속에서 지내셨다. 그리고 온전한 3일 후에 부활하셨고, 그리고 40일만에 승천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예수님을 유월절 양으로 믿어 죄사함을 받고 생명을 받았더라도, 7일동안의 무교병의 절기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만약 이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지 않는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것은 유월절양인 예수님인 것을 믿는 자라도 자기 내면의 누룩들 곧 구원에서 빗나가게 하는 잘못된 가르침들이나 외식들을 버려야 함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도 버림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월절 양고기를 먹을 수 있는 자는 반드시 할례를 받은 자라고 말씀하셨다. 할례를 받지 못했다면 할례를 받후에 먹으라고 하셨다. 이것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던 자라도 그 믿음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할례와 같은 개인적인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믿는 자라도 날마다 회개해야 요단을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가 있다. 그러므로 죽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회개해야 한다. 그것이 살 길이다.

 

2018년 11월 7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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