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상강해(36)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진정한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삼상24:1~22)_2021-12-27(월)

https://youtu.be/s8eVEkVVBVY  [혹은 https://tv.naver.com/v/24313395 ]

 

1. 어느날 동굴 안에서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다윗은 어떻게 했는가?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사울에게 쫓겨 동굴 안쪽에 숨어 있을 때였다. 사울이 용변을 보려고 그 굴 약간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용변을 보기 위해 그는 자신의 왕복 겉옷을 한쪽에 벗어놓고 볼 일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굴 안 쪽에서는 사울을 보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다윗과 다윗과 함께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의 하나가 말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넘긴다고 하셨는데 지금이 그때입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사울을 해치지 않았다. 벗어둔 겉옷자락을 살짝 베고 돌아갔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사람들에게 말했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메시야)인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왜냐하면 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메시야)가 됨이니라(삼상24:6)" 그리고는 다윗은 자기의 사람들에게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자 용변을 마친 사울은 왕복을 입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용변을 보는 동안에 일어난 일을 전혀 모른 채 말이다. 

 

2. 다윗은 왜 사울을 죽이지 않았는가?

  다윗은 선으로 악을 상대하였다. 사울은 자기를 그렇게 악하게 대했지만 다윗은 사울을 그렇게 대하지 아니했다. 왜 그랬을까? 다윗이 그렇게 한 이유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다윗은 사울왕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최초로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운 자로서 아직도 하나님의 권위가 그에게 있다는 것을 존중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엘리 제사장이 비록 타락한 상태에 있었지만 그가 죽기 전까지는 여전히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권위가 그에게 있었던 것과 같다. 그러므로 다윗은 사울이 죽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권위가 그에게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므로 그를 해하려 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기는 행위라고 여겼다. 둘째, 다윗은 자신이 사울을 심판하는 심판주가 아니며 오직 그를 심판할 수 있는 이는 하나님 뿐이심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굴에서 나온 다윗은 사울왕에게 이렇게 외치며 말했다.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습니다(삼상24:12)". 그랬다. 그는 자신이 다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자인 것이지 하나님처럼 사람을 심판하시는 이가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셋째, 다윗 자신은 사울의 왕직을 탐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사울로 하여금 알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나 사울은 반대로 자신의 왕직을 내려놓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는 오직 다윗이 자신의 왕직을 넘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동굴에서 자신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살려준 다윗을 통하여 비로소 그는 다윗이 왕직이 탐내고 있는 것이 아님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3. 이때 사울에게 어떤 심경의 변화가 찾아왔는가?

  그런데 이때였다. 다윗이 하는 모든 말을 들은 사울은 심경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그것은 첫째, 다윗을 죽이려는 마음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다윗은 죽어야 마땅한 놈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다윗이 도망치는 것에 협조하는 자는 공범자로까지 취급하겠다고 협박하였다. 다윗이 자기의 원수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윗의 선대로 인하여 그의 마음이 확 돌아선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 사울은 다윗더러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라고 하면서 그동안 자신이 잘못하고 있었음을 시인하였다. 둘째, 소리 높여 울면서 자신이 이제까지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었음을 고백하였다는 것이다. 미안한 마음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다윗의 마음을 몰라보았던 것이 애절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 다윗이 자신을 선대해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그러자 그는 다윗을 축복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사울은 다윗이 반드시 왕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자기도 알고 있다고 언급하였고, 이스라엘 나라가 다윗의 손에 의해 견고히 서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에게 부탁하기를 부디 다윗이 왕이 되더라도 자기의 이름과 자신의 후손을 멸절시키지 않겠노라고 맹세하라고 하였다.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정상적인 사람의 생각이고 판단이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사울은 이제야 정신을 차린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사울을 선대한 것으로 인하여 사울의 마음이 바뀌어질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선으로 악을 이긴다(갚는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때 사울은 자신을 죽이지 않고 살려준 다윗을 향하여 자신의 악하고 다윗은 의롭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를 악하게 대하였지만 너는 나를 선으로 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삼상24:17)". 이는 사울은 다윗이 베푼 선을 악한 것으로 갚으려 한 것이었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의 악한 행위를 선으로 대하려 했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선'과 '악'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선'과 '악'은 한 마디로 '용서'와 '미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궁극적으로 볼 때,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과 사람의 목숨을 '죽이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선'이란 어찌하든지 상대방을 용서해주고 상대방을 살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하지만 '악'은 어찌하든지 상대방을 미워하고 죽이려고 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다윗은 정말 예수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이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고로 오늘날에도 어떤 사람이 선한 사람인가 악한 사람인가를 살펴볼 때,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면서 살리려는 사람이면 선한 사람이라고 판단하며, 그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미워하면서 죽이려 한다면 그가 바로 악한 사람이라고 판단해도 무방할 것이다. 

 

5.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자기의 원수에 대해 어떻게 하라고 권면하고 있는가?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19~21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의 원수를 대하는 방식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12:19)" 그렇다. 원수는 우리가 갚아야 할 일이 아니다. 그러면 다시 원수를 낳는 일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수를 갚는 일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닌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원수갚는 일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맡겨두어야 하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 사람을 용서하고 그가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축복해 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것에서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자기의 원수가 주리고 있을 때에 먹여주고, 목말라 하고 있을 때에 그로 하여금 마시게 하는 자가 되는 일이다(롬12:20).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악에게 지지 않는 것이며, 선으로 악을 이기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2021년 12월 27일(월)

정병진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