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상강해(32) 요나단은 왜 그토록 다윗을 아끼고 지키고 사랑했는가(삼상20:1~17)_2021-12-22(수)

https://youtu.be/Hckt1EiX5VE

 

1. 사울왕이 사무엘이 있는 라마 나욧까지 쫓아오자 다윗은 어디로 도망쳤는가?

  사울왕이 자신의 아들과 요나단과 자신의 모든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명령했을 때, 요나단은 왜 아버지가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는 아버지에게 왜 까닭없이 다윗을 죽이려 하느냐면서 반문한다. 왜냐하면 다윗은 왕의 신하로서 범죄한 바가 없으며, 왕에게도 죄를 짓지 아니하였고, 왕의 말에 충성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울왕은 자기 집으로 간 다윗을 제거하려고 암살조를 보낸다. 그러자 다윗은 아내인 미갈의 도움을 받아 사무엘이 거주하고 있는 라마로 피신하게 된다. 그러자 사울은 또다시 거기에도 암살조를 보낸다. 그러자 이제는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그 행위를 막으셨으니 보낸 암살조가 라마 나욧에 도착하기만 하면 다들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예언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자 사울이 직접 라마 나욧으로 가는데 그러자 이번에도 역시 하나님의 영이 역시 사울에게도 임하여 하루 밤낮을 누워서 예언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다윗은 그 틈을 이용하여 왕의 궁궐이 있는 기브아로 가서 요나단을 만난다. 그리고 상황의 심각성을 알게 한다. 

 

2.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한 요나단에게 다윗이 제안했던 것은 무엇인가?

  요나단을 만난 다윗은 자신의 목숨이 경각간에 달려 있음을 고한다. 그러자 아직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요나단에게 다윗이 한 가지 제안을 한다. 그건 매월 초하루가 되면 왕의 수뇌부(왕, 왕자, 군대장관, 천부장)의 식사 자리가 있을 텐데, 그때 자신이 고향 베들레헴에 매년제를 드리려고 가겠다고 말하고 갔다고 대신 이야기해 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아버지의 반응이 나올 것인데 그것을 보라는 것이다. 그러자 상황의 심각성을 어느 정도 짐작한 요나단은 우선 들에 있는 에셀 바위 곁에 다윗을 피신시킨 다음, 왕이 오면 자신이 왕의 마음을 살펴보고, 만약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한다면 도망치도록 사인을 보내겠다고 하였다. 그 암호는 요나단이 화살을 쏜 후 병기든 소년에게 화살이 더 멀리 날아갔다고 말하면 도망칠 것이요, 그 앞에 떨어졌다고 하면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3. 사울왕은 요나단의 말을 듣고 어떻게 반응했는가?

  그러자 사울왕이 돌아왔고 초하루 식사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다윗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하루는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그 다음 날에 있는 초하루 식사에 또 다윗이 불참했다. 그러자 사울은 첫째 날은 그냥 지나갔지만 둘째 날에는 다윗의 불참 여부를 요나단에게 물어본다. 그러자 요나단은 다윗이 이차저차해서 자신이 다녀오도록 했노라고 말씀드린다. 그러자 그때 나온 사울왕의 반응은 요나단을 많이 당황스럽게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왕이 자기에게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이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감싸고 도는 것이 너의 수치와 너의 어머니의 수치가 된다는 것을 네가 그토록 알지 못한다는 말이냐? 이새의 아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너와 너의 왕국이 든든히 서지 못하지 않겠느냐?"(삼상20:30~31) 이는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지는 것이었다. 그러자 요나단은 다윗을 사울왕으로부터 떠나갈 수 있도록 허용을 해 준다. 그리고 화살을 멀리 쏜다. 그리고 병기든 자를 성안으로 돌려보낸 다음, 요나단은 다윗과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이별을 하게 된다. 둘은 많이 울었고 다윗은 더 울었다. 아마도 다윗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경우이지만 자신의 마음을 기꺼이 알아주고 피할 길까지 마련해 준 요나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복받쳐 올라왔을 것이다. 그리고 요나단은 자기 나라에 있는 훌륭한 장수 하나를 자기 곁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안타까움 그리고 언제 다시 볼 수 없는 불투명한 상황에서 다윗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으로 울었을 것이다. 

 

4. 요나단은 왜 다윗을 끝까지 도와주는 사람이 되었는가?

  사실 에셀 바위 곁에서 헤어지게 된 요나단과 다윗은 약 10년 동안 못나게 되는데 단 한 번 잠깐 십 광야의 황무지에서 둘이 만나게 되었을 뿐(삼상23:15~17), 요나단이 죽기까지 다윗과 요나단은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요나단은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하고 만다. 사실 요나단에게 다윗은 차기 정권의 최대 경쟁자였다. 그리고 자신이 그때 가지고 있는 권한과 능력으로 얼마든지 다윗을 체포하여 아버지께 넘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요나단은 끝까지 다윗을 보호하고 지켜 주고 그를 도와준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랬는지 명확한 이유는 나오지 않지만 요나단이 한 말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그는 한 마디로 자신이 왜 지금 왕자의 위치에 놓여 있는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던 같아 보인다. 그는 첫째, 현재 절대 권력과 야심을 가진 사울로부터 정권을 다윗에게 안정되게 이양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삼상23:17). 둘째, 자신의 사명과 본분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그는 다윗에게 자기가 현재 다윗에게 인자를 베풀어 준 것처럼 훗날에도 다윗이 자신을 죽이지 말 것을 부탁한다(삼상20:14). 그리고 다윗이 어느 날 다윗의 모든 대적들을 다 멸할 때에도 자기와 자기의 후손에 대한 인자함(헤쎄드)를 잊지 말라고 부탁한 것이다(삼상20:15). 왜냐하면 지금 자신은 다윗을 살려 내어 차기 정권을 이양받을 왕이 되게 하는데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5.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이 알려 주는 영적인 비밀은 무엇인가?

  이상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영적인 비밀은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 사명자는 절대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군가 돕는 사람을 붙여서 그로 하여금 살게 하기 때문이다. 사울은 그토록 다윗을 죽이려고 안달이 났지만 사울의 딸 미갈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끝까지 다윗 편이 되어 주었던 것은 이러한 말씀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둘째, 사명자는 너무 외로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명자가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려면 반드시 누군가 협력자가 필요한데 이러한 것은 다 하나님께서 사명자에게 붙여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명자가 홀로 어떤 일을 담당하고 있다고 너무 힘들어할 필요는 없다. 다윗의 경우를 보라. 다윗에게는 언제나 돕는 자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하나님은 사명자 주위에는 그를 도와줄 사람을 언제나 배치해 준다는 것이다. 다윗의 경우에는 먼저는 사울의 가족들이 그를 지켜 주었고 나중에 다윗의 가족들이 그를 지켜 주었으며, 사울의 신하들도 다윗을 지켜 주었던 것이다.

 

2021년 12월 22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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