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생활을 하다보면 가끔씩 '코이노니아'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 말은 대체 무슨 말인가? 성도들의 친교를 가리키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를 가리키는 말인가? 그런데 요한일서 1장에 보면 이 말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이며, 이것을 방해하는 요소는 또 무엇인가? 그리고 자신은 빛 가운데 걸어가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어둠 가운데 행하고 있는 자들은 누구였는가? 왜 사도 요한은 그들을 분별하라고 그렇게 강조해서 말해야 했던가?

2021-11-10(수) 수요기도회
제목: 요한서신강해(02) 성도의 코이노니아의 핵심요소와 그것이 가능케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일1:5~2;2)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EgvXSoKg9Gs [혹은 https://tv.naver.com/v/23470017 ]

 

1. 들어가며

  요한일서는 초신자들로 하여금 영적인 자양분을 얻게 하고, 영혼을 노리고 있는 거짓 교사들이었던 초기 기독교 영지주의 이단의 미혹으로부터 성도들을 지켜낼 뿐만 아니라, 사랑이신 하나님을 본받아 형제와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는 실천적인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는 소중한 책이다. 요한일서는 알다시피 요한이서와 요한삼서와 함께 사도 요한이 쓴 서신으로서, 이것들 중에서 첫 번째 책이 요한일서다. 이 책이 쓰여진 시기는 대략 A.D.90~95년경으로 추정되며, 그 대상은 소아시아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로서 사도 요한이 전파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은 성도들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누군지를 잘 모르거나 신앙의 기초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초신자용 신앙 지침서가 바로 요한일서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요한일서 강해 두 번째 시간으로서, 코이노니아(교제, 교통, 사귐)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왜 그리스도인들은 코이노니아가 필요한 것인지 그리고 코이노니아에는 어떤 방면이 있으며, 코이노니아를 가능케 하고 그것을 지속시켜 주는 것은 대체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하는 것이다. 

 

2. '코이노니아'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코이노니아(koinonia)'란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교제를 가리키는 헬라어 단어인데, 이 단어를 한글로 번역할 때에는 보통 '교제(친교)' 내지는 '사귐'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영어에서는 이 단어를 대부분 'fellowship'으로 번역하고 있으며 가끔식 'communion'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코이노니아'의 본래의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 단어의 뿌리를 찾아보면 알 수가 있는데, 원래 이 단어는 '코이노스'라는 형용사에서 온 말이다. 형용사 '코이노스'는 우리말로는 '공통된'이라는 뜻을 가졌다. 따라서 '코이노니아'라는 말은 상호 간에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서로가 공통된 정서를 함께 나누며 공통된 목표를 지향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고로 '코이노니아'란 공통된 분모를 가진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교제를 일컫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교제를 가능케 하는 그리스도인 간의 공통 분모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생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좀 더 크게 확대해 보면 그것은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우리와 교제를 나누실 하나님이 먼저 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었으며(요5:26), 이 생명을 예수에게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요일1:2, 5:11~12) 또한 우리 성도들에게도 이 생명을 주셨기 때문이다(요일5:13). 이때 하나님께서 분배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를 일컬어 성경에서는 '거듭난 자'라고 말하고 있고, '하나님의 자녀'라고도 말한다. 그러므로 자기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는 자는 영적인 교통을 나눌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대체 누구와 코이노니아를 가지는 것인가?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인의 코이노니아에는 두 가지 방면이 있다고 했다. 그것들 중 한 가지는 하나님 및 예수님과 갖는 교통이라고 했다(요일1:3).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성도들 간의 교통이라고 했다(요일1:7). 그런데 이것들 중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갖는 교제를 수직적 교제라고 부르며, 성도들끼리 갖는 교제를 수평적인 교제라고 부른다.

 

3. 성도들이 서로 코이노니아를 갖기 위하여 꼭 해야만 하는 일 2가지는 무엇인가?

  사도 요한은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분배받은 성도들이 하나님과 그리고 성도들 간에 교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 2가지 있다고 말했다. 그중 첫 번째는 성도들은 반드시 빛 가운데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요일1:5~7). 왜냐하면 우리 주 하나님이 빛이시며(요일1:5),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그 빛을 비추러 오신 참 빛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요1:9, 요일2:8). 그러므로 성도가 이 빛 가운데 걸어가지 않는다면 그는 어둠 가운데서 걸어가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두 번째는 성도가 죄를 범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즉시 죄를 자백하여 예수의 피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요일1:9). 이는 그리스도인의 코이노니아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가 '회개'라는 것을 알려 준다. 주님과 우리 믿는 이들 사이에 그리고 우리 믿는 이들 사이에 코이노니아가 계속되기 위해서는 2가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정리하면, 그것의 첫 번째는 반드시 성도가 어둠의 일을 끊고 생명의 빛 가운데서 걸어가는 것이다. 이때 자신이 빛 가운데 걷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죄를 짓고 있는 이가 있다면 그는 현재 어둠 가운데 걸어가고 있는 것을 반증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지은 죄를 자백하여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4. 사도 요한은 왜 빛 가운데서 걸어감으로 하나님과 코이노니아를 이루어야 하고 그래서 형제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강하게 말하는가?

  사도 요한이 '빛'과 '어둠'이라는 단어를 꺼내어 사용할 때에는 당시 유행하고 있던 초기 기독교 영지주의를 염두해 두고 쓴 것이다. 영지주의자들도 역시 '빛'과 '어둠'이라는 개념을 고스란히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고 있는 빛과 어둠이라는 개념과 예수께서 말씀하신 빛과 어둠이라는 개념은 사실상 다른 것이다. 그들은 영지를 깨달은 자를 일컬어 빛 가운데 있는 자요, 구원받은 자라고 말하지만, 사도 요한은 이 세상에 참 빛을 비추러 오신 예수님을 믿는 자가 빛의 아들이 되어 빛 가운데 살 수 있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요12:35~36).  

  그렇지만 당시 초기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은 자기들은 현재 빛 가운데 걸어가고 있다고 늘 말하곤 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 순간에도 역시 죄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영지를 깨달았기 때문에 더 이상 육체에 속한 어떤 것이 자신의 영을 더럽히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실제로는 죄를 짓고 있었어도 그들에게 그것은 문제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만약 그 상태로 죽는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불타는 영영한 불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면, 초기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에 있어서 '영지'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인간이 원래 하나님으로부터 방출되어 나온 신적 존재이므로 그러한 사실을 깨닫는 것이 빛을 받는 것이요 영지를 깨닫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 길을 사람들이 모르니까 그 길을 알려 주려고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진리의 빛을 깨닫도록 빛을 비추기 위해 예수께서 오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참된 빛을 받을 수 있게 해 주는 존재는 굳이 예수님이 아니어도 상관없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다만 영지를 깨우쳐 줄 존재만 있으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오셨는가? 그리고 예수께서는 무엇 때문에 사람의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야 했던 것인가? 그리고 왜 하나님이셨던 그분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셔야만 했던 것인가? 그것은 한 가지 이유에서다. 오직 우리 인류의 죄값을 대신 담당하시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었기 때문이다(롬6:23). 그런데 하나님은 본래 영이시므로 죽으실 수가 없으셨다(요4: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피 흘려 죽기 위해 사람이 되신 것이다. 이것을 '성육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요1:14). 그러나 이미 영지를 깨달은 영지주의자들은 예수가 육체를 입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물질세계는 저급한 신이 만들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아주 저급한 신으로 밖에는 생각이 안 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구원자이신 예수께서 육체를 입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바로 거짓 선지자요, 그가 바로 적그리스도라고 말했다(요일4:1~3, 요이1:7). 그래서 오늘날 이러한 주장을 하는 자들을 일컬어 가현설론자라고 부른다. 그렇다. 기독교의 최대의 이단이었던 초기 영지주의자들은 영지를 깨닫기만 하면 자기도 하나님이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었다. 영지를 깨달으면 하나님이 된다고 믿은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어찌 피조물이 신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사람이 하나님이 된다는 가르침은 사실 에덴동산에서 뱀이 하와에게 던진 미끼였다. 그런데 이것을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영지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성육신과 그리고 그분의 죽음은 정말 불필요한 것들이었다. 빛을 비추러 오신 예수께서 더러운 육체를 입으실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그때에 예수께서 육신을 입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에 죽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지금까지 인류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류 중 단 한 사람도 죄와 죽음과 마귀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감사 드리자. 그리고 우리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 감사 찬양을 올려 드리자. 왜냐하면 그분의 성육신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며, 이 세상을 탈출하여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지를 깨달은 영지주의자들에게 있어서 더 이상 계명은 필요치 않는 것이다. 그들은 육체를 가진 형제를 사랑하지 않아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영지만 깨달으면 그들은 이미 신이 된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득도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말한다. 자신이 빛 가운데 걸어가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있는 이들을 무조건 따라가지 말라는 것이다. 그가 진실로 형제를 사랑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라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빛 가운데서 행하고 있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는 지금 어둠 가운데 있는 자라고 판단하라는 것이다. 그런 자하고는 교제를 끊으라는 것이다. 그들 속에는 진리가 없기 때문이요, 그들은 거짓말장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5.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코이노니아가 단절되었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모셨음에도 죄된 본성으로 인하여 죄를 짓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우선 사도 요한은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고 말을 한다든지 혹은 자신은 죄를 짓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를 경계하라는 것이다. 그들이 바로 미혹하는 자 곧 영지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진리를 따르지 않고 사탄이 가르쳐 준 말장난을 따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간인지라 연약함에 쌓여 죄를 짓는 성도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사도 요한은 말한다. 이미 2천년 전에 예수께서 인류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속죄 제사를 드렸지만, 그 속죄의 효력이 나타나게 하려면 반드시 지은 죄를 자백하라는 것이다(요일1:9). 죄를 자백할 때에라야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지은 죄들로부터 그를 깨끗하게 하고 죄지은 자를 용서해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회 가운데는 현대 영지주의자들이 많이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대체 누구인가? 그들은 한 번 믿어서 구원받았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다. 자신이 예수를 믿을 때에 이미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도 다 용서받은 것이라고 믿고 있는 자들이다. 사실 우리가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는 회심의 회개를 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주님께로 돌아온 사람의 죄들을 용서해 주시고(이때에 지옥 갈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이다), 그로 하여금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받게 하신다. 그러면 그가 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비로소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에 죄된 본성이 영영 사라진 것이 결코 아니다. 여전히 죄된 본성은 남아 있다. 그래서 그것은 육체가 죽는 날까지 활동할 것이다. 그러므로 섰다 하면 넘어질까 조심해야 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다. 이러한 고민을 말씀하고 있는 성경이 바로 로마서 7장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비록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죄를 지을 수 있으며 또한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만약 누군가가 회심의 회개를 하였고 예수님을 모셔 들였다면, 그는 그때부터는 발을 씻는 회개를 해야 한다. 그는 이미 목욕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발을 씻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현대에도 있다. 이들이 바로 현대판 영지주의자들이다. 한 번 믿음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바로 오늘날의 영지주의자들인 것이다. 속지 말자. 우리는 요한 사도를 통해 주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한다. 어느 때고 죄를 지었다면 죄를 자백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2천년 전에 골고다에서 흘리신 예수의 피가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고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6. 성도의 단절된 코이노니아를 회복시키기 위해 예수께서는 지금 하늘에서 무슨 일을 하시는가?

  그래서 사도 요한은 편지를 써 보내는 목적을 2장 1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이 편지를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일1:2)"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죄를 지었어도 아무 상관없다고 주장하는 영지주의자들의 말을 믿지 말라는 것이다. 죄를 지었으면 회개하라는 것이다(요일1:9). 그리고 우리의 최대의 목표는 죄를 짓지 않는 것이라야 한다는 것이다(요일2:1). 왜냐하면 우리가 죄를 범했다고 할지라도 그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실 분이 계시다는 것이다. 그분은 바로 의로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첫 번째 변호사(파라클레토스)인 셈이다. 그리고 오순절 이후에 예수님을 대신하여 이 땅에 오신 성령님께서는 두 번째 변호사(파라클레토스)인 셈이다(요14;16, 26, 15:26). 그런데 이미 속죄 사역을 마치고 승천하시어 하늘에 계신 우리 주 예수님은 믿는 자들의 죄만을 용서해 주시는 것일까? 아니다. 그분은 믿는 이들의 죄를 용서해 줄 화목 제물이실 뿐만 아니라, 장차 믿을 자들까지 포함하는 화목 제물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해서 너무 절망하거나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그때마다 즉시즉시 회개하여 하나님과의 교통(코이노니아)을 단절시키지 말아아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약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라면, 그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가 단절되지 않도록 미리미리 예방해야 하는데, 그것은 빛을 따라 행하든지 아니면 지은 죄를 자백하는 것이다. 

 

7. 나오며

  사도 요한이 A.D.90~95년경에 보낸 편지에서 가장 염려하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이제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초신자들이 영지주의자들의 가르침에 속아 마치 그것이 진리의 가르침인 줄을 알고 따라가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이러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소아시아의 성도들에게 예방 주사를 미리 맞혀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제 갓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서 하나님과의 코이노니아를 시작하는 이들이자, 성도 간에 코이노니아를 소망하고 있는 이들이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영지주의자들도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빛으로서 이 세상에 오신 분이며, 어둠 가운데 있는 우리 인간들을 하나님께로 되돌아가게 인도해 주는 선구자이십니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 가운데 어디 틀린 말이 있는가? 없다. 여기까지는 우리 주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그들의 가르침이나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더럽고 추한 물질계를 만든 신은 저급한 신이라고 주장하였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육체를 입고 오셨건만, 그들에게 예수님의 성육신은 거추장스러운 것이었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그분이 더럽고 추한 육체를 입을 리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 중에는 그리스도가 나사렛 예수라는 사람 속에 잠시 들어가서 일하다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기 직전에 그를 떠났다고 주장하기도 하였으며, 어떤 이는 예수님은 실제로 육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에 육체를 가진 것처럼 보였을 뿐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어서는 아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야말로 미혹이요 사탄의 궤계요 적그리스도의 속임수인 것이다(요일2:18, 26, 4:1,3,6, 요이1:7).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이 편지에서 예수님의 성육신을 이 편지의 서두(요일1:1~2)에서부터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했다.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요일2:22)".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다(요일5:5~6a)". 우리를 위해 육신을 입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우리 주 예수님을 영원히 찬양하며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다. 

 

2021년 11월 10일(수)

정병진목사

 

요한일서는 언제 무슨 이유 때문에 쓴 것일까? 요한사도는 요한일서를 어떤 특정한 교회를 위해 쓴 것이 아니었다. 당시 소아시아와 유럽에 있는 교회들을 위해 이 편지를 썼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A.D.90년경에 교회는 이미 영지주의자들에 의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그럴듯한 이야기인지 듣고 있으면 금방 사람의 혼을 빼가버리는 것이 바로 "영지주의"다. 그래서 우리는 영지주의자들의 교묘한 속임수를 간파해야 한다. 그리고 참된 신앙인이라면 꼭 붙들어야 할 신앙의 핵심요소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만약 그것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다면 미혹의 영의 가르침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요한일서는 진리의 변증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무엇이 진리이며 무엇이 거짓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한일서는 영지주의자들에게는 강력한 책이다. 이 메시지를 들었다면 여러분에게 다시 요한일서를 정독하기를 강력히 권면해 본다.

2019-08-09(금) 금요기도회
제목: 요한일서가 영지주의자들에게는 얼마나 강력한 책이었을까?(요일4:1~6)
https://youtu.be/zX8AnDHfvHQ


1. 들어가며

  교회사는 사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는 당시의 사실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알려주기도 한다. 특별히 교회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약27권의 성경책이 어떻게 해서 교회가 인정하는 권위있는 성경책이 되었는지에 관하여 분명한 사실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요한일서는 누가 기록했으며, 왜 기록한 것일까? 보편적으로 우리가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요한일서는 사도요한이 늙그막에 쓴 책으로서 누구나 읽고 그리고 보기에 참 편한 책, 특별히 하나님이 빛이시며 사랑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책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엄청난 내용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것은 아마도 영적 전투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조금 있다가 좀 더 살펴보겠지만 이 책은 "진리의 변증서"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위대한 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무엇을 변증하고 있으며, 왜 그러한 변증을 하게 되었던 것인가? 그래서 오늘은 요한일서를 쓴 목적과 그 이유와 배경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2. 요한일서는 누가 썼으며 왜 이 책을 써야만 했던 것인가?

  요한일서는 A.D.90년경 사도요한이 쓴 편지들 가운데  하나. 이 편지를 받을 대상이 누군지는 분명하지 않다. 추측컨데, 당시 소아시아에 위치한 여러 교회의 성도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왜냐하면 이 편지에서는 지정된 수신인이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편지를 쓰고 있던, 당시 90살 가까운 사도요한은 이 편지를 받을 대상을 가리켜 "사랑하는 자들, "자녀들", "아비들", '청년들", "아이들"이라고 불렀다. 고로 나이든 사도요한에게는 여러 교회의 다양한 나이 때의 성도들을 가리켜 이러한 표현들을 쓰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그러므로 이 편지는 어떤 정해진 교회가 아니라 당시 존재하고 있던 교회들 가운데에 회람되었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그렇다면, 사도요한은 왜 편지를 쓴 것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당시 소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에게 어떤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문제를 바로잡아보고자 사도요힌이 이 편지를 쓰게 된 것이다. 즉 사도요한은 이 편지에서 당시 교회를 흔들는 세력이 누군지를 알려주고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으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 편지를 썼을 것이라 사료된다. 특히 사도요한은 이 편지에서 교회의 성도들을 흔드는 세력을 가리켜 "미혹하는 자들"이라고 칭했다(요일2:26). 그리고 그들은 요한이 머물고 있던 교회나 교회공동체로부터 떨어져 나갔던 자들이라고 말했다(요일2:19). 고로 그들은 사도요한 즉 사도적인 가르침을 거부한 자들로서, 요한으로부터는 "거짓선지자(요일4:1)", "적그리스도"라고 불리움을 받던 자들(요일4:3, 2:18,22)을 가리킨다.

 

3. 당시에 교회의 성도들을 흔들며 미혹하던 자들은 누구였는가?

 사도요한은 당시 헬라지역에 위치한 교회들을 흔들고 있는 자들을 가리켜, 성도들을 "미혹하는 자들"이라고 불렀는데(요일2:26), 이들은 요한이 섬기고 있는 교회나 요한이 속해 있던 공동체로부터 이탈한 자들이었다(요일2:19).

  그런데 이들은 복음의 근간이 되는 내용을 거반 거부했던 자들이다. 그들은 첫째,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부인하는 자들이었다(요일2:22). 둘째, 그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지 않는 자들이었다(요일4:14~15). 셋째, 그들은 예수께서 육체로 이 세상에 오신 것(성육신)을 거부하고 믿지 않는 자들이었다(요일4:2~3). 넷째, 거짓말로 예언하던 자들이었다(요일4:1). 다섯째, 이들은 자기들만이 진리를 안다고 하지만 사실은 진리를 몰라 어둠에 갇혀 있는 자들이었다. 결국 이들은 교회 가운데 들어와 거짓말을 유포하는 자들이라고 할 수있다(요일2:21~22).

  결국 이들이 누구인지를 정리해본다면, 이들은 딱 한 마디로 "초기기독교 영지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을 "영지주의자들"이라고 언급하는가? 그것은 그들의 주장과 사상이 기독교이전의 영지주의자들과 너무나 유사하고 닮았기 때문이요, 이제는 기독교사상을 받아들여서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자기들의 사상을 전파하기에 꼭맞는 성경구절을 이용하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4. 당시 사도요한이 이 편지를 쓸 때에, 영지주의자들이란 어떤 자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는가?

  사도요한이 요한일서라는 편지를 쓸 당시, 교회에는 이미 영지주들이 들어와 사도들이 가르쳐주고 전해주었던 참된 신앙을 거부하도록 미혹하고 있었다. 그런에 이들은 이미 자기들만의 고유한 사상적 쳬계를 발전시켜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A.D.313년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되고, A.D.378년 데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기독교가 국교가 되자, 결국 이들은 갑자기 흔적없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과연 무엇을 주장하던 자들이었을까? 이들은 플라톤시대부터 있었던 영지주의의 사상을 기독교에 접목하여 예수님을 그들의 선각자라고 생각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이원론에 입각하여, 신적 존재는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고 신념하에, 모든 것을 재편한다. 그리하여 신적 존재(단일자=모나드)로부터 멀어질수록 빛은 희미해진다고 본다. 그리고 구약의 여호와는 물질을 만든 신이므로 제일 저급한 신이라고 본다. 그리고 예수님은 신적 존재로부터 제일 처음 방출한 존재로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모르고 살아가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이 누군지를 알게 해 주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선각자요 철학자다. 사람은 사실 빛(신적 존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해 무지(어둠) 가운데 살아가고 있어서, 예수님과 같은 선각자들의 영지를 자신이 누군지를 깨우치게 되면 어둠에서 빠져나와 빛의 아들이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결코 육체를 가지지 않았다고 본다.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에 그리스도가 예수 위에 임하여 있었고, 3년반동안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빌려쓰다가 십자가 사건 때에 육체를 버렸다고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빛 중의 빛이요, 영 중의 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빛은 신적 존재가 가득한 상태를 의미하며, 어둠은 신적 존재를 잃어버린 상태를 가지킨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구원은 자신이 빛이 자녀인 것을 깨닫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있어서 죄로부터의 구원같은 것은 없다. 다만 영지를 깨닫는 것이 구원이다.

 

5. 사도요한이 그토록 지키려 했던 복음의 핵심은 무엇이었는가?

  그러나 사도요한은 이들이 기독교를 가장한 영지주의자들임을 간파하고서는 이들의 실체를 낱낱이 고발한다. 그러므로 요한일서는 "진리의 변증서"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고,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속죄사역을 통해서 죄사함을 받았으며, 성령을 통해 깨우침을 받고 영생을 소유한 사도요한은 기독교내에 침투한 영지주의가 바로 거짓선지자이며, 적그리스도요, 미혹의 영이라는 것을 정확히 꼬집어서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사도요한이 그토록 보존하고 지켜야 할 복음은 무엇이며, 그것의 핵심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예수님의 성육신과 피흘림을 통한 속죄다. 하나님께서는 빛이시다. 그에게 어둠이 조금도 없으신 분이다. 그런데 인간이 범죄함으로 인하여 빛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직접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사람의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들어오셨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다. 그리고 30세에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공적인 생애를 사셨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며 무슨 일로 이 세상에 들어오셨는지를 3년반동안 드러내셨다. 그리고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십자가로 가셨다. 그리고 피흘려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죄값을 치르셨다. 그것이 바로 그분의 죽으심이다. 피흘림이 없은 즉 죄사함이 없으며 죄사함이 없는 자는 영생을 얻지 못하며, 빛의 나라인 천국에도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지주의자들은 자신이 누군지를 깨달았으니 영지를 깨달은 자로서 이미 구원받은 자라고 여겼다. 그러므로 물질이나 육체가 구원받은 자신을 더럽힐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웃의 아내를 욕보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들은 삶은 문란해졌고, 더러웠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은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면서 실제적으로 형제에와 이웃에게 해를 입히고 있는 그들은 진리를 알지 못하는 자이며, 어둠에 속한 자라고 통렬히 지적했다.

 

6. 오늘날 교회 가운데 영지주의는 어떻게 숨겨져 있으며 드러나 있는가?

  오늘날에 교회 안에서도 여전이 영지주의 사상이 남겨져 있다. 자신이 예수님을 믿고 있으면 자신은 이미 구원받은 자이며, 한 번 구원받은 자신은 결코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를 지어도 그 죄가 자신의 영혼을 건드릴 수는 없으며, 자신의 구원에도 결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이들은 죽으면서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때에,주님으로부터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는 책망을 듣게 되며,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말로는 자신이 "빛의 자녀"이며, "어둠에 속한 자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여전히 죄를 짓고 있는 자는 다 마귀에게 속한 자다(요일3:8). 형제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에게 해를 입히고 있는 자는 다 마귀에게 속한 자이기 때문이다.

 

7. 영지주의자들로부터 사도들이 전해준 순수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그렇다면, 오늘날에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성도들은 사도들이 전해준 순수한 신앙을 지키면서 영지주의자들의 간교한 속임수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영지주의의 거짓된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예수님의 성육신과 속죄 그리고 부활신앙을 철저히 붙들어야 한다. 영지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그들 자신의 사상전파를 위해 세워놓은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사실 그러한 존재는 예수님이 아니어도 된다. 하지만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이것이 진정 엄청난 일들을 수행할 것임을 알아차린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서 자기들의 주장과도 맞아 떨어지는 말씀들을 가져와서 포장한 것이 바로 기독교 영지주의다. 이러한 기독교 영지주의는 희생이 없어도 된다. 하나님의 성육신이 없어도 상관없으며, 예수님의 속죄사역이 없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자신이 누군지를 깨닫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자기를 희생하지 않는 사랑이라는 것이 어디 있겠으며, 예쉼의 속죄를 통하지 않고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어디에 있겠는가?

 

8. 나오며

  그러므로 영지주의자들은 빛과 어둠의 스토리만 있으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르쳐주는 선각자가 있으면 되었다. 그것을 그들은 예수님이라고 정했다. 그러니 이들은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셨다고 하는 것을 받아들이려하지 않았다. 아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니 "가현설"이 나온 것이다. 그래서 어떤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가 예수님의 육체를 이용했다가 버렸다고 말하는 이도 있으며, 예수님은 죽을 수 없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결코 예수가 아니라 그때 붙잡혀 대신 십자가를 졌던 구레네사람 시몬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예수님의 속죄사역이 아니고서는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받을 길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친히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이 되셨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사랑이시라고 말씀하셨는데(요일4:8,16), 이는 말로만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친히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자신을 희생하셨다는 사실을 말이다. 영지를 깨달았다고 말은 하나 형제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자는 다 거짓말하는 자다(요일2:9~11). 속죄는 결코 깨달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엄청난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실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신 이"이이며, 영생이시며, 참하나님이신데,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로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셨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행하신 우리 주님께 감사드린다.

 

2019년 8월 9일(금)

정병진목사


영지주의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듯하다. 공부를 많이 하고 자기가 지혜롭다고 하는 자는 그만 이 묘한 영지주의의 매력에 빠지고 말기 때문이다. 영지주의는 예수님의 속죄를 통한 일방적인 구원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보편적인 구원론을 말하고 있으며, 모든 사람을 다 그 구원 안으로 초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러분은 혹시 영지주의의 깊은 내막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그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진정한 목표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그것은 "예수는 신화다"는 책 제5장 "영지주의자"에 언급되어 있다. 그것은 수준낮은 자아(에이돌론)가 수준높은 자아(다이몬)와 하나가 될 때, 감추어진 "은밀한 미스테리아"를 알게 되고, 그런 자가 구원을 얻어 빛의 자녀가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놀라지 말라. 그들은 수준높은 자아를 개인의 "수호천사"라고 미화하고, 수호천사와 하나가 될 때 영지를 깨닫는다고 주장하는데, 실은 수호천사라고 명명되어진 '다이몬"이 헬라어로 "마귀, 악령"이기 때문이다. 영지주의의 실상을 알고 싶은가? 이 설교를 들어보라.

2019-08-11(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영지주의자라 할지라도 절대 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요일5:19~21)
https://youtu.be/HUYKes898EU


1. 들어가며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성경 66권은 과연 어떻게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우리의 손에 들려져 있는가? 특히 신약 27권의 말씀은 과연 누가 이것만이 정경(정통경전)이라고 정해놓은 것인가? 우리는 예로부터 성경은 66권이며, 신약은 27권인 것에 대해 그냥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누가 왜 그렇게 정해야 했는지 그리고 66권 말고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는 성경이 더 있지는 않는지 묻지 않고 살아왔다. 하지만 1945년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도마복음"이 발견됨에 따라 이 물음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어떻게 되어서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약의 27권이 신약성경이 되었으며, 그중에 요한일서는 과연 진본성경인지 그리고 이 성경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오늘날의 27권의 신약성경은 어떻게 해서 결정되었는가?

  이집트의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위경들이야말로 진짜 성경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콘스탄틴 대제가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27권 이외의 모든 책들을 다 불태워 없애버리라는 명령 때문에 그들이 성경이라고 주장하는 책들이 없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진짜 그랬을까? 그러나 사실 이들의 주장은 거의가 다 틀린 주장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어떤 개인이 그것을 성경이라고 결정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 신약의 27권의 성경은 어떻게 해서 신약성경(정경)이 될 수 있었는가?

  사실 사도들이 살아있을 때만 해도 성경은 기록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가서 전해주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도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갔다. 그런데 사도들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들었던 자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마가(요한)도 있었다. 그는 베드로에게 직접적으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기에 그것을 전해주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로마교회 성도들은 그것을 꼭 써 주어서 자기들이 읽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하지만 처음에 마가요한은 이를 거절했다. 그래도 간곡히 부탁하자, 그는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는 교리를 기록으로 남기 되었는데, 그것이 "마가복음"이다. 사도베드로도 나중에 마가가 쓴 복음서가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인준해주었다. 그래서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이 쓰여진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유대인들을 위한 복음서가 예수님의 12제자 중 하나였던 마태에 의해 히브리어로 쓰여졌고, 이방인을 위한 복음서인 누가복음이 쓰여졌다. 하지만 거기에는 예수님의 초기의 사역이 많이 빠져 있었다. 또한 예수님의 신성에 관한 부분들을 더 기록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러자 예수님을 직접 보고 그분의 말씀을 들었던 사도요한이 마지막으로 요한복음을 쓰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사실 초기 교회역사가이었던 유세비우스(A.D.260~340년)에 의해 기록으로 남겨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날 신약의 27권의 성경책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는지를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약성경은 최종적으로 어떤 기준에 의해 정경으로 남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자. 그러한 기준에는 대체로 4가지가 작용하고 있었다. 그것은 "첫째, 모든 교회들이 씌여진 성경책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있는가? 둘째, 사도들이 직접 썼거나 사도들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자들이 쓴 것인가? 셋째,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한 것인가? 넷째,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한 구원관과 일치하는가?"였다. 그래서 살아남은 것이 오늘날 신약27권의 성경책이 된 것이다.

 

3. 요한일서는 누가 썼으며 왜 기록했는가?

  이러한 신약의 성경책들 가운에, 요한일서는 누가 썼으며, 왜 쓰게 되었는가? 먼저, 이 책은 사도요한이 직접 쓴 것이라고 교회역사가인 유세비우스가 증명해주고 있다. 그리고 요한일서는 어느날부터인가 소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을 허물러뜨리기 위해 침투해 들어온 미혹하는 자들 때문에 사도요한이 직접 교회들을 위한 회람용 서신으로 쓴 것이다.

 

4. 요한일서에 등장하는 "미혹하는 자"요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는 누구였는가?

  그렇다면, 교회를 미혹하여 잘못된 길로 빠뜨리려고 하는 이들은 과연 어떤 자들이었는가? 그들이 누군지는 요한일서의 요약판인 요한이서1:7~11에 잘 나온다. 그들은 기존의 성도들을 미혹하는 자들로서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들인데, 이들은 한사코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들"이라고 사도요한은 말했다(요이1:7). 그들은 왜 교회에 들어와 예수께서 성육신하신 것을 거부하고 있었을까? 그들은 당시 교회 내에 침투해 들어와 있는 "거짓교사들"이었고 "거짓이단자들"이었다. 이들은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철학을 가진 자들로서, 처음에는 기존의 성경에 나와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자기들의 철학을 펼쳐보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그들의 철학사상과 맞지 않는 것이 나올 때에는 그것을 뜯어고치든지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영만 선하다고 믿었기에, 예수께서 성육신하여 육체를 입으셨다는 말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중에 가서는 예수는 실재하지 않은 가상의 인물로서, 이교도들의 신화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짜집기한 가상의 인물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신약27권은 예수께서 실재했다고 믿는 자들의 허무맹랑한 짜집기의 글이고, 자기들의 책들이 진짜 성경책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누구인가? 오늘날 사람들을 그를 "영지주의자들"이라고 말한다.

 

5. 영지주의자들의 구원관과 기독교의 구원관은 어떠한가?

  놀라운 사실은 이들의 구원관은 성경의 구원관과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성경의 구원관은 이렇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기에 그 형벌을 받아 지옥에 떨어지게 생겼다. 그러자 긍휼히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인류의 죄값을 대신 담당하게 하셨다. 그래서 예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를 속량하셨다. 그러므로 이제는 누구든지 인류의 죄를 속량하셨던 예수님을 믿고 회개함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성령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들어간다." 하지만 영지주의자들의 구원관은 전혀 다르다. 영지주의자들은 모든 사람은 자기 안에 이미 신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깨닫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깨달음(영지)가 곧 구원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약속된 메시야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누군지를 깨우쳐줄 선각자요 지혜자가 필요할 뿐이다. 그들의 무지를 깨우쳐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존재를 그들은 "예수님"이라고 말할 뿐이다.

 

6. 오늘날 영지주의자들은 어떤 주장을 펼치고 있는가?

  2002년에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이 나왔다. 그 책에 보면, 영지주의자들이 어떤 사람인지가 적나나하게 나와 있다. 이 책을 요약해보면, 딱 2가지만 말씀하고 있다. 첫째, 예수는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인물이 아니라 초기교회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로서, 이교도들에 의해 알려진 여러가지 신화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낸 가짜 인물이라는 것이다. 둘째, 신약의 27권의 성경말씀은 예수께서 실재했다고 믿는 자들이 만들어낸 가짜 책이라는 것이다. 그럼, 진짜 예수는 어떤 분이며, 진짜 성경은 무엇인가? 그것은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예수가 진짜 예수이며, 성경도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책들이 진짜 성경이라는 것이다.

 

7. 예수님은 실재하지 않았던 분이며, 신약27권도 짜집기한 가짜 책인가?

  아니다. 저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고 역사적인 사실 왜곡하고 조작하고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가상의 인물도 아니며 신화적으로 꾸며낸 가짜 인물도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2천년전에 유대땅에서 실제로 활동했던 실제했던 역사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분이 삶과 발자취는 믿지 않는 자들의 기록에도 아직까지 남아 있고,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인 장소와 물건들이 고고학적으로 실재로 존재하고 있고 지금도 여전히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이 예수님의 속죄사역과 부활을 목숨을 걸고 증거한 것을 통해서도 예수님의 실재성은 증명되고 있다. 사실A.D.313년 기독교가 공인되기 직전까지, 로마에서 기독교는 여전히 사악한 종교라고 알려져 있었다(아마 성찬식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오직 예수믿는 자들만이 로마 황제를 "주 하나님"으로 숭배하는 것을 거절했다. 그러니 예수믿는 것이 발각되기라도 하면 그들은 포박당해 원형경기장으로 끌려가 사자밥이 되거나 화형으로 불태워 죽임당해야 했다. 그래서만 수많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던 것이다. 예수님은 가상의 신화적인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 신약성경 27권을 제외한 나머지 책들은 불태워없앴다는 주장하는데, 그것은 4세기 후반에 있었던 일이고, 그전에 곧 4세기초까지는 예수믿는 것이 발각되면 즉각 처형되는 시점이었기에, 영지주의 서적을 찾아내어 그것을 이단서적이라고 주장할 여력이 없었다.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언제 이단자들을 색축하고 그들의 책을 불태워 없애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겠는가?

 

8. 영지주의자들이 진정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영지주의자들이 진정 바라고 궁극적으로 소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누구든지 영지를 깨달아 구원받게 하는 것인가? 얼핏 보기에는 그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에 들어가보면 그들에게 엄청나게 숨은 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는 신화다"는 책의 챕터 5장에 들어가면, 거기에는 영지주의자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나온다. 영지주의자들의 목표는 모든 사람들이 그노시스(영지)를 깨달아서 그들 자신이 다 신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나 그렇게 될 수는 없다고 한다. 영지에는 공개적인 미스테리아가 있고 은밀한 미스테리아가 있는데, 은밀한 미스테리아를 알아야 영지를 얻는다고 한다. 그런데 은밀한 미스테리아는 철저히 비밀히 붙여져 있다고 한다. 그럼, 어떤 자에게 은밀한 미스테리아가 주어지는가? 그것은 사람에게는 수준이 낮은 자아(에이돌론)과 수준이 높은 자아(다이몬)이 있는데, 수준낮은 자아가 수준높은 자아와 일체가 될 때 영지를 깨닫는다고 한다. 이때 수준높은 자아는 일종의 수호천사로서, 인간은 이 수호천사와 하나가 될 때에 그노시스(영지)를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지 말라. 그들이 말하는 "수준낮은 자아(에이돌론)"은 헬라어로 "우상"을 가리키며, "수준높은 자(다이몬)"은 헬라어로 "악령(사탄마귀)"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영지주의자들의 목표는 오직 한 가지, 악령과 하나가 되어 악령이 주는 영지를 깨달아 악령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영지를 깨닫게 되면 다 빛의 자녀가 된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여기서 "빛"이란 참된 빛이신 예수님 혹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실 "빛의 천사"였던 "루시퍼(악령)"의 빛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루시퍼는 천국에 가장 빛나는 천사장이었다. 하지만 그가 하나님이 되고자 쫓겨나서 빛을 잃게 되었고 그는 그후 어둠의 세상 주관자가 되어 있다. 그러므로 영지를 깨달으면 빛의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어둠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한편, 왜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한 복음서를 "도마복음"이라고 말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았는가? 그것은 도마가 "쌍둥이"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은 예수님과 쌍둥이였던 루시퍼와 하나되는 것이 영지를 깨닫는 것이요 그것을 구원이라고 하고 싶은 것이다.

 

9. 아무리 영지를 깨달은 자라 할지라도 그들이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리 지고한 영지(악령의 주는 지식을 통하여 악령과 하나가 됨)를 깨달은 자라 할지라도 그들은 절대 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그들이 엄청난 지식을 소유했다고 할지라도 그 지식을 주고 있는 악령(사탄마귀)을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롬6:16에 의하면, 누구든지 자신을 내주어 그에게 순종하면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된다는 말씀이 있다. 사탄마귀는 지금도 영지를 깨닫기를 원하는 자에게 엄청난 지식과 지혜를 줄 수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해서 수많은 지식과 지혜를 얻는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은 마귀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요한일서는 대체 무엇을 말해주는가? 죄를 짓는 자는 다 마귀에게 속하며(요일3:8),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마귀의 지배하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요일5:19).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마귀의 일을 멸하셨으니,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결코 마귀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는 이 책이다. 그런데 우선 모든 사람이 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인간이 지은 죄값을 대신하여 죽으셨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는 자는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로부터 벗어나게 되고, 지은 죄들이라도 자백함으로 용서를 받게 되면(요일1:9), 마귀도 더이상 인간을 지배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가르쳐주려는 것이 바로 요한일서다.

 

10. 나오며

  어떤 자들은 그래도 영지주의자들이 주장이 옳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가정하여 그렇다고 치자, 그러나 단 하나, 자기들이 진짜 마귀에게 속한 자가 아닌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기만 한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에 동의할 수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마귀의 쫄개들인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이 만약 자기 속에 숨어있는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면 그들의 주장이 옳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저들은 이미 자기들의 수호천사인 다이몬과 하나되어 있는 자들이 아닌가? 마귀의 지배하에 놓여있는 것이다. 마귀가 얼마나 지혜로운 존재인가? 주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너희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말씀할 만큼, 옛뱀인 마귀는 지혜로운 존재다. 그가 얼마나 지혜로웠으면 최고의 지식과 지혜를 갖췄던 아담과 하와마저 속여 선악과를 따먹게 만들었겠는가? 고로, 지혜라 치자면 마귀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 하지만 오직 믿는 자들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시는 예수님(계3:20)이 우리에게 있다. 그분은 마귀를 이겼고 마귀의 지혜보다 더 큰 지혜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 마귀를 이길 수 있다고 우리에게 가르쳐준다(요8:44, 요일4:4, 5:18). 혹시 당신은 마귀의 지배하에 놓여 있으면서도 지혜있는 자가 되고 싶은가? 그러면 영지주의자들의 노선에 서 있으면 된다. 하지만 마귀의 지배하에 벗어나 죽을 때에 이 세상을 탈출하여 참된 빛이신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에 들어가고 싶은가? 그러면 오직 참된 빛이신 예수님만을 믿고 따라가면 된다. 더불어 신약성경 27권이 진정한, 성령으로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따라가면 된다. 그러나 그것은 다 우리들의 선택에 달려있다. 건투를 빈다.

 

2019년 8월 11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요한은 왜 당시에 있는 교회들을 위해 요한일서를 써야 했는가?(요일2:18~26)_2019-08-09(금)

https://youtu.be/EjXwk8C0uwk

 

1. 도마복음서와 영지주의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가요?

  '도마복음서'는 1945년 12월, 이집트의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영지주의자들의 책들 중의 한 권의 책입니다. 이 책은 그때까지 이름만 알려져 있던 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교부시대의 초기교회역사가였던 유세비유스(A.D.260~340)가 자신의 저서인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중 제25장 "진서로 인정된 성경과 인정되지 못한 성경"의 부분에서, 이단자들이 사도들의 이름을 도용하여 만들어낸 책 가운데 "도마복음"이 있다고 언급해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945년까지는 도마복음서가 진짜 존재하고 있었는지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남아있는 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945년이 그 책이 발견되었는데, 그때에는 콥트어(이집트 고대언어)로 번역된 사본책이었습니다. 물론 사본은 잘못 기재된 부분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A.D.1898년에 이미 그리스어(헬라어)로 기록된 도마복음서의 일부가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고, 콥트어로 기록된 "도마복음"은 A.D.340년경에 필사된 것이라고 확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A.D.324년에 완성된 유세비우스의 책을 보니, "도마복음"이라는  책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A.D.324년이전에 이 책이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유세비우스는 자신의 교회사 책에서, 베드로복음, 도마복음, 안드레행전, 요한행전 등은 다 사도들의 이름을 빌린 위서(가짜성경)이라고 기록해두었습니다. 고로 우리는 도마복음은 약 3세기에 기록된 위서인 것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2. 영지주의가 교회에 당시 미치는 폐해는 얼마나 컸습니까?

  유세비우스보다 약 100년 앞선 시대에 살았던 초기 교부이자 변증가였던 "이레네우스(A.D.130?~202)"은 자신이 기록한 "이단을 반박하며"라는 변증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2세기 전체를 통해서 영지주의만큼 기독교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끼치는 것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당시 여러 이단들이 잘못된 사상과 주장들을 반박하는 글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고 기록하기 변증하기 시작했는데, 그중에서도 "영지주의"의 피해가 가장 심각하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영지주의들은 사도들이 세워놓은 온전한 신앙을 허무는 세력이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사상적 논리들이 결국 사도들이 증거했던 신앙과 성경기록들과 일치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 기독교 영지주의의 창시자 마르시온(A.D.85~160)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영지주의주의자들 중에 유명한 인물들로는 "마르시온", "발렌티누스", "바실리데스" 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알려진 사람을 들다면, 그는 아마도 "마르시온(A.D.85~160)"일 것입니다. 그는 자기 스스로를 사도바울의 후계자라고 하면서, 사도들의 신앙과는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구약성경 전체를 성경말씀이 아니라고 거부하면서,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신(여호와)은 물질세계를 창조한 저급한 신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오직 사도바울의 저작으로 알려진 사도바울의 10개의 서신들과 복음서로서 "누가복음"만을 성경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영은 깨끗하고 육은 더럽다고 여기는 영지주의의 사상을 기독교에 도입하여 이끄는 지도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물질세계를 만들었던 여호와 하나님을 저급한 신이라 했고, 예수님을 영지주의의 최고봉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성육신(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심)인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면서 그것을 부인했습니다.

 

4. 사도요한은 A.D.90년경 왜 "요한일서"라는 서신을 써야 했습니까?

  사도요한은 예수님보다 나이가 젊었던 가버나움의 부자 어부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받은 이후, 그는 예수께서 죽으시던 현장 곧 십자가 아래까지 따라간 유일한 제자였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죽음을 무릎쓰고 십자가 아래까지 따라온 그를 귀하게 보셨고, 그를 끝까지 보호해주셨습니다. 그래서 A.D.34년경 스데반의 순교이후 다른 사도들은 비록 각자의 선교지 현장으로 떠나서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에 거의 다 순교했지만 사도요한만큼은 끝까지 살아남도록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사도요한은 A.D.90년경에 요한일서를 기록할 수 있었고 A.D.95년경에서는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요한일서"는 1세기말 교회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해주는 놀라운 말씀인데, 사도요한은 당시에 적그리스도이자 거짓선지자들이 교회가운데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도 원래는 사도요한과 같은 정통기독교에게 속해 있었으나, 자기들로부터 떠나간 자들로서(요일2:19), 그들은 진리(영지)를말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은 진리에서 벗어난 자들로서(요일2:21),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들이자(요일4:2~3) 교회를 "미혹하는 자들"(요일2:26)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벌써 영지주의가 소아시아와 로마에 있는 교회 가운데서 침투하여 많은 피해를 입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5. 사도요한은 요한일서를 통해 무엇을 말씀하려고 했습니까?

  사도요한은 요한일서를 기록하여,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빛과 어둠"의 개념이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다른 것임을 알려주려고 했었고(요일1:5~6, 2:8~11), 사람은 마귀에게 속하여 범죄하여 죄인이 되었으며(요일3:4~5,8), 어떤 죄인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면 그분의 피로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요일1:9,2:12)을 증거하려고 했습니다(요일1:7~9, 2:12). 그는 죄가 없으신 하나님은 빛이시며, 하나님의 나라는 빛의 나라이기 때문에에 죄인은 결코 그곳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를 없애주시고 살려주시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이 세상에 보내주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요일2:2, 4:9~10). 그런데 당시 영지주의자들 중에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요일2:22); 또한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요일4:2~3).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았으며, 단지 예수님을 영지주의의 선각자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도 요한은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영지를 깨우쳐 주려고 온 선각자가 아니며,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 땅에 사람의 육신을 입고 오신 구세주로서(요일4:14),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자(요일5:5) 그리스도이시며(요일5:1), 하나님 자신(요일5:20)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은 영지를 깨달음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이 땅에 속죄제물로 오신 예수님을 믿어야 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함으로 서영을 받아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모든 사람으로 알도록 하기 위해 이러한 요한일서를 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도마복음을 놓고서, 이것만이 진짜 역사적인 예수님의 말씀이고 주장하는 모든 이들은 다 영지주의자들의 거짓말에 놀아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이러한 속임수와 장난에 넘어가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우리는 오직 사도들과 그의 속사도들에 의해 성경에 기록되어 우리에게 전달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죄를 없애기 위해 속죄제물로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만을 나 자신의 구주요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믿고 따라가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19년 8월 9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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