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을까? 보통 '요한계시록'하면 장차 되어질 일이 기록된 책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좀 더 들여다보면, 예수께서 누군지를 알려주는 최종 계시의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예수님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시다. 과거에 사람이셨던 분이시다. 고로 예수님은 신성에 관한 칭호와 인성에 관한 칭호를 모두 다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 천상에서 예수께서는 지금 어떤 위치에 있을까? 요한계시록에서 그분을 칭하는 마지막 칭호는 대체 무엇인가? 우리가 그분에 관하여 칭호 한 가지만을 고르라면 우리는 어떤 칭호를 고르는 것이 선택해야 하는가?

 

2022-06-05(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요한계시록의기독론(30)[최종회]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예수님은 누구이신가(30)(계22:20~21)_2022-06-05(주일)

https://youtu.be/mUao2GcYn2s  [혹은 https://tv.naver.com/v/27207834 ]

 

1. 들어가며

  예수께서는 누구신가? 이것은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끊임없이 물어야 하는 질문 중의 질문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아는 만큼 우리도 예수님의 어떠하심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요, 그분으로 인하여 우리가 살아낸 만큼 저 천국에서 우리의 지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그분을 제대로 믿는 것은 매우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려주는 가장 훌륭한 성경(교본)을 하나를 고르라면 우리는 단연코 요한계시록을 고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은 성경 66권 가운데 가장 늦게 기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신구약의 모든 계시의 완성으로 주어진 결론의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이 누군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동안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기독론에 관한 연구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번 기회를 통하여, 요한계시록에 나타나 있는 예수님에 관하여 거의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요한계시록의 기독론의 마지막 시간으로서 총 정리의 시간을 가짐과 동시에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예수님은 한 마디로 어떤 분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2. 요한계시록에 나타나 있는 예수님의 신성한 칭호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요한계시록에는 예수님에 관한 신성한 칭호들도 있고, 인성에 관한 칭호들도 있다. 그중에서 신성에 관한 여러 가지 다양한 칭호들을 종합해 보면, 그분이 '한 분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신성한 칭호로서 자신을 맨 처음에는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계1:17)"고 말씀하셨는데, 맨 나중에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계22:13)"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예수님의 칭호가 구약시대에는 오직 한 분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한 칭호로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사41:4, 44:6, 48:12). 그러므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는 실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여호와로 계시하신 바로 그분이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1:8에서 자신을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말씀하신 분은 누구신가? 그분은 '주 하나님'이시며 '전능하신 이'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올 자"라고 말씀하셨다(계1:4,8,4:8). 그런데 이분은 진정 누구신가? 우리는 이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금새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일곱째 나팔과 함께 ㅊ너국에서 공중하늘로 오신 예수께서 자신을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신 이"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계11:17, 16:2). 이때 공중하늘로 오신 그분은 "인자같은 이"라고 표현되어 있다(계14:14). 그런데 요한계시록 1:13의 말씀을 보면, "인자같은 이"는 예수님으로서, 자신을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신 이이시다(계1:17). 또한 예수께서는 자신을 '보좌에 앉으신 이"라고 하심으로 그분이 주 하나님 자신인 것을 드러내셨다(계3:21, 20:11~12). 그리고 그분은 자신을 '세세토록 살아계신 이'라고도 하셨다(계1:18, 11:15). 그리고 이어서 그분은 자신을 '창조의 근본(시작)이신 이'라고도 하셨다(계3:14). 또한 예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이 땅에 보낸 성령을 통하여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감찰하시는 전지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셨다(2:18, 23, 5:6).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예수께서는 하나님에 바쳐진 동일한 경배와 찬양을 그대로 받고 계신다(계5:12~14). 고로 우리는 그분에게 불려진 칭호들을 종합해 볼 때에 예수님은 바로 '한 분 하나님'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3.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있는 예수님의 인성의 칭호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렇지만 하늘에 오르신 예수께서는 자기 자신을 한 때는 사람이었던 존재였음을 분명히 밝히셨으니, 그의 칭호들 속에서 우리는 그분이 과거 인성을 취하셨던 사람이셨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원래는 '다윗의 뿌리'이셨지만(계22:16), 그분은 '유다지파의 사자'이자(계5:5) '다윗의 자손'으로서(계5:5,22:16)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그분은 '아기'이자 동시에 '아들'로서 이 세상에 태어나셨다(계12:2,5). 그리고 그분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나서는, '그리스도'라는 3중의 직책을 수행하셨으며(계1:1,2,5, 11:15, 12:10, 20:4, 20:6), 인류를 위한 대속제사를 위하여,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시었고(계5:6,7,8,13...총30회),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계11:8). 그것은 그분이 이 세상에서 '인자(사람의 아들)'로 오셨기에(계1:13,14:14)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이 되실 수가 있으셨다(1:18). 그분은 또한 그리스도로서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가 되셨으며(17:14,19:16), 그분은 '목자'이기도 하신다(계7:17). 그리고 그분은 인간으로 오셔서 성실하게 사셨기에 아버지에게 대하여 자신을 "충성되고 신실한 이"라고 표현하실 수 있었다(1:5). 또한 그분은 하나님이셨지만 이 땅에 아들로 보내어졌기에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하셨다(계2:18).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께서 한 때에 인성을 취하실 분이지 지금도 인간이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때 인성을 취하셨다는 측면에서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인자(사람의 아들)'이라고 칭할 수가 있는 것이다. 

 

4.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예수님이 누군지는 한 마디로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예수님은 한 마디로 어떤 분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그것은 "주[님]"(퀴리오스)이라는 칭호로 정의할 수 있지 않겠나 싶다. 왜냐하면 주님이라는 칭호는 그분이 인성을 취하실 때에도 불려진 칭호이지만, 지금 천국에서는 '하나님'이라는 칭호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주님'이라는 칭호는 예수께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계실 때에 사람들과 제자들이 먼저 불렀던 칭호였다. 그때 '주님'이라는 칭호는 그것이 '하나님'과 같은 신적 존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선생님'이나 혹은 '위대한 선지자'와 같은 의미였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공생애를 살고 계실 때에 사람들과 제자들이 불렀던 칭호를 보면, 그분은 "주님", "랍비", '선생님",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 등으로 불리셨음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승천하셔서 하늘에 계신 우리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모든 만물로부터 '주님'이라는 칭호를 기꺼이 받고 계신다. 

 

5.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주님'이라는 칭호는 어떤 칭호인가?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주님'이라는 칭호는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 칭호였을까? 요한계시록을 보면, '주님'이라는 칭호는 다음과 같은 3가지 대상에게 사용되었다.

  첫째는 '한 분 하나님'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이때 '주님'이라는 칭호는 '하나님'이라는 칭호와 함께 동시에 사용되었다. 그래서 "주 하나님"(11회)(계1:8, 4:8, 4:11, 11:17, 15:3, 16:7, 18:8, 19:6, 21:22, 22:5, 22:6)이라고 불리셨다. 그리고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7회)(계1:8, 4:8, 11:17, 15:3, 16:7, 19:6, 21:22) 혹은 "주 하나님이 전능하신 이,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2회)(계1:8, 4:8) 라고 사용되기도 하였다. 둘째로, '주님'이라는 칭호는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을 지칭하는 용어로도 사용되었다(계11:4). 이것은 구약의 말씀인 스가랴서를 인용하여서 그렇다(슥4:14). 마지막으로 셋째, 그것은 순수하게 우리 주 예수님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요한계시록에서 총 6번에 걸쳐서 나온다(계1:10, 11:8, 14:13, 17:14, 22:20, 22:21).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 사용되는 '주님'이라는 칭호는 대체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가? 요한계시록에서 '주님'이라는 용어는 사실 '하나님'을 대신하는 동격의 칭호라고 정의할 수 있다. '주님'이라는 말과 '하나님'이라는 말이 사실 동격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근거는 요한복음에서도 살펴볼 수 있는데, 거기에서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리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요20;28)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나의'라는 소유격을 빼버린다면, 예수님은 '주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이는 '주님'이라는 칭호가 곧 '하나님'이라는 칭호를 대신하는 동격의 칭호라는 것을 알려준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제자들이 '주님'이라고 불렀던 분을 이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한편, 요한계시록의 맨 마지막 부분에 가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주님'이라는 칭호를 붙여서 "주 예수'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즉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계22:20-21)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사도 요한은 맨 마지막으로 예수님에게 "주님'이라는 용어를 붙여서 사용함으로써 그분이 곧 '주 하나님'이신 것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계22:16에서는 예수님께서 손수 자신을 가리켜 "나 예수"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그분이 구약시대에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라는 것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라는 의미의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렇다. 그분은 스스로 있는 자시요 그분만이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6. 나오며

  우리는 장장 30번의 시간을 통하여, 요한계시록에 나타나 있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살펴보았다. 처음에 그분은 흰 머리를 가지시고 흰 옷을 입으신 분으로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셨다. 그것은 다니엘이 보았던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의 모습과 같은 것이다(단7:9). 하지만 그분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님이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분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여호와로 나타나신 것이며, 신약시대에는 아들로서 사람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사람이 되셔서 인류를 위한 대속제물로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 그리고 하늘로 되돌아가셨다. 그러므로 지금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에는 바로 예수께서 앉아계신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한 분 하나님의 보좌를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라고 불렀다(계22:1,3). 예수께서는 원래 한 분 하나님으로 계시다가 우리를 위해 사람으로 오셨으며, 다시 하늘로 되돌아가신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한 한 분 하나님에 대한 경륜을 말해주는 가장 대표적인 표현으로서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는 성부 하나님에 대한 칭호가 아니며,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칭호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장차 오실 이'로 표현된 하나님이 다름 아닌 예수님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계11:17, 16:5). 영국의 신약학자 리차드 보컴(보쿰) 교수는 그의 저서 "요한계시록 신학"(한들출판사, 2000)이라는 책에서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이심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리하여 보컴 교수는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였다. "그리스도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즉 예수님이 심판하는 것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이요, 예수님이 통치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이 보좌에 앉으시는 것은 하나님이 앉으시는 것이다." 그렇다. 예수님이 곧 주 하나님이신 것이다. 할렐루야! 

 

2022년 06월 05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03)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는 무엇인가?(02)(계1:4~8)_2022-04-28(목)

https://youtu.be/0AtNjqrKXSs  [혹은 https://tv.naver.com/v/26519059 ]

 

1. 요한계시록에 1장 4절에서는 주 하나님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 1장 4절에는 주 하나님을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소개되고 있는 분이 8절에서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전능한 자'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렇다. 주 하나님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이시며,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전능한 자이신 것이다. 

 

2.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을 소개할 때에 지상에 계실 때에 비로소 제자들에게 계시된 예수님의 칭호 이상으로 소개되어 있다. 사실 지상에 계실 때에 그분에 대한 최고의 칭호는 그분이 그리스도이시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었다(마16:16).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는 그 이상으로 소개된다. 다시 말해, 그분은 지상에 계실 때에 불려졌던 바로 그 칭호 외에도 한층 고양된 칭호가 소개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분이 '주 하나님'이라는 표현인데, 주 하나님이신 그분은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라고 말씀하셨으며, 그분은 "전능자이시며,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에 대해서 줄곧 '주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쓰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그분이 '주 예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다(계22:20,21). 주 하나님이 곧 주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다"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보좌에 앉으신 이 곧 주 하나님이라고 소개되어 있다(계21:5~6, 19:4). 그런데 요한계시록 맨 마지막에 가면, 주 예수께서는 자기 스스로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과 마침이다"고 말씀하고 있다(계22:13). 고로 우리는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참고로, 요한복음에서도 주 예수님에 대한 칭호가 한층 더 고양된 형태로 소개되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12제자들 중의 하나였던 사도 도마의 신앙 고백에 나타나 있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본 후에 그분에게 '주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다(요20:28).

 

3.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는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를 성부 하나님에 대한 소개라고만 알고 있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그렇게 해석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목회자들도 다 그것을 그대로 따라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가 성부 하나님에 대한 칭호라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요한계시록에서, 바로 그 책에서만 표현되어 있는 독특한 하나님의 칭호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는 칭호이다. 그런데 이 칭호는 구약 시대 때에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서 그분에게서 들었던 하나님에 대한 칭호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때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계시하셨다(출3:14). 그런데 이 표현은 히브리어로 '아흐예 아쉐르 아흐예'로서, '나는 내가 ~라고 하는 이다'라는 뜻이다. 이것을 헬라어의 70인역에서는 '나는 지금 있는 이이다.'라고 번역해 놓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는 표현은 구약에서 조금은 암시가 되었다고 할 수는 있으나, 요한계시록에서 비로소 표현된 독특한 하나님의 칭호로 표현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4.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는 대체 누구신가?

  그렇다면,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는 대체 누구신가? 많은 주석학자들이 해설하고 있듯이 이 칭호는 성부 하나님을 지칭하는 용어인가? 아니면 다른 칭호이기도 하는가? 얼핏 보기에는 이 표현이 성부 하나님에 대한 표현처럼 보인다. 아니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만 보아서는 아니된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는 하나님 칭호는 성부 하나님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칭호가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표현이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을 지칭하는 표현으로도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는 칭호는 요한계시록에서 딱 3번 나올 뿐이다. 요한계시록 1:4,8과 그리고 4:8이 그것이다. 1:4과 1:8에서는 동일한 표현으로 나오고, 4:8에서는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라고 하여서 첫째와 둘째가 순서가 뒤바뀌어서 나오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문구의 순서에 있어서만 차이가 있을 뿐 다 동일한 표현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1장과 16장에서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는 하나님에 대한 칭호가 축소되어서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는 이'라고 나온다(계11:17, 16:5). 즉 '장차 오실 이'라는 부분이 삭제되어 나타나 있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된 것인가? 사도 요한이 모른 채 빠뜨리고 기록한 것인가? 아니다. 성경은 함부로 실수한 것을 기록해 놓은 책이 아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표현들에는 의미가 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럼 왜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재림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장차 오실 이'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그때는 언제인가? 그것은 일곱 번째 나팔 소리가 날 때다(계11:15). 이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주님께서 공중으로 강림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일을 위해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으로 표현된 예수께서는 이제 두루마리를 사도 요한에게 넘겨주시고 재림하신 것이다. 즉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으로부터 큰 두루마리를 취했던 예수께서는 일곱 인들 중에서 여섯째 인까지 떼시고 또한 일곱째 인을 떼신 후에 여섯째 나팔까지 주관하셨다. 그리고 이제 그분이 재림하셔야 하니까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예언의 말씀인 두루마리(그래서 작은 두루마리가 됨)를 사도 요한에게 넘겨주신 것이다. 이것이 요한계시록 10장에 막간 계시로서 나온다. 그렇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는 표현은 성부 하나님에 대한 칭호가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 모두를 지칭하는 칭호였던 것이다. 정리한다면,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는 칭호는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칭호인 것이다. 

 

5.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리는 성경 전체의 기록을 통하여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단지 성자 하나님만 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은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이 '성자 하나님이시다'는 말과 그분이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다'라는 말은 어떻게 차이가 나는가? 만약 우리가 그분을 성자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면, 그분은 더 이상 성부 하나님은 아니라는 것이며 성령 하나님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내용이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최고의 신앙 고백으로 알려지고 있는 벨직 신앙고백에 고스란히 나온다. 그러나 이것을 두고 100%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겠지만(왜냐하면 아들은 아버지와 서로 구별되시기 때문이다), 100% 맞다고도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라기보다는 그분은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 곧 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것은 창세기와 이사야와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해서 확인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의 놀라운 자기 선언이 나온다. 그분은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무려 3번씩이나 "나는 ~이다"라고 말씀하셨다(요8:24,28,58). 이는 예수께서 출애굽기 3:14에 나오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표현을 직접 자신에게 적용하신 사례이다. 그러자 난리가 났다. 유대인들이 그만 예수님을 귀신이 들렸다고 몰아붙이면서 네가 아브라함보다도 크냐고 질문을 던진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다"고 대답하신다(요8:56). 그러자 유대인들은 "네 나이가 아직 50도 아니 되었는데 어떻게 아브라함을 보았느냐"고 말한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8:58).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예수님은 "나는 ~이다"라고 하는 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심을 의미한다. 즉 예수께서는 이제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주 하나님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실로 놀라운 말씀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진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탄생하실 때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서로 협의를 하여 성자가 아들로 내려오셨다고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교리에만 나올 뿐 실제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 표현이다. 성경에서는 단지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던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당시 여호와 하나님으로 계시되었던 한 분 하나님께서 훗날 인간에게 다시 오실 때에는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다는 것을 말씀한 것이다. 그렇다.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이다. 예수께서 만세 전부터 아들로 따로 있다가 아버지와 협의를 한 후 스스로 이 땅에 내려오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될 때에 비로소 아버지에게서 나와서 이 땅에 들어오신 것이다. 그분은 결코 아버지로부터 독립되어 따로 나타나 있다가 아들로 오신 것이 아닌 것이다(요16:27~28).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 곧 주 하나님의 체현이시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품속에 있다가 드디어 나타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아기이자 아들로 오실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자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말씀한다(사9:6). 고로 만약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28:19)"고 하셨던 예수님의 명령을 제자들이 모두 "예수의 이름으로(행2:38, 8:16, 10:48, 19:5)" 바꾸어서 세례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라는 이름은 한 분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도 되고, 아들의 이름도 되고 성령의 이름도 되는 것이지만 그분이 우리에게는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기에 우리가 예수라는 이름을 아들의 이름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들이 세례를 줄 때 어느 누구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 일이 없고, 모두가 다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문구로 세례를 주었다고 나온다. 이는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2022년 04월 28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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