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 강해(09)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은 단순한 지방말인가 영의 언어인가?(행2:1~13)_2022-06-14(화) https://youtu.be/Ob2Za44fgAg [혹은 https://tv.naver.com/v/27449644 ]

 

1. 오순절날 마가 다락방에 모인 성도들에게 성령세례로 인하여 나타난 표적은 무엇인가?

  오순절날 마가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에게 성령께서 부어졌다. 그러자 하늘로부터 운반되어지고 있는 강력한 바람 같은 어떤 소리가 났고 불처럼 혀들이 갈라지고 있으면서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있게 되었다(행2:2~3). 이것은 성령께서 오실 때에 능력의 천사들이 함께 와서 그들 위에 '능력'을 옷 입혀 주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바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5)"는 말씀이 성취되었고, 성령세례를 받으면 능력으로 옷 입혀질 것이라는 말씀도 역시 성취되었다(눅24:49). 그런데 그날 그들에게 능력의 천사들만 주어진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 모두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행2:4). 이는 예수께서 천국에 가시면 아버지께로부터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시어 제자들 속에 있게 하시겠다는 말씀도 동시에 성취된 것임을 말해 준다(요14:16~17, 26, 15:26). 그리하여 말세에 모든 육체 위에 성령이 부어질 것이라는 요엘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었으며(욜2:28~29),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을 믿는 이들 속에 넣어 주실 것이라는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도 함께 성취된 것이다(겔36:24~28). 

 

2. 오순절날 성도들에게 성령이 주고 있었던 것처럼 담대하게 말하고 있도록 부어진 딴 종류의 방언들은 대체 무엇인가?

  놀랍게도 오순절날 마가 다락방에 모인 모든 성도들은 성령이 그들 위에 부어지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그때 처음 있는 일이었다. 구약에는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날 말해진 '방언'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우리말 개역개정 성경은 방언을 '언어'라고 번역해 놓았음) 그것을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글로싸"(복수는 '글로싸이스')로 나와 있다. 그럼, '글로싸'라는 말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것은 사도행전 2장에만 2번 나온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로 주어지는 것으로 사도행전에 두 번 더 나온다. 한 번은 고넬료 가정에 성령이 부어질 때 주어진 것이며(행10:46), 또 한 번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가서 안수함으로 성령이 그들 위에 내려오실 때에 주어진 것이다(행19:6). 그때 고넬료 가정에서는 '방언(글로싸)'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나타났으며, 에베소 교회에서는 '방언(글로싸)'과 '예언'이 나타났다. 사도행전에서 이 단어에 대한 다른 두 번의 용례가 더 있지만 이것은 그냥 "혀"로만 번역되었을 뿐이다(행2:3,26).

 

3. 우리말 개역개정 성경은 왜 '방언'(글로싸)을 '언어'라고 번역한 것인가?

  우리말 개역성경이 개역개정판으로 넘어오면서 사도행전 2장 4절과 11절에 나오는 '글로싸'라는 단어를 '방언'이라는 단어로부터 '언어'라는 단어로 고쳐 놓았다. 그러니까 이전에 사용하던 개역한글 성경에는 '방언'이라고 번역했던 것을 이번에 개역개정판으로 개정하면서 '언어'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글로싸'라는 단어를 '언어'라고 번역한 것이 과연 옳다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바른 방향은 아니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단어를 번역할 때에는 일관성 있게 번역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즉 개역개정판 성경이 나오기 전에 개역성경에서는 '글로싸'라는 단어를 성령의 은사를 가리키는 경우에는 모두 다 '방언'이라는 말로 번역해 놓았는데, 개역개정판에서 '언어'로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행2:4,11에 나오는 '글로싸'라는 단어를 개역개정판에서는 '언어'라고 바꿔 놓은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아마도 오순절날 120명의 성도들의 성령의 은사(선물)로서 주어진 말이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인 '글로싸'가 아니라, 알아들을 수 있는 '지방말('디아레크토스')'이 아니었겠나 라고 주장하는 분들의 해석을 감안하여 바꾸어 놓은 것 같다. 왜냐하면 그날 120명이 하는 말 곧 '글로싸'를 듣고 찾아온 15개국의 헬라파 유대인들이 다 자기들이 태어난 곳의 말 곧 지방말('디아레크토스')로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언 통역의 은사에 대해 아는가? 방언 통역이란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자기 나라의 말로 알아듣고 그것을 통역하는 은사를 가리키는데, 방언 통역자에 따라 조금은 다르겠지만, 방언 통역은 방언하는 자가 남이 알아들을 수 없는 '글로싸'를 말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방언 통역자의 귀에는 그것이 알아들을 수 있는 자기 나라의 말로 들리기 때문에 그것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다. 고로, 그날 15개국의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 나라의 언어로 그들이 말했던 것을 들었다는 것은 15개국 사람들에게 일종의 방언 통역처럼 들리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하신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4. 오순절날 말해졌던 '글로싸'가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오순절날 120명의 성도들이 말했던 '글로싸'가 지방말이 아니라,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말이었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증거로 확인할 수 있다. 첫째와 둘째의 증거는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증거이며, 셋째 것은 고린도전서 14장에 나오는 증거이다. 먼저, 첫째 증거는 사도행전 2장 4절에 나오는 단어가 그것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그날 120명의 성도들이 말한 것은 '다른 언어들'였다. 그런데 이 표현을 헬라어로 보면, 그것의 그 뜻을 금방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날 120명의 성도들이 말했던 언어는 같은 종류의 다른(another) 방언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다른(different) 방언들'이라고 쓰여 있기 때문이다. 이때 사용된 '다른'이라는 말은 '같은 종류의 다른'을 뜻하는 단어인 '알로스(allos)'가 쓰인 것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다른'을 뜻하는 '헤테로스(heteros)'가 쓰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날 120명의 성도들이 말했던 언어는 지구상에서 말해지고 있는 여러 종류의 언어들(지방말들)이 아니라 지구상에서는 말해지지 않은 전혀 다른 종류의 곧 딴 밖의 언어였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날 120명의 성도들이 말했던 방언은 지구상의 지방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말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였던 것이다. 둘째 증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것을 들었던 자들의 반응이다. 먼저 그날 15개국에서 온 사람들은 이 언어를 자기네 나라의 말로 들었다. 그런데 그들은 분명 글로싸로 말하고 있는데, 자기네 나라의 말로 들은 것이다. 그래서 참으로 이상한 일이라고 여기고 있었다(11절).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른 채 나중에 온 사람들은 이들이 아침부터 술취한 것이 아니냐고 조롱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의 귀에는 자기네 나라의 말로 들린 것이 아니라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것이 헬라어 원문에 나온다. 사도행전 2:11~12의 헬라어 원문은 이렇다. 

행2:12~13[직역] 그런데 모두가 놀라고 있었고 당황하고 있었다. [같은 종류의] 다른(allos) 이가 [같은 종류의] 다른(allos) 이를 향하여, [그들이] 말하고 있기를, 이것이 있는 것이 무슨 뜻인가?(이것이 어찌 된 일인가?) 13 그런데 [다른 종류의] 딴(heteros) 이들은 심히 조롱하고(야유하고) 있으면서 말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달콤한 새 포도주에 가득 차게 된 채로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5. 성령세례로 인하여 120명의 히브리파 유대인들에게 주어졌던 방언('글로싸')은 어떤 것인가?

  성령세례로 인하여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졌던 방언(글로싸)의 은사는 어떤 것인가? 이것을 두고 첫째, 예수께서는 앞으로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표적들 가운데 하나라고 하셨다(막16:17~18). 둘째, 베드로는 성령께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다(행11:17). 셋째, 사도 바울은 성령의 9가지 은사들 중의 하나라고 했다(고전12:10). 그리고 앞으로 자세히 더 다루겠지만 사도 바울은 방언의 은사는 영의 언어(말)로서, 영의 기도이자(고전14:14~15) 영이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것(고전14:2)이라고 했다. 

막16:17-18 믿는(믿었던)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동반될 것이다)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안에서) [장차] 귀신을 쫓아내며 [그리고] 새 방언들(글로싸이스)을 [장차] 말하며(발설할 것이다)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행11:17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고전12: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글로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글로싸이스) 통역함을 주시나니 
고전14:14-15 내가 만일 방언(글로싸)으로 기도하면(기도한다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기도하는 것이다) [그럴지라도]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15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장차] 영으로 기도하고(기도할 것이다) 또(역시) 마음으로 [장차] 기도하며(기도할 것이다) 내가 영으로 [장차] 찬송하고(찬송할 것이다) 또(역시) [장차]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고전14:2 방언(글로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2022년 06월 14일(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 강해(08) 오순절 성령세례로 인해 나타난 표적은 무엇이었나?(행2:1~4)_2022-06-13(월)

https://youtu.be/KvZ2cJVxnkU  [혹은 https://tv.naver.com/v/27324716 ]

 

1. A.D.30년 5월 28일 오순절날이 되자 마가 다락방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A.D.30년 5월 28일 오전 9시경, 오순절날이 이르자 마가 다락방에는 어떤 현상이 나타났는가? 그때에 3가지 현상이 나타났다. 첫째로는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으며, 그리고 둘째로는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보였고, 셋째로는 거기에 모인 자들의 입에서 방언들을 말하기를 시작했다는 것이다(행2:1~4). 여기서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것들은 성령이 각 사람들 머리 위에 머무르게 되었을 때에 나타나는 표적들이며, 세 번째의 것은 성령께서 사람 속에 내주하시면서 나타나는 표적이다. 왜냐하면 우리 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은 외적인 성령세례 뿐만 아니라 내적인 성령세례도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때 밖에(사람의 머리 위에) 부어지는 성령세례는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말씀하신 것이고(눅24:49, 행1:5),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세례는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저녁에 말씀하신 것이다(요14:16,26,15:26, 16:7~10). 

 

2. 오순절날 아침에 펼쳐진 이 현상은 성령강림 사건인가 아니면 성령세례 사건인가?

  오순절날 아침 9시경에 일어난 이 사건은 어떤 사건인가? 성령이 오신 사건인가 아니면 성령세례가 부어진 사건인가? 얼핏 보기에는 성령이 강림한 사건이라고만 보일 것이다. 맞다. 그날이 성령이 오신 것이 맞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약속하신 바 성령세례 사건이 동시에 펼쳐지게 된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첫째로, 예수님께서 직접적으로 성령이 오시면 능력으로 옷입혀지게 되는 성령세례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눅24:49, 행1:4~5, 8).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4~5)" 그리고 둘째로, 오순절날 아침에 일어난 사건은 성령세례 사건이었다고 베드로가 훗날 알려주었기 때문이다(행1:15~17). 그것은 베드로가 성령의 지시를 받아 이방인이었던 고넬료 가정에 복음을 전파할 때에, 거기에서 일어난 성령세례 사건을 예루살렘 교회에 보고하면서 말한 것이다. 그때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행11:15~17)" 그렇다. 베드로는 오순절 아침의 사건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사건이었음을 고백했으며, 그때 그들에게 성령의 선물이 주어졌다는 것을 말했다. 

 

3. 바람과 불의 혀 같은 것의 나타남과 그리고 방언은 어떤 구약의 예언 말씀의 성취인가?

  우리는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2가지 성령세례 곧 '내적인 성령세례'와 '외적인 성령세례'를 부어주실 것을 약속했다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그중에 내적인 성령세례에 대한 약속은 에스겔 선지자가 예언한 것이며(겔36:24~28), 외적인 성령세례에 대한 약속은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것이다(욜2:28~29). 고로 오순절날 일어난 세 가지 표적은 이 두 가지 약속이 모두 다 성취된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령께서는 믿는 이들 속에도 들어오시게 되었으며, 믿는 이들 머리 위에도 부어지심으로 복음전파를 위한 준비가 완료된 것이다. 

겔36:24~28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욜2:28~29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모든 육체 위에)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4.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오순절날 성령께서 120명의 성도들에게 부어질 때에 나타난 현상들 곧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이러한 현상은 우선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셔서 모세에게 율법을 직접 주려고 하실 때에 시내산 꼭대기에서 일어난 사건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때도 청각적인 소리와 시각적인 현상이 동시에 나타났기 때문이다(출19:16~19). 

출19:16~19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17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서 있는데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19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우레와 번개 그리고 나팔소리 및 연기와 불은 하나님께서 직접 시내산에 내려오실 때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먼저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오시기 전에 '우레'와 '번개'와 '나팔소리'가 났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청각적인 현상을 말한다. 그리고 둘째로, '연기'와 '불'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는 시각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직접 강림하실 때에는 이와같이 2가지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이 강림하실 때에는 청각적인 어떤 현상이 나타나고, 시각적인 어떤 현상도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순절날 마가 다락방에서도 나타난 표적들 곧 청각적인 소리가 들리고, 시각적으로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인 것은 하나님이 오셨다는 증거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의 실제적인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천사들'이 왔다는 것이다. 성령께서 오실 때에 천사들을 대동하고 오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들은 얼마라 실제적이었는가는 오늘 본문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헬라어 성경으로 행2:1~4의 말씀을 살펴보자.

행2:1~4[직역] 그리고 오순절날의 가득 채워지게 됨 안에서 그들 모두가 같은 곳 위에 함께 있어 왔다. 2 그리고 갑자기 하늘로[안에서]부터 [밖으로] 마치 운반되어지고 있는 강력한 바람 같은 어떤 소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이 앉아 있는 바 온 집을 가득 채웠다. 3 그리고 마치 불처럼 혀들이 갈라지고 있으면서 그것들이 그들에게 보여졌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각각의 한 사람씩 위에 앉았다. 4 그러자 그들 모두가 거룩한 영의 어떤 것으로 충만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들은 그 영이 그들에게 주고 있어온 것처럼 [계속해서] 담대하게(크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도록 딴(종류의 다른) 방언들을 [계속해서] 발설하기 시작했다. 

  이때 들리는 소리는 저 하늘 안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이었고, 불의 혀들도 같이 내려와서는 사람들 위에서 갈라지더니 각 사람 위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성령께서 오실 때 보이는 모습과 들리는 소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체적으로는 천사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다음 문항을 통해서 자세히 살펴보자. 

 

5. 오순절 성령세례 사건 때 나타난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들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우리는 오순절날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들'은 오순절날 모인 성도에게 일어난 성령세례에 대한 표적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들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시편104:3~4과 히브리서 1:7에 아주 구체적으로 나온다. 

시104:3~4 [그분은]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4 바람[들](영들)을 자기 사신[들](천사들)로 삼으시고(만드시고),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들](수종드는 자를)를 삼으시며(만드시며)
히1:7  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셨으되 

  그렇다. 성령께서는 능력 있는 천사들을 바람과 불꽃으로 삼고 그날 강림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오순절날에 하늘 안에서부터 밖으로 내려왔던 소리 같은 것과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들의 실체는 천사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때 온 천사들의 분류가 '능력들'이다. 이는 사실 영계에서 볼 때 좀 더 높은 계급의 선한 천사들이 온 것임을 알 수 있다(엡1:21). 하늘의 천사들 중에는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보좌' 등과 같은 높은 계급을 가진 천사들이 있는데(엡1:21, 3:10, 6:12, 골1:15), 이들 중에서 '능력(뒤나미스)'의 천사들이 그날 성령과 함께 온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행1:5) 곧 성령이 오시고 성령세례가 부어지면 능력을 옷입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 고스란히 성취된 것이다. 

 

2022년 06월 13일(월)

정병진목사

 

지금까지 성령의 내주는 오순절 성령강림이후에만 있었는가? 하지만 창6:3의 말씀은 우리에게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노아홍수이전에 그러한 때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에녹과 노아는 의인이자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순절날 질적으로 새로운 영이 믿는 이들 속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렇다면 오순절 이후 성령의 내주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놀라운 사실은 무엇인가? 참된 그리스도인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21-01-03 주일낮예배
제목: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창6:1~3)
https://youtu.be/t2ppPQoaeyc  [혹은  https://tv.naver.com/v/17666639 ]

 

 

1. 들어가며

  신적 존재란 사람 속에 들어올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신들 중에는 귀신도 있고 성령도 있다. 귀신은 무당들이 신으로 섬기는 존재이지만, 성령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으로 섬기는 존재다. 그런데 귀신도 사람 속에 들어오고 성령도 사람 속에 들어온다. 그런데 귀신은 한 번 들어오게 되면 막무가내로 장악하여 끌고 간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매우 인격적이어서 우리가 허락하지 않는한 강제하지는 않으신다. 그런데 영 안을 열어서 보면, 사람의 뇌의 70~80%는 귀신이 장악하는 경우가 많고, 성령께서는 20~30%정도만 차지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 의 뇌(혼의 좌소)는 귀신과 성령의 각축장인지도 모른다. 영적 전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몸속에 있는 귀신들과의 싸움이자, 육체와 귀신에게 사로잡혀있는 혼(souls)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귀신들과 혼은 사실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가 귀신들과 자신의 혼과의 싸움에서 과연 어떻게 하면 백전백승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만약 이 말씀을 주의깊게 듣고 그것을 믿음으로 아멘 한다면 우리에게는 놀라운 영적 세계가 펼쳐지게 될 것이다. 

 

2. 영적 싸움이란 대체 무엇과의 싸움인가?

  영안을 열어서 보면, 귀신은 아기가 엄마의 태중에 잉태되는 순간부터 사람의 육체 속에 들어와서 거주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가 태중에 잉태된지 약 2~3개월쯤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영"을 태아에게 넣어주신다. 그리고나서 예수믿은 후에 거듭날 때에 성령께서도 사람 안에 들어온다. 그러니까 사람 속에는 귀신과 사람의 영과 성령이 차례대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런데 아담의 타락이후 사람들은 영을 사용하는 법을 잃어버렸다. 때문에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들어왔어도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잘 모르는 이들이 많으며, 자신의 영을 사용하는 방법도 잘 모른다. 그러나 귀신은 조상적부터 들어온 존재로서, 그 집의 가문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고 있고, 그 집안의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쾌락, 명예, 인기, 권세, 돈 등)도 알고 있어서, 그것을 미끼로 혼을 장악하려고 시도한다. 고로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영적 싸움이란 사람 속에 들어와있는 귀신과의 싸움이 일차적인 싸움이요, 이어서 타락해서 육체가 되어버린 우리자신의 혼과의 싸움이 2차적인 싸움인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노아시대에 장차 하나님의 영을 왜 거두어가신다고 말씀하셨는가?

  B.C.2338년경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보시고 이런 결정을 내리신다.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 안에 거하지 아니할 것이니, 왜냐하면 사람이 육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럴지라도 사람의 날들은 120년이 될 것이다(창6:3직역)" 이 말씀 속에는 놀라운 2가지 사실이 들어 있다. "첫째, 영혼육으로 이루어진 사람이 완전히 육체만을 좇아사는 존재로 전락해 버렸으니, 이전까지 사람 안에 있던 하나님의 영을 거두어가겠다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을 거두어가시되 당장은 아니고, 120년의 시간적인 말미를 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왜 즉각 심판하여 사람들을 없애버리지 않고 말미를 준 것인가? 그리고 왜 더이상 사람 속에 당신의 영을 머물게 하지 않는다고 했을까? 첫째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을 거두어가신다는 것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영을 머물게 했지만, 사람 안에 하나님의 영을 주신 목적을 망각하고서는 오히려 더욱더 육체의 본능만을 좇아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에게 성령의 내주를 허락하셨지만 인간은 사탄마귀의 말을 듣고 더욱더 악해졌으며, 남자들은 폭력적이 되어갔으며, 여자는 외모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해서 육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120년의 말미를 준 것은 그래도 사람에게서 성령을 거두어가지 않으면 그것 때문에 회개할 자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아의 식구를 제외한 어떠한 사람도 성령의 음성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도 120년 뒤에는 인간에게서 성령을 거두어가시겠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4. 120년은 심판유예기간인가 방주를 지은 기간인가?

  대부분은 사람들은 120년이라는 기간을 노아가 방주를 지은 기간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서 성령을 거두어가기 전에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이다. 왜냐하면 노아가 방주를 지은 기간은 120년이 아니라 가장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할지라도 76년정도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창6:3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은 노아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라, 세상이 패괴한 것을 보셨던 하나님께서 혼잣말처럼 하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노아가 방주를 지은 것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최고76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노아는 500세가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창5:32). 그리고 홍수는 노아 600세되던 해에 있었다. 그리고 노아의 장자 셈은 100세 아들(아르박삿)을 낳았는데, 그때가 홍수 후 2년이라고 했으니, 노아는 502세에 셈을 낳은 것이다(창11:10). 그렇다면 노아가 502년에 장자를 낳고 아들을 2년 텀으로 낳았다면, 함은 504세에, 야벳은 506세에 낳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언제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했는가? 그것은 노아가 세 아들을 장가보낸 후였다(창6:18). 만약 셈이 20세의 이른 나이에 장가를 들었고, 2년 텀으로 함과 야벳을 장가보냈다면, 노아가 방주를 지었던 때는 노아 524세 때다. 그러니까 가장 많이 쳐주어도 노아는 방주를 76년정도 지었을테니, 당시 보통 사람들이 천년을 살았으니 노아는 적어도 이보다는 훨씬 뒤에 아들들을 장가보냈을 것이다. 

 

5. 창세기 6:3의 말씀이 가르쳐주는 놀라운 영적인 비밀은 무엇인가?

  창세기 6:3의 본문은 많은 논란을 가지고 있는 본문이기도 하지만, 이 말씀은 홍 수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에 대한 여러가지 의문점을 풀어주기도 한다. 왜냐하면 창6:3에 나오는 동사는 여기에서만 사용되어진 단어로서, 그 뜻을 정확히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그뜻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우리가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창6:3의 말씀을 우리말 개역성경으로 보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6:3)" 이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의 영이 노아홍수 이전에는 사람과 항상 함께 있었는데, 사람들이 육신이 되어버리므로, 하나님께서 더이상 당신의 영을 사람과 함께 있도록 하지 았겠다고 결정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함께하지"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대체 무슨 뜻인가? 그 단어는 "야돈"이라는 것인데, 그 뜻은 실로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단어를 다른 번역본은 어떻게 번역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첫째, 가장 오래된 번역본으로는 B.C.3세기경에 나온 70인역(LXX)이다. 헬라어에 능통한 72명의 랍비들이 고대히브리어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인데, 여기에 보면, "야돈"을 "카타메노" 즉 "머물지, 거하지, 거주하지"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구약성경의 본문을 인용할 때 전부 70인역에서 인용한 것을 보면, 상당히 권위가 있어보인다. 그래서 70인역에 따라 창6:3을 번역한다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내 영이 그 시대까지는 절대 사람 안에 거하지 않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육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날은 120년이 될 것이다."  둘째, "야돈"을 KJV계열의 성경책에서는 전부다 "다투다. 분투하다"로 번역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야돈"이라는 히브리어 단어의 원형을 "딘(심판하다,판결하다)"으로 추정하여 번역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 우리말 개역성경의 경우인데, 여기에서는 "함께 하지"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는 쉬운성경, 쉬운직역성경, 국민성경, 바른성경도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번역을 취해야 할까? 그것은 아무래도 신약성경의 기자들의 성경으로 채택한 70인역의 번역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인류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대한 또 하나의 발견을 할 수 있다. 그것은 노아홍수이전까지 사람 안에 하나님의 영이 내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각도에서 성경을 보았을 때, 몇 가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들이 풀린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노아가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흠없는) 자로서 하나님께 동행하는 자"로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노아 안에 하나님의 영이 내주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하면 금방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아의 4대 조상이었던 에녹이 365일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께서 그를 직접 취해가시므로 더이상 세상에 있지 않게 되었다는 말도 쉽게 이해가 간다. 왜냐하면 에녹 역시 자기 안에 내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순전히 따라갔었으리라고 보면 되기 때문이다. 

 

6. 하나님의 영에 관하여 에스겔선지자를 통해 주신 약속의 말씀은 무엇인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노아홍수이후 하나님의 영은 더이상 사람 안에 거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노아도 실수하여서, 포도주를 마시고 장막에서 벌거벗은 수치를 다 드러내었던 것이다. 그런데 38년을 노아와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 곧 노아의 10대후손인 아브라함 때에 하나님을 매우 기쁘시게 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자기 안에 하나님의 영을 가지고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결코 우상을 섬기지 않았으며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갈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하나님께서는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삼아주셨다. 새로운 믿음의 종족의 조상으로서 그를 삼아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자손번성의 축복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을 선물도 약속해주셨다. 그리하여 400년 후에는 진짜로 그 약속의 말씀이 성취가 되었다. 그러므로 그때부터는 창3:15에 약속한 메시야가 와서 인간의 죄를 속죄하면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때가 되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임시로 바르게 사는 길을 보여주었으니 그것이 바로 "율법'이라는 말씀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타락했고, 율법책을 멀리하고 말았다. 결국 우상숭배에 빠져버린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은 심판하였고 그들을 바벨론포로로 잡혀가게 하셨다. 그런데 거기에 끌려갔던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B.C.585년경 노아홍수이전과 같은 시대를 다시 허락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것은 언젠가 새로운 하나님의 영을 사람 속에 주기로 약속하신 것이다(겔36:26~27). 

  드디어 때가찼고, 메시야가 오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속죄사역을 완성하시고 부활하셨다. 그리고는 당신을 대신하여 보혜사(돕는 자)이자 새 영인 성령을 보내주셨다. 그런데 이 새 영은 노아홍수이전에 사람 속에 있었던 성령과는 사뭇 달랐다. 왜나하면 예수께서 보내주신 성령은 예수님 자신의 또다른 오심으로서, 이것은 예수께서 이루신 모든 것을 함유하고 있는 성령이었기 때문이다. 즉 그 영은 인성을 거치셔서 인간의 고뇌를 잘 아는 그리스도의 영이시며, 귀신의 왕 바알세불과 싸워서 승리한 그리스도의 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영은 귀신에게는 강력한 영이겠지만, 연약한 인간에게는 한없이 긍휼이 많으신 이의 영인 것이다. 그러니 오순절이후의 성령은 에녹과 노아가 경험했던 하나님의 영보다 훨씬 더 우리의 사정을 잘 아시고 이해하시는 분이시자, 귀신을 쫓아내며 죽더라도 다시 살아날 수 있게하는 능력을 가진 성령인 것이다. 그분이 지금 우리 믿는 이들 안에 들어오신 것이다. 

 

7.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므로 만약 우리 자신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영과 하나된 성령께 우리자신을 맡기고 그분의 인도를 따라간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에녹과 같은 삶, 홍수이전의 노아와 같은 삶, 아니 그보다 더 훌륭한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는 긍휼히 풍성하실 뿐만 아니라 죄와 죽음과 마귀를 이긴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내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노아홍수이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은 사람에게는 혼이 있어서 과연 자기자신이 마귀와 연합된 육체를 따라갈 것인지 혹은 성령과 연합된 내 영을 따라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격적인지라 결코 사람에게 강제하지는 않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분의 인도를 따라가기를 결정한다면 우리는 영적 싸움에 백전백승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신 여호와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신 분이실 뿐만 아니라 그 아들이 다시 영으로 우리에게 오신 분이기 때문이다(사9:6). 문제는 내가 과연 귀신과 하나된 육체를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성령과 하나된 영을 따라갈 것인가에 달려있는 것이다. 

 

8. 나오며

 고로 놀라운 시기가 지금 우리에게 도래해 있는 것이다. 노아홍수이전보다 더 놀라운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인성을 거치면서 우리의 모든 사정을 알고 계시며, 우리를 도와주시려고 항상 대기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영 곧 새 영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가 죽는 그날까지 우리 안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해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약 성령의 음성을 따라가기를 원한다만, 우리는 에녹보다도, 홍수이전의 노아보다도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성령께서 내주하고 계시는 한 우리는 회개함으로 모든 것을 돌이킬 수가 있다. 성령께 내 자신을 내어주어, 책망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좇아 죄를 회개하고, 성령이 이끄시는대로 살아간다면 우리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아담이 살았던 시대에 있었던 일들 곧 자신의 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도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은 다 믿음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실재화된다. 왜냐하면 에녹도 노아도 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여, 이제는 육체와 귀신과 하나되어 있는 혼을 따라가지 말고, 성령과 하나된 자신의 영을 따라감으로 귀신과 혼과의 싸움에서 절대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1년 01월 03일(주일)

정병진목사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그의 공생애를 마치신 뒤, 모든 믿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시고자 당신의 영이신 성령님을 보내주셨는데 과연 성령께서 믿는 자들에게 처음으로 오실 때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먼저 우리가 알 것은 성령님께서는 영이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 인간의 눈에 볼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바람같은 영이신 성령께서 처음으로 인간에게 오실 때에는 당신이 오시는 것에 대해 알릴 필요가 있으셨다. 행여 당신은 그때에 그곳에 어떤 현상이 나타났으리라고 생각하는가?
  그날은 오순절날이었다. 성령을 보내주신 예수께서는 정확히 이스라엘의 절기를 따라 움직이셨다. 그분은 유월절(1.14)에 유월절양으로 죽으셨고, 3일후인 초실절에 부활하셨다. 그리고 유월절 후 50일째되는 날 성령님을 보내주셨다. 하지만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의 또 다른 자기자신으로 믿는 자들에게 오신 것이다.
  사실 성령은 예수님의 생명을 가지고 믿는 이들 안에 들어오시는 분이시므로 그분의 오실 때에 어떤 표적이나 현상이 꼭 나타날 필요는 없으셨다. 하지만 그때 마가다락방으로 추정되는 곳에 120명의 부활승천목격자들이 모여있다. 그들은 오직 부활하면서 예수님께서 들려준 말씀에 따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해 지금 기도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성령이 오신 것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면 그들은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성령이 처음으로 오실 그 때에 성령께서 분명이 그들 가운데 오셨음을 알도록 하기 위해,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었으며, 성령으로 충만케 하셨다.
  이런 이유로 120명의 성도들이 모여있는 곳에 성령께서 오실 때에는 어떤 표적이나 현상이 수반되어 나타나게 되었다. 그것은 2가지였다. 하나는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였고 또 하나는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었다. 이것은 성령 자신은 아니지만 성령께서 오실 때에 함께 수반된 것으로 성령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은 성령께서 오실 때에 대동했던 천사들이었을 것이라고도 말한다(히1:7, 시104:3-4).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성령께서 오신 것을 어떤 현상이 증명해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러자 그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이어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때 그들이 말했던 방언(혀, 말)은 좀 특별한 것이었다. 보통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믿을 때에 성령을 받게 되는데, 이때에도 방언을 말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방언은 오순절날 120명의 성도들이 받았던 방언과는 좀 다르다. 오순절날 제자들이 받았던 방언은 지방방언(지방말)이었다. 이는 나라방언이라고도 하고, 만국방언이라고도 하며, 은사방언이라고도 불리운다. 하지만 고전14장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방언은 지방방언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으로서 방언통역을 통해서만 그 말이 무슨 말인지를 알아 들을 수 있는 방언이다. 이것을 마가복음에서는 '새 방언'이라고도 말하고 있다(막16:17).
  그렇다. 모든 믿는 자들은 믿을 때에 성령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을 말하게 되는데, 그것은 기본적으로 새 방언(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성령이 사람 속으로 들어오실 때에 사람이 거듭나며 이때 새로운 생명이 탄생했다는 표시로서 말을 하는 것이 바로 새 방언인 것이다. 이러한 새 방언은 말씀을 듣고 믿으면 그냥 하게 되는 방언이다(갈3:2,5). 그러므로 이것은 누구나 말하는 방언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이러한 방언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오순절날에 마가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에게는 아주 특별한 선물로 지방방언이 주어졌다. 그것은 자기들이 배우지도 않았고 잘 들어보지도 못했던 세계 각국 나라의 방언을 말하게 된 것이었다. 이는 오순절날에 명절을 지키러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디아스포라(흩어진) 유대인들을 위한 아주 특별한 배려였다. 왜냐하면 이들은 유월절을 지키면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던 자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오순절까지 지키고 자기나라에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놀라운 사건을 접하게 되는데, 자기나라의 말로 말하는 갈릴리 사람들을 접하게 된 것이다. 실로 기이하고도 기이한 사건이 그들에게 일어났던 것이다.
  그때였다. 베드로는 그들을 향해 왜 이른 아침 9시부터 이런 신비한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구약의 예언의 말씀을 들려줌으로 하나님의 큰 일에 대해 새로운 시각과 더불어 믿음을 갖게 했으며, 그 모든 일이 그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음을 가르쳐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가슴을 치며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기 시작했고, 그들로 그날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는데 그 사람들의 숫자가 무려 3천명이나 되었다다. 이것이 예루살렘교회의 시작이며, 전 세계로 복음이 전파되는 기원이 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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