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사데교회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씀하신 후에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셨다. 그리고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셨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이 곧 성령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되어 예수님의 말씀이 곧 성령의 말씀이 될 수 있는가? 대체 예수님과 성령은 어떤 관계인가? 그리고 오늘날 성령이 교회 가운데서 행하시는 말씀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것을 잘 모르면 우리는 여전히 귀신에게 속기 마련이며, 또한 귀신의 공격해와도 당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이 누군지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성령은 누구시며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2022-06-03(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성령강림주일]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의 핵심은 무엇인가(계3:1~6)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zj7XYUxChzY  [혹은 https://tv.naver.com/v/27207541 ]

 

1. 들어가며

  오늘은 성령강림 주일이다. 오늘은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그러니까 A.D.30년 5월 28일(오순절 날) 오전 9시경, 성령께서 예루살렘 마가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무리들에게 내려오신 것을 기념하는 기독교의 절기 가운데 하나이다. 여기서 성령은 '하나님의 영'을 일컫는 말이다. 그렇다면 오순절날이 되기 전에는 성령께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신 것인가? 그건 아니다. 구약 시대에도 성령은 여전히 계셨으며, 또한 활동하고 계셨다. 아니 천지 창조 때부터 성령께서는 창조 사역에 동참하셨었다(창1:2, 욥33:4, 시104:30). 그렇다면 왜 성령께서 오셨다고, 성령강림 주일을 지키고 있는가? 그것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오순절날에 성령이 오신 것이 구약 시대와는 무엇인가 달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오순절날에 오신 성령과 구약 시대의 성령의 활동은 과연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오늘날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2. 구약 시대에 활동하신 성령과 오순절 이후의 성령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구약 시대에도 역시 성령께서 계셨고 또한 일하셨다. 먼저는 천지 창조 사역에 동참하셨다. 그리고 그 이후의 성령의 활동은 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성령께서 어떤 사람 위에 내려오셔서 그 사람에게 은사를 주심으로 어떤 직임과 직무를 감당하게 하셨다. 예를 들어, 모세 시대에는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 성령이 내려오셔서 그들에게 지혜와 지식 그리고 여러가지 재주로 정교한 일을 하게 하셨다(출31:2~5). 그리고 사사 시대에는 성령께서 삼손 위에 내려오셔서, 삼손으로 하여금 강한 힘을 발휘하게 하심으로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음같이 찢을 수 있었고 이스라엘의 원수인 블레셋 사람을 한 번에 1,000명도 죽일 수 있었다(삿14:5~6, 15:14~15). 둘째는 성령께서 선지자들에게 임하여 그에게 환상을 보게 하고 꿈을 꾸게 하며 또한 예언을 하게 하셨다. 성경에 등장하는 선지자들 곧 엘리야나 엘리사, 이사야나 예레미야, 에스겔이나 다니엘 등은 그러한 일들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이때 선지자들이 예언한 것은 미래의 일들이었으며 더 중요한 예언은 장차 이스라엘을 구원하러 오실 메시야(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이었다. 셋째는 성령께서 선지자들에게 임하여 우상 숭배를 하며 범죄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일도 하게 하셨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 요엘과 아모스, 호세아, 말라기 등의 선지자들은 성령의 지시를 따라 이스라엘을 책망하는 일을 하였다. 

  그렇다면, 왜 A.D.30년경 오순절날에 성령께서 다시 마가다락방에 모인 무리들 120명에게 내려오신 것인가?(행2:1~4) 그것은 구약 시대에도 활동하셨던 성령께서 이제 또 다른 방식으로 일하시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성령께서 일하시는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는 뜻이다. 거기에는 그렇게 해야만 하는 어떤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의 가장 뚜렷한 변화는 역시 오순절 이후 성령께서는 모든 믿는 사람들 속에 들어오신다는 것이다.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밤, 예수께서는 마가다락방에 모인 12명의 제자들에게 성령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시대들까지)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취하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왜냐하면] 그는 너희와 함께(with, by) 거하심(머무실 것)이요 또 너희 속에(in) 계시겠음(있을 것이기 때문)이라(요14:16-17). 그렇다. 오순절날에 강림하실 성령께서는 믿는 자들만이 받을 수 있게 될 터인데, 그 성령은 믿는 이들 곁에 머물러 계실 뿐만 아니라 믿는 이들 속에도 내주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은 실로 엄청난 변화를 예고하신 것이다. 

 

3. 성령께서는 대체 무엇 때문에 믿는 이들 속에 들어오시는가?

  오순절 성령강림 이전 구약 시대에 성령께서는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셨을까? 그것은 어떤 선택된 특정한 이들 머리 위에 내려오시는 것이었다. 그것도 몇몇 사람에게만 제한적으로 내려오셨다. 그런데 오순절 이후에는 모든 믿는 자들 속에 성령이 들어오신다. 고로 구약 시대에는 성령께서 단 한 번도 사람 속으로 들어가신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에는 성령께서 사람들 위에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성령 받은 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거나 거역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 영을 거두어 가셨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었다(삼상16:14). 그런데 오순절날부터 성령께서는 믿는 자들의 옆에도 계시겠지만, 믿는 자들 속에도 들어가 거하신다고 말씀하셨다(요14:16~17). 그것도 특정한 사람들 몇 명에게 제한적으로 들어가시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 모두에게 들어가신다고 하셨다. 이는 믿는 자들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를 베푸시고자 함이다. 그럼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4. 믿는 자들 속에 성령께서 내주하시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가?

  믿는 자들 속에 성령께서 내주하시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가? 가장 먼저는 사람이 거듭나게 된다고 하셨다(요3:5). 성령께서 믿는 이들 속에 들어오셔서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분배해 주시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생명 주는 영이 되셨으며, 성령으로 믿는 이들 속에 들어가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고전15:45). 그래서 사도 바울도 역시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라고 했다(고전6:17).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믿는 이들의 영 안으로 들어오신 후 우리의 영과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가 된 성령께서는 우리 성도들이 죽는 그날까지 분리되지 아니하시고 계속 우리 안에 거하신다. 그렇지만 귀신은 사람의 영 속에 들어오지는 못하고 사람의 육체 속에 들어오기만 한다. 사람은 원래 영과 혼과 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살전5:23), 다만 귀신은 사람의 육체 속에 들어와서 혼(생각과 감정과 의지)을 장악하려 하는 것이다. 한편 성령께서는 사람의 영 속에 들어와서 혼을 진리와 생명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의 혼(souls)은 성령과 귀신의 영적 전쟁터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어찌 되었든 성령께서는 우리의 영 속에 들어오신다. 그러면 우리는 생명을 공급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된다. 이것을 '거듭남(중생)'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때 생명이 우리의 영에 공급되면 그때부터 우리의 영이 살아나게 되고 영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면 영이 살아나서 말을 하게 되는데, 이것을 '방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방언은 우리 인간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 영이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것이자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이므로 신령한 은사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 것은 그렇게 위대했던 구약의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단 한 사람도 방언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5. 믿는 이들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은 우리 안에서 어떤 일을 행하시는가?

  그렇다면 믿는 이들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는 어떤 일을 수행하시는 것인가? 우리는 구약 시대에 성령께서 사람들 위에 머물러서 하시는 일들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그것은 성령이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은사를 주시어 어떤 직임과 직무를 감당하게 하시고, 환상과 꿈을 보게 하고, 예언하게 하신다고 했다. 그리고 잘못 행하는 주의 백성들에게 그들의 죄를 책망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일을 하게 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렇다면 오순절 이후에 성령은 어떤 일을 수행하시는 것인가? 구약이 행하셨던 일들은 더 이상 행하시지 아니하는가? 그건 아니다. 오순절 이후에도 여전히 성령께서는 그러한 사역을 계속 행하고 계신다. 다만 성령께서 안에 들어오셔서 행하시는 사역이 더 증가되고 더 구체화된 것 뿐이다. 먼저 성령께서 믿는 이들 곁에 머물러 계실 때에는 그들에게 각종 은사들을 주신다. 그것을 일컬어, '성령의 외적 사역'이라고 부른다. 또한 성령께서 믿는 이들 속에 들어오셔서 행하시는 일도 있다. 그것을 가리켜 우리는 '성령의 내적 사역'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성령의 사역 가운데 성령께서 안에 들어오셔서 행하는 내적 사역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것에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일이 제일 먼저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의 인격을 변화시켜 주님을 닮게 하신다. 그리고 우리의 영적인 무지를 깨우쳐 주시며, 또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시고, 죄를 책망하시고 죄를 회개하게 하신다.

 

6. 믿는 이들 속에 내주하시어 활동하시는 성령 사역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러한 성령의 이러한 사역들 가운데 믿는 이들 속에 내주하시어 행하시는 성령의 사역의 핵심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오늘 말씀에 나와 있다. 그것은 2가지다. 

  첫째로, 성령께서는 예수님이 누군지를 증언하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며,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다는 것이다(계3;1). 왜냐하면 성령은 예수의 영이요 그리스도의 영이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 보니, 사데 교회에 들려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이때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셨다. "하나님의 일곱 영들을 가지고 있는 이 그리고 일곱 별들을 가지고 있는 이"(계3:1). 그런데 계2:1을 보니,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닐고 계시는 예수님의 오른손에 일곱 별들이 있었다. 이때 예수님의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들은 일곱 교회의 사자(메시지 전달자)라고 하셨다(계1:20). 그리고 일곱 금촛대는 일곱 교회들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 촛대 사이를 흰옷을 입으신 예수께서 거닐고 계셨던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 교회에 관심이 제일 많으시고, 교회를 돌보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교회 중에서도 교회의 말씀 전달자들을 당신의 손으로 붙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분은 또한 '하나님의 일곱 영들'을 가지고 있다고도 말씀하셨다(계3:1). '하나님의 일곱 영들'은 성령을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성령과 예수님의 관계가 어떠한가 하는 것이다. 계3:1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성령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반대로 성령께서 예수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곧 성령은 '예수님에게 속한 영' 곧 '예수의 영'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고로 성령은 예수님을 떠나서 말씀하실 수 없고, 활동하실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14~16장에 따르면,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그분은 예수님을 증언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다(요15:26). 그리고 성령께서는 예수께서 하셨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다(요14:26). 그리고 그분은 예수님으로부터 들은 것을 말씀하시며,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라고 하셨다(요16:13~14). 왜냐하면 보혜사 성령은 예수님을 대신하여 이 땅에 보내어진 하나님의 영이기 때문이다(요14:18~19). 그러므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성령을 '예수의 영'이라고 말씀하였고(행16:7), 어린양의 열두 사도의 대표였던 베드로와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던 사도 바울도 역시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하였던 것이다(벧전1:11, 롬8:9). 왜냐하면 성령은 예수님의 영이요 예수님을 증언하는 영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기 때문이다. 

  둘째, 성령께서는 믿는 이들 속에 내주하시어, 예수님께서 들려주셨던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그것을 지키도록 권면하시며, 그 말씀을 순종하지 않을 때에는 그 죄를 책망하여 회개케 하신다는 것이다(계3:3). 왜냐하면 성령께서 사람 속에 내주하시는 목적이 우리의 죄를 책망하고 회개시켜 우리를 거룩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단장시키고 이기는 자들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성령은 예수의 영이시자 동시에 교회의 영이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하늘에서 교회를 표현되는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닐고 계시며, 교회의 사자들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은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일곱 교회들 가운데 책망을 받지 아니한 2개 교회를 제외하고 성령께서는 교회들에게 공통적으로 다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믿는 이들이 죽는 날 흰옷을 입으려 한다면 그리고 생명책에서 자신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기 원한다면 그는 반드시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회개도 알고 보면 두 개의 방면이 있다. 하나는 저주로부터 해방받기 위한 회개가 있으며,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회개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저주로부터 해방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조상들이 지은 죄들을 회개해야 하며, 내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내가 지은 자범죄들을 회개해야 한다. 

 

7. 왜 우리는 보혜사 성령이 '예수의 영'이요 '교회의 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성령을 가리켜 '예수의 영'이자 '교회의 영'이라고 깨달아야 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 성령이 '예수의 영'이라는 것을 잊어버리는 순간 회개를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해도 귀신의 공격을 막아내기가 어렵고 그 귀신들을 쫓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분이 회개기도문으로 열심히 회개를 해 보았는데, 자신의 삶의 형편은 더 어려워지고 가정에 불화가 생겨나 더 이상 회개를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왜 이런 증상이 그분에게 나타나게 되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그분이 회개를 하되, 회개를 복받는 부적 같은 도구로만 사용하려고 했을 뿐, 예수님을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회개를 하게 되면 반드시 치러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귀신들과의 한판 싸움이다. 그런데 귀신들은 우리의 삶의 저주의 실체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잘 모르면서, 회개를 통해 귀신을 쫓아내려 하니 귀신들이 그 사람을 가만 두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자는 반드시 예수님이 누군지를 더 공부해야 한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올바른 성령 사역자로 쓰임을 받기를 원하고, 또한 자신이 회개하면서 귀신을 처리하기를 원한다면 자신이 회개하는 만큼 예수님에 대해 더욱더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창조주이고 귀신들은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공부해야 한다. 이것이 성령이 내주하시어 우리에게 행하시는 일들 가운데 핵심 사역이기 때문이다.

  둘째, 성령은 교회의 영으로서 믿는 이들 속에 내주하시어 회개를 촉구하는 분이신데 이것을 간과하는 순간 귀신이 성령으로 둔갑하여 활동하기 때문이다. 성령을 초청하고 성령 충만 받기를 원하는 자라도 그가 기도를 아무리 드린다고 할지라도, 회개를 하지 않고 성령을 초청하게 되면, 성령께서 오시지 않고 귀신이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도 모른 채 성령 사역자들 중에는 성령을 초청하는 행사를 벌인다. 손을 내밀고 서 있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께서 오게 되고 그래서 성령이 터치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쓰러지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으로 하여금 쓰러지게 하는 역사는 귀신이라는 것을 그들은 잘 모른다. 그러므로 성령을 통해 변화되고 성령을 통해 은사를 받고 또한 성령을 통해 은혜 받기를 원한다면, 더 많이 회개를 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은사도 구하고 은혜도 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귀신의 활동을 성령의 활동으로 착각한 채 속을 수가 있는 것이다. 오늘날 성령 사역자들의 모습을 잘 살펴보라. 그들이 과연 얼마나 회개를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말이다. 회개하라 말하지 않고 성령의 능력만을 받으라고 하는 사역자는 올바른 사역자가 아니다. 또한 이들의 메시지 속에서 예수님이 나오는지를 들어 보라. 거의 대부분 예수님이 누군지를 말하지 않고 성령님만을 말한다. 그러므로 성령 사역들 가운데 상당 부분이 악령이 와서 활동하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2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성령은 예수를 증언하는 예수의 영이요, 교회 가운데 회개를 촉구하는 교회의 영이라는 것을 말이다. 

 

8. 나오며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예수께서는 사데 교회에게 자신을 소개하면서 자신은 성령을 가지고 있는 이이자, 교회 가운데 말씀 전달자를 손에 쥐고 계시는 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살아 있다고는 말하지만 실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데 교회를 엄히 책망하시면서 회개할 것을 촉구하셨다. 그리고 난 후 예수께서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곧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령은 예수의 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령은 교회 가운데 회개를 촉구하는 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성령 사역을 잘한다 하여, 집회에서 은사들이 나타나고 병든 사람이 낫고 기적이 나타난다 할지라도 거기에 예수님이 누군지를 증언하는 것이 없으면, 그 집회에서 아무리 기도를 드리고 회개를 한다 해도 귀신이 역사하는 것을 당해낼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성령을 초청하고 성령의 능력을 맛보기를 원하여도, 먼저 회개하여 자기 속에 있는 악한 영들을 내보내지 않는다면, 귀신이 성령을 가장하여 역사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이제 더 이상 속지 말라. 왜냐하면 성령은 예수의 영이시며, 성령은 교회 가운데 회개를 촉구하는 영이시니 말이다. 

 

2022년 06월 05일(주일)

정병진목사

 

가짜성령운동, 가짜성령사역을 우리는 어떻게 분별해낼 수 있는가? 그것은 2가지다. 성령과 그리고 성령의 은사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다. 그럼, 성령은 누구신가? 그리고 그분이 행하시는 본질적인 사역이란 대체 무엇인가? 이것을 잘 모르면 귀신이 행하는 것을 성령사역으로 따라갈 수 있다. 여기에 진짜 성령이 누구신지 그리고 그분의 사역이 진짜인지를 구분하는 기준들이 있다. 정말 영적인 눈이 새롭게 열려지기를 바란다.

2020-11-22(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바른 종교개혁(04) 성령님은 누구시며 그분의 본질적인 사역은 무엇인가?(계5:6)
https://youtu.be/VrMJPgmGpU8 [혹은 https://tv.naver.com/v/16833610 ]


 

1. 들어가며

  성령님은 누구신가? 보통은 성령님을 생각할 때 은사나 예언 그리고 치유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성령님의 본질적인 사역은 아니다. 그것은 선물사역이기 때문이다. 또한 조금 더 성령에 대해 안다고 하시는 분들은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라든지 아니면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세번째 위격의 하나님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맞다. 하지만 여기에 성령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성령을 세 신들 중의 하나로 여기게 된다. 그리고 성령이 한 분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면 우리는 성령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분이 이 땅에 오신 본질적인 목적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만약 우리가 성령이 누구시며, 그분이 행하시는 본질적인 사역을 잘 모른다면, 우리는 신사도나 빈야드운동과 같은 유사 혹은 가짜성령운동에 속아넘어갈 수도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 가운데 성령사역이라고는 하나 성령이 아닌 가짜를 분별하기 위해서, 성령님의 존재에 관한 실체에 접근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분이 행하시는 본질적인 사역과 보조적인 사역이 무엇인지를 점검해보려고 한다. 아무쪼록 성령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잘 하므로, 성령의 인도를 잘 받아 예수님을 잘 믿고 죄를 회개하여 천국에까지 이르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 "성령" 사역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방언이나 예언같은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거나, 병이 들어 병을 치료해보기 위해 갖가지 은사 사역하는데를 쫓아다니셨던 분들에게 "성령!"이라는 단어를 들려주었을 때, 떠오르는 말이 무엇인지를 물으면 보통 "기름부음, 임파테이션"이나 혹은 "뒤로 넘어지는 것, 머리나 손과 몸을 흔들어대는 것,  몸 어딘가가 막 뜨거워지는 것, 손에 금가루가 나타나거나 이빨이 금이빨로 변하는 것, 입신하는 것,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사역의 상당 부분은 가짜요, 귀신이 주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떻게 그것을 그렇다고 판단할 수 있는가? 누가 그렇다고 하면 그렇게 되는 것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그럼, 그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절대 변할 수 없는 것 곧 성경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오지 않는 것이 있을 때에는 우선 점검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그것이 성령께서 오신 본질적인 목적에서 어긋나 있거나 벗어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가짜이 확률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성령을 빙자하여 귀신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증인이라는 곳을 가보라. 그곳에서는 성령을 "하나님의 활동력"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이 누구시며, 그분이 행하시는 본질적인 사역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가짜를 분별할 수 있으며, 올바른 성령의 인도를 따라갈 수 있다. 

 

3. 성령은 누구신가?

  성령은 누구신가?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세번째 위격을 가진 하나님인가? 그렇다. 그런데 이 다음이 문제다. 성자는 성령이 아니고, 성령은 성부가 아니며, 성부는 성자가 아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 편으로는 맞는 것 같지만 이것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한 분 하나님으로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 바로 그 성령을 알아야 한다. 사실 성령은 창세기 1장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하며, 요한계시록 22장에서도 계속해서 나온다. 성령은 창1:2에서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그리고 계22:17에서는 구원으로 초청하시는 하나님으로 등장하고 있다. 성령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일하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천지창조사역에 동참하셨던 성령에 대한 호칭이 사사기에 가면 처음으로 "여호와의 영"이라고 불린다(삿3:9). 그런데 예수께서는 성령을 "아버지의 영"이라고 하셨다(마10:20). 그리고 사도행전이나 서신서들에서는, 성령은 이제 "아들의 영"(갈4:6)이라고도 하고, "그리스도의 영"(롬8:9)이라고도 한다. 그럼 삼위일체의 교리에 따르면 분명 아버지는 아들이 아니고 아들은 성령이 아니라고 했는데, 어떻게 되어서 성령이 "아버지의 영"이면서 동시에 "아들의 영"이 될 수 있는가? 또 성령은 어떻게 "하나님의 영"이면서 "그리스도의 영"이 되는가? 도무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성령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하는가? 성경66권 가운데 가장 완벽하게 정리된 성령에 대한 정의를 찾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가장 진리에 가까운 정의를 들라고 한다면, 그것은 계5:6의 말씀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이 말씀에 따르면, 성령은 "어린양의 일곱눈들"이자,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영들"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의는 우리로 하여금 성령이 누군지를 그 실체를 접근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다.

  첫째, 계5:6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성령에 대한 첫번째 정의는 성령은 어린양과 관계된 영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성령을 "어린양의 일곱눈들"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눈"이란 이 세상을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는 전능하신 이의 전지성을 가리킨다. 사실 계2:23에 보더라도, 예수께서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시는 이"라고 나온다. 그분이 이제 이 세상에 있는 것을 감찰하기 위해 이 땅에 성령을 보내신 것이다(요15:26). 그러므로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지만 실은 어린양되신 예수님으로부터 파송받은 영이시다. 그래서 성령은 예수님의 또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그 영을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셨는데, 하늘로 승천한 후에는 곧바로 보내주시겠다고 했는데 보혜사가 오셨으니, 성령은 예수님 자신이었던 것이다.

  둘째, 계5:6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성령에 대한 두번째 정의는 성령은 하나님과 관계된 영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성령은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라고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성령은 어린양의 일곱눈들이자 동시에 하나님의 일곱영들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 성령은 한 분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오순절 이후에 동시존재가 가능한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 바로 성령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셋째, 계5:6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성령에 대한 세 번째 정의가 놀랍다. 왜냐하면 성령이 "일곱'이라는 숫자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 성령을 일컬어, "어린양의 열두 눈들" 혹은 "하나님의 열두 눈들"이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한사코 성령을 "어린양의 일곱눈들", "하나님의 일곱영들"이라고 하는가? 그것은 7이라는 숫자는 12에 비해 이 땅에 관련된 숫자이며, 그것은 이 땅에서 완전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실 12이라는 숫자는 하늘(천국)과 관련된 숫자이며, 하늘에서의 완전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천국에 있는 것들은 거의가 다 12이라는 숫자를 담고 있다. 24장로들은 구약의 12지파들과 신약의 12사도들을 합친 것이다. 144,000명은 12 곱하기 12인 144에다가, 많은 수를 의미하는 1,000을 곱한 것이다. 그런데 하늘에 있는 것들 중에 유독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일곱금촛대가 7이라는 숫자를 담고 있고 그 일곱금촛대에 하나님의 일곱영들이 불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7이라는 숫자는 하늘의 숫자와 어울리는 숫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국에서는 유독 성령과 관계된 것이 12이 아니라 7이라는 숫자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성령께서 "이 땅에 보내어진 하나님의 완전한 영"이시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만약 성령께서 이 땅과 관련한 영이 아니었다면, 그분은 틀림없이 "어린양의 12영들" 내지는 "하나님의 12영들"이라고 표현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성령은 처음부터 이 땅에 파송을 받아 일하시는 하나님 자신이었기에 그분은 당신 자신이 높히 여김받는 것을 한사코 거부하신다. 그러므로 성경 어디를 찾아보더라고 성령 하나님께 절을 했다든지 예배를 드렸다든지, 기도를 드렸다는 곳을 발견할 수 없다. 그리고 보좌도 하나님의 보좌요 어린양의 보좌라고 언급되지만, 성령의 보좌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4. 성령을 왜 경륜적인 영이라고 하는가?

  사람들이 성령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으로 실수하는 것은 성령이 경륜적인 영이라는 것을 보지 못한 데에 있지 않은가 싶다. 성령이 경륜적인 영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성령이 누군지에 대하여 눈에 선히 들어온다. 그럼, 성령이 경륜적인 영이라는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성령께서 시대마다 역사하는 방식과 역할이 다르는 것이다. 

  첫째, 우선 성령의 명칭부터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살펴보자. 사사기 시대가 되기까지 성령의 명칭은 오직 한 가지로서 "하나님의 영"이이었다. 하지만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여호와"로 계시하신 이후부터, 성령은 이제 "여호와의 영"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분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러자 하늘에는 아버지가 계시고 지상에는 아들이 있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성령을 "아버지의 영"(마10:20)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예수께서 공생애를 마치고 부활승천하시어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시자, 초대교회는 성령을 "예수의 영"이라고도 불렀고(행16:7), "아들의 영"(갈4:6), "그리스도의 영(롬8:9)"이라고도 불렀다. 왜냐하면 한 분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자신을 '여호와'라고 계시했다가, 신약시대에는 예수라고 계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륜을 거꾸로 뒤집을 수는 없다. 다시 말해, 구약시대에 성령을 "아들의 영"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아직 아들이 출현하기 전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한 모세시대 이전에 "여호와의 영"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을 경륜적인 영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사도요한이 A.D.95~96년에 불렀던 성령의 명칭은 "어린양의 일곱눈들"이자, "하나님의 일곱영들"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성령이 역사하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살펴보자. 구약시대에 성령이 역사하는 방식은 오순절성령강림 전후로 그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다. 구약시대에 성령은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아서 창조의 일을 수행하셨다(창1:2). 그리고는 사람에게 역사하기 시작했다. 그때만해도 성령께서는 어떤 특정한 사람 위에 내려오셔서 그에게 특정한 은사를 주셨다. 그래서 그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맡겨진 직임을 잘 수행하게 하셨다. 예를 들어, 성막을 지을 무렵에는 성령께서 브살렐과 오홀리압의 머리 위에 내려오셔서 그들에게 "지혜와 총명과 지식"을 은사로 주셨다(출36:31). 그리고 기드온에게는 사사(판관)로서 "지도력"의 은사를 주셨다. 그랬더니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사사로 믿고 따랐다(삿6:34). 그리고 삼손에게는 나귀턱뼈로 블레셋사람 일천명을 죽일 수 있는 "강한 힘"을 주셨다(삿14:6). 그리고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초대왕이었던 사울 위에 성령이 내려오니, 그는 예언을 하기 시작했다(삼상10:10). 그리고 선지자 다니엘에게 성령이 내려오니, 그에게는 "지혜와 분별력"의 일반은사가 부어졌고, 이어서 "환상과 꿈"을 꾸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도 같이 주어졌다(단1:17). 그리고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에게도 성령이 내려오니 그들이 예언할 수 있었다. 그래도 구약시대에 성령께서 임재하는 방식은 전부 다 위에 머무르는 방식이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받았더라도 범죄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했을 때에는 성령도 그 사람을 떠나가셨고 그러면 은사도 사라졌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사울왕의 경우다(삼상16:14). 그에게서 성령이 떠나갔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았던 다윗은 자신이 범죄한 후,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리지 아니할 수 없었다. "주여, 나를 당신의 눈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고, 당신의 성령을 내게서 취하지 마소서(시51:11). 

  그러나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시고 보내주신 보혜사 성령은 그 역사하시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첫째로, 그분은 사람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속에 들어오셨기 때문이다(요14:17). 그리고 둘째로, 사람의 영과 하나가 됨으로 사람이 죽기까지 성령께서는 그를 떠나가지도 않으셨다(요14:16). 셋째로, 구약시대처럼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에게는 성령께서 오시어 그 사람 속 안으로 들어가셨다(요14:16). 넷째, 구약시대에는 은사를 하나님께서 주신 것만 받을 수 있었고, 하나님이 지정한 사람만 받을 수 있었지만, 오순절 이후에는 누구든지 구하는 자에게 성령의 은사가 주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은사는 더욱 다양해졌고 풍성해졌다. 

 

5. 성령이 오셔서 하셨던 본질적인 사역과 보조적인 사역은 무엇인가?

  이제 오늘 우리가 꼭 들어야 할 핵심적인 말씀에 왔다. 그것은 성령께서 이 땅에 보내어진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령께서 이 땅에 보내어진 본질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성령의 본질적인 사역을 은사사역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은사"라는 말은 선물이라는 말로서, 받는다면 좋겠지만 안 받아도 되는 것을 가리킨다. 고로 은사사역은 일종의 선택사항인 것이다. 그렇더라도 성령께서 사람 속에 들어오시면 반드시 하시는 일이 있다. 그것을 일컬어 우리는 성령의 본질적인 사역이라고 말한다. 

  성령의 본질적인 사역에 대한 소개는 예수께서 떠나가실 무렵,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직접 일러주신 말씀 속에 들어있다. 그것은 요한복음 14~16장까지의 말씀에 나와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이 땅에 오신 본질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첫째는 성령은 예수님이 누군지를 증언하고 그분이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이다(요15:26,14:26). 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야 했는지 그리고 왜 죽으셔야 했는지를 성령께서 깨우쳐주시려 성령께서 오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들을 깨닫게 해 주시려고 성령께서 오신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자존하신 하나님이라고 알고 있는 분은 사실 얼마 안 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말씀이 성경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8:24,28,58을 보면, 거기에 그것이 나온다. 하지만 우리말 성경이나 영어성경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예수께서 자신을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말씀하셨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경을 번역할 당시만해도 아직 그것을 잘 모르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헬라어원문성경을 보면 그것이 나온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성령의 본질적인 사역을 아는 이는 그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둘째, 성령께서는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이다(요16:7~8). 이것은 성령이 이 땅에 오신 본질적인 사역의 두번째 방면이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를 책망하신다고 했다. 예수님이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을 성령께서 책망하신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사람인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서조차 인정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호와증인은 예수님을 미가엘천사장이라고 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예수님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을 교정해주고 수정해주시고, 예수님이 누군지를 정확히 알려주시려 오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믿지 못하는 자를 책망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믿으면 의롭지 못한 자라도 의롭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사탄마귀는 십자가에서 그의 권세가 박살났다는 것을 성령께서 폭로해주시는 것이다. 그것은 사탄이 예수님에게 졌으니 예수 이름의 권세 아래 있음을 성령께서 폭로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도 역시 귀신을 쫓아낼 수 있고, 귀신을 제압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성령께서 사람 속에 들어가심으로 하시는 일들이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외부에서 행하시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구약시대처럼 은사(선물들)을 나눠주시는 일이다. 그것을 주시는 목적은 성경을 통틀어보면 딱 2가지다. 하나는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주시는 것이다(고전12:7,11). 또 하나는 복음전파를 위하여 주시는 것이다(행1:8). 그래야 능력과 권세로 무장되어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사들은 어디까지나 선물에 해당한다. 선물은 받으면 좋겠지만 안 반아도 되는 것이 선물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본질적인 사역을 모르면 사람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이 누군지를 믿지 못해서, 죄사함도 받을 수 없고 천국에도 들어갈 수 없다. 그런데 성령의 은사는 다르다. 선물로 주어지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사역은 성령의 보조적인 사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6. 성령의 인도를 제대로 받고 은사도 제대로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성령은 이 땅에 보내어져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하나님 자신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얼마든지 동시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분이 오심으로 사람은 거듭태어나기도 하고, 인치심과 보증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그분이 주신 은사를 받아서 교회를 섬길 수 있고 복음전파를 용이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제대로 알고 그분이 주시는 은사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짜 곧 귀신에게 속지 않고 성령을 알고, 가짜 곧 귀신이 주는 은사를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에 대해서는 2가지 원칙이 있고, 팁이 3가지가 있다.

  먼저, 2가지 원칙부터 살펴보자. 어떤 곳에서 성령운동을 한다고 하면 우선 2가지를 지켜보라. 하나는 과연 예수님이 누군지를 제대로 가르쳐주는지를 보라. 만약 예수님이 누군지를 가르쳐주지 않고 성령받게 하고 있다면 개인이나 단체는 가짜성령운동임을 알라. 둘째, 회개를 충분히 시키지 않고 성령의 은사를 받으라고 한다면 그것도 가짜인 줄 알라. 회개없이 은사를 받으려 하다가 대부분 귀신이 주는 은사를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3가지 팁이 있다. 첫째, 성령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 곧 구약으로 치자면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깨우쳐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 수만 있으면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한다. 신약은 1,000독 정도 하라. 그러면 성령께서 성경말씀을 다 깨우쳐주실 것이다. 둘째,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서 진리만을 드러내시는 분이므로, 나는 일평생 진리만을 믿고 따라가리라고 각오하라. 그 길을 가는 것이 외롭고 힘들고 핍박받는 일이 생길지라도 겁내지 말고 그 길을 걸어가라. 심판대 앞에 가면 오직 진리가 승리한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니 말이다. 셋째, 그분은 인격적이시므로, 그분에게 순종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을 잘 쓰시기 때문에, 성령께서 하신 말씀을 즉시 순종하기를 힘쓰라. 순종하는 것을 뒤로 미루지 말라. 성령의 음성에 즉각즉각 응답하고 순종하라. 그러면 성령의 인도를 잘 받게 될 것이다. 

 

7. 나오며

  요한계시록을 보면, 2~3장에 일곱교회가 나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일곱교회에게 주신 말씀이 나온다. 그런데 패턴을 보면 한결같이 동일하다. 처음에는 예수께서 당신이 누군지를 그 교회의 상황과 관련지어 말씀하신다. 그리고 칭찬할 것이 있으면 칭찬하신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회를 책망하신다. 그래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촛대를 옮겨버릴 것이고,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워버릴 것이고, 침상에 던져버릴 것이고, 환난에 두며, 자식을 죽여버리고, 토해내 버리겠다고 말씀하신다. 엄중한 경고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신다. 그런데 이 패턴을 한 번 찬찬히 들여다보라. 이게 무슨 말인가? 이는 성령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행하시는 본질적인 사역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있지만 예수께서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하셨다. 그렇다. 성령사역의 핵심은 예수님이 누군지를 아는 것이라야 한다. 그리고 회개를 하는 것이라야 한다. 그래야 귀신의 주는 은사를 받지 않고 성령이 주시는 은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며, 귀신에게 속지 않고 진짜 성령이 주시는 것들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20년 11월 22일(주일)

정병진목사

 

 

 

 

성령은 누구신가? 성령이 누구

신지에 관한 말씀을 어찌 한 편의 설교로 정리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성경66권은 그 해답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그래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성령에 대해 경륜적으로 살펴보았다. 우리는 여기에서 성령이 누군지에 대한 분명한 계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오, 한 분이신 영원하신 주 하나님,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 전능한 이시여, 우리 인류의 구원을 위해 삼위일체로서 행하신 당신의 위대하심을 영원히 찬양하고 경배하나이다."

2020-05-22(금) 금요기도회
제목: 성령은 누구신가(07) 경륜의 영(05) 한 분이자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성령(계1:4~8)
https://youtu.be/m04NDCcGxBs [혹은 https://tv.naver.com/v/13935084 ]

 

1. 들어가며

  성령은 누구신가? 성령은 영으로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이시다. 그런데 우리는 왜 성령을 알아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 인간이 구원받는 모든 영역에 성령께서 역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이 없이는 그 어떤 영적인 것들도 깨달을 수 없고, 심지어 자신이 죄인인지도 잘 모르며, 왜 구원을 받아야하는지도 잘 모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데 있어서 필수적으로 함께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령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분이므로 귀신이 성령을 가장하여 역사할 수도 있다. 그리고 성경을 잘못 해석하도록 귀신이 성령을 가장하여 잘못 인도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전반에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있게 하려면, 반드시 성령을 알아야 한다. 특히 성령이 누구신지 그 인격성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몇 시간 동안 성령이 누구신지에 대해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성령이 누구신지 알아보는 7번째 시간으로서 경륜의 영으로서 성령께서는 한 분이시자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심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2. 성령은 누구신가?

  성령이 누구신지에 관하여 우리는 그분의 인격성에 따라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분의 사역에 따라 정의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성령을 "하나님의 영"이나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할 때에는 그분의 인격성에 따른 정의라고 말할 수 있, 성령을 "양자의 영", "성경의 영", "인치시는 영"이라고 할 때에는 그분의 사역에 따른 정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분의 인격성에 따라서 성령을 정의하면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그것은 한 6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첫째, 그분은 "하나님의 영"이요, 둘째는 "여호와의 영"이시다. 그리고 셋째 그분은 "아버지의 영"이요, 넷째, 그분은 "아들의 영"이며, 다섯째, 그분은 "그리스도의 영"이자, 여섯째, "예수의 영"이시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이 누군지를 인격적으로 정의할 때 꼭 알아 두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성령은 경륜적인 영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령께서는 만세전부터 하나님의 영이기는 하셨으나, 그의 인격적인 명칭이 시대에 따라 약간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륜에 따라 성령을 다른 명칭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보자. 구약시대에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자 "여호와의 영"이라고 불렸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들어오자 성령은 구약시대와 동일하게 "하나님의 영"이라고 불렸지만, "여호와의 영"이라고 불리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오순절 성령강림이후에 성령은 구약시대에는 전혀사사용되지 않은 명칭이 사용되었으니, 그것은 "아버지의 영", "아들의 영", "그리스도의 영", "예수의 영"이라고도 불렀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륜에 따라 불성령의 명칭이 달라졌음을 알고 뒤에 나오는 성령을 앞의 시대에 소급적용하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 구약시대에 나오는 성령을 "아버지의 영"이라든지 "아들의 영, 그리스도의 영, 예수의 영"이라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아직 아들이 세상에 출현하지도 않았고 대속사역을 완수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순절 이후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들은 성령의 명칭을 모든 명칭으로 다 불러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미 성령께서는 여러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성령이 되셨기 때문이다. 

 

3.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고 있는 성령은 누구신가?

  그럼, 성령이 누구신지에 관한 가장 확실하고 최종적인 정의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성경의 결론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성령에 대한 정의일 것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성령을 어떤 분이라고 묘사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에 보면, 성령을 5가지로 묘사하고 있는데,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다 요한계시록에만 나오는 명칭들이다. 다른 곳에도 나오는 성령의 명칭 한 가지는 "그 영'이라는 것이며, 나머지 네 개는 다 요한계시록에만 나오는 고유한 명칭들이다. 그리고 그러한 명칭으로는 "보좌앞의 일곱 영들(계1:4)", "보좌 앞에 켜져 있는 일곱 등불들(계4:5)", "하나님의 일곱 영들(계4:5)",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들(계5:6)", "어린양의 일곱눈들(계5:6)"이 있다. 참고로, 구약시대에 스가랴 선지자가 있었는데, 그는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들"을 "여호와의 눈들"이라고 예언한 바가 있기도 하다(슥4:10).

 

4. 요한계시록이 말씀하고 있는 성령에 대한 명칭이 알려주는 놀라운 비밀은 무엇인가?

  그런데 요한계시록이 말씀하고 있는 성령에 대한 명칭은 정말 많은 영적인 비밀을 알려주는데, 그중에서도 한 분 하나님이자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성령의  비밀을 고스란히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그럼, 이제부터 한 분 하나님이자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성령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성령에게 "일곱"이라는 숫자가가 붙어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곱 영들", "일곱 등불들"이 그것이다. 왜 하나님의 영에게 "일곱"이라는 숫자가 붙어있을까? 그것은 요한계시록이 묵시문학으로서 여기에 사용되는 모든 숫자들은 산술적인 의미를 뛰어넘어 영적이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일곱"과 "열둘"은 매우 중요한 숫자인데, "일곱"은 이 땅에서의 완전함를 가리키고, "열둘"은 하늘에서의 완전함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어린양의 뿔들이 일곱이고, 어린양의 눈들이 일곱이며, 성령을 일곱 영들이자 일곱 등불들이라고 하는 것은 성령께서는 순전히 이 땅에 있는 우리 인간들을 위해 일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가늠해볼 수 있다.  사도요한이 성령더러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일곱 등불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성령께서 얼마나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관심갖고 있는지를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성령을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라고 하는 것은 성령께서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 곧 창조와 보존과 섭리에 관하여 계속해서 관여하시고 일하고 계심을 알려준다. 

  둘째, 성령이 꼭 "어린양"이나 "여호와"와 관련지어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도요한이 성령을 "일곱 영들"이라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라고 말하며, 또한 "일곱 눈들"이라고 말하지 않고, "어린양의 일곱 눈들"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신데, 편지의 맨 마지막에 가서는 꼭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말로 끝맺고 있다다는 것이다. 이는 성령께서 예수님과 불가분의 관련이 있음을 가르쳐주는 것이며(계5:6), 여호와와도 불가분의 관련이 있음을 말해준다(슥4:10). 왜냐하면 성령은 독립적인 또 하나의 하나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영이요, 예수의 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술은 성령이 한 분 하나님의 영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준다. 특별히 성령을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어린양의 일곱눈들"이라고 했다는 것은 성령께서는 하늘로부터 이 땅으로 보내심을 받아 이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주관하시고 지켜보고 감찰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린양으로 형상화된 예수께서는 이 땅에 보내어진 성령을 통해서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지금도 다 감찰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5. 성령은 "하나님의 보좌 앞의 일곱 영들"인가, 하나님 자신의 영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성령이 누군지에 관하여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어떻게 아버지의 영이신 성령께서 아들의 영도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성령께서 "아버지의 영"이라면 그 영은 결코 "아들의 영"이 될 수 없으며, 혹 성령이 "아들의 영"이라고 한다면 그 영은 결코 "아버지의 영"이 될 수 없는 것이 상식적인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령은 "아버지의 영"이면서 동시에 "아들의 영"이라고 성경이 명확히 증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이 하나님과 떨어져 있는 영으로서 하나님의 보좌 앞의 일곱영들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자신의 영인지를 구별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볼 때, 성령은 하나님과 분리된 독립적인 영이시면서, 동시에 하나님 자신의 다른 표현으로서 한 분의 영이라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성령이 경륜의 영이시라는 사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경륜적으로 볼 때 성령은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영이자, 여호와의 영이라고 불려졌지만, 신약시대에 들어와 성령은 아버지의 영이면서 아들의 영이라고 불려졌기 때문이이다. 그러다가 오순절 성령강림사건 이후에는 성경은 단독적으로 말씀하시며, 명령하시는 부분이 나오기 때문이다(행8:29,10:19,11:12,13:2,딤전4:1,계14:13,22:17). 그러므로 성령은 첫째, 하나님과 분리된 독립적인 영으로서 "하나님의 보좌 앞의 일곱 영들(일곱 등불들)"이시다. 더불어 성령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서는 하나님 자신의 또 다른 영이시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면서 여호와의 영이자, 예수의 영이신 것이다. 

  

6.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렇다면 영은 영이나 "하나님의 영"으로서 성령을 이해하려고 할 때, 여기서 "하나님"은 대체 누구신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명칭들에 있어서는 여러가지 명칭들이 있지만, 성령의 최종계시인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최종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 증언하고 있는 하나님이 대한 고유한 명칭들은 무엇인가? 첫째로 그분은 "주 하나님"이라는 것이다(계1:8,4:11). 둘째로 그분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과 마침이다"이신 분이시다(계1:4,8,2:8,21:6, 22:13). 셋째로 그분은 "전능자"이시며(계1:8,4:8, 11:17), 넷째로, 그분은 "보좌[위]에 앉아계신 이"이시다(계4:7,5:1,7,13,6:16,7:15,21:5). 그리고 다섯째로, 하나님은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장차 오실 이"이시다(계1:4,5,4:8).

  이러한 표현들 중에서 우리가 성령과 관련지어 살펴볼 명칭은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장차 오실 이"라는 명칭이다. 엇필보기에 이 명칭은 성부 하나님에 대한 고유한 명칭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요한이 소아시아교회의 일곱 사자에게 편지를 써 보낼 때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서 문안인사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즉 성부는 "전에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고, 성령에게는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들"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으며, 성자에게는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이"라고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본다고 해서 그것이 전적으로 틀린 해석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정확한 해석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이라는 표현은 성부만을 지칭하는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계1:4,8)"가 예수께서 심판주로 재림하신 이후(일곱번째 나팔이 울려퍼진 이후)에는 다르게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일곱째나팔이 울려퍼진 이후에 주 하나님은 이제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던 이"라고만 나오기 때문이다(계11:17, 16:5). 그것은 예수께서 이미 심판주로 오셨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는 표현을 성부에게만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이 표현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칭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장차 오실 이"가 예수님에 대한 호칭이라고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삼위일체방식으로 "전에도 계셨고(이미 계셔왔고 아직도 계시는 이)"라는 표현은 성부에 대한 명칭으로 해석하고, "이제도 계시는 이"는 성령에 대한 명칭으로 해석할 수 있음을 산정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영들"인 성령께서는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다른 표현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다른 동일한 표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동시에 세 가지 위격을 가지신 분이신 것이다.

 

7. 성령께서는 한 분 하나님이신가 아니면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신가?

  우리는 이상의 말씀들을 통하여, 성령께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독립적인 위격을 가지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동시에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성령께서는 경륜적인 안배가 있다는 것을 꼭 알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성령께서 독립적으로 자신의 위격을 사용학디 시작한 때는 오순절 성령강림이후부터라는 것이다. 이는 구약시대에나 예수님의 공생애시대에 성령께서는 한 번도 독립적으로 자신을 1인칭시점으로서 말씀하거나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신 적이 없었음을 뜻한다. 왜냐하면 전부 다 3인칭시점으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순절의 마가다락방의 성령강림 사건이후 성령께서는 이제 스스로 말씀하시기 시작하신다. 자신을 1인칭 시점으로 말씀하시기 시작하신 것이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사도행전13:2의 말씀이 그것이다. 이 말씀을 헬라어원문에 따라 직역해보면 다음과 같다. "그런데 그들이 주를 섬기고 있으면서 금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가 이미 부른 채 있는 바의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 '나에게'(나를 위하여) 구별하라"(행13:2). 그렇다. 여기서 성령께서는 "내가" 혹은 "나를 위하여"라는 표현을 사용하신다. 이것은 그분에게 독립적인 위격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고로 우리는 성령강림사건 이후부터는 성령에 대해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분 스스로가 독립적으로 말씀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성령께서는 "어린양의 일곱 눈들(계5:6)"이자 "여호와의 일곱 눈들(슥4:10)"이라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한다. 또한 명칭상으로 볼 때에도 성령께서는 "예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아들의 영"이자 "여호와의 영, 아버지의 영"이라는 표현하고 있기에, 성령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다른 표현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한다.

 

8. 나오며

  사실 삼위일체 하나님과 한 분 하나님을 말할 때에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4세의 이단이었던 아리우스(A.D.250~336)는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강조하다가 그만 예수님을 피조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니케아종교회(A.D.325)와 콘스탄티노플종교회의(A.D.381)는 하나님을 삼위일체식으로 표현하려다가 그만 하나님을 세 분처럼 표현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 종교회의의 신앙고백 어디에도 "셋이 하나다"라는 조항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하나님에 대해서 표현할 때에는 세번째 위격만을 강조하다가 성령을 세번째 하나님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주의해야 한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한 분 하나님으로 이야기하려다가 성령님을 하나님의 능력과 활동으로만 제한하려고 해도 아니될 것이다. 우리의 성령님은 한 분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다만 홀로 한 분이셨던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경륜적으로 당신을 나타내시고 일하셨던 것을 지켜보면서, 오직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린다. "오, 전능하신 분,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찬양과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아멘.

 

2020년 05월 22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은 누구신가(06) 경륜의 영(04) 세번째 위격을 가진 삼위일체의 성령(행13:1~3)_2020-05-22(금)

https://youtu.be/o4RIIFeg7sg [혹은 https://tv.naver.com/v/13916875 ]

 

 

1. 성령을 신구약시대에는 어떻게 불렀나요
  구약시대에는 성령을 "하나님의 영"이라고 불렀고(창1:2,출31:3,겔11:24), 출애굽기에서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알려준 이후부터는 "여호와의 영"이라고도 불렸습니다(삿3:10,14:6,15:14,삼상10:6,삼하23:21,사11:2). 그리고 신약시대 이후 성령은 "하나님의 영"(마3:16,12:28,빌3:3)이라는 명칭 외에도 "아버지의 영"(마10:20), "아들의 영"(갈4:6), "예수의 영"(행16:7)", "그리스도의 영"(롬8:9,벧전1:11), "예수 그리스도의 영(빌1:19)"이라고도 불렸습니다. 

 

2. 성령을 "예수의 영", "아들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요?

  성령을 "하나님의 영(혹은 여호와의 영)"이라고만 부르지 않고, "예수의 영"이나 "아들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 자신의 영이라는 뜻이고, "여호와의 영"이라는 것은 여호와 자신의 영이라는 뜻인데, 이러한 성령을 다시 "아들의 영"(혹은 "예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성령이 한 분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에, 아버지의 영이면서 아들(혹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영이라고도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만약 '여호와'와 '예수'께서 다른 분이라면 성령을 "여호와의 영"이자 동시에 "예수의 영"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고로 우리는 성령에 대한 호칭사용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3. 오순절 이후 성령의 역사하는 방식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오순절 이후 성령께서는 경륜상 많은 변화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것은 비단 호칭만 달라진 게 아니었습니다. 가장 달라진 점은 사람에게 오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어떤 특정한 몇몇 사람 위에 머물러계시다가(삿14:6,15:14,삼상10:6,사11:2), 성령을 받은 자가 범죄하기라도 하면 떠나가기도 하셨는데(시51:11), 오순절 이후에는 보혜사 성령께서는 모든 믿는 사람(거듭날 때) 속에 들어오시게 되었으며, 성령을 받은 자가 죽기전까지는 떠나가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요14;16). 그것은 구약시대에 말세에는 만민에게(모든 사람) 위에 성령을 부어줄 것이며(욜2:28~29), 성령을 사람 속에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겔36:26~27). 그리고 나중에 배우겠지만 사역에 있어서도 많이 달라졌으니, 인치시고 보증하시며, 거듭나게 하시는 일을 행하시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4. 오순절 이후에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와 어떻게 함께 하시게 되었나요?

  구약시대에 성령께서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어진 하나님의 영으로서 활동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모세시대 이후에는 자신을 '여호와'라고 말씀하심)께서 창조사역을 감당하실 때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 땅에서 창조사역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행하신 일을 굳이 표현을 사용하여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에 의해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시기 전까지 항상 성령은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 땅에서 사역을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순절 성령강림사건 이후에는 예수께서 승천후 아버지께 구하여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보혜사이신 예수님을 대신하여 이 땅에 오신 또 다른 보혜사로 오신 성령께서는 이제 구약시대에 여호와처럼, 신약시대에 예수님처럼, 자신을 1인칭 시점으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A.D.30년 오순절이전까지 성령께서는 항상 간접적으로 활동하셨지 단독적으로 활동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순절이후부터 성령께서는 이제 단독적으로 그리고 독립적으로 활동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안디옥교회의 지도자들이었던 선지자들과 교사들에게 성령께서 "나를 위하여" 몇바나바와 사울(바울)을 따로 세우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행13:2의 말씀을 헬라어원문으로 직역해보면 그 뜻이 이렇게  더 선명해집니다.

행13:2[직역] 그런데 그들이 주를 섬기고 있으면서 금식할 때에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이미 부른 채 있는 바의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나를 위하여 구별하라

 

5. 오순절이후 성령은 어떻게 불리게 되었나요?

  그러므로 오순절 마가다락방의 성령강림사건 이후 성령께서는 한 분이지만 세번째 위격을 가지신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순절 이후부터는 성령께서도 직접적으로 말씀하기 시작하셨으며, 독립적으로 위격으로서 자신을 "내가", "나를 위하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순절이후 시대에 살고 있는 믿는 성도들을 하나님을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경륜적인 삼위일체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여 구약시대에도 성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밖으로 나와 활동했다고 하는 해석자들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해석이며, 동시에 성령께서 독립적으로(1인칭 시점을 사용하여) 일하시거나 말씀하신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구약시대에 성부께서 성령과 서로 협의를 했다고 말하는 해석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2020년 05월 22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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