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6(수) 수요기도회

제목: 요한복음강해(19) 생명의 떡의 설교가 들려주는 예수님의 첫 번째 자기선언(요6:35~7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TgfWuP2TXsU  [혹은 https://tv.naver.com/v/30826799 ]

 

1. 들어가며

  요한복음은 크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1장부터 12장까지는 7가지 표적을 중심으로 기록된 '표적의 책'이며, 13장부터 21장까지는 예수님의 강화를 중심으로 기록된 '영광의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요한복음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예수님의 7가지 자기 선언이 양쪽에 다 걸쳐 있다. "나는~이다"라고 하는 예수님의 자기 선언은 1~12장에서 다섯 번 나오고(요6:35, 8:12, 10:7, 10:11, 11:25), 13~21장에서 두 번 더 나온다(요14:6, 15:1). 그런데 놀랍게도 요한복음에서는 하나의 단락에서 예수님의 표적도 나오고 예수님의 자기 선언이 나오는 것이 딱 한 번 있다. 그것이 바로 요한복음 6장이다. 요한복음 6장에는 예수님은 네 번째 표적으로서 '오병이어의 표적'이 나옴과 동시에, 예수님의 첫 번째 자기 선언으로서 '나는 생명의 떡이다'라는 말씀도 같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요한복음에서 표적의 역할은 어떤 것이며, 자기 선언의 역할은 어떤 것인가?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첫 번째 자기 선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예수께서는 왜 당신 자신을 '나는 생명의 떡이다'라고 선언하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예수께서 주시려는 '영생'과 그리고 예수님의 성만찬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가?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서 예수님의 생명을 나의 것으로 취할 수가 있는가? 

 

2. 오병이어의 기적과 "나는 생명의 떡이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첫 번째 자기 선언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요한복음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요6:1~13)은 예수께서 행하신 7가지의 표적들 가운데 4번째 표적에 해당한다. 예수께서는 그간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다. 그리고 아울러, 왕의 신하의 아들을 소생시키셨고, 베데스다의 38년된 중풍병자를 일으켜 세우셨다. 그리고 이번에 네 번째 표적으로서 어린 소년이 가져온 '오병이어'를 가지고서 성인 남자만 5천 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가 남는 음식 기적을 베푸셨다. 그러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이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러 오신 분이라는 것을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으니 그것이 바로 "나는 생명의 떡이다(요6:35)"라는 비유다.

  그렇다면, '오병이어의 기적'과 '예수님의 첫 번째 자기 선언'은 어떤 관련이 있으며 또한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먼저, 둘의 관련성을 살펴보자. 먼저 이 둘은 예수께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주시는 생명과 관련이 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사람의 육체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베푸신 기적에 해당하며, '나는 생명의 떡이다'라는 예수님의 자기 선언은 예수께서 사람의 영혼을 살리기 위해 오셨음을 말해 주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고로 둘 다 육체이든 영혼이든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생명과 관계되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둘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먼저, 오병이어의 기적이 예수께서 하나님으로서 사람들에게 육의 양식을 공급하시는 공급자인 것을 말씀하고 있다면, 예수님의 첫 번째 자기 선언은 예수께서 생명의 공급자라는 말씀이 아니라, 예수께서 생명 그 자체로서 자신의 생명을 사람들에게 나눠 주어 그들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병이어의 기적이 예수께서 '하나님으로서' 행하신 일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면, 예수님의 첫 번째 자기 선언은 예수께서 '사람으로서' 인간을 위해 무엇을 행하러 오셨는가에 촛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또한 이것을 더 큰 눈으로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7가지 표적의 하나로서, 예수께서 왜 표적을 행하셨는지 그 이유를 알려 주는 것이라면, 예수님의 첫 번째 자기 선언은 예수께서 무슨 일을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는지를 알려 준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예수께서 일으키신 오병이어의 기적은 예수님이야말로 영생하는 양식을 주시러 오신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나는 생명의 떡이다'라고 하는 자기 선언은 예수님이야말로 사람들에게 생명 그 자체이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3. 예수께서 당신을 '나는 생명의 떡이다'라고 선언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께서 갈릴리 벳새다에서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 가득 남기는 기적을 행하셨을 때, 사실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폭발적이었다. 그들은 예수님만 있으면 자기들의 배고픔의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붙들어 임금 삼으려고 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피하여 산으로 가셨고 밤에 바다 위를 걸어서 가버나움으로 이동하셨다. 그런데 사람들은 거기까지 쫓아왔다. 그럼, 그들이 거기까지 따라온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당신이 이미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려 주셔야 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내가 생명을 주러 오신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내가 곧 생명 그 자체이다는 것을 그들이 알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그분은 그들에게 "내가 생명의 떡이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그런데 곧바로 "내가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신 것은 예수께서 생명이라는 것을 알기 쉽도록 비유적으로 말씀하시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육체의 생명에 필요한 양식의 공급자로서 예수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셔야 할 것을 대신 그렇게 비유로 표현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생명인지 아닌지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그들은 예수께서 자기들에게 떡을 계속해서 생산해 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육신의 양식을 먹이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었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공급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또한 그분 자신을 영원한 생명으로서 내어 주기 위해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믿어서 영생을 얻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보고 있으면서 그분을 믿지 않았다. 

 

4. 사람들이 예수님이 생명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자 예수께서는 어떻게 하셨는가?

  예수께서는 당신이 생명이라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당신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그들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모를 자기들이 잘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가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하는 것이냐면서 의아해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장차 당신자신을 내어 주실 것을 또 다른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그것은 예수께서 그들에게 줄 양식은 곧 자신의 살과 피라고 하셨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당신 안에 있는 생명을 내어 주시려고 육신을 입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이 우리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후 당신 안에 있는 생명을 해방하여 우리에게 주시려고 자신의 몸을 내어 놓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않는다면 결코 자기 속에 생명을 가질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요6:53).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셔야 주님께서도 그를 마지막 날에 부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요6:54). 왜냐하면 예수님의 살만이 참된 양식이요, 예수님의 피만이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께서 아버지로 인하여 생명을 받았듯이, 사람들도 인자로 인하여 생명을 받으면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다른 각도에서 보면, 예수께서 당신 자신을 식물 생명에 빗대어서 말씀하시다가 이어서 동물 생명에 빗대어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그들은 생명을 주러 오신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거기에 모인 무리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 말씀은 어렵도다고 하였다. 그래서 누가 이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하고 서로에게 이야기하였다. 

 

5. 예수께서는 단도직입적으로 어떻게 할 때 사람이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가?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이 생명이니만큼 당신을 떡처럼 먹어서 생명으로 취하라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들은 그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한 번 더 그것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서, "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생명을 얻는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여도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자 최종적으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직설적으로 말씀하셨다. "생명을 주는 것은 영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발언하고 있는 말씀들이 영이요 생명입니다(요6:63)"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이 말씀은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요, '영은 예수님께서 발언하고 있는 말씀'이니, '생명을 주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뜻이다. 고로 사람이 영생을 얻으려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예수께서는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는 것을 믿으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생명을 얻으려면 예수님에게 스스로 나아온 후에,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요6:35).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생명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들은 단지 예수님을 육신의 양식을 생산하여 주시는 분으로서, 기적을 행하시는 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6. 사람들이 떠나자 예수께서는 12제자들에게 어떻게 물으셨는가?

  예수께서 자신을 생명의 떡이자 또한 영생을 위한 살과 피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더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면서 떠나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더 이상 그들에게 육신의 떡을 생산하여 주시지 않고 영혼에 필요한 생명을 주실 것이라 말씀하시자 그들이 실망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번에 예수께서는 당신이 직접 선택하여 세우신 12제자들에게도 질문을 던지셨다. "여러분도 가는 것을 원하십니까?"(요6:67) 그때였다. 12명을 대표하는 베드로가 나서서 말했다. "주여, 당신이 영생의 입말씀들(레마들)을 가지고 계신데, 우리가 누구에게로 떠나가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당신을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믿은 채 있으며 아미 알아온 채 있습니다"라고 했다(요6:68~69). 그렇다. 무리들이 아닌 12명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이미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이라는 것이 인식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예수께서 그들에게 한 번 더 말씀하시면서, 12명 중에서도 떠나갈 사람이 있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12명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곁을 떠나가지 않겠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그들 중에 한 명은 예수님을 넘겨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내가 여러분 열둘을 세운 것은 맞지만, 여러분들 중에 한 명은 마귀입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에 대해 사도 요한은 이는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해설을 달아 놓았다. 그렇다. 그렇게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 앞에 몰려들었지만 그들 대부분은 예수께서 누구시며 왜 이 땅에 오신 것인지를 잘 알지 못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은 어렵다고 하면서 떠나갔다. 하지만 12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가룟 유다를 제외한 11명의 제자들만이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7. 생명의 떡에 관한 예수님의 교훈 가운데 오늘날 많이 오해하고 있는 말씀은 대체 무엇인가?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서, 지금까지 잘못 알려진 말씀이 있다. 그것은 요한복음 6장 37절과 39절의 말씀이다. 그 말씀은 만세 전에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를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실 것인데 그러면 아들은 그들을 잘 보존했다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은 채 마지막 날에 부활시키는 말씀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러한 말씀이 아니다.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우선 이 말씀을 개역 성경으로 살펴보자. 

요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요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이처럼 개역 성경에서는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시는 자(사람)가 있는데, 사람이 아무리 많을지라도 이러한 자만이 예수님에게로 나아갈 것이며, 또한 그렇게 되면 예수께서는 그러한 사람을 결코 내쫓지도 아니할 것이고, 그 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은 채 마지막 날에 다 부활시킬 것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잘못 번역한 것이다. 왜냐하면 번역자가 그러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 채 이 본문을 번역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헬라어 원문을 보라. 결코 그렇게 쓰여져 있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구원얻을 자를 만세 전에 정해 놓았다고 말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원얻을 자만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보내신다는 말씀도 역시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가진 분들이 이 본문을 번역하면서, 요한복음 6:37,39의 말씀은 만세 전 개인예정의 말씀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아니다. 그렇다면 실제 헬라어 원문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다.

요6:37[직역]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모든 것(중성, 단수)은 나를 향하여 다다를(도착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향하여 [계속] 오고 있는 자(남성, 단수)는 내가 결코 바깥쪽으로 내쫓지 않을 것입니다.
요6:39[직역] 그런데 나를 보내셨던 이의 뜻은 이것입니다. 내게 [이미] 주신 채 있는 모든 것(중성, 단수)을 내가 그것에서부터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마지막 날에 일으켜 세우기 위함입니다. 

  헬라어 원문에 따르면, 요6:37이나 6:39의 말씀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시는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다는 말씀이 아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구원하시려고 예정해 놓은 개인이 따로 있다는 말씀도 아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시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어떤 것(중성)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영생을 얻기 위해 예수님 앞으로 나아오는 자들을 지키고 또한 부활시키기 위해 예수님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모든 것을 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다는 말씀이다. 그럼,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시는 모든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아마도 그러한 것에는 "지혜, 명철, 능력, 권세" 등이 있으리라고 본다. 그렇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지금도 아들에게 사람들을 보내시고 있다. 다만 자기 스스로가 아들에게 가지 않으려 하고 아들을 보고도 믿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영생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생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에게 나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예수께서는 이들 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아버지로부터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받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그것을 아들에게 주시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 예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보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 날에 부활시켜 영생의 나라로 데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8. 나오며

  표적으로서 4번째 표적인 '오병이어의 기적'과 또한 예수님의 첫 번째 자기 선언으로서 '나는 생명의 떡이다'라는 말씀은 요한복음의 6장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말씀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당신이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셨기 때문이요, '나는 생명의 떡이다'는 말씀을 통하여, 당신이 생명 그 자체인 것을 드러내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생명 수여자임과 동시에 생명 그 자체이시다. 우리는 그것을 표적과 자기 선언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 생명을 취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생명을 얻기 위해 그분 앞으로 나아갈 뿐만 아니라, 그분이야말로 생명 수여자임과 동시에 생명 그 자체이신 것을 믿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생명이며, 예수님의 말씀이 또한 사람에게 생명을 주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6:63). 이러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들어오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의 몸을 우리에게 내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우리더러, 예수께서 행하신 그 일들을 결코 잊어버리지 말라고 아예 성찬식으로 제정해 놓으신 것이다. 그만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행하신 일은 귀중하고 소중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약 예수님을 믿어 성령을 통해 이 생명을 받았다면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끝나는 그날까지 이 생명을 보존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을 부인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배반하지 않는 것이다. 설령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할 상황에 처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받은 이 생명을 잘 간직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죽는 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영원한 생명이 곧 영원토록 우리의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22년 11월 16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귀신을 내게서 완전히 쫓아버리기 위한 두번째 조건의 요체는 무엇인가?(1)(요일4:4)_2020-02-13(목)

https://youtu.be/5a623AaTCOs

 

1. 사람에게 들어온 귀신이 쫓겨나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람에 들어온 귀신이 쫓겨나가지 않는 이유는 크게 2가지입니다. 하나는 죄를 회개하지 않아서입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게 된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요일3:8). 그리고 죄의 권능은 율법에 있습니다(고전15:56). 그러므로 율법을 어기게 되면 죄가 가동되며, 그러면 그 사람이 마귀에게 속하게 됩니다. 그런데 귀신들은 마귀의 부하들이니만큼, 결국 죄를 짓게 되면 귀신이 사람 속에 들어올 수 있는 합법적인 근거가 마련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에게서 귀신이 잘 나가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분은 자기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구약의 율법인 십계명과 이것을 한층 강화시킨 산상수훈(천국헌법)을 살펴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더불어 회개는 했지만 덜 회개한 죄가 없는지, 숨겨놓거나 빠드린 죄가 없는지 살펴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로 회개하셔야 합니다. 특히 조상들이 지은 죄가 우상숭배의 죄는 3~4대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했으니(출20:5), 그런 죄가 없나 꼼꼼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약 조상들이 우상숭배를 했다면, 죄를 지은 당사자가 살아있으면 그분이 회개해야 하겠지만 그분이 돌아가시고 없다면 후손인 자신이 대신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귀신이 쫓겨나가지 않은 이유의 또 하나는 믿음이 부족하든지 아니면 없어서입니다(마17:17,20). 여기서 믿음이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리키며(요일5:4), 특히 예수님과 귀신의 상관관계에 대한 믿음을 가리킵니다(요일4:4,5:18).

 

2. 요한일서에서는 마귀의 졸개들인 귀신과 우리안에 들어오신 예수님의 상관관계를 어떻게 말씀하고 있나요?(요일5:4,4:4,5:18)

  누군가가 자신이 지은 죄들과 조상이 지은 죄들을 다 회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서 귀신이 나가지 않고 있다면, 그는 지금 자신에게 믿음이 제대로 있는가를 체크해보셔야 합니다. 믿음만이 귀신과의 싸움에서 우리에게 승리(이김)를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귀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에 대한 말씀 그리고 예수님과 귀신에 관한 말씀을 살펴보아야 하는데, 특히 요한일서의 말씀 중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3개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러한 3개의 성경구절은 기왕이면 암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요일5:4,4:4,5:18).

요일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요일5: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3. 누가 마귀가 지배하고 있는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나요?(요일5:4,5:19)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누가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나요? 그것은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곧 우리의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요일5:4). 그럼, 어떤 믿음입니까?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은 누구든지 다 세상을 이긴다고 하는 믿음입니다(요일5:4). 그런데 온 세상은 이미 악한 자에 처해(놓여) 있다고 했으니, 악한 자를 이길 수 있는 자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 곧 거듭난 자(중생한 자)뿐입니다. 그럼, 사람은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요한복음 3:5~6에 따르면, 사람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 나야 하며, 이렇게 거듭난 자라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특히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 사람들은 누구나 부모로부터 자신의 육체가 태어나게 되며, 성령으로부터 자신의 영이 거듭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거듭 난다(다시 태어난다)"는 뜻은, 우리가 성령으로부터 하나님의 생명을 분리유전받게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자신의 부모로부터 생명을 분리받게 되는 것을 두고 자신이 태어났다는 표현을 쓰는 것처럼,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생명을 분리유전받았으면 우리도 거듭태어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실 때에 갖고 오신 생명은 원래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들에게 주어졌고, 아들은 죽고 부활하심으로 성령을 통해서 그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마음 속에 성령을 갖고 있다면 곧 생명으로 가지고 영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였다면(물론 죄는 필수적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생명을 분리유전받아 거듭태어난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마음 속에 영접했다면 그는 귀신을 이길 수 있는 제1차의 관문은 다 통과한 셈입니다. 이제는 우리에게는 두번째와 세번째의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요일4:4,5:18).

 

4. 귀신을 이길 수 있는 "믿음"에 관한 두번째 관문과 세번째 관문은 무엇인가요?

  먼저, 두번째 관문은 요일4:4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거듭 태어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우리는 사탄과 귀신들과 같은 거짓된 영들은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계신 이(예수님)"가 "세상 안에 있는 자(마귀)"보다 크시다고 성경이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요일4:4). 우리가 회개하고 믿을 때에 우리 안에 들어오신 예수께서는 이 세상임금인 마귀보다 더 크신 분이십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왜 그렇게 되는지는 조금 있다가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귀신을 이길 수 있게 해주는 세번째 관문은 요일5:18의 말씀입니다. 요한사도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그리스도인)"은 다 [계속] 범죄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예수님)"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그리스도인들)"을 지켜주시기 때문에,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손대지도) 못한다고 말했습니다(요일5:18). 우리가 만약 회개하고 더불어 예수님에 확고한 믿음을 가졌다면 우리는 즉시 귀신에게 "너 내게 손대지 마, 나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귀신이 쫓겨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귀신이 쫓겨나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5. 우리는 과연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죄를 회개했으며, 예수님을 믿어서 거듭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귀신을 못 쫓아내고 귀신에게 시달리고 있다면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그것은 본인의 패배의식 때문입니다. 자기가 쫓아 보아도 떠나가지 않았고, 신령한 분에게 부탁하여 쫓아보게 했으나 결국 쫓아내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크게 실망하는 것입니다. 안 된다고 자포자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은 지금 자신의 "믿음"에 있어서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그렇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서 나를 성전삼고 거하고 계시는 성령 곧 영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과연 누구신지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계신 이(예수님)"가 "세상에 있는 자(사탄마귀)"보다 크다는 말씀의 의미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럼,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이것은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아야 하는데(내일 소상히 살펴보겠습니다), 간단하게 정리만 한하면 이렇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자신이 누군지(정체성)을 스스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하나님의 자기선언"). 그러한 정의는 딱 2가지 뿐입니다. 하나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3:14)"는 것과 또 하나는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사41:4,44:6,48:12)"는 자기선언입니다. 여기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는 원문은 "예흐예 아쉐르 예흐예(I am that I am)"라는 문장입니다. 여기서 "예흐예"의 동사의 원형은 "하야(be)"인데, 이 "하야"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첫째는 [우리나라 개역성경처럼] "자존자"라는 의미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이것은 be동사를 1형식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한 것입니다). 그러나 둘째로 [표준새변역처럼] 못할 것이 없는 "전능자"라는 의미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이것은 be동사를 2형식의 "~이다"라는 의미로 해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출3:14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자기선언은 곧 여호와께서 자신만이 자존자이시며 전능자이심을 나타내신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에 보면, 유대인들이 예수님더러 "너는 누구냐?"고 질문했을 때, 예수께서도 대답을 하셨는데, 놀랍게도 구약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똑같이 "나는 스스로 있는 자(나는 ~라고 하는 나)"라고 3번씩이나 말씀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요8:24,28,58). 그러나 우리개역성경에서는 "나는 그니라(요8:24,28). 나는 있느니라(요8:58)"로 번역해놓고 있어, 예수께서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대답하셨다는 것을 잘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헬라어원문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한 분의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구약시대로 치자면 그야말로 여호와와 같은 분이십니다. 아니 여호와라고 해도 틀린 것이 아닙니다. 구약시대에 여호와는 한 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자신을 나타내신 것이요, 신약시대에 예수님은 자신을 아들의 신분으로 낮추어 나타내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는 자기 스스로를  "나는 처음으요 마지막이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구약시대 때에는 오직 홀로 여호와께서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 선언 곧 하나님의 자기선언과 똑같은 표현입니다(사41:4, 44:6, 48:12)" 결국 우리는 예수께서 신성의 영역에서 볼 때, 아버지보다 못한 분이 아니라, 아버지와 동등한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요14:28, 13:16, 빌2:6~8).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요 전능자이신 하나님이십니다(요일5:20). 그런데 감히 사탄마귀의 졸다구에 불과한 귀신이 전능한 자와 함께 거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귀신이 나가지 않는 이유는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너무 작고 협소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이 부분은 내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020년 02월 13일(목)

정병진목사


이사야서에는 이사야서에만 나오는 독특한 하나님의 자기선언이 있다. 그것은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는 표현이다. 그런데 이 표현이 요한계시록에 그대로 등장한다. 그런데 그것을 말씀하시는 이가 주 하나님이요, 보좌에 앉으신 이요, 어린양이신 예수님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인가? 오늘 이 시간에는 이사야서에서 창조주요 구원자로 나오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과연 누구신가를 집중조명해고자 한다.


1. 들어가며

  신구약성경 가운데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관한 가장 확실한 진술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놀랍게도 이사야서에 나온다(사9:6). 더불어 하나님께서 보내실 메시야에 관한 가장 확실한 진술도 이사야서에서 나온다. 그렇다. 이사야서는 하나님과 메시야에 관한 가장 확실한 진술을 담고 있는 책이다. 더욱이 그 분량에 있어서 이사야서를 따라올 다른 성경책이 없다그렇다면 이사야서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부활후 승천하신 예수님의 자기선언과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지고 있을까? 우리는 구약의 여호와와 여호와께서 장차 보내주실 것이라고 4천년동안 약속한 메시야이신 예수와 어떤 상관성이 있는지를 찾아봐야 한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자기선언이 곧 예수님의 자기선언과 같기 때문이다. 동시에 구약시대의 여호와의 자기선언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메시야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여호와께서 신약시대에 어떻게 오셨으며 그리고 사역을 마친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신 후에 자기선언을 하시는데 그것이 얼마나 여호와의 자기선언과 일치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하나님은 한 분인지 세 분인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하나님께서 자기를 일컬어 "나는...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이사야서를 통해서 구약성경 가운데 이사야서에서만 언급하고 있는 하나님의 자기선언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나는...이다"라고 표현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자기선언은 누가 "하나님은 이러이러한 분이다"라고 증거하는 것과 상당히 다른 차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신약의 예수께서도 "나는...이다"라고 말씀하셨지만,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누구라고 말하는 것과 차이가 나는 것과 같다. 사실 타인이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일컬어 "당신은...입니다"라고 하는 것은 곧 그분에 대한 자기의 신앙이나 믿음을 고백한 것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나는...이다"라고 표현한 것은 하나님의 자기선언으로서 절대 변할 수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기선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3. 이사야에 나오는 하나님의 자기선언

  그렇다면 이사야에서 등장하는 하나님의 자기선언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리고 이사야서에서 등장하는 하나님의 자기선언은 무엇일까? 우선 간단히 정리하면,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은 당신을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여호와다.", "나는 하나님이다.", "나는 창조주다.", "나는 구원자다." 그런데 구약성경 중에서 이사야서에서만 등장하는 독특한 하나님의 자기선언이 있다. 그것은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는 선언이다(사41:4, 44:6, 48:12).


4. 구약성경에서는 이사야에만 나오는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이라는 하나님의 자기선언과 예수님의 자기선언은 어떤 관련이 있는가?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는 자기선언이 똑같이 신약성경에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더 놀라운 사실은 예수께서도 그러한 선언을 하시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이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하나님과 같은 분 혹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본질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기에 그렇게 표현하신 것일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선언하는 것은 매우의미심장한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의도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자기선언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사용하셨던 표현으로서, 이사야 선지자만이 사용했던 독특한 하나님의 자기선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예수께서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이 표현을 자기에게 사용하셨다면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아들의 월권행위가 된다. 과연 예수께서 사용하신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계22:13)"라는 자기선언은 신성모독인가 아니면 정당한 자기선언인가? 이제는 예수께서 언제 어디서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셨는지를 살펴보고, 왜 예수께서 그러한 표현을 사용하셨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도록 하자.


5. 예수님의 자기선언의 두 방면

  먼저, 예수님의 자기선언에는 2가지 방면이 있다는 것을 살펴보자. 그것은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공생애를 사실 때 하셨던 자기선언과 부활승천하신 후에 하셨던 자기선언이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살아계셨을 때에도 자신이 누군지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말씀하셨다. 그리고 부활승천후 천상에 계신 예수께서도 행하신 자기선언도 성경에 나온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사실은 육체를 입고 계실 때의 예수님의 자기선언이 7가지인데, 부활승천후 하늘에 계실 때의 자기선언도 7가지라는 사실이다. 앞의 자기선언은 요한복음서에 등장하고 있으며, 뒤의 자기선언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고 있다.


6. 이 땅에 계셨을 때의 예수님의 자기선언 7가지

  그렇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에 "나는...이다"라고 7번이나 말씀하셨으며, 부활승천후 하늘에서도 "나는...이다"라고 7번을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이 땅에 살아계실 때에 말씀하신 "나는...이다"라는 자기선언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 있을 때 자신이 누구라고 7가지를 말씀하셨다. 첫째, "나는 생명의 떡이다"(요6:35), 둘째,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8:12), 셋째, "나는 양의 문이다"(요10:7,9). 넷째, "나는 선한 목자다"(요10:14), 다섯째,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11:25). 여섯째,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14:6), 일곱째, "나는 참포도나무다"(요15:1)" 그런데 이와같은 예수님의 자기선언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생명을 얻고 열매를 맺으며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져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사도요한에게 쓰게 한 묵시록인 요한계시록에 보면, 부활승천하신 후 천상에 계신 예수께서도 자기자신이 누군지에 대해서 선언하신 것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살펴보면 알겠지만,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자기선언은 곧 하나님의 자기선언과 같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 하나님이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하나님 자기선언은 곧 예수님의 자기선언이신 것이다.


7. 천상에 오르신 예수님의 자기선언 7가지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 혹은 예수님께서 자기를 어떻게 선언하고 있을까? 놀랍게도 부활승천후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자기선언도 딱 7가지가 나온다. 또한 여기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자기선언은 이사야서에 나오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기선언과도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제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하나님 혹은 예수님의 자기선언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첫째, 그분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다"(계1:8). 혹은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계1:17)" 혹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다(계21:6).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과 마침이라(계22:13)"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이러한 자기선언을 누가  했는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계1:8에 나오는 자기선언은 주 하나님이 하셨고, 계1:17에서는 예수님이 하셨으며, 계21:6에서는 보좌에 앉으신 이가 하셨고, 계22:13은 예수님이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는 보좌에 앉으신 이를 "하나님"이라고도 하고(계19:4), "어린양"이라고도 한다(계7:17). 그렇다. 하늘에 계신 예수께서는 의도적으로 이사야서에만 나오는 독특한 하나님 자기선언이었던 것 곧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이라고 하는 선언을 자기에게 적용하시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보좌에 계신 이가 예수님 자신이시며, 그분이 곧 주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나셨지만 그분은 원래부터 계신 한 분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이것까지 깨닫기가 왜 그리 어려웠는지... 그동안 교회에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나눠놓았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이 증거하는 하나님의 자기선언은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므로 심지어 어떤 이는 요한계시록은 손대지 말라고까지 언급하기도 한다. 아니다. 사도요한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계1:3)"고 하지 않았던가! 결국 우리는 신약의 결론의 책이요, 신구약의 결론의 책이요, 온 우주의 결론의 책인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비로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정확히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오, 할렐루야! 이것은 구약에 나타난 여호와께서 바로 전능자이신 한 분 하나님이요, 신약에 육신을 입고 오신 아들 예수께도 동일한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다만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모양을 취하셨기에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으셨을 뿐 그분은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그분은 사람으로 낮추어 이 세상에 들어오셨기에 한사코 자신에 대해 하나님의 아들 혹은 사람의 아들(인자)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하나님 혹은 예수님의 자기선언에는 또 무엇이 있는가? 둘째로 그분은 "나는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계1:8)"이며, 셋째로, 그분은 "나는 전능한 자(계1:8)"이시다. 그리고, 넷째로 그분은 "나는 살아있는 자(계1:18)"이며, 다섯째로, 그분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계2:23)"이다. 그리고 여섯째로, 그분은 "나는 다윗의 뿌리와 자손이며(계22:16)", 마지막 일곱째로, 그분은 "나는 광명한 새벽별(빛나는 아침의 별)(계22:16)"이시다. 그렇다. 예수님의 말씀과 신약의 증언에 의하면 장차 재림하실 분은 분명 예수님이시다(살전3:13, 살전5:23, 계22:12, 계22:20). 그렇지만 요한계시록과 구약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장차 오실 분은 주 하나님이요 여호와이시다(계1:8, 4:8,).


8. 천상에 계신 예수님의 자기선언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놀라운 비밀

  그렇다. 아기이자 아들로 오신 예수께서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여호와로 나타나셨던 것이다. 그분이 바로 전능자였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이시다. 그리고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시다. 그래서 이사야서에는 하나님에 모든 비밀을 말해주는 눌라운 성경구절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9:6의 말씀이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경이로운 보혜사),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9:6)" 


9. 나오며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이사야가 기록한 하나님의 자기선언 곧 여호와께서 "나는 여호와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는 창주주요, 나는 구원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 다음주 이 시간에는 신약성경에서 구원자는 분명히 예수님이신데, 왜 구약성경에는 여호와께서 자신을 구원자라고 하셨는지와 예수께서 과연 창조주이신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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