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16)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는 무엇인가?(15)(계2:18)_전지하신 심판주의 관점에서_2022-05-17(화)

https://youtu.be/aMILxNMAcBY  [혹은 https://tv.naver.com/v/26876690 ]

 

1. 요한계시록에서 예수께서 전지하시다는 것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

  요한계시록에서 예수께서는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으로 계시되고 있지만(계5:6) 그것과 동시에 그분은 보좌에 앉아 계신 이이기도 하신다(계20:11). 곧 그분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신 것이다(계1:8).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로서 스스로 계시며, 시간과 공간 밖에서 온 우주 만물을 주관하고 계신다. 요한계시록에서 한 분 하나님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로 계시되고 있는데, 이러한 주 하나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실 때에는 아들의 위치로서 재림하실 것이다(계1:7, 4:8, 19:11~16). 그런데 바로 이러한 예수께서 전지하신 심판주로서 소개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두아디라 교회에게 편지를 써 보내라고 하시는 분이시다(계2:18).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계2:18)". 그분의 눈이 불꽃같으며, 그의 발이 빛난 주석과 같다는 것이다. 이는 그분이 전지하신 분으로서 심판주가 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2. "그의 눈이 불꽃같고 그의 발이 빛난 주석과 같다"는 것은 어디에서 온 표현인가?

 A.D.95년경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 어느 날 주님이 찾아오셨다. 그분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에게 나타나신 분을 "인자같은 이"라고 표현했다(계1:13). 그분은 일곱 금촛대 사이 거닐고 계셨다. 사도 요한은 자기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음성을 듣고 몸을 돌이켰는데, 그분이 보였다. 그러자 사도 요한은 서 있는 그분의 10가지 모습을 기록하였는데, 그중에서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빛난 주석같다고 하였다(계1:14~15). 그런데 이러한 표현은 사도 요한이 처음 사용한 것이 아니다. 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도 요한이 처음 본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미 구약 시대 다니엘이 보았기 때문이다(B.C.536~530년경에). 그때 다니엘이 본 것은 장차 아들로 이 땅에 오시게 될 한 분 하나님을 본 것이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니, 영락없이 사도 요한이 본 모습과 흡사다(단10:5~6).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더라. 또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단10:5~6)" 특히 다니엘이 본 그분의 눈은 횃불 같았고, 그의 발 빛난 놋과 같았다. 이는 사도 요한이 본 모습과 유사하다. 

 

3. "그의 눈이 불꽃같다"는 표현은 예수께서 어떤 분이라는 것을 의미하는가?

  "그의 눈이 불꽃같다"는 표현은 대체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두아디라 교회에게 자신을 계시하신 예수님의 말씀 속에 드러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의 모든 상황을 다 감찰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특히 예수께서는 이때 자신을 "나는 사람의 뜻(콩팥들=의지와 감정)과 마음(심장)을 [자세히] 살피고 있는 자들인 줄을 모든 교회들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너희 각자에게 너희의 행위들을 따라 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계2:23). 결국 그의 눈이 불꽃같다는 말은 그분이 모든 것을 다 살피고 있다는 뜻이요 그래서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의 행위를 보시고 그 행위를 따라 심판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때 어떤 이들은 그분의 빛난 주석 같은 발에 의해 으깨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상을 받는 자는 주님 앞에서 감격하며 춤을 출 것이다. 

 

4. 예수께서는 어떤 방식으로 우주 만물을 다 감찰하실 수가 있는가?

  예수께서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을 어떻게 다 감찰하시고 계시는가? 우리는 그분이 하나님이시니까 다 아시겠지 하면서 그냥 단순히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과 실제를 살펴보면, 예수께서 어떤 방식으로 온 우주 만물을 다 지켜보고 계시는지를 알 수가 있다. 즉 예수께서 온 우주를 감찰하시는 방식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식에는 최소 3가지 방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낱낱의 천사들을 통해 감찰하시는 방식이 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에게는 기록 천사가 달라붙기 때문이다(마18:10). 고로 지금 지구상에 살고 있는 80억 명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기록 천사가 다 달라붙어 있다. 그런데 이 천사들은 해가 질 무렵이 되면 하루의 일을 기록하여 천국에 보고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천국에 있는 기록 천사들이 그것을 받아서 행위책에 기록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네 생물에 의한 감시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네 생물은 온 몸에 앞뒤로 눈들이 가득한 존재로 나온다(계4:6,8). 피조물을 대표하는 이 네 생물은 자기의 안과 주위에 눈들을 가득히 가지고 있는데, 이 눈들은 일종의 CCD카메라와 같아서 80억 명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녹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도 이 네 생물의 감시 카를 비켜 갈 사람은 없다. 세 번째는 예수께서 당신의 영 성령을 보내어 이 땅의 모든 것을 감찰하는 방식이 있다. 왜냐하면 성령을 의미하는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 곧 어린양의 일곱 눈들이기 때문이다(계5:6). 사실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은 예수님에 대한 상징적인 묘사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양에게 뿔들이 일곱이 있고, 눈들도 일곱이 있다고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실제의 모습이 그러하다면 어린양은 괴물의 모습을 갖춘 양이 되고 말 것이다. 고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뿔들과 일곱 눈들을 가진 어린양을 해석할 때에, 이는 예수님에 대한 일종의 상징적인 표현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참고로 여기에 나오는 '뿔'은 '권세'를 상징하고, '눈'은 '전지하심'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그리고 숫자 '일곱'은 이 땅의 완전수로서 어린양께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완전하게 지켜보고 있음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5. 전지하신 그분을 왜 우리는 주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예수께서는 전지하신 자신을 가리켜 "불꽃같은 눈을 가진 이"라고 표현하셨다. 그런데 그분은 3종류의 방식으로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신다. 즉 예수께서는 이땅에 보냄을 받은 천사들 그리고 하늘에 있는 네 생물을 통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들인 성령을 통하여 모든 것을 감찰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못 아실 것이 없는 분이신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요한계시록 5:6에 나와 있는 어린양의 일곱 눈들이라는 것은 곧 스가랴 선지자가 말한 여호의 일곱 눈들과 동일하다는 것이다(계14:10). 스가랴 선지자가 환상 중에 보았던 것은 일곱 금등대(촛대)위에 있는 일곱 등잔불이었는데, 그것은 이 땅에서 두루 다니고 있는 여호와의 일곱 영들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성령이 어린양의 일곱 눈들을 가리킨다는 것과 이것이 구약 시대에는 여호와의 일곱 눈들로 표현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슥14:10).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구약의 여호와가 한 분 하나님의 표현이라는 것과, 신약의 예수님이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이다. 고로 우리는 구약의 여호와가 신약의 예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약의 예수님을 가리켜 전지하신 하나님이시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고로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으로 주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가 있다. 

 

2022년 05월 17일(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02)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는 무엇인가?(01)(계1:4~8)_2022-04-27(수)

https://youtu.be/g9j2_mo-Vps  [혹은 https://tv.naver.com/v/26518369 ]

 

1.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 하나님'으로 고백한 자는 누구인가?

  예수님의 12제자의 하나였던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보고는 그분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게 된다(요20:28). 그런데 이것을 두고 어떤 사람은 예수께서 원래는 하나의 인간이었는데 제자들이 그분을 주 하나님으로 고백함으로서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 되셨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 되실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그분을 그렇게 고백함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참으로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고 계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일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어떤 분이라고 고백할 때에 비로소 그렇게 되는 분인가? 절대 아니다. 그분은 우리가 어떤 칭호로 부르던지 그분은 처음부터 그랬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12제자의 하나였던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본 후 비로소 그분을 '주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다. 그렇지만 도마가 이런 고백을 하기 전에도 이미 예수님은 주 하나님이셨던 것이다(요20:28). 그러나 예수님을 신앙 고백의 대상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존재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계속해서 주님을 고백의 산물로만 보려고 시도한다. 그분을 직접 만나 보면 아마도 자신의 입술을 손으로 피나게 때리고 싶어질 텐데 말이다. 

 

2.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대체 무슨 뜻인가?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그분의 칭호에 불과한 것인가? 다시 말해, 실제로는 그렇지 아니한데 그렇게 불러 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인가? 아니다. 오늘날에도 부동산 중개소에 들어가기만 하면 누구나 남자이면 '사장님'이라고 칭하며, 여자이면 '사모님'이라고 칭한다. 그렇다면 부동산 중개업자가 그 사람을 '사장님'이라고 불렀으니 그냥 사장님이 되는 것이고, '사모님'이라고 불렀으니 그냥 사모님이 되는 것인가? 아니다. 고로 예수님을 가리켜 도마가 '주 하나님'이라고 불렀다고 해서, 그때부터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 되시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는 누가 그렇게 칭하기 전에 이미 '주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라고 불리려면, 어떤 자격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가? 그것은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예수께서 존재론적으로 주 하나님이셔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분은 사역적으로도 주 하나님이셔야 한다는 것이다. 그분이 존재론적으로 하나님이시다는 말은 그분이 자존하시며 무소부재(=동시존재)하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분이 사역적으로 하나님이셔야 한다는 말은 그분은 전지전능하시고 영원불변하셔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존재론적으로 그리고 사역적으로도 하나님이신 것은 요한계시록에서 게속 발견된다. 

 

3. 초기 교회 시대에 영지주의는 왜 이단이 되었는가?

  초기 교회 시대에 영지주의는 철학이 기독교내에 침투하여 만들어 낸 이단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영지주의에서는 예수님의 성육신과 예수님의 죽음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고로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부정하고 있는 영지주의는 완전 이단인 셈이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사람이 되셨는가? 무엇 때문에 삽자가에서 죽으셨는가? 그리고 어떤 이유로 인해 다시 부활할 수 있었는가? 사실 이 모두는 복음의 핵심 사항이다. 그렇다. 이것은 전부 우리 죄많은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다. 우리 죄인들을 살려 내고 천국에 데려가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직접 행하신 일이 바로 예수님의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 사건인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복음 안에 이 3가지 요소가 빠져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기독교가 아니다. 그러므로 영지주의는 기독교가 아닌 것이다. 기독교를 가장한 가짜 기독교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영지주의자들이 자기들의 경전처럼 생각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도마복음'이다. 도마복음은 일종의 예수님의 어록이 수록된 책이다. 배경이나 나레이션 없이 그냥 예수님의 말씀이나 예수께서 제자들과 대화하시는 말씀이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책에서 예수님의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은 단 한 구절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영지주의자들은 자기들이 깨달은 지식 곧 영지를 통하여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람이 지은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께서 다시 가는 데에 그리스도의 피흘림이 전혀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그냥 깨달아지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영지주의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영지주의에서는 예수님을 주 하나님으로 본다는 것이다.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육신을 입은 모습으로 보인 것은 그렇게 보인 것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는 사람의 몸을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떤 영지주의 분파에서는 그리스도가 예수라는 육체를 잠시 동안 빌리셨다가 죽기 전에 탈출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고로 영지주의는 신성이 육체 안에 거하신 놀라운 신비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대단히 큰 이단 세력인 것이다. 

 

4. 예수님은 하나님인가 사람인가?

  그렇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인가 사람인가? 예수님은 한 마디로 100%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100% 인간이시다. 예수께서는 한 분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과거에나 현재나 미래에나 역시 하나님으로 계신다. 그런데 그분도 한 때는 사람으로 사신 적이 있으셨다. 예수께서는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에 유대 땅에서 육체를 입고 갈릴리와 예루살렘에서 걸어다니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공생애를 사셨던 예수님은 '지상을 거니시는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예수께서 100% 하나님이시며, 100% 인간이셔야 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그래야만 그분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실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선각자들이나 성인들은 단지 사람일 뿐 하나님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이들이 세상 사람들을 구원할 수는 없다. 이들 누구도 인간의 죄와 죽음과 사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셨던 분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그분이 사람이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속죄 때문이었다. 죄의 값인 사망의 값을 지불하시기 위해 창조주가 사람이 되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죽음으로 인하여 세상 임금인 사탄 마귀를 때려잡을 수가 있었다. 만약 그분이 사람이 아니셨다고 한다면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영원히 열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분은 사람으로 오셔서 죄값을 지불하시고 사망 안으로 걸어 들어가셨으며, 동시에 이때 죄없는 예수님을 사망 권세로 죽임으로 불법을 저지른 사탄 마귀의 사망 권세를 빼앗으실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때 이후 계속해서 예수께서는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갖고 계신다. 그래서 그분을 믿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는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5. 요한계시록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칭호로 보나 혹은 존재론적으로나 보나 그리고 사역적으로 볼 때 가장 잘 표현된 말씀은 무엇인가?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표현해 주고 있는 문구들이 많이 나온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를 고르라면 우리는 요한계시록 1장 8절 말씀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한 구절에는 한 분 하나님이시자 예수님이신 그분이 누구신지를 아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은 칭호로서도 하나님이시고 또한 존재론적으로 보나 사역적으로도 보나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증언해주고 있다. 

계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이 말씀은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잘 대변해 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동시에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시라는 것까지 알려 주는 매우 귀중한 말씀이다. 왜냐하면 첫째, 요한계시록의 끝부분으로 가면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고 직접 말씀하신 분이 나오는데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계22:13). 둘째, '장차 올 자'라는 표현은 분명히 예수님의 재림을 염두에 두고 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1:8에서는 하나님이 누구시며, 예수님이 누군지를 어떻게 표현해 주고 있는가? 그것은 첫째, 예수님이 '주 하나님'이신 것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이것은 예수께서 호칭으로도 '주 하나님'이신 것을 잘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요20:28). 둘째, 예수님이야말로 '알파와 오메가이신' 것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분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오실 이'인 것을 잘 표현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께서 존재론적으로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증명된다. 왜냐하면 존재론적으로 볼 때에 그분은 주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서는 자존하셔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여기서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는 표현 속에 다 들어가 있다. 그리고 그분이 존재론적으로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은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라는 표현 속에 완전히 녹아 들어가 있다. 또한 그분이 사역적으로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그분은 전지전능하셔야 하고 영원불변하셔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그분의 전능성인데, 요한계시록 1:8에서는 그분이 '전능하신 이'로 소개되어 있다. 앞으로 계속 더 살펴보겠지만 예수께서는 호칭면에서나, 존재론적으로 그리고 사역적으로 하나님이신 것이 분명하다. 

 

2022년 04월 27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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