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13)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는 무엇인가?(계5:6~14)_예배와 관련하여(01)_2022-05-12(목)

https://youtu.be/-4mdIIVANKA [혹은 https://tv.naver.com/v/26808816 ]

 

1. 요한계시록 5:6~14에 나타나 있는 예수께서 하나님이신 이유는 무엇인가?

  요한계시록 5:6~14의 말씀은 천상에서 예배하고 있는 장면을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이 예배에서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 네 생물과 24장로들 그리고 천천만만의 천사들과 모든 피조물에게서부터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배를 받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초기 교회 성도들이 일찌감치 예수님을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으로서 찬양하고 경배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2. 예수께서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는 사실이 찬송가에는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

  오늘날 우리가 예배 시간에 사용하는 찬송가에는 하나님께 찬송과 경배를 드릴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도 동일하게 찬양과 경배를 드린다. 예를 들어 보면, 이렇다. 찬송가 26장 구세주를 아는 이들 찬송하고 찬송하세. 찬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에 그 위에 앉으신 주 예수 얼굴 영광이 해같이 빛나네. 찬30장 전능하고 놀라우신 나의 주님 구세주, 찬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백성들아 사랑을 전하세. 찬32장 만유의 주재 존귀하신 예수 사람이 되신 하나님. 찬33장 영광스런 주를 보라 고난받는 그 모습. 찬 36장 주 예수 이름 높이어 다 찬양하여라 금 면류관을 드려서 만유의 주 찬양. 찬 37장 주 예수 이름 높이어 다 찬양하여라 다 찬양하여라 금 면류관을 드려서 만유의 주를 찬양하세.... 그렇다. 우리가 예배 시간에 사용하는 찬송가에는 이렇듯 우리 주 예수님께 찬양과 경배를 올리는 찬송가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3. 요한계시록 5장은 천상의 예배를 가리키는가 아니면 지상의 예배를 가리키는가?

  우리는 요한계시록 5장에서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고 있는 천상의 존재들을 보게 된다. 이들은 4종류의 존재들로서, 네 생물들, 24장로들, 천천만만의 천사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조물들'이다. 이 때 피조물들은 이렇게 찬양을 한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 권능(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계5:13)" 그렇다면 이때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양과 경배를 올리고 있는 피조물들은 천상에 있는 피조물들인가 아니면 지상에 있는 피조물들인가? 우리말 성경(개역개정)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계5:13)" 우리말 성경에는 처음 시작을 '하늘 위에'라고 시작한다. 하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하늘 위'가 아니라, '하늘 안'이다. 그래서 다시 요한계시록 5:13의 말씀을 헬라어에서 직역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리고 하늘 안에 있는, 땅 위에 있는, 땅 아래에 있는, 바다 위에 있는, 그것들 가운데 있는 바, 모든 피조물이 [있다]. 내가 들었다. 그들이 말하고 있기를, 보좌 위에 앉아 있는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이 세대들의 세대들까지(세세토록) [있을지어다]" 그렇다. 요한계시록 5장 13절에 나오는 모든 피조물은 천상에 있는 피조물들이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천상의 존재들이 예배드리는 장소는 제일 높은 하늘이므로, 더 이상 하늘 위에 있는 존재가 없기에 '하늘 위'가 아니라 '하늘 안'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지상에서는 누가 예배를 드릴까? 그것은 모든 피조물들과 예수님을 알고 경배하는 사람들만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지상에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고 있는 것이다. 

 

4. 천상의 예배와 지상의 예배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여기에 천상에서 드리는 예배와 지상에서 드리는 예배에 있어서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다. 이때 천상에서 드리는 예배의 핵심 사항은 다음 3가지 뿐이다. 첫째는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엎드린 후에 경배한다(절한다)는 것이다(계5:8,14). 둘째는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찬양을 올린다는 것이다(계5:9~10,12,13). 셋째는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기도를 올려드린다는 것이다(계5:8). 그렇지만 맨 마지막에 나오는 '기도'의 요소는 예수께서 재림하시어 심판을 끝내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되면 더 이상은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천상에서의 예배의 핵심은 '찬양'에 있다. 거기에 찬양이 있다면 그것을 예배라고 할 수 있고, 찬양이 없다면 그것을 기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5. 지상에서의 예배의 정의와 구성 요소는 대체 무엇인가?

  오늘날 예배학에서는 대부분 예배를 정의하기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만남'이라고 한다. 그런데 천상의 예배를 보면 '만남'이라는 것이 핵심 사항은 아니다. 왜냐하면 예배의 핵심은 찬양을 올려드리면서 하나님을 경배하는(절하는) 것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때 천국에서 면류관을 쓰고 있는 성도들은 그냥 절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면류관을 벗은 후 예수님께 절을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에 예배를 드리려고 오신 분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하고 어떻게 만났다고 정의할 수 있는가? 그래서 예배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보이지 않지만, 그분이 오셔서 우리를 만나주시는데 그때에 3가지를 주신다는 것이다. 첫째는 말씀(말씀 선포=설교)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복(축도)을 주신다는 것이다. 셋째는 피와 살(성찬)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편에서는 무엇을 바치면서 그분과 교제할 수가 있는가? 그것도 역시 3가지다. 첫째는 찬양을 올려드린다. 둘째는 기도를 올려드린다. 셋째는 예물(헌금)을 올려드린다. 그러므로 어떤 곳에서는 예물을 드리지 않는 예배는 더 이상 예배라고 부를 수 없다면서, 예물을 드리지 않는 예배는 예배가 아니라 '기도회'라고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천상에서 드리는 예배를 보니, 예물을 드리지 않는다고 하여 예배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천상에서의 예배의 요소가 '찬양'과 '기도' 그리고 '엎드리고 절함'이기 때문이다. 

 

2022년 05월 12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계5:1~14)_2019-05-28(화)

https://youtu.be/OGhHVzgosQU

 

1. 요한계시록 5장에서는 네 생물과 24장로들과 수천수만의 천사들이 과연 누구에게 예배를 드립니까?

 

2. 요한계시록 4장에서는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5장을 보면, 피조물들은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예배합니다(계5:13). 그렇다면,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피조물들이 "보좌에 계신 이"와 "어린양"에게 동시에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일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3.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유대인들은 찬양과 경배를 받아야 할 대상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신6:4). 그러므로 "보좌에 앉으신 이" 곧 하나님과 및 보좌 옆에 서 계시는 이인 "어린양"에게 동시에 예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요 있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천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동시에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과연 무엇을 말해주는 것입니까?

 

4. 천상에 있는 피조물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동시에 예배하고 있다는 것은 어린양이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삼위일체 신관에 이미 익숙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지만 이 세 분은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예배한다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직 홀로 오직 한 분 뿐이요, 오직 그분만을 예배해야 한다는 사고를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요한계시록 5장의 사건은 큰 충격으로 다가설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네 생물과 24장로들과 수천수만의 천사들이 경배를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동시에 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사실 요한계시록 4장에서 유대인들은 아무런 이상한 것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는 피조물들이 오직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엎드려 경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그분은 "주 하나님"으로서,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계4:10~11). 왜냐하면 보좌에 앉으신 이가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이요, 그분의 뜻대로 만물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5장에 가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24장로들이 엎드려 경배하는 대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두 분으로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요한계시록 5장을 읽을 때에 2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이건 신성모독이야"라고 하든지, "예수님이 한 분 하나님이시로구나"하는 것입니다. 왜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것일까요?

 

5. 유대인들은 자신의 사고 속에서 천상의 모습을 떠올릴 때면, 대부분 이사야 6장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거기에는 홀로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시기 때문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 6장에서는 온갖 피조물들이 찬양과 경배는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돌리는 것이 아니라,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동시에 돌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린양"이 곧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비록 그때 "보좌에 앉으신 이"의 곁에 어린양이 서 있는 것을 사도요한이 보고는 있지만 사도요한은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결코 두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양이 그때 찬양과 경배를 받고 있다면 그분은 곧 한 분 하나님이시구나 하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려 새 노래로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양이 곧 한 분 하나님이신 것입니다(계5:8). 이는 요한계시록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동일시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사도요한이 본 환상 속에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스러운 천상적인 존재로서 그분이 찬양과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이에 대해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리챠드 보쿰(R.Bauckham)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오직 배타적 유일신관을 가지고 있는데, 계1:17에서 예수께서 자신을 구약의 여호와와 동일한 분으로 선포하고 있음은 사도요한이 그리스도를 하나님 이외에 두번째 신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만물의 유일한 근원이고 목적이 되신 이스라엘의 한 분 하나님의 영원한 존재 속에 예수님을 포함시키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직 한 분이시나 우리 인간을 위해 친히 속죄제물로 되시려고 속죄의 어린양으로서 사람이 되어오신 우리 주 예수님을 한 분 하나님으로 알고 그분을 영원히 섬겨야 하겠습니다. 왜 예수께서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인지는 내일 또 이어가겠습니다.

 

2019년 5월 28일(화)

정병진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