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특별새벽집회 첫째날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20) 심판 중에도 주님이 준비하시는 것은 무엇일까?(렘21:1~10)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QZGE8dhz2es [또는 https://tv.naver.com/v/33751780]

 

1. 언약 백성으로 선택받았으면 벌은 받지 아니하는가?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반드시 그것에 상응하는 벌을 받게 된다. 사람은 다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령 본인이 언약 백성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 역시 죄를 지었다면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신약의 성도 역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새 언약의 백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신약의 성도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값을 치렀기 때문에 벌은 받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정확한 사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값을 치렀기 때문에,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구원을 받는다는 뜻은 그가 둘째 사망 곧 불과 유황이 타는 못인 지옥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있는 자라도 오늘날에 가난의 저주, 질병의 저주, 자녀의 저주 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있는 살고 있는 이들이 아주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자들이라도 저주 가운데서 온전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지은 죄와 그리고 조상들이 지은 죄를 반드시 입으로 회개해야 한다. 그럼, 내가 지은 죄 뿐만 아니라 조상들이 지은 죄까지도 회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출20:5의 율법에 따라 우상숭배의 죄값을 자손 3~4대가 치른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있는 자라도 자신의 죄와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 자는 여전히 계속해서 벌을 받는 것이며, 회개하는 자는 벌을 받지 아니하게 될 것이다. 이는 구약의 성도나 신약의 성도나 마찬가지이다.

 

2. 제20대 시드기야왕 때(B.C.597~586)에 왜 남유다는 멸망을 받게 되었는가?

  남유다는 구약시대 언약 백성이다. 이들은 할례를 받았으며, 아브라함으로부터 태어난 자손으로서, 혈통적으로 볼 때 정통 아브라함 자손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계시겠다고 하신 성전이 남유다의 예루살렘 성 안에 있었다. 그런데도 왜 남유다는 멸망하게 되었는가? 얼핏 보기에는 하나님께서 자기 집의 처소로 삼으신 성전이 예루살렘에 계시기 때문에 남유다는 멸망당하지 않을 꺼야 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남유다를 철저히 파멸시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럼, 왜 언약 백성이면서 하나님이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성전이 있음에도 남유다는 멸망을 당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하나님과 그들 간에 맺은 언약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섬겼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떠나 살게 됨으로 악을 자행하고 도덕 역시 허물어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죄악이 성 안에 가득찬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원칙에 따라 남유다를 멸하시기로 결정하셨고 그 일을 시드기야왕 때에 이루신 것이다. 

렘18:9~10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려 할 때에 10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3. 개인이나 민족의 구원과 멸망은 만세 전에 이미 예정된 것인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신다(딤전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멸망을 받게 되는 것은 첫째, 예정된 축복의 그릇으로 빚어졌던 자라도 범죄하고 하나님을 떠나게 되면 그도 역시 멸망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태어나 보니 우상숭배의 집안에 태어나서 죄만 짓고 살던 자도 역시 회개하지 않고 믿음없이 죽었다면 그도 역시 멸망을 받게 될 것이다. 여기서 멸망을 받는다는 것은 그가 죽어서 불못에 떨어진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만세 전에 개인의 구원은 이미 예정된 채 구원의 길이나 멸망의 길로 행하게 되는 것인가? 아니다. 만세 전에 하나님이 정하신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천국을 기업으로 물려주겠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첫 사람 아담을 창조했으나 그는 하나님의 뜻에서부터 빗나가고 말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면서 살았다. 그러자 그들 중의 일부라도 건지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사명자를 이 땅에 보내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하나님을 믿으며 주님 말씀에 순종하도록 인도하신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속한다.

  그리고 이때 사명자는 이미 천국에서 받을 복이 예정된 채 이 땅에 보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없는 영혼의 상태로서 여자의 자궁 속으로 보내어진다. 그런데 이미 여자의 자궁 안에는 악한 영들이 자리잡고 있어서 아기가 태중에 잉태되는 순간부터 악한 영들의 공격을 받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게 되며, 그 죄성 가운데 살아간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죄짓고 사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사명자를 보내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권면하신다. 그래서 그 말을 듣고 회개하는 자는 구원을 받는 것이고, 그것마저도 거부하는 자는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만세 전에 어떤 사람은 구원으로 예정되었고, 어떤 사람은 멸망으로 예정되었다는 말은 정확히는 틀린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 중에 어떤 이는 복을 받을 그릇으로 예정되었다는 말은 맞는 표현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멸망으로 예정되었다고 하는 것은 결코 옳은 말이 아니다. 처음부터 깨뜨려 버리기 위해 빚어지는 그릇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4. 시드기야가 바벨론의 4차 침공을 받았을 때, 예레미야에게 사람을 보내 중보기도를 부탁했는데도 왜 남유다는 멸망을 받았는가?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신다. 사람이 어떤 위기 상황에 봉착했을 때에 위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용납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동안 시드기야는 어떻게 살았는가? 그는 하나님을 배반하였고, 애굽과 사람들을 의지했다. 그리고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며 살아왔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종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가두며 핍박해 왔다. 그런데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남유다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공격을 받아 멸망할 위험에 처하게 되자, 그는 예레미야에게 사람을 보내, 하나님께 중보하여 기적을 좀 베풀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것을 부탁을 하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바벨론의 군대를 성 안에 불러들여 칼로 백성을 죽일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칼에 죽지 않는 자는 기근과 전염병으로 죽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래도 살아남은 자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제 남유다를 향해 진노와 분노와 대노하고 계신 것이다. 그리고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남유다 백성을 측은히 여기지 않고, 긍휼히 여기지도 않을 것이며, 불쌍히 여기지도 않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남유다는 하나님의 허락과 바벨론의 침공으로 멸망을 하게 된다. 

 

5.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남유다를 심판하는 상황에서도 그들에게 어떤 기회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남유다를 곧 심판하게 될 터인데, 그때에라도 그들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시겠다고 말씀하셨다(렘21:8). 이는 심판 중에라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 자비를 베푸시겠다는 뜻이다. 즉 남유다의 범죄로 인해 내려진 심판의 상황이지만 바벨론에게 항복하게 되면 그들의 목숨만을 살게 하실 것이지만, 끝까지 바벨론에게 대항한다면 그들 모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 그러므로 사람의 구원은 순전히 인간의 책임이 매우 큰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이나 국가가 혹 징계를 받고 있는 상황이더라도 그것 자체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때 회개를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깡통을 차고 빌어 먹어도 지옥만은 가지 마라"는 저자로서, 충남의 속리산 자락에 위치한 구병교회의 김상호 장로의 간증을 들어 보자. 그가 살던 마을은 대대로 일 년에 두 차례씩 신신제(산신령, 호랑이신)를 지내는 마을이었다. 그런데 그가 결혼 후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예수님을 믿고 나서 그만 6남매를 1년 안에 다 잃어버리게 된다. 그런데도 그는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신앙의 지조를 지킨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천국과 지옥을 보여 주셨고, 천사와 예수님의 방문도 받게 하신다. 그리고 교회가 없던 마을에 교회를 세우게 하시고, 자신의 첫째 아들을 목회자가 되게 하여 세계적인 능력의 사역자가 되게 만들어 주신다. 그렇다면, 왜 김상호 장로의 자녀들이 그때 죽었는가? 그것은 자신과 자신의 아내의 집안에 죄가 가득찼기 때문이다. 그 집안에 무당이 무려 5명이나 있었으니 그의 윗대 조상부터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믿는 김상호 장로의 6남매가 희생된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믿음의 지조를 지킨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6남매가 다 천국에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죄를 지어 징계를 받는 것과 지옥에 가는 것은 사실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믿고 회개하면 천국에 가는 것이요,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우리도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 회개하는 삶을 살아, 장차 천국에도 들어가고 우리의 후손들도 저주를 받지 않도록 하기를 바란다. 

 

2023년 03월 01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19) 진짜 주의 종 선지자는 어떤 경우에 가장 고통스러워하는가?(렘20:1~18)_2023-02-28(화)

https://youtu.be/TTVT9pmQXBY [또는 https://tv.naver.com/v/33751117]

 

1. 예레미야서 20장은 어떤 위치에 있는가?

  예레미야서 20장은 예레미야서의 본론부 있는 제1부(2~25장) 12개의 단편 예언들 가운데, 제8예언의 뒷부분에 해당한다. 제8예언(렘18~20장)은 18장부터 20장까지로서, 그중에 18장은 그 유명한 '토기장이'의 비유가 나온다. 이는 개인과 민족의 쓰임(용도)에 관하여 절대주권을 갖고 있는 하나님에 관한 비유 말씀이다. 그리고 19장에는 토기장이가 옹기를 파쇄함으로서 회개를 거부하는 남유다의 철저한 파괴가 예언되어 있다. 그리고 20장에는 성전 총 감독자인 제사장 바스훌에 의한 예레미야의 핍박에 대해 하나님께서 그와 그의 동료들을 심판하실 것에 대한 예언(렘20:1~6)과 더불어 홀로 핍박과 조롱거리가 되어 버린 예레미야의 탄식(렘18:7~18)이 기록되어 있다. 

 

2. 예레미야는 왜 성전에서 험한 꼴을 당하게 되었는가?

  B.C.597년경 남유다의 여호야긴왕의 통치 말기였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과 함께 힌놈의 골짜기의 도벳 사당에 가서 토기장이의 옹기를 깨뜨리면서, 한 번 깨뜨린 토기는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렇듯 남유다의 멸망의 확실성을 실물적으로 보여 주었던 예레미야는 이제 성전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도시에 이러한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성전 총 관리 감독자인 제사장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잡아다가 폭행을 하고 그의 목에 차꼬를 채워 밤새도록 성전문에 묶어 두게 된다. 그렇다면 예레미야가 이처럼 험한 꼴을 당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성전에 와서 남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성전의 파괴와 멸망 곧 재앙을 예언했기 때문이다(렘19:14~15, 20:8). 

 

3. 핍박당하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무엇이었는가?

  이렇듯 죄없는 예레미야가 성전 총 관리 감독자인 임멜의 아들 제사장 바스훌에게 끌려가 모욕을 당하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3가지 말씀을 들려주신다. 첫째, 바스훌의 이름이 '마골밋사빕'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했다(렘20:3). 바스훌이라는 이름의 뜻이 '자유를 가져다 주는 자'였는데, 마골밋사빕이라는 이름의 뜻 곧 '사방으로부터의 두려움(공포)'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알려 주신 것이다. 이는 바스훌이 남유다에 자유와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하고, 오히려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사방으로부터 공포를 가져오게 하는 자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둘째, 남유다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칼에 죽고 나머지는 바벨론으로 옮겨가서 거기에서 죽을 것이며, 예루살렘의 모든 귀중품들이 약탈당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렘20:4~5). 셋째, 바스훌과 바스훌의 거짓 예언을 지지했던 그의 친구들까지 전부다 포로로 바벨론에 잡혀가서 거기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했다(렘20:6). 이처럼 하나님은 참된 주의 선지자를 핍박하고 거짓 예언을 한 바스훌에게 공의로운 심판을 집행하신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과 입을 함부로 놀려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4. 제사장과 그의 동료들로부터 심한 모욕을 받고 조롱거리의 대상이 되었던 예레미야는 어떤 탄식을 하게 되는가?

  그런데 성전의 총 관리 감독자인 바스훌과 여러 동료들로부터 심한 모욕을 받고 조롱거리가 되었던 예레미야는 이제 탄식하며 기도한다. 사람의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주께서 자신의 사정을 감찰해 달라고 하는 기도를 드린 것이다. 그러면서 차라리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면서 하나님께 자신의 고통을 호소한다.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는 그것을 내팽개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탄식 중에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바로 참된 주의 종 선지자의 마음이다. 

렘20: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며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5. 진짜 주의 종은 어떤 경우에 가장 고통스러워하는가?

  진짜로 하나님께서 쓰임받는 참된 종은 무엇에 가장 고통스러워할까? 자신이 받는 핍박과 조롱거리가 고통스러운 것일까? 예레미야는 자신의 동료였던 제사장이자 선지자였던 바스훌에게 심한 모욕적인 언사와 처벌을 받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예레미야는 바스훌이 아무런 잘못이 없는 자신을 처벌한 것에 대해 고통스러워했던 것일까? 아니다. 그는 자신의 동료 종들을 보면서 고통스러워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남유다의 백성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라고 세워준 지도자들이 타락하여 하나님의 참된 음성을 듣지 못하여 가짜로 예언하고 있었고 가짜를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은 비단 그때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에도 그때처럼 가짜를 예언하고 가짜를 가르치는 주의 종들이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아니 거의 전부를 차지한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에 성도들은 주의 종들이 선포하는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말씀이 결코 틀린 말씀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대부분 넓은 길을 가르치는 주의 종을 따라가게 된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들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에 대한 책임을 성도 본인에게만 물을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성도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가르치는 지도자들의 잘못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 주의 종들이겠지만 그들의 말속에는 거짓이 들어 있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짓말로 성도들을 가르쳐 그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게 함으로, 결국 한 명의 성도라도 지옥에 떨어지게 하는 주의 종이 있다면, 그 책임은 목회자가 져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하늘의 별따기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부활 승천하신 예수께서 거짓말을 하는(거짓 예언하고 거짓된 말씀을 선포하는) 주의 종들은 결단코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있게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한 자들은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던져 넣게 되든지(계21:9), 아니면 새 예루살렘 성밖에 두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21:27, 22:15). 고로 우리 성도들은 자신에게 말씀을 증거하는 목회자가 끝까지 참된 진리만을 선포하는 목회자가 될 수 있도록 기도로 지원해야 할 것이다. 목회자가 전하는 말씀은 곧 나의 생명과도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2023년 02월 28일(화)

정병진목사

2023-02-26(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예레미야강해(18)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가 왜 게헨나(지옥)로 불리게 되었는가?(렘19:1~15)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gVKJGafqtMw [또는 https://tv.naver.com/v/33751102]

 

1. 들어가며

  예레미야는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너무너 필요하고 중요한 말씀이 가득하다. 특히 종말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을 앞두고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를 예레미야는 저미어오는 가슴으로 전한다. 그런데 우리는 예레미야서를 통하여 천국과 지옥의 실제모습이 어디에서 연유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말씀을 접할 수가 있다. 그것은 힌놈의 골짜기에 관한 예언에 나온다. 우리는 예레미야서 7장과 19장 그리고 32장에서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를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는 말은 어떤 것이며, 이것이 신약의 예수님께서 지옥에 관해 말씀하신 것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구약의 모든 말씀은 신약의 모형이자 장차 도래할 새로운 세상에 대한 모형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 예레미야 19장은 대체 어떤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가?

  예레미야 19장은 예레미야의 본론부(2~51장) 가운데 제1부 12가지 단편예언(2~25장) 가운데 제8예언에 속한다. 제8예언은 18장부터 20장까지의 말씀인데, 여기에는 토기장이가 그릇을 빚고 있는 장면과 옹기 파괴를 통하여 온 우주와 인류역사에 관해 절대주권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그 중에서 예레미야 19장은 옹기파쇄의 장소로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더러 백성들의 어른들과 제사장들 중의 어른 몇 명을 데리고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서 거기에서 토기장이의 옹기를 깨뜨릴 것을 말씀하고 있는 부분이다. 결국 예레미야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서 토기장의 옹기를 깨뜨리면서 이렇게 예언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셨다.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 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와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읍을 무너뜨리리니 도벳에 매장할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하리라"(렘19:11).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옹기그릇을 굳이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가서 깨뜨리라고 한 것일까?

 

3.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는 어떤 골짜기인가?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는 여호수아가 장차 정복할 예루살렘의 남쪽과 서쪽의 골짜기를 언급할 때 처음으로 등장한다(수15:8, 18:16). 그런데 남유다의 12대 아하스 왕과 14대 므낫세 왕이 이곳에서 자신의 자식을 불사르는 제사를 드리게 된다(대하28:3, 33:6). 그때 그들이 섬겼던 신은 암몬자손이 섬기던 '몰록'(말곰, 밀곰)이라는 신이었다(왕상11:5, 11:7). 그런데 이것은 인신제사로서 율법에서 가장 강력하게 금지하는 제사였다(레18:21, 신18:10). 그런데 다윗의 후손이 이러한 죄를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므낫세의 손자였던 요시야 왕(남유다 10대 왕)이 이것이 율법에 어긋나는 행위라는 것을 알고 그 장소를 더럽혀 그곳을 쓰레기 소각장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는 다시는 그곳에서 자기자식을 몰록신에 바치지 못하게 하고자 원천적으로 그 길을 차단한 것이었다(왕하23:10). 하지만 남유다의 범죄를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의 옹기를 사서 그곳으로 가서 그곳에서 옹기그릇을 깨뜨리면서 남유다가 이렇게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선포했던 것이다. 

 

4. 왜 하나님께서는 남유다의 멸망을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가서 상징적으로 보여주라고 하신 것인가?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남유다의 멸망의 모습을 흰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가서 시현하도록 시켰는가 하는 것이다. 사실 성경에 등장하는 지명이나 인명 하나하나에도 다 어떤 뜻이 들어있다. 하물며, 남유다의 멸망의 모습을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시현하도록 명령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갖고 있었던 어떤 의도는 없었을까? 아니다. 분명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끝내 우상과 다른 신들을 섬기는 자들이 장차 들어갈 영원한 멸망의 처소 곧 지옥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시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요시야 왕 이후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측면에서 장차 불신자들과 범죄한 자들이 들어가게 될 지옥이 어떤 곳인지를 충분히 연상시기에 충분한 장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첫째, 그곳은 꺼지지 않는 유황 불이 타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흰놈의 아들의 골짜기는 예루살렘의 남쪽과 서쪽에 위치한 골짜기로서, 매일 쓰레기들이 태워지는 장소가 되었다. 그러므로 쓰레기 소각장으로 사용되던 이곳은 불과 유황이 계속해서 타고 있는 장소로서 영락없이 지옥을 연상시켜주기에 충분했다. 

  둘째, 그곳은 구더기가 시체를 파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그곳은 도저히 맡을 수 없는 심한 악취가 진동하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2023년 02월 26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15) 하나님은 촛대를 과연 누구에게로 옮기신다고 말씀하셨는가?(렘16:1~17:27)_2023-02-23(목)

https://youtu.be/6MtK2zAh5xQ [또는 https://tv.naver.com/v/33750838]

 

1.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12가지 단편 예언 가운데 7번째 예언은 어떤 것인가?

  예레미야서에는 본론부 앞부분에 12가지 단편 예언들이 배치되어 있다(2~25장). 그런데 그것들 중에서 제7예언은 렘16:1~17:27에 나오는 말씀이다. 여기에는 예레미야의 신변과 관련하여 세 가지 금지명령이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이 금지명령을 통해서 유다의 심판을 예고하신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3가지 하지 말아야 할 금지명령을 내리셨다. 그런데 이 모든 명령들은 임박한 종말을 앞두고 곧 남유다의 임박한 심판을 앞두고 말씀하신 것이다. 한편 예레미야가 이 말씀을 받았을 때에는 남유다 제18대 여호야김(B.C.609~587)의 말기로서, 바벨론의 3차 침입 시기 직전인 듯 보인다(B.C.597년)

 

2.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신변에 관한 어떤 금지명령을 내려 임박한 심판을 예고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임박한 심판을 앞두고 예레미야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 3가지를 주문하셨다.

  첫째는 결혼하지 말며 자녀를 두지 말라고 하셨다(렘16:2).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봤자 그들이 곧 험한 꼴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아내와 자녀들이 독한 병이나 칼과 기근으로 인하여 비참하게 죽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 죽음을 보는 이가 있다고 할지라도 아무도 슬퍼해 줄 사람도 없고 땅에 묻어줄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칼과 기근에 수많은 사람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다 죽기에, 시체를 치워줄 자는 오직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들 뿐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초상집에 가지말고 그곳에서 그들을 위해 애곡하지 말라고 하셨다(렘16:5). 왜냐하면 그들의 슬픔은 이미 예고된 상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이 죽게 된 것은 자기들이 지은 죄값으로 인하여 마땅히 죽게 된 것이니 그것을 두고 슬퍼하지 말라는 것이다. 셋째는 잔치집에 들어가지 말며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지 말라고 하셨다(렘16:8). 왜냐하면 지금은 결혼잔치로 인해 기뻐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곧 신랑 신부의 소리가 성읍에서 그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이와 같은 3가지 명령을 받아 순종하면서, 남유다에 심판이 임박했다는 것을 더욱 절실히 알게 된다. 

 

3. 하나님께서는 왜 남유다와 예루살렘에 이 큰 재앙이 임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남유다와 예루살렘에 큰 재앙이 임하게 되는 이유를 제7예언 가운데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그들이 하나님을 이미 떠났기 때문이라고 하셨다(렘16:11, 7:5,13). 그랬다. 남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은 이미 하나님을 저버린 지 오래된 상태였다. 곧 그들은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만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렘17:13). 그들은 환난 때에 그들을 도울 수 없는 사람을 의지하고 있었다(렘17:5). 둘째, 그들이 그들의 조상처럼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렘16:11). 그들이 다른 신들을 따라서 그 신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그들에게 향을 피우며 전제를 드리고 과자를 구워 바치고 있었기 때문이다(렘16:10~13). 셋째, 그들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렘17:27). 그들은 자신의 영혼을 위하는 날 곧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안식일에도 쉬지 않고 일하면서,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고 있었으며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남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은 제1계명과 제2계명 그리고 제4계명에 불순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4.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촛대를 이제 누구에게로 옮기신다고 말씀하셨는가?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붙들고 있었던 이스라엘을 뽑아서 버리시겠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이미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으며, 이방신들을 섬기고 있고, 하나님의 날을 지키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뽑아내 버리시고, 다른 사람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리에 심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누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일까? 그것은 땅끝에서 올 '이방 민족들'이다(렘16:19). 하나님께서는 이제 처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붙들어서 사용할 백성이 누군지를 말씀해 주셨다. 그들은 놀랍게도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바로 이방인들이었다. 

 

5. 장차 하나님께서 붙들어 쓰실 이방인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땅끝에서 어떤 민족들이 주님께 나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렘16:19). 그런데 그들의 모습이 놀랍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 주님 앞으로 나아와서 쓰임받는 사람들은 이방 민족들로서, 그들은 자기들이 이전까지 섬기고 있었던 신들이 얼마나 허망하고 거짓되고 무익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오직 유일하게 살아 계시고 만물의 주관자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 신약으로 치자면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님 앞으로 나아올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의 능력과 권세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겠다고 하셨다(렘16:21). 다시 말해, 장차 이방인으로 구성된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가 무엇인지를 체험하게 해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요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여호와'라는 이름은 '스스로 계신 분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신다'는 뜻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불어 '예수'라는 이름은 '여호와가 구원하러 오셨다', 혹은 '여호와는 구원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한 번 사람이나 어떤 민족을 쓰셨다고 해서 끝까지 그를 쓰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쓰시려고 선택하셨지만 인간이 거부하고 불순종한다면 계속해서 그를 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 사역자를 찾으신다. 그런데 그러한 사역자는 자기들이 섬기고 있던 신은 확실히 허망하고 거짓되고 무익하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 오직 여호와와 예수님만이 참 신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만을 목숨처럼 믿고 따르는 자들이라고 했다.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께 끝까지 쓰임받을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은 오직 우상이나 가짜 신을 버리고, 오직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지조를 지키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또 다른 당신의 사역자로 선택하시어 그를 사용하시는 것이다. 

계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2023년 02월 23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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