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합당한 사람으로 준비되는 것은 결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믿음을 가졌다는 것은 이제 천국에 이르는 노정에 첫 발을 내디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가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만나게 될 수많은 난관들을 헤쳐나간 자만이 천국에 입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것을 우리는 영적인 스승이라고 부른다. 거기에는 3가지가 있다. 어느 것 하나 뺄 수 있는 것은 없다. 이것이 있음으로 인하여 우리는 다만 감사할 뿐이다. 2021-12-26(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성도에게는 3대 영적 스승이 있다(딤후3:14~17)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ikay4k2J2F8 [혹은 https://tv.naver.com/v/24313203 ]

 

1. 들어가며

  성도가 영적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영적인 스승이 필요하다.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 어린이들도 학교에 가서 열심히 배워야 하는데, 어찌 신앙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쳐서 천국에 들어가야할 사람이 그 길을 가는데 도움을 주는 것들에 대해서 어찌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특히 성경은 그것들 중에 한 가지 영적인 스승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이 세상을 살다간 수 천 명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어서, 그들의 이야기를 공부하다 보면 내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배워야 한다. 영적인 스승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성도가 성장하여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3가지 영적 스승에 대해 공부하고자 한다. 아무쪼록 이 말씀이 우리의 일평생에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데 훌륭한 가르침과 나침반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 성도에게 꼭 필요한 3대 영적 스승은 무엇인가?

  성도에게 바른 신앙생활을 가르쳐주고 천국까지 인도해주는 영적인 스승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성경에서는 성도의 3대 영적 스승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첫째는 '목회자'요, 둘째는 '성경'이며, 셋째는 '성령'이시다. 사실 사람이 구원을 받는 일에 있어서나 영적인 세계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위와같이 3가지로 소개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영적인 스승들은 어느 한 가지만 가지면 그것으로 다 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세 가지 모두가 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세 가지 영적인 스승은 우리 성도들에게 다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이 가진 한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 중에서 목회자는 목회자 자체의 자질 문제라고 하겠지만, 성경과 성령은 그것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성경을 읽어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성령이 말씀하여도 성령의 계시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우리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3. 첫 번째 스승으로서 목사인 교사로서 목회자가 갖는 특징과 주의할 점은 무엇인가?

  성도의 영적인 스승으로서 첫 번째 스승은 '목회자'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장에서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5가지 직분이 있다고 언급하였다. 그것은 '사도'와 '선지자' 그리고 '복음전하는 자'와 '목사인 교사'다(엡4:11). 그런데 사도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이러한 직분 중에서 아직까지 교회에 남아있는 직분은 '목사'인 '교사'라는 직분 하나 뿐이다. 그리고 이 마지막 직분을 '목사'와 '교사'라고 말하지 않고, '목사와 교사'라고 하는 것은 이 두 가지 직분에 대해 정관사가 한 개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목회자는 '목사와 교사'가 아니라 '목사인 교사'인 것이다. 또한 '목사'라는 직분은 당시에는 '목자(포이멘)'라는 직분이었다. 다시 말해 양떼인 성도들을 목양하는 자를 가리켜 '목사'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성도가 온전하게 되기 위해서는 목사인 교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양육받기 위해서는 오늘도 성도들을 목양하고 가르치는 직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성도가 영적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할지라도 만약 목사인 교사의 도움을 받지 아니한다면 어떻게 될까? 사도 바울은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가르침의 풍조에 밀려 요동할 것이라고 했다(엡4:14). 그러므로 성도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도달하기까지 목회자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성도는 매주일 교회에 출석하여서 목회자가 선포하는 메시지 곧 선포되는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이것이 영혼이 미치는 영향은 실로 대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회자만으로 성도가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목회자도 자신에게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요, 목회자가 가진 역량이 다르고, 목회자가 가진 은사와 달란트가 다르기 때문이다. 고로 성도가 되어서 내 영혼을 맡길 수 있는 합당한 목회자를 만난다는 것을 너무나 행복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목회자는 구분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말씀의 전문가가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영적인 것에 전문가가 있는 것이다. 기왕이면 말씀과 영성 모두를 갖춘 목회자를 만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춘 목회자를 만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영혼을 오직 목회자가 선포하는 말씀에만 맡기려 하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조금 고려해보아야 할 사항인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섬기는 목회자에게만 영혼의 양식을 의지했을 경우에 자칫 편식에 빠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목회자의 역량을 충분히 파악하여 자신은 어떤 것을 보충해야 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야 한다. 그렇다고 자신의 영혼을 위해 기도와 말씀으로 애쓰는 자기의 목회자를 함부로 대해서는 절대 아니 될 것이다. 이는 자신의 부모가 혹시 못 배웠고 온전하지 않다고 할지라도 그분을 존경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4. 두 번째 스승으로서 성경의 특징과 주의할 것은 무엇인가?

  이제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데 필요한 두 번째 스승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성도가 온전한 자가 되고 성숙한 자가 되어 천국에 들어가려면 두 번째로 '성경'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중세시대는 목회자들의 타락이 극에 달하고 있었던 때였다. 왜냐하면 성경 위에 교황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른 생각을 가진 목회자(신부)라고 할지라도 로마카롤릭 안에 있는 한, 로마카톨릭의 한계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므로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종교개혁자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16세기에 루터를 기점으로 여러 종류의 종교개혁자들이 일어났다. 종교개혁자들은 저마다 다른 특성들을 가지고 종교개혁을 부르짖었지만 오직 한 가지 측면에서는 동일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모든 성도들에게 성경을 읽게하고 성경을 돌려주자는 것이었다. 성경이 신앙과 삶의 모든 문제의 해결을 위한 가장 확실한 가르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성경을 읽고 있는 자가 성경의 내용을 다 깨달을 수만 있다면 성경만큼 인생과 신앙의 훌륭한 스승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이 성경을 읽는 독자가 그것을 다 깨달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유대인이었던 이디오디피아 내시가 절기를 지키고 이제 자기의 고국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양피지로 된 비싼 이사야서의 두루마리를 읽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잘 알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성령께서 빌립집사에게 환상으로 그 내시를 보여주면서 그에게 가까이 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빌립집사가 그에게 다가가니 그가 이샤야의 글을 읽고 있었다. 그러자 빌립이 물었다. "읽는 것을 깨닫느뇨?" 그러자 내시가 대답했다. "나를 지도해주는 이가 없으니 내가 어찌 깨달을 수 있겠나이까?(행8:31)" 그렇다. 성경을 읽는다고 해서 다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자들이 받아서 기록한 것이므로, 성령의 감동없이는 깨달을 수가 없는 것들이 거의 대부분이고, 이것을 통달하고 있는 영적인 스승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깨닫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야말로 영적인 스승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것이지만 이것을 읽는 독자에 따라서 그것을 이해하는 수준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어서 영의 양식을 보충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동시에 영적인 스승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또한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성경은 읽는 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주어진다는 사실이다(딤후3:15).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읽기를 사모해야 한다. 목회자가 도움을 주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목회자의 설교를 듣는 것만으로 구원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일년 내내 주일 메시지를 들었는데도 한 번도 천국과 지옥설교를 하지 않는 목회자도 상당히 있으며, 회개의 중요성에 대해서 설교하지 않는 목회자도 부지기수로 많기 때문이다. 

 

5. 세 번째 스승으로서 성령의 특징과 주의할 사항은 무엇인가?

  이제는 마지막으로 성도를 온전케 하고 성숙하게 만들어주는 세 번째 스승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세 번째 스승은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믿는 자들이 거듭날 때 그 사람 속에 들어오 성령님이시다(요14:16~17).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모든 성도들은 거듭날 때에 모두가 다 성령을 받는다. 성령께서 믿는 자의 영 안으로 들어오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령을 우리 주 예수께서는 "보혜사"라고 말씀해주셨다. 이는 주님 자신을 대신하여 이 땅에 보내시는 영적인 스승이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있어서 성령의 도움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하겠다. 신앙생활은 이성적인 인간의 능력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이 믿는 자들 속에 들어오는 일이나, 그분이 우리의 영에게 지시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므로, 이것을 잘 감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은 자들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죄들을 자백하여 자신의 영혼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죄를 자백하여 자신을 깨끗한 그릇으로 만들지 않는 한, 거룩한 영이신 성령의 인도와 지도를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성령은 믿는 이들의 영 안에 들어오시고, 이성적인 감각은 우리의 육체 안에 들어있다. 그런데 악한 영들은 우리의 육체 속에 들어와서 활동하고 있다.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귀신들을 우리의 육체 내에서 제거하지 않는 한 영의 음성을 듣기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그때부터 일평생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속을 깨끗하게 하는 일이다. 만약 일평생 성도가 되었지만 자신의 죄와 그리고 조상들이 지은 죄를 자백하여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악한 영들의 장막을 뚫고 나오는 성령의 지시와 인도를 받을 수가 없다. 또한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므로 사실 목회자와 성경의 가르침고는 차원이 다른 것임을 우리는 인지할 필요가 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하나님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성도가 성령의 온전한 가르침을 다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 왜냐하면 성령께서지도 지금도 말씀해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한일서에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까지 말했다. 

요일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여기에 나오는 '주께 받은 기름부음'이란 성령의 가르침을 말한다. 이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을 받을 수만 있다면 다른 무엇의 도움도 필요치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러한 수준으로 올라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되는 줄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고, 믿기만 하면 저주에서도 해방되고, 믿기만 하면 천국에도 들어가며, 믿기만 하면 천국에서 다 왕노릇을 하는 줄로 알고 있다. 하지만 다 아니다. 믿음은 기본이고 그 다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도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해야 하는 일이지만 말이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회개하는 일'이다. 이것이 없으면 성령의 가르침과 인도하심을 받기 어렵다. 그러므로 회개없는 성령사역을 하는 분들에게 가장 많이 나타나는 증상은 귀신의 가르침과 귀신이 보여준 것을 성령의 가르침과 성령이 보여준 것으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만큼 훌륭한 교사는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성령을 가장한 귀신들의 속임수에 넘어갈 가능성도 대단히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러한 분별기준으로서 성경말씀을 주신 것이다. 성경말씀은 귀신의 속임수가 전혀 들어있지 않는 말씀이기 때문에 만약 성경말씀을 많이 알면 알수록 우리는 어떤 역사가 성령의 역사인지 그리고 어떤 역사가 귀신의 역사인지를 분별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과 성령은 항상 같이 있어야 하는 영적인 스승인 것이다. 그러나 성경도 잘 모르고 성령의 역사도 잘 모르는 초신자들은 아무래도 성숙한 목회자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할 것이다. 

 

6. 나오며

  이 땅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성도들은 자기의 영의 나이를 잘 모른다.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함에 따라 육체의 나이를 먹듯이 영도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면서 나이를 먹게 된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30년 신앙생활을 했지만 영의 나이가 1살도 먹지 못한 채 그냥 어린아이의 상태로 남아있는 분들도 있다. 영의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그는 늘 떼쓰에 바쁘고 불평하며 근심걱정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여 거듭났다면, 그는 이제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기를 힘써야 한다. 그런데 육체가 육신이 필요로 하는 음식을 먹어야 성장하듯이, 영혼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곧 영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의 양식을 그대로 먹기가 힘드니까 목회자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목회자는 그 말씀을 그때그때마다 성도의 수준에 맞춰 적당하게 요리하여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듭난 성도는 목회자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목회자의 도움 없이는 영적으로 성장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목회자의 역량에 있다. 과연 말씀과 성령에 장성한 분량에 도달해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목회자에게만 매달려서는 아니 될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매일 성경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영의 양식을 보충해야 한다. 그리고 회개하여 깨끗한 상태에서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의 성장을 기대할 수가 없다. 천국에 들어가보라. 거기에 사는 사람 모두는 다 이 세상에서 먹었던 영의 나이를 가지고 거기에서 살아간다. 천국에 사는 사람이 다 똑같은 것이 아니다. 만약 이 세상에서 7~8살 정도였던 성도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간다면 그는 천국에서도 그 나이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나이에 이르기를 힘써야 한다. 그래야 천국에 들어가서도 왕노릇하는 성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혹 천국에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아무나 다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성도가 되는 것이 아니다. 

 

2021년 12월 26일(주일)

정병진목사

 

 

성도들 중에는 교회는 오래 다녔지만 신앙이 잘 성장하지 않는 분들이 있다. 그러한 분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그들은 세상의 풍파와 환란에 금방 흔들리고 쓰러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악한 영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그만 신앙이 자꾸 흔들리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신앙을 도와주기는커녕 자신의 앞가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러면 반대로 교회를 다니면서도 신앙이 성장하게 하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여기 그 해법과 실마리가 있다.

2021-11-07(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도가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벧전2:1~3)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Gdis_IBNvbw  [혹은 https://tv.naver.com/v/23428177 ]

 

1. 들어가며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모든 성도가 다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교회생활을 20년 30년 했다고 해서 성도가 자동적으로 영적 성장을 이루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 거듭 태어나기는 했어도 영적인 양식을 공급받지 못한 채 그대로 있다면 그 영은 계속해서 유아상태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사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처음부터 영과 혼과 육체를 동시에 지닌 존재로 창조되었다(창2:7, 살전5:23). 그러므로 사람의 성장해야 할 부분은 사람의 육체만이 아니다. 사람의 혼(soul)도 육체처럼 성장해야 하고 영(spirit)도 성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육체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영의 성장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 참으로 많은 것 같다. 왜냐하면 사람의 영은 우리 눈에 잘 띄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사람의 영이 성장하는 않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를 알아보려고 한다. 그리고나서 사람의 영이 성장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함께 살펴보고, 그 실제적인 지침도 함께 나누어보려고 한다. 혹 자신의 영이 성장하기를 원하는 자들에게는 오늘 메시지가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기를 바란다.

 

2. 사람의 영과 혼과 육은 어떻게 성장하기 시작하는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어떻게 창조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사람의 영과 혼과 육을 동시에 창조하셨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영역들이 하나같이 성장하도록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의 육체는 자라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키도 커지고 몸무게도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혼자서 일어설 수도 있고 걸어다닐 수도 있고 나중에는 뛰어다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혼(soul)은 어떠한가? 혼도 마찬가지다. 혼은 사람의 인격 곧 지정의를 가리키는 것인데, 이 혼도 자라야 한다. 먼저 사람은 배워서 지적으로도 성장해야 한다. 그리고 감정적으로도 성장해서 감정의 조절을 잘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를 사용해 취사선택을 잘하고 결단을 잘 해야 한다. 이러한 혼의 성장을 위해서 부모는 자식을 학교에 보내기도 하고 사회생활을 통하여 경험을 쌓게 한다. 그런데 사람이 성장해야 할 부분는 비단 육체와 혼만이 아니다. 영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영도 성장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의 영은 사실 엄마의 뱃속에서 아기가 임신할 때에 하늘에서부터 보내어져서 엄마의 자궁 속으로 들어간다. 그 시기를 영적으로 보면, 아기는 엄마의 뱃속에 약 2~3개월 정도 될 때에 들어간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태어난 아기라고 해서 모든 것이가 영이 성장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가만히 있으면 영도 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이 성장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영에게 생명을 집어넣어주어야 한다. 그것을 바로 '거듭남'이라고 부른다. 주 예수를 믿고 자신의 마음 속에 주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와 하나님으로 영접할 때에 모든 사람은 거듭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 때 하나님의 생명이 사람의 영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는 이때부터 영적 성장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아기가 영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간단하다. 사람의 육체가 밥을 먹어야 성장하듯, 영혼도 밥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그 밥은 곧 하나님말씀이라고 했다(마4:4).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 말씀이 곧 영이요 생명이어서 이것을 먹는 자가 곧 영도 성장하는 것이다. 

 

3. 사람의 영이 성장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의 영이 거듭나서 새로 태어났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영이 성장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이 세상에 태어난 아기가 성장하지 못하는것과 같다. 왜냐하면 사람의 영도 사람의 육체와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기가 성장하지 않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대략 3가지 정도를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아기가 젖을 먹지 않거나 젖을 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기가 아무리 잘 생긴 채 멋있게 태어났다 할지라도 그 아기가 젖을 먹지 못한다면 그 아기는 성장할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체중의 아기로 태어났다고 할지라도 그 아기가 체내에 영양분이 충분히 공급받으면 그 아기는 성장하게 되어 있다. 영도 마찬가지다. 둘째, 젖을 먹긴 했으나 그 젖에 영양분이 충분히 들어있지 않거나 거의 없을 때에는 아기도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의 아기들과 한국의 아기들을 비교해보면 금방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2011년 현재 북한의 아기들의 발육정도와 한국의 아기들의 발육정도는 사실 판이하게 다르다. 왜냐하면 북한의 아이들보다 한국의 아이들이 먹는 음식에 훨씬 더 많은 영양분이 가득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기가 성장하지 않는 두번째 이유는 영양분이 들어있는 젖을 먹으면 아기가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영도 마찬가지다. 셋째, 아기가 병들어 있을 때에도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병이 들면 아기들은 대체로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그러므로 아기가 음식을 먹지 않으면, 빨리 질병을 진단하여 그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아기가 엄마의 젖을 먹지 못한다. 그러면 아기의 체내에 영양분이 흡수되지 못하기 때문에 아기는 더이상 자라지 않는 것이다. 영에 있어서 이것도 역시 육체와 마찬가지다. 

 

4. 사람의 영이 성장하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첫 번째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사람의 영이 성장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1~3의 말씀을 통해서 그 해법을 2가지로 제시한다. 즉 사람의 영이 성장하려면 2가지 사항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사람의 영이 성장하려면 영의 성장을 방해하는 악한 것들을 찾아내어 그것을 제거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벧전2:1).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먼저 아기에게 젖을 먹이기 전에 모든 악독과 기만, 외식(위선)과 시기 그리고 비방을 버려야 한다고 며령한다. 곧 그러한 악한 것을 제거하지 않으면 좋은 것을 먹여도 별로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한 번 생각해보라. 내 몸에 악한 것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으면 과연 내 영이 성장을 하겠는지를 말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영적으로 보면, 우리의 영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악한 것들의 배후에 있는 영들이다. 그러므로 영이 성장하지 못하는 성도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들에게는 귀신들이 많다. 조상적부터 내려온 악한 영들이 사람 몸 속에 들어 있어서 그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신앙생활을 한 지가 이미 10년이 되었는데도, 그 사람의 영이 잘 성장하지 않고 있다면 그때에는 그 사람 속에 들어있는 귀신이 있는지를 살피고 그것을 제거해야 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대체 어린아기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귀신들이 아기 속에까지 들어가서 역사합니까?"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영적인 세계를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악한 영들은 엄마의 태중에 아기가 착상될 때부터 공격하고 들어가서 자궁 안에 있는 태중의 아기 속에도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누군가에게 영적으로 성장하는것을 도와주고 싶다면 그 사람의 조상들이 지은 죄들을 회개할 수 있도록 알려주라. 그리고 "회개기도문"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 그래서 태중에 있을 때부터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을 제거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밖에 없으니 그것은 가족 중에 누군가가 조상들이 지었던 죄를 자백함으로 대신 회개하는 것이다(요일1:9). 그러면 아기 몸 속에 들어가서 기생하고있는 악한 영들을 제거할 수가 있다.그런데 이러한 회개는 누구나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며, 오직 한 피를 나눈 부모와 자식들이 할 때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이다. 해보면 안다. 악한 영들은 대개 조부모와 부모, 그리고 부모와 자기의 아들딸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회개도 마찬가지다. 

 

5. 사람의 영이 성장하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무엇인가?

  두번째로, 자신의 영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아기가 충분한 영양분이 있는 말씀을 먹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나의 영이 성장하는데 필요한 충분한 영양분이 가득 들어있는 말씀을 사모하고 그것을 먹을 때에 우리의 영도 성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말했다.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을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2:2)"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아기가 자라기 위해서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먹게 해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순전하고' '신령한' 젖이란 어떤 말씀을 가리키는가? 먼저, '순전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아돌론'이라는 단어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벧전2:1에 나오는 '돌론'이라는 단어의 반대어다. 그리고 벧전2:1에 나오는 '돌론'은 우리말로 '기만(궤휼,계교,사기)'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아기로 하여금 말씀을 먹게 하되 아기가 먹어야 할 말씀으로는 거짓이 들어가 있는 말씀 곧 불순물이 들어가 있는 말씀을 절대 먹여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아기에게는 오직 진실한 진리의 말씀만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들은 과연 거짓과 불순물이 들어가 있는 진리의 말씀만을 전파하고 있을까? 그리고 두번째로는 '신령한' 말씀을 먹게 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령한'이란 단어의 뜻은 무엇인가> 이것을 헬라어로 보면, '로기코스'라는 단어인데, 이것은 한 마디로 '적합한, 합당한'이라는 뜻에 가깝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아기에게는 아기의 성장발육 단계에 따라 거기에 합당하고 거기에 적합한 말씀을 먹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아기는 자라는 것이다. 그러면 갓 태어난 거듭난 성도가 자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기왕이면 거듭난 성도에게 불순물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진리의 말씀이자 아기에게 적합한 말씀을 전해줄 수 있는 영적인 부모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기는 엄마의 도움없이는 고개도 가누지 못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영적인 부모의 도움없이 혼자서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분들도 더러 있다. 고개 하나 제대로 들지 못하는 아기가 스스로 먹고 살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라고 할 부모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그러므로 영적으로 어릴수록 거듭태어난 성도는 영적인 부모나 스승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갓 태어난 성도에게 훌륭한 영적인 부모는 천군만마오 같은 존재가 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가 않다. 아기를 돌볼 능력이 부족하고 지식과 지혜가 부족한 부모 밑에 있으,면 그 사람의 영혼의 성장을 더디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떤 성도들에게는 자신의 영적인 부모가 영적인 세계에 좀 문외한인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한 때에는 학교나 과외를 받아야 한다. 부모가 배우지 못해 자녀를 양육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면, 대부분의 부모는 그 아이를 학교에 보내 선생님에게 붙여주어 훌륭한 아이로 성장하게 한다. 그렇다고 자기를 낳아주고 어릴 적 길러주신 부모의 은혜를 저버리면 절대 아니 될 것이다. 사실 영적 세계에서는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며,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는 것이 철칙이기 때문이다(마20:24~25).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자신의 성장단계에 따라 훌륭한 스승을 만나야 한다. 

 

6. 사람이 젖을 뗄 시기가 되어서 이제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면?

  그래서 이제 젖을 뗄 정도가 되어 자기 혼자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고 치자. 그런 다음에는 어떻게 할 때에 스스로 자신의 영적 성장을 이룰 수 있을까? 여기 세 가지 실제적인 지침이 있다. 첫째, 영적 성장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가 하나님의 말씀이니만큼 자신의 영적 성장 속도에 맞추어,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섭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적인 성장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양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믿음은 들음에서부터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하여 생기기 때문이다(롬10:17). 영계에서는 법칙이 확실하다. 무릇 가지고 있는 자에게는 더 받아 풍족하게 되지만, 가지고 있지 않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마25:29). 그러므로 말씀을 주일낮예배 한 번만 들었던 분은 주일오후찬양예배에 도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각종 기도회 곧 수요기도회, 금요기도회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새벽기도회에도 도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3년 안에 놀라운 성장을 이루게 될 것이다.

  둘째, 나에게 영적인 스승이 없다고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영적인 스승들로부터 도움을 받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성도들의 영적인 성장에 있어서 3가지 영적인 스승들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는 목사 곧 목회자가 있다(엡4:11~12). 이들로 인해 성도는 온전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목회자가 많이 있다. 찾아보면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단에 속한 자들을 찾아가서는 절대 아니 될 것이다.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둘째로는 성경말씀이다(딤후3;16~17).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성경말씀이 우리의 두번째 영적인 스승인 것이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하여 온전케 되며,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까지 자라게 된다. 셋째로는 지금도 내 마음 속에 말씀하시는 성도의 최고의 스승인 성령님이 있다(요14:26). 그러나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까지는 상당한 영적 성장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들은 말씀을 소화시켜서 그것이 나의 살과 피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복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번만 들어도 말씀을 잘 깨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쉽게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말씀이 완전히 내 사로가 피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두 번 세 번 반복으로 듣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부모가 자녀에게 신앙교육을 할 때에도 길에 행할 때든지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그 말씀을 들려주거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게 하라고 하셨다. 이를 위해서 들은 말씀을 한 번 더 들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선 정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 마음 판에 자리를 잡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한 번 시작해보라. 그리고 할 수만 있으면 3일 뒤에 한 번만 더 복습해보라. 그러면 그 말씀이 완전히 자기의 것이 될 것이다. 

 

7. 나오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지금 영적으로 볼 때에 어린아기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지를 잘 모른다. 그리고 자신의 신앙의 경륜만을 자랑하려고 한다. 내가 신앙생활한지 몇 년이 되었으며, 내가 몇 대째 신앙생활하고 있는지를 아느냐면서 으시댄다. 하지만 그래서 신앙이 자라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영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영이 성장했는지 안 했는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 그것은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전서를 쓴 것과도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앞으로 심각한 환난과 핍박을 앞둔 상태에서 사도 베드로 빨리 불순물이 들어있지 않은 진리의 말씀과 성장단계에 합당한 말씀을 먹어 성장하라고 권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내가 성숙한 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환난과 핍박이 몰려올 때 흔들리지 않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러한 환난을 이기고 순교할 수 있는 자가 되기 위함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악한 영들의 공격을 이겨내기 위함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내가 영적인 스승이 되어 또다른 약한 지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함이다. 언제까지도 응석만 부리고 도움만 받을 것인가? 이제 코로나도 끝나가는 만큼 영적인 성장을 이루기 위해 더 열심히 달려보자. 하나님께서는 침노하는 자에게 천국을 주시며, 댓가를 지불하는 자에게 그만큼 분량의 복을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2021년 11월 07일(주일)

정병진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