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170) 저주를 축복으로 바꾼 호전적 기질의 베냐민과 그의 후손들(창49:27)_2021-08-05(목) 

https://youtu.be/tj43j4-CAO0  [혹은  https://tv.naver.com/v/21714599 ]

 

 

 

 

1. 베냐민은 누구며, 그의 부친 야곱으로부터 어떤 유언적인 예언을 들었나요?

  베냐민은 야곱이 낳은 12번째의 막내 아들입니다. 베냐민의 어머니는 라헬인데, 베냐민을 낳다가 난산 후에 죽게 됩니다. 그녀가 죽어가면서 지어준 이름은 "베노니"였습니다.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자 야곱이 그의 이름을 바꿔 불렀습니다. "벤 야민" 즉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막내가 강한 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이름을 새롭게 지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베냐민은 막내였지만 그의 내면에는 난폭하고 호전적인 기질을 다분히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죽기 전 야곱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여준 환상에 따라, 베냐민과 그의 후손의 장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창49:27)" 그렇습니다. 야곱은 정확히 말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베냐민의 후손들은 매우 난폭한 용맹성을 가진 사람들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2. 사사시대에 베냐민 지파가 저지른 망령된 일은 무엇이었으며,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요?

  사사기 20~21장을 읽어보면, 베냐민 지파가 저지른 망령된 사건이 하나 나옵니다. 베냐민 지파의 땅이었던 기브아에서 불량배들이 레위인의 첩을 윤간하여 죽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레위인은 자기 집에 도착 후 그 여인을 12동강이를 내어 이스라엘의 전 지파에게 보냈습니다. 그러자 벌 떼처럼 일어난 11지파의 대표자들이 이 일을 의논한 후에 베냐민 지파를 만나 그 불량배를 내어 놓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베냐민 지파는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11지파와 베냐민 지파 간에 전쟁이 터졌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11지파의 40만명이 베냐민 지파의 2만6천명에게 두 번씩이나 패한 것입니다. 그러자 11개 지파는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에게 법궤를 가져다가 하나님의 뜻을 묻게 하였고 하나님께서 베냐민을 넘겨준다는 약속을 받고 다시 전쟁하여 결국 베냐민 지파 사람 2만 5천명을 죽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이스라엘의 11지파가 후회를 합니다. 갑자기 이스라엘의 한 개의 지파가 없어지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살아남은 600명의 용사들을 위해 간신히 길르앗 야베스의 처녀 400명과 실로에 절기를 지키러 온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하게 하여 그 명맥을 유지하게 합니다. 

 

3. 그 어떤 다른 지파보다도 호전적인 용맹성과 기질을 가졌던 베냐민 지파는 어떻게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었을까요?

  무모한 싸움인데 자신들의 용맹성 하나를 가지고 밀어 붙였다가 그만 씨가 없어질 뻔한 지파, 그 지파가 바로 베냐민 지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베냐민 지파의 후손이 훗날 3가지 엄청난 일을 하게 됩니다. 첫째는 이스라엘의 건국 초기에는 나라를 건져내었으며, 둘째는 바벨론에게 포로로 잡혀간 후 바사(페르시아)국에서 타향살이를 하던 자기의 민족을 살릴 때가 있었고, 셋째는 예수님의 시대 직후에는 이스라엘을 넘어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을 전해준 사람이 바로 베냐민 지파 사람들에서 나왔습니다. 

 

4. 베냐민지파 사람 사울 왕과 모르드개가 행한 일은 무엇인가요?

  용맹성과 더불어 전쟁에 능했던 베냐민 지파 사람들, 그렇지만 기브아의 윤간사건으로 인하여 그 지파가 씨가 마를 뻔 한 일이 중간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연약해진 베냐민 지파에서 나라를 구한 사람이 나오게 되었으며, 민족을 구한 사람이 나오게 되었고, 자기 민족을 넘어 이방인까지 복음을 전해준 사람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과 에스더의 삼촌 모르드개와 사도 바울입니다. 첫번째 인물은 기스의 아들 사울(재위, B.C.1050~1010)입니다. 그는 씨가 마를 뻔 하였던 베냐민 지파 사람으로 태어났으며, 더욱이 기브아 사건의 중심지였던 바로 그 지역인 기브아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자,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삼상9:21)"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호전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었던 베냐민 지파 출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12개 부족 공동체로 있었던 이스라엘 나라를 주변 이방민족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왕으로 선택받은 첫 번째 사람이 되었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나라를 구한 사람이 바로 베냐민 지파 사람 사울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인물은 '모르드개'였습니다. 그는 B.C.563년경 바사(페르시아)제국에 살던 유다 민족의 하나였습니다. 그때 모르드개의 민족 즉 유다인들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에 의해 전멸당할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자기 민족을 건져내었던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의 삼촌의 딸인 에스더를 당시 바사왕 아하수에로의 왕비가 되게 하였고, 민족이 전멸당할 위험에 처했을 때에는 에스더 왕비에게 고하여 민족을 구원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베냐민 지파의 모르드개와 하만과의 전쟁은 2차전을 치른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1차전은 사울왕이 아말렉왕 아각과 전쟁을 치렀기 때문입니다.  그때에는 사울왕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아각왕을 살려주었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세월이 흘러 유다의 후손과 아각왕의 후손들이 서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2차전을 치르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용감했던 모르드개와 더불어 "죽으면 죽을 것"이라는 각오로 왕을 알현하였던 에스더 왕비에 의해 하만의 궤계는 드러나게 되었고 아각자손들은 전멸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포로로 잡혀가 살던 소수민족인 유다 민족을 살려낸 인물이 바로 베냐민 지파 사람 모르드개였던 것입니다. 

 

5. 신약의 위대한 사도였던 바울은 대체 누구며, 그가 행한 일과 야곱의 유언과는 어떤 관계가 있나요?

  신약의 위대한 두 사도를 들라고 하면 단연코 그들은 '베드로'와 '바울'일 것입니다. 베드로가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어린 양의 12사도들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한다면,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게 된 또 다른 사도들을 대표하는 인물이 하나 더 있다면 그는 바로 "사도 바울"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자기를 소개했습니다.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빌3:5)". 그도 역시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던 것입니다(롬11:1).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어떤 인물이었습니까? 그는 아주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저지르고 마는 아주 잔인하고 냉혈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의 충복이 되었습니다. 그가 어느날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과거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소개한 바가 있습니다.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갈1:13-14)" 그렇습니다. 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라면 사람을 죽이는 것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즉 그는 베냐민 지파의 기질이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과거 자신이 저지른 행동을 간증할 때에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행26:10-11)" 그렇습니다. 그에게는 물어뜯는 이리의 기질이 고스란히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 오로지 그는 그때부터 오로지 복음과 예수님만을 붙잡고 가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 예수께서 그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물어뜯는 이리처럼 달라붙어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어서여 복음을 전파했던 것입니다. 그것도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에게까지도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힘을 다했습니다. 아니 목숨을 내걸고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모든 이방인들도 다 베냐민 지파 사람인 사도 바울을 통하여 복음을 전달받게 되었고 구원받고 천국백성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창세기 49장의 야곱의 예언적인 유언에서 저주를 받은 야곱의 세 아들들(시므온, 레위, 베냐민) 가운데,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었던 레위지파와 베냐민 지파만이 유다지파를 제외하고는 예수님 당시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두 지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레위 지파와 베냐민 지파는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에 저주는 얼마든지 끝내고 축복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것의 예표가 레위와 베냐민입니다. 우리도 이제부터라도 아브라함처럼 저주를 끝내어 내 후손들은 한량없이 축복을 받고 손대는 모든 일에 복을 받을 수 있도록 회개하는 일에 더욱 더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건투를 빕니다. 

 

2021년 08월 05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168) 요셉이 받았던 야곱의 축복의 원인은 무엇이었는가?(창49:22~26)_2021-08-03(화) 

https://youtu.be/nwOoze_PUOM  [혹은 https://tv.naver.com/v/21700824   ]

 

1. 147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기 직전 야곱은 요셉에게 어떤 유언을 남겼나요?

  숨을 거두기 직전 12아들들을 불러다가 마지막으로 그들이 훗날에 되어질 일들을 예언한 야곱은 요셉에게 커다란 축복을 유언으로 남기게 됩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요셉이 받은 제일 큰 복을 받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그러한 복을 받게 된 데에는 전능자요 이스라엘의 반석이요 목자이신 예수님을 힘입어 복을 받게 된 것이며, 그의 복이 앞으로는 자기 민족의 한계를 넘어서 이방인에게까지 미치게 될 것이라고 했다는 내용입니다(창49:22~26). 

 

2. 왜 요셉은 이러한 엄청난 축복을 받은 사람이 될 수 있었나요?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 복을 받게 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들 중의 하나는 조상들이 후손을 위해 복을 받을 일을 했을 때입니다. 이를테면 조상들 중에 남에게 선을 많이 베풀며 살았던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그러한 일을 하며 살라고 아예  작정하시고 보낸 사람이 있을 경우입니다. 그러한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요셉의 사례입니다. 왜냐하면 요셉은 이 땅에 오기 전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사명을 부여받고 태어났는데 그것이 바로 그가 복을 받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가 17살 때 꾸었던 2가지의 예언적인 꿈(창37:7,9)에서도 어느 정도 나타나 있지만, 이제 임종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야곱의 눈에도 그것이 선하게 보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요셉에게 이러한 축복된 유언을 요셉에게 남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창49:25-26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26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3. 요셉이 하나님의 안배를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은 야곱의 유언 속에 어떻게 묘사되어 있나요?

  야곱이 요셉에게 남긴 유언은 실로 엄청납니다. 그런데 요셉이 이러한 복을 받게 되고 또한 앞으로도 그의 후손들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하나님의 어떠한 안배가 요셉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야곱의 유언 구절에도 있습니다. 그것은 요셉이 받은 엄청난 축복이 그의 형제들 중에서 "뛰어난 자"로부터 기인한다는 대목에 있습니다(창49:26). 그런데 한글성경만으로는 이 말씀이 요셉이 하나님의 안배를 가지고 이 땅에 온 자인 것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냥 그가 "뛰어난 자"였구나 하는 정도로 생각하게 할 뿐입니다. 한글성경에서는 그를 "뛰어난 자"라고 번역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히브리어 단어를 보면, "뛰어난 자"는 단지 '훌륭한 자', '거목', 혹은 '당대의 위대한 지도자' 정도의 뜻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뛰어난 자'는 히브리어로 '나지르'라는 단어가 쓰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우리말로는 다른 곳에서는 대부분 "나실인"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민6:2,13,18,19,20,21, 삿13:5,7,17, 암2:11, 암2:12). 그렇다면 이 말씀의 원뜻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구별된 자', '셩별된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의 뜻이 점차 확대되면서 "뛰어난 왕", "왕관을 쓴 군주"라는 의미까지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셉이 하나님에 의해서 거룩히 구별된 자로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는 이 땅에 태어나서 가족을 살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번성케 하고, 더 나아가 이방인들까지 먹여 살리도록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고 이 땅에 파송된 자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이 땅에 살면서 축복을 받게 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의 그러한 안배가 있었다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물론 그러한 안배가 있었을지라도 요셉이 하나님의 기대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했다면 그도 그러한 복을 받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사명을 주어 보낸 자답게 정말 이 세상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즉 자기를 죽이려고 한 형제들의 행동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였으며, 자기를 모함했던 주인의 처를 아무런 조건없이 용서해주었으며, 은혜를 받고서도 은혜를 저버린 술맡은 관원장을 보복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높여진 위치를 통하여 다른 모든 사람을 용서해주고 살려주는데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4. 요셉이 '구별된 자, 성별된 자'였다는 것을 400년 뒤에 모세는 어떻게 예언했나요?

  모세가 120년의 생을 다 살았을 때에, 그가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축복하는 내용이 성경에 나옵니다. 그것은 신명기 33장입니다. 그런데 신명기 33장을 보면, 야곱의 유언과 모세의 유언이 거의 복사판 수준처럼 유사합니다. 특히 요셉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지르'로 선택을 받아 이 땅에 보내어졌다는 것은 동일한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신33:16). 

신33:16 땅의 선물과 거기 충만한 것과 가시떨기나무 가운데에 계시던 이의 은혜로 말미암아 복이 요셉의 머리에, 그의 형제 중 '구별한 자(나지르)'의 정수리에 임할지로다 

  그렇습니다. 한 시대, 한 민족, 한 집안, 한 가족이 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으로부터 구별된 어떤 자의 도움을 받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물론 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처럼 자신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 복을 받는 자도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셉의 경우처럼 우리 주변에 하나님의 구별된 자가 동행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특별한 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5. 요셉의 후손들이 땅의 풍성함과 자손번성의 축복을 받게 된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인가요?

  요셉을 통해 당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안배와 그리고 요셉의 충성 때문이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후일에 요셉의 후손들이 복을 받게 되는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요셉이 하나님의 안배로 태어났다는 것이 조금이지만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요셉의 삶이 그의 후손이 복을 받기에 매우 합당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400년 후에 모세는 요셉의 후손들이 받을 복에 대해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신33:13-16 요셉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원하건대 그 땅이 여호와께 복을 받아 하늘의 보물인 이슬과 땅 아래에 저장한 물과 14 태양이 결실하게 하는 선물과 태음이 자라게 하는 선물과 15 옛 산의 좋은 산물과 영원한 작은 언덕의 선물과 16 땅의 선물과 거기 충만한 것과 가시떨기나무 가운데에 계시던 이의 은혜로 말미암아 복이 요셉의 머리에, 그의 형제 중 구별한 자의 정수리에 임할지로다 

  그렇습니다. 야곱의 유언과 거의 동일한 수준의 모세의 유언도 역시 요셉의 후손들이 땅에서 많은 기업을 차지하고 그것이 넘침으로 이웃에게까지 복이 넘어갈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의 후손이 그러한 복을 받게 된 데에는 무슨 이유가 있었을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요셉이 이 땅에서 자기 가족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먼저는 자기 형제들에게 앙갚음하지 않았으며 그들과 그들의 후손들을 끝까지 먹여살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기근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린 애굽백성들까지 다 먹여살렸기 때문입니다. 그들 모두에게 자비를 베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후손들은 요셉으로 인하여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고, 또한 베풀며 나눠주며 사는 선조 때문에 후손들이 그렇게 복을 받으면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2021년 08월 03일(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169) 또 하나의 영적 계승자로 축복받은 유다의 삶과 그가 받은 영광(창49:8~12)_2021-08-04(수)

https://youtu.be/2DfsIJudPnY  [혹은 https://tv.naver.com/v/21700693  ]

 

1. 야곱의 장자권은 누구에게로 넘어갔나요?

  야곱의 장자권은 원래 큰 아들 르우벤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르우벤은 자신의 범죄로 인해 그 축복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 시므온과 셋째 아들 레위도 분노와 혈기로 사람을 잔인하게 죽임으로 장자권은 4번째 아들 유다와 사실 11번째 아들 요셉에게로 넘어갔습니다. 그중에서 영적인 장자권은 유다에게로 넘어갔으며, 물질적인 장자권은 요셉에게로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2. 야곱의 장자권이 요셉과 유다에게 넘어간 이유는 무엇인가요?

  야곱의 장자권이 우선 요셉에게 넘어간 이유는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그러한 안배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태어나기도 전에 사명을 받아 이 땅에 보내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요셉이 하나님께서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면 장자권은 그에게 넘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충실하게 그 직무를 감당했습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로 장자권이 넘어간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에게로 넘어간 이유는 그가 그러한 축복을 받을만한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죽을 요셉을 살려내었으며, 자기 가족들을 기근으로부터 건져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무엇보다도 자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직접 제물이 되려고 했던 헌신적인 책임자였기에 장자권은 르우벤에게서 유다에게로 넘어간 것입니다. 그리하여 유다의 왕권은 이제 요셉과 유다지파에게로 전승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야곱의 장자권이 유다와 요셉에게 있다는 것은 어떻게 예표되었나요?

  사실 야곱의 장자권은 한 사람이 아니라 둘에게로 넘어갔습니다. 그중의 하나는 두 배의 땅을 기업으로 약속받은 요셉에게로 넘어갔으며, 또 하나는 메시야를 낳을 영적 계승자인 유다에게로 넘어갔습니다. 그렇다면, 이 둘이 야곱의 장자라는 사실은 어떻게 증명되었을까요? 그것은 요셉이 죽고 난 후 약 300년이 지난 시점에 고스란히 성취 되었습니다. 그때는 모세가 출애굽하여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광야에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모세가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파송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40일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의 정탐꾼들이 경과보고가 달랐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나머지 10명의 정탐꾼들은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매우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면서 어서 가서 그것을 취하자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그 땅에 신장이 거대한 아낙자손들이 살고 있으나 하나님께서 그 땅을 주신다고 약속했으니 가서 차지하자고 말한 것입니다(민14:6~9). 결국 당시 광야로 나왔던 출애굽 1세대들 가운데 오직 살아서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이 두 명이 바로 요셉과 유다의 지파의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즉 여호수아는 요셉의 장남이 된 에브라임 지파 사람이요, 갈렙은 유다 지파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민13:6,8).

 

4. 유다에 대한 야곱의 축복으로서 왕권에 대한 예언은 누구를 통해서 실현되었나요?

  야곱은 유다에게 장차 그가 형제들로부터 절을 받을 왕위를 물려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형제들의 찬송이 될 것이며, 그가 원수들의 목을 잡을 것이라고 했습니다(창49:8). 그랬는데 정말 유다 지파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우두머리 지파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B.C.1010년에는 유다 지파의 후손으로서 왕이 된 다윗에게 모든 이스라엘의 지파가 엎드렸습니다(삼하5:1~5). 왜냐하면 다윗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 곧 이스라엘의 통일왕국의 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다윗은 예수님의 예표로서 베들레헴 출신으로서 30세에 왕이 된 인물입니다. 그리고 A.D.96년경 천상의 예배광경을 지켜보던 사도 요한은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으로부터 "누가 두루마리를 받아 펼칠 수 있는가?" 하는 힘있는 천사의 질문에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이신 어린양이 그 일을 할 것이라는 소리를 24장로의 한 사람으로부터 들었습니다(계5:5). 그렇습니다. 유다 지파의 후손에 메시야의 예표인 다윗이 있었고, 다윗의 후손으로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유다 지파에 대한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이 유다에게 "너는 사자 새끼(젊은 사자)"라고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예서께서 30살의 젊은 나이에  이 땅에 물질계와 영계의 왕이 되셨고, 십자가에서 이 세상 임금의 머리를 박살냈으니, 야곱의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서 완전히 성취가 된 것입니다. 

 

5. 야곱은 유다지파에서 나오게 될 약속된 메시야를 어떻게 예언했나요?

  야곱은 유다에게 축복하기를 규와 통치자의 지팡이가 유다의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창49:10). 이는 유다 지파에서 왕이 나올 것이라고 예언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 다윗이 왕위에 오르자 남유다의 왕이 유다지파에서 계속해서 일어났습니다. 이는 영적인 장자의 축복을 받았던 유다 지파에서 메시야가 탄생하기까지 유다의 후손들 중에 왕위를 이어받을 것이라는 예언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윗을 필두로 왕은 계속 되었으니, 만약 남유다 왕들이 범죄하지 않았더라면 계속해서 왕위를 이어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의 후손이었던 남유다의 왕들의 범죄로 인하여 남유다는 20대 시드기야 왕을 끝으로 왕위가 종료되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그 왕위가 언제 끝날 것인지에 대해서도 예언했는데, 그것은 "실로가 오시기까지"였습니다(창49:10). 여기서 "실로"란 히브리어로 "그것을 가진(소유한) 자"라는 뜻으로서, "왕권을 가진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실로'는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또한 야곱은 그가 오시면 암나귀와 나귀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라고 했는데, 예수께서 오셔서 그 예언을 을 이루었으니, 그가 나귀와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포도주처럼 붉은 피를 흘리시어 인류의 속죄제사를 완성함으로 모든 사람들이 그 혜택을 누리게 하셨습니다(창49:11~12). 그렇습니다. 유다는 비록 자신이 하나님의 예정된 안배를 가지고 태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이 땅에서 그가 행했던 행위들을 통하여, 그는 영적인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후손들 중에서 수많은 왕들을 배출할 수가 있었으며, 메시야의 조상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이 땅에 살고 있는 한 사람이지만, 내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우리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것을 아시고, 장래에 우리가 하늘에서 받을 영광을 위해 오늘도 야곱의 넷째아들 유다처럼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021년 08월 04일(수)

정병진목사

 

야곱은 자식들에게 유언을 남긴 것인가 아니면 그들에게 예언을 선포한 것인가? 임종을 앞둔 야곱의 영성은 사실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남긴 유언은 100% 그대로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12아들들에게 남긴 유언은 아주 놀라운 영적인 비밀들을 알려준다. 그것은 한 마디로 '복'에 관한 것이다. 거기에는 5가지 원리가 들어있다. 오늘 내가 복을 받고 있는 이유가 있다면 여기에 들어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는지도 여기에 들어았다. 그 반대도 여기에 그 이유가 있다.

 

2021-07-30(금) 금요기도회

제목: 창세기강해(166) 이긴 자 야곱의 예언적 유언의 5가지 특징(2)(창49:13~28)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MFkQxFOVdXc  [혹은 https://tv.naver.com/v/21626915  ]

 

1. 들어가며

  향년이 가까워진 야곱은 먼저 요셉과 요셉의 두 아들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하였다. 곧이어 야곱은 자신의 12아들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힘을 다해 그들을 축복한다. 우리는 창세기 49장의 기록을 통해 야곱이 정확히 12아들들을 축복했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그가 했던 유언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언은 자기의 어떤 것을 유산으로 무려준다는 말은 없으며, 다만 그들의 미래를 예언처럼 말하고 있을 뿐이다. 아니 야곱은 자기들의 아들들에게 "너희가 후일에 당할(겪을)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고 말한 것이다(창49:1). 그렇다면 야곱은 12아들들에게 무엇을 유언했을까? 그리고 그가 12아들들에게 유언한 내용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야곱이 12아들들을 축복했던 내용을 분석하여, 야곱의 축복의 특징들을 살펴볼 것이다. 그것은 5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이것들 중에서 3가지는 오늘 새벽기도회의 시간에 전했기에 거기에다가 2가지 것을 더 추가로 말씀드리고자 한다. 아무쪼록 이 예언의 말씀을 통하여 야곱의 12아들들의 미래가 곧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참된 축복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 야곱의 유언(예언적 선포)의 5가지 특징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전 시간에 야곱의 유언들 5가지 중에서 3가지를 살펴보았다. 오늘은 그 세 가지 것에다가 2가지 것을 더 살펴보고자 한다. 혹시 앞의 3가지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앞의 것 3가지도 여기에 간단히 정리해 본다. 

 

1)태어날 때부터 복을 가지고 태어난 자도 있다는 것이다. 

  야곱의 유언의 첫번째 특징은 태어날 때부터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자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경우는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류의 대표는 바로 유다의 11번째 아들인 '요셉'이다. 그는 이 땅에 태어나기 전에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사명이 주어진 후에 이 땅에 보내어진 사람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만약 그가 충성되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한다면 그는 축복된 미래가 예비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로 요셉은 그 길을 묵묵히 잘 걸어갔다. 


2)대부분은 이 땅에 와서 자신의 행함을 통해 복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이 땅에 온 후에 자신의 행한 행동을 따라서 복이 결정된다. 요셉을 제외한 나머지 11명의 형제들이 다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땅에 와서 자신이 행한 대로 복을 받게 된 자들은 크게 3가지 유형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받을 복이 '상승'과 '축소'와 '탈락'이라는 방면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신앙생활을 잘 마치게 되면 자기에게 어떤 복이 예비되어 있는지를 알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 그가 받을 복이 이미 결정되어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 이 땅에서 사는 방식과 태도에 따라 그것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복이 자신의 행함에 따라 올라가는 자가 있는가 하면, 내려가는 자도 있고, 아예 이러한 복에서 탈락하는 자도 있다. 예를 들어, 유다는 '상승'하는 복을 받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는 장자가 아니었다. 그는 넷째 아들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 아니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그러자 그의 위치는 제일 앞으로 나아갔다. 지금 천국에서 유다는 24장로의 자리에 앉아있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받을 상급이 '축소'된 자도 있다. 그는 바로 '르우벤'이다. 그는 장자로서 3가지 복을 타고 태어났다. 자기가 왕직과 제사장직과 기업을 두 배로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왕직은 유다에게, 제사장직은 레위에게, 두 배의 기업은 요셉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왜 그랬는가?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과 아버지에게 큰 죄를 범죄했기 때문이다. 서보 빌하와 통간을 한 것이다. 음행을 저지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장자가 받을 3가지 복을 다 빼앗기고 말았다. 그는 그의 천국에서의 위치는 한참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그리고 자신이 받을 복에서 '탈락'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예는 '단'같은 경우다. 단은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는 지위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창49:16). 그런데 그는 뱀과 독사가 되어 말굽을 물어서 그 탄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였다. 신약시대로 친다면 가룟유다와 같은 자다. 그는 귀신들과 사탄에게 사로잡혀 그들에게 쓰임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천국에 있는 이긴 자의 명단에서 그의 이름이 빠지고 말았다(계7:5~8).  


3)과거에 사명이 있는 채로 태어났든지 그렇지 않든지 상관없이 자신의 현재의 삶이 장차 도래할 미래의 자신의 위치와 신분과 상급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요셉처럼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든지 아니면 그렇지 않든지 상관없이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현재의 삶이 미래에 받을 복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즉 지금 충성하는 자가 장차 천국에서 위치와 신분과 상급에 있어서 복을 받기 때문이다. 자기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 자신은 사명 없이 태어났으니 자신이 받을 복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게으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사랑믈 보내실 때에 사명이 없었던 자라도 이 땅에 살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닫고 충성한 자를 눈여겨보고 계시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맡겨진 일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요셉이나 신약의 사도 바울의 경우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아 일하는 자와 함께 충성하게 일할 때 그도 역시 그가 충성한 만큼 상을 주시기 때문이다(마10:41~42). 하나님은 오늘도 복음을 듣고 주와 복음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자를 눈여겨보시며, 하늘에서 상을 주신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4)영적인 세계에도 빈익빈 부익부의 법칙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영적인 세계에서도 빈익빈 부익부가 존재한다는 것은 야곱의 축복 속에서도 고스란히 발견된다. 왜냐하면 야곱의 12아들들의 축복의 내용과 그 분량을 보면 거기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야곱의 12아들들 중에서 유다와 요셉을 제외하면 그들을 향한 축복은 두 개의 절의 분량을 넘어가는 아들이 하나도 없다. 그중에 그 복의 분량이 한 줄 뿐인 아들도 있다. 그들은 스불론, 갓, 아셀, 납달리, 베냐민이다. 그리고 그 복의 분량이 두 줄인 아들 뿐인 이들도 있다. 그들로는 르우벤, 시므온, 레위, 잇사갈, 단이 있다. 그런데 둘 줄 분량의 복을 받았더라도, 한 줄은 거의가 책망과 저주의 말 뿐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축복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유다와 요셉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전부다 축복의 말씀으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도 무려 다섯 절에 걸쳐서 풍성하게 복이 주어지고 있다. 빈익빈 부익부의 법칙이 그대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영적인 세계에서 빈익빈 부익부가 존재한다는 말씀이 이처럼 구약성경에도 나와 있지만 그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신약에 들어와서 예수님께서도 그것을 언급하심으로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영적인 비밀이 알려지게 되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25:29)" 그렇다. 우리는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를 통하여 착하고 충성된 자가 주인으로부터 어떤 상을 받게 되는지를 보게 된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열심히 일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고, 두 달란트를 받은 자는 열심히 일하여 두 달란트를 더 남겼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악하고 게을러서 그것을 땅을 파고 그곳에 감추었다가 주인이 오자 그것을 내놓았다. 그러자 주인은 그들을 어떻게 결산하였는가? 한 달란트 가진 자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다섯 달란트 더 남긴 자에게 주셨다(마25:28). 그렇다. 빈익빈 부익부가 된 것이다. 이 땅에서 충성된 자는 하늘나라에 갔을 때에 더 큰 상을 받을 수 있겠지만 이 땅에서 충성하지 않고 게을렀던 자는 하늘에 갔을 때에 가지고 있던 상도 빼앗길 수 있다. 


5)책망과 저주마저도 축복의 한 영역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야곱이 유언 가운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야곱의 유언은 분명 축복이어야 하는데, 야곱은 자식에게 축복만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야곱의 12아들들 가운데 축복만이 주어진 아들은 유다와 요셉이다. 갓과 납달리는 조금 있을 뿐 정도다. 르우벤은 책망이 주어졌고, 시므온과 레위는 저주가 선언되었다. 그리고 잇사갈이나 단에게는 그들의 미래가 고통이나 불행이 될 것이라고 선포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저주 위에 저주가 선포된 시므온과 레위이지만 훗날 그들의 인생이 완전히 바뀐 일이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분명히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를 저주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동생 디나가 세겜 땅의 세겜 추장에 의해 겁탈을 당하자 그 속에서 복수심이 불타 올라서 악한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분노와 혈기가 강한 자들이었다(창49:6). 그리하여 그들은 비열한 방법을 써서 세겜 족속을 몰살시켰으며, 심지어 여자들과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최소한 그들의 소 떼와 양 떼는 남겨놓아야 했음에도 오히려 소의 발목의 힘줄까지 끊어버리는 잔인함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야곱은 그들이 가진 혹독하고 맹렬한 분노와 혈기로 인하여 야곱 중에서 그들을 나눌 것이라고 하였고 이스라엘 중에서 그들을 흩어버릴 것이라고 하였다(창49:7).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가? 그중에서 시므온은 야곱의 유언대로 흩어지고 없어지고 말았다. 그들의 지파가 나중에 여호수아에 의해 땅을 분배받을 때에 시므온 지파는 독립적인 땅이 주어지지 않았다.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의 땅에 흩어져서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시므온 지파는 유야무야 되어 나중에 흩어져서 정말 없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레위는 달랐다. 레위도 야곱의 유언대로 12지파들의 땅으로 흩어져애 했다. 레위 지파는 각 지파별로 흩어졌으니 총48개 성읍에 흩어져서 살았다. 하지만 레위 지파는 모세 때에 그들이 가진 약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모세가 율법을 돌판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에 일어났다. 그때 산 아래에서는 시내 광야에서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광란의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하나님의 분노는 그들을 한꺼번에 불에 태워 죽일 만큼 컸다. 그런데 그때에 모세가 하나님의 분노를 대신 내었다. 그리고 여호와 편에 있는 자는 누구든지 모세에게로 와서 광란의 춤을 추는 자들을 죽이라고 했다. 그러자 레위자손이 일어나 모세의 편에 가담하여, 우상숭배에 빠져있는 자들을 칼로 쳐 죽였으니 무려 3,000명이나 죽어야 했다. 그런데 그 중에 가기의 가족 곧 형제 자매도 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 일을 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가 영원한 제사장의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장자가 누릴 축복의 하나였던 제사장직을 레위 지파가 받아서 누리게 되었으니, 북이스라엘 10개 지파가 망하고 없어졌어도 남유다에서 레위 지파는 계속해서 살아남았다. 즉 남유다에서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외에도 제사장 지파로서 레위 지파가 살아남은 것이다. 레위 지파는 한 마디로 저주를 축복으로 바꾼 지파가 되었다. 자신의 단점을 승화시켜 장점으로 바꾸었으니, 이는 자신이 가진 혈기와 분노를 악한 자 사탄마귀와 귀신들에게 쏟아붓는 일을 한 것이다. 그렇다. 책망과 저주도 크게 볼 때에는 축복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3. 나오며

  어떤 사람은 말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어떤 '운명'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사주팔자대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말은 성경에 반대되는 말이다. 왜냐하면 비록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요셉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요. 또한 사명 없이 이 땅에 태어났다고 할지라도 이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충성하는 사람과 함께 충성하게 되면 하늘에서 놀라운 상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충성된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면류관과 천국집과 보좌자리를 예비해 놓고 계신다. 고로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개척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어떤 사람에게는 특별한 안배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자는 거의 없다. 대부분은 이 땅에 태어나서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결정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자도 바로 이러한 자들에 해당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지금 내가 어떻게 하느나에 따라서 미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악하고 게으르게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착하고 충성되게 살아갈 것인가는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다. 그렇다. 오늘도 나 자신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 없고 저주만 물려받았다고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저저를 없애는 것이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으로 생각하며 살 것인가는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나도 아브라함처럼 저주를 끝내고 내 후손에게 있어서 만큼은 손대는 모든 일에 복을 받게 할 것인가는 자신이 결정하는 일이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다. 자신이 요셉처럼 태어났다고 해서 만사가 형통한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창세기에서 요셉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들려주는가? 사명자라도 정말 하나님께 올바로 쓰임받기까지는 환난과 역경을 통과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고난 없는 영광이 어디 있겠으며, 희생없는 상급이 어디에 존재하겠는가?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은 정말 우리가 도전할 가치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늘에서 우리가 받아 누릴 영광은 정말 세세무궁토록 우리가 누릴 영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21년 07월 30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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