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07(금) 금요기도회

제목: 사도행전강해(52) 사도 야고보를 죽였던 헤롯은 왜 갑자기 죽게 되었을까?(행12:20~25)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svL75mr-5OE  [혹은 https://tv.naver.com/v/29822634 ]

 

1. 들어가며

  인생은 들에 있는 풀의 꽃과 같아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지만 언제 시들어버릴지 모른다. 사도행전을 읽어 보면 두 명의 헤롯 왕이 등장한다. 한 명은 헤롯 아그립바 1세이며(A.D.37~44)(행12:20), 또 한 명은 그의 아들 헤롯 아그립바 2세다(A.D.50~70)(행26:1~2). 헤롯 아그립바 1세는 47세에 헤롯 대왕 다음으로 로마의 황제에 의해 '유대인의 왕'으로 공식 임명된 자로서, 성경에는 야고보 사도를 죽인 자로 처음 등장한다. 그의 처음 인생은 아주 비참하게 시작되었으나 그러나 나중에 엄청난 영광을 누린 자다. 그런데 그가 전 유대 땅의 왕이 된지(A.D.41) 3년 만에 급사함으로 자신의 인생을 마감한다. 대체 그는 어떠한 사람이었으며 왜 죽게 되었는가? 그가 사도 야고보를 죽인 댓가로 죽은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에 죽은 것인가? 오늘 우리는 그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헤롯 아그립바 1세와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삶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우리도 언젠가는 맞이하게 될 죽음 앞에 어떤 사람으로 서게 될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죄는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죄는 무엇일까? 그것은 살인죄일까?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칼로 사도 야고보 죽이고 말았으니(A.D.44) 그 죄값이 무거웠던 것일까? 어떻게 되어서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야고보를 죽인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것일까? 우리는 죄없는 사도 야고보를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죽인 것이 그가 죽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일이 있은  얼마 후 그가 갑자기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진짜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죄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단서가 있다. 그것은 사도행전의 기록이다. 사도행전에서는 그가 왜 죽게 되었는지를 정확히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께 마땅히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고 자신이 받았기 때문이라고 증언하고 있다(행12:23). 그때 하나님께서 주의 천사를 보내 그를 쳐서 죽게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죄가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다. 그것은 살인죄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 죄 곧 자신을 신격화시키는 우상숭배죄라는 것이다. 그렇다. 인간은 인간일 뿐이다. 그런데 자기가 누린 권세와 부귀영화를 통해 자신을 신격화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허용하다가 결국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헤롯 아그립바 1세, 그의 삶을 이제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자.

 

3. 헤롯 아그립바 1세, 그는 어떻게 되어서 '유대인의 왕'이 되었는가?

  헤롯 아그립바 1세는 4살 때 자신의 아버지(아리스토 불루스)를 잃었다. 할아버지(헤롯 대왕) 그를 죽였기 때문이다. 헤롯 대왕은 왕권에 대해 욕심이 아주 많은 자였다. 그러므로 권력에 조금이라도 탐을 내는 자는 아내라도 아들이라도 가만 두지 않았다. 헤롯 대왕(B.C.37~A.D.4)은 부인을 여럿 두었다. 무려 10명이나 되었다. 그중에 네 번째 부인인 '말타게'는 아주 욕심 많은 여자였다. 그리하여 자기 아들들(헤롯 아켈라오, 헤롯 안디바)에게 권력을 이양하고자 유대의 정통 제사장 가문이었던 하스몬 왕가의 사람 곧 헤롯 대왕의 두 번째 부인인 미리암네 1을 모함하여 결국 그녀와 그녀의 두 아들들(알렉산더, 아리스토불루스) 처형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아버지(아리스토 불루스)가 죽임을 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4살박이 헤롯 아그립바 1세를 불쌍히 여겼던 헤롯 대왕은 며느리(아리스토 불루스의 아내)와 자신의 손자(헤롯 아그립바 1세) 로마로 유학을 떠나보낸다. 그리하여 헤롯 아그립바 1세는 로마의 황제 가문의 사람들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다. 이에 유대의 정통 하스몬 왕가의 피와 헤롯 가문의 피를 동시에 물려받은 헤롯 아그립바 1세는 로마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가 성장하여 37세가 되었을 때, 말을 타고 가다가 가이우스(장차 칼리굴라로서 로마 3대 황제가 될 사람)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늙은 티베리우스(로마의 2대 황제)가 빨리 죽고 가이우스(칼리굴라)가 황제가 되는 시대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었던 어떤 사람이 그와 같은 사실을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밀고하고 만다. 그러자 그는 그만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그런데 그로부터 6개월 후 티베리우스가 죽고 가이우스(A.D.37~41)가 로마의 황제가 된다. 그러자 가이우스는 즉시 헤롯 아그립바 1세를 석방하고 그에게 쇠사슬의 무게 버금가는 금목걸이를 선물로 주고 그를 '황제의 친구'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제 가이우스 황제는 47세가 된 헤롯 아그립바 1세를 자신의 삼촌 헤롯 빌립이 다스리던 땅을 선물로 주면서 '유대인의 왕'이라는 칭호를 수여한다. 그래서 일약 '유대인의 왕'이 되어 고국에 돌아온다. 그리고 헤롯 아그립바 1세는 그때부터 자신의 할아버지가 다스리던 땅을 점점 차지하여 모든 땅을 다 얻게 된다. 당시 유대에는 헤롯 대왕의 세 명의 아들들(헤롯 빌립, 헤롯 아켈라오, 헤롯 안디바)이 분봉왕('영주' 비슷한 개념)이 되어 자신의 아버지의 영토를 나눠서 통치하고 있었지만, 그로부터 2년 뒤에 헤롯 아켈라오는 죽었고(A.D.6), 헤롯 빌립도 죽자(A.D.34), 헤롯 안디바(A.D.4~39)만 살아서 그도 자신의 아내였던 헤르디아와 더불어 '유대인의 왕'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조카인 헤롯 아그립바 1세(A.D.37~41)가 '유대인의 왕'이 되어 돌아오자, 시기심에 불타 자기도 왕위를 달라고 로마 황제를 알현하러 가던 중에 이미 손을 쓴 헤롯 아그립바 1세에 의해 고울지방(프랑스 지방)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그리고 가이우스 황제는 A.D.39년 헤롯 안디바가 다스리던 땅(갈릴리와 베레아)을 이제 헤롯 아그립바 1세에게 준다. 그리고 얼마 후(A.D.41) 로마의 3대 황제 가이우스가 암살당한다. 그런데 그때 마침 로마에 있었던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자신의 동갑내기 친구였던 글라우디오스(A.D.41~54)에게 용기를 주는데, 글쎄 글라우디오스가 황제의 자리에 또 오르게 된다. 그러자 황제는 자신의 동갑내기 친구였던 헤롯 아그립바 1세에게 헤롯 아칼라오가 죽고 총독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던 유대와 사마리아와 이두메의 땅을 하사한다(A.D.41). 그러자, 이제 헤롯 아그립바 1세는 헤롯 대왕에 이어서 전 유대 땅을 다 다스리는 '유대인의 왕'이 된 것이다. 

 

4.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죽기 전에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렇다면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헤롯 왕 아그립바1세는 왜 그만 급사로 죽게 되었을까? 그 일은 그가 전 유대 땅의 왕이 된 지 3년 만에 일어난다. 그리고 그것의 시작은 그가 예수님의 12제자이자 사도의 하나였던 '야고보'를 죽인 지 얼마 안된 후에 일어났다. 그는 죄없는 야고보를 정치적인 이유와 종교적인 이유로 목베어 죽여버린 것이다. 그것은 그가 이제 전 영토의 유대인의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던 중에 유대인들의 환심을 얻고자 유대인들이 싫어하는 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없애버리고 한 시도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당시 예루살렘에 있던 예수님의 12사도들을 다 죽여 없애버리고자 했다. 그래서 먼저 야고보를 붙잡았고 그를 처형시켜 버렸다(A.D.44). 그리하여 이때 야고보는 예수님의 12사도들 가운데 처음으로 순교자가 되었다. 그런데 헤롯 아그립바 1세는 그 일에 그치지 않고, 나머지 사도들을 전부 제거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12사도들의 대표였던 베드로를 체포하였다. 그리고 그를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 왜냐하면 그를 곧바로 죽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유대인의 관습상 절기 때에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때가 바로 무교절의 절기 중이었기 때문이다(행12:3). 그래서 무교절이 끝나는 날에 맞춰, 그를 죽이 하고 있었는데, 그를 죽이려던 하루 전날 밤, 하나님께서 교회의 간절한 기도소리를 들으시고 베드로를 감옥에서 빠져나오게 해 주신다. 하나님께서 주의 천사를 직접 보내어 베드로를 감옥에서 빠져나오게 했기 때문이다. 양쪽에 두 군사들에 의해 두 쇠사슬로 각각 매여 있던 베드로는 잠을 자다가 갑자기 천사가 옆구리를 쳐서 깨우는 바람에 일어난다. 그리고 저절로 손에 묶여 있던 쇠사슬이 풀리자, 신발을 신고 겉옷을 입고 천사를 따라나서는데, 어떤 군사들도 그 도망치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자 나중에 베드로의 탈옥 소식을 접하게 된 헤롯 아그립바 1세는 베드로를 샅샅이 수색하게 하지만, 그를 찾을 수 없게 되자 화가 난 나머지 당시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고 명한다. 그리고 자기의 할아버지가 로마의 황제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가이사랴로 떠나버린다. 거기에 자신의 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후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죽게 된다.

 

5. 왜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죽게 되었는가?

  그때 헤롯 아그립바 1세는 빨리 알아차려야 했다. 그동안에는 그는 정말 행운아 같은 삶을 살았지만 말이다. 자신과 친하게 지내던 두 명의 로마 황실의 사람들이 로마의 황제가 되는 복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로마의 뒷배가 든든했던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사실 못할 것이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특히 자신의 삼촌들도 그렇게 바라던 '유대인의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헤롯 대왕이 다스리던 모든 땅을 다시 다스리게 된다. 그러니 유대 땅 안에서 그를 넘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유대인들 마저 이제는 그의 눈치를 보아야 할 형편이었다. 그런데 그의 정책 중 하나인 예루살렘 안에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제거하는 작전에 실패했던 것이다. 야고보는 제거했으나 베드로는 제거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 그는 빨리 알아차려야 했다. 그리고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아봤어야 했다. 그리고 그가 계속해서 왕위에 있기 위해서는 자기보다 더 높은 분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봤어야 했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 사실상 거칠 것이 없었기에 그는 모든 것을 다 자기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런데 베드로를 제거하지 못한 채 가이사랴에 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자신의 침소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통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헤롯 아그립바 1세와 화목하기를 청해 왔다. 그것은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유대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고 있는 상황에서 헤롯 대왕 때부터 있었던 불화를 해결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드디어 황제를 기념하는 공원에서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온갖 고관들과 관리들을 이고 로마식 극장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둘째 날에 은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입장을 하는데, 떠오르는 햇빛에 그 왕 광채가 나자, 그 모습을 보고 왕에 대한 두려움과 위엄을 느낀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그 연설을 들으면서 "이는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다"라며 크게 함성을 질렀다. 그런데 왕은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이처럼 헤롯 아그립바 1세가 그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주의 천사를 보내 즉시 그를 타격하게 한다. 그러자 백성들의 외침이 있은 직후 배를 움켜 쥔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즉시 치료를 시도해 보았으나, 벌레가 창자를 먹음으로 인하여 창자가 썩어가는 병을 앓았고, 병든 지 5일 만에 사망했다. 너무나 허망한 죽음이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54세였다. 

 

6.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죽음이 가르쳐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세상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제는 모든 것을 거머쥔 그의 삶에 평탄한 대로만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만 그렇게 쉽게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좋던 세상 권력과 부귀영화를 모두 놔둔 채 죽음을 맞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아무리 좋은 세상의 권력과 부귀영화라도 영원히 내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잠시 잠깐 그것을 누리다가 가는 것이 인생인데, 그는 자신이 복통에 시달리다가 죽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그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죄없는 야고보를 죽였던 것을 되돌아 보았어야 했다. 그리고 베드로를 잡지 못했던 것을 되돌아 보았어야 했다. 그것은 자기보다 더 큰 권세와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사람으로 오셨다는 것을 알아 보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권력의 맛에 취해 있었다. 그리고 오직 자신의 부귀영화를 더 오래 누려 볼 생각으로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고만 했었다. 그러므로 그는 잘못 행했던 일에 대해서는 되돌아 볼 여유가 없었다. 특히 그는 자신을 신으로 추앙하는 백성들의 모습에 그냥 들떠 있었다. 베드로를 잡지 못해 기분이 좋지 않았던 자신을 향해, 그날 백성들의 외침은 기분을 최고로 좋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고, 또한 대신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의 위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신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보았을 때 그는 자신이 신처럼 떠받들어지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화려한 옷을 입고 연설하다가 백성들로부터 이건 사람 소리가 아니라 신(하나님)의 소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을 기뻐했던 것이다. 거기에는 화해를 시도하려는 두와 시돈 사람들의 의도적인 말이 섞여 있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사람인 주제에 하나님의 자리까지 올라가려 했던 헤롯 아그립바 1세는 그순간 하나님으로부터 징계가 떨어진다. 그리하여 단상에서 복통으로 배를 거머쥔 채 퇴장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후에 그는 복통을 앓다가 5일 만에 세상을 떠나 된다. 그렇다. 이렇게 사람의 죽음은 허망한 것이다. 우리도 언제 불어 닥칠지 모를 죽음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7. 나오며

  사람들은 자신이 권력을 잡으면 무엇이나 된 것처럼 착각을 하기 시작한다. 거기에다가 부화뇌동하는 주변 사람들로 인해 자신의 위치는 한층 더 높아져 간다. 그러면 자기보다 위에 계시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그리고 자기의 말 한 마디로 모든 것이 움직이는 것을 볼 때에 자신 신 아닌가 착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때부터 추락은 시작되는 것이다. 권력의 실체가 그러한 것이다. 헤롯 아그립바 1세는 4살 때부터 아버지 없이 자랐던 비참한 출발을 그는 항상 기억했어야 했다. 그리고 현재 자신의 위치까지 오르게 된 것이 자신이 사람을 잘 만나서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어야 했다. 그리고 야고보를 살해하고 베드로를 놓쳤을 때에 그는 자신보다 더 강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권력에 취해 그러한 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하루 아침에 모든 권력과 부귀영화를 내려 놓고 죽음에 직면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다. 인생 다 풀의 꽃과 같은 것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세상의 권력과 부귀영화가 다 헛되고 헛된 것이라는 것을 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그리고 죽음 다음에 우리에게 찾아올 심판을 잘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죽은 뒤에 반드시 심판주 앞에 서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교만한 마음이 자신을 주장하지 못하도록 끝까지 힘써야 한다. 구약의 사울왕은 전쟁에서 승리하자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고 자신의 이름을 기념하는 승전비를 세웠다. 그리고 자신이 분명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책망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높여 달라고 사무엘에게 부탁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전쟁의 위기의 순간에 회개하거나 하나님을 찾지 않고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서 물어보는 과오를 범하였다. 그리하여 그도 결국 자살이라는 비참한 운명을 맞이해야 했다. 우리는 사람이다. 우리는 절대 신이 아니다. 우리가 인생의 주관자가 아닌 것이다. 우리의 미래도 우리의 것이 아닌 것이다. 그분이 다 주관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애에 발생하는 모든 일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그분의 허락 없이는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2022년 10월 07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51) 왜 야고보 사도는 순교했는데 베드로 사도는 죽지 않고 살아났을까?(행12:1~19)_2022-10-07(금)

https://youtu.be/ee6uwh7I2gQ  [혹은 https://tv.naver.com/v/29743355 ]

 

1. 안디옥에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고 있을 때에 예루살렘 안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안디옥에 바나바와 사울로 인하여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고 있을 때에 예루살렘에는 2차 박해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번에는 종교적인 박해가 아니라 정치와 종교가 서로 결탁된 박해였다. 다시 말해 헤롯 왕(헤롯 아그립바 1세, A.D.37~44.재위)이 유대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사도들 중에 야고보를 칼로 죽였던 것이다. 그때 헤롯 왕은 야고보만을 죽이려 하지 않았다. 예수님을 믿는 무리들의 대표들을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요한의 형제 야고보가 헤롯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만 것이다. 순교를 당한 것이다. 그리하여 사도들 중에 최초의 순교자가 나온다. 그런데 이것이 유대인들을 기쁘게 한다는 것을 알아 차린 헤롯은, 사도들의 대표인 베드로마저 체포하여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하지만 마침 무교절이 시작되었던 시기라, 그때는 죽이지 못하고 무교절이 끝나는 날에 처형하려고 그를 감옥에 가두워 놓는다. 

 

2. 베드로를 처형하기 하루 전날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런데 베드로를 처형하려고 하던 전날 밤,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두 군사들 틈에 두 쇠사슬로 묶인 채 잠들어 있던 베드로에게 주께서 보낸 천사가 찾아간 것이다. 그러자 쇠사슬들이 베드로의 손에서 풀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베드로가 신발끈을 묶고 겉옷을 두르고 천사를 따라 나섰을 때에, 쇠창살 문은 저절로 열렸고 군사들 앞으로 지나갔으나 병사들이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하여 첫째와 둘째 파수를 통과하여 도시 안으로 연결된 쇠문 앞에 도착했을 때에 또다시 쇠문이 또한 저절로 열리는 것이 아닌가? 이에 천사는 떠나갔고, 쇠문을 나온 뒤에 베드로는 그제서야 하나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보내어 헤롯 왕과 유대인들의 손에서 자신을 구출해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는 곧바로 기도하고 있는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의 집으로 간다. 

 

3. 베드로를 본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어떤 반응이었는가?

  베드로가 마리아의 집에 당도하여 문을 두드렸을 때에 '로데'라고 하는 여자 아이가 베드로의 목소리를 듣고 너무나 기뻐한 나머지 문도 열어주지 않은채 안에서 기도하고 있는 이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그들은 그 아이를 향해 말했다. "네가 미쳤구나" 이는 베드로가 올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 아이가 확신있게 말하자, 그들은 "그러면 그의 천사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 두드리는 소리는 계속되었다. 그러자 문을 열어주게 되는데 거기에는 베드로가 와 있었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너무나 놀라게 된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들에게 손을 휘저으며 조용하라고 한 뒤,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해 주었고, 이와 같은 사실을 야고보(예수님의 친동생)과 형제들에게 알려주라고 전하고는 그곳을 빠져나간다. 그리고 딴 장소로 이동한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여자 아이로부터 베드로의 탈옥소식을 들었을 때의 그들의 반응이었다. 그들은 처음에 베드로와 탈옥해서 와 있다고 하는 여자 아이의 말을 들었을 때에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치부해버렸다. 아니 사실 그동안 무엇 때문에 함께 모여 그곳에서 기도하고 있었는가? 그런데 정작 베드로와 감옥에서 빠져나와 거기에 있다고 하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렇다. 우리도 우리가 기도해놓고도 기도한 것을 믿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의 연약함에 용서를 빈다. 그리하여 이제는 사도들마저 사방으로 흩어지게 된다. 그동안 스데반의 순교로 인하여, 일곱 집사들(헬라파 유대인들이었음)과 헬라파 유대인들이 흩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도들마저 헤롯 왕의 핍박을 피해 흩어져야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순교자 야고보를 제외한 모든 사도들은 각기 자신의 사명의 땅을 향하여 이동하게 된다. 

 

4. 베드로에게 왜 주님이 보낸 천사가 나타난 것인가?

  당시 베드로가 감옥에서 탈출할 방법이 과연 있었을까? 베드로는 두 명의 군사들 사이에서 손에 서로 쇠사슬로 묶힌 채 있었다. 그리고 쇠창살 밖에는 두 명의 군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 첫째 파수가 지키고 있었고 그 밖에는 또한 둘째 파수가 지키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곳을 뚫고 빠져나간다는 것을 애시당초 불가능했었다. 그러므로 교회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였다. 그것은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방법 곧 기도하는 것 뿐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2가지 종류의 기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는 하나님께 요청만 하는 기도의 경우다.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있거나 해야 할 일이 없을 때에 하는 기도다. 그러나 또 하나는 하나님께 요청하고 우리가 부지런히 찾아야 하는 기도가 있다. 예를 들어, 공부하는데 지혜를 달라고 하는 경우다. 이때에는 공부하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다면 그 다음부터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지혜를 달라고 공부할 때에 비로소 지혜가 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베드로의 경우는 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베드로를 구출해 내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더이상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그 기도에 응답해주신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당신 직접 부리는 천사를 파송하셨다. 천사는 능력이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사는 인간의 물리적인 법칙까지 초월하면서 일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주의 천사는 그의 쇠사슬을 풀 수 있었고 쇠창살문과 쇠문을 열어젖혔으며, 군사들의 눈을 보지 못하도록 혹은 그들로 하여금 잠들게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특히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도들의 대표자가 아닌가? 그에게는 앞으로 더 할 일이 있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그를 구출해내신 것이다. 

 

5. 왜 당시 야고보 사도는 순교를 당했지만 베드로 사도는 죽지 않고 구출받게 되었는가?

  왜 당시 동일한 주님의 사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야고보는 순교를 했지만 베드로는 구출을 받았는가? 우리는 때로는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너무 차별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모든 뜻을 다 헤아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럴 수는 없다. 그러나 성경에 나와있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두 사람의 갈 길이 달랐던 이유를 어느 정도는 찾아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첫째, 야고보의 순교는 너무나 갑작스럽게 발생한 일이지만 베드로의 경우는 교회가 기도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야고보의 경우는 너무나 갑작스럽게 발생한 일이라 기도할 틈도 없었지만, 베드로는 옥에 갇힌 후 그가 죽기전까지 얼마동안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에 교회가 함께 모여 기도할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교회의 기도로 인해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두 사람이 가야할 길이자 그들의 사명이 달랐기 때문이다. 모든 선교에는 사실 순교의 제물이 먼저 드려진다. 그래야 악한 자(사탄마귀)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빼내어 건져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도들 중에 야고보가 먼저 순교의 제물로 드려진 것이다. 그리하여 사도들은 전부 흩어져서 이방인 선교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 야고보의 사명은 순교의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었고, 베드로는 더 많이 이방인 선교까지 감당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한낱 참새가 죽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되지 않는데, 어찌 사도의 죽음이 우연히 그리고 갑자기 발생할 수 있겠는가? 야고보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따라 주님나라에 들어갈 때가 되어서 먼저 하늘나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셋째, 자기들이 했던 말들 속에서도 약간의 하나님의 예정하심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야고보와 요한은 사실 성질이 급했고 욕심이 많은 제자들이었다. 그래서 처음 주님께서 그들에게는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까지 붙어줄 정도였다(막3:17). 그런데 주님께서 공생애를 마치고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간다고 했을 때, 그들은 자신의 어머니를 통하여 주님의 나라가 도래하면 자기들을 좌우편에 앉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주님의 좌우편에 앉게 되는 일은 아버지께서 행하실이라고 하시면서, 그것보다도 먼저 주님이 마시는 잔을 마시고 주님이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는지를 그들에게 물어본다. 그러자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여기서 '잔'과 '세례'는 고난의 잔이자 죽음의 세례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던 순간에 그들은 어떻게 했는가? 동생 요한은 끝까지 주님을 지켰지만 형 야고보는 도망치고 만다. 그리하여 야고보는 죽음의 세례를 먼저 받은 것이며, 요한은 이미 바쳐진 자이므로 가장 늦게까지 살아남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는 "모든 사람이 다 주를 버릴지라도 자신은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말했었다(마26:33). 그리고 자신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마26:35). 그러므로 그는 언제든지 주님과 함께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그날도 감옥 안에서도 쿨쿨 잠을 잘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삶도 우리가 어떻게 말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기왕이면 우리도 주님 나라의 일을 열심히 감당하다가, 밤에 잠자듯이 주님나라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기도해 보자. 죽음의 순간도 우리가 주님께 기도한대로 되어질 것이니 말이다. 

 

 

2022년 10월 07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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