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88) 초기 교회 성도들은 안식일에 모였는가 주일에 모였는가?(행20:7)_2022-12-27(화)

https://youtu.be/-PhXsRzrhHU [혹은 https://tv.naver.com/v/31930661 ]

1. 바울은 3차 전도여행 중 드로아에 언제 왔는가?

  바울이 3차 전도 여행 중에 에베소에서 3년간의 사역을 마치고 그곳을 떠나 수리아의 안디옥을 거쳐 예루살렘으로 복귀하던 중에, 바울은 잠깐 드로아에 들르게 된다. 그때 바울은 '그 주간의 첫날에' 떡을 떼기 위하여 함께 모이게 된다. 그렇다면, '그 주간의 첫날'은 어느 요일을 가리키는 것일까? 행20:7의 말씀을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안식일들의 첫[날]에'라고 되어 있다. 안식일은 주간의 일곱째 날로서 지금으로 치자면 토요일이므로, 토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이어지는 두 안식일 가운데, 첫째 날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날은 '주일'이라고 할 수 있다. 터툴리안의 제자였던 교부 키프리아누스(Cyprianus, A.D.200~258)는 그의 편지에서 진술하기를 주의 날은 안식일 다음에 온다고 하였다. 즉 “그림자와 예식으로서 앞서 주셨던 성결 의식인 유대의 육체의 할례가 제8일에는 정중히 준수되었으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써 진리 안에서 성취되었다. 그래서 제8일 즉 안식일 다음인 첫째 날은 주께서 다시 부활하신 날이 되었으며 또한 우리를 일으키시고 우리에게 신령한 할례를 베푸시니, 첫째 날이요 주의 날이니 모형 속에서 앞서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모형은 진리께서 오심으로써 끝이 난 동시에 신령한 할례가 우리에게 베풀어졌다”라고 했다. 그런데 안식교(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에서는 이 날도 여전히 토요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주장이다. 왜냐하면 첫째,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분명히 두 안식일들의 첫째 날이므로 토요일 다음날인 주일이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드로아 성도들은 이방인으로 구성된 그리스도인들이었기 때문에 굳이 안식일에 모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셋째, 이 날이 당시에는 일하는 일요일로서, 낮에는 일을 해야 했고 밤에는 모여 집회를 했기 때문이다(행20:7~12). 바울이 떡을 떼려고 곧 성찬식을 하고 하려고 드로아에서 그날(주일에) 낮이 아닌 밤에 저녁 집회를 연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하루 종일 일하고 온 유두고라 하는 청년(아마도 '종'이었을 것)이 지쳐서 졸다가 그만 3층 난간에서 떨어지고 만다. 그렇다. 그날은 일하는 날로서 당시에 일요일 곧 주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주일 저녁에 모인 것이다. 

 

2. 안식교에서는 왜 개신교인들도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우리나라에서는 이단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이단으로 분류하지 않고 있는 교단이 하나 있는데, 그들은 안식교(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라고 불린다. 그런데 이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단이다. 그들은 만약 성도가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고 주일을 지키면 사탄의 표시인 666표를 받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우상숭배의 표를 받은 대부분의 개신교인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 채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일은 태양신의 아들의 탄생일로서, 이 날(주일)을 지키면 태양신교를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우상숭배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들은 요한계시록 12:17의 말씀에 그것이 나와 있다고 한다. 

계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마지막 때에 용이 구원받을 하나님의 자녀들로 일컬어지는 여자의 남은 자손들을 핍박하게 될 것인데, 이들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고 있는 자'이자 그리고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라고 나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자들만이 참 성도가 되어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은 자라도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정말 그러한 뜻일까?

 

3. 안식교에서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켜야 한다는 말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안식교에서는 '하나님의 계명들'이란 곧 십계명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십계명 중에서 제4계명을 보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20:8)'고 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도 역시 유대인들처럼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신약에 들어와서 모든 의식법은 다 폐지되었지만 도덕법인 십계명만큼은 폐지되지 않았기 때문에, 안식일법은 계속해서 준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주장은 옳은 것인가? 이것이 맞는 해석인지에 관하여 우리는 2가지로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는 그것이 옳은 해석인지 성경적으로 풀어보아야 한다. 그리고 둘째로, 실제 초기 교회 성도들도 역시 역사적으로 안식일에 모여 예배드렸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면 답이 나올 것이다. 첫 번째는 다음 시간에 자세히 다룰 것이다. 오늘은 두 번째부터 살펴볼 것이다. 

 

4. 초기 교회 성도들은 과연 안식일에 모여 예배를 드렸는가? 아니면 주일에 모여 예배를 드렸는가?

  초기 교회 성도들이 언제 예배드렸는지에 관한 가장 빠른 기록은 역시 사도행전인데, 그중에서 오늘 읽었던 사도행전 20:7절의 말씀이 바로 그 말씀이다. 사도행전 20:7의 말씀을 헬라어에서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행20:7 그런데 안식일들의 첫날 안에서, 우리 자신들이 빵(떡)을 떼기 위하여 모이게 된 채 있을 때에, 바울이 이튿날에 떠나고자 작정하고 있으면서, 그가 그들에게 강론하고 있었다. 또한 그가 한밤중까지 말씀을 연장하고 있었다.

  그렇다. 사도행전의 기록에 의하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처음부터 주일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에 예배드렸다는 것은 사도행전의 기록 뿐인가? 아니다. 이 외에도 초기 교회 교부들이 남긴 기록들을 살펴보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처음부터 주일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는 것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첫째,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감독(A.D.35~107)은 "안식일은 이제 성수되지 아니하고, 대신 저들은 이제 주의 날에 자신들의 삶을 새롭게 한다"고 하였다. 둘째, 디다케(A.D.100년경)에서는 제3부 14장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주님의 주일마다 여러분은 모여서 빵(성찬)을 나누고 감사드리십시오. 그러나 그 전에 여러분의 범법들을 고백하여 여러분의 제사(예배)가 깨끗하게 되도록 하십시오". 이는 안식일의 다음날인 일요일 곧 주님이 부활하신 날에 성도들이 떡을 나누고(성찬식) 제사(예배)를 드렸다는 기록이다. 셋째, 저스틴(A.D.100~163)은 제1변증서에서 "주일이라고 불리는 날에 도시나 시골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 곳에 함께 모여 시간이 허락되는 만큼 사도들의 기록이나 선지자들의 글을 읽고 낭독자가 낭독을 마치면 사회자가 가르치며 이러한 말씀을 본받아 살기를 권한다. 그리고 사회자가 같은 방법으로 자기 능력에 따라 기도와 감사를 드리고 회중들은 아멘으로 화답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넷째, 바나바의 서신(A.D.130년경) 제13장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8일째 되는 날 즉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셨고, 제자들에게 자기 자신을 드러내 보인 뒤에 하늘로 올라간 그날을 기꺼이 지키는 것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5. 안식교의 구원론은 정말 올바른 것인가?

  그렇다면 안식교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님도 믿고 십계명도 지켜야 하는가? 즉 예수님도 믿으면서 안식일도 지켜야 하는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님을 믿고 회개함으로 구원받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것은 결국 천국 곧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는 2가지 것을 만족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나는 죄사함을 받아야 한다. 죄가 있는 상태에서 천국에 못 들어가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생명 곧 영생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천국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녀들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원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이뤄진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성령께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들어와서 내주하시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전에 지었던 죄들은 예수님의 피로 탕감받게 되며, 그때 이후에 짓는 죄들은 자백하여 용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구원받는 문제는 죄사함과 생명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우리가 십계명을 지킨다고 할지라도 십계명의 준수가 우리에게 죄사함을 가져다 주지도 아니하며, 생명을 주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믿고 십계명도 지켜야 한다는 안식교의 구원론은 잘못된 것이다. 다만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범죄는 여전히 십계명을 지키지 않았을 때에 생기는 것이므로, 성도들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며, 더 이상 죄짓지 않기 위해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것도 성령께서 우리가 십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이끌어 주시고 도와주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고로 안식교의 구원론은 잘못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2022년 12월 27일(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27) 안식일법은 지금도 유효한가 아니면 폐지되었는가?(창2:1~3)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oTMqq0r9kxM  [혹은 https://tv.naver.com/v/18671193  ]

 

1.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안식일법을 제정하셨나요?

  하나님께서 온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안식하셨습니다. 여기서 안식하셨다는 그날 쉬셨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엿새동안의 창조사역을 그치셨다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원문에 가까운 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 개역성경에서는 "마치시고...안식하셨다"고 되어 있는데, 히브리어원문에는 동사가 2개가 아니고 한 개입니다. 그러니 일곱째날에 하나님께서 그분이 만드신 일을 그치셨다고 해야 바른 해석입니다. 하지만 일을 마치시고 일곱째날에 안식하셨다고 번역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도 마치 쉼이 필요한 것처럼 해석해놓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안식일법은 언제 제정되었나요?

  그렇다면, 안식일법은 언제 제정되었습니까? 그것은 천지창조직후에 제정된 것이 아니라, 이때로부터 약 2,500년이 지난 시점, 곧 이스라엘민족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신광야를 지나 시내산에 도착했을 때에 제정된 것입니다(B.C.1446년). 

 

3. 하나님께서 안식일법을 제정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께서 안식일법을 제정하신 것은 일주일 중에 하루는 세상에서의 일을 그치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출20:8~11). 왜냐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들어가 살았으나 세상일을 그치고 하나님을 기억하는 시간을 갖지 못하다보니, 거의가 다 불신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인하여 애굽에서 구출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또다시 우상숭배의 죄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엿새동안에는 힘써 자기의 일을 행할 것이지만, 일곱째날에는 하나님께서 천지창조사역을 그치시고 그날을 되돌아보았던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도 그렇게 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날에는 일하지 말고 쉬라고 하신 것입니다. 

 

4. 안식일법은 지금도 유효한가요 폐지된 것인가요?

  안식일법은 사실 임시법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애굽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루를 쉬어서 그날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속의 사건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임시로 주어진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오심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와 모형이자 그림자로 주어진 안식일법은 폐지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실체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진짜 안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거로 사도바울도 율법은 약속하신 씨였던 예수께서 오시기 전까지만 있을 법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갈3:19). 결국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 가운데 도덕법(십계명법)을 제외한 의식법들 곧 안식일을 비롯한 절기법, 음식법, 정결법, 제사법은 다 폐지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의식법들은 장차 오실 메시야가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를 미리 알려준 모형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2:16-17) 그렇습니다. 구약의 "먹고 마시는 법"인 "음식법"이나다. "절기(유월절,무교절,초실절,칠칠절,나팔절,속죄일,초막절)나 초하루(월삭)이나 안식일 등은 장래 오실 메시야이신 예수님에 대한 그림자이기 때문에 이것을 안 지킨다고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기자도 말하기를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히10:1)"고 말했던 것입니다. 고로 제사법도 예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인하여 다 폐지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더이상 제사를 드리지 않고 예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5. 십계명은 지금도 지켜야 하나요?

  그렇다면, 의식법(절기법, 음식법, 정결법, 제사법)로서 아니라닌 도덕법으로서 주어진 십계명은 지금도 지켜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십계명 법은 폐지되었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산상수훈을 보면 예수께서 오셔서 십계명법을 한층 더 강화시키셨다는 것이 그것을 반증해줍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마음으로 음란한 생각만 가졌어도 그것은 이미 마음에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십계명 중의 제4계명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식일법은 레위기 23장에 읽어보면, 절기법에 속한 조항으로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것이 나의 절기들이니 너희가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의 날이라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레23:2-3). 그렇습니다. 레위기 23장에 보면, 안식일법은 절기법에 속한 의식법입니다. 그런데 십계명의 제4계명에 보면, 거기에도 나오기 때문에, 안식일법은 절기법에 속한 법이면서도 동시에 도덕법에도 속한 아주 특별한 율법이라는 것입니다. 

출20:8-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그런데 의식법으로서 절기법의 하나인 안식일법은 이미 폐지되었다는 것입니다(호2:11, 갈4:9~11, 골2:16~17). 그러므로 최초 교회 회의였던 예루살렘공회(A.D.49~50)에서도,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준수했으면 하고 결의한 사항 중에서도 안식일법은 언급되지 않았던 것입니다(행15:19,28).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참된 안식을 주시고 있기 때문입니다(마11:28~30). 고로 우리는 의식법으로서 "날과 달과 해"를 지키는 안식일법은 이미 폐지되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에 하루는 세상 모든 일을 그치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한다고 십계명은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믿는 자라도 애굽에 들어간 뒤 불신자가 되어버린 이스라엘 백성처럼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개신교인들은 우리자신에게 참된 안식을 가져다 준 예수님을 기억하고, 그분이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그날에 세상 모든 일을 그치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창조와 구속의 은총에 감사드리고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믿고 안식일도 지켜야 한다는 논리는 맞지 않는 주장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의식법들은 이미 예수 안에서 완성된 상태에 기 때무입니다. 그런데 왜 의식법으로서 안식일을 지키여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것을 통해 자기의 의를 드러내기를 원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아무런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고로 사도바울은 각자가 예배드리기에 좋은 날을 선택하여 그날 예배드리면 된다고 했습니다(롬14:5~6). 그런데 아무래도 그날이 쉬는 날이면 모두가 훨씬 더 잘 모일 수 있기에, 개신교인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이자 쉬는 날인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혹 시대가 변하여, 지금의 일요일이 아니라 다른 날에 훨씬 잘 모일 수 있다면 교회는 그날을 새로 정하여 그날에 모여 예배하면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일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세상일을 그치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날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2021년 02월 25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율법의 3가지 종류는 무엇이며 예수믿는 자들에게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계14:6~12)_2019-07-19(금) 

https://youtu.be/sedG8SiU-JU

 


1. 예수믿는 자들은 우상숭배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종교개혁이후에 태어난 믿음의 세대들 가운데에는 예수님만 믿으면 혹시 죄를 지어도 구원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나하면 자신이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공고로 구원받는 것이며, 예수님의 사랑은 끝이 없으며, 그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끊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과대해석이 들어가 있습니다. 우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결코 자신의 행위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던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이 끝이 없으며, 그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끊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우리의 구원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하심도 심판 직전까지 유효한 것일 뿐일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심판의 하나님의 오시기 때문에 그날 긍휼을 입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회개해온 자에게 긍휼함이 주어지는 것이지 믿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심판 때에 자비를 베풀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있는 자라 할지라도 우상을 숭배하면 그 죄 때문에 천국에 못 들거가게 됩니다. 우상숭배한 죄를 끊든지 아니면 우상숭배한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2. 마지막 때에 전하는 세 천사의 기별은 대체 무엇입니까?(계14:6~12)

  천사가 불게 될 일곱개의 나팔들 가운데 마지막 일곱번째 나팔이 울려퍼지게 되면, 하나님의 구속의 시간표는 막을 내리게 될 것입니다(계11:15~18). 그러므로 그때가 되기 전에 믿는 자들이 주의해야 할 3가지 것들을 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면서 큰 음성으로 외쳤습니다. 첫째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만 경배하라는 것이었습니다(계14:6~7). 둘째, 배교한 큰 성 바벨론은 반드시 무너질 것이니, 결코 음녀가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계14:8). 오직 일편단심 예수님만 구원자로 믿고 따라가는 정결한 처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결코 사탄과 그의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탄마귀와 그의 우상들 그리고 그의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세세토록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고난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 천사의 기별입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첫째, 너는 하나님만 섬기라. 둘째, 예수만 구원자임을 믿고 그분만을 따라가라. 셋째. 결코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입니다.


3. 안식교(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에서는 세 천사의 기별을 어떻게 왜곡하고 있습니까?

  그렇지만 안식교에서는 세 천사의 기별을 이용하여 안식일준수를 목숨처럼 외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 천사의 기별 끝에 나오는 계14:12의 말씀을 왜곡하여 주입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은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14:12)"라고 되어 있습닏.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계명"이 바로 안식일을 준수라고 해석합입니다. 그리고 이 규정을 콘스탄틴 대제가 바꾸어버렸기 때문에(안식일을 폐지하고 주일을 지키라고 했다고 하면서) 그가 666표를 받은 자이며, 오늘날에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고 주일을 지키는 모든 자들은 다 666표를 받은 자들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시대에 안식일을 지키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란 결국 여자의 남은 자손으로서, 오직 안식교인들만 있을 것이라고 외칩니다(계12:17). 그러나 이것은 크게 왜곡된 성경해석입니다. 왜냐하면 첫째, 계14:12에 나오는 "하나님의 계명"은 복수형태로서 "하나님의 계명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오늘날 지켜야 할 것은 안식일계명만이 아니라 열가지의 모든 계명을 다 가리킵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 자라도 우상숭배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세 천사의 기별에서처럼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던져져서 거기서 세세토록 고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이 구원의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조건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막1:15). 그런데 만약 하나님의 계명인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예수믿는 자라도 그에게는 복이 오지 않을 것이며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신11:26~28). 그것이 죄이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이 바로 "죄"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저주의 시작은 비록 질병과 재앙이겠지만, 저주의 끝은 파멸 곧 사망이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구원받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4. 예수믿는 자들에게 십계명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십계명은 예수믿는 자들에게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 것일까요? 십계명은 영원한 법으로서 예수께서 오셔셨지만 결코 폐지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한층 더 강화시켰습니다. 음욕의 눈을 가지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며, 형제에 대해 욕하는 자는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살인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계명은 믿는 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요? 우선 그것이 구원의 기준은 아닙니다. 구원의 기준은 믿음과 회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십계명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십계명은 3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로, 십계명은 장차 모든 사람들의 심판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 때에 이것으로 죄인인지 죄인이 아닌지를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계21:8). 이때 심판의 기준은 믿음이 아니라 확실히 행위입니다. 둘째, 십계명준수는 자신이 지금 진짜 예수님을 믿고있고 회개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척도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믿은지 오래 되었어도, 자신이 여전히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사랑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주일을 범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열매없는 신앙인입니다. 그런 자는 결국 심판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셋째, 십계명준수는 만약 그를 구원받은 자라고 가정해본다면 그것은 천국에서 상급이 될 것입니다. 고로 예수믿는 자라도 이런 이유 때문에 십계명을 준수하는 일에 많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지켜서 천국가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우리는 이 땅에서 살 때에 복을 받지 못하고 저주를 받을 것이고, 이러한 죄를 끝내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천국에 못들어가고 말 것입니다.


5. 구약의 율법에서 십계명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으며, 그것 중에서 안식일준수는 오늘날에도 유효합니까?

  구약의 율법은 크게 3가지입니다. 율법에는 도덕법과 의식법과 재판법이 있습니다. 이중에서 "도덕법"은 십계명을 가리키며 이것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계속해서 유효한 법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의식법"이 있는데, 이것으로는 제사법, 절기법, 정결법, 음식법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의식법은 예수님이 누군지 알려주는 예표들로서, 예수께서 오셔서 성취하심으로 다 폐지된 것들입니다. 고로, 우리는 더이상 구약시대처럼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할례를 받지 않아도, 유월절을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예수께서 오셔서 이 모든 것을 성취하심으로 완성해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판법"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 재판해주는 법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안식일준수법"입니다. 안식을 규정은 절기법 속에도 들어있으면서(레23장), 동시에 도덕법인 십계명에 들어있습니다(출10장,신5장). 결론적으로 볼 때, 오늘날 안식일규정은 의식법으로서는 이미 폐지되었습니다(갈4:9~11,골2:16, 엡2:15). 하지만 도덕법으로서 안식일 규정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계12:17, 4:12). 그러므로 일주일 중에서 하루는 세상 모든 일을 그치고 하나님께 나아와 영적인 일을 도모해야 합니다. 특히 예수께서 일요일에 부활하셨으니 그날만이라도 주님께 나와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자신의 영혼을 위해 영적인 양식을 먹고, 하나님만을 경배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날에 영적인 일을 하지 못한다면 그는 결국 회개하는 삶을 살지 못할 것이며, 영혼의 생명은 점점 더 약화되어가다가, 마침내 신앙마저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주일은 목숨처럼 성수할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2019년 7월 19일(금)

정병진목사



사람은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실수한 것을 또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도 잘못했다. 애굽에 내린 10가지재앙으로부터 보호받음, 장자죽음에서 살아남음,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넒, 물없고 양식을 구할 수 없는 사막에서 무려 40년을 살아남음과 같은 기적을 체험했는데도 불구하고, 모세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금새 우상숭배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금새 애굽에서 보고 섬겼던 금송아지우상을 만들어 섬셨던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죽여 없애버리려고 하셨다. 하지만 2번씩이나 모세의 생명을 건 중보기도 덕분에, 그들은 지은 죄들을 용서받았고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떠나지 않으셨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체결하려고 하신다. 하지만 언약을 재체결에 앞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일을 지시하신다. 만약 그들이 이 두 가지를 잊어버린다면 그들은 앞으로 다시 체결할 언약도 무효화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언약마저 무효화시켜버리는 2가지 중요한 일은 대체 무엇인가? 한 번 맺은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과연 무엇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가? 오늘은 그것을 살펴보자.

2019-05-15(수) 수요기도회
제목: 출애굽기강해(35) 시내산 언약의 재체결 및 모세의 수건(출34:10~35:3)
https://youtu.be/gZQQ9X_ggG0


1. 들어가며

  하나님의 놀랍고도 초자연적인 이적으로 인하여 시내산에 도착했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지만 모세가 자리를 잠시 비우자, 그만 송아지우상숭배에 빠지게 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아예 쓸어서 없애버리시겠다고 하신다. 하지만 모세의 간절한 중보기도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지 않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그 민족과 끝까지 동행하실 것이라고 약속까지 해주셨다. 그러자 이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민족과 맺었던 언약을 다시 체결해야하자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모세는 40일간 금식하게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시내산언약의 재체결 전에 이스라엘 민족이 결단해야 할 사항을 듣게 된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첫번째 언약체결이 깨어진 이후, 다시 체결할 언약식에 이스라엘 민족이 가장 염두해 두어야 할 사항이 있다면 그것은 대체 무엇일까?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 무엇이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것은 크게는 2가지이며, 그것을 이루기 위한 실행방법 또한 한 가지가 등장한다. 그렇다.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성도가 하나님과 깨어지지 않은 언약관계를 통해 천국에서 기업을 누리려면 어떤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는 것인가? 오늘은 그것을 알아보자.

 

2.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 재계약을 체결하기에 앞서, 가장 염두해야 할 것은 무엇이었는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두번째 시내산 언약을 체결하려 하실 때에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이스라엘 민족은 이제부터라도 더이상 이방신이나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을 구원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고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실천방안으로 안식일준수를 다시 한 번 강조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두번째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체결하실 때에, 왜 앞으로 이방신이나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라고 다시 한 번 당부하셨을까? 그것은 하나님과 맺은 모든 언약을 파괴시키고, 하나님이 주실 복을 상실케 하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끌어오르는 분노를 삭일 방도가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린 10가지 재앙을 시작으로 얼마나 많은 기적들과 초자연적인 능력들을 보게 하셨고 겪게 하셨는가?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모두 무효화시키는 행동을 저질렀으니, 그것은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섬겼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앞으로 들어가게 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는 첫째로, 절대 그 땅의 주민들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고 했다(출34:12,15).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에게 올무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둘째, 그들이 섬기는 제단을 헐고 그들이 석상을 파괴하고 그들의 아세라상마저 찍어서 없애버리라고 하셨다(출34:13). 그리고 셋째, 하나님 이외의 다른 신들에게 절대 절하지 말라고 했다(출34:14). 왜냐하면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넷째, 그들과 절대 통혼하지 말라고 하셨다(출34:16). 그들과 통혼하게 되면 분명히 그들의 아들과 아들이 이스라엘의 아들과 딸을 미혹하여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게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출34:16). 다섯째,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결코 신상들을 부어서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출34:17). 그렇다. 하나님께서 다시 언약을 체결하려고 하실 때에 가장 신경쓴 것은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우상숭배하면 하나님을 믿었던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3대 절기들(무교절, 초실절, 수장절)과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시며, 초태생과 첫열매를 왜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푼 구속의 은총과 자연의 은총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은 감사를 아는 존재다. 그러므로 자신이 받은 은혜가 있으면 꼭 그것에 반응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런데도 그것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관계가 파괴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죄가 누룩처럼 들어와 떡을 전부 부풀게 하여 타락시킬 것이 너무나 확실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10명의 문둥병자를 고쳐주시고는 한 사람만 돌아와 사례했을 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다. 주님께 감사할 것이 자신의 손에 없다면, 엎드려 절하기만 해도 된다. 꼭 무엇인가를 드릴 것이 있어야만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절기는 감사를 표현하는 아주 좋은 기회다. 그러므로 절기 때에는 대부분 그날이나 그날의 시자과 끝을 성회의 날로 잡아 그날에 안식하라고 하셨다. 절기는 일종의 특별한 안식일인 셈이다. 그리고 곡식이나 나무를 심어 열매를 거두게 될 때면, 반드시 첫 열매이나 초태생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다. 그것이 감사를 잊지 않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짐승이나 사람의 첫 것은 반드시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다. 그것은 그들에게 베푸신 구속의 은총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민족이 애굽에서 탈출할 때에 애굽에 있는 모든 첫 것은 그것이 짐승이든지 사람이든지 다 죽었지만 오직 어린양의 피를 발랐던 이스라엘의 집은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첫 것 곧 동물이 초태생과 사람의 장자는 다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것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다. 하지만 장자를 바칠 수는 없으니, 장자를 바치는 대신에 레위인을 바치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레위인은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을 대신 섬기는 자가 되었다. 혹여 장자의 숫자보다 레위인이 숫자가 많을 때에는 속전을 내라고 하셨다. 그만큼 마땅히 죽었어야 할 사람이 살게 된 것에 대해 감사를 잊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심지어 부정한 짐승로 알려진 나귀의 초태생일지라도 깨끗한 짐승인 어린양으로 대속하여 바치라고 말씀하셨다(출34:20).

 

3. 우상을 숭배하지 않고 감사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특별히 강조하신 조항은 무엇인가?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제 또다시 이스라엘에게 계약의 돌비인 십계명을 모세에게 주셨다. 하지만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언제 다시 돌변하여 하나님을 배반한 채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자연과 구속의 은총을 잊어버릴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안식일을 준수명령 꺼내서 그것의 준수를 매우 강조하셨다. 이때에는 처음 십계명을 주실 때에 주신 안식일주수에 관한 말씀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정말로 꼭 지켜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안식일준수에 대한 세부조항으로 첫째, 그날이 밭 갈 때이든지 추수할 때든지 무조건 그날에는 쉬어야 한다고 하셨다(출34:21). 둘째, 그날에는 일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만약 그 날에 일하는 자가 있다면 그를 반드시 죽이라고 하셨다. 그런 자는 살해해도 좋다고 명령하신 것이다. 안식일 준수가 얼마나 엄중한 명령인지를 여기서 알 수 있다. 그리고 셋째, 그 날에는 자기의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라고 하셨다(출35:3). 오직 모든 것을 그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하라고 하신 것이다. 특별히 "성회"로 모이는 절기의 안식일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주간의 안식일을 더욱 더 철저히 지키라고 말씀하셨다(출35:2). 이스라엘에게는 사실 안식일이 두 종류가 있었다. 한 가지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주간의 안식일"이 있었는데 이것은 창조직후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절기의 안식일"이 있는데, 이것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 할 절기의 안식일로서, 절기의 당일이나 절기의 처음과 마지막날에 안식하는 안식일이었다. 이러한 절기의 안식일에는 무교절의 첫날과 일곱째날(마지막날), 칠칠절(맥추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의 첫날과 여덟째날로서 총 7가지가 있었다. 참고로 예수께서 돌아가시던 해의 유월절날이 있던 때에는 무교절의 안식일과 더불어 주간의 안식일이 하루씩 이어서 한 주간에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초실절에 예수께서 부활하신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요나의 표적처럼 똑같이 3일3야를 무덤 속에 있다가 부활하시게 된다.

 

4. 40일간 금식하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돌아온 모세가 백성들에게 했던 행동은 무엇이었는가?

  그런데 40일동안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만나고 돌아온 모세에게 이상한 현상이 있었다. 그것은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는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무려 40일동안이나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않고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만을 만나 기도하다보니, 하나님의 어떠하심이 금새 모세의 피부와 살에도 박히게 된 것이다. 특히 얼굴에 가득했다. 그러나 정작 모세는 그러한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자 백성들은 모세조차도 보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자 아론과 백성의 장로들이 먼저 모세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이어서 백성들도 모세를 만날 수가 있었다. 이제 이러한 사실을 간파한 모세는 자기의 얼굴의 빛남을 통해서 자신을 혹 더 자랑하게 되거나 백성들이 자신을 신격화하지 않도록 수건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웠다. 그리고는 진영바깥에 쳐둔 회막 안으로 들어갈 때에는 수건을 벗고 들어갔다. 하지만 다시 나올 때에는 수건으로 얼굴을 싸고 나왔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모세의 얼굴은 점차 광채가 사라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만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성들은 모세가 수건을 쓰고 있으면,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오는 것이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율법의 한계와 단점을 잘 파악하고 있던 바울은 고후3장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율법 특히 의식법의 준수를 통해 의롭다함을 얻고 경건함을 얻고자 하는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루 빨리 모세의 수건을 걷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진정한 얼굴의 빛남은 이제는 믿음과 성령충만을 통해서 표현된다는 것이다. 즉 의식법들의 준수가 사람을 경건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믿을 때에 성전삼고 자기들 안에 들어온 성령께서 자신을 빛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일시적으로 빛을 비추던 율법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믿는 자들이 율법으로 돌아가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자꾸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야 모세의 수건이 자기의 얼굴에서 벗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율법의 궁극적인 완성이자 본질인 예수님을 접촉하고 그분의 성령을 접촉하면 접촉할수록 일시적인 광채를 지닌 율법에서 벗어나 완전한 성령의 법 아래에 들어온다고 말한 것이다. 사실 예수님 당시만 해도 얼마나 많은 누룩 곧 종교지도자의 가르침들이 사람들을 붙잡고 있었는지 모른다(마16:11~12). 그들은 율법말씀을 이용해 백성의 어른이자 재판장 그리고 중보자의 역할까지 자인하고 있었으나, 사실 백성들은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아니 오히려 율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희미해져가는 율법의 말씀에서 벗어나, 참 율법의 제정자요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후3장에서 바울이 말하는 새로운 언약 안에서의 섬김이다.

 

5. 나오며

  무엇이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파기하는 요소가 되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십계명 중에서 1계명과 2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과의 언약파괴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다시 언약을 체결하려고 준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신당부하기를, 절대 우상을 만들지도 섬기기도 말라고 하셨다. 우상숭배는 하나님과 맺었던 모든 언약을 파기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과 초자연적인 은총을 힘입었다고 한다면 받은 은혜에 반드시 감사하라고도 말씀하셨다. 그래야 하나님과의 언약이 파기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 하나를 제시해 주었으니 그것은 바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특별히 "주간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엿새동안에 힘써 일해야 하지만 일곱째날이 되면 모든 것을 그치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우리 인간에게 속죄함을 주시고 소망을 안겨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을 구약시대로 치자면, 안식일준수이지만 예수님의 부활승천이후에는 "주일성수"인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예수님과 맺었던 수많은 약속들이 무효화되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반으시 주일을 성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는 하나님의 복은 더이상 오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건투를 빈다.

 

2019년 5월 15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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