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은 세상의 유혹을 어떻게 이길 수 있으며 또한 악한 자 사탄마귀를 어떻게 이길 수가 있는가? 그런데 사도 요한은 거듭난 성도들이 악한 사탄마귀를 이기는 것까지 목표를 두고 요한일서의 책을 집필하였다. 그래서 거듭나서 하나님의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기본적으로 형제를 사랑해야 하겠지만, 세상과 마귀는 정복해야 한다는 것을 꼭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세상과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2021-12-29(수) 수요기도회

제목: 요한서신강해(07) 세상과 그리고 마귀를 이기는 승리의 요건은 무엇인가?(요일5:4~2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9oJxCxVEGRs [혹은 https://tv.naver.com/v/24416355 ]

 

1. 들어가며

  요한일서는 초신자용 양육교재와 비슷하며, 초기영지주의 이단예방을 위한 좋은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이 책이 신앙의 기본요소를 갖춘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그분과 교제하는 가운데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요한일서의 책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은 요한일서의 맨 마지막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성도가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는지 그리고 사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말씀다. 이 말씀을 올바로 깨닫기 위해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의 의미와, 내가 생명을 자기고 있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아무쪼록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세상과 마귀와 더불어 싸우는 영적 싸움에서 우리 모든 성도들이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2. 요한일서 5:4~21의 위치는?

  요한일서는 구분짓기가 상당히 어렵다. 왜냐하면 같은 주제들이 반복해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굳이 요한일서를 구분한다면,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제일 처음 1~2장은 하나님과의 교제(코이노니아)라는 관점에서 성도의 신앙과 삶을 언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아버지와 아들과의 교제를 방해하는 놈이 있다고 하면서 그것을 '죄'라고 정의하고 그 죄는 오직 자백함으로 용서받을 서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모든 성도는 결국에는 죄짓지 않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은 자라도 계속해서 죄를 짓게 되면 그는 마귀에게 속해버리기 때문이다. 이어서 3:1~4:6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적인 관점에서 성도의 합당한 신앙과 생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씨 곧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자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자녀는 형제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4:7~5:3의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여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면서, 이것이 없으면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5:4~21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어떤 능력을 발휘하는지를 설명해준다. 사도 요한은 이 부분에서 성도란 하나님께로부 난 자들인데 이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는 자로서, 이들이 곧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사용하여 세상을 이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참 하나님이시며 영생이신 예수님을 자기 안에 모시는 자는 사탄마귀도 건드릴 수 없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마귀에 대해서 승리하는 비결을 이 부분이 소개해주고 있는 것이다. 

 

3. 세상을 이기는 성도는 어느 정도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가?

  사도요한은 요한일서를 기록하면서 요한일서를 기록한 목적을 몇 가지로 소개하는데, 그 중에서 신앙의 성숙도를 알려주는 부분이 있다. 사도 요한은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사람을 칭하는 호칭을 통해 알려준다(요일2:12~14). 거기에 보면, 성도들에 관한 호칭이 3~4자기 정도가 나온다. 그것들은 '자녀들' 혹은 '아이들'이 있고, '청년들'과 '아비들'이 있다(요일2:12~14). 여기서 '자녀들'이란 예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을 아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아이들'은 아버지가 누군지를 아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아비들은 태초부터 계신 이가 누군지를 아는 자들이다. 그렇다면 '태초부터 계신 이"는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14에서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더 자세히 언급할 것이다. 그리고 '청년들'이라는 호칭이 등장하는데 이는 영적으로 강한 자들로서 영적 무기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여 이 세상에서 활동하고 있는 악한 자 곧 사탄마귀를 물리치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세상을 이기는 성도란 어린아이의 단계를 넘어선 이들을 가리키는데, 이들 모두는 이미 회개하여 죄사함을 실천하고 있는 자들을 넘어서서 죄를 짓게 만드는 마귀 곧 악한 자 자체를 대적하는 성도들을 가리킨다.

 

4. 성도들이 꼭 이겨야 할 2가지 대상은 무엇인가?

  사도 요한은 성도들이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을 요한일서 5:4~21에서 다음과 같이 2가지로 언급한다. 그 중의 하나는 '세상'이고, 또 하나는 '악한 자' 곧 '사탄마귀'다. 무릇 성도라면 세상을 이겨야 하고 사탄마귀를 이겨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도가 세상이나 혹은 마귀는 어떻게 이길 수가 있는가? 그때 사용하는 무기이자 방편은 바로 우리의 '믿음'이다. 영적인 세계에서 승리하는 비결이 바로 '믿음'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도 예수께서 누구신지에 관한 믿음을 가지고서 말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세상을 이기는 믿음에 관하여서 요한일서 5:4~17절에서 언급을 하고, 이어서 악한 자 곧 사탄마귀를 이기는 믿음에 관하여서는 요한일서 5:18~21에서 언급을 한다. 

 

5. 어떤 성도가 세상을 이길 수 있는가?

  그렇다면 성도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 어떻게 할 때에 세상을 이길 수 있는가? 여기서에 언급된 '세상'이라는 단어는 이미 요한일서 2:16~17에서 말했던  바로 그 단어로서, 성도들로 하여금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빠지게 하는 것들을 가리킨다. 즉 '세상'이란 하나님을 대적할 뿐더러 사탄마귀의 포로가 되어 있는 모든 것을 이 세상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그럼 왜 사람들은 이 세상에 빠지는 것인가? 그것은 세상이 사람들에게 주는 것들이 대단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에게 때로는 인기와 명예를 안겨주기도 하고, 칭찬과 부귀를 안겨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지만 이 세상의 유혹을 잘 이겨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자들이다. 그런데 요한 사도는 이 세상의 본질이 바로 사탄 마귀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이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해(놓여) 있다"고 말한다(요일5:19). 그러므로 성도들은 비록 이 세상에 살더라도 어찌하든지 세상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때 성도는 세상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고 또한 이길 수가 있는가? 그것에 대해 사도 요한은 오직 한 가지 조건만 충족시키면 된다고 하였다. 그것은 곧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는 것이라고 하였다(요일5:5). 한 마디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세상을 이기게 해 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는 자가 하나님으로부터 거듭 태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태어난 성도가 또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6.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사도 요한은 대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용어를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있길래,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자가 세상을 이긴다고 말하는 것인가? 그것은 요한일서에서도 사도 요한이 답하고 있지만,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에 가면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요한일서에서 핵심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곧 예수께서 하나님이라는 뜻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 것은 그분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분을 지칭할 때에 그렇게 사용한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나타내신 것이라는 말한다. 즉 나타난 하나님이 곧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러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오직 한 분으로서 여호와만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또 다른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수용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 속에 하나님은 언제는 영이신 하나님이었던 것이지, 육체를 입고 있는 사람이라고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을 때에, 당시 유대인들은 어떻게 사람인 주제에 자기를 하나님으로 빙자하여 말하느냐면서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고소하여 결국 십자가에서 죽게 만든다. 그들의 생각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한 것은 그분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분은 하나님으로 나오셨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사람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기에, 자기자신을 아들이라고 늘 칭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해야 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동시존재가 가능한 분이시므로, 하나님은 아들로도 계시고 그때부터는 아버지로도 함께 계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아들로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나타나셨을 때에는, 육체를 입지 않는 신성한 하나님을 가리켜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분이 예수님을 이 땅에 파송하였고 사람의 태를 빌려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게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으려 할 때에 조심할 것은 그분이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예수를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것은 그분만이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라고 믿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는 자가 있다면 그는 얼마든지 세상을 이길 수 있으며 사탄마귀도 이길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7.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신 것을 증거해 주는 3가지가 있다고 말한다(요일5:6~9). 그리고 세 가지는 오직 한 가지 사실을 증언하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곧 이 땅에 보내어진 육체를 입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이 바로 세 가지 증거 곧 '물'과 '피'와 '그영(보혜사 성령)'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물과 피와 성령이 어떤 것이기에, 이 셋은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거해주는가? 사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는 것을 증거해 주는 것은 둘이다. 그중에 하나는 '사람들의 증거'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증거'가 있다. 그중에 사람들의 증거란 예수님이 육체를 입고 있었으나 그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았던 자들의 증거를 가리킨다. 그런데 그들 중의 한 명이었던 사도 요한이 지금 그 증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요일1:1-2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그런데 오늘날 이러한 증거를 직접 눈으로 보았던 이들은 죽고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증거 이외에 또다른 증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증거다. 그것이 바로 '물'과 '피'와 '성령'이라는 것이다. 왜나하면 지금까지 이 지구상에서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오셨다가 가셨다는 것을 증거하는 증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물'과 '피'와 '성령'이기 때문이다. 이중에서 '물'과 '피'는 예수께서 육체를 입으실 때 취하신 인성의 일부분이다. 그분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기에, 그때 물질세계에 속한 것을 취하셨다. 그것이 바로 그분의 육체인 것이다. 그런데 그분의 육체는 죽고 부활하신 후에 그 몸을 가지고 승천하심으로 그 몸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 그렇지만 그분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물과 피는 여전히 이 세상에 남아있는 것이다. 그것은 영원한 말씀이 육신이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승천하셨던 예수께서는 하늘에 가셔서 그분이 이 세상에 육체를 가지고 오셨으며, 이 육체를 통하여 인류의 죄를 속했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 그분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오직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증언해주시고 있다(요15:26). 그리고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시기도 하신다(요14:26). 그러므로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 바로 '물'과 '피'와 '성령'인 것이다. 

 

8.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영접하는 자들 속에는 누구든지 영원한 생명이 들어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에 육체를 입으신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에서다. 그분이 직접 인류의 죄를 대신할 피를 흘리시고 죽으시기 위함이었다. 이는 피가 죄를 속하기 때문이다(히9:22). 그리고 죽음이 인류가 범죄한 죄값이기 때문이다(롬6:23). 그런데 인류의 죄를 속죄할 피는 더러운 피로서는 아니 되고, 깨끗한 피여야 했기 때문에 죄없으신 하나님께서 피흘릴 수 있는 사람으로 오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 가지고 오셨던 것들 중에 중요한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생명'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아들을 보내실 때에 그 속에 생명을 주어서 보내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은 이 땅에 있는 유한한 생명과는 다르다.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생명이기 때문이요, 죽어도 다시 살 수 있는 부활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그는 아버지의 유일하신 아들이었다. 즉 독생자였던 것이다. 그분이 아버지의 생명,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유일한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께서 자신만을 가지고 있으려고 가지고 온 것이 아니다. 이것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 주려고 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 한 가운데서 생명나무를 심어놓으셨던 것이다. 그 열매를 따먹고 하나님의 생명을 취하라는것이다. 하지만 첫째 아담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예수께서 둘째 아담으로 그리고 마지막 아담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죽고 부할하신 후에 그는 생명을 나눠주시기 시작하셨는데, 그가 쓴 방법은 당신 대신에 보내신 보혜사 성령이시다. 보혜사 성령은  예수님의 또 다른 방식으로 오심으로서, 그분이 오실 때에는 영으로 오시지만 믿는 이들 속에 들어가는 방식으로 오시어 믿는 이들이 자기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갖게 만들어준다. 그러므로 보혜사 성령이 그 사람 속에 있는 한 하나님의 생명도 그 사람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이 죽은 날까지 생명을 지켜내야 한다. 어떤 일이 불어닥쳐도 그분을 부인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우리가 죽을 때에 생명을 가지고 오셨던 성령께서도 떠나버리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한 번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라면, 그 생명은 그가 죽는 날까지 떠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그 사람 속에 계속해서 함께 머물러 계시기 때문이다. 설령 죄를 범하였어도 성령은 그 안에 계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죽을 때에 주님을 부인하거나 죄를 지었는데도 회개하지 않았을 때에는 성령께서도 그 사람을 떠나가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곧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으로 믿고 영접한 자들 속에는 누구나 다 영생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말한다. "아들을 [자기 안에] 가지고 잇는 자는 생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을 가지고 있지 않는 자는 [자기안에]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다(요일5:12)"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고 있는 너희에게이 편지를 쓰는 것은 너희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요일5:13)". 

 

9. 내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믿는 이들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다는 말은 자기 속에 보혜사 성령을 모시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실 때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들어오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죽고 부활하셨던 예수님을 일컬어 '생명주는 영'이라고 하였다(고전15:45). 그분이 생명주는 영 곧 보혜사 성령이 되어서 우리 안에 거주하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생명이 들어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성령이 오심으로 나타나는 증상이 있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생명이나 성령이나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성질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것이 발현됨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증상을 통해서 확인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거듭나서 하나님의 영이 내 속에 들어오면 그 사람이 그 생명을 받게 되고 그러면 그 사람의 죽어있던 영이 말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방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생명은 성질이 곧 빛이요 진리이요 사랑이기 때문에, 이 생명을 받은 자는 어둠 안에 거하지 아니하며, 거짓말도 하지 아니하고, 형제를 미워하지 않게 된다. 이 생명을 받은 자는 빛 가운데 거하며, 진리를 말하며, 형제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요한 사도는 그가 하나님의 생명을 가졌다면 그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양자)가 되었으므로 그도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때부부터 구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혹시 죄를 범한 자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생명을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요일5:14~17). 그러나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한 자들을 위해서는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10. 죄들 중에 '사망에 이르는 죄'란 대체 어떤 것인가?

  성경에 나오는 말씀 중에서 난제가 하나 있다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망에 이르는 죄"다. 대체 사도 요한은 어떤 죄를 가리켜 사망에 이르는 죄라고 말했으며, 왜 그러한 죄를 지은 것에 대해서는 기도하라고 말하지 않겠노라고 말한 것인가? 어떤 사람은 성령훼방죄가 사망에 이르는 죄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이 말을 잘못 이해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하시는 역사를 마귀의 역사라고 치부하는 것을 성령훼방죄라고 해석하는 분들도 더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말하고 있는 '사망에 이르는 죄' 보다 더 원문상으로 정확히 말하면, '사망을 향하여 있는 죄'라는 그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도 요하니 '사망에 이르는 죄'는 결국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는 죄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사실 요한일서에서 사도 요한이 말씀하고 있는 '사망'은 '생명'의 반대말이며, 여기에서 '생명'은 아버지의 생명이요 영원한 생명이요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생명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사망도 역시 육체적인 사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사망을 뜻하는 것이라야 한다. 다시 말해, 영원한 죽음을 향하여 짓는 죄를 가리켜, '사망에 이르는 죄'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혼이 영원히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는 어떤 죄를 가리키는가? 그것은 크게 2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죄를 가리킨다. 한 마디로 '불신앙의 죄'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결국 죽을 때에 영원한 사망 안에 처하고 말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자였지만 영원한 사망에 처하는 죄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예수님을 한 번 믿었다면 어떤 죄를 짓더라도 그 죄와 상관없이 자신은 구원받는다고 믿는 죄를 가리킨다. 아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그가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계속해서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는면 그는 죽는 날 그이 속에 들어있는 성령께서 그를 떠나가실 것이다. 죄를 다 처리하지 못한 자까지 주님은 그를 천국에 억지로 데려가시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오직 죄를 청산한 자만 천국에 데려가신다. 그것을 위해서 주님은 사람이 되셨고 피흘려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회개를 통하여 자신의 죄를 씻어내지 못한 자는 결국 남게 된다. 죄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있는 자는 매일 자기의 죄를 책망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성령의 책망을 멀리하고 죄짓고 살아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성령이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신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분은 예수께서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늘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고 깨우쳐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우리 속에서 책망하시고 가르쳐주시는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만약 예수님을 믿은 자가 되었지만 성령의 책망을 끝끝내 받아들이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결국 구약의 사울왕처럼 버림을 받고 말 것이다. 이러한 죄가 바로 사망에 이르는 죄인 것이다. 

 

11. 악한 자 사탄을 이기는 자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사탄마귀를 '악한 자'라고 칭하였다. 그것도 다섯 번 나오는데, 다 사탄마귀를 지칭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요일2:13~14, 3:12, 5:18~19). 그는 선한 자가 아니라 악한 자다. 그는 선과 악을 알고 있지만 악에 물들어 있는 자다. 그는 악을 밥으로 먹고 사는 것이다. 그는 한 마디로 악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에게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잔인한 자다. 그는 냉혹한 자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한 자에게 속아넘어가 그의 영원히 갇혀 있을 감옥에 들어가면 아니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의 공격들 즉 유혹과 핍박을 이겨낼 수 있는가? 그런데 사실 우리 인간이 가진 능력과 지혜만으로는 사탄을 이길 수가 없다. 그는 하나님 다음으로 지혜롭고 미가엘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상당히 큰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육체를 지닌 우리 인간의 힘과 타락한 본성에 휩싸여 있는 우리 인간의 지혜만으로는 그를 이길 수가 없음을 먼저 알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탄마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다. 그는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다가 가셨지만 사탄마귀를 이기신 우리 주 예수님을 힘입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안에 계신 예수께서 사탄마귀보다 크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요일4:4). 사탄마귀는 피조물이고,우리 주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사탄마귀의 권세와 능력과 지혜는 제한적이지만 우리 주님은 무제한적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을 힘입는다면 그를 거뜬히 이길 수가 있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은 말한다. 하나님께로부터 거듭 태어난 성도는 하나님께서 나셨던 자인 예수께서 그를 지켜주기 때문에 악한 자가 그를 손댈 수 없다고 했다(요일5:18).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 안에 전능자께서 들어와 계시는데 어찌 그 놈이 함부로 우리에게 접근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한 가지 그 놈이 우리에 접근하고 우리 안에 들어오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죄를 짓게 될 때다(요일3:8).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는 것처럼 우리가 그에게 속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탄마귀를 이기셨던 예수님을 힘입기 위해서는 먼저 반드시 지은 죄를 회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회개하기만 하고 예수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면 우리는 거뜬히 사탄마귀를 이길 수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탄마귀는 광야의 시험에서 3대 0으로 예수님에게 판정패 당했으며, 3년반 뒤에 십자가에서 KO패 당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죄없는 예수님을 그가 죽였기 때문에, 그의 계급이 무장해제 당했기 때문이다. 그날 그러니까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날 마귀는 불법을 사용하여 그가 가진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예수님에게 넘기게 되었으며, 그때 그는 무저갱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는 무저갱에 갇혀 이 지상에 못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주님 재림 직전에 잠깐 풀려서 올라오는 경우를 제외하면 그는 지금도 지하세계에게 자신의 부하들은 올려보내 그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쫄 필요가 없다. 우리 속에 예수님이 계시는데, 그는 예수님 앞에서는 패배자이기 때문에 그는 힘을 잃어버리게 되어있다. 내 안에 사탄마귀보다 더 큰 이가 내주하고 있음을 믿으라. 그리고 담대히 맞서라. 마귀를 대적하면 그가 피한다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피하지 않으면 성령의 검으로 그의 머리를 찔러버리고 그의 몸을 싹뚝 잘라버리라(영의 세계에서 그렇게 명령하면 된다). 그가 우리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그는 계속해서 고통을 당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긴 싸움을 싸우고 있는 것이다. 

 

12. 예수 그리스도는 대체 누구신가?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를 마무리 지으면서 예수님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공개한다. 그분은 말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려지지만 실은 참 하나님이요 영생이라는 것이다(요일5:20). 그분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것불렸다는 것과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했다고 해서 그분은 하나님보다 못한 존재가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 그는 하나님과 동등한 다른 표현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공생애 마지막 무렵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고 하느냐?" 그렇다. 그분의 신성은 하나님이셨다. 다만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 신성한 그분이 육신을 입어 인성을 잠시 취하신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죽고 부활하실 때에 그분의 몸은 신성의 영역으로 다시 이끌어가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신성한 세계의 몸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그분이 비록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다가 가셨지만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낮춰 불러서는 아니 되겠기에 그분을 참 하나님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그분만이 영생 곧 영원한 생명이시다. 그러므로 공생애 마지막에 예수께서도 아버지께 기도하실 때에 이렇게 기도하셨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요17:3)" 그랬다. 하나님이 보내셨던 분, 그래서 자신을 아들이라고 칭하셨던 분은 하나님의 또다른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도 요한은 자기자신을 우상에게서 멀리할 것을 주문하였다(요일5:21). 그런데 이말을 헬라어 원문을 통해서 보면, 자기자신을 우상으로부터 지켜내라는 말인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우상숭배에 대해서 말하라고 하면 얼마나 많은 지면이 필요할지 모른다. 이 부분은 다른 설교를 참고하기를 바란다. 사도 요한은 초신자들에게는 이 부분까지 다 설명해 주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는 이 부분의 영역이 있다는 것을 언급한 것 같다. 그는 가장 높은 수준의 영성을 갖추고 있으니까 말이다. 

 

13. 나오며

  요한일서를 공부하다보면 느끼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정말 암송해야 할 요절이 많은 성경책이라는 점이다. 그만큼 이 책은 기초적인 영적인 진리들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요한일서는 자범죄 용서를 위한 자백의 중요성(요일1:9)을 말하고 있으며, 하나님은 '빛'이시고(요일1:5), '사랑'이라고 하는 정의하고 있다(요일4:8,16). 그리고 우리가 죄를 짓더라도 하늘에서 우리를 위한 대언자가 있다고 말한다(요일2;1). 그리고 이 세상 안에는 악한 자가 있어서  이 세상이 그 악한 자 안에 놓여 있으며(요일5:19), 악한 자가 사람들을 붙잡고 있는데, 그것들로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있다고 말한다(요일2:16).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이며(요일2:22),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라고 언급한다(요일4:2~3). 그러므로 아무 영이나 다 믿지 말고 오직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를 분별하라고 권면한다(요일4:1). 그리고 요한일서는 진리의 성령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요일5:6), 성령은 예수를 증거하는 영으로서(요일5:6), 그분의 가르침은 참되고 거짓이 없다고 말한다(요일2:27). 특히 요한일서는 우리가 대적해야 할 대상에 대해서도 알려주는데 그를 '악한 자'라고 부르며(요일2;13,14, 3;12, 요5:17,18), 죄를 짓게 되면 누구든지 그에게 속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요일3:8).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그의 일을 멸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한다(요일3:8). 아담의 장남 가인이 차남인 아벨을 쳐죽인 것도 그가 악한 자에게 속한 것이었으니(요일3;12), 보이는 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한다(요일4:20). 그리고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곧 '살인'죄라고 가르쳐준다(요일3:15). 그리고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만큼 귀한 일은 없다고 말한다(요일3:16). 더욱이 요한일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도 강조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그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셨으며(요일4:10),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셨다고 말한다(요일4:14). 하나님을 아무도 본 사람은 없지만 만일 우리들이 서로 사랑하게 된다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될 것이라고 가르친다(요일4:12).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이기려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어야 한다고 가르친다(요일5:5). 그리고 성도가 세상을 이기려면 그때 사용할 수 있는 도구는 우리의 '믿음'이라고 말한다(요일5:4). 그리고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 셋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물'과 '피'와 '성령'이라고 알려준다(요일5:7~8). 그리고 예수께서 생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기에, 누구든지 생명을 얻기를 원하는 자는 아들을 영접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요일5:12).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어 거듭난 자는 예수님께서 그를 지켜주시기 때문에 악한 자라도 그를 만질 수 없다고 가르쳐준다(요일5:18). 왜냐하면 우리 믿는 이들 속에 들어와 계시는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요 영생이시라는 것이다(요일5:20).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요한일서를 공부할 때 암송할 성경구절들이다. 놀랍지 아니한가? 요한일서가 바로 이러한 책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틈나는대로 아니 시간을 내어서라도 하루에 한 번씩 요한일서를 읽고 또 읽을 수만 있다면 그는 어마어마한 영적인 유익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영생을 소유한 자답게 살기를 바라며, 믿음을 사용하여 악한 자를 이기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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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9일(수)

정병진목사

 

하나님께서는 자기 제사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분노하고 동생 아벨을 시기질투하는 가인에게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그가 죄를 다스릴 수 있는 형편에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하여 들어온 악한 본성을 가인은 이길 수 있는 어떤 장치라고 가지고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오늘날 성령받은 우리 성도들과 가인의 상황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어떻게 할 때 나도 죄를 이길 수가 있는 것인가?

2021-02-07(주일) 주일낮예배 [2부]
제목: 영적 전사가 되어 죄를 처리하는 법(창4:3~12)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09LHNpumiHM  [혹은  https://tv.naver.com/v/18373610 ]

 

 

1. 들어가며

  죄란 무엇인가? 죄란 어떤 결과를 가리키는가 아니면 원인을 가리키는가? 그리고 죄와 악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 것인가? 오늘은 창세기의 기록 가운데 가장 처음으로 "죄"를 언급한 부분을 살펴보려고 한다. 그래서 사람은 어떻게 죄를 짓는 것이며, 죄의 결과는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가인이 살던 시대와 구약시대에 죄를 짓는 것과 예수님 시대와 성령강림이후의 시대에 죄를 짓는 것은 또 어떻게 차이가 있는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오순절 이후 믿는 자들의 세대는 어떻게 죄를 이겨나가야 할 것인지까지 살펴보고자 한다. 

 

2. 죄란 무엇인가?

  죄란 무엇인가? 창세기는 죄가 무엇인지를 설명하지는 않지만 가인의 이야기를 통하여 죄가 무엇이며, 죄가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말한다. 창세기의 기록에 의하면, "죄"는 창4:7에서 처음 나온다. 

창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웅크리고)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4:7 [직역] 네가 만일 을 [계속] 행했다면 [너의 얼굴을] 쳐들었을 것이 아니냐? 그리고 만약에 네가 을 [계속] 행하지 않았다면 ‘죄’가 문에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너에게 그것(죄)의 소원(갈망)이 있으나, 너는 그것(죄)을 [계속]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자신의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아주지 않은 것을 두고 분노하고 아벨에 대해 시기질투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하신 말씀이다. "죄"가 가인의 마음 문 앞에 웅크리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죄가 사자라는 된다는 말인가? 문 앞에 덮치기 위해 웅크리고 있다니 말이다. 그리고 어떻게 죄가 사람을 원할 수 있다는 말인가? 결국 우리는 여기서 죄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벧전5:8의 말씀에 힌트가 들어있다. 즉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그렇다. 죄의 실체는 대적 마귀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인의 마음의 문 앞에서 그놈이 엎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회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성경 전체를 통하여 죄가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거나 하나님의 뜻에서 빗나간 것을 가리킨다. 그것은 "죄"라는 단어의 의미 속에도 들어 있다. "죄"라는 것을 히브리어로는 '하타트'라고 한다. 이는 화살이 과녁에서 빗나간 것이나 가야할 길을 가지 아니하고 정도에서 빗나간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죄가 문에 엎드려 있다는 말을 통하여 우리는 사람이 죄를 짓는데 사탄마귀가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사탄마귀는 사람이 죄를 짓는데 어떤 관여를 하는 것일까?

 

3. 죄의 시작은 언제 어디서부터였는가?

  그런데 죄의 시작은 누구에게서였을까? 그것은 가인에게서도 아니었다. 가인인 후순위다. 그렇다면 그의 부모인 아담과 하와에게였는가? 그것도 아니었다. 죄는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죄의 시작을 이 세상이 아닌 하늘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말하였고, 거기에서부터 이 세상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롬5:12).

롬5:12 그러므로(이것 때문에) [참으로] 한 사람으로(을) 말미암아(통하여) 죄가 세상에(안으로) 들어오고(들어왔던 것처럼), 죄로(를) 말미암아(통하여) 사망이 들어왔나니, [그리하여]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이 죄를 지었으므로(지었던 것으로 인하여),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안으로) 이르렀느니라(통과하여왔느니라)

  그렇다. 죄는 한 사람인 아담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는 죄는 하늘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놈은 바로 아담과 하와를 넘어뜨리기 위해 뱀으로 찾아온 루시퍼(사탄마귀)였다. 그놈이 하늘에서 죄를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 질서를 어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란 사탄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죄를 인격화시키면 그것이 곧 사탄마귀인 것이다. 그렇다면 가인은 어떻게 해서 사탄의 밥(제물)이 되고 말았는가?

 

4. 가인이 형제 아벨을 살해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는가?

  가인이 형제 아벨을 살해하게 되기까지는 좀 과정이 있었다. 가인이 형제 아벨을 살해하기까지는 세 단계의 과정을 거치며면서 실행되었다.

  첫째는 가인은 자신의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악한 본성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속에서부터 혈기와 분노, 시기와 질투심이 올라왔는데 그것을 선으로 이기지 못했고 그 마음을 계속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왜 그랬는가? 얼핏 보기에는 하나님께 드린 제사를 하나님께서 자받아주지 아니하시고, 자신의 동생 아벨과 아벨의 제물만을 하나님께서 받아주신 것을 보고는 동생 때문에 자신의 제사를 하나님이 받아주지 않았다고 화가 난 것이다. 그렇다면, 왜 가인은 그 순간에 화를 낸 것일까? 예를 들어, 다른 사람 같았으면, "어? 하나님께서 왜 내 제사를 받아주지 않았지? 내가 하나님께서 정말 잘 준비하고 준비해서 정성스러은 예물을 드렸어야 했는데, 내가 대충 드려서였을까? 주님! 이번에는 내 제사를 주님께서 받아주시지 아니했지만, 다음 번에는 꼭 내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아주시도록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제가 좀 부족했죠?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가인은 다짜고짜 화부터 냈다. 왜 그랬는가? 그것은 그의 부모가 받아들인 악 때문에 그렇다. 그것은 그의 부모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의 열매를 따먹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때 선과 악이 인간에게 이미 주입된 채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 생명과를 먹기 원하셨던 것 같다. 그렇지만 아담과 하와는 뱀의 꾀임을 받아서 그만 선악과를 먼저 따먹고 말았다. 그러니 둘은 항상 선만을 택하고 악을 버리고 사는 삶을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가인은 그것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그래서 가인에게서 혈기와 분노, 시기와 질투심이 끌어올라왔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님의 말씀에도 나온다. 주께서도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은 그의 마음 속에서부터 나오는 것인데, 악한 생각이라고 했다. 거기에는 악의가 들어있고 혈기도 들어있다고 하셨다(막7:20~23).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분을 낸다고 할지라도 해가 지도록 분을 품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마귀가 틈을 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엡4:26~27).

  둘째, 분노와 시기질투심을 삭이지 않은 채 계속 가지고 있으니, 사탄마귀가 웅크리고 있다가 가인을 덮쳤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때 악한 자인 사탄마귀가 가인에게 들어가서 그의 동생을 살인하게 하였고, 하나님께도 거짓말을 하게 했다고 사도요한도 말했고(요일3:12),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8:44). 

요일3:12 가인[과]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부터] 속하여(있어왔다) [그리고 그가] 그[의] 아우를 죽였으니(살해했던 것과 같이), [그는]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살해했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악한 것들로 있어왔기 때문이요),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의로운 것들로 있어왔기 때문이다)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아버지) 마귀에게서[부터] 났으니(있으니), [그러므로] 너희[의] 아비(아버지)의 욕심[들]대로(욕망들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행하기를 원하느니라) 그는(저이는) 처음부터(시작부터) 살인한(살해한) 자요(자로 있어왔다) [왜냐하면] 진리가 그[의] 속에 없으므로(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진리에 서지 못하고(못한 채로 있고), 거짓을 말할(발언하고 있을) 때마다(때는 언제든지) 제(자기자신에게 속한) 것으로[부터] 말하나니(발언한다). 이는(왜냐하면) 그가 거짓말쟁이요 [그리고] 거짓의 아비가(이기) 되었음이라( 때문이다)

  그랬다. 마음의 문 앞에서 웅크리고 있는 사탄마귀에게 가인이 자신의 마음을 내주었던 것이다. 그러자 사탄마귀가 가인의 마음을 덮친 것이다. 그러니 가인은 주변이 사람이 없음을 알고 들에서 동생 아벨을 쳐죽이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가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도록 하기 위해 가인에게 물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렇지만 가인은 이미 악한 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내 주었기에 하나님께도 서슴없이 거짓말을 하였다.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4:9)" 그렇다. 악한 본성 자체가 죄는 아니다. 하지만 악한 본성을 추수리지 못하면 사탄마귀가 문밖에 있다가 덮이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이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가인은 제6계명인 살인죄를 범했고, 제8계명인 거짓증거의 죄를 범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8:44에서 하신 말씀은 바로 가인의 죄를 그 예화로 드신 것이다. 

 

5. 가인은 당시 어떻게 했어야 죄를 이길 수가 있었는가?

  그렇다면 가인은 당시 어떻게 했어야 죄를 짓지 아니할 수 있었는가?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두 번씩이나 죄를 짓지 않도록 기회를 주셨다.

  첫째, 자신의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아주지 아니했을 때에 즉시 회개했어야 했다. 회개하면 무슨 죄든지 하나님께서 다 용서해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인은 혈기와 분노, 시기와 질투심을 해가 지도록 계속 품고 있었다. 이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악한 본성은 이미 아담으로부터 주입된 것이다. 그렇지만 가인은 그것을 추스릴 수 있어야 했다. 그럼, 어떻게 추스릴 수 있었는가? 그것은 그의 안에 성령께서 계셨기 때문이다. 창6:3에 나오는 말씀에 의하면, 인간은 노아시대까지 하나님의 영이 사람 속에 있었다. 그 뒤로 성령은 떠나셨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의 성령을 모시고 있었지만 육체가 좋아하는 것만 행하여 육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인이 범죄후에도 하나님과 대화를 계속한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으며, 노아 이전의 두 사람, 즉 에녹이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300년을 주님께서 동행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에녹 안에 하나님의 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아도 당대에 의인이었다고 하는 것은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있었고 그 영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인도 자기 속에 있는 하나님의 영의 도움을 받았더라면 악한 본성을 추스릴 수가 있었을텐데 가인은 그 영의 도움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둘째, 죄의 실체인 사탄마귀가 자신의 마음의 문앞에 있을 때 그놈을 거절했어야 했다. 그런데 마음의 문을 열어주니까 그놈이 쏘옥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악한 본성을 더 부추겼고 결국 가인은 동생을 살해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때 가인은 해가 지도록 분을 품어서 마귀로 틈을 타게 해서는 아니되었는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마귀가 덮친 것이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 예수님의 우리 인간의 마음의 문을 노크하시고 허락하시면 들어오신다(계3:20). 그러므로 분노와 시기의 감정을 성령의 도움을 받아 추스리고 마귀를 대적했더라면 가인은 동생을 죽이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6. 오늘날 성도들은 어떠한 상태에 놓여 있는가?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어떤 상태에 놓여있는가? 가인의 시대와 같은 상태에 놓여있는가? 그건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시대는 가인시대와 두 가지 면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첫째, 가인시대에는 성령께서 사람 속에 있기는 있었지만 하나님의 생명을 사람의 영 안에 넣어주지는 않았다. 즉 가인은 노아홍수 이전의 세대이니만큼 성령께서 가인 속에 있었다. 하지만 오순절 성령강림사건 때에 오서 사람속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는 그냥 우리를 도와주시기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하나님의 본성인 생명을 주입하시어 육체의 본성을 이기게 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는 이제 생명주는 영이 되어서 믿는 이들 안에 성령으로 내주하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고전15:45). 그러므로 가인은 자신 속에 하나님의 영을 모시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날 성령강림사건 이후에 거듭난 성도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성령을 모신 즉시 생명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만큼 더 많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롬8:14). 그러므로 성령을 받은 성도들은 육체의 소욕보다 더 강력한 열망을 가지고 있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갈 때에 죄를 짓지 아니할 수 있는 것이다(갈5:16).

  둘째, 가인시대에는 사탄마귀가 사람 속에 계속 들어가 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악한 마음을 품는 즉시 귀신들이 치고 들어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인의 시대만 해도 사탄마귀는 혼자서 마귀짓을 하고 있었을 뿐 다른 그 어떤 천사들도 그러한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탄마귀는 무소부재한 존재가 아니다. 만약 그가 이 사람 속에 들어가 있다면 저 사람 속에 동시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므로 사탄마귀는 당시 혼자가 마귀짓을 해야 했기 때문에 항상 사람의 마음 문 밖에서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회가 생기면 치고 들어가서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 직전에 하늘에서 반역이 일어났다. 하늘의 천사들 중의 1/3의 타락하여 쫓겨났고 그리하여 그들은 귀신이 되었다. 정확히는 뱀이 된 것이다. 그리고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즉시 사람 속에 치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귀신들의 숫자가 하도 많으니 누구든지 귀신들은 사람 속에 계속 거주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악한 본성을 타고 사탄이 직접 치고 들어가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악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그 본성을 드러내기가 바쁘게 귀신들이 치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람이 혈기분노를 내고 시기질투하는 것은 이제 혈기분노를 일으키는 영과 시기질투하는 영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 들어온 귀신들을 추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혈기분노를 내고 시기질투심을 내었다면 즉시 회개하여 죄를 씻어버려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하늘에 기록된 행위책에서 우리의 죄를 덮어주시고 우리의 속까지도 깨끗하게 해주시는 것이다(요일1:9). 

 

7. 나오며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믿는 이들의 육체 속에 죄가 거한다고 말했다(롬7:18~21). 예수님 시대부터는 죄된 본성이 올라올 때마다 귀신들이 치고 들어와 육체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놈들은 시시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우리 안에서부터 죄를 짓게 만들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개가 필요하다. 자백하는 회개가 동반될 때에라야 비로소 우리 몸 안에 있는 귀신들이 떠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지기 때문이다(요일3:8, 1:9). 그리고 둘째로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도록 힘써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영에 두어야 하는 것이다(롬8:6). 그래야 영에 둔 생각으로 인하여 생명과 평안이 내 안에 머물레 되고 그것을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육체가 주는 생각에 빠져서 늘 죄를 짓고 말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 영 속에 들어와계신 성령께서는 창조주이자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우리 육체 속에 들어와 있는 귀신들은 피조물들이요 십자가에서 패배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을 말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건투를 빈다. 

 

2021년 02월 07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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