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0(주일) 주일낮2부예배

제목: 아브라함이 족장 중 처음으로 왕적 지위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창11:31~12:3)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iPwgR20nySI  [혹은 https://tv.naver.com/v/31023051 ]

 

1. 들어가며

 성도들의 최대의 꿈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12진주문을 통과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도 천국에서 들어갔을 때에 거기에서 왕적 지위를 얻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서 왕적 지위를 얻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건 지난주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과 같이 하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족장들로서 천국에 들어간 자들이 되었으며 또한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대열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첫 번째 족장으로서 아브라함은 대체 어떻게 살았는가? 그는 대체 어떠한 삶을 살았길래 천국에 들어갔으며 또한 그곳에서 왕적 지위를 누리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인가? 그래서 오늘은 창세기 11장부터 등장하여 25장까지 쭉 계속되고 있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통하여 나도 어떻게 하면 천국에서 왕적 지위를 얻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천국에 들어간 사람들은 어떻게 그리고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믿음의 족장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모두가 다 천국에 들어간 사람들이다(마8:11). 그렇다면 지금 천국에서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놀랍게도 그들은 천국에서 24장로가 되어 있다. 사실 나중 천국에 들어가 보면 다 아시겠지만 천국 성도들은 천국의 2층천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릴 때에는 3층천으로 올라가서 예배를 드린다. 이때 천국 성도들이 한꺼번에 다 올라가 예배드릴 때도 있지만, 보통은 한 마을 사람들만 올라가서 예배를 드린다. 이때 대표는 24장로 중의 그 마을들의 대표자다. 예를 들어, 세례 요한의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따라 삼층천에 올라가서 예배를 드린다. 그렇다면 세례 요한의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대체 어떠한 사람들인가? 그들은 대부분 세례 요한처럼 회개를 외치고 천국을 전파한 사람들이다. 마을 이름에 걸맞게 살았던 자들이 그 마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를 들어, 이삭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삭처럼 자신을 주님께 헌신한 자들이 산다. 그리고 이삭처럼 온유하고 겸손한 자들이 그 마을에 살고 있다. 또한 스데반 마을에는 스데반처럼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주님을 위해 내어드린 자들이 살고 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 마을에는 대체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그것은 아브라함처럼 우상숭배의 저주를 끝내고 자기 집안 사람들을 인도하여 하나님만 섬기는 사람들이 되게 한 사람들이 그 마을에 들어가서 살게 된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대체 어떻게 자신의 가문의 저주를 끝낸 것인가? 그는 대체 어떻게 되어 자신의 가문을 우상숭배의 죄에서 건져내어 하나님만 온전히 섬기는 가문으로 만들었던 것인가?

 

3.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하란으로 가족을 데리고 인도한 사람은 데라인가 그의 아들 아브라함인가?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창세기 11장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창세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부터 11장까지는 창조와 타락의 이야기다. 그리고 12장부터 50장까지가 족장들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인류의 타락의 끄트머리에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때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나오는데, 데라는 나홀의 아들로서, 장가들어서 하란(70세에)과 나홀(120세에)과 아브라함(130세에)을 낳는다. 그리고 어느 날 데라가 셋째 아들 아브라함과 며느리 사래 그리고 하란의 아들이자 자신의 손자인 롯을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난다. 그리고 하란에 이르러 거기에 거류하게 된다(창11:30). 그렇다면 갈대아 우르를 빠져나왔던 장본인은 아브라함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아니, 데라가 아브라함을 데리고 그곳을 빠져나온 것인가? 창세기 11장과 12장의 이야기만을 읽게 되면, 우리는 데라가 아브라함을 데리고 우상숭배의 도시였던 갈대아 우르를 빠져나온 것으로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창세기 15장에 가서 보면,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창15:7). 그리고 신약시대 예루살렘교회의 안수집사였던 스데반의 설교를 보더라도,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에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내어 가나안 땅으로 옮겼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본다(행7:2~4). 대체 어찌된 것인가? 

 

4. 어떻게 되어서 데라는 아브라함을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빠져나오게 된 것인가?

  우리가 창세기 11장과 12장의 이야기만을 읽다보면, 데라가 우상숭배를 그치기  위해서 스스로 결단하여 자식과 며느리와 손자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빠져나온 것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는 데라가 스스로 갈대아 우르를 빠져나온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에 의하여 데라가 그곳을 빠져나온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데라는 여태껏 그곳에서 우상을 섬기며 살아왔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적어도 그곳에서 50년 이상을 우상을 직접 만들어 섬기며 살았던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데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우상숭배를 버리고 그곳을 빠져나오게 된 것인가? 우리가 그것을 정확히 안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참고할 자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호수아도 인정하고 다윗도 인정하는 역사의 기록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야살의 책'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 보면,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더 많은 이야기와 역사가 나온다. 거기에 보면 어떻게 되어서 데라가 우상숭배를 버리고 갈대아 우르를 빠져나오게 되었는지를 잘 이야기하고 있다. 그 이야기를 대강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그때 데라는 함의 손자이며, 바벨탑을 쌓았던 장본인인 니므롯의 오른팔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때에 데라는 자신이 직접 나무로 신들을 만들어 섬기고 있었는데, 12가지 신들을 달마다 섬기고 있었다. 적어도 최소 50년 이상을 그렇게 섬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에 마침 셋째 아들 아브라함이 태어난다. 그런데 그날 니므롯의 신하들이 데라의 집에 갔다가 하늘에서 이상한 별들을 보게 된다. 매우 큰 별 하나가 동쪽으로부터 오더니, 하늘에서 달리다가 다른 네 개의 별을 삼키는 것이었다. 네 개의 별은 당시 니므롯이 다스리는 4개의 도시를 의미하고 있었기에, 이 소식을 접하게 된 니므롯은 즉시 데라의 아들을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데라가 몰래 아들을 빼돌려 동굴로 피신을 시킨 후 다른 여종의 자식을 그에게 갖다 바친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10살이 되자, 데라는 아브라함을 노아와 노아의 아들 셈의 집으로 피신시킨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거기서 약 40년을 살면서 노아와 노아의 장자 셈으로부터 직접 참된 신앙을 전수받게 된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50세가 되었을 때에 그는 자기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그때도 역시 아버지는 여전히 우상을 열심히 섬기고 있었다. 하도 어이가 없던 아브라함은 망치를 들고 사당에 들어가 그 신들을 다 부숴버린다. 그리고 가장 큰 신의 손에 그 망치를 들려놓는다. 한바탕 소동소리를 듣고 달려온 아버지 데라는 아브라함을 보고 꾸짖는다. 왜 우상들을 쳐부쉈느냐고 말이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자신이 큰 신에게 바친 음식을 작은 신들이 먹으려고 하자, 큰 신이 화가 나서 저 망치로 작은 신들을 다 때려 부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느냐면서, 어찌 데라 자신이 직접 나무로 만든 신이 다른 작은 신들을 때려 부술 수 있겠느냐며 말도 안되는 소리는 하지 말라고 한다. 그때 아브라함은 더 이상 사람의 손으로 만든 신을 숭배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면서 큰 신마저 때려 부수고는 도망쳐버린다. 그러자 아버지 데라는 이미 니므롯의 충신이 되어 있었기에 그 문제를 니므롯에게 고하게 되고, 결국 아브라함은 붙들려 간다. 그리고 신들을 농락한 자는 풀무불에 던져 넣어야 한다는 선고를 받고 풀무불에 던져진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3일을 불구덩이 속에 있었는데도 타지 않자, 니므롯이 그를 불러내어 그에게 절을 하고는 은금패물과 진주를 들려주고, 두 명의 수석 종들을 상으로 주어 자유롭게 놓아 보낸다. 그중의 한 명이 바로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다. 하지만 니므롯이 또 꿈을 꾸게 되는데 이 역시 아브라함이 니므롯의 나라를 삼키는 꿈이었기에, 니므롯은 아브라함을 죽이려고 사람을 보낸다. 그러자 이것을 곁에서 듣고 있던 엘리에셀이 아브라함에게 알리자, 아브라함은 다시 노아와 셈의 집으로 피신하게 된다. 그러자 비밀리에 셈의 집으로 찾아온 데라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한다. 
[야살의책 12:65] 이제 여기에서 아버지께 속한 자가 누구며, 이 땅에서 아버지께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일어나서, 가나안 땅으로 함께 갑시다. 그러면 우리가 그(니므롯)의 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훗날에 아버지께서 그로 말미암아 멸망당할 것입니다.
  그렇다. 아브라함은 데라에게 이제는 더 이상 우상을 숭배하지 말고 그 우상을 버리고 니므롯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가나안 땅으로 가서 살자고 설득한다. 그것을 곁에서 듣고 있던 노아와 셈도 아브라함의 의견이 옳다고 지지해 준다. 그러자 마침내 데라는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이제는 더 이상 우상을 숭배하지 않을 것이며, 더 이상 니므롯의 종이 되어 그를 섬기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그래서 집에 돌아온 데라는 아브라함과 롯을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빠져나오게 된다. 그리고 셈족 계열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에블라 왕국의 수도였던 하란으로 피신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데라가 아브라함을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빠져 나오게 된 이유이다. 그러므로 우상숭배를 버리고 갈대아 우르를 빠져나오게 한 장본인은 데라가 아니고 바로 아브라함이었던 것이다. 그의 기도와 설득으로 아버지가 우상숭배를 끝낼 수 있었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게 된 것이다. 결국 아브라함이 50세가 되어서 한 일은 아버지가 우상숭배를 끝내고 갈대아 우르를 탈출하는 것이었다. 

 

5. 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더러 하란을 떠나라고 했을까?

  데라가 우상숭배를 끝내고 갈대아 우르를 빠져나와 일차적으로 정착한 곳은 어디였는가? 그것은 '하란'이었다. 하란은 셈족 계열의 자손들이 살고 있던 도시였다. 그래서 거기에 사는 것은 안전하였다. 그러다 보니 데라는 거기에서 머물러 살았다. 그리고 약 15년이 지나자 데라가 하란에서 죽는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지금 그 땅과 너의 친척과 너의 아버지의 집으로부터 떠나라"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하란에서 살고 있는 아브라함을 다시 불러내어 그곳을 떠나라고 한 것인가? 그것은 하란 역시 셈족 계열의 친족이었지만 하나님을 잊어버린 채 우상을 숭배하고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자신의 형제들과 친족들이 살고 있는 그 땅을 떠나야만 했던 것이다. 그 땅도 여전히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훗날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이 그곳 하란에 가서 자신의 아내들을 얻어 데리고 나오게 되는데, 그때 그의 아내 중에 라헬이 자신의 아버지의 신 곧 드라빔을 훔쳐 가지고 나온다. 그녀의 아버지 역시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상을 갖고 있었던 건 라헬만이 아니었다. 다른 가족들도 역시 이방신들을 몰래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러자 야곱은 그 모든 이방 신상들을 모아서 세겜 땅 상수리 나무 아래에 파묻어 버린다(창35:4). 그렇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더러 하란을 한 번 더 떠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를 철저히 버리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6. 아브라함이 모든 우상을 다 버렸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아브라함이 우상숭배를 완전히 끝내고 가나안 땅에 도착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4가지 사실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첫째,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은사들이 그것을 말해 준다. 아브라함은 사실 하나님으로부터 신령한 은사들을 많이 받은 사람이다. 그에게서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영안 열림의 은사, 환상의 은사 등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거나 또한 하나님을 본 사람은 극소수 중의 극소수다. 그리고 아무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사실 노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이후, 다시 일천 년만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철저히 우상숭배를 그쳤고 하나님을 믿으며 신뢰했던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그가 받은 형통함의 축복이 그것을 말해 준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와 하란을 떠나 하나님이 명하시는 가나안 땅으로 갔다. 그리고 그는 그후 물질적으로 엄청난 축복을 받고 살게 된다.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물질을 부어 주었으니 그에게는 가축과 은금패물과 종들이 무수히 많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기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여도 물질은 더 달라붙었다. 이것은 그가 우상숭배를 완전히 끝낸 사람이었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축복이었다. 사실 우상들을 섬기거나 조상들이 우상을 섬김으로 인하여 악한 영들이 달라붙어 있는 자는 부자가 되기 어렵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가난이 이미 끝난 형통함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것이 그가 우상숭배를 끝냈다는 두 번째 증거다. 

  셋째, 아브라함에게 남아 있던 불임의 저주마저 끝났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에 그는 자식을 낳지 못했다. 사래가 자식을 낳지 못하는 불임의 여성으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우상을 숭배함으로 나타난 가문의 저주였다. 그런데 그가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그에게 자식을 많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실행되었다. 경륜적인 이유로 이스마엘 다음에 이삭을 얻기는 했지만, 불임의 저주가 아브라함에게서 이미 끝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아버지의 우상숭배를 끝냈기 때문이다.

  넷째, 그의 후손들이 받은 축복이 그것을 말해 준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서 낳은 아들들은 사실 모두 다 복을 받고 살았다. 특히 이삭은 농사를 지으면 백 배를 얻을 수 있었고, 마침내 거부가 된다(창26:12~14). 물이 없으면 파는 곳에서 우물이 터져 나왔다. 그래서 그는 소와 양이 떼를 이루었고 종도 심히 많은 사람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의 할아버지 데라가 우상숭배를 그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은 어떠했는가? 야곱은 유약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장자권 때문에 자신의 쌍둥이 형의 낯을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에 도피해야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가 외삼촌 라반의 양떼를 치게 되자, 외삼촌 라반은 그만 거부가 되었다. 왜냐하면 야곱이 손대는 모든 일에 하나님이 복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의 진짜 이유는 그의 증조부 데라가 우상숭배를 그쳤기 때문이다. 

  

7. 나오며

  그렇다. 아브라함은 어릴적부터 믿음이 좋았던 인물이었다. 야살의 책에 의하면, 그는 비록 어렸을 때에 아버지와 헤어져 살았지만, 노아와 셈으로부터 직접 올곧은 신앙을 배웠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한 분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50세가 되어 자신의 고향 갈대아 우르에 왔을 때에는 그의 아버지는 우상을 직접 손으로 만들어 그것을 섬기는 철저한 우상숭배자였다. 그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들에다가 제물을 바치고 향을 피우며 12가지 신들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바로 그 아버지의 집에 들어갔고 마침내 우상숭배를 그치게 하였다. 그리하여 노아 이후 점점 더 신앙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고, 마침내는 함의 손자 니므롯의 휘하에 들어가 셈의 후손을 우상숭배의 저주에서 끌어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이 땅에서부터 형통함의 축복을 받게 된다. 물질과 노비에 있어서 큰 축복을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받은 복은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자손 번성과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게 하겠다는 약속을 축복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의 생전에는 자손 번성과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얻는 복을 받지는 못했다. 그것은 그의 후손들이 나중에 받게 된다. 그렇다. 우선 알 것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은 그것이 약속으로 받았다고 해도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못 받으면 내 후손들이라도 꼭 그것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어떠한가? 그는 하늘에서는 큰 땅을 기업으로 받는 사람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의 신앙을 본받아 천국에 올라간 수많은 영적 후손들을 얻게 되었다. 하늘에서는 약속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가 된 것이다. 그렇다. 그는 하늘에서 어마어마한 땅을 기업으로 받아 왕 노릇하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제 아브라함처럼 우상숭배의 저주를 끝내고 온 가족을 하나님 품으로 인도할 수 있다면 우리도 역시 천국에 들어가서 왕적 지위를 얻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있는 모든 분들은 꼭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이 되어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2년 11월 20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12)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는 무엇인가(11)(계19:11~16)_예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02)_2022-05-11(수)

https://youtu.be/Dtu_lhBREZ4   [혹은 https://tv.naver.com/v/26808656 ]

 

1. 예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예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은 예수께서 비록 이 땅에 계실 때에 육신을 입으심으로 시공간의 제한을 받기는 했지만 그분의 행하는 일들을 보았을 때에 그분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행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나면서 소경된 자의 눈을 뜨게 하셨고, 죽은 지 나흘된 나사로도 살리셨으며, 오병이어로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가 남게 하셨으며,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자 그 다음 날에 그 나무가 뿌리째 말라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은 그가 육체를 입고 계실 때에는 아무도 몰라보았다가, 그가 죽고 부활하심으로 비로소 그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는 주 하나님께서 자신을 7번이나 전능자라고 소개하셨는데(계1:8, 4:8, 11:17, 15:3, 16:7, 19:6, 21:22), 주 하나님께서 재림하시는 것을 보니 그분은 다름 아닌 주 예수님이므로, 우리는 주 예수께서 '전능자'인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분이 재림하실 때에 악의 무리들에 대해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포도주의 틀을 밟는다고 하심으로 그분이 심판주로서 재림하심을 통하여 그분이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2. 예수께서 '전능하신 이'라는 말은 4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무엇인가?

  예수께서 '전능하신 이'라는 말은 예수께서 전능하신 이로서 4가지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첫째로, 그분이 '창조주'이시기 때문이요(계3:14), 둘째로 '구원자' 내지는 '완성자'이시기 때문이다(계7:10, 21:6). 왜냐하면 그분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시기 때문이다(계22:13). 그리고 셋째로, 그분은 모든 왕들의 왕으로서 최고 '통치자'이시기 때문이요(계11:17, 19:6).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분은 '심판주'이시기 때문이다(계16:7, 19:15).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그분은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라고 불린다(계17:14, 19:16).

 

3. 구약 시대에 한 분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전능자이신 것을 어떻게 드러내셨는가?

  구약 시대에 한 분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자신을 계시하실 때에 무엇이라고 말씀하신 것일까? 그것은 출애굽기 6:2~3의 말씀에 나오는데, 하나님께서는 모세 이전의 세대였던 족장들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시대에 당신을 처음으로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계시해 주셨으며, 그 전 시대에는 단지 당신 자신을 '전능자'라고 소개하셨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에 '전능자'라는 명칭이 총 48번 정도 나오는데, 그중에 맨 처음 나오는 책은 창세기(창17:1, 28:3, 35:11, 43:14, 48:3, 49:25)이다. 특별히 구약 시대 구약 성경에는 '전능자(엘 샤다이)'라는 단어가 48회나 사용된 가운데, 욥기서에 가장 많이 나오니, 그것은 총31번이나 되었다. 그러고 두 번째로 말씀하시는 책이 있다면, 그 책은 '창세기'다. 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창세기에는 '전능자'라는 단어가 총 6번이나 나오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급이 된다(창17:1, 28:3, 35:11, 43:14, 48:3, 49:25). 왜 그러한가?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자신을 전능한 하나님으로 계시하셨기 때문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당신을 전능한 하나님으로 알기를 바라셨다. 즉 아내가 나이도 많고 경수도 끊어졌기에 자식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면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 아내 사라의 나이 90세에 정말 아들 이삭을 낳았기 때문이다. 한편, 하나님께서 할례자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만 당신이 전능자인 것을 계시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 당시에 이방인으로 살고 있었던 욥에게도 마찬가지로 당신이 전능자이신 것을 계시하셨다. 그래서 욥기서 42장 가운데 '여호와'라는 명칭이 총 23회 정도밖에 나오지 않지만, 욥기서에서 '전능자'라는 표현은 무려 총 31회에 걸쳐 나온다.  

 

4. 구약 시대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시대 및 욥의 시대에 하나님은 어떻게 하나님으로서의 속성을 드러내셨는가? 

  구약 시대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족장의 시대나 욥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전능자로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와 완성자(구원자)이면서, 통치자와 심판주라고 당신 자신을 계시하신 것이다. 먼저, 족장 시대에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없는 것을 창조하시는 이로 계시하셨다. 즉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조건에서 자식을 낳게 하셨기 때문이다(창28:3). 또한 이사야서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전능한 창조주이신 것을 드러내셨다(창42:4, 45:12~18). 그리고 욥에게는 당신 자신을 '창조주'이자 '구원자'라고 소개하셨다(욥33:4). 그리고 모세에게 전능자께서는 당신 자신을 구원자로 말씀하셨으며(출3:6~8),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분은 욥기서를 통해 모든 사람들을 행한대로 심판하시는 심판의 주님이 되신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욥8:3~5, 34:10~12).

 

5. 쓰인 용례를 보았을 때에 하나님께서 전능자로 자신을 소개하신 것은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인가?

  놀랄만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전능자이신 것을 계시하기를 시작하면서 우리에게 들려주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그분이 만물의 창조주와 완성자이면서, 만물의 통치자와 심판주가 된다는 말씀이 지향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 '땅의 왕들'의 배출이라는 것이다(계21:24,26). 여기서의 '땅'이란 천국에 있는 땅으로서, 장차 새롭게 드러나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을 지칭하는 것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신구약 성경에 공히 등장하고 있는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곧 '전능자'라는 사실을 드러내신다. 이는 장차 우리 믿는 이들 역시 장차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가 되기를 바라시는 마음을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전능한 창조주와 완성자로서 그분은 당신 자신을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서 계시하셨기 때문이다(계17:14, 19:16). 이는 장차 성도들이 죽어서 천국에 들어갈 때에 다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님을 본받아, 천국에서도 만국의 왕들로서 그곳에서 왕 노릇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시기 때문이다. 

 

2022년 05월 11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88) 하나님의 언약은 언제 아브라함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었는가?(창17:19~27)_2021-05-05(수)

https://youtu.be/B1fUn1M63Rg  [혹은  https://tv.naver.com/v/20017927 ]

 

1. 하나님께서는 여러 번 아브라함에 나타나 말씀하셨는데, 언제 처음으로 영원한 언약에 대해 말씀하셨나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여러 번 나타나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처음 그를 불러내실 때부터 그의 나이 99세 때까지 하나님은 총 5번에 나타나 그에게 약속하셨습니다(창12:1~3, 7, 13:14~17, 15:4~7,13~21, 17:1~21). 이 중에서 네번째 언약을 "횃불언약"이라고 부르며(창15:4~7,13~21), 다섯번째 언약을 "할례언약"이라고 부르는데, 다섯번째 언약이 바로 "영원한 언약"에 해당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영원한 언약의 말씀을 하실 때에는 아브라함의 나이 99세 때에 그에게 다섯번째로 나타나실 때였습니다(창17:7,13,19).

 

2.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언약을 누구와 세우셨나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99세 때에 비로소 "영원한 언약"을 아브라함과 맺으셨습니다(창17:7~8,13,19,21). 그런데 이 언약은 실제적으로는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낳아준 아들과 세우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진짜 영원한 언약은 아브라함의 약속의 씨인 이삭과 세우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창17:21).

 

3.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언약을 왜 이삭과 세우시겠다고 하신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영원한 언약을 세운다고 말씀은 하셨지만 그 언약이 육체를 따라 태어난 이스마엘에게 이어질 것이 아니라 ,약속의 씨 곧 사라가 아브라함에게서 낳아준 아들에게 이어질 것이므로, 실제 영원한 언약은 아브라함의 아들들 중에서 이삭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비록 아브라함과 영원한 언약을 세우고 있지만 육체를 따라난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과는 세우지 않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이스마엘이 하나님의 약속의 씨로서 태어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고안해낸 작품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아들과는 영원한 언약을 세우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해서 다 아브라함의 씨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꼭 약속의 말씀을 따라 난 자와 언약을 세우시겠다고 표명한 것입니다. 만약 혈통적으로 태어난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과 언약을 세운 것이 영원한 언약이 되어버린다면 그 언약은 이삭으로 이어지지 않고 이스마엘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영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왜냐하면 이 영원한 언약은 여호와께서 그때 아브라함과 세우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진짜는 여호와께 다시 오셔서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과 세울 때에 진짜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예표론적으로 볼 때에, 아브라함은 성부 하나님의 역사를, 이삭은 성자 예수님의 역사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진짜가 아니라 예표(모형)에 해당되며, 실제적으로는 여호와께서 아들로 오신 분 곧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고 받아들이며 회개하는 사람들과 세우는 언약이 진짜 언약이며 영원한 언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고 회개하는 자가 영원한 언약의 효력을 받게 됩니다. 

 

4. 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나이 99세 때까지 그와 영원한 언약을 맺으시지 않으신 것인가요?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누군지를 모르는 자와는 영원한 언약을 맺지 않으십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나이 99세 때까지 하나님을 실은 잘 몰랐습니다. 그는 24년을 하나님을 믿고 따라다닌다고 다녔지만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는 것을 잘 몰랐습니다. 그는 안 되는 일은 처음부터 아예 안 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99세가 될 때까지 자신의 아내 사래가 장차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때까지 자신이 믿고 따라다녔던 분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창17:1).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인간적인 방법, 세상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한다면, 무엇 때문에 불임의 저주 가운데 있는 아브라함과 사래를 불러내셔서 복을 주신다고 하셨던 것일까요? 고로 하나님이 누군지를 제대로 모르는 자에게, 하나님은 결코 영원한 언약을 맺지 아니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곧 오늘날에 들어와서도 하나님이 누군지를 잘 모르는 자는 결국 영원한 언약이 그에게 성립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자는 하늘나라를 결코 기업으로 물려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즉 천국에 들어가서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차지하는 복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5. 하나님께서는 어느 때부터 언약의 하나님을 확실히 계시하시며 영원한 언약을 유효하게 하실까요?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누군지를 모르는 아브라함에게 결코 저주를 풀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에게는 복을 주시겠다고 하는 약속만 있었을 뿐 실제적으로 아브라함은 계속 저주 가운데 놓여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그의 가문이 이미 부친때부터(아니면 그 이전부터) 우상숭배와 살인과 폭력의 죄로 인하여 저주 가운데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의 아내 사라도 데라의 딸로서 자식을 낳지 못하는 불임의 저주 가운데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부름받아 24년이 지났어도 아브라함은 여전히 저주 가운데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99세에 나타나시어 자신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 못할 것이 없는 존재이니 ,이제부터는 그가 저주 가운데서 빠져나오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한 채, 자신의 고추를 이용하여 약속의 씨가 아닌 육체적인 씨(이스마엘)을 낳은 죄를 회개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할례"를 행하는 것입니다. 이 때만 해도 아브라함은 정말 자신의 아내가 자기를 통하여 아들을 낳아줄 줄을 정말 믿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린 13년이라는 세월이 무서웠고 두려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인간적인 생각으로 자식을 낳았던 지난 날의 자신의 과거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바로 그날에 자신의 고추 끝을 자르게 됩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자기자신만이 아니라 자기 집안에 있는 모든 남자들을 다 데려다라 고추의 포피를 자르게 됩니다. 만약 이때 그가 정말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는 그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자가 포경수술을 하게 되면 3일간은 도무지 움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적이 쳐들어와도 속수무책이 되어 몰살당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기꺼이 바로 그날 즉시 모든 남자들의 포피를 다 베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전의 자신의 불신앙의 죄와 잘못을 할례의 의식으로 시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례란 아브라함이 진심으로 회개를 시작한다는 표시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할례의식은 시간이 지남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시대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할례만 받으면 언약자손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회개는 하지도 않은 채 말이죠. 그러므로 사도바울을 말했습니다. 할례는 마음에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회개하는 마음 없이 할례만 받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말입니다. 결국 할례를 통해 회개의 마음을 하나님께 보이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새 일을 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그가 경험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삭의 출생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비로소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 눈을 뜨고 회개를 시작하자, 그에게 비로소 영원한 언약을 효과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하나님이 누군지를 정확히 그에게 일러주셨습니다. 그 이야기가 바로 창세기 18장~19장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하시고 한 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을 일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과연 하나님이 누군지를 제대로 믿고 있는지를 다시금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분이 진정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그분이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신 한 분 하나님 곧 예수님이신지를 믿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천국에 가면 하나님이 세 분으로 있는지를 말입니다. 그리고 진정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고 있는지도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아직까지 잘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결코 영원한 언약의 자손이 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021년 05월 05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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