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82) 왜 사도 바울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세례를 주지 않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는가?(행19:4~5)_2022-12-15(목)

https://youtu.be/9gaQT-a2zD8 [혹은 https://tv.naver.com/v/31818228 ]

1. 사도 바울이 에베소의 성도들에게 세례를 줄 때 누구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는가?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성도들이 12명이나 있었다. 이들은 아볼로에 의해 전도된 자들이며 이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은 상태에 있었다. 그러자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지만 그가 자신의 뒤에 오시는 이를 믿기로 했으니 그분이 바로 주 예수님이신 것을 알려 준 뒤에,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다(행19:5). 다시 말해, 사도 바울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성도들에게 세례를 베푼 것이다. 

 

2. 사도 바울은 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지 않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 것인가?

  오늘날 교회에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 오늘날에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곳은 거의 없다. 왜 오늘날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있는데, 사도 바울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 것인가? 그런데 믿는 이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명령하신 분은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마28:18~20).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렇다.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세례를 베풀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때에는 오늘날처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셨다. 의미야 같은 것이겠지만 글자로 보면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왜 사도 바울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을 따라서 세례를 베풀지 않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에는 2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는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하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님의 명령을 거역한 것이다. 둘째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이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푼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처음 초기 교회에서는 과연 누구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는가?

  사도행전에는 초기 교회가 어떻게 세례를 베풀었는지가 나온다. 그런데 교회적으로 세례를 베푼 경우는 총 4번 나오는데, 두 번은 베드로에 의해서 세례가 베풀어진 것이요, 한 번은 빌립 집사가 세례를 베푼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사도 바울이 세례를 베푼 것이다. 첫 번째는 사도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 3천 명에게 세례를 베푼 것이다. 아마도 베드로는 이때 11사도들과 함께 세례를 주었을 것이다. 이때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였다(행2:38). 그리고 두 번째는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 성도들에게 세례를 베푼 것인데, 이때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다(행8:16). 그리고 세 번째는 다시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에 세례를 베푼 것인데, 이때도 역시 처음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였다(행10:48).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세례를 준 것인데, 이때는 빌립 집사와 마찬가지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 결국 초기 교회에서는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다고 할 수 있다. 

 

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오늘날 교회에서는 대부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분명히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셨다(마28:19). 그런데 A.D.100년경 거의 모든 교회에서 통용되고 있던 교회의 가르침을 모아 놓은 책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디다케'라는 책이다. 이 책은 '12사도들의 가르침'이라고 불려지는데, 여기에 보면 세례를 어떻게 주는지가 나와 있다. 여기에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살아 있는 물로 침례를 주어야 하지만, 만일 그러한 물이 없다면 다른 물로 침례를 주되, 찬물로 세례를 줄 수 있고, 그것이 없다면 더운물로 침례를 줄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찬물이나 더운물도 풍성하지 않다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머리에 세 번 물을 부으라고 하였다. 그렇다. A.D.100년경에 교회에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둘 다 의미는 같은 것이지만, 뉘앙스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한 것이 삼위일체적인 신관을 반영하는 표현이라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한 것은 한 분 하나님의 신관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요10:30에서도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말씀하셨으며,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도 말씀하셨고, 내가 하는 말은 아버지께서 내 속에서 그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고 말씀하심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라는 것을 늘 강조하셨기 때문이다. 고로 성부와 성자라는 용어를 잘못 사용하게 되면, 우리도 역시 '성모'라는 표현을 동일한 위치에 가져다 놓을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니 천주교에서는 A.D.451년 칼케돈 종교회의 이후 성모 마리아를 성부와 성자의 신격의 동일한 위치에 놓고 있다. 왜냐하면 그녀를 '데오토코스' 즉 하나님을 낳으신,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칭하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1964년 제2바티칸 회의에서는 아예 대놓고 '마리아가 하나님을 출산하였다'고 공식으로 규정한 바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마리아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서 예수님을 낳은 것이다. 고로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인 것이지(행1:14, 요2:1,3, 막3:31), 결코 하나님의 어머니가 아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하나님을 낳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리아의 태를 빌려 쓴 것이다. 

 

5. 초기 교회는 세례를 줄 때에 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을 대신하여 '예수'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인가?

  우리는 베드로 사도나 바울 사도가 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대신에 '예수'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첫째, 아들의 이름인 '예수' 속에 아버지의 이름인 '여호와'라는 이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예호수아, 예수아,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뜻이다. 고로 굳이 '여호와'라는 이름을 쓰지 않아도 예수라는 이름 안에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들어 있기 때문에, 아버지의 이름 대신에 '예수'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자신은 아버지의 이름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왔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요5:43). 그리고 '아버지의 이름'인 여호와가 누군지를 분명하게 제자들에게 나타내셨다고 말씀하셨다(요17:6). 그리고 둘째, 성령의 이름은 아예 처음부터 없었는데, 성령님께서는 아들의 이름으로 보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친히 성령님을 가리켜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요14:26). 그렇다. 성령님은 아들이신 예수의 이름으로 오신 하나님이다. 고로 '예수'라는 이름 안에는 '여호와'라는 이름도 들어 있는 것이고, 성령님을 대신할 수 있는 이름도 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고로 초기 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던 것이다. 특히 '예수'라는 이름은 '아버지와 아들와 성령의 이름' 곧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을 지칭하는 것이었기에, 초기 교회에서는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 수가 있었던 것이다. 

 

 

2022년 12월 15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28) 예수님은 구원자로 오신 한 분 하나님이시다(계22:20~21)_2022-06-02(목)

https://youtu.be/0CNJTL8V-Vw  [혹은 https://tv.naver.com/v/27141976 ]

 

1. 구약의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이며, 신약의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인가?

  구약의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혹은 '야훼')이다.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께 여쭤봄으로 인하여 비로소 알려지게 된 이름이다(출3:13~15). 그렇다면 신약의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라는 이름이다(마1:21, 눅1:31). 그렇다면 '여호와'와 '예수'라는 이름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2. '여호와'와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

  구약의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이시다(출3:14~15). 그럼 그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이거나 아니면 "나는 '나는 ~이다'이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여호와 호쉬아[흐]'라는 말을 줄인 것으로서, '여호와가 구원하신다' 혹은 '구원하러 오신 여호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이름 속에 이미 '여호와'라는 이름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신약 성경 39권 가운데 단 한 군데에도 '여호와'라는 이름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신약 시대의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은 이렇게 이제는 '예수'라고 계시되었기 때문이요, '예수'라는 이름 속에 이미 '여호와'라는 이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리아와 약혼한 요셉의 꿈속에 나타난 천사가 장차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고 일러주었을 때, 그 이름의 뜻은 이미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할 자'였음을 요셉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마1:21). 그러므로 '여호와'라는 이름이 "스스로 있는 자, 나는 ~이다"라는 뜻을 지녔다면, '예수'라는 이름은 "스스로 있는 자가 구원하러 왔다"라는 뜻인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어 아들이 되신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예수'라는 이름을 히브리어로 읽으면 '예슈아[흐]'이다. 이는 '여호와 호쉬아[흐]'의 축약형이다. 여기서 '호쉬아[흐]'라는 단어는 '야솨'라는 동사에서 온 것으로, '구원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신약 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그것은 예수께서 예루살렘 입성하실 때에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흔들며 환영하던 군중들의 외침 소리에 나오기 때문이다. 그때 군중들은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고 외쳤다(요12:12). 또한 여기에 나오는 '호산나'는 히브리어로 '여호와 호쉬아나'이다. 그리고 여기서 '호쉬아[흐]'는 구원하다는 뜻이며, '나(NA)'라는 뜻은 '지금(NOW)'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호쉬안나(=호산나)라는 단어의 뜻은 '여호와여 지금 구원하소서'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3. 구약 시대 하나님의 진짜 이름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셨던 하나님의 이름을 모두들 '여호와'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맞다. 그때에는 '여호와'가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짜 음가가 '여호와'인지는 정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오늘날 히브리어는 모음이 붙여진 상태이지만 원래 히브리어는 자음만 있을 뿐 모음이 없는 글자였다. 그러므로 원래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록된 신명사문자 곧 "요오드 헤 와우 헤"라는 자음도 사실은 '나의 주님'을 뜻하는 '아도나이'의 모음을 가져다 거기에 붙여서 '여호와'라는 이름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런데 학자들이 연구해 본 결과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라는 발음보다는 '야훼'가 훨씬 더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구약 시대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 혹은 '야훼'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의 이름을 '3인칭 미완료'로서 말씀하신 것이요, 하나님 스스로가 자기 자신에 대해 말씀하실 때에는 1인칭 시점으로 말씀하셨기에 그 음가가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하여 학자들이 찾아낸 하나님의 이름은 '아하야[흐]'라는 이름이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축약형이 '야[흐]'이기 때문이다(예: 이사야, 예레미야, 할렐루야 ...). 그러니까 원래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혹은 '야훼')가 아니라 '아하야[흐]'였던 것이다.

 

4.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알려 준 진짜 하나님의 이름의 이름은 무엇이었는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혹은 '야훼')정도로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더 정확한 하나님의 이름은 '아하야[흐]'인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처음에 모세에게 당신의 이름을 계시할 때에는 어떤 발음이었는가? 그것은 출애굽기 3장 14절을 맛소라 텍스트로 보면 나온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이름은 '에흐예'이다. 그러니까 출3:14에 나오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는 문구는 히브리어로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로 되어 있다. 이를 번역하면, "나는 에흐예이다"이다. 그러니까 출3:14에 처음 등장하는 하나님의 이름은 '에흐예'였던 것이다. 하지만 신학자들이 과연 '에흐예'라는 발음이 정말 적합한 것인지를 살펴보았다. 그리하여 결국 하나님의 이름을 '에흐예'라고 읽을 것이 아니라, '아하야[흐]'라고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보다 더 정확한 진짜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발음은 '아하야[흐]'였던 것이다. 그런데 '아하야[흐]'란 '아'(히브리어로 '나'라는 뜻)에다가 '하야'라는 동사가 합쳐진 단어이다. 여기서 '하야'라는 동사는 영어로 be동사로서 그 뜻은 "있다" 혹은 "~이다"이다. 그러니까 '아하야[흐]'라는 하나님의 이름의 뜻은 "나는 '나는 ~이다'이다" 혹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원래 하나님의 이름으로서 '아하야[흐]'는 히브리어 알파벳 첫 글자인 '알렢' 더하기 '야하[흐]'로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원래는 '아하야[흐] 아쉐르 아하야[흐]'여야 함)라는 뜻은 "나는 '나는 알파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일 수도 있다. 그런데 참으로 감사한 것은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가 무슨 뜻인지를 헬라어 구약 성경(70인역, LXX)에서는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에고 에이미 호 온'이다. '에고'는 1인칭 '나'라는 뜻이요, '에이미'는 be동사로서 '있다' 혹은 '~이다'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호 온'은 '하야'동사(be동사)의 동사 분사 현재 능동태 구문으로서, '호 온'만을 따로 해석한다면, "이제도 계시는 이"인 것이다. 요한계시록 1:8에서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는 문구에서 맨 앞에 나오는 문구(호 온)를 그대로 옮겨서 쓰고 있는 것이다. 결국 '여호와'(혹은 '야훼')나 '아하야[흐]'의 이름의 뜻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이거나 "나는 나는 ~이다고 하는 이다"의 뜻인 것을 알 수 있다. 

 

5.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예수'라는 이름의 용례가 가르쳐 주는 사실은 무엇인가? 

  요한계시록에는 '예수'라는 이름이 총 12번 나온다. 그렇다고 한다면 '예수'라는 이름도 이 땅에 속한 이름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이름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7'은 이 땅의 완전수를 뜻하고, '12'는 하늘의 완전수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12번의 예수의 이름 가운데, '예수'라는 이름이 '그리스도'라는 직책과 더불어 쓰인 것은 3번이다(계1:1,2,5). 이 때 '예수'라는 말은 특별히 그분의 이름을 가리키는 것이고, '그리스도'라는 것은 그분의 직책을 가리키는 것이다. 고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표현한 것은 곧 그분의 이름과 그분의 직책을 함께 명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머지 아홉 차례 더 '예수'의 이름이 나오는데, 그것들 중에서 여섯 개는 예수님을 믿게 되는 자가 환난을 받을 수도 있고 왕국에 참여할 수도 있으며, 참음(인내)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차례는 그것이 주 하나님과 관련되어져서 표현되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한 용례는 "나 예수는...(계22:16)"이라는 표현이 한 번, 그리고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의 문구 속에서 두 번 있다. 그러니까 마지막에 가서 불려지는 예수님의 명칭들 셋의 경우를 보면, 이 세 가지의 것들은 예수께서 스스로 계시는 한 분 하나님이심과 더불어 그분에게는 못할 것이 없는 '전능한 분'이신 것을 드러내 주는 표현들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불려지던 '예수'라는 이름이 천국에서도 동일하게 계속 사용된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한 번 쓰인 이름은 영원히 기억되는 이름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 이름이 '정병진'이라고 치자, 그러면 그때 구원을 받았으면 천국 집의 문패에도 역시 한글로 '정병진'이라고 쓰여진다는 것이다. 그렇다. 결국 '예수'라는 이름은 예수께서 누군지를 계시하는 이름으로 이 땅에서 쓰였지만, 예수께서 그 이름으로 충성함으로서 천국에서도 그대로 그 이름이 사용되는 것이다. 우리의 이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이름이 천국에서도 불려질 이름답게 이 땅에서 부합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1] 창세기강해(08) 하나님의 진짜 이름은 무엇인가(출3:13~15)_2021-02-03(수) https://youtu.be/qvFFH9TdGos

[참고2] 창세기강해(12) 아하야흐(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님(요5:43)_2021-02-07(주일) https://youtu.be/09LHNpumiHM

 

2022년 06월 02일(목)

정병진목사

천지를 창조하신 분은 엘로힘이시요 그분의 이름은 여호와이시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을 보면서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호산나"라고 찬양했을까?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는 왜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이요 마지막이여, 시작과 마침이라"고 하셨는가? 여호와의 이름의 뜻은 대체 무엇이며, 하나님의 또다른 이름인 "아하야흐"는 무슨 뜻인가? 삼위일체 하나님과 한 분 하나님을 이제 어원적으로 정리해보자.

2021-02-07(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창세기강해(12) 아하야흐(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님(요5:43)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0K6C0ZkL6m4  [혹은  https://tv.naver.com/v/18379505 ]

 

 

1. 들어가며

   우리는 2주전부터 창세기 강해를 시작하였다. 창세기 1장 1절을 통하여 창조하시는 하나님(엘로힘)을 배우고 있는데, 그것들 중에서 그분의 이름이 무엇인가를 배웠다. 그분의 이름은 "여호와(또는 '야훼')"이다. 이 정도는 거의 모든 성도들이 다 알고 있다. 그런데 그분의 이름이 또 다르게 불렸다는 것을 아는 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분의 다른 이름은 "아하야흐(또는 '에흐에')"이다. 그런데 여호와 외에 "내가 아하야흐"라고 말씀하신 분이 또 있다. 그분은 예수님이시다(요8:24,28,58). 그렇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가 하나님인가? 그래서 우리는 구약성경을 통하여 아하야흐가 무엇을 뜻하며, 그것인 신약성경에 어떻게 기록되어있는지를 성경원문을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조금은 어렵겠지만 자꾸 들어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시다. 그런데 누구든지 하나님이 누군지를 잘 모르면 믿게 되면 그 신앙은 미신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고 있ㅎ는 여호와와 예수님으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그래서 오늘은 어원적으로 그 이름에 대해서 알아보는데, 예수께서 "아하야흐의 이름으로 오신 분"이라는 각도에서 살펴볼 것이다. 영적인 놀라운 시야가 열리게 되기를 바란다. 

 

2.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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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이다. 여호와는 이름은 히브리어의 4개의 자음인 "요오드 헤 와우 헤"가 합쳐진 하나님의 이름이다. 이것을 어떻게 음가로 읽느냐에 따라 "여호와"가 되기도 하고, "야훼"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여호와"라는 이름의 뜻은 대체 무엇인가? 안타깝게도 그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는 아직까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그분의 이름의 뜻도 모른 채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말인가? 그렇다. 하지만 오늘 메시지를 잘 들으면, 하나님의 이름이 어떤 뜻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처음으로 그분의 이름을 가르쳐주셨다는 사실이다(출3:14~15). 그런데 지금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녕되이 불러서는 안 된다는 십계명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면 유대인들은 다른 단어로 바꾸어서 부르고 있다. 그것은 '아도나이'라는 용어다. 이 "아도나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나의 주님"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것을 헬라어로 번역할 때에는 "주[님]"이라고 번역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에서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는 문장은 원래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였던 것을 알 수 있다(마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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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대체 "여호와"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그 뜻은 무엇인지 모르나 그것이 지칭하는 대상이 누군지는 어느정도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여호와"라는 신명4문자는 "요오드 헤 와우 헤"인데, 각 철자의 뜻이 "손을. 보라. 못을 보라"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생각나는 것이 없는가? 그것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실 때에 죄패가 붙어있었다. 그리고 죄패에는 3가지 언어(히브리어, 헬러어, 로마어)가 쓰여 있었다. 그것은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는 문구였다. 헬라어로는 "예수스 호 나조라이오스 호 바실류스 톤 유다이온"이다. 이것을 번역하면 "예수 나자렛사람 유대인의 왕"이다. 이것을 히브리로 읽으면, "예슈아 하나자레이 브멜레크 하예후딤"이다. 이것 역시 "예수 나사렛 사람 유대인의 왕"이다. 그런데 이 문구의 히브리어의 첫글자를 따오면 "요오드 헤 와우 헤(여호와)"가 된다. 그렇다. 유대인의 왕 나사렛예수가 여호와라는 말이다. 이것은 우연히 그런 것일까? 이제 본격적으로 예수님이 누군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3.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 "아하야흐"는 대체 무슨 뜻인가?

  출애굽기 3:15를 보면,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혹은 야훼)"라고 나온다. 그런데 출애굽기 3:14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I am that I am)"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곧 자신이 "에흐예(I am)"라는 것이다. 그런데 "에흐예"라는 발음도 사실은 5~6세기 경에 히브리 맛소라 학파들이 히브리어 "알렢 헤 요오드 헤"에 모음을 첨가하여 음가를 만든 것이다. 오늘날에는 그 음가가 "에흐예"가 아니라 "아하야흐"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왜냐하면 "여호와(야훼)"라는 하나님의 이름의 축약형이 "야[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야"가 붙은 이름이나 단어가 많이 나오는데, 예를 들어 "히스기야, 예레미야, 할렐루야"에도 "여호와(야훼)"의 축약형이 들어있다. 그러므로 출3:14에서 말하고 있는 또다른 하나님의 이름은 "아하야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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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아하야흐"의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하야[흐]"이다. 여기서 "아"는 1인칭 단수는 "나"를 뜻하고, "하야"는 be동사를 뜻한다. 그러므로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라는 문장을 영어로 옮기면, "I am [that I am]"이요, 우리말로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이다. 그런데 "하야"라는 동사가 미완료형이므로 어떤 이는 "I will be that I will be"라고 해야 한다고도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헬라어 70인역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번역하고 있는가? 그것은 "에고 에이미 호 온(나는 '호 온'이다)"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에고 에이미"는 영어로 "I am"에 해당하며, "호 온"은 에이미동사(be동사)의 현재 분사 능동형으로서 "이제도 계시는 이" "지금도 여전히 계시는 이"라는 뜻이다. 고로 "에고 에이미 호 온"은 "나는 '이제도 계시는 이'이다"이다. 그런데 신약성경에 보니,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말씀하실 때에 "에고 에이미"라고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호 온'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더 살펴보도록 하자. 

 

4. 여호와와 예수라는 이름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이 여호와인가는 질문이 바로 나올 것이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는 것이 정답이다. 왜냐하면 구약에 나타난 "아하야흐"가 여호와이시요, 신약에 나타나신 "아하야흐"가 "예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하면,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리는 "예수"라는 이름을 통해서 그분이 누군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사람들이 그를 향하여 어떻게 소리 높여 찬양했는가? 그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라.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마21:8)"라고 했다. 요한복음에서는 그들이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신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요12:13)"라고 불렀다고 나온다. 그러니까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신 이"라고 칭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여호와라고 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정확히는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이 여호와이시요, 신약에 나타난 하나님은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은 육신을 입지 않은 신성한 상태만을 지칭하는 이름이요, 신약의 예수님은 육신을 입으신 분으로서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지니신 분을 지칭하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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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예수"라는 이름 속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가? 그것은 시편118:25~26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시118:25-26)". 이 문장을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면, "여호와 호슈아[흐] 나"이다. 여기서 "호슈아"는 "구원하소서"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야샤(구원하다)"는 동사의 히필형 명령형 남성 단수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이라는 뜻이다. 고로 이 문장은 "여호와여, 지금 구원하소서"라는 뜻이다. 우리가 찬양할 때 "호산나 호산나"라고 하는 것은 "호슈아 나"를 우리나라 발음으로 그렇게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 호슈아(여호와여, 구원하소서)"를 축약하면, "여호슈아"이다. "여호슈아"는 헬라어 "예수"의 히브리어 형태인 "예슈아"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예수"라는 이름은 "여호와가 구원하신다." 혹은 "여호와가 구원자이시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의 아하야흐이신 여호와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시존재가 가능하신 분이시므로, 신약시대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5.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당신을 누구라고 소개하셨을까? 

  공생애 3년반을 사시면서 예수께서는 당신은 2가지로 소개하셨다. 하나는 나는 "아하야흐"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나는 ~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먼저, 그분이 나는 "아하야흐"라고 소개한 부분부터 살펴보자. 그것은 신약성경에서 딱 3번 나온다. 요8:24,28,58에 나온다. 그분은 신약의 아하야흐이셨던 것이다. 육신을 입고 오신 아햐야흐이셨던 것이다.

요8: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아하야흐)"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요8:28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아햐야흐)"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요8: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아하야흐)" 하시니 

  그리고 두번째로 예수께서는 "나는 ~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총7가지가 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요6:35)",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8:12)", "나는 양의 문이다(요10:7,9)", "나는 선한 목자다(요10:1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11:2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14:6)", "나는 참 포도나무다(요15:1,5)" 그분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실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다"라는 중간에 우리가 대입하는 대로 그분이 그것이 되실 수가 있다. 그분은 전능자이기 때문이다(계1:8). 

 

6. 예수께서는 누구의 이름으로 오셨다고 말씀하셨는가?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5장에서 유대인들과 대화를 하시면서, 유대인들이 자신을 대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5: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이것을 헬라어원문에서 직역해보면, "나 자신은 나의 아버지의 이름 안에서 이미 온 채 있다. 그러나 너희가 취하지 않고 있다. 만일 다른 이가 자기의 이름 안에서 온다면 너희는 장차 저이(저 사람)를 취할 것이다."이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이름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하야흐"이든지 아니면 "여호와"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당시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칭함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여호와'라는 이름을 발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예수"라는 이름 속에 이미 "여호와"라는 이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승천하실 때에 "그 아버지와 그 아들과 그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셨는데, "이름"은 단수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요10:30에서 "ㄴ아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말씀하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신을 소개할 때에는 "나는 아버지에게서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소개하셨다. 아버지로부터 오신 분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아하야흐로부터 오신 신약의 아하야흐이시기 때문이다. 구약의 아하야흐가 "나는 알파다"라고 했다면, 신약의 아하야흐는 "나는 오메가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계1:8, 22:13). 그래서 구약의 이사야선지자는 장차 오시게 될 메시야는 이런 자라고 예언했다. 

사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한 아기이자 아들로 오실 분은 기묘자인 모사라는 것이다. 여기서 '모사'라는 헬라어단어는 "파라클레토스(보혜사)"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에 성령으로 오시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자, "영원히 계시는 아버지"라 불리운다고 했다. 그분을 굳이 구약시대으 이름으로 부른다면 구약의 아하야흐이신 여호와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7. 나오며

  이제 우리는 구약시대에 아하야흐로 오신 여호와께서 신약시대에는 예수라고 불리는 아하야흐로 오셨다는 말씀을 배웠다. 한 분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사람으로 오신 것이다. 그때 예수님은 자신을 아들이라고 칭했다.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기 때문이요, 마리아로부터 사람으로서 출생을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신 그분은 원래는 아하야흐이셨다. 스스로 계신 분이요, 모든 것이 되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전능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분은 죽고 부활하시면서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고전15:45). 생명주는 영은 곧 성령을 지칭한다. 고로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 아하야흐는 성령이시다. 우리는 여호와와 예수님과 성령님을 이렇게 다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천국에 가면 보좌에 앉아계시는 분으로서 예수님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영원히 볼 수 없기 때문이요, 볼 수 있게 나타나셨던 분은 오직 신약의 아하야흐이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령님도 볼 수 없다. 그분도 영이시기 때문이다. 오직 사람으로 나타나셨던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사람이 되신 하나님, 영원히 찬양받으실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린다.

 

2021년 02월 07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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