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서는 사랑노래다.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 책은 솔로몬 개인이 시골처녀를 사랑한 것을 기록하고 있는 책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성도들을 얼마나 사랑하셨으며, 또한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해 어떠한 희생을 치르셨는지를 말하고 있는바 구원론의 책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중에서 오늘은 그분이 얼마나 우리 죄인들을 사랑하셨고 우리를 죄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 이 메시지에 주목해보라.

2021-10-17(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신부(33) 아가서강해(23) 죽음같이 강한 사랑에서 죽음보다 강한 사랑으로(아8:6~7)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3gVEZtzjmZs [ 혹은 https://tv.naver.com/v/23034403 ]

 

1. 들어가며

  아가서의 주제는 무엇인가? 아가서의 주제는 한 마디로 '사랑'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간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일 뿐 진정 내면에 실제하는 주제는 사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인 성도들 간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다루게 될 말씀은 아가서 8:6~7에 나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맨 앞에 누군가의 당부 혹은 명령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서 조금 긴 형태로서 '사랑'에 대한 정의가 나온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당부이나 명령은 대체 누가 누구에서 하는 말인가? 그리고 '사랑'에 대한 정의는 누가 내리고 있는가? 특별히 이 책의 저자가 들려주는 사랑의 핵심 개념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이 책의 저자는 말하는 사랑의 힘(위력)과 사랑의 위대함과 사랑의 값은 대체 어떤 것인가? 그리고 아가서 강해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아가서에서는 신앙과 관련된 용어가 단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왜 오늘 본문에는 '여호와의 불'이라는 문구가 등장하고 있으며, 이것은 대체 무슨 뜻인가? 오늘 이 시간은 이러한 의문점들과 궁금증들을 풀어주는 복된 시간이 될 것이다. 

 

2. 아가 8:6상반절은 신부의 요청인가 신랑의 당부 내지는 신랑의 명령인가?

  아가서 8:6의 말씀의 상반절은 이렇다.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아8:6a)" 이 말은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여러 학자들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이 말은 '술람미 여자'가 한 말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고, '신랑'인 솔로몬이 한 말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다. 둘 다 어느 것을 취해서 해석해도 그리 틀린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문맥을 좀 더 살펴보면, 이 본문은 아마도 솔로몬이 말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왜냐하면 바로 앞 구절의 말씀에, '나'와 '너'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도 '나'와 '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문장은 앞구절인 아8:5b의 말을 누가 했느냐에 따라 결정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앞구절인 아8:5b의 말씀을 대부분은 다 신랑이 신부에게 말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아8:6a의 말씀도 솔로몬이 말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고 하겠다.

 

3. 솔로몬은 왜 그의 아내에게 이후부터는 자기를 도장같이 새길 뿐만 아니라 자기를 꼭 몸에 붙이고 다니라고 당부하는가?

  그렇다면, 왜 솔로몬은 그의 아내에게 자기를 도장같이 새기고, 또한 자기를 몸에 붙이라고 말했던 것일까? 그것은 이 말을 받는 대상이 이 말을 하는 사람을 잊어버린 일이 있었고 또한 그것으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로 우리는 이 말씀이 우리 성도의 영원한 신랑되신 예수께서 당신의 신부가 될 자들인 우리 성도들을 위한 당부의 말로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이 말씀은 신6:4~9에 나오는 '쉐마'의 말씀과 많이 닮아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역시 신명기의 말씀에 나오는 그 말씀도 역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하는 말씀으로 나오기 때문에, 이 본문 역시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게 하는 말로 보는 것이 훨씬 더 합당하게 보인다. 특별히 '새기라'는 말은 의미심장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새기지 않으면 자꾸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 술람미 여인도 결혼 후에 한 때 신랑을 놓쳐버린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렵게 다시 되찾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잃어버리기는 쉽지만 잃어버린 것을 다시 되찾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당부하고 당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랑은 앞으로 절대 자기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그때 당시 사람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도장을 빌려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역시 주님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도록 더욱 더 주의하도록 하자. 

 

4. 사랑의 힘(위력)은 대체 어느 정도인가?

  그리고 이어서 '사랑'이 무엇인에 대한 정의가 이어진다. 우선 아가8:6b~7의 말씀을 직역해 보도록 하자.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스올같이 잔인하다. 질투는 불길같이 타오르나니, 그것의 기세가 가장 강력한 불길과 같다. 많은 물일지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할 것이며,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랑은 자기의 모든 재물을 다 주고 사랑을 얻으려고 할지라도 그는 정녕 멸시를 받을 것이다(아8:6b~7)." 그렇다. 본문은 그간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어떻게 사랑해왔는지를 알려주면서 술람미 여인에게 이것을 마음에 새기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사랑의 힘(위력)이 나오고, 둘째는 사랑의 위대함이 나오며, 마지막으로 셋째, 사랑의 값(값어치)가 나온다.

  먼저, 사랑의 힘 곧 사랑의 위력에 대해 살펴보자. 솔로몬은 사랑의 힘을 2가지로 말한다. 첫째는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음부같이 잔인하다(잔혹하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죽음과 음부는 모든 것을 삼켜버리기 때문이다. 이 세상 사람치고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또한 사람이 죽게 되면 음부(스올)가 즉시 와서 그를 삼켜버린다. 그런데 이것을 이겨낼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역시 죽음과 음부(스올)이었다. 사실 요한계시록에서 보더라도, 음부가 사망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사람을 집어삼키는 것을 알 수 있다(계6:7~8). 그런데 참 솔로몬이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그렇다. 이 말씀을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음부의 문들이(gates) 우세하지 못할 것이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 구약시대에는 사망과 음부가 최고의 권세를 가지고 있었지만, 예수께서 오셔서 최초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심으로 인하여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깨뜨리기 시작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을 믿고 따르는 이들도 역시 사망과 음부를 이길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사랑은 죽음처럼 강한 사랑이었다고 한다면, 신약시대의 하나님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5. 사랑의 위대함은 또 얼마나 되는가?

  그렇다면, 사랑의 위대함은 어느 정도인가? 솔로몬은 사랑의 위대함을 질투로 표현한다. 사랑은 불길같이 일어나기에 그것의 기세가 맹렬하여 어느  누구도 그것을 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사랑은 타오르는 불과 같다. 한 번 타오르면 그것을 꺾을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이다. 죽음이 강하고 음부가 잔혹다하고 말하지만, 그것들이 사랑을 꺾을 수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술람미 여인을 위한 솔로몬의 사랑을 아무도 꺾을 수가 없었기에 둘은 결혼에 이를 수가 있었다. 그러면 솔로몬은 대체 얼마나 술람미 여인을 사랑했던 것일까? 한 마디로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에게 있어서 하나 뿐인 사랑이었다(아6:9). 솔로몬에게는 수많은 왕비들과 비빈들(후궁들)과 시녀들이 있었지만 솔로몬에게 유일한 사랑의 대상은 오직 술람미 여인, 그녀 뿐이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바로 자신의 잃어버린 바, 하나 밖에 없는 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그녀가 의붓오빠들(귀신들을 지칭함)에 의해 포도밭에서 고된 노역에 시달리는 것을 구출해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그리고 어떠한 댓가를 지불해서라도 그녀를 거기에서 건져낼 것이라고 결심한다. 그리고 그녀를 연애시절에 '잔치집'으로 데려간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그가 그녀에게 보여줄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오직 그녀만을 사랑하여 반드시 밤의 권세로부터 그녀를 탈출시켜 승리하는 자로 만들어주겠다는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여기에 나오는 '잔치집'은 '연회장'이 아니라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면, '포도주의 집'이기 때문이다. 이는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피흘려 죽음으로서 인류를 구원하시겠다는 청사진을 그녀에게 보여주신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겠다고 하는데 누가 그것을 제지할 수 있겠는가?

  더불어 솔로몬은 이 문장에 나오는 사랑의 기세를 "여호와의 불길"로서 비유하고 있는데, 사실 아가서에서는 이 구절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곳에서도 신앙과 관련된 용어가 하나도 없다는 측면에서 이 구절을 "여호와의 불길"로 번역하기보다는, "가장 맹렬한 불길"로 번역했어야 더 옳아 보인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불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솰르헤베트야[흐]'는 두 가지로 번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마지막에 나오는 단어 '야[흐]'를 '여호와'의 축약형으로 보느냐 아니면 그 단어의 최상급의 표현으로 보느냐 하는 것인데, 아무래도 아가서의 말씀을 일관성있게 풀어가려면 '야[흐']는 최상급의 표현으로 보는 것이 더 옳은 번역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6. 사랑의 값은 얼마나 매길 수 있으며 얼마나 큰 것인가?

  그렇다면,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사랑했던 사랑은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가? 다시 말해 솔로몬이 치른 희생이 대체 얼마나 큰 희생이었던 것일까? 솔로몬은 말한다. "사랑은 자기의 모든 재물을 다 주고 사랑을 얻으려고 할지라도 그는 정녕 멸시를 받을 것이 때문이다" 그렇다. 그분이 술람미 여인을 위하여 곧 인류를 위하여 그분이 치르실 희생의 값은 인간의 재물같은 것으로는 도무지 비교할 수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재물같은 것으로 비교한다면 수치를 당할 만큼 커다랗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요일3:1a)" 또한 요한 사도는 이렇게 계속해서 말한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4:10)" 그렇다. 그분의 불길같은 사랑의 기세를 꺾을 자가 없다. 더욱이 엄청난 값을 치르고서라도 우리 죄인들을 사시어 우리를 구원하시겠다는 그분의 사랑은 값으로 매길 수가 없는 것이다. 

 

7. 나오며

  우리는 그동안 아가서를 남녀간의 연애담 정도로 생각했다. 물론 그것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을 노래한 것이라고 들어오기는 했었다. 하지만 남녀간의 사랑의 표현이 지나친 것들이 많이 있어서, 읽는 독자로 하여금 당혹하게 한 것이 한 둘이 아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성도라도 아가서를 선뜻 읽기란 쉽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 22번의 강해를 통하여 서서히 그 실상을 살펴 보니, 아가서야말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경륜이 집약된 책 중의 책이며, 누가 과연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보석 중의 보석과도 같은 말씀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천국에 들어갈 신부들의 등급까지도 표현해 놓은 아가서는 실로 놀라운 구약의 복음서 중의 복음서요 구약의 요한계시록이었던 것이다. 특히 아가서 8장 1~2절에 나오는 표현을 통해, 우리는 아가서가 연애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경륜을 소개하는 책이라는 사실과 아울러, 솔로몬이 자기자신의 사랑을 말하려고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라 장차 오실 그리스도가 어떤 사랑으로 인류를 사랑할 것인가를 알려주는 책이라는 것도 살펴보았다. 놀랍고도 놀랍기만 하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이 말이다. 그리고 그분의 죽음같이 강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해준 것에 대해 무어라 감사의 말을 드려야 할 지 모를 지경이다. 오직 주 예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릴 뿐이다. 

 

 

2021년 10월 17일(주일)

정병진목사

 

 

아가서는 연애편지인가? 아니면 '사랑'을 주제로 한 강의안인가? 아니다. 아니, 이 책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냥 눈물이 난다. 주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는지가 가슴 깊이 절절히 사무쳐 오기 때문이다. 아가서는 처음부터 가곡시로서 연극 무대에 올려지기 위해 쓰여진 책이다. 하지만 이 대본을 통해서 만세 전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엿볼 수 있으며, 그분이 다시 잃어버린 신부를 찾기 위해 어떤 희생을 감수하실 것인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자, 오페라 대본인지라 누가 말하고 있는지조차 구분하기가 쉽지 않지만, 아가서의 그 놀라운 세계로 우리 함께 들어가 보자.

 

2021-09-26(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신부(11) [아가서강해(01)] 아가서(노래들 중의 노래) 대체 어떤 책인가?(아1:14, 2:2)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2hYffPQPjGI  [혹은 https://tv.naver.com/v/22646031  ]

 

1. 들어가며

  천국 곧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려면 사실 세 가지가 준비되어야 한다. 하나는 회개하는 자가 되는 것이요 또 하나는 영적 전투에서의 승리하는 전사가 되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하나는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는 자 그래서 정결하고도 정절을 지키며 단장하는 신부가 되어야 한다. 그중에서 오늘부터는 세 번째에 해당하는 신부에 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하는데, 그 주제는 역시 한마디로 정리하면 참으로 놀라운 '사랑'이다. 왜냐하면 신부라는 것은 신랑만을 사랑하는 존재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만세 전부터 사랑하셨다는 말은 대체 무슨 뜻이며,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또한 무슨 뜻인가? 그래서 오늘부터는 그 말씀을 나누기 위하여 '신부의 단장 교과서'로 알려져 있는 '아가서'를 들여다 보려고 한다. 아가서는 그 주제가 일편단심으로서 오직 신랑되신 한 분 예수님을 사랑하는 신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가서는 어떻게 그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것인가?

 

2. 아가서가 성도들에게 잘 읽혀지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고전 복음성가 중에서 잘 알려진 노래에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땐'이라는 찬양이 있다. 그런데 이 찬양 가사에 보면 '가시밭의 백합화'가 나오고, '동남풍아 불어 서북풍아 불어라'라는 가사도 나온다. 그런데 이 가사의 출발은 구약의 '아가서'에서다. 아가서의 말씀들 가운데서 따온 것들이기 때문이다(아2:2, 4:16). 그런데 노래로는 이처럼 잘 알려진 아가서가 실은 성도들에게는 잘 알려지지도 않은 책일 뿐만 아니라 또한 성도들도 잘 읽지도 않는 책이라는 사실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이 책에서 신앙을 담고 있을 법한 문구가 전혀 등장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 어디에도 '하나님' 혹은 '여호와'라는 말씀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거기에다가 신앙적인 표현마저도 전혀 등장하지 않고 있다. 오직 나오는 것은 연애 감정이 물씬 풍기는 세속적인 표현 같은 것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을 성경에서 조금 제껴 놓으려고 한다. 읽어보면 꼭 연애편지와 같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는 이 책을 솔로몬이 쓴 책이라고 생각하니 더욱더 가까이 하고자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솔로몬이 처음에는 참으로 신앙적으로나 인격적으로 훌륭한 인물이었으나 후반에 가서 많이 많이 타락해 버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많은 여자들을 거느렸던 솔로몬이 어느 한 여인, 즉 술람미 여인을 좋아했다는 이야기는 기분 좋게 들리지 않는다. 비와 빈을 1,000명이나 거느렸던 솔로몬에게 여자는 한낱 놀이개나 장식품과도 같이 취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왕이 어느 시골 처녀인 술람미 여인을 사랑해서 그녀와 결혼했다는 이야기는 그리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더욱더 아가서 읽기를 꺼려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성경만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깊이 있게 연구하는 유대인 랍비들 중에 어느 누구도 이 책을 정경의 목록에서 제외시킨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 말씀에 담겨 있는 진정한 핵심을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겉으로 표출된 연인들의 이야기로만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우리는 다시 이 책 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책을 성령의 영감으로 솔로몬으로 하여금 기록하게 하였던 이유와 주님께서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려고 이 책을 쓰게 하셨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이 책에 담겨 있는 놀라운 영적인 은혜가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바란다. 

 

3. 아가서는 대체 어떤 책인가?

  아가서는 구약 39권의 성경책들 가운데 시가서에 해당하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가운데에서 맨 마지막에 위치하고 있는 책이다. 유대인들은 이 책을 유월절에 읽는다고 한다. 왜 그럴까? 우선 우리가 알 것은 이 책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먼저 표현 양식부터 다르다. 이 책은 처음부터 아예 노래(가곡)를 부르기 위해 특별히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솔로몬과 어느 시골 처녀와의 러브스토리를 노래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제목부터 다르다. '쉬르 하쉬림'이기 때문이다. 이는 한글로 번역하면 '노래들 중의 노래'라는 뜻이다. 그런데 사실 솔로몬은 잠언을 무려 3,000가지나 말했으며, 노래도 1,005개를 작사하였으니 이 노래도 1,005개의 노래들 가운데 하나에 해당한다(왕상4:32). 그런데 솔로몬은 이 책을 '노래들 중의 노래'라고 칭하였다. 지금까지 현존하는 솔로몬의 노래가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오직 아가서는 솔로몬이 지은 노래 중에 지금까지 우리에게 남겨져 있는 유일한 책이자 가장 중요한 책인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구조와 내용을 보면, 앞부분으로서 1~5:1에는 솔로몬이 결혼하기까지의 과정이 담겨 있고, 결혼 이후의 삶은 5:2~8장에 이르는 후반부에 담겨 있다. 

 

4. 아가서에만 발견할 수 있는 놀라운 특징들은 무엇인가?

  그런데 아가서는 좀 특이하고 특이하다. 특히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첫째, 이 책은 에스더서와 같이 '하나님, 여호와'라는 표현이 한 번도 안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도 에스더서는 신앙에 관한 단어들은 나온다. 하지만 아가서는 단 한 가지도 신앙 관한 용어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처음부터 정경 목록에 들어갔다는 것은 구속적으로 보았을 때에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음을 미리 짐작할 수 있다. 둘째, 이 책은 상황 설명 부분조차 없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아가서는 연극 대본처럼 등장 인물들의 노래만이 나온다. 그러므로 이 책의 제목을 소개하고 있는 아가서1:1을 제외하고는, 전부가 다 가곡의 대본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이 책을 이해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공연 현장에서 이 책을 본다면 누가 말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겠지만, 이 책만으로는 이 내용을 누가 노래하고 있는지 알기가 여간 쉽지 않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는 부분이 많이 나온다. 셋째, 이 책이 시가서인만큼 상당히 함축적인 표현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소재들 안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어떤 영적인 진리가 가득 숨겨져 있는 것이다. 한 예를 들어 살펴보자. 아가서 6:8~9에는 솔로몬에게 당시 왕비가 60명이 있고, 후궁이 80명이 있으며, 시녀가 무수하다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아가서 3:7~8에 보면, 솔로몬왕에게는 칼을 잡고 있는 이스라엘 용사 60명이 붙어 있다고 나온다. 그런데 실제로 천국에 올라가 보면, 왕권 신부에게는 왕후 신부격의 용사들 60명이 호위하고 있고, 왕후 신부에게는 비빈(후궁) 신부격의 용사들 80명이 호위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고로 여기에 등장하는 식물의 이름이나 색깔들 그리고 숫자 하나에도 다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고벨화와 백합화에도 어떤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으며,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에게서도 어떤 영적 의미가 있으며, 바알하몬 포도원이나 호도동산이라는 말 속에도 영적인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다. 

 

5. 아가서의 핵심 주제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아가서의 핵심 주제는 무엇인가?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간의 사랑 이야기'인가? 물론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두 연인간의 사랑을 노래하는 책으로써 쓰여진 것이 아니라, 동시에 구속사적으로 매우 영적인 의미를 기록하고 있는 책이라는 사실이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과 식물까지도 다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에게 어떤 영적인 의미가 있는지를 살펴보자. 솔로몬왕은 왕관을 쓰고 있는 예루살렘의 왕이다. 이는 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대로 표현해 주고 있다. 그리고 솔로몬이 사랑했던 유일한 여자 곧 술람미 여인은 그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단지 술람미의 여인이라고 나온다. 왜 그런가? 그것은 솔로몬의 짝은 오직 술람미 여인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술람미'는 '솔로몬'(평화)이라는 이름의 여성 명사형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처음부터 솔로몬과 원래 하나였던 자기의 신부를 찾아내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었던 것이다. 이는 마치 창세기 2장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이쉬'(남자)에서 '이솨'(여자)가 나왔던 것처럼, 솔로몬(남성 명사)에게서 나온 술람미(여성 명사) 여인을 그대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에 140명의 왕비와 비빈이 있었어도 그들은 다 솔로몬왕의 진정한 짝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의 짝은 오직 하나 '술람미 여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보잘것없는 시골 처녀를 신부로 맞이하기 위해 왜 왕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게 되었는지가 설명이 된다. 잃어버린 자신의 짝을 찾아야 솔로몬도 온전한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로 솔로몬에게 술람미 여인은 자신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둘은 첫눈에 다 그것을 알아본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자기의 짝을 발견했다고 직감한 것이다. 둘째, 여기에서 술람미 여인이 소개하고 있는 솔로몬의 뛰어남과 그리고 솔로몬이 사랑하고 있는 여인의 아름다움은 참으로 만세 전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바로 그 모습을 소개해 준다는 것이다. 솔로몬이 아무리 지식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는 남자이기에 여자만이 알 수 있는 섬세함은 따라갈 수가 없다. 하지만 그것이 이 시에 표현되어 있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만이 이 책의 진정한 저자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그래서 이 책은 높으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어떻게 가시밭에서 고생하고 있는 인간을 아내로 취하시는 것인지를 그대로 표현해 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서로는 서로를 알아보고 최고의 언어로 서로를 축복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이 책에 나오는 모든 등장 인물과 식물과 동물들 그리고 숫자까지도 실은 다 영적인 의미를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솔로몬왕과 술람미 여인 둘이 처음부터 첫눈에 반하게 되고 연애하면서 그들이 상대방을 위하여 노래하는 노랫말 가사에도 어떤 영적인 의미들이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6. 고벨화와 백합화 속에 담겨 있는 영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솔로몬왕에게는 바알하몬에 포도원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그가 그 밭을 은 일천 개로 세를 놓았는데 묘하게도 그 밭을 술람미 여인의 오빠들이 세로 얻는다. 그런데 오빠들은 아직 젖가슴이 나오지도 않은 어린 여동생에게 그 밭을 맡겨 버린다. 그러자 그 아가씨는 그 포도밭에 가서 일면서 가시에 찔리고 억새풀에 상처를 입지만 그 밭에서 열심히 일한다. 그래도 포도밭에 들어와서 포도원을 망치고 있는 여우는 잡지 못한다. 그러던 중에 솔로몬이 가마를 타고 자신의 왕비 60명과 비빈 80명과 무수한 시녀들 그리고 호위하는 군사 60명을 데리고 그 밭을 시찰하러 오게 된다. 그리고 둥그런 식탁을 베풀었는데, 거기에는 포도원지기인 술람미 여인도 배석하게 되었고, 그 동네의 여자들도 구경꾼으로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그때 둘은 처음부터 서로가 누군지를 알아본다. 자신의 유일한 짝이 바로 상대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둘은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데, 그때 여자가 남자를 향하여 부른 노랫말 가사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이다.

  그녀는 솔로몬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의 사랑하는 자(내 님)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아1:14)". 그러자 솔로몬왕도 그녀를 보고서 말하기를 "여자들 가운데 있는 내 사랑(술람미여인)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아2:2)"고 하면서 노래로 화답한다. 그런데 좀 전에도 말했지만 이 책은 가곡시로서 함축적인 표현들로 가득차 있는 시다. 그러므로 이 책에 나오는 21가지 꽃들 가운데, 여자가 왜 남자를 보고 '엔게디 포도밭의 고벨화 송이'라고 했는지를 살펴아야 한다. 그것은 그 꽃의 색깔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꽃은 적갈색의 고벨화로서, 꽃잎의 바깥쪽 부분은 피로 얼룩져 있지만 그 안에 흰색의 깨끗한 옷을 입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가시밭에 있는 여인을 왕이 다시 자신의 신부로서 삼기 위해 피 흘릴 것을 꽃이 말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도 둥그런 식탁에 자신이 초대받았을 때에 벌써 나도(나드) 기름으로 향기를 발하고 있었으며, 자신의 가슴에는 몰약 향주머니를 차고 있었다. 마치 마가복음 14장에서 죽기 위해서 오셨으나 아무도 주님의 죽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과는 달리, 주님의 죽음을 미리 슬퍼하기 위해 순전한 나드 옥합을 깨뜨린 여인처럼, 술람미 여인도 순전한 나드 향유를 깨뜨린 채 그 자리에 참석하고 있었던 것이다(막14:3,8~9). 그리고 주께서 죽으신 후 그 시체에 발라 드릴 몰약을 이미 그녀도 가슴에 차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시골에 사는 보잘것없는 처녀, 가시나무에 긁히어 상처로 가득한 그 처녀를 왜 솔로몬이 사랑했는지를 알게 된다. 왜냐하면 그녀는 잃어버린 원래의 자기의 짝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솔로몬은 그녀를 두고 말한다. "내 주변에는 참으로 여자들이 많이 있어, 왕비도 60명, 비빈도 80명, 시녀들도 무수하다고 말들은 하지만, 다 정략적인 결혼으로 맺어진 것 뿐이오. 그러니 내 사랑은 이들 중에서 오직 한 사람 시골 처녀인 당신 뿐이라오. 그대는 내게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이기 때문이요".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가시나무'는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세상에서 고생하고 있는 아담의 신부 하와를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백합화'는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흰색의 릴리가 전혀 아니다. 이 백합화는 빨간색의 아네모네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이 꽃을 결코 흰색의 '릴리'로 보지 않는다. 가서 물어보라. 이 꽃은 빨간색의 꽃잎으로 둘려 있는 '아네모네'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 꽃을 찬찬히 보면 이 꽃모양이 거의가 다 적갈색의 고벨화를 쏙 빼어 닮았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바깥쪽은 빨간색이지만 안쪽에는 흰색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꽃의 한가운데에는 보라색(자주색)의 수술들이 달려있다. 그런데 이 보라색은 왕이나 왕비가 입는 옷을 상징하며, 꽃망울을 터뜨릴 때까지는 숨겨져 있는 것이 보라색 수술인 것을 알 수 있다. 고로 이 백합화(아네모네)는 장차 천국에서 왕비로 등극할 하늘 왕의 신부인 성도들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이 여인은 비록 이 세상에서 뒤엉켜 힘겹게 살고 있는 시골 처녀에 불과한 존재이지만 사실은 장차 하늘나라에서 왕비가 될 존귀한 여인으로 예정된 자이다. 그러니 주님께서도 그 여인을 다시 자신의 아내로 맞이들이기 위해 기꺼이 고벨화처럼 피 흘려 죽는 것을 자청한 것이다. 신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핏으로 물들인 옷을 입기를 자청하였던 그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인 것이다. 

 

7. 나오며

  시골 처녀에게 있어서 솔로몬 왕은 언감생심의 대상일 뿐이었다. 솔로몬은 왕궁에 거하 수많은 왕비들과 비빈들과 궁녀들 속에 살고 있었다. 그러므로 시골 처녀가 그분의 왕비가 된다는 것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둘은 보자마자 서로를 알아보았다. 원래 솔로몬 유일한 짝이었던 그녀를 솔로몬도 금방 알아보았고, 그녀도 비록 자신은 가시밭에 있는 들꽃에 불과한 존재이지만 그녀의 짝은 오직 그분이라는 것을 알아본 것이다. 이것을 노래로 부르고 있는 것이 바로 아가서 1장과 2장의 내용이다. 그리고 3장에 가면 이제 솔로몬이 그녀에게 청혼을 하게 된다. 그러자 그녀가 말한다. "포도원에 작은 여우들이 있는데 그것을 잡아주면 결혼을 하리다." 그래야 그녀의 과업도 끝나기 때문이다. 그러자 왕은 여우 곧 영적으로 볼 때에 사탄 마귀와 귀신들을 잡아주겠노라고 말씀한다. 그러자 결혼식이 치러진다. 그리고 왕은 그녀를 왕권 신부로 맞이고, 그녀에게 60명의 비빈 신부격의 사람들을 붙여 준다. 진짜 하늘의 진정한 왕비가 된 것이다. 그렇다. 아가서는 그냥 단순한 연애 편지의 책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책은 만세 전에 하나님이 품으신 뜻을 계시하고 있는 심오한 책이다. 처음에 짝으로 주어졌던 잃어버린 신부를 찾아 나선 하늘 왕의 이야기가 이 책인 것이다. 그리고 포도밭(교회)에서 힘들게 여우를 잡느라 고생하는 신부의 과업 성취되도록 기꺼이 여우를 잡아 주면서 신부를 위해 호위병을 배치해 주고 있다. 참으로 가슴 벅찬 이야기다. 우리 믿는 이들이 만세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 속에 주님의 거룩한 신부였다는 것도 놀라운 이야기이겠지만, 이 잃어버린 신부를 위해 자신은 죄가 전혀 없으셨만, 핏으로 물들인 옷을 입고서 장차 신부를 위해 목숨을 내놓기 위해 그것도 신부가 일하는 포도밭에서 한 송이 꽃으로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를 위해 기꺼이 한 송이의 고벨화가 되어 주신 주님께 오직 감사와 영광과 찬양과 존귀를 올려 드린다. 

 

2021년 09월 26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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