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을 오늘날 모든 기독교인들도 여전히 지켜야 하는가? 그리고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밤에 제자들과 체결하신 '새 언약'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오늘날 유월절과 새 언약을 왜곡시켜 사람을 미혹하고 있는 이단들은 이 단어들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고 있는가? 그들은 무엇을 잘못 알고 있으며, 잘못 믿고 있는가? 그들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약점은 무엇이며, 오늘도 우리들은 어떤 의미로서 유월절과 새 언약을 준수해야 하는가?

2021-11-21(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이단들이 말하는 유월절과 새언약, 무엇이 문제인가?(눅22:14~23)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at9PzWkvMRU [혹은 https://tv.naver.com/v/23740239 ]

 

1. 들어가며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새 언약'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육신을 가지신 예수께서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전날 밤,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후 그분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절기를 지키면서 저녁식사를 하셨다. 그리고 유월절 식사를 마치신 후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찬식을 제정하셨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서 그것을 당신의 몸과 피라고 하시면서 그들과 '새 언약'을 체결하셨다. 그때 예수께서는 무교병의  떡을 가지고서 그것은 그들을 위하여 주는 당신의 몸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잔을 들고서는 그것은 그들의 속죄를 위하여 흘리는 바 당신의 피로서, '새 언약'을 체결하신다고 하셨다. 이 언약은 구약시대에 세우셨던 '옛 언약'과는 비교할 수 없기에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천오백년동안 지속되어온 유월절을 끝내셨다. 그리고 주님의 몸과 피로서 당신을 믿고 따라오는 제자들과 새 언약을 체결하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신종 이단들은 유월절과 새 언약의 개념을 예수님의 말씀과는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다르게 적용하고 있다. 그럼 그들은 대체 유월절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으며, 새 언약을 어떤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것인가? 특별히 오늘은 '성찬주일'을 맞이하여 이단들이 사용하고 있는 '새 언약'과 '유월절'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그들이 얼마나 성경을 왜곡시키어 사용하고 있는지, 왜 그들은 그렇게 중요한 성찬식을 행하지 못하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하나님의 교회(안상홍증인회)는 왜 오늘날도 여전히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3. 하나님의 교회, 무엇이 문제인가?

 

 

 

4. 신천지에서는 왜 이만희를 '새 언약의 사자'라고 말하는가?

 

 

 

5. 신천지, 무엇이 문제인가?

 

 

 

6. 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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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21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종말론자들이 알레고리적으로 잘못 해석하면 어떻게 되는가?(마24:32~39)_2020-03-04(수)

https://youtu.be/HN-Vsr-KOyE

 

1. 비유와 알레고리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비유"란 어떤 실체를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어떤 것으로 빗대어서 설명하는 수사법입니다. 그것의 특징으로는 비유는 실체의 어떤 한 면만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비유 자체를 가지고 또 다른 의미를 또 찾아가면 안 됩니다. 그 본문에서 실체가 무엇인지를 파악한 뒤에 그 실체를 설명하기 위해 어떤 비유를 썼는지를 확인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레고리"는 이와 다릅니다. 알레고리는 화자(저자)가 원래 생각하고 있는 실체에 대한 비유가 아니라, 그 비유에 대한 그림자를 다른 비유를 가지고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화자가 그 비유의 의미를 설명해주지 않으면 결코 알기 어려운 수사학적인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오는 비유는 반드시 설명에 첨가되어 있습니다(마13장에 나오는 "씨뿌리는 자의 비유"와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 등). 그러므로 설명이 나와있지 않은 비유는 단순한 비유일 뿐 알레고리가 아니라고 보시면 됩니다.

 

2. 예수께서 당신이 재림하실 때를 위해 사용하신 "무과과나무의 비유(마24:32)"는 비유일까요 알레고리일까요?

  어떤 비유가 단순한 비유인지 아니면 알레고리적인 비유인지는 사실 처음 볼 때에는 문맥을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어떤 특별한 설명이 없이 어떤 요점을 보다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비유입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화자의 설명이 부가적으로 나올 경우에는 알레고리적인 비유인 것입니다. 그럼, 마24:32에 나오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어떤 것입니까? 결론적으로 그것은 단순한 비유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님께서 주님이 다시 오시마고 약속한 때가 되면 여러가지 징조들이 나타나게 될 것인데, 만약 주님께서 말씀하신 징조들이 쭉 나타나는 것을 볼 때면 주님의 재림의 때가 가깝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드신 비유이기 때문입니다. 그 비유는 이렇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것의] 가지가 연하여지고(부드러워지고) 잎사귀를 내면(잎사귀들이 움트고 있을 때에는) 여름이 가까운 줄을 [너희가] 아나니(마24:32), 이와같이 너희도 [역시] 이 모든 일[들]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문 앞에 이른 줄(있다는 것을) 알라(알고 있으라)(마24:33)" 그렇습니다. 이 비유에 있어서 실체는 "이 모든 것들"이며, 그 실체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비유가 "무화과나무"일 뿐입니다.

 

3. 그럼, 무화과나무의 실체는 무엇인가요?

  그러므로 무화과나무의 실체는 "이 모든 일들"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화과나무가 싹을 내는 것은 곧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에는 "무화과나무"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일들의 성취"를 통해서 주님의 재림의 때가 가깝다는 것을 알아차리라는 데에 있습니다. 주께서는 그것을 자연현상을 통해서 설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성취가 되는 것을 보면 인자가 문 앞에 있다는 것을 알라"는 것에 대한 비유가 바로 "무화과나무가 잎을 내는 것"입니다. 고로, 이 본문은 우리는 무화과나무에서 어떤 심오한 뜻을 찾아내려고 힘쓸 것이 아니라, 주님이 말씀하신 "이 모든 일들"의 성취를 살펴봄으로서 그 날이 가까이 왔음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 모든 일들"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본문의 윗부분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징조들(마24:5~29)을 가리킵니다. 그러한 징조들로서는 "거짓그리스도의 출현(5절)", "난리와 난리의 소문(6절)', "민족간, 국가간의 전쟁, 기근과 지진(7절)","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받는 핍박(9~10절)", "거짓선지자의 출현과 미혹(11절)", "불법의 성행과 사랑의 식어짐(12절)', "천국복음의 온 세상 전파(13절)",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는 것"(15절)과 "유대인들의 도망(16~20절)", "큰 환난(21~22절)", "재림예수의 출현(23,26절)", "거짓그리스도, 거짓선지자의 출현과 미혹(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까지 미혹하는 것)(24절)", "전쟁으로 인한 엄청난 시체들(28절)", "해와 달과 별들의 이상 및 하늘의 권능들의 흔들림(29절)". 고로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면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가 가까이 왔다고 알라는 것입니다.

 

4. 그럼,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들이 다 일어나리라(마24:34)"는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요?

  그럼, 주님께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신 후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들이 다 일어날 것이다"고 하신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여기서, "이 세대"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안타까운 일은, 시한부종말론자들이나 세대주의자들은 "무과화나무가 싹이 나는 것"을 알레고리로 해석해버린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무화과나무"의 단어에 대한 짝을 찾아서 무화과나무의 실체를 밝히려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렘24:5~7의 말씀을 가져와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이라고 되어 있으니, "무화과나무가 싹을 내는 것"은 "이스라엘의 독립"이라고 해석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한 세대"를 계산합니다. 고로 이스라엘이 1948년 5월 14일에 독립했으니, 그때로부터 한 세대를 계산하는 방식이죠. 지금까지 해석해온 바 한 세대는 "첫째는, 광야40년이다(1988년). 둘째는, 희년50년이다(1998년). 셋째는, 남유다의 바벨론포로생활 70년이다(2018년). 넷째는, 노아의 홍수 100~120년이다(2048~2068년)"라고 해석한 것입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해석은 엄청난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33절에 나오는 "이 모든 일들"이 성취되는 것에 대한 비유로서, 무화과나무를 말하고 있을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무화과나무"는 "이 모든 일들"에 대해 비교되는 단순한 비유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무화과나무"를 알레고리로 해석하여 "이스라엘"이라고 해석한 것을 가지고, 누군가 한 세대를 계산하였으니, 문맥에서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아닙니다. "무화과나무가 싹을 내는 것"은 자연현상을 비유로 든 것일뿐 "무화과나무" 자체에 어떤 뜻이 숨겨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무화과나무"에 어떤 뜻이 숨겨져 있었다면, 누가복음의 평행본문의 말씀은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한다는 것일까요? 즉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들을 보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눅21:29~30)". 그럼, "모든 나무"도 알레고리로 풀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닙니다. 자연에 있는 나무들이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summer)이 가까이 온 것을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그 모든 일들"이 성취되는 것을 보면 예수님의 재림의 날이 가깝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5. 알레고리의 해석의 위험성은 무엇인가요?

  그러므로 단순한 비유의 말씀을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해버리면 이렇듯 큰 낭패를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재산과 생명과도 관계된 것이라면 더 큰 일들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신천지가 바로 성경말씀을 알레고리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교리를 만들어 사용합니다. 그러니 그들은 너무나 위험스러운 시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알레고리 해석은 과거에도 살펴보았지만 해석하는 자가 자신의 입맛대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에, 신천지 이만희는 그것을 잘 알고서, 알레고리적인 해석인 "비유풀이"와 "짝풀이"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을 고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신천지식의 알레고리 해석이 오늘날 기독교 내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종말론"성경해석입니다. 이것을 알레고리로 해석하여 교리로 만든 자들이 바로 "세대주의자들"이요, "환난전 휴거론자"입니다. 이들은 환난전휴거는 마24장에는 나오지 않지만 숨겨져 있다고 주장합니다. 분명히 예수께서는 "환난 후에" 오시겠다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마24:29), 이것을 깡그리 무시하고, 도둑이 은밀하게 와서 보석을 훔쳐가는 것처럼 은밀하게 공중으로 재림하실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알레고리 해석을 가지고 교리를 만들면 이와같은 대참사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참된 길을 가려는 우리는 결단코 이러한 우를 범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2020년 03월 04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경에 나오는 비유와 알레고리의 차이점은 무엇인가?(마13:34~43)_2020-03-02(화)

https://youtu.be/DXfJUhwUmWM

 

1. 오늘날 신천지에서 사용하는 "비유풀이"와 "짝풀이" 성경해석방법의 원류는 무엇인가요?

  오늘날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과 같은 사이비이단에서 사용하는 "비유풀이와 짝풀이"는 사실 오래된 성경해석방법의 하나였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그것을 "알레고리적 성경해석방법"이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초기교부 오리겐(A.D.185~254) 때에 꽃을 피웠는데, 오리겐도 사실은 자신의 스승이었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A.D.150~215)로부터 베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경해석방법이 우리나라 이단교주들에게서도 사용되어지고 있다는 점은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니까 "비유풀이와 짝풀이"는 한국식의 토종 알레고리 성경해석방법이었던 것입니다.

 

2. 알레고리 성경해석방법은 어떤 성경해석방법인가요?

  알레고리 성경해석방법은 비유를 해석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알레고리도 비유라는 의미에 있어서는 서로가 공통분모를 갖고 있습니다. 특히 알레고리도 "비유"라는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있기에, 알레고리 성경해석방법은 비유성경해석방법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알레고리"란 무엇인가요?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비유"가 무엇인지부터 잘 이해해야 합니다. "비유"란 헬라어로 "파라볼레"라는 단어인데, "파라(=옆에, 곁에)"와 "발로(두다)"가 합쳐진 것으로서, 이는 어떤 것을 다른 것의 곁에 놓음으로써 서로 비교하여 뜻을 밝혀주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심오한 사상이나 어려운 이야기를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실례에 빗대어 명쾌하게 설명하려는 이야기진행방법의 하나가 비유 성경해석방법인 것입니다.

 

3. 비유 성경해석방법이란 무엇을 가리키나요?

  비유 성경해석방법이란 어떤 보이지 않는 것이나 추상적인 개념을 누구든지 알기 쉬운 일상의 실례를 통해서 설명해주는 성경해석방법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비유"를 사용하려면 반드시 먼저 실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실체를 설명하기가 복잡하고 어려우니까 그것을 좀 더 쉽게 설명해주기 위해서 빗대어 사용하는 어떤 것이 비유인 것입니다. 그러나 비유란 어쩌면 알레고리와는 정반대되는 논리라고 보시면 됩니다. 알레고리는 실체는 화자(말하는 자)가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을 화자는 이야기할 때에는 그것의 그림자만을 가지고 이야기할 뿐 실체를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에, 독자 혹은 청자는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알레고리 비유는 말하는 자가 그것이 무엇이라고 나중에 설명해주지 않는 한 그 의미를 전혀 알아차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에서는 그것을 암호화된 "수수께끼"라고 불렀습니다.
 

4. 비유를 알레고리로 잘못 해석한 용례는 대표적인 용례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요?

  그러므로 우리는 비유와 알레고리를 잘 구별하여 성경을 해석해야 합니다. 우선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는 마24장(종말장)에서 당신이 언제 오실지에 관하여 하나의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도둑같이 오신다"는 것입니다(마24:43). 그러면 여기서 예수께서 "도둑같이 오신다"는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무엇 때문에 예수께서 이 비유를 가져다 쓰신 것인가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갑자기(느닷없이, 갑작스럽게) 혹은 예기치 않게" 오신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재림의 돌발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앞뒤 문맥을 통해서 보다 더 명확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24:42-44)"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예수께서 예기치 않은 시간에 갑자기 들어닥칠지 모르니까 깨어있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혹시 악하고 게을러서 동료들을 치고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다가 갑작스럽게 주님을 맞이하면 책망을 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도 알레고리로 푸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도둑같이 오신다는 것은 "은밀하게 오신다"는 뜻이라고 해석합니다. 어떤 도둑이 예고하고 그 시각에 오는 도둑이 보았으냐면서, 도둑은 알 수 없는 시각에 은밀하게(몰래) 오는 것인만큼 예수께서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오실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리고 도둑이 오는 것은 집 안에 있는 보석을 살짝 훔쳐가기 위해서 온다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도둑같이 오신다는 말씀의 의미는 예수께서 어느날 은밀하게 오셔서 보석만 몰래 훔쳐간다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은 공개적인 재림(지상재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은밀하게 오시는 재림(공중재림)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환난전에 공중에 은밀하게 오셔서 몇몇 알곡신자만을 휴거시켜서 공중에서 7년동안 혼인잔치를 할 것이고, 나머지는 버려둠을 당한 채 지상에서 환난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말을 들은 사람은 자신이 버려져서 환난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갑자기 생깁니다. 그러므로 그는 날마다 주님이 언제 오시는 것인가(시간만)만 관찰합니다. 그러므로 7년 대환난은 예루살렘 제3의 성전이 새워져야 시작된다고 했으니(그러나 이는 다 잘못된 해석입니다), 아직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지 안았으니 아직은 아니로구나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들은 제3의 성전이 세워지기 전에 은밀하게 휴거가 있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날 자신이 남겨지지 아니하고 주님의 공중재림 때에 꼭 휴거되기 위해 날마다 종말의 징조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런데 이게 다 잘못된 성경해석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유는 실체의 어떤 한 국면을 설명하기 위해 빗대어서 가져온 개념이므로, 비유의 단어 안에 감추어진 모든 의미를 본문의 성경해석에 다 사용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도둑같이 오신다"는 말씀의 비유는 오직 한 가지 의미 곧 주님은 "갑작스럽게, 예기치 않은 때에" 온다는 뜻이지, "은밀하게 온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비유가 아닌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목회자가 "도둑같이 오신다"는 비유는 예수께서 은밀하게 오셔서 알곡만을 공중으로 데려가 거기서 혼인잔치를 한다"고 설명하면, 그만 "이것은 참으로 심오하도다. 도둑같이 오신다는 말에 이런 깊은 영적인 의미가 숨어있었구나"하고 감탄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예수님께서 "도둑같이 오신다"는 말씀의 감추어진 비밀한 뜻이라고 여기고는 그 해석에 깜빡 속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리까지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환난전휴거설"이요, "세대주의종말론"이라는 교리입니다. 이것이 바로 비유말씀을 알레고리로 해석하여 말씀의 본래적인 의미를 망쳐놓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5. 비유와 알레고리의 차이점은 대체 무엇인가요?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의 비유에는 오직 한 가지 의미 내지는 한 가지 요점만을 말하고 있다고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알레고리는 말하는 화자가 어떤 의미로 말을 했는지 독자나 청자는 그림자만 보고서 찾아내는 것이기 때문에, 화자가 말하려는 의도에 맞춰 그 의미를 찾아내면 좋겠지만, 만약 화자가 말하려는 의도와는 전혀 다른 뜻으로 해석해버리면, 그것은 원래의 뜻과 완전히 다른 뜻의 또 하나의 비유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알레고리 비유는 해석을 잘 해야 합니다. 해석을 잘못하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알레고리 해석방법을 이단이 제일 많이 사용하는 성경해석방법이며, 그것을 통해 사이비이단의 교주에게 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기교부 오리겐은 알레고리 해석은 오직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어 해석할 때에 진짜인 것이지, 그것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해석할 때에는 매우 위험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천국비유들 가운데, 예수님께서 설명해주신 처음 두 가지 알레고리 비유("씨뿌리는 자"의 비유와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가지 비유는 오직 한 가지 주제(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가져온 비유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서 또다른 의미를 도출하려 시도한다거나, 거기에 나오는 낱말(단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여 다른 뜻을 도출해내려 한다면 이단이 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천국에 관한 다양한 방면은 다 하나의 비유를 통하여 한 가지 요점만을 말씀하는 것이지, 결코 하나의 비유로서 그 단어 안에 숨겨있는 다른 뜻까지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면 그것은 알레고리적인 해석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있는 것이며, 만약 다른 성경의 말씀과 일치하는 것이 않는 것이라면 매우 위험한 해석이 되고마는 것입니다.

 

2020년 03월 02일(월)

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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