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천국복음(01)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마4:17)_2022-02-21(월)

https://youtu.be/2iMh-QD7aWo  [혹은 https://tv.naver.com/v/25310479 ]

 

1. 왜 우리는 천국 알기를 사모하고 또 천국을 구해야 하는가?

  천국은 믿기만 하면 그냥 얻어지는 것인가? 아니다.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의 말씀 가운데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는 찾으려고 하는 자라야 비로소 발견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마6:33). 그것도 그것을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찾으려고 하는 자가 발견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을 뒤집어 놓고 보면, 천국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지 않는 자에게는 열려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천국이 무엇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천국을 사모하지도 않는 자에게 하나님은 천국을 열어서 보여 주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천국을 마치 좋은 진주들을 찾고 있는 장수와 같다고 하셨다(마13:45~46). 그런 자가 어느 날 지극히 값비싼 진주 하나라도 발견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 진주가 얼마나 좋은지 진주 장수는 그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소유를 다 처분하여 그 진주를 샀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천국의 가치를 아는 자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 댓가를 지불하고 그것을 사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천국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하고 천국을 얻기를 사모해야 한다. 그런 자가 어느 날 값진 진주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2. '천국'이라는 단어는 성경 어디에 나오는가?

  성경에 보면 '천국'이라는 단어도 나오고, '하나님의 나라'라는 단어도 나온다. 이 둘은 같은 것을 가리키는 다른 표현인가? 아니면 둘은 서로 다른 개념인가? 사실 '천국'이라는 단어는 마태복음(36회)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 사도 바울의 서신서에 나올 뿐이다(딤후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후4:18)" 그런데 디모데후서 4:18에 나오는 '천국'은 '하늘에 속한 왕국' 혹은 '하늘에 있는 왕국'이라는 뜻이지만, 마태복음에 나오는 천국은 '하늘들의 왕국'이라는 뜻이다. 디모데후서 4:18에 나오는 '하늘'은 형용사로서 '에푸라니오스(heavenly)'라는 단어이지만, 마태복음에 나오는 '하늘'은 복수 명사로서 '우라논(heavens)'이라는 단어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천국'이라는 단어는 오직 마태복음에 있는 것이다.

 

3.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는 같은 의미인가 다른 의미인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천국'이라는 단어와 '하나님의 나라'라는 단어는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이 두 단어는 서로 같은 의미로도 사용되기도 하지만 마태복음에만 등장하는 '천국'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개념 중에서 주로 어떤 공간적인 장소를 따로 특정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전 영역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개념은 공간적이 아니라 약간 상태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만약 어떤 사람이 귀신이 들렸는데 귀신이 그에게서 쫓겨나갔으면 그 순간만큼은 그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이다(마12:28). 하지만 '천국'은 귀신이 잠시 동안 쫓겨난 그 순간만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다. 하루 24시간 동안, 아니 모든 시간 동안 귀신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온전한 하나님의 통치의 영역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천국'이라는 개념은 '사탄 마귀'와 '귀신들'이 없는 장소를 가리키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곳에는 더이상 '죄'도 없고, 더이상 '사망'도 없는, 하나님이 완전히 다스리는 공간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러한 공간적인 개념을 가리켜 '천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는 항상 우리가 장차 들어가야 할 곳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신다(마5:20, 7:21, 11:12, 19:23, 23:13, 25:1). 고로 우리가 죽어서 장차 부활체를 입게 되고 그 몸이 장차 들어가서 거주하는 온전한 하나님의 통치 공간이 '천국'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곳에는 더이상 사탄 마귀와 귀신들, 그리고 죄와 사망도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곳에는 어둠도 없고, 근심 걱정 슬픔도 없고, 아픔도 없다. 그러므로 영원무궁토록 완전한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된 공간적인 장소가 천국인 것이며, 거기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어서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가 실현되는 장소가 바로 '천국'인 것이다.

 

4. 마태복음에서는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는가?

  마태복음에서는 공간적으로 들어가는 '천국'이라는 단어와 '하나님의 나라'를 같이 동시에 사용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굳이 공간적으로 실재하는 어떤 장소만을 특정해서 사용하는 단어는 아니다. 그것을 포함하면서 '하나님의 왕적인 통치가 미치는 모든 영역'을 통칭하는 개념인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의 의미가 '하나님의 나라'라는 개념 안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면 좀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그렇지만 '천국'이라는 단어는 분명히 저 셋째 하늘에 있는 공간적인 영역만을 가리키는 특수한 단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천국'이라는 단어가 어딘가에서 나온다면, 그것은 주로 공간적으로 이동해서 들어가는 셋째 하늘의 나라라는 의미로 쓰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공간으로서, 일반적인 의미의 하나님의 나라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용어는 상태적인 천국을 가리킬 수도 있고, 장소적인 천국도 가리킬 수 있는 폭넓은 용어인 것이다. 그러니까 '천국'이라는 용어나 '하나님의 나라'라는 용어나 둘 다 장차 성도들이 죽어서 부활체가 되어서 들어갈 공간적인 영역의 개념으로 쓰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천국'이라는 개념은 장차 들어갈 장소적인 의미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 여전히 신분의 격차가 있는 장소를 가리키기도 한다. 다시 말해, 천국에서는 자신이 누릴 지위가 더 높은 자가 있는가 하면, 그 지위가 작거나 없어서 천국에서의 그 지위를 누리지 못할 자도 있는 것이다(마5:19). 그렇다. 이처럼 천국은 분명한 신분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는 장소다. 어떤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면 모든 성도들이 다 똑같은 신분과 지위를 누린다고 주장하지만 우리 주님의 말씀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곳에는 엄연히 신분적인 차이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즉 어떤 사람은 거기에서 왕 노릇을 하기도 하겠지만 어떤 사람은 왕 노릇하는 자의 집에 들어가서 왕 노릇하는 자를 섬기는 자로서 곧 종노릇하는 자로서 살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천국에서 '섬기는 자'라는 개념은 이 세상에서의 종과 같은 개념은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해 천국에서 '섬기는 자'는 기쁨과 감사로 일하는 직분인 것이지, 차별 대우받고 주눅들거나 창피하여서 괴로워하는 직분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마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5. 성도들이 신앙생활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사실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은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사실 이 세상의 지구는 천국에 들어가서 살 영혼들을 선발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맨 처음 하늘들(샤마임)을 창조하셨고 그리고 두 번째 지구(에레츠)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창1:1). 그리고 이것들은 첫째 날에 창조하신 것들이다. 그렇다면 '해와 달과 별들'은 언제 창조되었는가? 그것은 '넷째 날'이다. 주님은 마태복음 13장의 천국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다. 천국은 밭에 씨를 뿌린 사람과 같다고 하셨다(마13:3). 이 지구라는 밭에 하나님께서 천국의 씨(영혼)를 뿌리셔서 자궁 속에 있는 임신된 3~4개월의 태아 속으로 들어가게 하신다. 그런데 이때 사탄 마귀도 덩달아 아기의 태아에 가라지를 뿌리기도 한다. 여기서 '가라지'란 귀신들(사람 몸속에 들어오는 뱀들)을 지칭한다. 고로 사람은 이미 뱃속에서부터 하나님의 씨인 영을 갖게 되지만, 동시에 귀신들의 공격도 같이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 태어났을 때에 우리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창조되었고 보내어졌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때 우리 모든 인류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발견해 내야 하고 성령으로부터 하늘의 생명(씨앗)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거듭난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거듭난 영혼을 천국에 장차 데려가실 것이다. 물론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인지 아닌지는 이 땅에서 사는 삶을 통하여 주님이 판단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이번 기회에 '천국'에 관한 말씀을 잘 배우고 익혀서,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온전히 들어갈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왕 노릇할 수 있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2년 02월 21일(월)

정병진목사

 

 

오늘은 신년 첫주일이다. 올 한 해 과연 우리를 무엇을 붙들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하는 말씀이다. 사실 올 해 저마다 개인적인 기도제목과 소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회개와 천국복음을 외치는 교회로서 성도들이 붙들어야 할 진짜 소원은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천국복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헤아려,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가 되는 것이며, 천국에서 왕노릇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알고 실천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2022-01-02(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우리가 정말 붙들어야 할 복음은 어떤 복음인가?(마3:1~3)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HXBxlYp9ONM [혹은 https://tv.naver.com/v/24416671 ]

 

1. 들어가며

  성도가 신앙생활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가진 불치병에서 치유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는다. 어떤 이는 무당이 되기 싫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이는 예수믿어야 사회생활을 잘 할 것 같아서 또는 부자가 되고 싶어서 예수님을 믿기도 한다. 하지만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자신의 영혼이 구원을 받기 위함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영혼이 구원받는다는 것을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지은 죄를 사함받는 것을 가리키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인가? 결국 이것도 종합해 보면 자신의 영혼이 천국가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목적은 다양할 수 있으며, 또한 저마다의 진술이 다 틀렸다고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전파하신 복음은 대체 무엇이며, 그것은 천국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가? 그리고 예수님을 소개하도록 하나님께서 선구자로 보냈던 세례자 요한은 이것에 대해 무엇을 말했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회개와 천국복음을 외치는 교회로서, 올 한 해동안 우리가 붙들어야할 말씀으로서 천국복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보고, 나는 과연 어떠한 천국 복음을 붙들아야 하고 또한 사모해야 할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예수께서 전파하신 복음은 어떤 것인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전파하신 복음은 어떤 것인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에 대해 마태복음 기자는 딱 3가지로 기록하고 있다(마9:35). 그것은 첫째, 회당에서 가르치셨고 둘째, 천국(왕국)복음을 전파하셨으며 셋째,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고 했다. 즉 예수께서는 '교육'과 '전도'와 '치유' 사역을 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것들을 분석해보면, '교육'은 우리의 혼(souls)의 영역과 관계된 것이며, '전도' 즉 복음전파는 우리의 영의 영역과 관계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치유'는 우리의 육체에 관련된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의 문제들을 해결해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음을 알 수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천국복음 전파다. 왜냐하면 천국복음을 받아서 영이 복을 받아야 진정한 복을 받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사항은 왜 예수께서 전파하신 복음은 천국복음이었는 하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종교개혁자들의 후손이니만큼 자신이 받은 복음을 사도바울이 전해준 이신칭의의 복음이라고 알고 있다.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이 소식은 참으로 가물에 단비와 같았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이신칭의의 복음을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은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으셨는가? 그러나 믿음으로써 '생명' 혹은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은 하셨다(이신득생)(요5:24).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신칭의의 복음이 아니라 천국복음을 전파하신 것이다(그렇다고 이신칭의의 복음이 성경에 없다거나 틀렸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예수께서 전파하신 천국복음에 주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분이 들려주고 싶어했고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고 싶어했던 그것을 우리가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3. 우리는 왜 천국복음에 주목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에 외치셨던 '천국복음'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예수께서도 역시 세례자 요한처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외치셨다(마4:17). 즉 천국에서 들어가기 위해서는 회개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더욱이 주님을 부르는 자라 할지라도 모두가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마5;20, 7:21). 

마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예수께서는 우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는 더 나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다(마5:20). 그리고 주님을 찾는다고 해서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하셨다(마7:21). 그러니까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의롭다 함을 얻는 이신칭의의 구원과 예수께서 말씀하신 천국복음은 약간 다른 것이다. 이신칭의는 믿음으로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것까지 가르쳐준다. 그렇지만 의롭다함을 얻는 자가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되어 의롭다함을 받은 자라 할지라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천국에 그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하지 않는 자는 못들어가는 곳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천국복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믿어야 한다. 

 

4. 예수께서 말씀하신 천국이란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천국'이란 대체 어떤 곳인가? 성경에서 딤후4:18을 제외하고 한글성경에서 '천국'이라는 말은 마태복음에만 나온다. 총 36번에 걸쳐 나온다. 그런데 그 용어는 정확히 '하늘들의 왕국'이라는 단어다. 영어로는 'The kingdom of the heaves'인 것이다. 여기서 '하늘'을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사용한 것은 하늘을 3개이기 때문이다. 즉 새들이 날아다니는 곳이 첫째 하늘이고, 해와 달과 별들이 떠다니는 곳은 둘째 하늘이며, 하나님이 계시는 셋째 하늘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왕국'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왕이 통치하고 다스리는 나라를 가리킨다. 아직까지 이 세상에는 왕이 통치하지 않는 나라들도 더러 있다. 대통령이나 수상이 다스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하늘나라 곧 천국은 왕이 다스리는 나라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고 외친 이유는 하늘들의 왕이 오시기 때문에 그 왕을 영접하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들이 '천국'이라고 할 때에는 자신의 영혼이 죽어서 들어가는 저 하늘나라, 즉 저 멀리 삼층천에 있는 하늘나라를 생각하는데, 실은 그분이 왕으로 통치하는 장소가 왕국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살 때에 예수님을 믿은 자라도 자신의 삶과 영혼에 그분이 왕이 아닌 자는 결국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것이다. 왕의 통치를 거부한 자는 결국 하늘들의 왕국에 못들어가는 것이다. 

 

5. 천국복음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천국복음'이란 어떤 복음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2가지 의미를 지닌 것이다. 그것은 첫째로, 회개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복음을 가리킨다(마3;2, 4;17). 왜냐하면 천국은 죄가 들어갈 수 없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를 지은 사람이라면 그는 반드시 회개하여 자신의 죄를 깨끗히 씻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야 한다. 이때 자신의 죄를 용서함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개하는 것이 필요하며, 하나님의 생명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자는 생명을 얻고 죄사함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기하면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은 사실상 틀린 것이다. 그러한 말씀은 성경에도 나오지 않을 뿐더러 실제로 믿기만 해서 천국 들어갈 자는 없기 때문이다. 둘째, 천국에 들어가는 자라 할지라도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가 있음을 알려주는 복음을 가리킨다. 그렇다. 천국에 들어간다고 해서 다 왕노릇하는 존재가 되지는 않는다.  천국에 들어가는 자들 중에는 섬기는 자의 신분으로 들어가는 자도 있기 때문이며(마20:26~27), 섬김을 받는 왕의 신분으로 들어가는 자도 있기 때문이다(계5:10). 그러므로 우리는 마태복음을 더욱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에서는 누가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가 되는 것인지, 누가 천국에서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인지를 알려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약 예수님을 믿었다면, 회개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되기를 힘써야 한다. 그리고 회개하고 있어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되었다면, 이제는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가 되기를 힘써야 한다. 그렇다. 천국복음이란 단지 믿음을 통하여 구원받는다는 복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죽을 때 자신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게 해 주는 복음을 가리키며, 천국에 들어가서도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가 있다는 복음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6. 천국에는 누가 들어가며, 어떤 자가 천국에서 왕노릇하는가?

  천국에는 누가 들어가며 거기에서 누가 왕노릇하는 자인지 알려주는 말씀은 마태복음에서 계속해서 언급된다. 그중에서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말씀이 바로 마태복음 25장의 말씀이다. 마태복음 25장에서는 천국에는 과연 누가 들어가며, 누가 왕노릇하는 자가 되는지를 알려준다. 그것은 3가지 비유에 나타나 있다. 첫 번째는, '열 처녀의 비유'다(마25:10). 이 비유는 모두 믿는 이가 다 신랑의 집에 들어가 혼인잔치 하기를 사모하지만 준비했던 자들만이 들어간다는 비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자는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고로 나는 예수님을 믿는 자이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안일하고 있다가는 그날 천국 문이 닫혀 못 들어가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두 번째는, '달란트의 비유'다(마25:30). 달란트 비유는 종들이 주인에게 받은 달란트를 받아서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성 안에 들어갈 사람과 성 밖에 쫓겨날 사람이 결정된다는 비유다. 이때에 악하고 게으른 종은 성 바깥으로 내어쫓겨나며 거기서 슬피 이를 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비유의 핵심은 성 안에 들어가기를 정말 사모한다면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양과 염소의 비유'다(마25:34). 이 비유는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행했느냐에 따라 천국에서 받을 상속분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혹 어떤 이는 천국이 아닌 불못에 던져질 자도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자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물려받아 왕노릇하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주님으로부터 상을 받을 준비를 미리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천국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라고 해서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성 안으로 들어가기를 준비를 해 온 자 곧 회개하고 충성한 자가 들어가는 장소인 것이다. 그리고 이 땅에서 충성한 만큼 그 분량대로 천국에서 기업도 얻게 되고 거기에서 왕노릇하는 대상과 영토도 주어지게 될 것이다. 

 

7. 구약시대에 천국에 들어가는 것과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것의 예표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구약시대에 우리 믿는 이들이 장차 받을 천국복음의 예표가 있는가? 있다. 그중에서도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과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구원에 대한 예표가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항상 미리 보여주시어 소망을 갖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모세'와 '다윗'이라는 인물이다. 구약시대에 구원받는 교회의 모형이 성막과 성전이라고 한다면, 구약시대에 천국입성과 왕노릇하는 모형은 가나안 땅과 이스라엘의 왕국이라고 할 수 있다. 모세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어 광야로 나오게 한 후 선택된 자 모두를 가나안 땅에 입성시킨 인물이다. 한 마디로 그는 모든 사람을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이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다윗은 모세와는 다르다. 다윗은 이 땅에 왕으로 살았던 사람들 중에 유일하게 하늘에서도 왕노릇하는 사람이 된 인물이다. 한 마디로 다윗은 과연 천국에서 어떤 사람이 왕노릇하는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모델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모세를 연구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서도 왕노릇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윗과 그의 자녀들을 연구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모세와 다윗은 천국입성과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의 모형으로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마태복음에서는 처음부터 다윗에 대해 집중조명하여 말씀하고 있다. 마태복음 1장에서는 예수님의 조상들 41대 가운데 오직 다윗에게만 '왕'이라는 칭호를 붙여놓았다(마1:6). 그리고 2장에서는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부르고 있다(마2:1). 그리고 예수님께 나아와 문제를 해결받으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그분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외치고 있다(마9:27). 다윗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왕의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8.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의 모델로서 하나님께서 사용한 다윗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럼,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왕노릇을 하지 못한 채 바깥으로 쫓겨난 사람의 예표는 누구인가? 그는 바로 '사울왕'이다. 반대로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사람의 대표는 누구인가? 그것은 '다윗왕'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왕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되기를 사모하고 있다면, 그는 왕노릇하는 자가 되기를 더더욱 사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울과 다윗의 일대기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중에서 사울은 실패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비록 이 땅에서 왕이 된 사람이지만 그는 죽어서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버림을 받았다. 참으로 사울은 비운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가 그렇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매우 교만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고 거역했으며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챘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잘못한 것이 분명한데도 그는 핑계를 대며 회개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버림받은 자의 대표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다.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았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께 묻고 행하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자기는 백향목 궁에 거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집은 펄럭이는 휘장 가운데 둘 수 있겠느냐면서 그는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를 지어드리겠다고 말한 사람이다. 그는 매사에 그러하였다. 더욱이 그도 실수할 때가 있었다. 그도 사람이기 때문에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다윗은 낮은 자세로 엎드렸고 진실로 회개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죄를 용서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나라도 더욱 확장시켜 주셨다. 그가 도망다니던 10여년 동안에는 그에게 400~600명의 부하들 밖에 없었지만, 그가 유다지파의 왕이 되었을 때에는 한 지파의 왕이 되어 7년 6개월동안 다스릴수 있었고, 그리고 전 이스라엘의 왕으로 33년 반을 통치할 수 있었다. 그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그는 겸손했고 충성했으며, 주님을 사랑했고 주님을 최고 우선 순위로 정하고 산 자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무엘하 강해를 통해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9. 나오며

  이제 2022년의 새 해가 밝아왔다. 올 해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까? 올 해는 그동안 배우고 들었던 말씀 중에서, 우리가 듣기는 들었으나 정확한 의미를 잘 모른 것이 있다면 그것을 정확히 배우고, 또한 자신의 삶에 직접 실천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실천해볼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올 해는 보수하고 보완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혹 우리가 잘못 배운 것을 놓고 거기에 무엇인가를 쌓아올린다면 그날에 우리가 쌓아올려놓은 것은 다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에서 잘못되었는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고쳐야 한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하지 않은 부분들을 수선해야 한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서 왕노릇하는 데에 합당한 삶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왕노릇하기에 합당한 삶을 이 땅에서 살아보아야 한다. 그래야 주님 오시는 날에 기쁨의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도 왕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세례자 요한도 초림의 예수를 그렇게 준비하고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그도 왕의 오실 길을 닦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회개케 하는 일이었다. 그렇다. 우리도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왕이 오심을 모든 백성에게 전했다. 그리고 그는 유유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30년을 준비해온 그는 예수님에게 모든 영광을 돌려드리고 6개월 뒤에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자신의 말대로 그는 살다가 갔다. 그러니 천국에서 그는 24장로의 반열에 드는 자가 되었고, 왕노릇하는 자로서 최고봉에 서 있는 자가 되었다. 이제는 우리 차례다. 우리도 회개하고 충성하여 그 왕국에 들어갈 준비와 그곳에서 왕노릇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것이 올 해 나에게 주어진 하늘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2022년 01월 02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신앙생활하는 목적은 무엇이며, 이것에서 승리하기 위한 2가지 필수적인 방법은 무엇인가?(고전9:24~27)
https://youtu.be/rvg44lDuheY


1. 사람이 신앙생활하는 목적에 대해 옛날에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라고 배우기도 했으며, 어느 시절에는 예수님을 닮기 위함 혹은 제자되기 위함이라고 가르칠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은 어디에 있어야 합니까?(마4:17, 막1:15, 딤후4:18, 7~8)


2.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시고 사도들이 말하고 있는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자신이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마4:17, 딤후4:18). 더 나아가서는 천국에서 들어가서 상(기업,칭찬,면류관)을 얻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딤후4:7~8, 고전9:24, 빌3:12~14).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촛점은 바로 거기에 맞춰져 있어야 합니다. 이것에서 벗어나면 안 됩니다. 교회는 상담은 하기는 하지만 상담기관은 아니며, 교회는 구제하지만 노숙자 관리 기관이 아니며, 교회는 까페를 운영할 수도 있지만 커피집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죄인으로 하여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관이자, 천국에서 영광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도록 오늘도 지도하고 이끌어주는 기관과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은 고전9:24~27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들을 무엇에 견주어 비교하였습니까?


3. 사도바울은 고전9:24~27에서 성도들을 2가지 사람으로 비유하였습니다. 하나는 달리기 선수요 또 하나는 격투기 선수로 비유하여 말하였습니다. 성도를 달리기 선수라는 입장에서 보게 되면, 신앙생활은 일종의 경주와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를 격투기 선수라는 입장에서 보게 되면, 신앙생활을 영적 전쟁과 같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이미 달리기 선수가 되어 트랙에 들어와서 달리기 시작한 것이며, 격투기장에 들어서서 이미 상대방과 치고 박고 싸우는 중에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달리기 선수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며, 격투기 선수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합니까?


4. 사도바울은 성도들을 당시 고린도 도시에서 2년마다 열리는 올림픽 제전인 "이스트미안 경기"에 출전하고 있는 두 종류의 사람 곧 달리기 선수와 격투기 선수에 빗대어서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미 달리기 선수가 되어서 트랙에 들어선 이상은 우리는 상을 받기 위해 부지런히 달려가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달리기의 골인지점을 통과하되 거기에서 상얻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고전9:24).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목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바라보고 뛰어가야 합니다. 다른 것들에 헛 눈질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미 트랙에 들어선 경주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우리는 이미 격투기장에 들어선 격투기 선수가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믿기 전에 결코 싸움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은 다음부터는 달라졌습니다. 이미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다면 우리는 영적 싸움에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격투기장에 들어선 우리는 무엇을 목표로 싸워야 할까요? 그것은 어찌하든지 상대방을 때려서 드러눕히는 것입니다. 격투기시합는 달리기 경주와는 달리 내가 이기지 않으면 내가 지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방을 넘어뜨리지 않는다면, 내가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대항하는 격투기 상대는 누구입니까? 그것은 악한 영들로서 사탄마귀와 귀신들이 될 수도 있고, 죄된 본성을 소유하고 있는 내 육체가 될 수도 있으며, 죄 자체이거나 이 세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악의 영들과 죄된 본성과 죄 자체와 싸워서 이기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적 전투에서 패배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듯 패배자가 된 자는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버림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미 믿음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노정에 들어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달리기 선수이자 격투기 선수로서 어떠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까?


5. 내가 만약 달리기 선수라면 더이상 다른 것에 곁눈질하지 말고 고개를 들어서 목표지점을 바라보고 있어야 합니다. 천국을 자신의 경주의 목표로 정하고 거기에서 상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설정해 두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만일 자의로(자원하여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면 천국에서 상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입니다(고전9:17~18). 자원하여 상을 얻기 위해 여러분도 달려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격투기 선수라면 우리는 우리의 대적을 향해 오늘도 주먹을 날려야 합니다. 내가 상대방을 가격할 수 없다면 내가 가격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예수의 이름으로 영적 세력들을 물리쳐야 하는 것이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얻어맞아 어딘가 얻어터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으니 천국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여기는 것은 금물입니다. 우리가 이미 경주의 트랙에 들어서 있으나 이 코스를 끝까지 완주할른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이미 격투기장에 들어섰는지 이길지 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만약 내가 싸움을 할 줄 모르는 자라면 적에게 얻어터져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목표를 분명히 바라보고, 오늘도 우리의 대적에게 강력한 성령의 펀치를 날리면서 죽을 때까지 영적 싸움을 계속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자는 어느 순간엔가 대적으로부터 카운터펀지를 얻어맞고는 쓰러진 뒤 퇴장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억지라도 자신의 몸을 쳐 복종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영적 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함입니다. 아니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은 아무쪼록 달리기에서 결승점을 통과하여 상을 받는 자가 되기를 바라며, 격투기장에서 상대방을 반드시 넘어뜨리는 격투기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8년 11월 5일(월)
정병진목사 


주께서 이 땅 위에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무엇인가? 주님의 온전한 제자를 만들라고 세우신 것인가? 한 때는 그렇게 알고 제자훈련에 매진하던 때가 있었다. 또 어떤 이는 불행한 이 세대에 행복을 찾아주기 위해서, 혹은 사람들로 하여금 3중축복(물질과 건강과 자녀의 복)을 받게 하기 위해 교회를 주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는 아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성도들(천국보내는 성도들)을 산출해내야 교회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교회를 이 땅 위에 세워나가야 교회라고 불리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께서 지금도 미리 예비해두신 신실한 당신의 종들을 통해 이뤄가고 계신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주의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인가? 아니면 열심히 기도하는 일인가? 아예 자신이 주의 종이 되어버리는 것인가? 아니면 선교사가 되는 것인가? 물론 이런 것들이 틀리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핵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주께서 이 땅 위에 교회를 세우신 목적을 알아보고, 주께서는 그 일을 어떻게 이뤄가고 계시며, 성도들은 어떻게 그 일에 동참할 수 있고 복을 받을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다시 말해, 이 땅 위에 있는 교회들이 꼭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어떤 이는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이 땅에 구원받은 성도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만들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자기가 제자되고 다른 이들을 제자삼기 위해서 교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어떤 이는 복음을 전파하라고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셨으니 교회의 존재목적은 복음전파에 있다고도 말한다. 모두가 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가장 큰 목적 한 가지를 말하라고 한다면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그것은 만약 우리가 교회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이것에 대해 전혀 모르거나 무관심하고 있다면 그는 교회가 존재할 목적을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오늘은 교회의 창립기념주일을 맞아,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며, 과연 우리교회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신 목적대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무엇에 미흡한지 그리고 우리교회가 고쳐야 할 것이 있다면 어떤 방향으로 고쳐나야 할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교회의 존재목적과 신앙생활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왜 이 땅 위에 교회를 세우려고 하셨을까? 그리고 제자들에게 꼭 그 일을 하라고 부탁하셨던 것일까? 우리는 교회생활을 통하여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첫째는 어느 누구에게서도 얻을 수 없는 마음의 위안과 평안을 얻을 수 있다. 둘째는 기도를 통해서 삶을 필요를 채우고 또 얻을 수 있다. 셋째는 세상에서 치유할 수 없는 중병이나 불치병이라도 치유할 수 있다. 넷째는 부모와 자녀 등 모든 이들과 인간관계를 맺으며 서로 사랑하며 아끼는 법을 배울 우 있게 된다. 그렇다면 교회생활을 통해서 반드시 얻어야 할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말하라고 한다면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그것이 바로 교회의 존재목적일텐데 말이다. 교회생활을 하면 다른 부수적인 혜택을 얻을 수 있겠지만 반드시 얻어야 할 것이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이 바로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요, 신앙생활하는 목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2가지다. 첫째, 죽어서 내 영혼이 천국가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며(딤후4:18), 둘째, 사람이 신앙생활하는 목적은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면류관을 얻는 성도가 되기 위함이다(딤후4:7~8, 2:12)

 

3. 신앙생활의 첫번째 목적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먼저, 사람이 신앙생활하는 첫번째 목적에 대해 알아보자. 그것은 자신이 죽었을 때 자신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딤후4:18). 만약 교회가 분명 교회이긴 한데, 교회가 천국보내는 성도들을 산출하지 못한다면 그 교회는 더이상 교회가 아닌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빗가뻔쩍한 교회이지만 주님 보시기에 그 교회는 교회가 아닌 것이다. 성도들을 천국에 들여보내주는 교회가 참된 교회요 진짜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이 땅 위에 세우시고자 했던 교회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마16:18).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죽을 때에 자신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그것은 믿음과 회개를 통해서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신 일을 믿어야 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 구원얻는 것이다(막1:15, 마4:17).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아들의 신분으로 오시어 인류가 지은 죄값을 처리하셨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의 타락 직후부터 말씀하신 것인데, 구약시대에는 그를 "메시야"라고 불렀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메시야를 보내 인류를 구원해주시겠다고 무려 350가지 이상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그분이 진짜 오셨는데, 나중에 보니 그분은 바로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하나님 자신이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려면, 첫째, 인류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믿어야 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아들로서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해야 할 일이 있으니, 그것은 지은 죄들을 자백해야 하는 것이다. 즉 회개하는 것이다(마4:17). 그렇다. 사람이 구원받으려면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 하신 일을 믿지 않은 죄를 회개해야 한다(요16:9). 그리고 자신이 지은 낱낱의 죄를 자백해야 하는 것이다(요일1:9). 그래야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어내기 때문이다(요일1:7,9, 계7:14). 어떤 분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피가 자동적으로 죄를 씻어준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예수님의 피는 인류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도 남음이 있는 효능을 지닌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할 때에 비로소 그분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어주기 때문이다(요일1:7,9). 그렇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우리의 죄가 자동적으로 다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두 번 다시 회개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 번 믿음으로 우리의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도 다 용서받아버렸기 때문이다.

 

4. 신앙생활의 두번째 목적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둘째로, 사람이 신앙생활하는 목적은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면류관을 얻는 성도가 되기 위함이다(딤후4:7~8, 2:12). 이 목적이 바로 오늘 우리가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주제다. 천상에 계신 예수께서는 A.D.95~96년경 소아시아에 있는 라오디게아교회에게 편지를 써보내라고 명령하셨다. 이 편지에는 그들 교회의 상태를 언급하고 있는데,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겁지도 아니한 교회가 가장 힘써야 할 것이 2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첫째는 열심히 내되 계속해서 열심을 내라는 것이었고, 둘째는 회개하되 단호하게 회개하라는 것이다(게3:19). 라오디게아교회는 믿음에 있어서 부족한 교회는 아니었다. 또한 세상적으로 볼 때에는 비할 데 없이 축복받은 교회 가운데 하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물질적으로 풍족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물질적으로 부적함이 없이 누리고 사는 교회였다. 하지만 그들을 영적으로 진단해보았을 때에 그들은 한 마디로 거지였다(계3:17). 그들은 영적은 가난했으며 가련했고 벌거벗은 채(옷을 입지 않은 채)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러므로 만약 그들이 믿음과 회개를 통해서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천국에서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빈털털이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강력하게 그들을 권고하셨다. 천국에 들어와서 그들이 누릴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그들은 희희낙낙거리고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누리고 있는 것은 어마어마했다. 그들은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에 부족함이 없었고 매우 풍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천국에서 누릴 상급은 전무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열심을 내라고 하셨다. 그리고 단호하게 끊을 것은 끊고 붙들어야 할 것은 붙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라오디게아교회는 무엇을 붙들어야 하며, 무엇에 열심을 내야 했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영적인 것으로서, 자신이 영혼에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받을 것들(면류관,기업,상급,영광)에 열심을 내라는 것이었다. 천국에서 받을 그것을 얻기 위해 열심을 내라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일은 한 번으로 끝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열심을 내라"는 명령은 헬라어로, "현재 명령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반복적으로 계속적으로 그렇게 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호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 뒤에 "과거 명령법'을 사용하여 회개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의 잘못된 가치관과 목표를 단호하게 고쳐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5. 천국에  들어가서 우리의 영혼이 누릴 것들을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성도들이 영적으로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서 받을 것들을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가야 천국에서 누릴 것들을 충만히 준비할 수 있을까? 그것은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기교회들은 과연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위해 자신의 모든 물질과 시간과 달란트와 은사 심지어 목숨까지도 드렸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은 2가지였다.

  첫째, 그들은 교회를 세우는 일에 열심을 냈다는 것이다.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인하여 처음으로 이 땅에 세워진 교회는 예루살렘교회였다. 하지만 이들은 예루살렘교회가 탄생한 이유를 잘 몰랐다. 그들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것조차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가진 자들의 헌금을 받아서 가난한 자들을 돕는 데에 집중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나타난 결과는 참담했다. 누가 많이 가져가고 누가 못 가져갔다고 하면서 서로 치고 박고 싸웠기 때문에, 그것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기와 원망의 말이 계속 쏟아져나왔다. 그것이 교회를 세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성도들을 양육하고 배출하는 데에 온 힘을 기울여야 했고, 그것이 이루어졌으면 이제는 교회를 세우는 일에 올인해야 했지만 그들은 다른 일에 집중하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예루살렘교회는 얼마 못가서 핍박으로 인하여 산산히 흩어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가서 교회를 세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교회를 세우는 지도자를 돕는 일에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렸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늘에서 얻을 상급과 면류관을 위해 힘써야 할 두번째의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좀 폭넓게 말하면, 주의 일을 감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의 일을 감당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떤 이는 자신이 교회에 나가서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어떤 이는 자기가 선교사가 되어 선교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자기가 주의 종이 되어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모두가 다 틀린 것은 아니나, 정확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참된 교회를 세우는 주의 종을 돕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참된 교회를 세우는 지도자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를 세워놓았는데, 천국에 들어갈 성도를 배출하지 못한 채 지옥에 떨어지는 성도들을 배출한다면, 교회는 아니 세우느니만 못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우는 주의 종들에 의해 교회가 세워질 때 가장 좋다.

  사실 오늘날까지 교회의 성도들이 천국가고 지옥가고 하는 데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것의 십중팔구는 교회의 지도자들인 주의 종들이다. 이들에 의해 교회에 출석하는 영혼이 지옥에 떨어지기도 하고 천국에 들어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세가 될수록 참으로 올바른 주의 종을 만나야 한다. 그런데 초기교회의 사례를 보니, 하나님께서는 맨날 구제에 빠져 그러한 문제 해결에만 급급해하는 예루살렘교회를 버리셨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이방인으로 구성된 안디옥교회를 세워서 그 일을 감당케 하셨다는 것이다. 아무나 가서 교회를 세울 수는 없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미 만세전부터 택정해놓은 사람을 불러서 그 일을 감당케 하신다. 그가 바로 사도바울이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일평생 죽을 때까지 긴 전도여행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때 평신도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울선교팀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다. 선교비도 충당하는 일이다. 혹은 직접 가서 바울의 사역을 도울 수도 있다. 이것을 한 마디로 줄인다면, 교회를 세우는 주의 종들을 협력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 성도들이 가장 열심이 해야 할 일은 다른 것에 있지 않다. 천국보내는 교회를 세우는 주의 종에게 협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세운 종들을 도와 천국보내는 성도들을 낳는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이다.

 

6. 어떻게 교회를 세우는 주의 종을 도울 것인가?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을 보면, 성도들이 교회를 세우는 주의 종을 돕는 방법이 나온다. 그것은 4가지다. 첫째, 그것은 중보기도하는 일이다. 이것은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이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골4:2~3). 둘째, 자신의 직업을 통해서 주의 종들을 돕는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였다. 로마에서 쫓겨나 고린도에 왔던 장막만드는 부부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일터에서 바울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게 되었고 그가 감당해야 할 일이 장막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인 것을 직감하게 된다. 그러자 그들은 자신의 직업으로 일평생 바울을 돕게 된다. 셋째, 어렵더라도 선교비를 충당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바울은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은 선교사였다. 하지만 선교비는 이내 떨어지고 말았다. 2차전도여행 때에는 중간에 전도비가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하지만 유럽의 첫성이었던 마케도냐의 빌립보교회는 바울팀에 선교를 보냈다. 하지만 그들이 넉넉해서 보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많은 시련 가운데 있었지만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선교를 보내주었다(고후8:2~4). 하늘의 자녀가 되게 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그들은 잊지 않았고, 그들을 힘닿는대로 표현했던 것이다. 넷째, 직접 사람을 협력자로 보내 돕는 것이다. 또한 빌립보교회는 훗날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지낸다는 소식을 듣고는 늙은 바울곁에서 바울을 시중들 사람을 파송하는데 그가 바로 에바브로디도라는 청년이다. 그런데 그가 얼마나 열심히 바울을 시중들었던지 바울은 그에 대해서 이렇게 편지에 썼다.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의 목숨을 돌보지 아니했다(빌2:30)"고 말이다. 그는 바울을 섬기는 일이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로 알고 죽기까지 충성했던 것이다. 그렇다. 평신도로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무슨 거창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로 섬기며, 자신이 가진 직업으로 섬기며, 물질로 섬기고, 직접 손과 발로 섬기는 것이다.

 

7. 교회를 세우는 지도자를 돕는 성도들이 받은 복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는 참된 지도자들을 섬겼던 성도들을 어떻게 복을 주셨을까? 첫째, 자신의 직업으로 섬겼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자신의 일생을 마치기까지 자신의 직업을 잃어버리지 않고 바울을 도울 수가 있었다. 그러자 바울은 그들 부부를 자신의 동역자라고 불렀다(롬16:3). 한편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을 동역자라고 불렀는데, 그들의 이름의 하늘의 생명책에 있다고 하였다(빌4:3). 그렇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부부도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을 것이다. 둘째, 환난 중에서도 선교비를 충당했던 빌립보교회는 바울로부터 자신의 기쁨이자 면류관같은 성도라는 칭함을 받게 되었고, 그들이 필요할 때에는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기적을 맛볼 것이라는 바울의 말을 들었다(빌4:1,19). 셋째, 죽도록 헌신하다 병들었던 에바브로디도는 주님께서 긍휼을 베풀어주시도록 질병에서 깨끗이 나았고 다시 빌립보교회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교회를 세우는 주의 종을 섬기는 자들을 하나님은 긍휼히 여겨주시기 때문이다(빌2:27).

 

8. 나오며

  많은 이들은 그리스도의 일을 아주 고상하게 생각하거나 거창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일은 고상하거나 거창한 것만이 아니다. 또한 자기가 총대표가 되어 어떤 업적을 남겨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름도 없고 빛나는 것이 아니더라도 진짜 천국보내는 주의 종들을 돕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이다(빌2:30). 그러므로 내가 일반 성도로서 주의 종들을 섬기는 일을 쉽게 생각하지 말고 또한 작게도 보지 말라.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시 12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너희를 영접하는 것은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것은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한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으리라(마10:40~41)" 그렇다. 주님의 종을 영접하는 것이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 성도로서 주의 종을 섬기게 되면, 내가 받는 상급은 주의 종이 받는 상급과 동일하다는 것도 잊지 말라. 이것을 알고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을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18년 7월 15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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