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에 말씀하고 있는 신부는 대체 어떤 존재를 가리키는가? 그것은 구약시대의 신부관과 과연 어떤 차이가 있으며 어떤 변화가 감지되는가? 사실 성경은 통전적으로 보아야 한다. 각기 성령의 감동을 받은 자들이 기록한 성경이기 때문에 한 권의 책 안에 모든 비밀이 다 들어 있지 않다. 또한 각 성경책에는 비유적인 표현의 말씀도 있고 감추어진 것도 더러 있다. 그러므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를 제대로 보아야 한다. 여기, 신약시대의 신부관이 구약시대와 어떻게 달라졌으며 또한 변화되었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말씀이 있다. 이 말씀만이라도 몇 번이고 듣는다면 신부관이 확실히 정립될 것이다.

2021-11-07(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신부(52)[최종회] 신약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신부관은 어떤 것인가?(계14:3~5)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FZD-D6V_P-U  [혹은 https://tv.naver.com/v/234285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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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신구약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신부관은 어떤 것인가? 우리는 지난 쉰 한 번의 시간을 통하여, 신구약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신부관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구약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신부관과 신약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신부관은 거의 동일하였다. 둘 다 그리스도의 신부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자격이나 요건이 필요한지 그리고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신부들에게 주어지는 신분의 차이는 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누가 천국에 못들어가는지까지 거의 같았기 때문이다. 다만 표현방식만 약간 다를 뿐이었다. 특히 구약은 아직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의 상황이라 모형론적으로 말씀하고 있다고 한다면, 신약은 실제적인 면을 부각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구약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신부관을 신약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신부관과 견주어 비교해 봄으로서, 신약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신부관에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천국에 들어간 신부들 가운데, 24장로와 144,000명의 정체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신구약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신부란 어떤 존재를 지칭하는 것인가?

  신구약성경이 공히 말씀하고 있는 신부란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를 지칭하는 것이다. 여기서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은 셋째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레 성 안에 들어가는 것을 가리킨다. 특히 신구약성경에서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는 이들을 가리켜 '이기는 자들'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이러한 이기는 자들의 예표가 성경에 나오는데, 구약에서는 '야곱'이라고 할 수 있으며(창32:28), 신약에서는 소아시아의 일곱교회 안에 있는 이기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계2~3장). 결국에 이기는 자가 되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기는 자'라는 말에서 '이긴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죄와 죽음과 마귀의 세력을 이기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죄들의 사함을 받아야 하고, 사망으로부터 벗어나 생명 안으로 들어가야 하며, 마귀와 그의 부하들인 귀신들보다 우세하여 영적 싸움에서 승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얻았다고 할지라도 그가 결국에 이기는 자가 되지 않으면 그의 이름은 생명책에서 지워질 것이다. 그리고 성밖으로 쫓겨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다 신부가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3. 구약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신부들의 예표들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구약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신부들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가? 구약성경에 나타나 있는 가장 완벽한 신부가 있다면 그녀는 아가서에 등장하는 '술람미 여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가서강해' 52강의 메시지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리고 예표론적으로 볼 때에는 첫 사람 아담의 짝이었던 '하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회개하지 않아서 신부의 대열에서 떨어진 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 두번째와 세번째와 네번째는 족장들의 아내들이다. 그들로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이삭의 아내 리브가, 야곱이 아내들로서 레아와 라헬, 실바와 빌하가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신부의 예표가 술람미 여인이라면, 이방인 중에서 신부의 예표가 있다면 그녀는 룻기서에 나오는 이방사람 '룻'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까지 구약성경에 등장하고 있는 신부들의 예표들을 통하여 왜 하나님께서 신부를 창조하려고 하셨는지, 그리고 어떤 조건을 가져야 신부의 대열에 동참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같은 신부라 할지라도 천국에서 신부의 신분이 각각 다르다는 것도 살펴보았다(아6:8~9)(이 부분에 대해서는 신부씨리즈 설교들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그중에서 몇 가지만 정리하자면, 인간은 그리스도의 짝된 배필 곧 신부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부가 신랑으로 예표된 아담의 말을 듣지 않고 뱀의 말을 들어 그때부터 인간은 신부의 대열에서 멀어지고 말았는데, 장차 신랑이 되실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댓가를 지불하여 사람들을 사심으로 일방적으로 죄와 죽음과 마귀로부터 건져올리셨는데, 이러한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는 신부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땅의 신부가 곧바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광야같은 교회생활을 통해서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인데, 만약 이 때에 여러가지 죄들을 저지르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는 결국 천국에 못들어간다는 것이 광야의 교훈이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 신부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왕권신부, 왕후신부, 비빈신부, 시녀신부와 평민으로 나뉘어진다는 것이다. 

 

4. 신약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신부관은 구약성경과 어떤 변화와 강조가 나타나는가?

  그런데 이러한 구약의 신부관은 신약시대에 들어오면서 약간 온도의 변화가 감지된다. 그것은 구약시대에는 선명하지 드러나지 않았던 신부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회개'라는 것이다. 처음 예수믿을 때에 회심을 통해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여 거듭난 성도라면, 그 사람은 신부로서 첫 출발을 시작한 사람에 해당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신부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죄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그럼, 어떤 사람은 질문할 것이다. 이미 예수께서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에 골고다에서 인류의 죄를 다 처리하지 않았느냐고 말이다. 그건 맞는 말이다. 그때 예수께서는 인류의 모든 죄를 없애는 제사 곧 속죄의 제사를 드린 것은 분명히 맞다. 하지만 그때 흘린 예수의 속죄의 피가 개인에게 뿌려져 개인이 지은 죄를 씻겨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백이라는 회개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 성경말씀이다(요일1:9). 그러므로 초림의 예수님에서부터 사도들의 외침 그리고 부활승천하셨던 예수님의 외침을 들어보면 그 핵심은 전부다 회개하라는 것이다. 회개만 하면 죄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목놓아 외치는 것이다. 그러한 자들로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이면서 예수님을 처음으로 이 세상에 소개했던 세례요한으로부터(마3:2), 그리고 초림의 예수님의 외침(마4:17), 사도 베드로의 외침(행2:38), 사도 바울의 외침(행20:21), 사도 요한의 외침(요일1:9)에 이르기까지 핵심 선포 주제는 다 '회개'였던 것이다. 

 

5.  결국에 하늘의 기업을 차지하지 못한 신부들에 관한 신구약성경에 나오는 사례와 그 비유는 무엇인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할 것 없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광야에까지 나왔으나 결국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아니 그러한 사람은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여기 언급된 '애굽'이란 흑암의 권세가 역사하는 사탄 마귀의 영역을 가리킨다. 즉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면 그 사람은 즉시 음부의 권세로부터 벗어나며 또한 둘째 사망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유월절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광야에 나왔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광야에 나왔으나 애굽을 동경하면서 하나님께 불평불만을 가졌던 자들이나, 광야에 나왔어도 여전히 송아지 우상을 숭배했던 자들이나,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대하여 불신을 가진 자나, 이방여인들과 교제하기 위해 음행의 죄를 범한 자들은 다 광야에서 엎드려져 죽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새 예루살렘 성밖으로 쫓겨나는 일인 것이다. 이것이 실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칭의를 받아 구원의 여정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곧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그것은 광야생활에서 이기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 요단강 건너가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육신이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려면 우리는 결단코 이기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약시대에 구원의 여정에 들어온 자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다 천국에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해주셨는가? 그것은 마태복음 25장의 3가지 천국비유에 나온다. 예수님을 믿었던 자라 할지라도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하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첫째로 신랑을 맞으러 나간 처녀이기는 하였지만 여분의 기름이 없어 막상 혼인잔체 들어가려는 순간에 기름이 떨어진 '미련한 다섯 처녀'가 있다. 이들은 성밖에 다 남겨지고 말았다. 둘째로, 주인되신 예수님께 자기의 분량을 따라 달란트를 받았으나 악하고 게을러서 주인의 뜻을 행하지 않았던 '한 달랄트 받은 종'이 있다. 이 종은 바깥 어두운데로 쫓겨나게 말았다. 그 종은 거기에서 슬피울며 이를 갈 것이라고 하였다. 셋째로, 외식하는 자들이 되어 생색내는 일에는 아주 열심을 내었지만, 자기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현장이나 사람들에게는 냉대하며 살았던 자들이 있다. 이들은 결국 '영영한 불'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것이 천국에 못들어가는 신약성도들의 예이다. 

 

6. 신구약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 위한 3가지 조건은 무엇인가?

  결국 신구약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신부는 어떤 신부여야 하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이 3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회개하여 자신을 정결케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 예수님을 믿었던 것 때문에 현재 자신이 짓고 있는 죄들이나 앞으로 지을 죄들이 다 용서받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한 죄들은 다 자백함으로 용서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에 대한 지조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정절'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믿음이 이랬다 저랬다 해서는 까딱 잘못하다간 핍박과 순교의 현장에서 주님을 부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목숨이 끝나는 그날까지 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정절을 꼭 지켜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로, 천국에 들어가서 우리가 누리고 살 것을 이 땅에서 잘 단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나 자신을 향하여 정해 놓으신 주님의 뜻을 깨달아 알고 실천해야 하며, 주님의 계명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천국에서 누릴 상이 결국 하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천국에서 우리가 누릴 상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러한 상에는 첫째로, 행위에 따른 신분(왕권신부, 왕후신부, 비빈신부, 시녀신부, 평민)이 있고, 둘째로, 천국집이 있으며, 셋째로, 왕노릇할 기업과 종들이 있고, 넷째로, 머리에 쓸 면류관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살고 있을 때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천국에서 영원토록 누릴 우리의 미래를 잘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7. 신부들 중에서 24장로와 144,000명은 대체 어떤 신부를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24장로들과 144,000명은 누구를 지칭하는 표현인가?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이미 천국에는 24장로가 있었다. 사도요한은 그때 그들을 보았고 그들과 대화도 나누었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은 24장로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24장로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것은 천국에 가서 그 사람들이 누군지를 확인해보지 않는 한 사실상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서는 24장로의 이름이 한 명도 거론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구약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힌트와 직접 천국에 올라가서 그것을 보고 온 자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24장로에는 구약성도가 있고 신약성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보통 성도들이 생각할 때에는 24장로는 구약성도에서 12명이, 신약성도에서 12명이 참여하고 있지 아니할까 추측하기도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구약의 성도가 20명이요 신약의 성도가 4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는 것은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게 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지금 현재 24장로들이 주님 재림시에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름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언급할 24장로들의 이름은그저 참고만 하기를 바라며, 그들이 왜 24장로의 반열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자신의 영적 성장에 유익이 될 수도 있음을 말씀드린다. 그렇다면, 24장로들은 누군가? 그 이름을 구약시대에부터 역사적 순서를 따라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구약의 성도에는 1)아담, 2)아벨, 3)에녹, 4)노아, 5)아브라함, 6)사라, 7)욥, 8)이삭, 9)야곱,10)유다, 11)요셉, 12)모세, 13)아론, 14)여호수아, 15)다윗, 16)밧세바, 17)엘리야, 18)엘리사, 19)이사야, 20)에스겔이 있으며, 신약의 성도에는 21)세례요한 22)베드로 23)바울 24)스데반이 있다.

  그렇다면, 24장로들이 천국에서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반차를 따라 자기가 우두머리가 되어 예배를 집례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천국에서 예배드릴 때에는 24 로테이션에 따라 24장로들의 한 명이 자기에게 속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올라와서 예배를 집례하는 것이다. 한 반차마다 다 우두머리로서 24장로들이 있으며, 하나의 반차 안에는 총 70줄의 계급으로 분류된 사람들이 보좌에 앉아 있는데, 한 줄에는 A.B.C.D.E.라인이 있다는 것이 천국의 실제 모습이다. 그런데 오직 70줄에 있는 자들에게만 보좌가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한 줄에도 5개 라인이 있으니, 24반차의 70줄 안에 들어있는 신부의 숫자는 총 144,000명인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4장을 보면, 구원받은 성도들 가운데 오직 시온산에 서 있는 144,000명만이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144,000명만이 제사장이 되어 예배를 집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 천국에는 24반차별로 마을들이 하나님의 보좌를 빙둘러 있다. 그리고 그 마을들 이름이 바로 24장로의 이름인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가 들어갈 마을은 어떻게 결정되는 것인가? 그것은 24장로가 이 땅에 살았던 삶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일평생 순종하며 군소리 하나 없이 산 사람은 '이삭'마을에 들어갈 것이고, 처음으로 예수님을 자기 가문에 들여와서 가문을 복음화시킨 사람은 '아브라함' 마을에 들어갈 것이다. 저처럼 일편단심 회개를 외치는 사람은 '세례요한'의 마을에 들어갈 것이며, 순교했던 자들은 '스데반' 마을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70줄 가운데 1~3번줄은 Major King들이 앉아 있으며, 4~6번줄은 Minor King들이 앉아있는데, 참고로 1~3번줄에는 여자들은 하나도 없고, 4번줄부터 있다는 것이다(나중에 천국에 올라가서 확인해 보면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사도 바울도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라고 말했던 것이다(고전11:3). 이는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자들이 교회에 때에는 머리에다가 너울을 쓰든지 아니면 긴 머리를 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하라고 한 것이다(고전11:8~10).

 

8. 나오며

  참으로 긴 긴시간을 흘러갔다. 우리는 그간 신부가 누구며 어떻게 신부가 되고 신부의 반열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부지런히 달려왔다. 우리는 오늘까지 52번의 시간을 바른 신부관을 얻기 위해 달려온 것이다. 그래서 이를 위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말씀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직도 못 찾아낸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말씀이라고 한다면 모두다 살펴보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언젠가 또 다시 시간이 흘러 주님께서 기록된 성경말씀을 조명해주시고 하늘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신다면 이보다 더 정확한 말씀을 나눌 것이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알았다고 만족하기보다는 적게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말씀에 순종하여 거룩한 신부가 되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기도와 노력 그리고 땀과 댓가의 지불이 필요하다. 아무리 많이 알고 있어도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이 그를 결코 구원해내지 못할 것이며, 그것이 그를 신부가 되게 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것이 그에게 하늘의 상을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신부가 되기 위한 우리의 기도와 노력, 실천이 필요한 때가 시작된 것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애굽을 떠나왔고 지금 거의가 다 광야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광야의 삶을 잘 보내야 한다. 잘못하면 이미 얻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했지만 그것이 잘못된 메뉴얼에 따라서 행하고 있다면, 우리의 모든 수고와 노력은 어느날 허사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의 가르침, 불순물이 들어있지 않는 순전한 가르침을 따라서 우리는 순종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댓가를 지불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끝까지 믿음의 지조를 지켜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때로는 금식도 해야 한다. 진리의 말씀을 듣기를 매우 많이 사모해야 한다. 그리고 들었다면 그대로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쪼록 한 사람이라도 이 말씀을 듣고 거룩한 신부의 대열에 동참한다면, 그것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그것이 우리 교회와 회개와천국복음연구소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신부가 되도록 우리를 깨우쳐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린다. 이는 다 그분이 행하시는 일이요 그분의 주관하에 진행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2021년 11월 07일(주일)

정병진목사

 

 

신부란 대체 누구를 지칭하는 표현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천국에 최종적으로 입성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천국에 다 입성할 수 있는가? 성경은 믿음이 없이는 천국에 입성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건 믿음만이 아니었다. 그것을 아는 자는 장차 천국에 신부로서 입성할 것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런데 그것은 신약의  주의 종들 곧 세례요한과 사도 베드로와 사도 요한과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주 예수님께서 직접 그것을 말씀해주셨다. 그것이 바로 구약의 신부상과 신약의 신부상의 중대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2021-11-05(금) 금요기도회

제목: 신부(51) 구약의 신부상과 신약의 신부상의 중대한 변화는 무엇인가?(요한계시록3:3~5)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M6YHiYGkmxk  [혹은  https://tv.naver.com/v/23427862  ]  

 

1. 들어가며

  우리는 지난 몇 시간에 걸쳐서 구약의 신부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구약시대의 완전한 그리스도의 신부의 예표는 아가서에 나오는 '술람미 여인'이다. 그녀는 고된 노역의 생활을 하다가 솔로몬을 만나 왕의 아내가 됨으로 고된 노역에서 벗어나게 된 여인이다. 하지만 어느 날 그녀는 남편의 임재를 잃어버리고 남편을 찾는 과정에서 기도와 회개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왕이 무엇에 마음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정작 자신도 그 일에 동참하게 된다. 그리하여 더 많은 신부들을 산출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된다. 이것이 바로 구약에 나타난 완전한 신부의 모습이다('아가서 강해 30강'을 들어보시기를 바란다). 하지만 구약시대에 술람미 여인 말고 그리스도의 신부의 예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러한 신부들은 주로 창세기에 나온다. 그러한 여인들로는 하와, 사라, 리브가, 야곱의 4명의 부인들과 12아들들 그리고 이방 여인 룻이 있다. 그리고 드디어 여자의 후손이자 고엘(구속자)로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다. 그러자 인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는 구약성경에 나타난 신부의 예표들을 간략하게 정리하면서 신약에 등장하는 신부들로의 변화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신약시대에 출현한 신부상은 구약시대에 나타난 신부상과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구약시대의 신부상과는 확연히 달라진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비밀을 아는 자들 중에서 천국에 들어가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2. 구약시대의 신부의 특징은 무엇인가?

  구약시대의 신부상의 전형적인 모습은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아가서에 나오는 '술람미 여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부상의 예표는 구약성경의 술람미 여인말고 있는가? 있다. 그들은 주로 창세기에 집중하여 있다. 그렇다면 창세기의 신부상이란 어떤 것일까? 우리가 창세기를 읽어 보면 알겠지만 창세기에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다섯 종류의 신부의 예표들이 등장한다.

  첫째는 아담의 아내였던 하와이다. 그녀는 아담의 짝으로 지음을 받았지만 자신의 남편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뱀의 말을 들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죄를 지은 여인이었다. 그리하여 범죄한 아담과 하와는 결국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 징계를 보면, 하와는 임신과 해산의 고통이 더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또한 남편이 그녀를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도 둘째, 셋째, 넷째 신부의 예표는 다 족장들의 아내들인데, 그들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이삭의 아내 리브가, 야곱의 아내들이었던 레아와 라헬, 실바와 빌하이다. 우리는 '사라'의 예를 통하여, 그녀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매우 강했다는 것과 남편을 주인으로 섬김으로 신부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리브가의 경우를 통해서 신부는 기도를 통해서 찾아낼 수 있다는 것과 신부는 남편을 머리로 아는 존재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야곱의 네 명의 아내를 통하여서는, 아내라 할지라도 신분이 다 똑같지 않고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배웠고, 아내들을 통해 난 자식들 12명의 사례를 통하여,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신부가 가려진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비록 이방 여인이었지만 거룩한 신부의 대열에 동참했던 자가 있다는 것도 배웠으니, 그녀는 나오미의 며느리 룻이었다. 그녀는 과부였지만 자신의 남편이 되어 준 보아스를 만나 신부의 대열에 합류한다.

  이상으로 우리는 구약시대의 신부의 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웠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구약시대의 신부의 조건은 크게 두 가지 것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하나는 죄를 지으면 안 된다는 것이요, 또 하나는 하나님 앞에 충성되이 자신의 직무를 잘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신부가 되려면 죄를 지으면 안 되는가? 그러한 사례에는 장자의 축복을 경홀히 여겼던 에서의 사례가 있고, 아버지의 첩인 빌하와 간통죄를 저지름으로 왕권과 제사장권과 땅의 축복을 잃어버린 르우벤의 사례가 있었다. 그리고 우상 숭배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야곱의 둘째부인이었던 라헬의 경우를 통해 살펴보았다. 이는 그녀가 남편을 따라 고향과 아버지의 집을 떠날 때 그만 아버지의 가신(우상)인 드라빔을 훔쳐서 나오는 바람에 결국 노중에서 사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약속의 땅인 막벨라 굴에 묻히지 못했다. 그렇다. 신부라 할지라도 죄를 지으면 신부의 대열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것과 천국에서 누리게 될 신분이 강등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와 반대되는 경우도 있다.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나 맡은 일에 충성함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이기는 자가 되게 해 주시고, 천국에서 누릴 신부의 신분을 상승시켜 주는 사례가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먼저, 이기는 자의 예표를 보자. 그는 바로 '야곱'의 경우다. 야곱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얍복강에서의 기도도 혼신을 다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일부러 져 주셨다. 그리고 그를 이기는 자라 불러 주셨다. 그러므로 주님의 거룩한 신부가 되기를 원하는 자는 반드시 기도의 훈련을 잘 쌓고 기도로 어둠의 세력을 뚫는 신부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맡겨진 일이나 모든 환경 속에서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충성하여 계급이 올라간 경우도 있으니, 그들의 예로는 바로 레아의 아들 '유다'와 라헬의 아들' 요셉'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 중에 유다는 타고난 복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야곱의 넷째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왕중의 왕이신 메시야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가족과 형제가 위기의 순간에 몰렸을 때에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음으로 그는 왕권신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똑같은 왕권신부가 된 자이지만 조금 다른 자가 있으니 그는 '요셉'이다. 왜냐하면 요셉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하늘에서 사명을 받고 이 땅에 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하늘의 사명에 충실했다. 그래서 그는 꿈의 계시대로 절을 받는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룻이라는 여인은 이방 여인이어서 결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 규정을 뛰어넘어 왕비가 되었다. 그녀는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말씀의 계명에 순종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만이 살아 계신 참신이라는 알고 그분을 붙듦으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있었다. 이것이 구약에 나타난 신부들의 전체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3. 신약시대에 신부상은 구약시대와는 어떻게 달라지기 시작했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만약 구약시대에 살았더라면 우리 중 거의 대부분은 아마도 신부의 대열에 참여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의 경우, 신부가 되기에 합당한 조건들을 총족시키기에는 우리의 삶과 신앙이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금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의 시대에 태어난 자들로서, 너무나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나를 24시간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보혜사 성령께서 예수님을 대신하여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라고 한다면 스스로 자신의 입과 생각과 행동을 통제할 수 있어야 신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을 지금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신부가 될 수 있는 경륜상 더욱더 복받는 세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신약시대에는 우리 성도들이 받아야 할 복이 이 땅에 있는 복이 아니라 하늘에 간직된 신령한 복이라는 것을 그냥 알 수 있는 시대에 살게 되었으니, 이것 또한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늘의 신령한 복이란 한 마디로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로 준비되어야 한다. 

 

4. 신약시대에 이기는 신부가 되는 데에 가장 중요한 핵심 주제는 무엇인가?

  신약시대에는 천국에 들어가는 신부를 일컬어 '이기는 자(우세하는 자)'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신약의 이기는 신부가 되기 위해 제일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회개'라는 것이다. 회개하기만 하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약시대에 이기는 자들은 대체 누구이며,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선포했던 주제가 무엇이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이자 예수님의 오실 길을 예비하였던 세례 요한의 경우 그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는 바로 '회개(메타노이아)'였다. 그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3:2)"고 외쳤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회개하는 자만이 천국을 가져오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회개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가는 최종적인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막1:4). 

마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막1: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둘째, 이제 공생애를 첫 시작하는 예수님께서도 제일 중요하게 여긴 것이 역시 '회개'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에 제일 처음으로 선포하신 말씀 역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4:17)"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생애를 다 마치고 승천하기 직전에도 주님께서는 회개에 대한 증인이 될 것을 제자들에게 부탁하셨다(눅24:47~48)

눅24:47-48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셋째, 예수님의 12명의 제자들 가운데 수제자였던 베드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가 오순절날 성령을 받은 이후, 방언을 듣고 물려준 자들에게 맨 처음으로 말씀을 선포할 때에 그가 외친 말씀의 핵심은 회개해야 성령받고 구원받는다는 말이었다(행2:38). 그리고 그가 순교하기 전에 남긴 말씀도 역시 주님은 회개를 원하신다는 것이었다(벧후3:9). 

행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벧후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넷째, 사도 바울의 바톤을 이어받아 이방인의 복음 전파에 힘썼던 사도 바울의 경우에도 가장 중요한 선포의 주제는 회개였다. 그가 각 성에 가서 외쳤던 말씀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행20:20-21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다섯째, 사도 요한 역시 예수님의 구속으로 인하여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준비가 다 되어 있지만 그것이 효력있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지은 죄를 그냥 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자신의 입술로 자백해서 용서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요일1:9). 회개없이는 지은 죄가 용서되지 않기 때문이다.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여섯째, 무엇보다도 승천하신 주 예수께서 A.D.95년경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는 사도 요한을 불러 정말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 역시 그 중심 주제가 회개였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때 요한에게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에 편지를 써 보내라고 하셨는데, 칭찬만 들었던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를 제외하고는 전부 다 회개해야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계2:5[에베소교회]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2:16[버가모교회]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계2:21-22[두아디라교회]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계3:3-4[사데교회]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계3:18-19[라오디게아교회]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끝에 가서도 예수님께서 정말 간절히 바라는 것은 자기의 더럽혀진 겉옷(두루마기)을 빨아서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들어올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22:14).

계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의 모든 하나님의 사역자들과 우리 주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회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죄를 회개했느냐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회개하면 새 예루살렘 성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새 예루살렘 성안에 들어가는 자만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다고  하셨으니(계21:2,9), 신약시대에 최대의 신부의 관건은 회개에 있었던 것이다. 

 

5. 어떻게 하면 더럽혀진 자신의 옷을 희게 할 수 있는가?

  요한계시록에 보면, 결국 흰옷을 입은 자가 이기는 자인 것을 알 수 있고, 이기는 자가 될 때에 새 예루살렘 성안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계3:4~5, 4:4, 6:11, 7:13~14, 19:8, 19:14, 22:14). 그러면 예수님을 믿을 때에 입혀진 흰옷은 어떻게 더럽혀지는가? 그것은 죄를 지을 때다(계22:15). 십계명을 어기면 옷이 더럽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옷을 씻어서 희게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더럽혀진 옷을 희게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우리를 위해 친히 고엘(구속자)로 오셔서 사람이 되신 예수님의 피뿐이다. 오직 흠없고 점없는 어린 양의 보배로운 피만이 사람이 지은 죄를 깨끗이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피가 나의 더럽혀진 옷을 씻게 하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그것은 우리가 지은 죄를 자백하는 것이다(요일1:9). 그때에 어린 양의 피가 우리의 더럽혀진 옷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계7:13~14).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것은 수천 번을 강조해도 과하지가 않는 것이다. 

 

6. 나오며

  회개는 백 번 천 번을 외쳐도 부족함이 없는 말이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결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결국 그 영혼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신앙생활의 최종적인 목표는 우리가 새 예루살렘 성 곧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정말 달라지고 확연히 드러난 사실은 무엇인가? 그것은 회개하면 지은 죄를 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의 메세지인 것이다. 맡겨진 일에 충성하고 부지런하며 하나님의 왕국 건설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것은 차후의 문제다. 그리고 이것은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우리의 상급과 신분을 결정하는 요소인 것이지 그것 자체가 천국에 들어가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새 예루살렘 성안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죄를 해결한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었어도 지은 죄로 인하여 자신의 옷이 더럽혀져 있는 자는 결국 그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성밖으로 쫓겨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하늘에 있는 24장로의 음성을 통하여 말한다. 오직 새 예루살렘 성안에 들어가려면 예수의 피에 자신의 더럽혀진 옷을 빨아 희게 하라고 말이다. 그런데도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그리고 예수 믿을 때에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 다 사함받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아직도 있음을 본다. 죽어 보면 금방 알게 될 것이다. 누구의 말을 따라가야 하는지 그때 가 보면 다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영이 겸손한 자는 자신의 죄를 회개할 것이요 그렇지 않은 자는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밀고 나갈 것이다.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서 자신의 더럽혀진 옷을 날마다 희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가 죽는 그 날에 반드시 새 예루살렘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1년 11월 05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신부(49) 구약성경에 나타난 신부들이 알려주는 최종적인 영적 교훈(민수기13:30~14:3)_2021-11-04(목)

https://youtu.be/qVo07Da-gAY [혹은 https://tv.naver.com/v/23369666 ]

 

1. 구약성경에서 우리의 신랑되시는 예수님은 어떻게 비유되어 있는가?

  구약성경에서 우리의 신랑되시는 예수님은 어떻게 비유되어 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히브리어로 '고엘'로 비유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그분이 우리를 위해 '구속자(고엘)'가 되어 주신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사44:24). 그리고 그분이 우리의 '기업 무를 자(고엘)'가 되어 주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레25:25, 룻4:1). 그런데 '구속자'나, '기업무를 자'는 히브리어로도 동일하게 '고엘'이라고 단어이다. 그렇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고엘로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일을 하신 것이다. 첫째, 우리를 마귀의 노예 생활로부터 해방해 주셨다. 둘째, 과부로 전락해 버린 우리를 기꺼이 신부로 맞이하기 위해 신랑이 되어 주셨다. 셋째, 우리가 팔아 버린 천국 기업을 되찾아 우리에게 주시려고 우리를 구속하셨다. 그리고 넷째, 우리의 원수였던 마귀 사탄과 그의 졸개들인 귀신들에게 복수하시기 위해 우리를 구속하셨다. 이를 위해 이미 2천년 전에 예수께서는 마귀의 머리를 박살 내어 사망 권세를 깨뜨려 놓으셨다. 그리고 마귀의 부하들인 귀신들을 쫓아낼 수 있는 권세를 믿는 이들에게 주셨다. 그러나 우리가 평생 기억할 것은 그분이 우리의 구속자가 되어 주시기 위해 엄청난 값을 지불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친족이 되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 주셨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들어가야 할 지옥(음부)에 가셨다가 나오셨다. 그분을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하신 것이다. 

 

2. 고엘로서 일하신 우리의 신랑 주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최종적인 정착지는 어디인가?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우리에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왜 약속의 땅 곧 자신의 기업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광야에 죽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의 가까운 친족이 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는 과연 그들을 광야에서 죽이시려고 출애굽 시켰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건 아닐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애굽 땅에서 구출해내실 때에 이미 그들을 신부로 삼고 그들에게 하늘의 기업을 주시려고 불러내신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만약 오늘날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인 된 교회 성도들이 그분을 끝까지 붙잡고 간다면 반드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것이고, 하늘의 기업을 차지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아직도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기 전의 상황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지금 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주어진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시간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시험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사례를 보라. 그들이 비록 광야에 나왔지만 광야를 통과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간 자는 극소수였지 아니하였는가! 그러므로 아직 내가 그 땅을 밟지 못한 상태라면 우리는 정말 둘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빌2:12).

 

3. 구약의 신부들 중에서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지 못한 자들은 누구였는가?

  우리는 그간 구약에 등장하고 있는 신부들의 예표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들로는 아담의 아내 하와가 있고,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있으며,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있었다. 그리고 야곱의 아내들이었던 레아와 라헬 그리고 빌하와 실바도 있었다. 또한 유대인으로서 가장 정확한 신부들의 예표를 보여 준 자가 있었으니, 그녀는 바로 아가서에 나오는 '술람미 여인'이었다. 그리고 이방 여인이었지만 보아스라는 고엘을 만나 신부가 된 '룻'도 함께 살펴보았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광야에 나온 성도들 중에 누가 과연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게 되는지,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간 신부라 할지라도 누가 왕 노릇하는 신부가 되는지를 알려주는 예표였다. 이중 술람미 여인이나 사라와 같은 경우는 많지 않은 '왕권신부'를 상징하는 것 같고, 리브가나 레아, 그리고 룻과 같은 여인의 경우는 왕후신부를 상징하는 것 같다. 그리고 야곱의 첩이었던 실바와 빌하는 비빈신부의 예표로 보인다. 그리고 더 크게 인류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본다면, 왕 노릇하는 신부들에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야곱의 아들들 중에서 유다와 요셉가 있을 것이다. 이들은 다 왕권신부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히11:8~22). 그런데 안타깝게도 약속의 땅을 아예 기업으로 차지하지 못한 자들도 있다. 그러한 자들로서는 '이스마엘'과 '에서'가 있다. 그리고 부모로부터 타고난 영적인 축복이 주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복을 잃어버린 자들로서, 에서(장자권을 경홀히 여김으로)와 르우벤(서모 빌하와 간음함으로)도 있었다. 그럼 우리는 어떠한 자라고 할 수 있을까?

 

4.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과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해 알려 주는 신부의 주의할 사항은 무엇인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과 구약의 예언자들로서 신부에 언급한 예언자는 이사야 선지자와 예레미야 선지자다. 그런데 이들의 예언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신부들이 정작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은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예복을 어떻게 준비하는가 하는 것이다. 또한 광야까지는 잘 나왔지만 결국 약속의 땅으로 비유된 새 예루살렘 성에 못 들어갔던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이다.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마귀와 지옥의 권세에서 탈출한 자라 할지라도 결국 광야로 상징되는 바, '성밖'이나(마25:10~12) '바깥 어두운 데'(마25:30)에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애굽으로 상징되는 바 사탄의 처소인 불못 안으로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마25:41,346).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마태복음 25장에 나온 세 가지 비유를 통해 살펴보았다. 즉 먼저, 미련한 다섯 처녀는 성밖에 남겨진 자의 예표다. 그리고 악하고 게을렀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자들의 예표다. 그리고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지 않아 염소의 자리에 있다가 영원한 불의 심판을 받을 자들은 장차 불못에 떨어진 자들에 대한 예표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어느 누구를 결코 성밖이나 바깥 어두운 데 그리고 불못 안에 던지려고 우리를 광야로 데리고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문제는 우리에게 있어서 밖으로 쫓겨나가나 바깥 어두운데서 형벌을 받거나 지옥불에 던져지는 것이다. 

 

5. 어떻게 해야 우리는 약속의 기업을 차지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 유월절을 통과하여 광야에 나와 교회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들은 정말 우리의 신앙과 삶을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광야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광야에서 엎드려져 죽을 사람으로 분류되는가(성밖이나 바깥 어두운 데에 떨어질 것인가?), 아니면 범죄하여 불못에 떨어지는 사람이 될 것인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반대가 되어야 한다. 우리를 위하여 기꺼이 고엘이 되신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데리고 나오실 때에는 우리를 새 예루살렘 성안에까지 데려 가시려고 데리고 나왔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자의 어려움을 잘 참고 인내하여 구원을 완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아무리 광야 생활이 힘들어도 끝까지 인내하여서 구원을 성취해야 할 것이다. 둘째, 무엇보다도 회개해야 한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신부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회개이기 때문이다. 죄를 지은 만큼 우리는 회개해야 한다. 그러면 최소한 천국의 백성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이기는 자이므로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자들이 될 것이다. 셋째, 나중에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맡겨진 일에 충성하고 천국 복음 전파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넷째, 약속의 땅이자 우리가 영원히 차지하고 누리게 될 하늘의 기업에서 왕 노릇하는 소망과 기대를 갖고 도전해야 할 것이다. 구약시대의 여호수아와 갈렙의 경우를 보면 우리가 나의 현재의 위치를 결정하는데 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때 마침내 약속의 땅에 들어갔던 여호수아들와 갈렙의 사례를 보라.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아낙 자손을 안 보았는가? 아니다. 그리고 그 땅의 성이 견고하다는 것을 안 보았는가? 그것도 아니다. 그들도 보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 땅에 대해 악평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그들에게 주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환경을 보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었다. 그리고 자신의 입술로 그렇게 되기를 선포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네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행하시겠다"고 하셨다(민14:28). 그러므로 광야(지금의 교회생활)에 도착해 있는 지금 우리 성도들은 우리 주님께서 고엘로서 행하신 일에 대한 나의 반응에 따라 나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제 공은 우리에게 넘어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주님께서는 2천년전에 이미 댓가를 다 지불해 놓으셨다. 그렇지만 그분은 우리가 죽는 그날까지 즉 세상 끝날 때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그러므로 그 땅에 들어가느냐 마느냐는 우리의 회개와 결단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힘을 내자. 그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2021년 11월 04일(목)

정병진목사

 

2021-10-29(금) 금요기도회 제목: 신부(45) 창세기에 나타난 신부의 네 번째 예표, 야곱의 아내들(창33:5~7)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e9cqug1g4Dc [혹은 https://tv.naver.com/v/23278431 ]

 

1. 들어가며

  구약성경에는 그리스도의 신부에 대한 몇몇 예표들이 있다. 그중에서 창세기에는 네 종류의 신부의 예표들이 있다. 먼저, 창세기에 나오는 첫 번째 신부의 예표는 아담의 아내였던 '하와'이다. 그리고 두 번째 신부의 예표는 아브라함의 아내였던 '사라'가 있으며, 세 번째 신부의 예표는 이삭의 아내였던 '리브가'가 있다. 그리고 네 번째 신부의 예표는 야곱의 아내들이었던 네 명의 신부들 곧 레아와 라헬, 실바와 빌하가 있다. 우리는 이러한 네 종류의 신부들을 통하여 창세기가 가르쳐 주는 그리스도의 바른 신부관을 살펴보고 있다.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신부들의 예표 가운데 세 번째 신부까지 살펴보았다. 이제 오늘은 신부의 예표로서 네 번째 신부에 해당하는 아곱의 아내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신부관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창세기가 가르쳐 주는 첫 번째 신부의 특징은 무엇인가?

  창세기가 가르쳐 주는 그리스도의 신부의 예표들은 총 네 번 나온다. 그것은 좀 전에도 살펴보았지만 '하와'와 '사라', '리브가'와 '아곱의 네 명의 아내들'이 있다. 그중에서 처음 세 명의 여인들도 역시 각기 나름대로의 신부관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첫 번째 신부였던 '하와'의 경우를 보자. 하와의 사례를 보면, 신부의 존재 목적이 나오고, 신부가 해야 할 일이 나오며, 또한 신부가 어떻게 타락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과 더불어 다시 거룩한 신부로 회복하는 길이 제시되고 있다. 먼저 하와를 통해서 우리는 신부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그것은 첫 사람이었던 아담을 돕는 배필로 지어졌다는 것이다(창2:18). 다시 말해 사람은 그리스도를 돕는 배필로 지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첫 사람 아담은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이었는가? 그는 2가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첫째로 사람은 에덴동산을 경작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 이것을 위해 그는 창조되었다. 여기서 '경작한다'는 히브리어 동사는 '아바드'라는 낱말로서, '섬기다, 봉사하다, 일하다, 노동하다, 가꾸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더불어 2차적인 뜻으로는 하나님을 섬긴다는 의미에서 '예배하다'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인류는 창조주이신 그분을 높이고 기리어야 하며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다. 그것이 인류의 존재 목적이다. 그리고 아담은 두 번째로 에덴동산을 지키는 일을 하도록 창조된 사람이다(창2:15). 그는 잠근 동산인 에덴동산을 외부의 침입자로부터 지키는 일을 수행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담의 아내였던 하와는 뱀의 침입을 그만 허용해 주었고, 더욱이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다. 그녀는 남편 아담을 도와서 남편의 말에 순종하여 에덴동산을 단단히 지키는 일을 해야 했으나 그녀는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이 결국 인류의 비극의 시작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때 이후로 하와는 고생이라는 징계를 받게 되었다. 만일 하와가 죄를 짓지 아니했더라면 인류는 지금까지 여러 고통들 곧 질병의 고통, 가난의 고통, 저주의 고통, 자녀의 문제, 무지의 문제를 겪지 않으면서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선조가 이미 우리와 함께(그때 우리는 선조들의 허리 속에 들어 있었다) 죄를 짓고 말았다. 거룩한 신부가 그만 타락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그녀가 남편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뱀의 말을 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적으로 보면 그녀는 간음을 행한 것이다. 그리스도 외에 사탄 마귀의 말을 듣고 그의 말에 순종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둘째로, 그녀가 원래대로 다시 되돌아갈 수 있는 필요한 조치 3가지를 말씀해 주셨다. 첫째, 범죄했으니 그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잉태하고 출산하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했다(창3:16). 둘째, 자신이 계속해서 남편을 주무르고 부리고 싶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하며 오히려 남편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창3:16). 셋째, 자신의 태를 통하여 약속의 씨 곧 여자의 씨를 낳아야 한다고 하셨다(창3:15). 그런데 이것들 중에서 여러 고통의 문제는 예수께서 오셔서 모든 문제들을 친히 다 해결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해 주셨다. 왜냐하면 이제는 누구라도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죄였음을 시인하는 가운데,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어서 받아들이고 그분에게 자기와 자기 조상의 죄를 자백함으로 모든 죄들을 용서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3. 창세기가 가르쳐 주는 두 번째 신부의 특징은 무엇인가?

  창세기가 가르쳐 주는 두 번째 신부는 아브라함의 아내였던 '사라'이다. 그녀는 아브라함에게 시집온 이복 여동생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불임이었다. 그래서 자식을 낳지 못하는 그녀는 죽은 자와 방불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실 것을 계획하셨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믿음과 회개로 구원받는 사람의 원형이 되게 하셨다. 결국 그들은 여러 난관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이들은 끝내는 변화되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믿음의 조상을 한 사람 아브라함이라고만 말하지 않는다. 아브라함의 아내도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한다(사51:2).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는 그녀를 믿음의 조상들의 한 명으로 올려놓았고, 그녀가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지만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것이 바로 자신에게 태의 열매를 약속하신 분인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은 것이기 때문이라고 언급하고 있다(히11:11~12). 이는 그녀가 믿음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는 그녀가 신부의 조건으로서 믿음의 분량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또한 그녀는 여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평생에 자기의 남편을 일컬어 "주(주님)"라고 불렀다. 이것을 베드로 사도가 언급하고 있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벧전3:16)" 그랬다. 그녀는 신부에게 필요한 믿음과 그리고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던 여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녀가 죽자 그녀를 약속의 땅(막벨라 굴)에 묻히게 하셨다. 하늘의 본향 찾는  자임을 그의 후손들이 눈으로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랬다. 지금 그녀는 하늘에 있는 본향 곧 새 예루살렘의 주인공이 되어 있는 것이다(히11:16~17). 

 

4. 창세기가 가르쳐 주는 세 번째 신부의 특징은 무엇인가?

  창세기가 말해 주는 세 번째 신부의 예표는 '리브가'다. 그녀는 이삭의 신부였다. 그런데 리브가를 통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신부의 특징은 2가지다. 첫째 그것은 훌륭한 신부감이 되게 하고 또 다른 훌륭한 신부를 산출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 '기도'라는 것을 말해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훌륭한 신부감이 되려면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는 것이다. 

  먼저, 훌륭한 신부감이 되게 하고 또 다른 훌륭한 신부를 산출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그것은 한 마디로 '기도'로 가능하다고 알려 준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 이삭의 신부감을 구해 오도록 자신의 늙은 종을 밧단아람으로 보내는데, 그때 늙은 종이 훌륭한 신부감을 구하기 위해서 행했던 것은 진실하고도 간절한 기도였기 때문이다(창24:42~49). 또한 그녀가 기도하는 여인이었고(창25:22), 그녀의 남편 될 이삭도 기도하는 사람이었다(창24:63, 25:21). 곧 기도가 훌륭한 신부감을 찾아내고 만드는 요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훌륭한 신부감으로서 리브가가 보여 준 행동은 3가지였다는 점이다. 하나는 그녀는 용모가 아름답고 다른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않았던 처녀였다는 것이다(창254:16). 그녀는 이제 시집갈 정도로 이미 성숙되어 있었고, 정결한 처녀였던 것이다. 또 하나는 그녀는 영적인 욕심을 가진 여인이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오빠와 늙은 종 간에 혼담이 오갈 때에 그것을 듣고는 기꺼이 이삭의 아내가 되기를 결정하고, 따라가겠느냐고 묻는 말에 즉시 가겠다고 대답을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어 그녀가 낳은 쌍둥이 가운데 둘째 야곱이 언약의 장자가 되기를 갈망하는 것과 이어진다. 그리고 또 마지막으로 하나는 그녀는 머리가 누군지를 정확히 알고 순종할 줄 아는 여인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라 때부터 실천되어 온 것인데, 리브가 역시 자신의 남편이 될 이삭을 만나는 순간부터 낙타에게서 내려서는 자기의 머리를 너울로 가리웠기 때문이다(창24:64~65). 이것은 자신의 머리는 이제 남편 될 이삭에게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5. 창세기에 나타난 신부의 네 번째 예표는 누구인가?

  그렇다면, 창세기에 나타난 신부의 네 번째 예표는 누구인가? 그것은 야곱의 아내들이다. 창세기에서는 믿음의 족장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우리는 흔히 그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성경은 믿음의 족장들을 언급할 때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만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의 아내들도 함께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창49:31, 사51:2). 다시 말해,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야곱의 그의 아내들을 언급한 것이다. 특히 야곱의 아내들로서는 최소 레아와 라헬을 말하고 있다. 룻기 4:11의 말씀을 보라.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룻4:11)" 그렇다.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자는 야곱만이 아니라 그의 신부들이었던 라헬과 레아였던 것이다. 그리고 라헬과 레아는 자식 욕심이 많아서 자기의 몸종을 남편에게 들여보내 자식을 얻은 여인들이었다. 그러므로 창세기에 나타난 신부의 네 번째 예표는 야곱의 4명의 부인들 곧 '레아'와 '라헬' 그리고 '실바'와 '빌하'였다고 할 수 있다. 

 

6. 창세기가 가르쳐 주는 네 번째 신부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창세기가 가르쳐 주는 신부의 네 번째 특징은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2가지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신부를 얻기를 바라신다는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은 기왕이면 새 예루살렘 성안에서 왕 노릇하는 신부를 바라신다는 것이다. 

  먼저, 네 번째 신부의 특징으로서 주님께서 바라시는 신부의 숫자에 대해 생각해 보자. 주님은 우주적인 신랑이시다. 그분은 더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아 새 예루살렘 성안에 살기를 바라신다. 그러므로 그분은 더 많은 신부를 얻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네 번째 신부의 예표인 야곱의 아내들을 통하여 계시된다. 우리가 겉으로 볼 때, 네 번째 그리스도의 신부의 예표는 레아와 라헬 그리고 실바와 빌하이지만 사실은 야곱과 그의 아들들로 역시 그리스도의 신부들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므로 네 명의 신부만이 신부가 아니라 12명의 신부를 주님이 얻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12'라는 숫자는 하늘의 완전수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야곱의 네 명의 부인들은 몇 명의 자식들을 낳았을까? 창세기 35:22b~26에는 야곱의 네 명의 부인들과 그녀들이 야곱을 통하여 낳은 자식들이 나온다. 첫째로, 레아는 6명의 아들들을 두었으니,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이 그들이다. 둘째로, 라헬은 2명의 아들들을 두었으니 그들은 바로 요셉과 베냐민이다. 셋째로, 레아의 여종 실바가 둔 아들들은 갓과 아셀로 2명이다. 넷째로, 라헬의 여종 실바가 둔 아들들은 단과 납달리로 2명이다. 고로 레아를 제외한 세 명의 부인들은 각각 2명씩의 아들들을 두었으며, 레아는 그들보다 세 배가 많은 여섯 명의 아들들을 둔 것이다. 주님은 더 많은 신부들을 산출하기를 바라신다. 

  둘째, 이제는 네 번째 신부의 특징으로서 누가 과연 새 예루살렘 성안에서 왕 노릇하는 신부들이 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자. 창세기가 마지막으로 가르쳐 주는 놀라운 신부의 비밀은 천국에서 신부가 다 똑같은 신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해서 다 같이 왕 노릇하는 신부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부에도 계급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 네 번째 신부의 특징인 것이다. 먼저 야곱의 부인들을 보더라도 정부인이 있고 첩이 있었다. 정부인으로는 레아와 라헬이 있었고, 첩으로는 실바와 빌하가 있었다. 신부의 교과서라고 말할 수 있는 아가서로 비교한다면, 이들은 '왕후신부'와 '비빈신부'라고 할 수 있다(아6:8~9)(아가서를 제대로 이해하면 저의 아가서강해 30강을 꼭 보시기 바란다). 그런데 보다 더 정확히 신부의 계급을 말해 주는 아가서에서는 신부에도 네 종류의 계급이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왕권신부', '왕후신부', '비빈신부', '시녀신부'가 있다. 물론 새 예루살렘 성안에 있는 신부들 중에는 계급이 없이 평민으로 들어가는 신부들도 아주 많이 있다. 그리고 둘째로 야곱의 아들들의 경우를 보더라도 천국에서 장차 신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그것은 야곱의 12명이 아들들 가운데 왕 노릇하는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요셉'이었다. 그는 애굽에 먼저 들어가서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고 나중에 자기의 형들과 동생 위에 왕 노릇하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7. 창세기에 나오는 네 번째 신부가 알려 주는 신부의 계급의 비밀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창세기가 알려 주는 신부의 계급의 비밀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왕 노릇하는 신부가 누가 될 수 있는지를 정확히 알려 준다는 것이다. 아니 신부가 될 수 있는 은혜가 주어졌음에도 그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까지 알려 준다. 

  먼저, 야곱의 아내들 중에서 정부인(왕후신부)이었던 레아와 라헬 그리고 첩(비빈신부)이었던 실바와 빌하의 경우를 살펴보자. 창세기에서 야곱의 네 명의 부인들은 누가 새 예루살렘 성안에 들어가는 이기는 신부들임을 알려 주는데, 그것은 그들이 이기는 자였던 야곱의 신부였기 때문이다. 야곱은 얍복강에서 비로소 철야 기도를 통하여 이기는 자가 되었기에 그의 부인들은 당연히 이기는 자들을 산출한 여인들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네 명의 부인들로 인하여 태어난 12명의 자식들은 다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신부들의 예표가 된다. 그리고 레아와 라헬은 누가 과연 왕 노릇하는 신부를 산출할 수 있는지를 알려 주는 귀중한 예표가 된다. 왜냐하면 레아는 야곱의 아내들 가운데 야곱으로부터 3배가 많은 자식 곧 더 많은 자식을 산출하는 신부의 예표가 되었기 때문이요, 라헬은 야곱의 아내들 중에서 야곱에게서 더 많은 사랑을 받았던 신부의 예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두 신부의 공통점은 둘 다 왕 노릇하는 신부를 산출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레아가 낳은 유다는 영적인 장자권을 받은 왕 노릇하는 신부의 예표로서, 그는 메시야의 직계 조상이 된 자이다. 그리고 라헬이 낳은 요셉은 육적인 장자권을 받은 왕 노릇하는 신부의 예표로서,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 야곱의 70명의 식구들 나아가서는 200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을 먹이는 자가 되었기에 다른 형제들에 비해 기업을 두 배로 받은 자가 될 수 있었음을 말해 준다. 

  둘째, 누가 왕 노릇하는 자가 되는지 그 조건에 대해 살펴보자. 야곱의 12명의 아들들 가운데 왕 노릇하는 신부는 누구였는가? 그들은 바로 '유다'와 '요셉'이다. 그런데 이 둘이 왕 노릇하는 신부가 된 데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유다는 자신의 노력과 행위를 통해 왕 노릇하는 지위를 얻은 자이기 때문이요, 요셉은 이미 하나님이 하늘에서부터 그렇게 살아가도록 정하여 이 땅에 내려보낸 자로서 그 사명을 충실히 이행함으로 왕  노릇하는 지위를 얻었기 때문이다. (자세한 것은 창세기강해 172강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땅에 태어날 때부터 왕 노릇할 수 있는 은혜를 받고 태어난 자였음에도 그것을 잃어버린 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야곱의 장자 르우벤의 경우를 가리켜 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는 야곱의 장자로서 은혜를 가진 채 태어난 자였다. 하지만 그는 음행의 죄를 범하여 그 지위를 상실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가 나중에 그의 서모 빌하와 간통을 하였기 때문이다(창35:22, 대상5:1~2). 그러므로 그가 받을 메시야의 조상이 되는 축복은 유다에게 넘어가고 말았고, 그가 장자로서 기업을 두 배로 받을 축복은 요셉에게 넘어갔으며, 그가 제사장으로서 받을 축복은 레위에게 넘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참고할 것은 야곱의 큰 아버지였던 에서의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도 이삭의 장자로서 타고난 축복이 그에게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장자의 축복을 경홀히 여겼다. 그래서 그것을 쌍동이 동생이었던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으로 팔아 버렸다. 그러므로 그도 역시 장자의 타고난 축복을 잃어버린 자로서 기록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언급할 것은 야곱의 둘째 부인이었던 라헬의 경우다. 그녀는 야곱으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야곱을 따라 친정을 떠나올 때 자기 아버지의 우상인 드라빔을 훔쳐 가지고 나옴으로 인하여 결국 노상에서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정부인으로서의 영적 지위를 상실하고 만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음행의 죄와 우상 숭배의 죄가 왕 노릇하는 지위를 상실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영적인 축복을 경홀히 여기는 것 또한 하늘에서 왕 노릇하는 지위를 얻지 못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8. 나오며

  창세기는 시작의 책이다. 그러므로 창세기를 읽어 보면 거의 모든 씨앗들을 다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그 결과인 열매들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작과 마지막 책에 정말 익숙해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축복을 보지 못해서 그것을 얻지 못할 수도 있고, 심지어는 그것을 이미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혹시 창세기강해 172강과 요한계시록강해 52강을 듣지 못하신 분들은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이 두 가지 강의만큼은 꼭 보실 수 있기를 바란다). 특히 창세기에는 네 번에 걸쳐 그리스도의 신부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는 방법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렇게 되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누구나 신부가 되기를 원하시지만 아무나 그 신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예수만 믿으면 다 신부가 되는 것이 아니며, 천국에만 들어가면 다 왕 노릇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계시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합당한 준비를 해야 한다. 여러분이 바로 그 놀라운 축복의 주인공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1년 10월 29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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