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상강해(42) 위기를 극복한 다윗에게서 왕으로서 기품이 배어나오다(삼상30:1~31)_2022-01-03(월)

https://youtu.be/Y0Va-0XFa9Q  [혹은 https://tv.naver.com/v/24416893 ]

 

1. 이스라엘과 블레셋 전투에서 빠지게 된 다윗과 그의 600명의 사람들이 마주하게 된 쓰라린 사건은 무엇이었는가?

  하마터면 블레셋 다섯 방백이 이스라엘과 일으킨 전쟁에 참여할 뻔 했던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로 전쟁에서 빠지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들이 살던 시글락으로 내려오게 되는데, 그 사이에 기가 막힌 일이 발생한 상태였다. 즉 다윗과 그의 군사들이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아말렉이 쳐들어온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유다 남부를 침노하였고 그 마을들 중에는 시글락도 포함되었는데, 그들은 시글락을 불살랐고 그들의 아내와 자녀들을 사로 잡아갔다. 이에 불타고 있는 성읍을 바라보았던 다윗의 그의 사람들은 그만 주저 앉아 목놓아 울 수밖에 없었다. 그때에 주군이었던 다윗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2. 최대의 시험거리에 직면한 다윗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갔는가?

  너무나 고통스러운 현실에 직면한 백성들은 그만 다윗을 돌로 치려고까지 한다. 그러자 다윗은 모든 책임을 통감함으로 아무 말을 하지 못한다. 이 일이 터진 것이 원수의 나라인 블레셋에 망명한 것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엄중한 현실을 보고 그저 주저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왜냐하면 한 가닥의 희망은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렇더라도 처자식들은 아직 죽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윗은 즉시 하나님의 뜻을 묻는다. 그래서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에봇을 가져오게 한 뒤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도 아말렉을 쫓아가라고 하시고 잡혀간 것들을 도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응답해주신다. 이에 다윗은 자신의 600명의 군사와 더불어 어딘지는 모르지만 그 대적을 향하여 출발한다. 그런데 어찌나 힘이 들었던지 200명의 군사는 그만 지쳐서 브솔시내를 건너지 못하고 주저앉는다. 그러자 다윗은 그들에게 짐을 맡기고는 400명의 군사만 거느리고 적을 행햐 떠나는데, 문제는 적이 어디로 갔는지를 알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또다시 긍휼을 베풀어주신다. 가다가 아말렉 사람들로부터 버려진 한 노예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 소년에게 음식을 주어 정성껏 돌보자 그가 기운을 차리게 되는데, 그는 애굽의 소년으로서 아말렉 사람의 종이 되었던 소년이었다. 그런데 병이 들자 주인이 그를 버리고 그만 가버린 것이다. 그러자 다윗은 의 신변안전을 보장해주기로 하고 그의 뒤를 따라간다. 그는 정확히 아말렉 족속이 있는 곳을 가르쳐주었는데, 그들은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자 다윗과 400명의 군사는 적진을 일격에 습격하여 새벽부터 이튿날 해가 저물 때까지 아말렉을 친다. 그리하여 낙타를 타고 도망친 400명의 청년을 제외하고 아말렉인들은 전부 죽게 된다. 그리고 잃어버린 모든 처자식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되찾게 되고, 무엇보다도 엄청난 양의 전리품을 얻게 된다. 그것은 아말렉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의 땅과 유다 땅에서 약탈한 것들이다. 

 

3. 전리품을 나눌 때에 다윗이 세운 규례는 무엇이었는가?

  이제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자신의 처자식은 도로찾게 되었고 엄청난 양의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오게 된다. 그러다가 브솔시내에 이르게 되는데, 그때였다. 거기에는 지쳐서 남아있던 200명의 군사들이 있었다. 그러자 좀 불량한 사람 곧 전쟁에 참여했한 자들 중에 악한 자가 다윗에게 말했다. "주군, 저들은 우리와 함께 가지 않은 자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얻은 전리품은 저들에게 주지 말고, 오직 저들은 각자의 처자식만을 데리고 가게 합시다." 그러자 다윗이 그들에게 말한다. "나의 형제들이여, 이번 전쟁은 우리가 잘 해서 전쟁에서 이긴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그들을 우리 손에 넘겨준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전리품을 우리들만 차지한다는 것은 아니 될 말이오. 전쟁터에 나갔던 자들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러서 짐을 지키던 자들이나 분깃은 다 똑같이 나누도록 하시오." 그런데 다윗의 이 말 한 마디는 200명이 군사들이 평생 자기의 목숨을 바쳐 다윗을 지킨 이유와 연결된다. 그랬다. 다윗은 관용을 베풀 줄 아는 넉넉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 것은 자기와 자기의 부하 400명이 전쟁을 잘 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도와주셨기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선포한 것이다. 저는 전쟁승리의 공을 자기에도 돌리지 않고, 하나님께 돌림으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4. 다윗은 전리품들을 누구에게도 보냈는가?

  그런데 다윗의 덕망과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로움은 이 다음의 일에서 더욱 더 빛이 난다. 왜냐하면 다윗은 자기가 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같이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남방 주변에 있는 유다지파의 장로들과 성읍들에게 전리품을 보내게 한다. 먼저는 유다의 장로들에게 선물을 보낸다(삼상30:26).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유다의 각 성읍에까지 전리품을 나누어 준 것이다(삼상30:27~31). 그런데 시실 유다 성읍의 주민들 중에 다윗을 밀고한 자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들에게까지 선처를 베풀어 준 것이다. 이처럼  다윗은 유다백성의 잘못을 하나도 묻지 않았을 뿐더러 그들에게 많은 긍휼을 베풀어준 것이다. 그러자 훗날 사울이 죽고 다윗이 왕이 되어야 할 때가 이르게 되었을 때에, 제일 먼저 유다 지파의 사람들이 일어나 그를 왕으로 추대하였던 것이다. 

 

5. 끝내는 천국에서 왕노릇할 자리에서 떨어진 사울 왕과 그 자리의 최고 꼭대기에 올라간 다윗, 이 두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가?

  성경에는 이 땅에서도 왕이었지만 천국에 들어가서도 왕노릇하는 한 사람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바로 '다윗'이라는 인물이다. 그런데 이 땅에서는 왕이었지만 천국에서는 왕이 되지 못한 사람도 있다. 그는 바로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이었다. 왜 그랬던 것일까? 그런데 이 둘은 서로 반대의 길을 걸어갔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에 그들은 과연 어떻게 처리했을까? 그때 사울왕은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에 혹시 자신의 체면을 잃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다윗은 달랐다. 그는 처음부터 무슨 일을 만나든지 기도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삼상30:7~8). 사실 사울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은 그의 안중에 없었다. 전쟁에 승리했을 때에도 그는 자기의 이름을 높이는데에 관심을 집중하였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찌하든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에만 늘 관심을 집중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그는 철저히 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가라 하고 갔고 멈추라 하면 멈추었던 것이다. 셋째,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 이유를 어떻게 말했는가? 다윗은 전쟁에서 승리할 때에도 그것을 자기가 잘 한 것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히 믿고 의지하였다. 그러나 사울은 그 반대의 삶을 살았다. 모든 영광은 자신이 받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윗은 전리품도 자기가 취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를 기뻐하였다. 그러자 훗날 사울이 죽었을 때에 유다지파의 사람들은 이내 다윗을 유다족속의 왕으로 삼았던 것이다. 

 

2022년 01월 03일(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상강해(39) 다윗 왕국의 시동을 걸기 시작하다(삼상27:1~12)_2021-12-30 (목)
 

1. 다윗의 마지막 도피처가 된 곳은 어디였는가?

  두 번째로 다윗과 조우를 통하여 사울왕은 그동안 자기가 죄없는 다윗을 죽이려했다는 것을 시인하고 다윗이 차기 왕이 될 것도 알고 그를 축복한다. 그리고 둘은 헤어진다. 하지만 다윗은 이제 사울왕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피신하게 되는데 그곳은 바로 '블레셋' 땅이었다(삼상27:1~2). 다윗은 이제 8년 만에 또다시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에게 가서 망명을 요청하고 있다(삼상29:3). 그런데 이번에는 8년 전과는 상황이 좀 많이 다르다. 전에는 소년 몇 명과 망명하러 갔었고, 다윗을 두려워하는 신하들에 의해 다윗은 아기스왕 앞에서 침을 흘리며 미친 체하다가 도망쳐 나와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벌써 정예 군사 600명에다가 부녀를 포함하여 최소 1,800명 이상이 다윗을 따라 망명을 요청해 온 상황이기 때문이다. 

 

2. 왜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는 다윗의 망명을 받아 주었는가?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는 의외로 다윗의 망명을 쉽게 받아 준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아마도 적의 적은 내 편이라는 공식에 따라, 자기 편의 사람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당시 아기스왕의 적은 사울왕이었다. 그런데 사울왕의 적이 또한 다윗이었으니, 적에 대한 적으로서 다윗은 얼마든지 자기의 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다윗 휘하에 어느 정도 군사들도 있기 때문에 잘하면 다윗을 자신의 부하 장수로 써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또 흘러갔다. 그러자 다윗이 왕에게 요청을 했다. 자신이 왕에게 은혜를 입었다면 이제는 왕도에 함께 살지 않고 따로 나가 살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왕은 남방에 있는 변방의 버려진 마을인 '시글락'을 그에게 허락한다. 그런데 그때도 역시 아기스는 다윗을 떠보는 중이었다. 그러므로 다윗이 왕도에 계속 있다면 언제 다윗이 자기에게 구테타를 일으킬지도 모르니 떠나 보내는 것이 더 나아 보였고, 또한 다윗이 남방의 변방을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되는 셈이었다. 그러므로 쾌히 승락을 하고 다윗과 그의 일행을 시글락으로 가게 한다. 

 

3. 왜 다윗은 아기스에게 자신들의 거처를 달라고 했는가?

  다윗도 나름대로의 계산이 있었다. 그것은 지금은 급한 불은 우선 끄자는 데에 중점이 있었다. 왜냐하면 사울왕이 자기에게 두 번씩이나 약속을 했지만 언제 또다시 번복할지 모르니 우선 사울왕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피신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나라 땅에 피하면 또 사울이 추격해 올 것 같으니, 아예 외국에 망명을 요청해야겠다고 작정한 것이다. 만약 사울이 다윗이 거처하고 있는 블레셋 땅이라도 침범해 들어온다면 전쟁하자는 것이 되므로 사울도 함부로 쳐들어 올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욱더 다윗이 망명을 요청한 이유중의 하나는 자기가 이끄는 공동체 처자식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수 년 전에 다윗은 아비가일과 아히노암과 결혼을 했었다. 그러자 다윗의 부하들도 결혼을 하기 시작하여, 이제는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식솔들이 많았다. 그러므로 다윗이 블레셋 땅으로 망명한다고 하니 그들도 저마다 가족을 데리고 가드로 이동하였던 것이다(삼상27:3). 그러나 이전에는 그러한 상황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때는 다윗과 그의 군사들만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가정을 꾸리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부녀와 자식들을 데리고 도망 다닐 수는 없는 형편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부녀들과 자식들은 어떤 장소에 살게 해야 했다. 그리고 다윗과 부하들은 언제든지 도망을 치든지 전쟁을 하든지 하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다윗은 기꺼이 블레셋으로 가기를 결정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가서 자기들이 살 수 있는 땅을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그런데 다윗을 잘 이용할 수 있다면 손해볼 것이 없을 것으로 판단한 가드의 아기스왕은 계속 다윗을 주시하면서 그를 지켜보기로 한다. 

 

4. 다윗이 시글락에 머물면서 한 일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다윗이 시글락에 머물면서 한 일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사실 '시글락'은 원래 유다 지파의 땅으로 할당되었다가, 시므온 지파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다시 유다 지파의 땅이 된 곳이다. 그런데 다윗 당시 시글락은 블레셋의 영토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아기스왕이 다윗에게 시글락을 하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가드의 왕도로부터 약 4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시글락에 위치한 다윗은 그곳에서 무슨 일을 했던 것일까? 그것은 자기 식솔들의 식량과 의복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글락이 이스라엘과 블레셋 그리고 애굽 땅의 경계선에 있는 지역인지라 주변에는 타 민족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 많았다. 그러자 다윗은 시글락 주변에 있는 족속들 즉 그술 사람들과 기르스 사람들과 아말렉 사람들이 사는 지역을 쳤다. 그리고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은 다 죽이고 가축으로서 양과 소, 나귀들과 낙타들 그리고 의복을 구해 왔다. 그리고 일부를 전리품으로 아기스왕에게 바쳤다. 그러자 아기스왕은 블레셋의 변방을 수호하고 주변을 정복하여 블레셋의 영토를 확장해 준 다윗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 그리하여  다윗을 더욱 신뢰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묻는다. "오늘은 어디를 쳤느냐?" 그러자 다윗은 유다의 변방 지역을 쳤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곳은 유다 변방에 위치한 마을들이었으므로, 그 대상은 유다 사람들은 아니었다. 만약 그때 다윗이 유다 사람들을 쳤다면 그는 유다의 왕이나 전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비밀이 새 나가지 않도록 다윗이 주변 타민족을 칠 때에는 대부분 사람을 살려 두지 않았다. 만약 한 사람이라도 살려 두면 다윗의 실체를 보고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시글락에 거주하면서 비로소 한 마을의 부족장처럼 왕처럼 백성을 돌보고 먹이고 입히고 하면서 장차 왕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시험해 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5. 다윗이 블레셋에 망명한 것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다윗이 블레셋에 망명한 것을 두고 잘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윗은 이제는 안정을 누려야 할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그랬다. 그때 당시 다윗도 결혼하였고 이어서 부하들도 결혼을 치름으로 처자식이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므로 다윗도 그들의 안정을 찾아 주어야 하는 순간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취할 수 있었던 가장 안정된 선택지는 바로 '망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을 잘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없는 것은 블레셋은 원래 이스라엘의 원수가 아닌가? 다윗 자신도 가드 사람 골리앗과 전쟁할 때에 할례받지 아니한 사람이라고 그들을 칭했었다. 즉 하나님의 약속이 없는 자들이라고 한 것이다. 또한 골리앗과 전쟁할 때에 다윗은 다곤신을 섬기는 그들로 하여금 어떻게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이름을 능멸하도록 놔 둘 수 있겠느냐고 말했었다. 그런데 그가 지금 블레셋 나라에 망명을 하고 말았으니 잘한 일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이스라엘과 블레셋 간에 전쟁이라도 터진다면 다윗은 과연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그러므로 다윗의 이러한 선택을 두고서 우리는 그를 칭찬할 수는 없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진짜 그러한 일이 터지고 말았다. 이스라엘과 블레셋 간에 전쟁이 터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다윗은 아기스왕을 따라 전쟁에 나가야 했다. 블레셋 편이 되어 이스라엘을 무찔러야 할 판이 된 것이다. 어찌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런데 그때였다. 다윗의 전쟁 참가에 제동을 걸고 나선 이들이 있었으니, 가드 왕(방백)을 제외한 나머지 4개의 왕들(백뱅들)이었다. 그들은 다윗이 절대 자기들과 같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언제 돌변하여 전장에서 자기들의 대적이 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그를 데려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언급하기를, 과거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노래했을 때에 여인들이 만만의 칭송을 돌리던 자가 다윗이 아니냐는 것이다(삼상29:5). 그러니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자 아기스왕도 다윗을 불러 다른 수령들이 다윗을 좋아하지 않으니 돌아가라고 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도 은혜를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더라면 다윗이 블레셋 장수가 되어 이스라엘을 치는 격이 될 뻔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가 어찌 장래에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도 블레셋의 다른 방백들의 마음을 들어서 움직여 다윗이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막아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혹 우리가 생각하고 기도해야 할 기도 제목이 생기는 것이다. 내가 일할 때에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지 못할 상황에 처하지 않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일할 때에는 하나님의 이름만 높일 수 있게 해 달라고 미리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다윗을 도와주셨던 하나님께서 우리들도 도와주실 것이다. 

 

2021년 12월 30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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