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서는 어떤 여인이 자기가 좋아하는 연인에게 입맞춤을 해 달라는 요청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 중에 1~7장에는 침상이나 혹은 침실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고로 과연 이 책이 성경책이 맞는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아가서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생각이 완전히 달라진다. 왜냐하면 이 아가서는 복음서 중에 복음서요, 계시록의 책 중의 계시록과 같은 귀한 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아가서의 마지막 구절에는 '마라나타'로 끝을 맺고 있다. 과연 신랑에 대한 신부의 최종적인 바램, 그것은 대체 무엇이었으며, 그것이 들려주는 놀라운 영적 비밀은 무엇일까?  2021-10-22(금) 금요기도회 제목: 신부(38) 아가서강해(28) 신부 술람미 여인의 최종적인 요청은 무엇인가(아8:14)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k7it7c3UlJA [혹은 https://tv.naver.com/v/23166753 ]

 

1. 들어가며

  아가서는 선남선녀의 연애 이야기다. 그러나 그러한 이야기를 쓰려고 쓴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천국 성도를 얻으시는지 그리고 천국에 들어갈 성도들은 과연 어떤 신분으로 들어가는지를 알려 주는 신부의 천국 입성 지침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제 있었던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 이야기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배울 수 있으며, 동시에 장차 천국에 들어갈 성도들의 모습도 미리 엿볼 수가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아가서를 영서(영적인 책)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아가서의 끝은 어떻게 마무리되었을까? 신부의 최종적인 바램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지난 27번의 시간을 통하여 아가서 전체를 살펴보았다. 그중에 오늘은 아가서의 맨 마지막 장의 마지막 절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아가서가 궁극적으로 어떤 책인지를 살펴보고, 신부된 성도들의 마지막 소망은 무엇이며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준비해야 하는지까지 살펴보도록 하자. 

 

2.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이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열왕기상 11:3의 말씀에 따르면 솔로몬에게는 왕비(왕후)가 700명이나 있었고, 후궁(비빈)도 300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왕비 700명 가운데에는 분명 술람미 여인도 들어 있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그런데 열왕기상의 기록 가운데 술람미 여인의 흔적을 찾기가 심히 어렵다. 아니 나오지 않는다. 있기는 있었으나 기록되지 아니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술람미 여인이 실재하는 여인이었는지를 연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 성경책이 우리에게 정경으로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에는 분명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이 정경의 한 권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빨리 이 책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의 주인공들 곧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실재하는 인물을 벗어나 그리스도와 천국의 신부를 예표하는 인물이라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은 솔로몬에 대한 아가서의 진술과 술람미 여인에 대한 성경의 진술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다. 

  먼저, 솔로몬이 진짜 누군지를 알려 주는 말씀이 아가서 8:1~2에 나온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은 오라비'가 아닌 분으로, 자기와 자기의 어머니가 그분에게서 무엇인가를 교훈받아야 할 분이라고 말한다. 얼핏 보기에 이 말은 솔로몬이 자신의 친오빠가 아닌 아쉬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찬찬히 읽어 보면, 술람미 여인의 어머니는 단순히 그녀의 모친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하와 내지는 인류를 대표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술람미 여인이 말하고 있는 솔로몬은 인류의 젖을 먹지 않는 사람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분은 원래 하나님이셨는데 사람이 되신 분이기 때문이다(요1:18). 그리고 술람미 여인이 누군지도 소개되어 있는데, 그녀는 솔로몬에게 하나 밖에 없는 짝이라고 나온다(아6:9). 솔로몬에게 그녀는 자신의 비둘기이자 완전한 자라고 했다(아6:9). 그런데 솔로몬에게는 당시 왕비가 60명이나 있었고, 후궁도 80명이나 있었으며, 시녀가 무수히 많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왜 솔로몬은 굳이 숫자를 여기에 소개하고 있는 것일까? 과연 솔로몬이 언급한 여인들의 숫자는 실재 숫자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이 숫자들까지도 어떤 영적인 의미가 들어있는 것인가?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이 숫자는 역시 영적인 의미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솔로몬에게 있는 여인의 종류는 아가서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가서보다 먼저 쓰였을 것으로 여겨지는 시편에도 동일하게 소개되어 있기 때문이다(시45:9). 시편 45편을 읽어 보라. 시편 45편의 저자인 고라자손은 역시 백합화 같은 신부들을 네 종류로 구분하고 있다. 그들은 왕권신부 즉 왕의 딸들과 아들들, 왕후(왕비)신부, 비빈(후궁)신부인 두로의 딸, 시녀(처녀)신부가 동일하게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시45:9~17). 고로 이러한 신분들은 당시 실재하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장차 하늘의 신부가 누군지를 말해 주는 것이다. 그것을 후대 사람이었던 솔로몬도 같이 보았던 것이다. 특별히 왕권신부, 왕후신부, 비빈신부, 시녀신부란 천국에서 일반 백성(평민)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전부 다 '이긴 자'들로서 영원한 천국에서 왕 노릇할 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들의 숫자는 요한계시록에 144,000명이라고 나온다. 그런데 놀랍게도 왕권신부 30명, 왕후신부 60명, 비빈신부 80명을 곱하면, 144,000명이 나온다는 사실도 특이하다. 고로 아가서에 나오는 숫자도 그냥 기록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천국에서 왕 노릇할 144,000명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보필을 받게 되는지도 기록하게 하신 것이다. 

 

3. 신랑이 신부에게 최종적으로 바라는 사항은 무엇인가?

  아가서는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 1:1~3:5의 말씀은 결혼 전의 이야기이고, 3:6~5:1의 말씀은 결혼식 때의 이야기다. 그리고 5:2~8:14의 말씀은 결혼 후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신랑은 신부에게 최종적으로 어떤 바램을 마지막으로 노래했을까? 그 말씀이 바로 아가서 8:13에 나온다. "너, 동산에 거주하는 자야! 친구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내가 듣게 하려무나(아8:13)" 그렇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이 동산에 거주하는 자라고 선포하고 있다. 그리고 주변의 친구들도 그녀의 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 그녀처럼 동산에 거주하는 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가서에 나오는 '동산'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녀의 최종적인 처소가 '동산'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아가서에 나오는 '동산'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아가서를 사실상 풀 수 없거나 잘못 풀게 된다. 그것은 앞의 몇 번의 설교를 통해서 이미 전달했으니 그것을 참고하기를 바란다. 다만 간단히 정리하면 그것은 결국 감추어진 잠근 동산으로서 영적인 공간에 실재하는 장소를 가리킨다. 이것은 이 땅에서 우리의 마음 가운데 존재하는 것이자 동시에 하늘에서도 존재하는 것인데, 그 공간은 천국에서 주님이 일하시는 공간인 것을 알 수 있다. 주님께서는 그곳에서 이 지상에 있는 양 떼들을 돌보고 계시며, 당신의 백합화 같은 신부에게 더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계신다(아6:2~3). 그리고 백합화가 꺾어진다면, 주님은 그녀를 태우러 보내기 위해 수레를 준비하고 계신다(아6:12). 그리고 그녀를 천국의 동산 곧 새 예루살레 성안으로 데려가신다. 그런데 신부의 성숙도에 따라 그녀도 천국에 있는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으로 더 깊숙이 이끌어 가신다(아4:12).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어찌하든지 이 땅에 살 때에 자신의 영의 공간에 '동산'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동산을 만드는 법은 아가서 5:1에 나와 있다. 그것은 첫째, 기도하고 둘째, 말씀을 먹고 셋째, 성령을 마시는 것이다. 그런 자만이 동산을 만들 수 있으며, 결국에는 셋째 하늘에 있는 동산에 들어갈 수가 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의 최종적인 거처를 마지막으로 언급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그 장소를 발견하지 못한 자들이 있다면 술람미 여인에게서 그것을 듣고 그 동산을 만들기를 바라고 계신다. 이것이 바로 아가서 8:13의 말씀이다.

 

4. 신랑에 대한 신부의 최종적인 요청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신부인 술람미 여인은 최종적으로 신랑인 솔로몬에게 어떤 부탁을 하였을까? 그것이 바로 아가서의 마지막 장의 마지막 구절이다.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들] 위에 있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여]라(아8:14)" 그렇다. 여기에 나오는 '내 사랑하는 자'는 솔로몬을 가리킨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사랑하던 바로 그분이었다. 그런데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에게 이렇게 요청을 한다. "당신은 빨리 달리세요" 그런데 한글성경은 이 말의 뜻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히브리어로 보면 어떤 뜻일까? '빨리 달리라'는 말은 '바라흐'라는 동사로서, 크게 2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도망하다. 피하다'는 뜻이 있고, 또 하나는 '서두르다. 재촉하다. 어서 오다(가다)'는 뜻이 있다. 여기서는 후자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을 킹제임스 흠정역에서는 '서두르세요'라고 번역하고 있으며, 표준새번역에서는 '빨리 오세요'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러니까 신부가 신랑에게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신구약 성경의 결론의 책인 요한계시록을 보면, 신부가 역시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하늘의 동산인 새 예루살렘 성으로 초청하고 있는데, 그녀가 맨 마지막으로 하는 말도 역시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마라나타)"이다(계22:20). 그렇다. 신랑에 대한 신부의 최종적인 요청은 "어서 오시옵소서"라는 간구였던 것이다. 이 말을 아람어로는 '마라나타'라고 한다. 그러므로 아가서를 쓰고 있을 당시로 가서 본다면(B.C.960-~950년) '빨리 달리라'는 말은 초림의 예수가 어서 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경우라면, 재림의 예수께서 어서 오실 것을 요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5. 아가서의 최종적인 말씀을 재림하실 예수님을 고대하는 신부의 최종적인 요청으로 해석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므로 오늘날의 관점으로 볼 때, 아가서의 최종적인 말씀(아8:14)은 장차 재림하실 예수님을 학수고대하는 신부의 바램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신랑에 대한 신부의 요청이 '속히 오시옵소서'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님의 재림을 바라는 신약 성도의 간절한 요청과 똑같다. 둘째, 장차 신부를 데리러 올 신랑이 현재 있는 장소를 천국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8:14에 의하면, 신랑의 위치는 '향기로운 산들'이라고 나와 있다. 이것을 아가서의 기록으로 보면, 솔로몬의 동산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아4:6, 13~15, 5;1). 왜냐하면 이 동산 안에서 3가지 것이 나오는데(아5:1), 하나는 몰약과 향재료이고(향은 '기도'를 상징함), 둘째는 꿀송이와 꿀이며(이것은 먹는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함), 셋째는 포도주와 젖이기 때문이다(이것은 마시는 '성령을 상징함). 그러므로 결혼 후 그녀가 가고 싶다고 말했던 그 장소 곧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들과 동일한 장소다(아4:6). 왜냐하면 천국의 동산은 사실 몰약산이며 유향의 산들로서 아름다운 향기가 가득한 곳이기 때문이다. 셋째, 신부가 속히 오기를 바라는 신랑의 모습이 노루와 어린 사슴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아가서에 나오는 '노루'와 '사슴'은 팔짝팔짝 뛰어서 속히 신부에게로 달려올 수 있는 동물들의 대표이다(아2:8~9, 2:17). 그런데 히브리어로 이 단어를 살펴보면, 더욱더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노루(체비)'의 히브리어가 '영광, 빛남, 광채'가 일차적인 뜻이며, 비로소 이차적인 뜻이 '노루'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또한 '체비'는 다시 동사 '차바'에서 온 말인데, 그 동사의 뜻은 '싸우다. 정렬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분이 노루와도 같이 속히 오신다는 말은 다시 오실 그리스도는 영광 가운데 천사들과 함께 오실 분으로서, 마지막 때에 아마겟돈 전쟁을 일으킨 악의 무리들을 쳐부수고 오실 주님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19장의 이야기를 요약한 말이라고 하겠다. 뿐만 아니라 '어린 사슴'이라는 말도 히브리어로 보면 재림하실 예수님에 대한 기대가 들어 있는 말이라는 것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사슴'은 히브리어로 '아이얄'이라는 단어이고, 이 단어는 '울'에서 왔는데, 히브리어로 '울'은 '힘, 권세'를 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재림하실 그리스도는 하늘의 강력한 권세와 능력을 가진 채 영광 중에 천사들과 함께 오실 것이며, 그때에 악인은 심판하여 불못에 멸하시고, 의인에게는 하늘에 속한 큰 상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6. 나오며

  왜 아가서는 주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는 여인의 요청으로 끝마치고 있는가? 그것은 아가서에 언급되고 있는 주님의 신부들이 이 세상에 살 때에 가장 바라고 가장 고대해야 할 일이 바로 '주님의 재림'에 있어야 함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님의 재림을 기대하라는 요청은 사실은 주님의 재림시에 부끄럽지 않을 사람으로 있어야 함을 암시한다. 만약 내가 여전히 죄짓고 있는 삶의 싯점에 주께서 오신다면 그분 앞에서 얼마나 부끄럽겠는가?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사모하라는 말씀은 주님께서 언제 오시더라도 그때에 나 자신이 주님 앞에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으로 설 수 있기를 소망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나는 지금이라도 주님께서 재림하신다면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사람으로 설 수 있을까? 그러기에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재림에 대한 온전한 소망이 있다면, 첫째, 그는 항상 회개하는 삶을 살아서 깨끗하고 흠없는 그리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는 백합화와 같은 신부, 비둘기와 같은 신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도 우리의 주인을 사탄 마귀에서 주님으로 바꾼 이상 원수의 영토에서 벗어나 주님의 영토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주님의 일이 나의 일이 되고 주님의 생각이 나의 생각이 되고 주님의 뜻이 나의 뜻이 되어야 한다. 또한 그러한 일을 실천함으로 거기에 합당한 열매들이 맺혀져야 한다. 그러한 자들에게 비로소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라는 말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나는 부족하다. 하지만 주님의 뜻을 알게 되었고, 나에게 기도의 무기가 들려져 있고, 하나님의 말씀도 있으며, 나와 영원히 동행하도록 이 땅에 보내어진 성령님이 내 안에 있다. 힘을 내자. 나는 할 수 없지만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멘. 할렐루야!

 

2021년 10월 22일(금)

정병진목사

 

 

누가 진정한 신부라고 할 수 있는가? 자신이 "나는 신부야"라고 말하면 그냥 신부가 되는 것인가? 그리고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과연 주님은 어떠한 것을 가지고 주님에 대한 우리 자신의 사랑이라고 말씀해주시는 것일까? 그것에 대해 신부가 들려주는 오늘 말씀은 우리의 가음을 뭉클하게 만들고, 또한 나를 돌아보게 한다. 아가서 6장과 7장의 말씀은 누가 진정한 신부인가를 말해주는 기준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2021-10-15(금) 금요기도회 제목: 신부(31) 아가서강해(21) 보다 더 성숙해진 신부가 준비해 놓은 사랑의 증표(아7:10~13)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aiWHQsuGb6I [ 혹은 https://tv.naver.com/v/23033603 ]

 

1. 들어가며

  아가서에는 신앙과 관련된 말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가장 신앙적인 책이 바로 이 아가서다. 왜냐하면 아가서는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를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관계 곧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겉으로만 보아서는 이 책이 무슨 연애 이야기인가 하고 판단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이 책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상당히 내공이 필요하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거듭 등장하고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은 겉으로 보기에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주인공이지만 내면에서는 첫사람 아담과 하와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고,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탈출시키는 여호와,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등장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장차 도래할 천국에서 혼인 예식을 치르게 될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인 성도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오늘 이야기는 점점 더 성숙해 가고 있는 신부감에 관한 이야기다. 대체 술람미 여인에게 있어서 성숙이라는 단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이 그녀가 솔로몬을 데리고 갔던 포도원과 합환채 그리고 새것과 옛것으로 마련된 그녀의 집과는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 것인가? 

 

2. 솔로몬은 왜 그녀를 성숙한 여인이라고 칭찬하였는가?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항상 좋은 관계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때 술람미 여인은 신랑을 놓쳐 버린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한다. 놓쳐 버린 신랑을 다시 찾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가 신랑을 찾게 된 데에는 3가지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끈질긴 기도와 진심 어린 회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의 아름다움을 높여 드림으로 가능했다. 그 뒤 그녀와 솔로몬은 더욱더 가까워졌다. 신랑은 그녀를 아주 칭찬해 주었다. 그녀를 부르는 명칭에 있어서도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라고 했다(아6:4,9). 그리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라고까지 칭찬해 주었다(아6:4,9). 솔로몬은 그녀야말로 진정 신랑을 기쁘게 하는 가장 귀한 존재라고 한 것이다. 그것은 그녀가 성숙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때는 그녀가 자신의 부주의와 무관심으로 인하여 신랑을 놓쳐 버린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기에게 닥친 위기 상황을 지혜롭게 극복해 내었을 뿐만 아니라, 신랑이 기뻐하는 일까지 준행하는 성숙한 여인으로 성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어떻게 성장해갔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그것은 아가서 6~7장이다. 이 기록을 살펴보면, 술람미 여인이 어떻게 되어서 더 성숙한 여인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는지가 나온다. 그것은 한 마디로 그녀도 솔로몬처럼 양 떼를 낳고 양육하는 자가 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의 과정은 솔로몬은 그녀의 유방에 대해서 말하는 대목을 통해서도 확인이 된다. 왜냐하면 그녀의 유방에 대해 예루살렘의 딸들은 두 개의 암사슴의 쌍둥이 새끼 같다고 말했었다(아7:3). 이것은 그녀의 성숙도를 말해 주는 표상이다. 그녀는 계속해서 성장하였고 나중에는 솔로몬은 그녀를 먼저는 종려나무의 열매송이와 같다고 하였고(아7:7), 포도송이 같다고도 하였다(아7:8). 이것은 엄청난 성장이다. 왜냐하면 둘만을 산출하여 먹이던 신부의 삶에서 이제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신부들을 산출하고 양육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 술람미 여인은 왜 신랑을 데리고 포도원으로 가자고 했는가?

  그러던 어느 날 술람미 여인은 신랑을 데리고 자기가 가꾸어 놓은 포도밭으로 데려간다. 그에게 보여줄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때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에게 보여준 것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때 그녀는 남편에게 말하기를 들(야생의 들판)로 가서 어떤 동네에서 유숙하자고 말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얼핏 보면 여자는 시선들이 많은 예루살렘 궁을 벗어나 시골의 한적한 곳으로 외박을 하고 거기서 둘이 서로 사랑을 나누자는 제안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진실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책은 결코 청춘 남녀의 에로티시즘을 묘사하기 위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부의 초청 장소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히브리어 원문에 대한 바른 분석이 필요하다. 왜냐햐면 아가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를 부르기 위한 시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언어로 번역된 번역본만으로는 이 본문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동네'라는 말에서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그것은 '동네'로 가서 유숙하자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히브리어 성경을 낸 허성갑 목사는 '고페르 나무 숲'이라고 번역했다. 히브리어 성경 원문을 따라 번역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는 말씀은 아직 포도원을 개척하지 않은 야생의 들로 가서 거기에서도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을 전하여 그곳에 하나님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자는 말씀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코페르'나무는 아가서 1:14에 나오는 적갈색의 '고벨화'나무의 히브리어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고벨화'는 '코페르'라는 단어로서 그 뜻이 '속죄, 덮음, 속전'이라는 뜻을 지녔으며, 그 나무도 흰 색 바탕에 빨간색을 두르고 있는 꽃잎을 가지고 있어서 죄 없이 순결하신 예수께서 보혈의 피를 흘려 죽으실 것을 예표하는 나무다. 

 

4. 그녀가 포도원에서 남편에게 드린다고 했던 '내 사랑'이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실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에게 야생의 코페르나무 숲으로 가자고 한 말은 그에게 '그녀의 사랑'을 드리고 싶어서였다(아7:12). 즉 그동안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무엇을 해 놓았는지를 신랑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남편에게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는 말과 이어서 그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포도원으로 가보자는 말은 그녀가 일구어 놓은 포도밭과 그리고 그동안 수고하여 얻은 결과들을 신랑에게 보여줌으로 그녀가 신랑을 얼마나 사모하고 있는지를 대신하겠다는 말이었다. 이는 새로운 개척지에 또다른 신부를 낳고 그들을 어떻게 양육할 것인지를 밤을 새워 이야기해 보자는 말이었다. 또한 아침 일찍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나무에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피었는지, 석류나무의 꽃이 피었는지를 보자는 말은 그녀가 어떻게 포도원을 가꾸어 놓았고 그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같이 보자는 말이었다. 이는 그녀가 신랑을 되찾았을 때 신랑이 하고 있었던 일이 어떤 일인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며, 남편의 뒤를 이어 포도원을 가꾸어 열매를 산출하는 일이 신랑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이었음을 알았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구절을 보면, 그녀는 합환채가 향기를 뿜어내고 있고, 이미 그녀가 거둬 놓은 새 열매들과 묵은 열매들이 있는데 그것은 신랑을 위해 준비해 놓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아7:13). 이는 그녀가 얼마나 신랑을 사랑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들이다. 

 

5. 신부의 성숙도는 무엇으로 측량할 수 있는가?

  고로 우리는 신부의 성숙도는 열매로 평가한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지금도 또 다른 사람이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태어나고 자라서 거룩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도록 도와주는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열매가 없는 삶이었다면 그것은 진실하고도 참된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18-20)" 그렇다. 성숙의 척도는 열매인 것이다. 지금도 맺고 있으며 이미 맺은 것도 있고 앞으로 맺을 열매를 위해 오늘도 씨를 뿌리는 것이다. 이미 자라고 있는 것도 있고 이미 거둬 놓은 것도 있고 앞으로 씨를 뿌리기 위해 기도하는 것도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주님은 포도나무의 비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15:5-6)" 그렇다.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해야 한다. 그분의 말씀이 나를 주장하게 해야 하며, 그분이 함께 하심으로 나에게도 그분의 열매가 맺히고 있어야 한다. 성품의 열매, 말의 열매, 기도의 열매, 전도의 열매, 영혼의 열매 등을 맺어야 하는 것이다. 

 

6. 나오며

 아가서의 말씀 중에서 6~7장의 말씀은 신부가 얼마나 성숙해졌는지를 알려주는 바로미터와 같은 말씀이다. 우리 중에 많은 이들이 자기도 주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우리의 입술의 고백만을 가지고서 주님께서 그것을 우리의 사랑이라고 받아 주시는 것일까?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에게 드렸던 것은 입술의 고백이었는가 아니면 열매였는가? 술람미 여인은 그것을 신랑을 향한 '자신의 사랑'이라고 말했다(아7:12). 그런데 그녀의 말은 진실이었다. 그러기에 그녀는 솔로몬을 포도밭으로 데려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가꾸어 놓은 포도밭은 이미 포도나무와 석류나무가 꽃이 피고 있었다. 그런데 두 나무들은 아주 많은 열매들을 산출하는 나무들이다. 그녀가 그만큼 더 많은 신부들을 산출하여 양육하고 있다는 표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집에 새것과 묵은 것들도 저장되어 있다고 말했다. 모두가 다 신랑을 위해 준비해 놓은 것들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신랑에 대한 신부의 진정한 사랑인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던 야고보의 말처럼(약2:26), 우리는 우리 앞에 과연 어떤 열매가 놓여 있는지, 지금도 일구고 있는 새로운 땅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것이 없었다거나 혹은 작다고 한다면 이제부터라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 왜냐하면 주께서는 우리의 말로 우리를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우리의 열매로써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2021년 10월 15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신부(29) [아가서강해(19)] 당당하고 위엄찬 신부와 마하나임에서의 승리의 춤(아6:4~13)_2021-10-14(목)

https://youtu.be/5UWdw2muwuE  [혹은   ]

 

1. 솔로몬은 왜 자신에게 나아오는 술람미 여인을 보고 2번이나 깃발을 세운 군대같이 당당하다고 말했을까?

  솔로몬이 사실 아가서의 6장에서처럼 술람미 여인에게 칭찬을 했던 사람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다. 사실 솔로몬이 그녀에게 했던 칭찬은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왜 솔로몬은 그녀에게 그렇게 했을까? 우선 솔로몬이 그녀에 대해 칭찬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부터 살펴보자. 그것은 총 4가지다. 그것은 첫째, 그녀가 매우 사랑스럽고 어여쁘고 또한 곱다는 것이다(아6:4). 둘째, 그녀는 그에게 비둘기와 같고 완전한 자라는 것이다(아6:9). 셋째, 그는 깃발을 세운 군대같이 당당하다는 것이다(아6:4,9). 넷째, 솔로몬에게 왕비와 후궁들이 많이 있지만, 사실 술람미 여인같은 여자는 단 하나 뿐이라는 것이다(아6:8~9). 그런데 우리는 솔로몬이 그녀를 '사랑스럽고' '어여쁘고' '비둘기와 같고' '완전한 자'라고 했다는 것은 이전에도 있었다. 그런데 아가서 6장에 들어와서 비로소 처음으로 등장하는 칭찬은 그녀야말로 "깃발을 세운 군대까지 당당하다"는 것이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말이다(아6:4,10). 그렇다면 왜 솔로몬은 그녀를 이렇게 칭찬했던 것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이전에도 솔로몬에게 많은 여자들이 있었지만 술람미 여자는 그 누구도 뚫지 못한 그리고 찾아내지 못한 과제를 훌륭히 잘 해냈다고 것이다. 그 일은 바로 술람미 여인을 해치려는 원수의 세력을 이기었고, 뿐만 아니라 솔로몬이 거주하는 동산을 찾아내었으며, 솔로몬이 거기에 왜 머물러 있는지를 알게 된 처음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녀도 결혼 후에 잠시 신랑의 임재를 잃어버릴 뻔 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그녀가 잠시 그녀 곁을 떠나간 신랑을 찾되, 끝까지 찾았기 때문이다. 아니 신랑을 찾을 때까지 찾아 끝내 찾아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그녀가 신랑을 찾게 된 데에는 자기 자신의 잘못을 알고 깊이 뉘우쳤으며, 또한 그녀로 하여금을 신랑을 찾지 못하게 방해하는 세력들마저 물리쳤기 때문이다. 여기서 술람미 여인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대표라고 한다면, 그녀는 원수의 영토에 처음으로 깃발을 세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이후 술람미 여인이 내려갔던 호도동산은 무엇이며, 그 동산은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그렇다. 술람미 여인도 한 때 자신의 부주의로 신랑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끝내 신랑을 찾아내어 신랑으로부터 당당한 신부로 인정받은 여인이었다. 그런데 그후 그녀는 신랑이 양떼를 치고 있던 그 동산으로 여러 번 내려갔던 것으로 보인다. 왜나하면 그녀가 그 동산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녀가 그곳에 포도나무를 심었고 석류나무를 심은 것이었는데, 이제 그녀가 그 나무들이 순이 나고 꽃이 피었는지 확인하러 가고 있기 때문이다(아6:11~12). 그런데 그녀가 자기의 포도원을 만들었던 그곳을 솔로몬은 '호도(호두)동산'이라고 알려주고 있다(아6:11). 아마도 그 동산의 모양이 동그런 모양의 호두 모양이었기 때문인 아닌가 싶다. 그리고 아가서 7장에 보면, 그녀는 그곳에서 열매를 거둔 후에 신랑에게 보여주기를 원한다. 이것을 보면, 그녀의 삶도 이제는 신랑을 따라가는 삶을 살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해, 다른 왕비나 후궁들이 왕비의 지위만을 생각하고 아무 것도 안 하고 놀고 먹었다고 한다면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이 하던 일을 자신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동산 안에 자기도 포도원을 만들어 솔로몬이 하던 일을 자신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동산은 어디에 위치해 있는 것일까? 그것은 적어도 예루살렘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성에서 어디론가 내려가다가 있는 장소라고 나오기 때문이다(아6:2.11). 이는 그녀가 예루살렘 성에 사는 높은 지위를 내려놓았을 때에 비로소 보이는 장소인 것을 알려준다. 

 

3. 예루살렘의 여인들은 술람미 여인을 돌아오라고 말하는가?

  그런데 동산 밖에서는 예루살렘의 딸들이 그녀를 불러내려고 한다(아6:13a). 왜냐하면 그들 중에는 아무도 솔로몬의 동산에 들어가 본 이들이 없을 뿐더러, 그곳에 포도원을 개척한 사람도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는 자기들처럼 사랑스럽고 예쁘고 고운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그들과는 달리 깃발을 세운 군대처럼 승리자가 되어 있었다. 즉 그녀는 밤의 두려움을 이겨내었으며, 그녀를 해치려는 순찰자들과 파수하는 자들의 공격까지도 끝내는 막아내는 여인으로 성장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로부터 듣고 싶은 이야기들이 그들에게 많았던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그녀에게 "돌아오라. 돌아오라"고 외치면서, 그녀에게 그간 일어났던 일들을 자기들에게 들려주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아8:13). 

 

4. 왜 당당한 그러한 신부를 '술람미 여자'라고 칭하게 되었을까?

  우리가 아가서를 처음부터 읽어오고 있지만 그녀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지 못한 채 그냥 6장까지 왔다. 사실 그녀의 이름도 모른 채 그녀가 무대 위에 올라와서 말하는 그녀의 음성만을 들은 것이다. 그런데 비로소 6장에 오게 되었을 때에 그녀가 누군지가 공개된다. 하지만 이때도 여전히 그녀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는다. 다만, "술람미 여자(슐람미트)"라고만 나온다. 그래서 유대 랍비들을 비롯한 여러 신학자들은 그녀의 정체성을 연구해왔다. 그리고 그들이 밝혀낸 그녀의 정체는 2가지 정도다. 하나는 그녀는 '수넴의 여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솔로몬의 여성형 명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수넴의 여자가 되기 위해서는 알파벳 하나가 더 있어야 한다. 그러나 수넴의 여인 아비삭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런데 또 하나의 해석이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술람미 여자('술람미트')'가 '솔로몬의 여성형 명사'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녀는 솔로몬의 잃어버린 짝이라는 뜻이다. 첫 사람 아담에게서 나온 여자 하와처럼, 그녀는 사과나무(호흡, 숨쉼)에서 나았던 바로 그 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사실을 뒷받침 해주는 그녀의 직접적인 음성이 뒤에 나온다. 왜냐하면 그녀가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나는 성벽이요 내 유방은 망대 같으니 그러므로 나는 그가 보기에(그의 눈에) '화평(샬롬)을 얻은 자' 같구나"라고 말했기 때문이다(아8:11). 여기에 나오는 '화평을 얻은 자'라는 말은 "화평을 찾은 자, 화평을 발견한 자, 화평을 이룬 자, 화평을 만난 자'라는 뜻이다. 참고로, '솔로몬'의 어원이 '샬롬(화평, 평화)'이라는 점에서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의 여성 명사라는 점에서 아주 일리가 있다. 고로 우리는 그녀가 솔로몬의 완전한 짝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예루살렘의 딸들이 곧 그녀를 '술람미 여자'라고 외쳤다고 하는 것은 의미가 있으며, 이에 솔로몬도 그것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아6:13). 

 

5. 왜 솔로몬은 포도원으로부터 올라오는 그녀를 마하나임의 춤에 비교하였을까? 

  우리는 아가서 6장의 맨 마지막에서 솔로몬이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들려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그것은 "너희는 어찌하여 [그녀가] 마하나임에서 춤추는 것을 보려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고 하]느냐?(아6:13b)"이다. 이 문장을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이렇게 원문에서 번역하고 있다. "너희가 술람미 여인에게서 무엇을 보고자 하느냐? 그것은 마치 두 군대의 무리와 같도다" 이 문장이 온전한 것은 아니다. '춤'이라는 단어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하나임'이라는 단어를 킹제임스 성경은 장소로 보지 않고 어떤 장면으로 보았다는 것은 잘한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마하나이에서 춤추는 것' 혹은 '춤추는 두 군대의 무리와 같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은 창세기 32장 1~2절의 말씀과 일치한다. 그것은 얍복강에서 야곱이 이제 형 에서와의 재회를 앞둔 상태에서 형이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올 때에 매우 큰 두려움으로 인하여 강을 건널 수가 없어 걱정하고 있었을 때에 본 "두 무리의 군대('마하나임') 천사들"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때 두 무리의 천사들 중에 한 무리는 야곱 곁에 머물렀고, 한 무리는 악령의 지배를 받고 있는 에서의 무리를 제압하기 위해 가고 있었다. 결국 야곱은 철야기도를 통하여 형 에서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가 있었다. 이것을 두고, 술람미 여인도 철야기도와 회개를 통하여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세우는 당당한 승리한 자가 되었음을 춤추는 두 무리의 군대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녀야말로 이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한 자이며, 이긴 자"였음을 알려주기 위해 솔로몬이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이 민족을 홍해를 건널 때에 적의 군대는 다 수장당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사히 강을 건넜던 것을 지켜보았던 미리암과 여인들이 소고를 치면서 춤을 추었던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모습인가? 우리도 그러한 자가 되기를 바란다. 

 

2021년 10월 14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신부(27) [아가서강해(17)] 만인 중 으뜸인 솔로몬이 자기 동산에서 하는 일과 그가 준비해 놓은 복(아6:1~13)_2021-10-12(화)

https://youtu.be/jZRbt9M3vxI  [혹은 https://tv.naver.com/v/22938294  ]

 

1. 술람미 여인은 예루살렘 딸들에게 자기의 남편 솔로몬을 어떻게 소개했는가?

  술람미 여인은 자기의 남편인 솔로몬을 10가지 항목을 가지고 소개한다(아5:11~16). 그런데 그이를 한 마디로 "희고도 붉어 만인 중에 으뜸이다(아5:10)"라고 말한다. 이는 그분은 장차 이 땅에 오실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이므로 그분은 점이 없고 흠없는 분이지만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피 흘려 죽으실 분인 것을 정확히 말한 것이다. 그리고 그분이 비록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실 것이지만 그분은 만물 중에 가장 뛰어나신 분임을 분명히 말했다. 

 

2. 술람미 여인이 소개한 자기의 남편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어 술람미 여인은 자기의 남편을 머리에서 발까지 10가지 항목을 들어서 높인다(아5:11~16). 그런데 그녀가 한 말을 유심히 살펴보면, 신랑에게서 몇 가지 놀라운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그분은 영과 육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흠없이 완벽한 자라는 것이다. 둘째, 그분은 매우 위엄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그분을 소개할 때에 황옥의 손, 청옥의 몸(배)이자 백향목 다리 그리고 대리석 기둥의 자기 남편이라고 소개했기 때문이다. 셋째, 그분은 금과 보석으로 단장하고 있는 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의 머리는 정금이며, 그분의 손은 황옥이며 황금 금반지를 차고 있었으며, 그분의 배는 청옥을 입혀 놓았고, 그분의 다리는 순금 받침에 화반석을 올려 놓은 듯 하였기 때문이다. 넷째, 특별하게 그분에게서 향기가 난다는 것이다. 그분의 뺨은 향기로운 꽃밭 같고 풀언덕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의 입술은 빨간 백합화(아네모네) 같고,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의 생김새도 레바논의 향기 나는 백향목같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분은 자기의 동산에서 일하시는 분이다. 그런데 그 동산에는 몰약과 향료들를 생산하는 나무와 꽃들이 즐비되어 있었다. 그러니 그분이 잡은 문고리마저도 묻어 나온 몰약이 떨어질 정도였다. 

 

3. 술람미 여인은 갑자기 사라진 솔로몬을 어디에서 발견했는가? 

  결혼 후 어느 날 술람미 여인은 밤늦게 들어오는 신랑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그녀는 이미 옷을 벗은 상태에 있었고 발도 씻은 깨끗한 상태에 있었다. 그런데 늦은 밤에 신랑이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 밤에 어찌 나가서 문을 열어 주겠느냐면서 신랑을 박대해 버린다. 그러자 신랑이 문틈으로 자기의 손을 내밀어보지만 문을 열지는 못한다. 그러자 그 장면을 본 신부가 옷을 주섬주섬 입고 나가서 문을 열어 보는데, 벌써 신랑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없었다. 그러자 신부가 신랑을 찾아나서기 시작했고, 결국에 그분을 찾게 된 장소는 솔로몬의 자기 동산이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갈 때에 어딘가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장소, 그곳에 솔로몬의 자기 동산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술람미 여인도 솔로몬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 분인지를 정확히 잘 알지 못했다. 단지 소문으로 들었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술람미 여인이 그분에게 부탁하는 장면이 나온다.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야 네가 양치는 곳과 정오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말하라 내가 네 친구의 양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린 자 같이 되랴(아1:7)" 그렇다. 그녀는 그분을 자기의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있었지만, 그가 머무르고 있는 데를 잘 몰랐다. 그러므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양떼를 치는 곳을 좀 알려주세요. 그리고 날이 뜨거운 정오 때에는 어디에서 쉬고 있는지도 알려주세요." 나도 그곳에서 당신을 만나고 싶어요 라고 말이다. 그렇다. 그녀도 예루살렘의 딸들처럼 초기에는 솔로몬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도 소문만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은 그분이 어딘가에서 양떼를 친다는 것이었다. 

 

4. 솔로몬이 자기 동산에서 하는 일은 무엇이었는가?

  술람미 여인이 어디론가 사라진 자신의 남편을 만난 곳은 어디였을까? 그것은 솔로몬의 자기 동산이었다(아6:2). 그런데 그 시각에도 솔로몬은 자기의 동산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그것은 딱 2가지다. 하나는 그가 자신의 동산에서 양떼를 치고 있었다(아6:2~3). 그렇다. 솔로몬은 양떼에 아주 관심이 많으신 분이시다. 그러나 예루살렘 딸들도 실은 솔로몬이 어디에서 자신의 양떼를 치고 있는지를 잘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예루살렘의 딸들 중에서 유일하게 오직 그녀만큼은 그 장소를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전에 그녀가 솔로몬으로부터 사랑을 받게 되고 청혼을 받은 상태에 있을 때에 솔로몬이 그 장소에 대해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아2:16). 그리하여 그녀가 그곳에 가 보니 솔로몬은 이미 그곳에서 백합화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고 있었다. 이것을 영적으로 보면, 솔로몬은 하늘에 계신 우리 성도들의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므로, 그분이 비록 지금도 하늘에 계시지만 그분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자신의 양떼 곧 구원받을 성도들에게 관심을 많으신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 양떼들을 거기서 치고 계셨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가 그곳에서 백합화를 거두어들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아6:2). 한글 개역성경에서는 그가 백합화를 '꺾고' 있었다고 번역해 놓았지만 이것은 잘 모르고 번역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 그분은 그 시각에 백합화를 거두어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영적으로 볼 때 백합화는 주님의 사랑을 받고 더불어 주님을 사랑하는 술람미 여인 같은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다. 고로 '백합화'란 한 마디로 주님의 사랑받는 신부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신부가 이 땅에서 핍박자들에 의해 죽임 당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꺾여진 백합화를 예수님은 자기의 가슴에 거두어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의 동산에서 오늘도 눈물짓고 있는 우리 주님의 마음을 볼 수 있어야 진정한 신부가 되고 신부 사역을 할 수 있는 것이다. 

 

5. 솔로몬이 꺾여진 백합화를 위해 준비해 둔 것은 무엇인가?

  그런데 어느 날 술람미 여인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솔로몬의 동산으로 들어가게 된다(아6:11~12). 그런데 그녀가 들어갔던 그 동산의 모양은 호두 모양처럼 생겼었다. 그러자 그녀는 그 동산의 이름을 '호두동산'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녀는 그 동산 안에 귀한 백성들을 위한 마차들(수레들)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여기서 '귀한 백성'이라는 단어를 히브리어로 보면, '암미나답'이다. 즉 '암미나답의 마차들'이 거기에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럼 이 마차들이 왜 그 동산에 준비되어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너무 일찍 꺾여진 백합화를 보시고는 주님께서 그들을 정중하게 모셔 오도록 준비해 놓은 하늘의 불수레들이라고 판단된다(엘리야도 이 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런데 보통 천국의 백성이 죽으면 그 사람은 자신의 두 명의 수호천사들로부터 부축을 받고 천국에 입성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귀한 백성일 경우에는 주님께서 직접 명령을 내리신다. 그래서 그 사람을 영광스러운 황금 마차를 타고 천국에 들어오도록 배려하시는 것이다. 그러자 이 광경을 지켜보게 된 술람미 여인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금방 깨닫는다. 그리고 그 일을 하나씩 하나씩 점차로 추진해 나간다. 그리하여 신랑에게 그 일의 결과를 보여 준다(아7:10~13). 이것은 다음 시간에 살펴볼 아가서 7장 이야기다. 

 

2021년 10월 12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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