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신부(34) 아가서강해(24) 아가서에 나오는 솔로몬의 신분과 그분의 놀라운 사랑(아8:6~7)_2021-10-19(화)

https://youtu.be/bn5-P6fjzUQ  [ 혹은 https://tv.naver.com/v/23047159 ]

 

1. 아가서는 주님을 얼마만큼 사랑하라고 요청하고 있는가?

  아가서는 주님을 사랑하되, 우리가 그분을 도장같이 우리의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우리의 팔에 새길 것을 권면한다. 이는 신명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르친 '쉐마'와 비슷하다(신6:4~9). '쉐마'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말씀한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것을 가르치며 강론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손목에 매고, 미간에 붙이고, 자기 집의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고까지 말한다. 그만큼 주님을 가까이 하고 주님과 함께 걸어가라는 것이다. 

 

2. 솔로몬은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솔로몬은 사랑을 아가서 8:6b~7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스올같이 잔인하다. 질투는 불길같이 타오르나니, 그것의 기세가 가장 강력한 불길같다. 많은 물일지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할 것이며,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랑은 자기의 모든 재물을 다 주고 사랑을 얻으려고 할지라도 그는 정녕 멸시를 받고 말 것이다(아8:6b~7)." 이것은 결국 사랑의 힘과 위대함과 값어치를 제대로 표현해 주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랑을 질투라고 표현하는 말이 중간에 나온다. 하지만 여기에 나오는 '질투'는 시기심이 아니라, 일종의 열정이요, 열성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질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킨나흐'라는 단어로서, 그 뜻이 원래는 '열성, 열심, 특심'에서 비롯되어서 '부러움'으로, 다시 '시기'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기도 하며(출20:5), 하나님께서 열심을 내어 당신이 이미 하신 말씀을 성취할 것임을 약속하기도 한다(겔39:25, 왕상19:14, 사9:6~7). 한 마디로 사랑은 불타오르는 열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구도 '열정'을 건드릴 수 없고 그러면서도 누구도 소멸시킬 수 없는 위대한 '열정'인 것이다. 

 

3. 아가서에는 술람미 여인을 사랑하는 솔로몬을 어떤 신분으로 소개하고 있는가?

 아가서에는 솔로몬의 신분을 4가지로 소개한다. 그는 첫째, 예루살렘의 '왕'이면서(아1:4,12, 3:9,11, 7:5) 동시에 둘째, '포도원의 주인'이다(아8:11). 그리고 그는 셋째, 동산에서 양을 치는(먹이는) '목자'이면서(1:6, 2:16, 6:2~3), 넷째, 동산에서 백합화를 돌보는 '동산지기'다(아5:1, 6:2~3). 특히 아가서는 솔로몬이 왕이라는 것을 많이 강조한다. 그래서 그가 술람미 여인과 결혼하기 전에 연애할 때에도 '왕'이었고(아1:4,12), 결혼식을 거행할 때에도 '왕'이었으며(아3:9,11), 결혼한 후에도 '왕'이었음을 계속해서 말한다. 이는 그의 신분은 고귀한 왕의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포도원까지 심방하여 포도원을 관리하는 자에게도 관심을 가졌음을 말해 준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 분이시지만 기꺼이 그 자리에서 내려오셔서 포도원지기로 고생하고 있는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낮고 천한 몸을 입으신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말해 준다. 그렇다. 아가서를 읽어 보면 왕은 신하들이나 백성들을 다스리는 데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오로지 포도원과 동산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 보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는 포도원의 농부와 동산의 양 떼 그리고 동산의 백합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아가서에 등장하는 '포도원 농부'는 죄에 매여 일평생 종노릇하는 인간을 상징하며, '양 떼'는 장차 천국 백성이 될 인간들을 가리키고, '백합화'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성도들을 가리킨다. 

 

4. 왕은 어떻게 시골 처녀를 사랑했으며, 결혼한 시골 처녀는 자신의 신랑을 어떻게 사랑한다고 말했는가?

  왕은 처음부터 술람미 여인이 자신의 잃어버린 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잃어버린 단 하나의 자신의 짝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건다. 왕이니까 그냥 사람시켜서 데려오라고 했어도 되었지만 그는 결코 그냥 왕의 권한을 이용하여 술람미 여인을 데려간 것이 아니었다. 그가 그녀를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보여 주었고 청혼을 하였다. 그때 연애 시절에 솔로몬은 한 번 그녀를 잔치집(포도주의 집)으로 데려간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솔로몬은 그녀의 머리 위에 깃발을 하나 세워 주었는데 그 깃발에는 '사랑'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었다고 말씀하고 있다(아2:4). 그가 포도주의 집에서 자신의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증명할 것이고, 그것이 바로 자신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신부는 결혼 후에 그녀가 얼마나 신랑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녀가 남편에게 드린 사랑은 3가지였다. 첫째는 그 때의 시간으로 포도원에서 꽃이 피어 자라고 있는 포도나무와 석류나무였다. 둘째는 이미 거둬 놓은 열매들이었다. 셋째는 지금 거둔 새로운 열매들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성장하여 이제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그 일을 자기도 행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나 세례 요한 그리고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약2:26).

 

5. 주님의 사랑받는 신부가 되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주님의 사랑받는 신부가 되려면 말로만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신부가 되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 바라시는 신부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첫째로, 백합화 같고 비둘기 같은 정결하고 정절을 가진 신부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둘째는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는 신부가 되어야 한다. 영적 싸움에서도 승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밤의 두려움을 이기려면 영적 전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이 땅에 포도원을 개척하여 다른 신부들을 산출하고 양육하는 신부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실은 이 일은 다 원래 주님이 하시던 일이었다. 그런데 주님을 사랑하게 되면 주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성장한 후에 그녀가 보여 준 것은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으며, 과거에도 했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했다(아7:12). 그래서 우리도 술람미 여인처럼, 과거나 지금이나 미래나 변함없는 신부, 그리고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신부이자 오직 주님만을 사모하는 신부, 그리고 오직 주님이 하고 있는 일에 자신도 기꺼이 뛰어들어 수고를 아끼지 않는 신부, 그리고 그러한 일을 행할 때에 어떤 어려움과 환난이 불어닥쳐도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는 신부, 그리고 세상 풍조가 아무리 치고 들어와도 그것에 물들지 않고 오직 백합화처럼 일편단심으로 주님께 바치는 순결한 신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2021년 10월 19일(화)

정병진목사

 

지금 천국에 계신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무엇에 가장 관심을 갖고 계실까? 그분은 실로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계17:14,19:16)이시기에 부족한 것이 없다. 그분이 온 우주 만물과 천사와 사람을 창조하셨고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고 운행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분이 유독 관심을 갖고 있는 일이 있다. 그것에 나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분은 지금도 당신이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하늘에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곳에 함께 가자로 하신다. 이것이 아가서의 핵심 줄거리이다.

2021-10-01(금) 금요기도회

제목: 신부(16) [아가서강해(06)] 신랑의 관심과 그분이 신부를 위해 준비한 것은?(아1:2~4)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7p_Dp73Bvw [혹은 https://tv.naver.com/v/22781197 ]

 

 

1. 들어가며

  아가서는 솔로몬이 지은 노래들 중의 최고의 노래다. 솔로몬이 일평생에 걸쳐 1,005개의 노래를 지었다고 하는데, 그가 지은 노래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노래가 바로 이 아가서인 것이다(왕상4:32). 솔로몬은 왜 아가서를 지었을까? 아가서를 다시 들여다보라. 아가서는 일종의 가곡시다. 즉 공연용 오페라였던 것이다. 고로 대사만 나오는 이 아가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공연에 노래하는 등장인물의 옷과 소품들을 살펴 보아야 하고 누가 어떤 그 대사를 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어야 아가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가 가진 아가서에서는 누가 그 대사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그러니 누가 그 대사를 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비로소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고, 아가서 전체에 두루 흩어져 있는 소품들을 찾아서 풀어야만 그 해석이 가능한 것들도 많다. 그러니 해석도 다양하다 아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아가서를 우리의 영원한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부가 될 성도들의 친밀한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아가서를 들여다보려고 한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술람미 여인이 결혼 전 연애할 때 그녀가 알고 있었던 솔로몬의 5가지 사실에 대해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특히 그녀가 알고 있었던 솔로몬의 신분과 그녀가 알고 있었던 솔로몬의 처소가 무엇인지를 살펴봄으로써, 솔로몬왕이 진정 관심을 갖고 있었던 3가지 영역과 그가 술람미 여인을 위해 마련한 자신과 그녀의 집이 대체 무엇인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하늘의 지혜와 계시의 영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길 빈다. 

 

2. 술람미 여인이 연애할 때 솔로몬에 대해 알고 있었던 5가지 사항 중에 3가지 사실은 무엇인가? 

    바알하몬에 있는 솔로몬왕의 포도원지기였던 술람미 여인은 대체 솔로몬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런데 아가서는 술람미 여인이 어떻게 되어서 솔로몬에 대해 알게 되었는지를 말해 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아가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설명이 없다. 전부 노래하는 등장인물의 대사만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설명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간간이 등장하는 합창단의 목소리 뿐이다. 그렇다면 처음으로 이 오페라에 등장하는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에 대해 소개해주고 있는 사실은 무엇인가? 그것은 솔로몬에 대한 5가지 귀한 정보들이다. 이러한 정보들은 아가서 내내 바탕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그것의 온전한 실체는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오신 주 예수님이시다. 

  첫째, 그녀는 그분의 포도주보다 더 큰 사랑을 잘 알고 있었다. 그분의 사랑은 포도주보다 낫고 더 진하다는 것이다(아1:2,4). 왜냐하면 그분은 자신의 사랑의 짝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아가서 1:14에서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 피어나고 있었다(아가서강해 01번을 참고). 사실 솔로몬에게는 많은 여인들이 있었으나 그에게 완전한 짝은 단 한 명으로서, 솔로몬은 그 사람을 얻을 수 있다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 그녀는 그분의 흘러넘치는 기름부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분의 감람유는 향기롭고 아름다운 것이었음을 노래했다(아1:2). 여기에 나오는 '기름부음'이란 솔로몬이 성령으로 적셔져 있었고 성령이 그에게서 흘러넘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원한 신랑이신 예수님은 잉태 때부터 성령이 부어지셨으며, 그분의 공생애의 시작은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함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분의 공생애 내내 성령이 기름붓듯 부어지셨다(행10:38, 요3:34, 마3:16). 그러므로 그가 두루 나가서 선한 일을 행하실 수 있었으며, 마귀에게 눌린 자를 자유하게 할 수 있었다. 그분에게는 포도원을 해치는 여우를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셋째, 그녀는 그분의 놀랍고도 위대한 이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분의 이름은 쏟아부은 향유 같아서 그분의 이름은 온 천지에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럼, 그분의 이름은 대체 무엇인가? 그분의 이름은 '솔로몬'이다. 즉 '샬롬'인 것이다. 그분의 이름은 '평화'요 '안식'이라는 것이다. 그녀가 사실 이 세상에서 진정 쉴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의붓 오빠들이 바알하몬에 있는 솔로몬 왕의 커다란 포도원을 그녀에게 관리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쉴 새 없이 그녀는 포도원을 돌보아야 했다. 하지만 포도밭에 있는 여우를 잡아내지는 못했다. 사실 이 시가 실제적인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아닐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의 하나는 그녀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고 단지 '술람미 여자'라고 나오기 때문이다. 이는 남성 명사 형태인 '솔로몬'을 여성 명사형태로 바꾼 것이 '술람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가서 8:10에 가면, 그녀가 이렇게 말한다. "그가 보기에 나는 '평화를 찾는(이루는)' 여인이예요". 그러므로 그녀의 명칭이 '술람미 여인'이 된 것은 그녀의 이 말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이름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가고 있는 사람을 구원할 자가 그분인 것이다(마11:28~30). 그러므로 아가서를 두고 어떤 학자는 출애굽의 역사와 똑같다고 했다. 애굽의 고된 노역에서 건지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야기가 포도원에서 고된 노동을 하고 있는 술람미 여인을 구출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정확히는 장차 새 예루살렘 성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는 신랑되신 예수님과 그분의 사랑의 대상인 거룩한 신부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엔게디 포도원에 피어 있는 적갈색의 고벨화는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메시야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해 주고 있다고 하겠다. 죄 없으신 그분이 인류의 죄를 위해 피 흘려 죽으실 것을 고벨화의 색깔로 그대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술람미 여인이 연애할 때 솔로몬에 대해 알고 있었던 나머지 2가지 사실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에 대해 또 어떤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그것은 2가지로서, 첫째는, 그분의 신분에 관한 것이요 둘째는 그분의 처소에 관한 것이다(아1:4).

  첫째로, 술람미 여인은 그분이 어떤 신분의 소유자인지를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 그분은 처음부터 왕이었기 때문이다(아1:4). 그렇다면 아가서에 등장하는 솔로몬의 신분은 어떻게 나올까? 그것은 크게 2~3가지 정도이다. 첫째로, 아가서에서 그분은 '왕'으로 등장한다. 그분은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제2대 왕으로서 제사장 사독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 합법적으로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왕으로 세워진 분이다(왕상1:39). 그런데 아가서에 그분의 신분은 이처럼 '왕'으로만 소개되지 않고 3가지 신분으로 더 소개되고 있는데, 하나는 양 떼를 치는(먹이는) 목자요, 또 하나는 포도원의 주인이며, 마지막으로 동산의 주인이다. 

  그분이 왕인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은 아가서 전반에 걸쳐서 나온다. 먼저 1장에는 '왕의 방(침실)'이 나온다(아1:4). 그리고 이어서 '왕의 집'이 나오고(아1:17), 결혼식 날 타고 입장하는 '왕의 가마'로도 나온다(아3:7). 그리고 왕을 지키는 칼을 찬 650명의 개인 용사들도 더불어 등장하고(아3:7), 왕의 주변의 여인들도 등장한다. 솔로몬에게는 왕비가 60명, 후궁이 80명 그리고 시녀들이 많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아6:8). 

 

4. 솔로몬이 비록 왕이었지만 그가 진정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솔로몬은 처음부터 왕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가 진정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은 나라의 살림이나 신하들을 다루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그분의 일이었겠지만 아가서에서는 그것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가서의 저자는 솔로몬에 여러 여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으나 솔로몬의 마음에 합한 여자는 딱 한 명이었다고 말하듯, 그가 하는 일이 참으로 많았겠지만 그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데 그분은 첫째로 자기의 양 떼에 관심이 있었고, 둘째는 자기의 포도원에 관심이 있었으며, 셋째로 자기의 동산에 관심이 있었다. 이것을 신부로 표현하면 그분은 목자이며, 포도원의 주인이자, 동산의 주인이다. 먼저 아가서에서 솔로몬에게 있어서 제일 큰 관심은 항상 양 떼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가서 1장부터 소개되고 있는 솔로몬은 양 떼를 먹이는 자였기 때문이다. 그때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향하여 '당신이 양 떼를 치고 있는 곳과 당신이 한낮에 쉬는 곳을 나에게 말해 주세요"고 부탁하였던 것이다(아1:7). 왜 그러한가? 솔로몬은 그때에도 양 떼를 먹이고 있었기 때문이다(아2:16). 그리고 그녀가 결혼 후 잠시 남편에게 집중하지 못하다가 그만 남편을 놓쳐 버리고 마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에도 나중에 찾아낸 남편은 자기 동산에서 양 떼를 먹이고 있었다(아6:2~3). 그리고 장소가 바로 자기 동산이었다. 솔로몬은 자기의 동산에 있는 양 떼에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솔로몬은 동시에 포도원에도 관심이 많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러한 사람을 자기 동산으로 데리고 들어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동산의 이름은 '호두(넛츠) 동산'이다(아6:11). 다시 말해, 술람미 여인같은 자신의 사랑하는 짝(신부)을 찾아내는 장소가 바로 포도원이며, 포도원에서 만난 자신의 짝(신부)을 데리고 들어가는 장소가 그 동산인 것이다. 그 동산은 솔로몬은 잠근 동산이라고 말한다(아4;12). 참고로, 나중에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포도원은 구약시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하고 신약에는 교회를 의미한다. 

 

5. 솔로몬이 신부를 위해 준비한 것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술람미 여인이 알고 있었던 그분의 처소에 대해서 살펴보자. 술람미 여인은 그분이 자신을 그의 방(침실) 곧 그의 내밀한 장소에 데려가기를 간구하였다(아1:4). 이는 그의 사랑받는 여인이 되기를 간구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말하고 있던 솔로몬의 처소는 대체 어떤 장소인가? 솔로몬은 그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기에 장차 그녀와 결혼하여 살게 될 자신의 처소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서까래로구나(아1:17)" 그렇다. 솔로몬은 예루살렘에 자신의 집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의 집은 아름드리의 레바논 백향목과 잣나무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아주 큰 백향목으로는 들보를 만들었고, 백향목보다 작은 잣나무로는 서깨래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솔로몬은 그 집을 자기의 집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그는 그 집을 "우리의 집"이라고 말한다. 왜 그런가? 솔로몬은 그 집에서 자기 혼자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자기의 집을 기꺼이 주고 싶어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원한 신랑되신 예수님께서도 하늘에 집을 가지고 있는데, 그 집은 아주 큰 새 예루살렘 성이다(계21:2,9). 집이 한 개의 집이 아니라 수천 수만 수억 개의 집을 건축할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도시였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 도시에 신부들이 와서 집을 짓고 살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그분이 이 세상을 잠시나마 떠나가 있는 것은 하늘에 신부들을 위한 처소를 예비하러 가기 위함이라고 하였다(요14:1~3). 다 준비되면 다시 와서 신부들을 데려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과 함께 살기 위하여 백향목 들보와 잣나무 서까래로 만들어 놓은 집은 곧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왕상5:10). 우리가 들어가야 할 처소는 하늘의 성전인 새 예루살렘 성인 것이다. 

 

6. 나오며

  아가서 1:2~4의 말씀은 아가서 전체를 아우르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이 연극의 첫 대사가 장차 아가서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암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왕의 사랑으로 시작하여 왕의 처소로 끝난다는 것이다. 고로 우리도 왕의 사랑을 알고 왕의 사랑을 받아들여 왕의 신부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왕이 사는 처소에 우리도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왕의 처소는 예루살렘에 있다. 그리고 왕의 처소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재료로 만들어진 곳이다. 고로 결혼식 날 왕이 타고 오는 가마를 두고서 예루살렘의 여인들은 이렇게 소리쳤다. "그 기둥들은 은이요, 그 바닥은 금이요,. 그 자리는 자[주]색 깔개라. 그 안에는 예루살렘의 딸들의 사랑으로 장식되어 있도다(아3:10)" 그렇다. 금과 은 그리고 자주색의 왕의 보석들이 있는 장소가 바로 그곳 천국인 것이다. 그리고 그곳은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이 이 땅에서 보석으로 단장한 것으로 수놓아진 공간이 바로 천국이다. 그럼, 누가 과연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가? 그것은 오직 왕의 사랑을 받는 자, 곧 신부다.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 살아야 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우리가 그곳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로 자신을 준비하기 위함이요, 그곳에 들어갈 때에 수놓아질 보석들을 여기서부터 잘 준비하는 데에 있다. 오, 그날이 오기 전에 우리 자신부터 먼저 잘 준비하자. 그리고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하여 저 새 예루살렘 성에 지어지고 있는 나의 집에 왕의 보석들이 아름답게 장식되도록 노력해 보자.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니까...

 

2021년 10월 01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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