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신부(29) [아가서강해(19)] 당당하고 위엄찬 신부와 마하나임에서의 승리의 춤(아6:4~13)_2021-10-14(목)

https://youtu.be/5UWdw2muwuE  [혹은   ]

 

1. 솔로몬은 왜 자신에게 나아오는 술람미 여인을 보고 2번이나 깃발을 세운 군대같이 당당하다고 말했을까?

  솔로몬이 사실 아가서의 6장에서처럼 술람미 여인에게 칭찬을 했던 사람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다. 사실 솔로몬이 그녀에게 했던 칭찬은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왜 솔로몬은 그녀에게 그렇게 했을까? 우선 솔로몬이 그녀에 대해 칭찬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부터 살펴보자. 그것은 총 4가지다. 그것은 첫째, 그녀가 매우 사랑스럽고 어여쁘고 또한 곱다는 것이다(아6:4). 둘째, 그녀는 그에게 비둘기와 같고 완전한 자라는 것이다(아6:9). 셋째, 그는 깃발을 세운 군대같이 당당하다는 것이다(아6:4,9). 넷째, 솔로몬에게 왕비와 후궁들이 많이 있지만, 사실 술람미 여인같은 여자는 단 하나 뿐이라는 것이다(아6:8~9). 그런데 우리는 솔로몬이 그녀를 '사랑스럽고' '어여쁘고' '비둘기와 같고' '완전한 자'라고 했다는 것은 이전에도 있었다. 그런데 아가서 6장에 들어와서 비로소 처음으로 등장하는 칭찬은 그녀야말로 "깃발을 세운 군대까지 당당하다"는 것이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말이다(아6:4,10). 그렇다면 왜 솔로몬은 그녀를 이렇게 칭찬했던 것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이전에도 솔로몬에게 많은 여자들이 있었지만 술람미 여자는 그 누구도 뚫지 못한 그리고 찾아내지 못한 과제를 훌륭히 잘 해냈다고 것이다. 그 일은 바로 술람미 여인을 해치려는 원수의 세력을 이기었고, 뿐만 아니라 솔로몬이 거주하는 동산을 찾아내었으며, 솔로몬이 거기에 왜 머물러 있는지를 알게 된 처음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녀도 결혼 후에 잠시 신랑의 임재를 잃어버릴 뻔 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그녀가 잠시 그녀 곁을 떠나간 신랑을 찾되, 끝까지 찾았기 때문이다. 아니 신랑을 찾을 때까지 찾아 끝내 찾아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그녀가 신랑을 찾게 된 데에는 자기 자신의 잘못을 알고 깊이 뉘우쳤으며, 또한 그녀로 하여금을 신랑을 찾지 못하게 방해하는 세력들마저 물리쳤기 때문이다. 여기서 술람미 여인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대표라고 한다면, 그녀는 원수의 영토에 처음으로 깃발을 세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이후 술람미 여인이 내려갔던 호도동산은 무엇이며, 그 동산은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그렇다. 술람미 여인도 한 때 자신의 부주의로 신랑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끝내 신랑을 찾아내어 신랑으로부터 당당한 신부로 인정받은 여인이었다. 그런데 그후 그녀는 신랑이 양떼를 치고 있던 그 동산으로 여러 번 내려갔던 것으로 보인다. 왜나하면 그녀가 그 동산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녀가 그곳에 포도나무를 심었고 석류나무를 심은 것이었는데, 이제 그녀가 그 나무들이 순이 나고 꽃이 피었는지 확인하러 가고 있기 때문이다(아6:11~12). 그런데 그녀가 자기의 포도원을 만들었던 그곳을 솔로몬은 '호도(호두)동산'이라고 알려주고 있다(아6:11). 아마도 그 동산의 모양이 동그런 모양의 호두 모양이었기 때문인 아닌가 싶다. 그리고 아가서 7장에 보면, 그녀는 그곳에서 열매를 거둔 후에 신랑에게 보여주기를 원한다. 이것을 보면, 그녀의 삶도 이제는 신랑을 따라가는 삶을 살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해, 다른 왕비나 후궁들이 왕비의 지위만을 생각하고 아무 것도 안 하고 놀고 먹었다고 한다면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이 하던 일을 자신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동산 안에 자기도 포도원을 만들어 솔로몬이 하던 일을 자신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동산은 어디에 위치해 있는 것일까? 그것은 적어도 예루살렘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성에서 어디론가 내려가다가 있는 장소라고 나오기 때문이다(아6:2.11). 이는 그녀가 예루살렘 성에 사는 높은 지위를 내려놓았을 때에 비로소 보이는 장소인 것을 알려준다. 

 

3. 예루살렘의 여인들은 술람미 여인을 돌아오라고 말하는가?

  그런데 동산 밖에서는 예루살렘의 딸들이 그녀를 불러내려고 한다(아6:13a). 왜냐하면 그들 중에는 아무도 솔로몬의 동산에 들어가 본 이들이 없을 뿐더러, 그곳에 포도원을 개척한 사람도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는 자기들처럼 사랑스럽고 예쁘고 고운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그들과는 달리 깃발을 세운 군대처럼 승리자가 되어 있었다. 즉 그녀는 밤의 두려움을 이겨내었으며, 그녀를 해치려는 순찰자들과 파수하는 자들의 공격까지도 끝내는 막아내는 여인으로 성장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로부터 듣고 싶은 이야기들이 그들에게 많았던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그녀에게 "돌아오라. 돌아오라"고 외치면서, 그녀에게 그간 일어났던 일들을 자기들에게 들려주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아8:13). 

 

4. 왜 당당한 그러한 신부를 '술람미 여자'라고 칭하게 되었을까?

  우리가 아가서를 처음부터 읽어오고 있지만 그녀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지 못한 채 그냥 6장까지 왔다. 사실 그녀의 이름도 모른 채 그녀가 무대 위에 올라와서 말하는 그녀의 음성만을 들은 것이다. 그런데 비로소 6장에 오게 되었을 때에 그녀가 누군지가 공개된다. 하지만 이때도 여전히 그녀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는다. 다만, "술람미 여자(슐람미트)"라고만 나온다. 그래서 유대 랍비들을 비롯한 여러 신학자들은 그녀의 정체성을 연구해왔다. 그리고 그들이 밝혀낸 그녀의 정체는 2가지 정도다. 하나는 그녀는 '수넴의 여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솔로몬의 여성형 명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수넴의 여자가 되기 위해서는 알파벳 하나가 더 있어야 한다. 그러나 수넴의 여인 아비삭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런데 또 하나의 해석이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술람미 여자('술람미트')'가 '솔로몬의 여성형 명사'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녀는 솔로몬의 잃어버린 짝이라는 뜻이다. 첫 사람 아담에게서 나온 여자 하와처럼, 그녀는 사과나무(호흡, 숨쉼)에서 나았던 바로 그 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사실을 뒷받침 해주는 그녀의 직접적인 음성이 뒤에 나온다. 왜냐하면 그녀가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나는 성벽이요 내 유방은 망대 같으니 그러므로 나는 그가 보기에(그의 눈에) '화평(샬롬)을 얻은 자' 같구나"라고 말했기 때문이다(아8:11). 여기에 나오는 '화평을 얻은 자'라는 말은 "화평을 찾은 자, 화평을 발견한 자, 화평을 이룬 자, 화평을 만난 자'라는 뜻이다. 참고로, '솔로몬'의 어원이 '샬롬(화평, 평화)'이라는 점에서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의 여성 명사라는 점에서 아주 일리가 있다. 고로 우리는 그녀가 솔로몬의 완전한 짝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예루살렘의 딸들이 곧 그녀를 '술람미 여자'라고 외쳤다고 하는 것은 의미가 있으며, 이에 솔로몬도 그것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아6:13). 

 

5. 왜 솔로몬은 포도원으로부터 올라오는 그녀를 마하나임의 춤에 비교하였을까? 

  우리는 아가서 6장의 맨 마지막에서 솔로몬이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들려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그것은 "너희는 어찌하여 [그녀가] 마하나임에서 춤추는 것을 보려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고 하]느냐?(아6:13b)"이다. 이 문장을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이렇게 원문에서 번역하고 있다. "너희가 술람미 여인에게서 무엇을 보고자 하느냐? 그것은 마치 두 군대의 무리와 같도다" 이 문장이 온전한 것은 아니다. '춤'이라는 단어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하나임'이라는 단어를 킹제임스 성경은 장소로 보지 않고 어떤 장면으로 보았다는 것은 잘한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마하나이에서 춤추는 것' 혹은 '춤추는 두 군대의 무리와 같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은 창세기 32장 1~2절의 말씀과 일치한다. 그것은 얍복강에서 야곱이 이제 형 에서와의 재회를 앞둔 상태에서 형이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올 때에 매우 큰 두려움으로 인하여 강을 건널 수가 없어 걱정하고 있었을 때에 본 "두 무리의 군대('마하나임') 천사들"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때 두 무리의 천사들 중에 한 무리는 야곱 곁에 머물렀고, 한 무리는 악령의 지배를 받고 있는 에서의 무리를 제압하기 위해 가고 있었다. 결국 야곱은 철야기도를 통하여 형 에서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가 있었다. 이것을 두고, 술람미 여인도 철야기도와 회개를 통하여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세우는 당당한 승리한 자가 되었음을 춤추는 두 무리의 군대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녀야말로 이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한 자이며, 이긴 자"였음을 알려주기 위해 솔로몬이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이 민족을 홍해를 건널 때에 적의 군대는 다 수장당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사히 강을 건넜던 것을 지켜보았던 미리암과 여인들이 소고를 치면서 춤을 추었던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모습인가? 우리도 그러한 자가 되기를 바란다. 

 

2021년 10월 14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신부(22) [아가서강해(12)] 외적인 아름다움에서 내면의 아름다움으로(아가4:1~11)_2021-10-08(금)

https://youtu.be/v2t1iB3nTW8  [혹은  https://tv.naver.com/v/22858427 ]

 

1. 술람미 여인에 대한 솔로몬의 호칭은 결혼 전후로 어떻게 달라졌는가?

  술람미 여인에 대해 솔로몬이 연애 시절에 그녀를 불렀던 명칭은 그녀와 결혼식을 치르고 난 후에 솔로몬이 그녀를 불렀던 명칭과 차이가 난다. 결혼 전 곧 연애 시절에는 솔로몬은 그녀를 "내 사랑" 혹은 "내 어여쁜 자"라고 칭했다(아1:9, 2:2, 2:10. 4:1, 4). 그런데 결혼식을 치루고 난 후 솔로몬은 그녀를 "나의 신부"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며(아4:8,9,10,11,12,5:1), "내 누이"(아4:9,10,12,5:1,2) 그리고 "흠이 없는 자"(아4:7)요 "완전한 자"(아5:2)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2. 결혼 전에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어떻게 비유하였는가?

  결혼 전 연애할 때에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때 솔로몬은 이 여인을 두 가지로 비유를 들어 어여쁘고 사랑스럽다고 했다. 그것의 하나는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라고 하였고(2:2), 또 하나는 동물로서 비유하였으니 '비둘기'와 같다고 했다(아2:14). 솔로몬은 먼저, 그녀를 빨간색의 백합화(아네모네)에 비유했다. 이는 솔로몬이 그녀의 열정과 뜨거운 사랑을 그렇게 비유한 것이고, 두 번째로 비둘기에 비유한 것은 그녀의 순결과 정절(일부종사)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3. 결혼 전후로 여자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한편 결혼 전후로 솔로몬은 여자를 칭찬하는 것에 있어서도 횟수와 방면에 있어서 다르다. 더 많아진 것이다. 결혼 전에 솔로몬은 그녀를 3가지 면에서 칭찬했는데, 결혼 후에는 7가지를 칭찬하였기 때문이다. 결혼 전에 솔로몬은 그녀를 다음과 같이 3가지 방면에서 어여쁘고 아름답다고 했다. 첫째는 그녀의 두 뺨이 아름답다고 했다(아1:10a). 그녀의 두 뺨이 땋은 머리털로 보일 듯 말 듯 하는 것이 감추어진 옹달샘 같아서 아름답다고 했다. 둘째, 그녀의 목이 아름답다고 했다(아1:10b). 이는 그녀의 목에 진주와 여러 가지 보석으로 단장된 구슬꿰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 솔로몬은 그녀의 눈이 아름답다고 했는데, 이는 그녀의 눈이 순결하고 정절을 상징하는 비둘기와 같았기 때문이다(아1:15).

  그런데 결혼 후에 솔로몬은 그녀를 3가지 면에서 뿐만 아니라, 거기에다가 4가지를 더하여 7가지 방면에 대해 칭찬을 해 준다(아4:1~5). 그것은 머리에서부터 가슴까지 신체의 각 부위를 칭찬한 것이었는데, 첫째, 너울 속에 있는 그녀의 눈은 비둘기 같다고 했다. 이는 그녀가 순결한 여자였고 정절을 지켜왔음을 칭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그녀의 머리털은 길르앗 산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다고 했다. 이는 찰랑찰랑 곧게 내려뜨려진 머리가 윤기가 있어 올곧은 삶을 살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리고 셋째, 그녀의 이(치아)는 목욕장에서 나오는 털 깎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다고 했다. 이는 그녀의 이빨은 새하얗고 하나도 빠진 것이 없어, 무엇이든지 잘 씹어서 소화할 수 있는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넷째, 그녀의 입술은 [진]홍색실 같고 그녀의 입은 어여쁘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입이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더욱더 은혜로 덮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울 속에 있는 그녀의 뺨은 석류 한 쪽 같다고 했다. 왜냐하면 다섯째, 그녀의 뺨은 루비와 같이 불그스름 하는데, 그 안에 수많은 석류 알갱이들이 있는 것처럼 수많은 작은 씨들을 거기에 잉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섯째, 그녀의 목은 무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곧 방패 천 개, 용사의 모든 방패가 달린 망대 같다고 했다. 그리고 일곱째, 그녀의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 꼴을 먹는 쌍태 어린 사슴 같다고 했다. 어미로서 누구든지 먹일 수 있는 젖이 풍성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4. 어떻게 하면 어여쁜 자가 흠이 없는 완전한 자로 성장할 수 있는가?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흠이 없는 완전한 여자인 것은 아니었다. 단지 신랑이 그녀를 그렇게 좋게 보아주기 때문에 혹은 그녀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축복해 준 것이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제 갓 결혼식을 올린 신부에 대한 신랑의 바램은 그러한 것들만이 아니었다. 즉 솔로몬은 외적인 아름다움만을 간직한 신부가 되는 것에서 벗어나 내적으로도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주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그녀가 결단하면서 말했다.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내가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겠어요(아4:6)" 이는 결혼식 날 해가 지기 전에 그녀 자신이 하나님께 결단한 것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것은 그녀가 그동안에 실천하지 못했던 한 가지 일을 실천하겠다고 하는 굳은 의지를 보여 준 것이었다. 그것은 몰약의 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5.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렇다면, 그녀가 말했던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이란 대체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인가?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은 아가서 4장만 읽어서는 잘 알 수가 없다. 4장 이후를 다 읽어 보아야 한다. 그러면 아가서의 5장에서 그 해답의 실마리가 나온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요약하면,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이란 솔로몬의 비원(숨겨둔 비밀의 정원)을 가리킨다(아4:12,16, 5:1). 그런데 이 정원에는 몰약과 유향 뿐만 아니라 10가지 나무(향품들)도 있는 곳이다(아4:13~14). 더불어 이 정원에는 사과나무(생명나무)도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다(아8:5). 그러니까 몰약과 유향은 그 정원에서 나는 향품들 중의 대표 향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몰약이나 유향은 예수님의 어떠하심을 소개하는 나무이자 향품의 대표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태어나실 때를 보면,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에게 드리려고 가져온 선물들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었으며(마2:11), 예수께서 죽으실 무렵을 보면,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어떤 여인이 있어서 그녀가 자신의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부어 드렸음을 알 수 있고, 주님이 돌아가실 때에는 그분을 따르던 여인들이 그분의 죽은 시체에 발라 드리려고 향품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몰약'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희생과 죽음을 상징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몰약이 사람의 시체가 썩지 않게 막아 주는 방부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아서, 신부가 몰약 산으로 가겠다는 것은 앞으로는 자신에게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찾아온다고 할지라도 변함없이 주님을 따르겠다는 서원을 한 것이며, 주님의 뜻이라고 한다면 자신의 천 개의 목숨이라도 기꺼이 주님을 위해 드리겠다는 결단을 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유향은 구약의 제사의 제물과 함께 태워 드릴 때에 사용되는 향료로서, 주님을 위해 기도로 섬기겠다는 뜻을 말하는 것이며, 아울러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겠다는 굳은 결단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니 주님께서도 신부의 말을 들으시고 이제야말로 그녀가 흠이 없는 여자가 되었다고 선언해 주신 것이다(아4:7). 그러나 시집을 왔지만 아직도 그녀에게 남아 있는 옛 사람의 요소들과 귀신들의 억압으로부터 그녀가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덧붙여 말씀하신다(아4:8).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다루겠다. 

 

2021년 10월 08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신부(13) [아가서강해(03)] 솔로몬은 왜 술람미 여인의 첫 사랑이 되었을까?(아1:2~4)_2021-09-29(수) 

https://youtu.be/It9drd3nY1k  [혹은 https://tv.naver.com/v/22704512  ] 

 

1.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과 결혼하기 전에도 그녀는 다른 여인들 앞에서 당당했었다. 그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는가?

  술람미 여인은 예루살렘의 딸들이 자기를 거무스름하다고 놀려대도 그래도 그녀는 항상 당당하였다(아1:5~6). 그녀는 남이 자기를 보기에는 닳고 달아 시커멓게 변색해 버린 '게달의 장막' 같이 보일지라도 자신은 '솔로몬의 휘장'처럼 멋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오빠들의 성화에 못이겨 포도원을 돌보느라고 햇볕에 그을린 것이니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 자신을 평가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어떻게 시골 처녀였던 그녀가 예루살렘의 대도시 사람들에게 꿇리지 않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는가? 그 정확한 이유는 그녀가 결혼하기 전에 이미 솔로몬으로부터 지대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미 솔로몬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들어서 그리고 보아서 잘 알고 있었고, 일찍이 솔로몬과의 그 어떤 만남을 가진 후 솔로몬이 자기를 사랑하고 있어서 그분이 자기에게 온전히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아4:9). 그랬다. 그녀는 그분이 오직 자기만을 유일한 짝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아6:9)

 

2. 결혼하기 전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은 어떤 사이였는가?

  사실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결혼하기 전에는 포도원의 임대주인과 고용원(?)의 관계였을 뿐이다. 왜냐하면 솔로몬이 가지고 있던 많은 포도원들 가운데 술람미 여인의 지역에도 역시 포도원이 있어서 그가 그것을 세로 놓은 상태였을 때에, 그녀의 오빠들(배다른 오빠들로 모임)이 그것을 세로 얻어서 어린 동생이었던 그녀에게 그 포도원을 맡겼기 때문이다(아8:11~12, 1:6). 과거에 솔로몬은 자기의 포도원을 보려고 가끔씩 예루살렘 궁궐을 떠나 시골로 내려간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날 솔로몬과 그녀가 서로 눈이 그만 마주치고 말았다. 그런데 솔로몬의 눈 속에 그녀는 자기가 바로 찾던 그 대상 그 짝이었다. 그러한 사실은 훗날 솔로몬이 그녀와 결혼한 후에 고백을 통해서도 밝혀진다. "내 누이, 내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아4:9)" 

 

3. 그녀가 솔로몬에 대해서 알고 있던 5가지 사실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 가곡시의 첫 문장이 어떻게 출발하는지를 주의깊게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모든 연극은 모든 일들의 사건을 처음부터 나레이션처럼 소개해주지 않고 어떤 대사나 사건을 던짐으로 그전에 있었던 일들을 짐작하게 해주거나 장래에 일어날 일들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가서의 첫 문장도 제목을 제외하고는 그녀가 이전에 어떻게 솔로몬과 가까워졌는지에 대해서 말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지금 알고 있는 사실이 무엇인지를 몇 줄에 걸쳐서 말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아가서 1장 2~4절에 나오는 첫 대사다. 여기에는 그녀가 솔로몬에 관하여 알고 있는 5가지 사실이 나온다. 첫째 그녀는 그분의 놀라운 사랑을 알고 있었다. 둘째, 그분의 기름부음셋째, 그분의 놀라운 이름넷째, 그분의 위대한 신분. 그리고 다섯째 그분이 준비해놓은 최고의 처소에 대해 알고 있었다. 

아1:2-4  [그가]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당신의)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3 네(당신의)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당신의)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당신을) 사랑하는구나 4 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당신은)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당신을)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로(당신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당신의)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진함이라 처녀들이 너를(당신을)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4. 그분의 사랑은 어떠한 사랑이며, 그분의 기름부음은 어떠한 기름부음인가?

  먼저, 술람미 여인이 알고 있었던 솔로몬의 사랑과 그분의 기름부음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 그분의 사랑은 자기를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랑이었다(아1:2,4,14). 그것은 포도주를 마시는 것보다 더 뛰어나고 진하다고 했다(아1:2,4). 사실 그의 곁에는 수많은 그의 여인들이 있었다. 적어도 당시 왕후는 60명이 있었고, 비빈도 80명이나 있었으며 시녀들은 무수히 많이 있었다. 하지만 솔로몬은 아직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그래서 그는 사실 외로웠다). 그래서 솔로몬은 지고한 사랑의 대상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만약 그러한 대상을 만나기라고 한다면 자신의 목숨이라도 내놓을 준비가 된 상태였다. 그런데 그만 바알하몬에 있는 포도원에서 그만 그녀를 만나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술람미 여인도 그에 대해 표현하기를 "내 임은 엔게디의 포두원의 고벨화 송이"라고 했던 것이다(아1:14). 

  둘째, 술람미 여인이 알고 있었던 것은 그분의 기름부음이다. 솔로몬은 이미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상태에 있었다. 순결한 감람유로 기름부음을 받아 왕이 된 상태였다. 그러니 그분에게서 성령의 기름부음이 계속 흘러넘쳐 그 향이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그분의 기름부음을 보자 "당신의 감람유들이 향기로워 아름답기 그지 없어요"라고 말했던 것이다(아1:3). 사실 참 하늘의 솔로몬이신 예수님도 마찬가지이시다. 그분이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이 열리면서 성령이 그분 위에 비둘기같이 내려왔기 때문이다(마3:16).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던 예수께서는 성령의 기름부음이 한량없이 부어지고 있었기에, 그가 두루 다니며 선한 일을 행할 수 있었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실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술람미 여인도 자기 포도원을 망치고 있는 여우 곧 사탄 마귀과 귀신들을 잡아달라고 부탁할 수 있었던 것이다(아2:15). 

 

5. 그녀가 알고 있었던 그분의 놀라운 이름은 무엇이었는가?

  그렇다면 그녀는 그분의 이름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었는가?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그분의 이름을 정녕 알고 있었다. 첫째로, 그분의 이름은 "평화와 안식"이었다(아3:11). 왜냐하면 '솔로몬'이라는 이름의 뜻이 '평화, 평강'으로서, 자신의 고된 노동에서 참된 평화와 안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날마다 포도원에 나가 일해야 될 농부에게 있어서 이 세상 어디에 쉴 곳이 있었겠는가? 그분의 신부가 되는 길 외에는 뚜렷한 길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녀에게 가장 좋은 길이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 평화를 가져다 주는 그분의 이름을 가슴에 새겼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결혼한 이후에 사람들은 그녀를 '술람미여인'이라고 불렀지만, 그것은 사실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그렇게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그분이 보기에 '화평을 얻은 자(원문: 평화를 주는 여인)' 같구나"라고 말했기 때문이다(아8:10). 또한 둘째로 그녀는 솔로몬이 구원자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를 시골 처녀의 신분에서 왕후의 신분으로 바꾸어줄 수 있는 분도 그분이고, 고된 노동에서 해방시켜 줄 분도 그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어느날 식탁에 초대받았을 때에 그분을 일컬어, "엔게디의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라고 했다. 사실 적갈색의 '고벨화'는 히브리어의 원말이 '고페르'로서 그 뜻이 '속전, 대속물, 생명의 값'이라는 뜻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분이야말로 자신을 구출해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인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셋째로, 또한 그녀는 그분의 이름이 '사과나무' 곧 '생명나무'인 것을 알고 있었다(아2:3, 8:5). 왜냐하면 자기와 자기의 남편이 그 생명나무(사과나무처럼 생겼음) 아래에서 처음으로 호흡이 시작되었으며, 그래서 생명나무가 자신의 어머니와도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2021년 09월 29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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