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는 수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있는데, 왜 교회에서 구원자는 오직 예수님 뿐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이는 너무 독단적이고 편협적인 판단은 아닌가? 예수께서 구원자가 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보시고 어느날 괜찮아 보여서 그를 구원자로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그분을 처음부터 구원자로 보내신 것인가? 오늘날 자신을 재림예수요 구원자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아무리 자신이 그렇다고 주장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구원자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여기 확실한 답이 있다.

2021-12-12(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왜 예수 이외에 다른 사람은 구원자가 될 수 없는가?(눅2:10~12)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CXkpxgV84u4 [ 혹은 https://tv.naver.com/v/24059493 ]

 

1. 들어가며

  오늘은 대강절(대림절) 셋째 주일이다. 대강절이란 우리 주님께서 죄 가운데 빠진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탄생한 것을 축하하는 성탄절 전의 4주간을 일컫는 말인데, 오늘은 그 세 번째 절기인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께서 탄생하시던 날에 예수님의 탄생의 소식을 알고 축하해 주는 이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축하객들을 베들레헴에 보낸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한 천사를 시켜 밤에 자기의 양떼를 치고 있던 목자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셨다.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보낸 것인데, 그들은 별을 연구하던 천문학자들이었다. 이름하여 '동방 박사들'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탄생하실 때의 축하는 초자연적인 방법이 동원되어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러므로 말씀이 최고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실은 거기에도 매우 큰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성도들은 영적인 세계에서도 밝은 자가 되어야 하겠고, 성경 지식에 있어서도 밝은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도 말씀을 가지고 재림 예수 운운하는 자들 중에는 이단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예수님의 탄생 소식에 담겨 있는 영적인 사실을 통하여 누가 이단들인가를 분별하고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자인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

  지금 우리는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 우리 주님께서는 공생애 기간에 제자들에게 말세에 되어질 일을 말씀해 주신 적이 있었다.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하겠지만 그 말을 믿지 말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말세가 되면 거짓 사기꾼들이 일어나서 큰 표적과 기적을 행함으로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까지 미혹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마24:23~25). 그런데 지금은 그러한 시대가 아직 이르지도 않았음에도 말씀만을 가지고서 사람의 영혼을 미혹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초자연적인 기적이나 이적도 행하지 않으면서도 성경 말씀만을 가지고서 사람의 영혼을 미혹하는 이단에는 신천지(증거장막성전)가 있고 하나님의 교회(안상홍증인회)가 있다. 이들 중에서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은 자신을 재림 예수인 것처럼 포장한다. 그는 말한다. 보혜사에는 영의 보혜사가 있고 육의 보혜사가 있다는 것이다. 영의 보혜사는 성령이시고, 육의 보혜사는 사도 요한인데, 사도 요한에게 임하였던 육의 보혜사가 이제는 자기에게 임하여 자기가 말세의 이긴 자요, 약속의 목자이자, 육의 보혜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통하여 이긴 자를 데리고 육체가 영생하는 천년 왕국에 들어간다고 속이고 있다. 

 

3. 재림하실 예수께서는 어떻게 오시는 것인가?

  성경에서는 예수께서 어떻게 다시 오시는지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것은 하늘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천사가 가르쳐 주었다. "너희 가운데 하늘로 올려지신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1)." 그렇다. 그분이 하늘로 올라가신 것처럼 하늘로부터 오실 것이다. 그리고 구름을 타고 올라가신 것처럼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다(계1:7). 그런데 신천지에서는 구름이 진짜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구름이겠느냐면서 구름은 실제 구름이 아니라 성령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을 받은 자가 곧 자신이요 자신이 재림 예수라는 것이다. 그래서 1984년에 재림 예수께서 다시 오셔서 이만희 총회장 속에 들어가서 지금 일하시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만희의 주장은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첫째,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을 비유풀이 짝풀이(알레고리칼 해석)를 통하여 성령이라고 해석하지만 이것은 환상과 실제를 구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환상이 기록된 것도 있고 실제를 기록한 것도 있다. 예수께서 그날 승천하실 때에 구름을 타고 올라가신 것은 실제를 기록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때에 구름이 함께 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상은 다르다. 예를 들어, 요셉이 꾸었던 꿈 가운데 곡식단이 절하는 꿈은 실제가 아니다. 환상이다. 그것은 해석이 필요한 것으로서, 요셉의 곡식단에 절하는 다른 곡식단은 요셉의 형제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곡식단이 다른 곡식단에 스스로 절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가신 것이나 다시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은 실제 일어날 일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다시 오실 예수께서는 부활체로서 영광 중에 하늘로부터 좇아 오시며, 모든 인류가 다 지켜보는 가운데 오시는 것이며, 오실 때에는 이미 천국에 들어가 있는 성도들과 그리고 천사들과 함께 오시는 것이지, 오셔서 사람 속에 들어가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분은 한국 사람 속에 들어가서 역사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 천사가 일러 준 예수님의 탄생 소식 속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4.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또 사람 속에 들어가서 일을 하실 것인가?

  우리가 재림 예수와 관련하여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은 오시되, 결코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시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로 올려지셨던 그분이 다시 오실 그분이기 때문이다. "내가 속히 오리니(계22:12)" 그렇다. 그분은 그때 모습 즉 33년 반의 생애를 사셨던 유대인 청년의 모습을 가지고 오실 것이요, 손과 발에 못자국을 가진 채 오시는 것이지 다른 모양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다. 영화로운 부활체를 입으셨던 그분이 영광 중에 심판주로 오시는 것이지 나이가 들면 늙어가는 사람 속에 오시지 않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성경에 이미 기록된 말씀을 부정하고, 전 세계에서 예수믿는 사람들 중에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게 은밀하게 오셔서 이만희의 육체 속에 들어가서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닌 것이다. 이만희의 주장대로라면 자기만이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믿는 모든 사람이 성령을 받았으니 모두가 다 재림 예수가 된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결단코 또 육체 속에 들어가지 않으신다. 

 

5.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통하여 알 수 있는 재림 예수는 어떤 분이신가?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통하여 재림하실 예수님이 누군지를 정확히 알 수가 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니,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던 예수께서는 구주(구원자)로 오셨다는 것이다(눅2: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그렇다. 초림의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그럼 그분은 어디에서부터 구출하기 위해 오신 것인가? 그것은 우리 인류를 죄 가운데서, 사망 가운데서, 사탄 마귀 가운데서 건져내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피흘릴 수가 없고 죽으실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사람으로 오셔야 했다. 왜냐하면 피흘림이 없으면 죄사함이 없고(히9:22), 죄의 값은 사망(롬6:23)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대신 피흘려 죽으시기 위해 사람으로 오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자를 사람들이 혹시 몰라볼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께서 탄생하시기 수백 수천 년 전에 이미 장차 구원자로 오실 분에 관하여 예언으로 알려 주셨다. 그분은 과연 어떤 혈통에서 나오실 것이며, 어디에서 태어날 것이며, 잉태될 때에는 어떻게 잉태될 것인지까지 미리 다 말씀해 주신 것이다. 인간 중 어떤 놈들도 사기를 치지 못하게 하시려고 말이다. 그러므로 베들레헴 근방의 목자들에게 나타났던 천사는, 그분은 다윗의 후손(눅2:4, 삼하7:12, 마1:1)으로서 다윗의 동네인 베들레헴에서(눅2:11, 미5:2) 구원자로서 오늘 태어나셨다고 알려 주었던 것이다(눅2:11). 그러므로 다시 오실 예수님은 유대인으로 이 땅에 오셨다가 가셨던 바로 그분이 다시 오시는 것이다. 한국 사람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다. 또한 다시 오시는 그분은 부활체의 영광스러운 몸으로 오시는 것이다. 다시 육체를 입거나 육체 안에 들어가시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약속도 하신 일이 없으며, 그렇게 하실 이유도 없으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오시는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다거나 아니면 육체 속에 들어가셔서 일하신다고 주장하는 것은 예수께서 초림 때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 사역을 다 부정하는 것이다. 그때 예수께서 이루신 구속 사역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자기가 완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예수님의 구원자되심을 부정하는 것이다. 사실 예수께서 육체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무슨 말씀을 하시고 돌아가셨는가? 그분은 "다 이루셨다"고 하셨다. 인류의 죄값을 다 지불하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인류의 구원을 위한 그분의 속죄 사역은 완성된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아쉬울 것이 있어서 다시 오시되 늙어가는 육체 속에 들어가신다는 말인가? 

 

6.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서 살다가 구원자로 택정함을 입은 것인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살다가 어느 날 구원자로 택정함을 입으신 분이 아니다. 그분은 처음부터 구원자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분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신 것이고, 처음부터 그리스도로 태어나신 것이며, 처음부터 주님으로 태어나신 것이다(눅2:11). 왜나하면 어떤 사기꾼이 나타나 내가 성령을 받았기에 이제부터는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고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예수께서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신 것이며, 그리스도로 태어나신 것이며, 주님으로 태어나신 것이다. 그분은 이미 사람으로 살고 있는 어떤 사람 속에 들어가 남의 육체를 빌려 쓴 적이 없다. 그분은 처음부터 사람으로 태어나신 것이요, 그분은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더라, 내가 재림 예수이더라고 말하는 자는 다 사기꾼들인 것이다. 아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구원자로 태어나셨다. 

  그렇다면, 첫째로, 그분이 처음부터 '그리스도'로 태어나셨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눅2:11) 그것은 그분이 만왕의 왕으로 태어나셨다는 뜻이며, 인류의 속죄제사를 집례할 영원한 제사장으로 태어나셨다는 뜻이자, 온 인류에게 영적인 상태를 알려 주어 회개하여 구원받으라고 외치는 선지자로 태어나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둘째로, 예수께서 처음부터 주님으로 태어나셨다는 말은 대체 무슨 뜻인가?(눅2:11). 이는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신 것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신적인 존재 가운데 "주님"이라고 불리울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여호와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불렀으며(창15:2),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었던 다윗도 여호와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불렀던 것이다(삼하7:18).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요8:24, 28, 58). 그리고 그분은 처음부터 하나님이셨기에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들을 행하신 것이다. 그분은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를 살리셨으며, 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눈을 뜨게 하셨으며, 물 위를 걸어서 오셨고, 바람과 풍랑도 말씀 한 마디로 잔잔하게 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셨기에, 나다나엘을 만나기 전에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를 말씀하실 수가 있었으며, 베드로가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도 미리 말씀하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만희가 자존한 자인가, 무소부재한 자인가, 전지전능한 자인가? 그는 결단코 재림 예수가 아니다. 우리와 똑같이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 하고 아프면 병원에 가고 그리고 나이가 들면 늙어가는 사람에 불과한 것이다. 

 

7. 나오며

  사실 지금의 이단의 문제는 단지 이단 교주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실은 기성 교회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단이 발생하게 된 그 배경이 교회에서 성경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못한 탓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영원한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누군지를 정확히 가르쳐 주지 못했기 때문에 엉뚱한 노인을 재림 예수요 육의 보혜사로 믿고 따라가고 있는 실정이 되어 버린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영의 실제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신천지 지파장 가운데에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그중에 한 사람도 영의 실제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었어도, "내가 천국에 가 보니 하나님의 보좌에 늙은 이만희가 앉아 있는 것이 아니고 유대인 청년이었던 바로 그 예수님이 앉아 계시더라"고 말해 주었을텐데, 단 한 사람도 천국을 실제로 본 일이 없기 때문에, 이만희의 말장난에 속아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 또한 이단만을 탓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기존의 교회에서도 영적인 세계의 실상을 볼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교회를 다녔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성경을 잘 풀어 준다는 이단에게 빠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영육 간에 실력을 다 갖춘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회개를 많이 하고 은사도 받아서 영적인 계급도 올라가고 영의 세계를 볼 수 있며, 귀신들을 내어 쫓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더욱이 모든 것의 표준은 성경인 만큼 성경 말씀도 체계적으로 공부하여 성경을 비틀어 속이는 이단의 가르침에 넘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2021년 12월 12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수님의 탄생은 이 땅에 하나님이 거할 장막을 치는 것이었다(히9:9~12)_2020-03-10(화)

https://youtu.be/rYhWKLdLckY

 


1. 성경을 해석할 때 왜 모형론적(예표론적)으로 해석해야 하나요?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에는 초기교부 오리겐(A.D.185~254)이 말한 것처럼 3가지가 있습니다. "몸적인 의미"(문자적 의미), "혼적인 의미"(도덕덕 윤리적 교훈적 의미), "영적인 의미"(알레고리적 의미, 예표론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해석 가운데 기본은 "몸적인 의미"를 먼저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혼적인 의미"와 "영적인 의미"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신천지나 하나님교회(안상홍증인회) 같은 경우에서는 처음부터 영적인 의미로 해석하는데 그것도 알레고리적 의미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니 원래 성경의 저자가 말하려고 했던 의도를 벗어나서, 성경을 해석하려는 작자의 사상를 주입시키거나 교주를 메시야로 믿게 하는 데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할 때에는 반드시 1차적(문자적) 의미와 2차적(교훈적) 의미를 살펴보고 그리고 나서 3차적(영적) 의미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특히 3차적인 의미는 성경에 나오는 비유들을 해석할 때에 사용하는 방법으로서, 이때는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모형론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가장 안전하며, 올바르게 성경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모형론적 성경해석방법이야말로 예수님께서 구약성경을 해석하실 때에 사용한 방법(요5:39)이었으며, 사도바울도 사용했고(롬5:14, 고전5:7,10:4,15:45), 사도요한도 사용했으며(요2:19~21), 사도베드로도 마찬가지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벧후1:14).

 

2. 성경에서 모형론적(예표론적) 성경해석방법을 최고로 많이 사용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성경에서 모형론적인 성경해석을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확실하게 사용한 사람은 역시 "히브리서 기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그 기초를 세우셨고 사도들이 그것을 이어받았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기자만큼 모형론적 성경해석방법을 많이 그리고 확실하게 적용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을 이해하는 데에 가장 탁월한 성경책은 역시 히브리서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히브리서의 핵심은 구약의 율법이 모형과 그림자(히8:5)에 불과한 것이요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특히 구약의 율법 중에서 언약들, 그리고 성막이나 대제사장이나 제물도 다 모형과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럼 실체는 누구일까요? 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실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그리스도가 몸[통]이요 실체이며 원형인 것입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시대에 실재했던 사건들과 사람들과 물건들과 제도들을 가져와서 실체를 설명했던 것입니다.

 

3.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던 "장막"과 "성전"의 실체는 무엇인가요?

  구약시대 특히 출애굽이후 시내산 아래에 세워졌던 성막은 사실 그때 처음으로 존재하게 된 시설(물건)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미 하늘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을 하나님께서 보여준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것을 보여주고 그것을 이 땅에 그대로 짓게 했던 것입니다(출25:8~9,40).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출25:9)". 그러자 모세는 자기가 본 그대로 브살렐과 오홀리압으로 하여금 이 땅에 성막을 짓게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약500년 뒤에 다윗이 여부스 사람들로부터 시온산성을 빼앗고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을 사서 거기에 성전을 짓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그의 아들 솔로몬으로 하여금 성전을 짓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럼 그때 솔로몬은 어떻게 성전을 지었습니까? 그는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설계도대로 지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설계도도 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있는 성전을 그대로 그려서 보여준 것이었습니다(대상28:19). 그러니까 이 땅에 모세가 지은 성막이나 그것을 건물의 형태로 지었던 솔로몬의 성전이나 다 이 땅에 처음으로 존재했던 기물들이 아니라 하늘에 먼저 있었고 그것을 이 땅에 하늘의 식양대로 지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땅의 성막과 성전은 다 모형이며 그림자인 것이며, 성막과 성전이 실체(원형)가 결코 아니었던 것입니다.

 

4. 성막과 성전의 진짜 실체는 무엇이었나요?

  그런데 어느날 예수께서 유대인들과 논쟁하다가 이러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 그러자 유대인들이 물었습니다. "이 성전은 46년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요2:20)" 그런데 만약 예수께서 하신 이 대답을 문자적인 의미로만 생각한다면, 예수님은 허풍쟁이요 몰지각한 사람이요 미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46년동안 지어서 완공했던 스룹바벨성전을, 과연 3일만에 다시 지을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즉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이 비로소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영적인 의미)를 알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곧 "성전된 자기의 몸"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말입니다(요2:21). 그러므로 그때 헐라고 했던 성전은 물질적인 성전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을 가리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5. "성전을 헐라"는 명령은 예수님의 몸에 관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나요?

  "성전을 헐라(요2:19)"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몸이 곧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왜냐하면 예수님의 성육신을 소개하는 사도요한이 그렇게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께서 육체를 입으신 사건 곧 예수님의 잉태와 성탄의 사건을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성막을 지은 것이라고 해설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요1:14에 나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요1:14)" 그런데 이 본문을 헬라어 원문으로 지역해보면, "그리고 그 말씀이 육체가 되었으며, 그리고 우리들 안에 장막을 치셨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입니다. 그러니까 "거하시매"라는 말을 헬라어로는, "스케노오"라는 단어로서, "장막을 치다"라는 단어입니다. 헬라어로 명사 "장막"은 "스케네"라고 부르며, 동사 "장막을 치다"는 "스케노오"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육체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친 성막의 실체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부터 존재했던 성막이나 성전은 예수님의 몸에 대한 모형이요 그림자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럼, 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성막을 치시려고 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출25:8에 나온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이 땅 어딘가에 거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기 위한 처소로서 이 땅위에 형성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몸 안에 아버지가 거하셨으니(요10:38), 예수께서는 "나를 보고 있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요(요12:45),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요14:9). 또한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14:10)"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고로 예수님의 몸은 하나님의 성막(장막,성전)이며, 그분 안에는 하나님(아버지)께서 거하시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막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자신이셨던 것입니다. 고로 우리가 그분을 믿을 때에 우리는 성막을 통하여 죄사함을 받게 되며, 그분을 믿음으로 하늘로 가는 열린 길을 따라 천국에까지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히10:19~20). 이것은 내일 계속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2020년 03월 10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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