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25(주일) 주일낮2부예배 

제목: 왜 한 번 얻은 영생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씀하는가?(요10:26~28)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JHlTrIszdMs  [혹은 https://tv.naver.com/v/29459531 ]

 

1. 들어가며

  어떤 분들은 한 번 영생을 얻었으면 그는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주로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분들에게 속한다. 이는 구원에 있어서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구원의 주권이 주님께 있다는 것은 백 번 옳은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지 않는다면 구원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구원받는 일거수 일투족을 다 하나님께서 간섭하시고 주관하시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에 관한 모든 것을 다 준비해두신 후에 인간이 회개하고 믿어서 구원받기를 바라시고 계시기 때문이다(딤전2:4,벧후3:9). 다시 말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 구원받도록 그에게 강제로 믿음을 쑤셔 집어넣거나 아니면 주리를 트시는 분이 아닌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해서 어떤 사람은 구원을 받고 어떤 사람은 멸망으로 떨어졌다면, 하나님은 결코 심판 때에 그를 심판하실 수 없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뜻대로 다 해놓고 우리더러 왜 믿지 않았느냐고 다그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이 믿어서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라 할지라도 그 이름이 지워진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믿음을 통해 영생을 이미 얻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잃어버릴 수가 있다는 것이 성경말씀이다(계3:5). 그렇다면 왜 주님께서는 한 번 얻은 영생이라도 그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인가? 그리고 한 번 얻었던 영생을 우리가 잃어버리지 않고 그것을 끝까지 간직하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2. '영생'과 '생명'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어떤 분은 '영생'과 '생명'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생을 얻는 것이 곧 생명을 얻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한 편으로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영생'이란 '영원한 생명'의 줄임말로서, 생명과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지만 '영생'은 어떤 특별한 시간과 장소를 언급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영생'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성경에서는 '영생'을 '아이오니오스 조에(ionios zoe)'라고 말한다. 이 말은 보통 우리말처럼 '영원한 생명'(eternal life)이라고 번역되고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번역은 그 말이 의역이지 정확히 번역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아이오니오스 조에'는 무슨 뜻인가? 그것은 '시대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수식어 '아이오니오스'는 명사 '아이온'의 형용사형으로서, '아이온'은 '시대(age)' 혹은 '세대'(generation) 혹은 '세상'(world)라고 번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이오니오스 조에'는 '시대의 생명'이라고 번역해야 가장 적합한 것이다. 그러므로 영생은 생명 중에서 어느 시대에 필요한 생명이 가리키는 특별한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3. '생명'이란 무엇이며 '생명'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생명(=조에)'이란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여기서 '조에'라는 생명은 육체의 생명을 가리키지 않는다. 육체의 생명은 헬라어로 '비오스'라고 한다. 육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명은 '비오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 그런데 '조에'라는 생명은 영혼에게 필요한 생명으로서, 이것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생명이다. 왜냐하면 이 생명은 오직 '하나님'에게 있었으며,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생명을 사람들에게도 주시기를 기뻐하셨다. 그러므로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신 후에 그것을 취할 수 있도록 에덴동산에 과일의 형태로 놓아두셨다. 하지만 인간은 이러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기 전에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불순종하게 되어 에덴동산에서 그만 쫓겨나고 말았다. 그래서 생명으로부터 멀어졌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예수님을 생명으로 먹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요6:51)" 그렇다. 예수님을 생명의 떡으로 취하면 사람을 영생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자기자신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기 때문이다(요5:26). 그런데 예수께서는 살아있는 인격체이므로 그분을 우리가 직접 먹을 수는 없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죽음의 과정을 통하여 그 생명을 해방시켰고 그 생명을 모든 믿는 자들에게 바람처럼 호흡처럼 주시기 위해 성령이 되셨다(고전15:45, 고후3:17). 이제는 예수께서 자신을 대신하여 보내주신 보혜사 성령을 받으면 그 사람 속에 생명이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 이 땅에 들어오셨으며, 먼저 인간이 지은 죄를 속량하시기위해 피흘려 죽으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다시 말해, 자기자신 안에 있는 생명을 해방하여 누구든지 믿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예수께서 성령으로 오셨다는 것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생명을 받게 되는 것이다(요5:24).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께서는 죽고 부활하신 후에 생명주는 영 곧 성령이 되셨다고 언급한 바 있다(고전15:45).

 

4. '영생'이란 무엇이며, 또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영생이란 어떤 것이며, 또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영생'이란 서두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시대의 생명'을 가리킨다. 어떤 사람은 '영생'이라고 하니까, 영원히 사는 생명을 가리킨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불신자들도 죽은 후에 지옥에서 영원히 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생이라는 단어가 시간과 장소에 관련하여 어떤 특별한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 마디로, '영생'이란 다음 시대에 우리가 필요한 생명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사실 영생은 이 땅에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영생은 우리가 죽고 난 후 다음 시대에 과연 어디서 살 것인가를 결정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생'이란 이 다음 시대에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 계신 곳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수고한 자들은 내세(오고 있는 시대)에서 반드시 영생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눅18:29~30). 왜냐하면 영생은 다음 시대에 필요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고로 영생이란 한편으로는 '얻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동시에 한편으로는 '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장애인으로 영생으로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 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낫다고 말씀하신 것이다(마18:8~9). 왜냐하면 영생이란 우리가 죽고 난 후에 우리의 영혼이 들어가는 다음 시대의 장소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생을 얻으려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오신 예수님을 믿어야 하고, 그때 대신하여 들어오시는 성령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성령께서 생명을 가지고 우리 안에 들어오심으로 우리는 다음 시대에 하나님과 함께 사는 생명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5. 영생은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인가?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가 영생을 주시려 오셨다는 것을 알고 그분의 피가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해주신다는 것을 믿을 때에, 비로소 생명을 얻어 영생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격을 얻게 된다. 다시 말해 누구든지 믿음을 통해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다(요5:24). 그렇다면 그렇게 해서 얻은 영생을 과연 우리가 잃어버릴 수도 있는가? 어떤 분은 한 번 얻은 영생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믿는 자들에게 들어오시는 보혜사 성령은 영원토록 믿는 우리와 함께 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말씀은 요한복음 14:16~17에 나온다. 우선 그 말씀을 우리말 성경으로 그대로 옮겨보자.  

요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그렇다. 예수께서는 부활승천하신 후에 아버지께 구하여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그러한 보혜사 성령은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며 또한 우리 속에 계시 것이라고 하셨다. 이때 성령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있게 하기 위해 주시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말 성경으로만 성경을 본 사람은 한 번 믿는 자들에게 들어오신 성령은 결코 우리를 영원토록 떠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성경을 볼 때 우리는 2가지를 주의해야 한다. 첫째는 해석에 조금 어려움이 있으면 헬라어원문에서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정확히 살펴보는 것이요, 둘째는 자신의 주장이 항상 옳은 것인지를 다른 성경본문과 비교해 보는 것이다. 

  그럼, 첫째로, 헬라어원문에서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요14:16의 헬라어원문은 이렇다. "그리고 나도 역시 아버지께 장차 요청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이 다른 보혜사를 장차 여러분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과 함께 '그 시대까지' 계속 있게 하기 위해서"(요14:16 헬라어직역). 그렇다. 먼저 성령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있게 하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까지'로 함께 있기 위해서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한 번역이다. 여기서 그 시대는 '다음 시대'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영원토록'이라고 번역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우리와 영원토록(그 시대까지) 함께 있게 하기 위하여 보혜사를 보내주신다는 문장이 바로 '가정법'문장이기 때문이다. '가정법'이란 실제가 아닌 것을 추측하거나 있음직한 가능성이나 가상을 나타내어 미래적인 의미를 띠는 문장법(mood)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한 번 믿는 이들 속에 들어오신 성령은 반드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있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문장은 가정법으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보혜사 성령을 예수님을 대신하여 보내주시는데 이 성령을 보내주시는 이유는 성령이 다음 시대에서도 계속해서 성도들과 함께 하시기 위함인 것은 분명히 맞다. 하지만 성령이 모든 사람에게 다음 시대까지 함께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둘째로, 다른 성경본문에서는 한 번 들어오신 성령께서 떠나시지 않고 계속해서 계신다고 증거하고 있는가? 한 개의 구절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우선 에베소서 4:30을 보자.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성령을 계속해서 근심하게(슬퍼하게) 하지 말고 있어라. 그분 안에서 너희가 구원(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그렇다. 성령께서는 구원의 날까지 곧 우리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날까지 우리를 인치시고 보증해주신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 다음은 우리가 성령을 어떻게 대우했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될 것이다. 만약 자기 안에 들어오신 성령을 계속해서 근심하게 했다면 그는 구속의 날에 성령이 떠나가실 수도 있다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보혜사는 우리와 이 시대 뿐만 아니라 다음 시대까지 계속해서 함께 하도록 하기 위해 보내주신 것이 맞다. 하지만 우리가 성령을 계속해서 근심하게 한다면, 성령께서 이 다음 시대까지 계속해서 동행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이 본문의 취지인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19에서 "너희는 성령을 계속해서 소멸하지(끄지) 말고 있어라"고도 하였다. 이는 어떤 믿는 이는 자기 속에 들어와 계시는 성령을 자꾸 꺼버린다는 것이다. 성령께서 어떤 지시를 그에게 내리는데도 그것을 무시하고 성령의 권면을 따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게 살다가 어느날 그가 문득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때에도 성령께서 그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어주시는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죽고 심판을 받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심판을 하시기 때문이다. 그날 그분은 긍휼로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때도 성령께서 우리를 어여삐 여기실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때 성령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까지 몽땅 강제로 끌고 천국에 들어가시는 분이 아니시다. 더욱이 한 번 영생을 얻게 되었고 그것이 절대 변동이 없는 것이라면, 한 번 기록된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질 리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계3:5). 늘 성령을 근심하게 하고 성령을 소멸시켰던 자들은 그날에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6. 왜 예수께서는 한 번 얻은 영생이라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가?

  그렇다면 왜 예수께서는 한 번 얻은 영생이라도 이렇듯 영생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인가? 그것은 적어도 3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이는 믿는 우리가 최종적으로 구원받는 그날까지 늘 깨어있도록 하기 위함이다(마24:42). 왜냐하면 자칫 잘못하다가 안일한 생각 혹은 방종 가운데 있다가 그만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구원은 이미 따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렇게 안일하게 대처하다가 그만 그날 성령이 떠나가심으로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미리 경성하라고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받는 그날까지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가야 할 것이다. 죽음의 그 순간까지 어느 누구도 구원이 완전히 보장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둘째, 깨어있을 때에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맡겨주신 일에 충성함으로서, 이 땅에서 살동안에 천국에서 받을 기업을 잘 준비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마24:45~47). 늘 경각심을 가지고 깨어있으면 자신이 무엇을 행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때에 주님께서 부탁하신 말씀에 순종하고, 맡겨주신 일에 충성함으로 하늘에서 받을 기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주님은 영생은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셋째, 우리가 죽는 그날까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갈5:16). 우리가 영생을 잃어버리는 것은 결국 생명을 가지고 들어오신 성령이 우리에게서 떠나감으로 일어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깨우쳐주심에 늘 민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심판의 그날에 버림을 받아 슬피 울며 자신에 대해 이빨을 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들어오시는 그날부터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더 이상 죄를 짓지 말고 회개하라고 권면하신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이끄신다. 그러므로 성령을 슬퍼하게 하거나 그분의 활동을 소멸시켜 버리지 말라. 그러면 그는 결국 멸망 곧 죽어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사망 안으로 들어갈 것이기 말이다. 

 

7. 나오며

  고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생을 잃어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보전할 수 있도록 2가지 방법을 제시해 주셨다(요10:27~28). 그것은 첫째, 주님의 음성을 계속 들으라고 하셨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라는 것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뜻이다. 그렇다. 우리는 늘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고 섬겨주며, 맡겨주신 일에 충성하라. 둘째, 주님의 뒤를 계속해서 따라오라고 하셨다. 이는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하던 일을 우리도 뒤따라서 행하라는 뜻이다. 가난하고 병든 자를 심방하고 그들을 고쳐주며 천국복음을 전파하라(마9:23). 이런 자가 다음 시대에 생명을 잃어버리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가 죽는 날 성령께서 떠나가시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죽는 날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에 들어가게 될 있으며, 하늘에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장만해둔 하늘의 기업을 상속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믿을 때에 우리는 이미 영생을 얻었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히 얻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그 영생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번 받은 영생을 잃어버리지 않고 보전할 수 있도록 날마다 깨어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주님 말씀에 순종하고 충성하여 하늘의 기업을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날마다 성령의 음성에 귀기울이고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다음 시대에는 반드시 영생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2년 09월 25일(주일)

정병진목사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의 확신에 관한 성경구절을 절대적인 진리처럼 받아들인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을 때에 이미 자신은 구원받았으며, 자신의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도 용서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목회자의 견해이며 교단의 교리나 신학의 산물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큰 일이다. 과연 구원받은 자가 얼마나 될까? 부족하지만 여기 이 문제와 더불어 해결의 실마리가 들어있다.

2016-10-02 주일찬양예배
제목: 하나님의 자녀가 온전해지려면?(2)(롬8:1~17)
https://youtu.be/_G83xJ3Jp4E


1. 들어가며

  과연 결국에 어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게 될까?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천국에 들어오기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은 자가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 나 자신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확신을 갖고 있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라. 주님께 인정을 받아야지, 주님께서는 그의 신앙을 전혀 인정해주지 않고 있는데, 자기는 천국에 들어간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해서 그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내가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사람인지 어떻게 확인해보며, 또한 어떻게 해야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지난주에 말씀드린 소극적 측면에 이어 적극적인 측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2.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과 구원받는 것의 차이

  어떤 성도들 중에는 자신은 확실히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아주 강하게 확신하고 있는 자들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기 때문이며, 그 믿음으로 인하여 자신은 이미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받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매우 비성경적이라는 사실인 것을 알고 있는가? 우리가 먼저 알 것은 구원의 확신이 천국에 들어가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구원의 확신으로 치자면, 예수님 당시에는 서기관과 바리새들보다 더 확신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천국에 있다면 자신들만큼은 꼭 들어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할례를 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었고, 매주 안식일을 지키며 율법조항을 하나하나 철투철미하게 잘 지키고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자신의 전통(장로들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자들이라고 하셨다(마15:3). 그들은 정말 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장로들의 유전을 그대로 지키고 있었을 뿐이다.


3. 구원의 확신에 관한 성경구절의 실체는 무엇일까?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자신이 구원받게 되는 것이 성경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지만, 실제는 자신이 속해있는 교회나 교단의 교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은 엡2:8~9에 의거하여 자신은 이미 구원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엡2:8-9)" 이 말씀에 따라서, 자신은 이미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주장이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건 아니다. 헬라어 원문에 의하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고(현재완료형)으로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헬라어를 직접 번역해보자. "왜냐하면 너희는 그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말씀은 단지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인지에 대한 정의요 서술인 것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와 더불어 우리의 믿음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구원을 얻게 된다는 진술인 것이지 결코 믿음으로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뜻이 아니다. 또한 어떤 분들은 예수께서도 이미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무슨 소니냐고 주장할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본문은 요5:24의 말씀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예수님의 말씀에 보니, 믿는 자는 영생을 받었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아니다. 헬라어 원문에 의하면, "내 말을 (지금도) 계속해서 듣고 있고 또 나를 (이미) 보냈던 분을 계속해서 믿고 있는 자는 영생을 가진다..." 그렇다. 이 본문도 영생을 이미 얻었다는 말이 아니라 영생을 얻는다(현재, 직설법, 능동태)는 진술인 것이다. 그렇다. 구원은 완료형이 아니라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육체를 벗는 그날에 완성되는 것이지 지금 믿는다고 완성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또한 예수님은 듣는(순종하는) 것과 믿는 것도 한 번만 해서 될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즉 예수님의 말씀에 죽을 때까지 순종하며, 예수님을 죽는 그날까지 믿어야 영생이 주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받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라. 구원의 확신에 대한 잘못 번역된 성경구절을 가지고서, 자신의 영혼을 함부로 맡기지 말라.


4.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란 어떤 자녀를 지칭하는가?

  그렇다면,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온전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서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은 지금 죽는다해도 구원얻기에 합당한 자를 일컫는 말이다. 다시 말해 이 질문은 지금도 죽는다해도 구원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우선 알 것은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란 대체 어떤 것인지부터 살펴보자. 결론적으로 그것은 이렇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께 구원얻을 자로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그가 십계명과 십계명을 통해 주신 정신까지 그대로 지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말씀(머5~7장)에 고스란히 나온다. 그리고 사도바울에 의하면, "율법의 요구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롬8:4)"을 가리킨다. 그렇다. 내가 지금 구원받을 자로 잘 준비되어 가고 있다면 지금 나는 십계명을 온전히 지키고 있을 것이고, 또한 그 정신까지도 온전히 지키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지 수십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십계명을 도무지 준수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주님을 진짜로 믿는 것이 아님에 틀림없다. 단지 자신이 주님을 믿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주님을 온전히 믿는 자는 2가지 증상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온전한 자녀의 2가지 덕목인 것이다.


5.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한 2가지 방법


1)소극적인 방법

  주님의 온전한 자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로, 반드시 죄를 이겨야 한다(요일3:1~12). 이것은 주님의 온전한 자녀가 되기 위한 소극적인 측면을 가리킨다. 그렇다. 내가 주님의 온전한 자녀로 살아가고 있거나 살아가려면 우리는 죄의 문제를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죄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 자는 결국에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죄를 가지고 천국에 들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것은 대체로 3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지은 죄를 회개하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에 지은 죄를 해결받는 방법이다. 둘째는 죄를 멀리하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 죄와 싸움에서 승리하는 방법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구약의 요셉처럼 죄를 짓게 하는 장소를 떠나는 것이며(창39:12) 또 하나는 죄를 짓는 자들로부터 떠나는 것이다(시1:1).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셋째는 죄를 미워하는 방법이 있다. 이것은 앞으로도 계속 힘써야 할 죄에 대한 해결방법으로서, 미래의 죄에 대해서까지 두루 적용될 수 있는 방법이다(이것은 지난주에 했던 설교를 참고하라)


2)적극적인 방법

  그리고 둘째로, 주님의 온전한 자가 되려면, 성령을 좇아 행하는 자 곧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롬8:1~17, 갈5:16~18). 이것은 적극적인 방법에 해당한다. 사실 인간이 해결해야 할 죄의 문제는 2가지다. 하나는 지은 죄들(sins) 곧 자범죄를 처리해야 하며, 또 하나는 원죄(Sin) 곧 죄된 본성을 처리해야 한다. 지은 죄들은 회개하여 예수님의 피로 씻어내면 되겠지만, 원죄 곧 죄된 본성은 한 번으로 끝낼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죽는 그날까지 우리와 함께 있어 우리를 괴롭히고 넘어뜨리려 할 것이다. 왜냐하면 죄된 본성이 우리의 육체가 깨지는 그날까지 바로 우리의 육체 속에 들어있어 우리를 유혹할 것이기 때문이다(롬7:17).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7:18-20)" 롬7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죄(Sin)'란 전부 단수명사로서 '죄된 본성'을 일컫는다. 사도바울은 말한다. 죄된 본성이 주관하는 그 영역을 일컬어 '육신'이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죄된 본성을 이기지 못하고 육신을 따라가는 자는 결국에 지옥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사도바울은 롬8장에서 죄된 육신을 따라가는 자가 얻게 될 결과들에 대해 이렇게 5가지로 말했다. 첫째,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할 것이다(롬8:5). 둘째, 육신의 생각(생각을 육신에 둔 것)은 사망이다(롬8:6). 셋째, 육신의 생각을 하나나님과 원수맺는 것이다(롬8:7). 넷째,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롬8:8)" 다섯째, 율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는다(롬8:13). 여기서 죽는 것은 육체도 죽게 되고 영혼도 죽게 되는 것을 말한다. 육신이 질병에 걸려서 죽든, 재앙으로 죽게 되든 죽게 되는 것이며, 육체가 죽은 다음에는 그의 영혼도 죽어서 하나님과 분리된 채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뜻이다.


6. 성령을 따라 행하기를 힘써야 하는 이유

  그렇다면, 타락한 옛본성을 가진 죄된 육신을 따라가지 않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오직 한 가지 방법뿐이다. 그것은 우리가 회개하고 믿어서 거듭날 때에 우리 안으로 들어오신 성령을 좇아 사는 것이며(갈5:16~18),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으며 사는 것이다(롬8:14). 사도바울은 말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계속해서는 받는 그 사람이 곧 하나님의 아들(롬8:14)"이라고 말이다. 이 말씀을 거꾸로 뒤집어보라.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거듭남을 가졌다면 그때부터는 자기 안에 성전삼고 거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좇아 행하기를 힘써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거듭났어도 육체의 소욕은 그가 죽는 그날까지 그를 이끌어가려고 할 것이고 자기자신의 자리를 내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를 천국에 못들어가게 방해하는 요소에는 2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밖에 있는 요소로서 '사탄과 귀신들'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 안에 들어있는 요소로서 '죄된 본성'이다. 그런데 우리가 거듭날 때에 성령께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신다는 잊지말라. 하지만 이때부터 우리 마음은 전쟁터가 되고만다. 이전에 옛주인이었던 죄된 본성이 자신의 자리를 내주지 않고 계속해서 지키려 할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새로 들어오신 성령께서도 우리를 회개시키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요구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예수를 믿는다해도 내 안에 육신이 계속 남아있는 사실을 듣고 너무 걱정하지는 말라. 이전부터 우리 안에서 우리의 주인노릇을 했던 죄된 본성은 피조물이지만,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그렇다. 우리 안에 들어오신 새 주인되신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옛주인이었던 죄된 본성보다 더 강하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려고 하기만 하면 우리도 죄된 본성을 이길 수가 있다. 우리의 자유의지를 성령께 내드리기를 즐거워하라.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도 계속해서 죄된 본성을 따라가기를 원한다면, 그는 결국 버림받게 될 것임도 잊지 말라. 왜냐하면 죄를 짓는 순간 성령께서 죄를 책망하실텐데, 성령의 책망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죄된 본성을 따라 살면, 결국 성령훼방죄에 걸려 영원히 죄사함을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7. 나오며

  그러므로 지금부터라도 매순간 죄된 본성은 거부하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기를 작정하고 또 작정하라. 그리고 자신의 몸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내어드리기를 힘쓰라. 그러면 우리도 언젠가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받을 날이 오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니까 가끔씩 넘어질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주님께 엎드려 회개한 후에 다시 시작하라. 그러면 반드시 우리도 언젠가는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의 반열에 들게 될 것이고 그러면 어느날 우리의 눈을 새롭게 뜨는 순간, 우리의 영혼이 천국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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