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82) 왜 사도 바울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세례를 주지 않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는가?(행19:4~5)_2022-12-15(목)

https://youtu.be/9gaQT-a2zD8 [혹은 https://tv.naver.com/v/31818228 ]

1. 사도 바울이 에베소의 성도들에게 세례를 줄 때 누구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는가?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성도들이 12명이나 있었다. 이들은 아볼로에 의해 전도된 자들이며 이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은 상태에 있었다. 그러자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지만 그가 자신의 뒤에 오시는 이를 믿기로 했으니 그분이 바로 주 예수님이신 것을 알려 준 뒤에,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다(행19:5). 다시 말해, 사도 바울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성도들에게 세례를 베푼 것이다. 

 

2. 사도 바울은 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지 않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 것인가?

  오늘날 교회에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 오늘날에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곳은 거의 없다. 왜 오늘날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있는데, 사도 바울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 것인가? 그런데 믿는 이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명령하신 분은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마28:18~20).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렇다.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세례를 베풀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때에는 오늘날처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셨다. 의미야 같은 것이겠지만 글자로 보면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왜 사도 바울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을 따라서 세례를 베풀지 않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에는 2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는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하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님의 명령을 거역한 것이다. 둘째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이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푼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처음 초기 교회에서는 과연 누구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는가?

  사도행전에는 초기 교회가 어떻게 세례를 베풀었는지가 나온다. 그런데 교회적으로 세례를 베푼 경우는 총 4번 나오는데, 두 번은 베드로에 의해서 세례가 베풀어진 것이요, 한 번은 빌립 집사가 세례를 베푼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사도 바울이 세례를 베푼 것이다. 첫 번째는 사도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 3천 명에게 세례를 베푼 것이다. 아마도 베드로는 이때 11사도들과 함께 세례를 주었을 것이다. 이때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였다(행2:38). 그리고 두 번째는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 성도들에게 세례를 베푼 것인데, 이때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다(행8:16). 그리고 세 번째는 다시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에 세례를 베푼 것인데, 이때도 역시 처음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였다(행10:48).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세례를 준 것인데, 이때는 빌립 집사와 마찬가지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 결국 초기 교회에서는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다고 할 수 있다. 

 

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오늘날 교회에서는 대부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분명히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셨다(마28:19). 그런데 A.D.100년경 거의 모든 교회에서 통용되고 있던 교회의 가르침을 모아 놓은 책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디다케'라는 책이다. 이 책은 '12사도들의 가르침'이라고 불려지는데, 여기에 보면 세례를 어떻게 주는지가 나와 있다. 여기에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살아 있는 물로 침례를 주어야 하지만, 만일 그러한 물이 없다면 다른 물로 침례를 주되, 찬물로 세례를 줄 수 있고, 그것이 없다면 더운물로 침례를 줄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찬물이나 더운물도 풍성하지 않다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머리에 세 번 물을 부으라고 하였다. 그렇다. A.D.100년경에 교회에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둘 다 의미는 같은 것이지만, 뉘앙스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한 것이 삼위일체적인 신관을 반영하는 표현이라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한 것은 한 분 하나님의 신관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요10:30에서도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말씀하셨으며,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도 말씀하셨고, 내가 하는 말은 아버지께서 내 속에서 그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고 말씀하심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라는 것을 늘 강조하셨기 때문이다. 고로 성부와 성자라는 용어를 잘못 사용하게 되면, 우리도 역시 '성모'라는 표현을 동일한 위치에 가져다 놓을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니 천주교에서는 A.D.451년 칼케돈 종교회의 이후 성모 마리아를 성부와 성자의 신격의 동일한 위치에 놓고 있다. 왜냐하면 그녀를 '데오토코스' 즉 하나님을 낳으신,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칭하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1964년 제2바티칸 회의에서는 아예 대놓고 '마리아가 하나님을 출산하였다'고 공식으로 규정한 바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마리아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서 예수님을 낳은 것이다. 고로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인 것이지(행1:14, 요2:1,3, 막3:31), 결코 하나님의 어머니가 아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하나님을 낳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리아의 태를 빌려 쓴 것이다. 

 

5. 초기 교회는 세례를 줄 때에 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을 대신하여 '예수'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인가?

  우리는 베드로 사도나 바울 사도가 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대신에 '예수'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첫째, 아들의 이름인 '예수' 속에 아버지의 이름인 '여호와'라는 이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예호수아, 예수아,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뜻이다. 고로 굳이 '여호와'라는 이름을 쓰지 않아도 예수라는 이름 안에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들어 있기 때문에, 아버지의 이름 대신에 '예수'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자신은 아버지의 이름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왔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요5:43). 그리고 '아버지의 이름'인 여호와가 누군지를 분명하게 제자들에게 나타내셨다고 말씀하셨다(요17:6). 그리고 둘째, 성령의 이름은 아예 처음부터 없었는데, 성령님께서는 아들의 이름으로 보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친히 성령님을 가리켜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요14:26). 그렇다. 성령님은 아들이신 예수의 이름으로 오신 하나님이다. 고로 '예수'라는 이름 안에는 '여호와'라는 이름도 들어 있는 것이고, 성령님을 대신할 수 있는 이름도 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고로 초기 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던 것이다. 특히 '예수'라는 이름은 '아버지와 아들와 성령의 이름' 곧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을 지칭하는 것이었기에, 초기 교회에서는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 수가 있었던 것이다. 

 

 

2022년 12월 15일(목)

정병진목사


  성령님의 이름이 과연 있을까? 혹 성령님의 이름이 있다면 그 이름은 무엇일까? 어떤 이단에서는 성령님의 이름이 있다고 주장하며, 그 이름을 모르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까지 말한다. 참 말일까? 또한 어떤 분은 성령님의 이름이 "보혜사(상담자, 모사, 위로자, 가르치는 이, 도와주시는 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보혜사는 이름이 아니다(요14:26, 15:26). 성령님을 대신하는 대명사로서, 성령의 역할과 그 직임을 일컫는 말이다. 오늘 이 시간에는 성령님이 이름이 과연 있는지, 굳이 있다면 그 이름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면서, 한 분 하나님 신앙이 얼마나 중요하며, 예수 이외에 구원자가 없음을 다시금 되새겨보도록 하자.

  한국교회의 이단에 속하는 단체들 중에 '하나님의 교회'라는 곳이 있다. 이곳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이며, 아들의 이름은 '예수님'인데 왜 성령님의 이름이 없겠느냐면서, 지금은 성령의 시대이므로 반드시 성령님의 이름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만약 누구든지 그 이름을 모른다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느냐면서 책망하기까지 한다. 과연 이들의 주장은 참 말인 것인까? 그렇다면 이들은 과연 무엇을 근거로 이러한 거짓된 주장을 하는 것일까?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우선 마28:19에 성령님의 이름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28:19)"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아, 아버지의 이름과 아들의 이름이라는 문장 속에, 성령의 이름이라는 글자가 나오니까 성령의 이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만약 아버지의 이름이 따로 있고 아들의 이름도 따로 있으며, 성령의 이름이 따로 있다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이라고 말해서는 아니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들"이라고 말해야 옳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적고 있지 않다. 성경원문에 보면, 이름이라는 단어는 단수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아버지의 이름이 곧 아들의 이름이고 아들의 이름이 곧 성령의 이름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한국어 특성상 복수접미사를 잘 쓰지 않는다는 헛점을 이용하여 성령의 이름이 따로 있는 것처럼 이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아니다. 성령의 이름은 결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성령의 이름이 곧 아들의 이름이요 아버지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는 이제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자.

  또한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예수께서도 성령의 이름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으시다고 주장하면서, 다음의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인용한다. 먼저 계2:17을 인용한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2:17)." 여기에 보면 주님께서 이기는 자에게 흰 돌을 주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하였는데, 그 이름을 받는 자밖에는 알지 못한다고 되어 있다. 문제는 이 새 이름이 성령님의 이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새 이름 곧 성령님의 이름이 '안상홍'이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그 이름이 무엇인지는 받는 자만 안다고 가르친다. 그러면서 그 이름을 알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와서 진리를 듣고 배우라고 한다. 그래서 성령의 이름을 알고 그 이름을 믿어서 성령의 시대에 구원을 받으라고 한다. 그런데 이 문장은 그러한 뜻이 아니다. 이기는 자에게 주님께서 어떤 상을 베풀어주시는데, 구약에 감추어있던 만나처럼 흰 돌로 상징되는 어떤 상을 주시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상에는 그 흰 돌을 받는 자의 새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서, 그 흰 돌을 받는 사람 외에는 다른 사람이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오는 '새 이름'이 성령의 이름이라고 주장할만한 근거가 없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계3:12을 인용하여, 예수님의 새 이름이 곧 성령의 이름인데, 그 이름이 안상홍이라고 주장한다. 우선 본문을 보자.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3:12)"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어서 결코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주께서 비유적으로 하신 말씀인데, 이기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주님의 새 이름을 그 사람 위에 기록하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주님의 새 이름이 곧 성령님의 이름이요, 그 이름이 안상홍이라고 주장한다. 아니다. 본문은 그렇게 해석될 수가 없다.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하겠다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소유가 된 후에는 절대 다른 소유가 되지 않게 하겠다는 뜻이며,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기록하겠다는 것은 그 사람이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이 되게 하겠다는 뜻이며, 마지막으로 그에게 주님의 새 이름을 기록하겠다는 것은 그 사람이 주님의 소유가 되게 하겠다는 뜻이다. 이제 문제는 그들이 주장하는 "나의 새 이름"이라는 이름이 성령님의 이름이냐 하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이렇다. 구약시대에 구원자의 이름은 여호와였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구원자의 이름은 예수였다. 그러므로 이제는 성령의 시대가 되었으니 성령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그럴싸 한 말인가?

  이제 우리가 이 본문에 나오는 "나의 새 이름"을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누군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 기독교의 교리로 사용되고 있는 삼위일체론이나 이단시되고 있는 양태론의 이론을 가지고서는 이 문장의 뜻을 제대로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삼위로 보는 관점에 의하면, 성령님도 그 이름이 있어야 마땅하지 않겠느냐는 결론이 도출되기 때문이요, 앙태론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이제 시대는 성령의 시대가 되었으니, 성령님의 이름을 알아서 그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으라고 하면 홀딱 넘어가기 쉽상이기 때문이다. 아니다. 삼위일체론도 틀렸고 양태론도 잘못된 이론이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옷을 바꿔입고 등장한 것도 아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그분의 이름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교회같은 이단 사람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은 한 분인가 세 분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기존에 저를 통해 선포된 말씀들을 참고하기를 바란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세 분이 아니라 한 분이시다. 우리의 하나님은 삼신이 아니라 유일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삼위일체론자들은 하나님께서는 만세전부터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각각 따로 존재하셨다고 주장한다. 그러다가 구약시대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로 활동을 하셨고, 신약시대에는아들이신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내려와 주로 활동하셨으며,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는 성령하나님께서 영으로 오셔서 주로 활동하시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니다. 이 교리는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하나님은 한 분이지 세 분으로 존재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이나 사도행전이나 요한계시록 같은 천상의 모습이 기록된 곳을 다 찾아보라. 하나님이 계시는 셋째하늘에는 단 한 개의 보좌에 앉아계시는 단 한 분의 하나님만 존재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보좌가 2개 내지는 3개가 아니다. 하늘에 올라가 보면, 셋째하늘의 한 중앙에 새 예루살렘성이 있고 그 성 한 가운데에 높이 들린 단 한 개의 보좌만 있다(사6:1, 단7:9, 계4:2~3). . 거기에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좌정해 계신다. 삼위일체론자들은 하나님의 보좌가 한 중앙에 놓여 있고 그 우편에 아들 예수님의 보좌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니다. 성경 어디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또 다른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다. 보좌는 단 한 개 뿐인 것이다. 그리고 삼위일체론자들은 만세전부터 성부와 성자와 성령하나님이 각각 때로 계셔서 그분들이 회의를 통해 사람을 지은 것이라고 다음의 말씀을 근거로 주장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6-27)" 이 본문에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들 만들자"라고 했으니, "이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회의하신 것이 맞다." 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틀렸다. 왜냐하면 이사야서를 보면 세 분 하나님이 회의해서 천지창조를 하신 것이 아니라, 혼자 창조하셨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사44:24)" 그렇다.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홀로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다. 하지만 천지창조 전후 어느 때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인간을 만들던 여섯째날에 하나님께서 천사들과 "우리가 우리의 형상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상의하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창18장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형상을 하고 두 명의 천사와 나타나셨음을 통해서도 증명이 된다. 그리고 유대랍비들의 주석을 통해서도 확인이 되는데, 그들은 창1:26~27에 나오는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과 천사들"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하지만 삼신론적인 삼위일체론자들에 의해 이 문구가 지금까지 잘못 해석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리해 보자.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홀로 온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 그때 여호와께서 예수 하나님이나 성령 하나님과 상의하시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이 결코 아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홀로 창조사역을 감당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때 그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전능자라고 계시하셨다(출6:2). 즉 전능자가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 전능자가 창조주가 되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처음부터 정확히 가르쳐주지 않으셨다. 그러다가 모세시대에 들어오면서, 모세가 하나님더러 자기를 보낸 분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말할 것인가 하는 질문 가운데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이 바로 '여호와'이시며, 그 이름의 뜻은 '나는 ~라고 하는 바로 그분(I am that I am)'이라고 가르쳐주셨다(출3:14~15). 하지만 아담의 때부터 이미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로 불려지고 있었다(창4:25~26). 노아도 그렇게 불렀고(창9:26),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도 그렇게 불렀다(창12:8, 26:25, 28:21). 하지만 모세시대에 비로서 하나님의 이름이 확실히 여호와이며, 그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사실 '여호와'라는 이름의 뜻은 "나는 네가 바라고 요구하는 모든 것이 되신다" 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나는 ~라고 하는"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갈 수 있다. 우리가 병들었을 때에는 "나는 너를 치료하는 여호와"이며, 우리가 외롭고 힘들어할 때에는 "나는 너와 함께하는 여호와 곧 임마누엘"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라는 말의 원뜻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출해 내심으로서 여호와가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하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셨다. 그 전에는 그냥 전능하신 하나님(엘샤다이)으로 자신을 계시하셨지만, 모세시대에 이르러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해내시면서 "나는 이 사건을 통해 애굽사람에게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내가 여호와라는 사실을 똑똑히 알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출6:6~7, 7:4~5). 이 말은 여호와는 곧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민10:9, 신20:4, 33:29). 이것을 한 마디로 줄이면 "나는 예수다" 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예수라는 뜻이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 혹은 "여호와가 구원자이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마1:21)" 그랬다. 아담의 시대때부터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라는 말로 가르쳐주신, 한 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압제로부터 구출해 내시면서, 비로서 자신의 '여호와'라는 이름이 구원자이신 것을 밝히 드러내신 것이다.

  그런데 구약시대 때만해도 하나님께서는  메시야를 보내서 구원사역을 하시겠다고 계속해서 누누이 약속을 하셨다. 그리하여 훗날 하나님께서 정상 메시야를 보내셨는데, 알고 보니 메시야는 당신자신이었다. 즉 만세전부터 한 분이신 그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메시야로 탄생하신 것이다(사9:6).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제 사람의 육신을 입고 태어나게될 아들의 이름을 어떤 식으로든지 가르쳐주셔야 했다. 그때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이미 이스라엘백성들의 출애굽시킨 여호와가 구원자이심을 포함하는 이름을 새롭게 알려주셨으니 그 이름이 바로 "예수"라는 이름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이름은 여호와의 이름을 포함하고 있는 이름이요, 그 이름 자체가 구원자이심을 표현하는 이름이자, 완전한 하나님의 이름인 것이다. 다시 말해 만세전부터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실 때에 당신 자신의 이름을 "예수"라고 가르쳐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이름이 바로 하나님의 완전한 이름이요, 한 분이신 하나님의 새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마28:19에 나오는 "아버지와 아들와 성령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가 있다. 곧 그 이름은 바로 '예수라'는 이름인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과 아들의 이름과 성령의 이름이 각각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을 가리키는 것이니, 여호와라는 이름을 포함하고 있는 이름은 바로 "예수"라는 이름인 것이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면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줄 때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지 않았다. 전부 다 예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맨 처음 탄생한 예루살렘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행2:38)"으로 세례를 주었고, 사마리아교회에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행8:16)"으로 세례를 주었다. 그리고 최초의 이방인이었던 고넬료가정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행10:48)"으로 세례를 베풀었으며,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행19:5)"으로 세례를 베풀었다. 다시 말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는데, 전부다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이름이 예수인 것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예수의 이름은 전능하신 창조주로서 한 분 하나님의 새 이름이자, 구약에 계시된 여호와의 이름을 포함하는 새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당신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 "나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요5:43)"고 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오직 아버지의 이름만을 드러내신 것이다. 곧 여호와가 구원자이신 것을 고스란히 드러내신 것이다(요17:6,26).

  그러므로 사실 성령님의 이름은 없다. 한 분이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모세로 말미암아 자신의 이름을 계시하실 때에는 자신의 이름으로 "여호와"라고 말씀하셨지만,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이 곧 인류를 구원하신 일인 것을 이스라엘의 출애굽사건을 통해서 드러내셨다. 그러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들의 이름으로 오실 때에는 아예 자신의 이름 속에 여호와가 구원자이심을 그대로 포함시며 "예수"라고 이름을 지은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을 포함하는 이름이요, 아들 자신의 이름인 것이다.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의 새 이름인 것이다. 다시 말해 한 분 하나님의 완전한 이름이 곧 예수인 것이다. 그렇지만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당신의 영인 성령을 보내어 여러가지 사역을 하셨다. 특별히 구약시대에 하나님이 이 세상에 보낸 당신의 영은 '여호와의 영'이라고 불리웠으며,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는 '거룩한 영(성령)'이라고 불리워졌다. 그리고 한 분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아들로 오셔서 구속사역을 완성한 다음에는 당신의 영을 보내주셨으니 그 영이 바로 성령님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한 분이신 구약의 여호와의 영이요, 신약의 예수님의 영 자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님에게 더이상 새 이름은 필요없다.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로서 공개되었고,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의 이름이 예수인 것으로 공개되었으니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굳기 캐묻는다면, 우리는 마28:19에 따라 그 이름은 바로 "예수"라고 하면 될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교회가 주장했던 의문점을 속시원하게 풀어보자. 계3:12에 나오는 "나의 새 이름"은 결국 누구의 이름을 가리키는 것인가? 그것은 곧 예수라는 이름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왜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하고 계신 분은 만세전부터 홀로 한 분이신 그분이시다. 그분이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 그러다가 예수께서 세례요한의 때에 사람으로 오셨다. 그때 한 분 하나님께서 다른 새 이름을 하나 부여받았으니, 그 이름은 바로 '예수'라는 새 이름이다. 그러니까 요한계시록 14장에 보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마에 인쳐진 이름이 곧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이자 어린양의 이름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의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계14:1)"

  그렇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여호와로 자신을 계시하셨고, 신약시대에 육신을 입고 메시야로 오실 때에는 자신의 이름을 "예수'라고 칭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이름은 한 분 하나님의 새 이름이자 한 분 하나님의 완전한 이름임을 알 수 있다. 그 이름으로 모든 사람이 세례를 받아 옛사람을 장사지내고 새 사람으로 살아나게 된며, 그 이름으로 귀신이 쫓겨난다. 또한 그분의 이름으로 병든 자를 치료할 수 있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 기도가 다 응답된다. 왜냐하면 그 이름이 한 분 하나님의 완전한 이름이요, 구약에 비하면 새 이름요,  최종적인 이름이기 때문이다. 예수 이름 이외에 더 이상 하나님의 이름은 없다. 성령님의 이름을 굳이 말하라고 한다면, 그 이름은 '예수'라고 해야 옳다. 그런데 무슨 성령님의 이름을 안상홍이라고 주장한다는 말인가? 어떻게 한낱 피조물이 하나님의 이름을 대신하려 하는데고 가만히 있는가? 어찌 구약성경에 단 한 번도 예언된 적이 없는 사람이 어찌 참람하게 자신을 성령님이라고 주장하는가? 그는 과연 무소부재하였던가? 전지전능하였던가? 그는 스스로 계신 존재였던가? 전부 아니었다. 그는 죽어서 그 시체는 이미 흙이 되어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말씀이 아닌 흙이 육신이 되어 한국사람의 부모 밑에서 태어나되, 죄된 본성을 고스란히 가지고 태어난 자가 어찌 자신을 성령님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이 바로 신성모독이 아니고 또 무엇이라는 말인가! 이런 자의 이름은 백 번 천 번을 불러도 절대 구원받을 수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구원자의 이름은 오직 예수님 뿐이기 때문이다(행4:12, 요14:6).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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