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80) 에베소 성도들은 성령을 받지 못한 것인가 성령의 세례(은사)를 받지 못한 것인가?(행19:1~7)_2022-12-13(화)

https://youtu.be/U1aIVXorgLw [혹은 https://tv.naver.com/v/31818092 ]

 

1. 에베소의 성도들은 무엇을 못 받은 것인가?

  바울은 3차 전도여행 중에 갈라디아와 브루기아를 지나서 드디어 에베소에 도착한다. 그런데 에베소에는 이미 '아볼로'라는 사역자가 다녀간 뒤였다. 그런데 아볼로는 사람들에게 요한의 세례까지 전파했고 요한이 외쳤던 그리스도가 곧 예수님이라는 것을 증언한 뒤 고린도에 가고 없을 때였다(행18:25,28). 그 결과 에베소에는 아볼로로 인하여 12명쯤 되는 성도가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에 바울이 찾아간 것이다. 그런데 바울의 눈에 보기에 그들에게는 뭔가 부족한 듯이 보였다. 그러자 바울은 그들에게 물었다. "여러분들은 믿을 때에(믿은 후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그러자 그들이 대답했다. "우리는 성령이 계신지 아니 계신지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행19:2). 그렇다면 에베소의 성도들은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말인가?

  그러자 바울은 그들에게 그들이 어떤 세례를 받았는지를 물어본다. 그러자 그들은 "우리는 요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바울은 그들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자 주 예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준다. 그리고 그들에게 안수할 때에 성령이 그들 위에 내려오신다. 그러자 그들이 방언들을 발언하게 되었고 예언을 하게 되었다. 한 마디로 바울이 도착하기 전에 12명의 에베소의 성도들은 요한의 세례까지 받은 상태에 있었으며,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는 받지 못한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2.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할 때 그들은 성령을 받은 것인가 성령세례(성령의 은사)를 받은 것인가?

  바울이 12명의 에베소의 성도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그들에게 안수했을 때에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가? 성경은 분명하게 말한다. "성령이 그들 위에(upon) 오셨다"(행19:6). 그리고 그들이 방언들을 발언하고 있었고 그리고 예언도 하고 있었다고 말이다. 그렇다. 바울의 안수는 성령의 은사의 전이가 일어나게 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에베소 성도들이 그날 안수를 받음으로 취하게 되었던 것은 성령 그 자체가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 곧 은사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들 위에 성령이 내려오셨다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영안을 열어서 보면, 확실히 은사들은 사람의 몸에 달라붙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성령의 은사들은 믿는 자들의 머리에 붙어 있기도 하고 가슴에 붙어 있기도 한다. 그리고 손과 발에 붙어 있기도 한다. 이는 성령의 은사는 사람의 몸 위에 내려와서 달라붙기 때문이다. 

 

3. 바울이 도착하기 전에 에베소 성도들은 과연 예수님을 믿고 있었는가?

  그렇다면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하기 전에 과연 에베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 개역성경만을 가지고 보면, 그들은 요한의 세례까지 받았고 더불어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있지 않아서 그들에게 세례 요한이 소개했던 분은 예수님이니 그 예수님을 믿으라고 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헬라어성경 원문을 보면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았으며, 요한이 소개했던 예수님 곧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고 있었는데, 다만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지 않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헬라어 원문으로 잠시 말씀을 살펴보자. 

행19:3~5 또 그가 말하였다. “그런즉 여러분들은 어떤 것 안으로 세례를 받았습니까?” 그런데 그들이 말하였다. “요한의 세례 안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4 그런데 바울이 말했다.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주었습니다(베풀었습니다). 그가 그 백성에게 말하면서, 그들이 자기 뒤에 오고 있는 분 안으로 믿도록 하기 위하여. 이것은 예수 안으로 [받는 세례]입니다.” 5 그런데 그들이 들은 후에, 주 예수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렇다. 그들은 요한의 세례 곧 회개의 세례를 받았고 주 예수님도 믿고 있었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바울은 그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시 세례를 베푼 것일까? 그것은 요한의 세례는 자신의 죄를 씻는 세례라고 한다면, 주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는 자신의 옛사람을 장사지내고 예수님을 믿어서 새사람으로 다시 살아난다는 의미의 세례였기 때문이다. 

 

4. 왜 에베소 성도들은 바울이 오기 전에 성령의 세례(성령의 은사)를 받지 못했던 것일까?

  에베소 성도들은 회개도 했고 예수님을 믿고 있었다. 그런데 바울이 당도하기 전까지 그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했으며, 더불어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성령의 선물 곧 성령의 은사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으며 동시에 그것을 받지도 못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왜냐하면 믿는 자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는 성령께서 선물로서 은사를 주신다는 것을 들어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가 복음을 들어도 어떠한 복음을 듣느냐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기왕 우리가 복음을 들을 때에는 제대로 된 복음을 들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5. 예수님을 믿는 것과 성령을 받는 것 그리고 성령세례(성령의 은사)를 받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보통 사람들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고 받아들일 때에 성령을 받는다. 왜냐하면 성령이 아니라면 아무도 예수님을 주시라고 고백할 수 없기 때문이다(고전12:3). 그러므로 자신이 진정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였다면, 그때에 성령께서 그 사람의 마음 속에 들어가신다. 그러면 그는 그때 거듭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 하늘의 생명책에도 그의 이름이 기록된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주 예수님을 고백하는 순간에 일어나기도 하고, 조금 있다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때에도 일어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성령이 위에 부어져 증인이 되도록 하나님께서는 언제 믿는 자들에게 은사를 주시는가? 그것은 믿을 때에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고 나중에 일어날 수도 있다. 사도행전 2장의 예루살렘 성도들과 사도행전 10장의 고넬료 가정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동시에 일어났다. 하지만 사도행전 8장의 사마리아 성도들에게는 이것들이 시간적인 차이를 두고 일어났다. 그런데 이러한 사례는 에베소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에베소 성도들은 먼저 예수님을 믿었고 자기 안에 성령의 내주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성령의 세례나 성령의 은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그들은 그저 믿음만 갖고 있었을 뿐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 곧 성령의 은사를 받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를 준 뒤, 성령의 은사를 전이 시켜 주는 안수를 통해, 성령의 은사를 받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성령의 은사의 하나인 방언의 은사와 예언의 은사를 받게 되었으며, 그것으로 인하여 담대하게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2022년 12월 13일(화)

정병진목사

성령의 은사는 다양하고 신비롭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영적인 삶의 질을 높여준다. 우리가 성령의 은사를 알고 그것을 받기 위해서는 성령을 알고 사탄마귀와 귀신들을 먼저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속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성령의 은사를 받아서 자신과 교회를 위하여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는가? 거기에도 일정한 법칙과 원칙들이 있다.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시작해보자.

2020-06-26(금) 금요기도회
제목: 성령의 은사(08) 은사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눅11:11~13)_2020-06-26(금)
https://youtu.be/zQ1CvO19g8E [혹은 https://tv.naver.com/v/14502239 ]

 

1. 들어가며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에 예수께서는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래서 보혜사 성령께서 믿는 자들에게 정말로 오셨다. 그런데 그때부터 성령께서 오시는 방식이 2가지가 되었다. 하나는 믿는 자들 속에 내주하시는 방식으로서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이후 추가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위로부터 부어지듯이 오시는 성령으로서, 성령께서 보이지는 않는 형태로 오셨지만 당신이 오셨다는 것을 천사들이 어떤 은사로서 성령이 오셨음을 나타내보이는 것이다. 이다. 앞의 방식을 "성령의 내주"라고 말하고, 뒤의 방식을 "성령세례"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위로부터 부어지시는 방식 곧 성령세례 후에 성도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성령께서 믿는 자들에게 선물을 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성령의 은사(선물)"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이러한 성령의 은사를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성령의 은사는 대체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

 

2. 성령의 은사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가?

  성령의 은사에는 사실 2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일반은사"이며, 또 하나는  "특별은사"다. 일반은사는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이며, 태어날 때부터 갖고 태어나는 자연적인 은사가 여기에 포함된다. 이러한 은사에는 지혜의 은사, 예술(음악, 미술, 체육)의 은사, 가르침의 은사 그리고 사랑의 은사, 인내의 은사, 온유의 은사 등이 있다. 그런데 "특별은사"라는 것이 있다. '특별은사"는 초자연적인 은사로서 신적인 능력이 들어있는 은사들을 가리킨다. 이것은 오직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성령세례를 받은 자들이 받을 수 있는 은사다. 이러한 특별은사를 사도바울은 고전12:8~10에서 9가지를 말했다. 그러한 은사에는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고침(신유), 능력행함, 예언함, 영들분별함, 방언, 방언통역"이 그것이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은사는 이러한 9가지 은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무궁무진한 은사들이 더 있다. 다만 경험하고 못하고 있고 성경에 쓰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를 뿐이다. 그리고 특별은사도 부모가 기도를 많이 하는 부모였다면 후손에게 아주 많은 영향을 끼친다.

 

3. 성령의 은사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은사는 무엇이며, 그것은 왜 중요한가?

  보통 "성령의 은사"라고 말할 때에는 성령의 9가지 특별은사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그러한 은사들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은사는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방언"의 은사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성령세례가 일어났던 현장에서 그것이 은사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많은 성령의 은사들 가운데 방언이 항상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것인가? 그것은 아마도 방언은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이지만, 특히 성령께서 믿는 자들 속에 내주하게 됨으로 인하여 자신의 죽었던 영이 살아났을 때에 나타나는 하나의 표적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 생각해보라. 사람이 어머니 뱃속에 있다가 태어날 때에도 울면서 태어난다. 그때 나는 울음소리는 인간이 내는 최초의 말소리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울음소리라도 시간이 지나게 되면 점차 말소리가 분화가 되어 자음과 모음이 합쳐진 단어와 문장으로 말을 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성령께서 생명을 가지고 우리의 영속으로 들어오시면 우리의 영도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서 영에게 생명이 공급된다. 그러면 자신의 영이 새롭게 태어났다는 것을 알리는 울음소리를 내게 된다. 그 첫번째 영의 울음소리를 일컬어 우리는 "방언"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방언(글로싸)이라는 것은 사람의 영이 말하는 것 곧 영의 언어(고전14:14)라고 사도바울이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방언"은 어떻게 표출되는가? 영의 언어로서 방언은 기도하는 용도로 표출되기도 하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통로 표출되기도 하며, 마지막으로 영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용도로도 쓰일 때가 있다. 그러나 아무도 사람의 방언의 내용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고전14:2). 왜냐하면 방언은 사람과 하나님께서 나누는 영적인 대화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천사들도 그 음성을마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사실 천사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 땅에 파송을 받는 존재인데, 이들은 때로는 아브라함이나 삼손, 모세 그리고 신약의 마리아를 찾아가 대화를 나눌 때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떻게 인간어의 언어를 알아듣고 있는 것인가? 그들도 이 땅에 파송되기 전에 이 세상에서 통용되고 있는 언어공부를 하고 내려오는 것인가? 참으로 모를 일이다. 다만 아는 것은 천사들이 파송받아 올라와서 인간하고 대화할 때, 그들은 우리가 지상에서 사용하는 어떤 언어이든지 대화가 가능하다. 그래서 그들을 우리 인간의 말을 잘 알아듣고 또 우리 인간이 쓰고 있는 말로 말한다는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동남아시아에서 살다가 우리나라 농촌 총각에게 시집온 동남아시아 다국민들 중에서 여자가 귀신들려서 우리나라에 온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우리나라 말로 그 귀신에게 말할 때에 그 귀신이 알아듣고 떠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방언말함을 금해서도 아니되며(고전14:39). 방언은 특히 자기자신을 건축할 수 있는 장점을 지녔기 때문이다(고전14:4). 

 

4. 성령의 [특별]은사는 언제 받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성도들은 언제 은사가 주어지는가? 성도들에게 은사가 주어지는 것은 보통 2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태어날 때 주어지고 또 하나는 기도할 때에 주어진다.

  첫째로, 성령의 은사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경우를 보자. 이때는 성도의 부모나 그 윗대 조상이 가지고 있던 은사들이 내려오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일반적인 은사는 유전혈통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것들이기에 예수믿지 않는 자들에게 일반은사들이 내려온다. 한 가문이 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집안이었다면 은사가 후손들에게 주어짐과 동시에 조상들 속에 있던 귀신들도 자기들의 조상으로부터 빠져나와서 자기의 후손들에게 들어간다. 그러므로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윗대로 3~4대만 올라가면 다 불신자였으니, 귀신들이나 뱀들이 조상들의 몸 속에 있었다가 자기의 후손들에게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귀신들과 뱀들은 지금도 우리 시대의 자녀와 자손에게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들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자라 할지라도 영적인 닫혀 있어서 영안으로 영물을 보지도 못하며, 물질과 축복들이 닫혀있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귀신들이 막아서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받은 은사가 있더라고 귀신들이 하나님의 은사 위에 달라붙어 있어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놀라운 은사가 주어져 있는 것조차도 모르기도 한다. 이것의 예는 디모데의 경우다. 디모데에 있는 믿음은 사실 그의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던 것이 디모데에게 전달된 것이다. 

  둘째, 성령의 은사가 출생이후 사모하고 기도할 때에 주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후천적으로 주어지는 은사들이다. 이런 은사에는 기도할 때에 일반은사도 있지만 특별은사도 주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 곧 성령의 은사들을 주신다고 약속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눅11:13). 그런데 기도할 때 성령의 은사를 받은 대표적인 사건이 사도행전 19장에 나온다. 그것은 에베소교회의 성령강림사건이다. 에베소 성도들은 이미 회개의 세례를 받았고 예수님도 알고 믿고 있었다. 다만 성령세례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사도바울의 설교를 통하여 그것을 사모하게 되었고, 바울이 그 성도들에게 안수하자 그들에게도 성령의 은사가 부어졌다. 그랬더니 그들이 방언으로 말하기도 하고 예언도 하는 것이었다. 디모데도 후천적으로 주어진 은사들이 있었다. 

 

5. 성령의 은사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령의 은사를 받으려면 적어도 3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사모하는 일이다. 둘째 간구하고 기도하는 일인데, 은사를 받기까지는 어느정도 기도의 분량을 채워야 한다. 셋째, 은사자나 능력자의 도움을 받는 일이다. 

  첫째, 성령의 은사를 받으려면 성령의 은사를 받기를 사모해야 한다. 사도바울은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12:31)"고 했으며,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고전14:1)"이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신다.

  둘째, 성령의 은사를 받으려면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해야 한다. 성령의 은사를 받으려면 기도의 헌신이 필요하다. 기도 없이 은사를 받을 수는 없다. 예수께서도 기도하고 구할 것을 강조하신 후에,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 곧 성령[의 어떤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거듭 말씀하셨다(눅11: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11:13)"고 말씀하셨다. 고로 성령의 은사들을 받으려면 기도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사도행전에 보니, 기도후 10일만에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도 있었고(행2:1~4), 말씀을 듣는 중에 성령의 은사를 받을 때도 있었다(행10:44~46). 그리고 이미 은사가 충만한 사도들의 안수를 통해서 성도들이 은사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행19:1~6). 특히 예수님의 제자들과 동생들은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열 흘 동안 오로지 기도에 힘썼는데(행1:14) 모두 다 성령세례를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을 말하기를 시작했다(행2:4).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큼 기도해야 하는가? 마가다락방에 모여있던 120명의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었던 자들의 후손이며, 또한 성령세례를 간절히 사모하던 자들이었다(행2:1~4). 그러므로 그들이 열 흘 동안 기도에 전념했어도 성령의 은사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적인 상황은 많이 다르다. 2~4대 위에는 전부 불신자였기 때문이다. 수천년을 우상을 숭배해온 민족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후손들에게는 사실 귀신들과 뱀들이 가득 차 있기도 하고 또한 역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이 있는 한 우리에게 은사가 나타나기는 쉽지 않다. 그것들이 우리가 은사받는 것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유대인들보다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영적인 은사 방면에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루에 3~5시간씩 적어도 2달에서 10달은 기도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성경에서는 기준이 무엇인지 딱히 정해진 것은 없지만, 그만큼 기도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적어도 자신의 조상들의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하고 또한 자신의 자범죄들을 진정 회개하여, 자신을 깨끗한 그릇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급선무다. 그리고 나서 은사를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성령의 은사를 받으려면 이미 성령의 은사를 많이 받은 은사자나 능력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성령의 은사는 흘러내려간다. 다른 말로 말하면, 전이가 일어나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전이가 일어나고, 영적인 스승으로부터 전이가 일어난다. 예를 들어, 엘리사는 자신의 스승은 엘리야로부터 성령의 은사를 전수받았다. 그때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이러한 요청을 했었다. "당신의 영의 두 배가 내게 있기를 원하나이다(왕하2:9)". 결국 엘리사는 엘리야보다 적어도 2배 이상의 은사를 받았고 또한 그것으로 훌륭한 사역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디모데의 믿음은 그의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믿음으로부터 나온 것이다(딤후1:5). 뿐만 아니라 그의 영적인 은사(카리스마)도 윗대로부터 다 물려받은 것이다(딤후1:6). 그리고 에베소교회 성도들의 경우를 보라. 그들은 사도바울로부터 안수를 통해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 그러자 그들에게서 방언이 터졌고 예언도 함께 터져 나왔다(행19:6). 그러므로 자신에게 예언의 은사가 풍성한 부모나 영적 스승이 있다면 더욱 더 복된 일이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6. 결론

  성령의 은사는 다양하며 은사는 놀라운 것들이다. 더욱이 목양을 힘쓰는 목회자들에게 은사는 필수적이다. 이러한 은사는 성도들을 유익하게 하려고 성령께서 각 사람의 분량에 따라 나눠주시는 것들이다. 보통 평신도들은 일반은사로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며, 목회자들은 특별은사로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게 된다. 한편 성령의 은사를 받기는 받았으나 사용하지 않으면 은사가 사라지기도 한다. 고로 성령의 은사를 이미 받은 자는 하나님께 헌신해야 한다. 혹시 방언의 은사 외에 다른 은사를 받지 못했다고 하더라고 꾸준히 기도하라. 방언의 은사라도 자기자신을 위해 충분히 활용하여 기도에 힘쓴다면, 자신을 건축하는 일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개인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지금도 은사를 주시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창고에 은사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실 은사는 우리가 받을 그릇이 준비되지 않아서 문제이고, 사모하지 않거나 구하지 않아서 문제인 것이다. 더욱이 오늘 현대인들은 기도할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것이 더욱 문제가 아닌가 싶다. 어떤 은사라도 실은 기도의 분량이 차야 비로소 나타나기 때문이다.

 

2020년 06월 26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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