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95) 자신을 죽이려한 예루살렘 시민들 앞에서 바울은 어떻게 자신을 변호했는가?(행21:37~22:21)_2023-01-06(금)

https://youtu.be/P21_asblAXw  [혹은 https://tv.naver.com/v/32238524]

 

1.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유대인들에게 붙들렸을 때에 어떻게 했는가?

  바울이 예루살렘에 구제헌금을 전달하고 그리고 그곳에 있는 유대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건 방문을 시도한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당도했을 때, 그는 2가지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그것은 첫째, 믿는 유대인들의 불신과 오해에 부딪힌다. 하지만 그 문제는 야고보 장로의 주선으로 어느 정도 극복하게 된다. 문제는 두 번째 난관이었다. 둘째, 오리지널 유대인들의 불신과 오해와 더불어 잘못된 추측으로 인한 살해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통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바울을 보고 가만 두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보기에 바울은 유대인과 율법과 예루살렘을 멸시하는 자로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바울이 예루살렘 성안에서 이방인인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와 함께 다니는 것을 보았을 때에, 바울이 드로비모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가 성전을 더럽힌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더 이상 바울을 그냥 놔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결국 바울을 죽이려고 시도하였다. 

 

2.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 했을 때 누가 바울을 보호해 주었는가?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그를 붙들었을 때, 성전 문이 닫히면서 거기에서 엄청 큰 소동이 일어났다. 그런데 그와 같은 사실은 즉각 로마 군대의 천부장의 귀에 들어갔고 천부장은 즉시 군대를 이끌고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바울을 붙잡아 쇠사슬로 결박한다. 그리고 우선 로마 군대 주둔지인 진영 안으로 데리고 가도록 명령한다. 그런데 사실 바울에게는 전혀 예상치 않은 보호 조치였다. 그때 진짜로 바울을 구할 사람이 있었다고 하면 그들은 수만 명이나 되는 믿는 유대인들(행21:20)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중에 단 한 사람도 바울을 살려내기 위해 쫓아온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로마 군대의 천부장을 통해 바울이 죽지 않도록 보호하신 것이다. 

 

3. 바울은 어떻게 천부장을 설득하여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얻었는가?

  그때였다. 바울이 진영으로 붙들려 가고 있었을 때, 바울은 천부장에게 청원을 한 것이다. 그런데 천부장이 그의 청원을 들어주게 된다. 그렇다면 바울은 대체 천부장에게 무엇을 청원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그를 죽이려고 몰려온 군중들(유대인들)에게 변명할 기회를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바울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도 정확하지도 않은 상태였고, 또한 그렇게 많은 유대인들이 하나같이 바울을 죽이려 하는 상황에서 천부장이 바울에게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부장은 바울의 말을 듣고 그에게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준다. 그럼 그때 천부장은 왜 바울에게 변명할 기회를 준 것일까? 그것은 첫째, 바울이 천부장에게 유창한 헬라어로 부탁을 하였기 때문이다(37절). 그때였다. 천부장은 아마도 깜짝 놀랐을 것이다. 그가 유식한 사람들이 쓰는 헬라말로 자신에게 부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부장은 헬라말을 그렇게 잘하는 사람이 무슨 이유 때문에 붙잡혔는지도 궁금하게 되었을 것이다. 처음에 천부장은 예전에 소요를 일으켜 자객 4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에 잠적한 애굽인 정도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바울은 점잖은 사람이었고 정중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둘째, 바울이 천부장에게 자신은 유대인이지만 작은 마을이 아닌 길리기아의 다소 시의 시민이라고 소개했기 때문이다(39절). 이는 바울이 무식한 사람이 아니라 어느 정도 배운 사람으로서, 교육 수준이 높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소 시민은 대부분 잘 살았기 때문에, 바울이 돈이 없어 가난한 사람들을 선동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자 곧바로 천부장은 그에게 말할 수 있는 권리를 허락해 준다. 

 

4. 바울은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유대인들에게 어떻게 변호했으며 설득했는가?

  그러자 바울은 로마 군대의 진영에서 성전쪽으로 내려오는 층대(계단)에 멈춰 선 후 손짓을 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사실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도 바울에게 어떤 죄목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그가 무슨 말을 할른지 궁금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자 정말 갑자기 장내가 조용해졌다. 하지만 바울은 곧바로 말을 시작하지는 않았다. 군중들의 외치는 소리가 없어질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그리고 많은 침묵이 흐르자 그때에 바울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놀라운 사실은 그때 바울은 자신이 억울하다는 말부터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거기에 모여든 유대인들에게 깎듯이 예의를 갖추어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히브리어 곧 아람어로 말을 시작했다. "남자들인 형제들과 아버지들이여"라고 말이다(행22:1). 사실 에베소에서 온 유대인들이 그 군중들을 선동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는가? 그것은 2가지다. 하나는 바울이 유대인과 성전과 예루살렘을 무시한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이방인을 성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성전을 더럽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울의 변명은 유대인들을 존중하는 말부터 시작했던 것이다. 군중들은 더 조용해졌다. 왜냐하면 바울이 이방인 지역에서 살았다는데 그가 오리지널 아람어를 유창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예루살렘에서도 복음을 증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5. 바울은 그때 그들에게 무엇을 말했을까?

  그렇다면 바울은 로마 진영의 층계에서 유대인들을 향해 과연 무슨 말을 했던 것일까? 우선 알아야 할 것은 그가 자신은 죄가 없다는 것부터 변명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많이 억울했을텐데 바울은 그런 말을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그때 그가 말한 것은 첫째, 자신도 저들과 같이 율법에 열성을 가진 사람의 하나였다고 말했다는 것이다(행22:3). 그리고 둘째, 자신이 유대인이지만 왜 이방인 지역에 가서 예수님을 증언하는 삶을 살게 되었는지를 말했다. 그것은 그가 다메섹에서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으며, 또한 그분으로부터 어떻게 이방인 지역으로 파송을 받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25년 전에 자신들이 죽였던 예수님을 아직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분은 죽었지만 다시 살아나셔서 몇 년 뒤에 바울을 찾아오셨고 바울에게 복음 전파의 사명을 주셨다고 바울이 말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그들에게 바울은 자신들을 예수믿는 자가 되게 하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들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저런 놈은 세상에서 없이 해 달라고 천부장에게 외치기 시작하였다. 그렇다. 누구든지 처음부터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고 주님을 믿으려 하지 않는 자는 누가 그들에게 무슨 간증을 하고 또한 그들에게 그 무슨 말을 들려준다고 할지라도 믿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진실해야 한다. 그리고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럴려면 이전에 가지고 있던 선입관을 버리고 냉정하게 말씀을 들으면서,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지를 귀담아 들으려는 마음을 소유해야 한다. 

 

2023년 01월 06일(금)

정병진목사

  한 나라를 책임지는 지도자는 어떤 지도자여야 할까?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끌어가야 할 지도자는 어떤 조건의 사람이어야 하는 것인가? 오늘 이 시간에는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지만, 그 상황을 믿음으로 대처하는 히스기야의 남다른 모습을 통해서, 참된 지도자상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히스기야왕은 남유다의 3대 선한 왕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분열왕국이후 남유다 왕으로서는 가장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왕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왕위에 등륵하자마자 국정기조에 나가서 행한 연설과 대제국의 앗수르의 침략에 맞서 싸운 기록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25세에 왕으로 등극했다. 그런데 그가 왕이 되어서 맨 처음에 한 일은 국방력강화가 아니었다. 왕권강화도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최우선의 국정과제로 삼았다. 그래서 그는 왕으로 등극하자마자 부친이 닫아놓은 성전문을 열고 성전기명들을 깨끗히 한 다음, 번제와 화목제를 드림으로 예배를 회복했다. 그리고 남유다와 이미 망한 북이스라엘에에 이르기짜 보발군들을 보내 유월절 절기을 지켰다. 그러나 여건상 유월절절기를 지키지 못한 사람을 위해 왕은 일주일 더 기간을 연장했고 그리하여 온 백성들이 유월절 절기를 지킬 수가 있었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14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앗수르왕 산헤립이 남유다를 공격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파죽지세로 내려오는 앗수르군대를 어떻게 막을 수도 없었다. 남유다의 견고한 요새같은 46개 성급이 함락되었고, 서남쪽에 위치한 제2의 수도였던 라기스마저 함락되고 말았다. 그러자 앗수르왕 산헤립은 그의 부하장수 랍사게를 예루살렘으로 보내, 항복하라고 종용하였다. 이 세상 어떤 나라와 어떤 신이 대왕 앗수르 산헤립의 손에서 벗어난 일이 있느냐면서,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자는 히스기야왕의 거짓말에 속아넘어가지 말라면서 말이다.

  그러자 히스기야는 우선 라기스에 있는 산헤립에게 전쟁배상금을 주고는 예루살렘을 지켜낼 방도를 찾아았다. 그가 행했던 일들은 곧 남유다를 건지는 바른 길이 되었다. 그렇다면 히스기야왕은 대체 어떻게 앗수르의 공격에 대비했을까? 그는 크게 4가지를 준비하였다.

  첫째, 그는 앗수르의 공격을 막을 방책을 혼자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전문적인 전투지휘관들을 불러모아 의중지를 모았다(대하32:3). 그는 중차대한 문제를 혼자 생각하고 혼자 처리한 것이 아니라 먼저 중지를 모으기 위해 전투지휘관 전략회의를 개최한 것이다. 예루살렘을 지켜내기 위한 방책을 논의한 것이다. 그렇다. 참된 지도자는 혼자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로 구성된 사람들을 불러놓아 그들의 의견을 청휘하여 바른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둘째, 그는 실제적으로 예루살렘성을 보호하기 위한 매뉴얼을 만들고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대하32:3~6). 히스기야왕은 예루살렘성을 보호하고 오랫동안 방비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실제적인 조치를 취하였다. 우선 성밖에 있는 물근원을 위장하여 찾지 못하도록 하였고, 물은 지하수로를 통해 성안으로 들어오도록 했다(히스기야 터널공사). 그리고 허물어진 성벽의 일부는 보수하였고, 또한 성바깥에 외벽을 하나 더 만들어 쌓았다. 그리하여 몇 년이 지나도 버틸 수 있는 성이 되도록 한 것이다. 그렇다. 참된 지도자는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지도자가 아니다. 자기도 함께 동참하면서 위기상황에 하나씩하나씩 꼼꼼히 대비해나가야 한다.

  셋째, 그는 대제국 앗수르왕의 군대장관인 랍사게의 항복종용의 말을 듣고 흔들리고 있는 백성들을 성문광장에 모아놓고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하였다(대하32:6~8). 이것은 참된 지도자에게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항목인 것 같다. 백성의 마음이 나뉘어지만 아무리 힘쓰고 애쓴다 할지라도 물거품이 될 확률이 많아진다. 그런 전차로 히스기야왕은 백성을 불러모아 예루살렘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가치있는 일이라고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앗수르왕이 섬기는 신의 도움보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이 훨씬 더 나음을 연설로 표현하였다. 그렇다. 참된 지도자는 자기의 뜻을 백성에게 제대로 알리고 그들을 설득하여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의 고통을 참아내자고 말해야 한다. 진실성이 약해 설득력이 없는 지도자는 참된 지도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넷째, 마지막으로 그는 인간의 능력 위에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았고 그분의 도움을 구했다(역대하32:20). 그는 이 문제를 먼저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받고 있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알렸고 그로 하여금 기도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자신도 부르짖어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했다. 오직 세상 나라의 신들은 사람이 만든 신이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온 천하만국에 홀로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니, 산헤립의 손에서 남유다와 예루살렘을 지켜달라고 기도했고, 하나님을 능멸하는 산헤립을 벌해달라고 기도했다.

  어찌 되었을까? 놀라운 사실은 그 일이 있고 난 후 다음 날이 되자, 적군 30만명 가운데 18만 5천명이 송장으로 변해있지 않은가? 역사책에는 그때 급성전염병으로 앗수르의 군대가 전멸되다시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뜬 소문을 듣고 철수하여 자신의 신인 니스록에 경배할 때에 자기의 두 아들이 들어와 그를 암살해버렸다. 그리고 앗수르제국은 점점 쇠퇴하여갔다. 하나님만이 참된 신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히스기야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박근혜대통령이 있다. 이명박정부 때처럼 언론과 사람의 눈치보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무능한 지도자가 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주변 강국들의 싸움에 휘말려 손해볼 것이 아니라 그들과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국민담화를 통해 전 국민들을 하나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종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정작 자신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고 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신다. 하나님께서 절대 나라가 망하도록 놔두시지 않으신다. 나라를 보해주시는 것이다. 나라가 끝장나 없어지지 않게 해 주시는 것이다. 오 그분이 누구인가? 그분이 바로 홀로 살아역사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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