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하강해(15) 여호와의 이상적인 종이었던 다윗이 저지른 엄청난 범죄(삼하11:1~27)_2022-01-21(금)

https://youtu.be/QvK_VD2UWDs [혹은 https://tv.naver.com/v/24773781 ]

 

1. 다윗의 평생에 있었던 가장 어두운 사건이자 그의 인생에서 최대의 오점을 남긴 사건은 무엇이었는가?

  다윗은 참으로 훌륭한 인물이었다. 그의 성품은 온화했고 성실했으며, 권위를 인정할 줄 알고 자신의 할 일에 대해서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의 신앙심은 더욱 뛰어났으니 그의 신앙심은 어릴 적부터 잘 갖추어진 채 있었다. 최소 그가 15세 이전에 목동으로 지낼 때에 불렀던 찬송들은 또 얼마나 감미로운 것이었는가? 그리고 그의 신앙은 그가 15세 되었을 때에도 이미 진가가 나타났다. 즉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과의 싸움에서도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왕이 되었을 때에도 그는 가장 먼저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성에 안치하는 일을 했으며, 전쟁하면서 늘 펄럭이는 휘장 가운데 둔 하나님의 법궤가 마음에 걸리자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지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자 그러한 마음이 나단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 전달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깊은 감동을 느끼셨다. 그리하여 그에게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위대한 언약을 해 주었으니, 이름하여 다윗 언약(삼하7:8~16)이다. 그리고 그는 은혜를 저버리는 파렴치한 자가 아니라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가슴 따뜻한 사람이었다. 다윗 자신을 위험한 현장으로부터 빼내어 살려 준 친구 요나단의 우정도 잊지 않았고 그의 아들 므비보셋을 자신의 아들이자 왕자처럼 살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던 그였지만 그만 커다란 실수이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부하 장수의 아내 밧세바와 불륜을 일으키고 곧 임신이 되자 그것을 무마시키기 위해 자신의 부하 장수 우리야를 죽여 없애도록 요압장군에게 시켰던 것이다. 

 

2. 다윗이 저질렀던 2가지 중대 범죄는 율법에 따르면 어떤 처벌이 기다리고 있는가?

  한 마디로 다윗은 2가지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하나는 밧세바와 간음죄를 저지른 것이었고 또 하나는 우리야 장수를 죽인 것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가 저지른 죄는 하나는 '간통죄'요 또 하나는 '살인 교사죄'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율법에 따르면, 이러한 범죄를 저지른 자는 어떻게 처리하라고 되어 있는가? 첫째, 간음죄(간통죄)는 간부와 음부 둘 다 반드시 죽이라고 되어 있다. 출애굽기에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레20:10)"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살인죄(살인 교사죄) 역시 살인자를 반드시 죽이라고 되어 있다. "만일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레24:17)" 고의로 살인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살인을 당한 형제는 살인자를 죽일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다윗은 의도적으로 그리고 고의적으로 살해를 교사했으니 다윗은 죽어 마땅한 죄를 범한 것이다. 그것도 2가지 죄를 한꺼번에 범했으니 말이다. 

 

3. 다윗은 왜 이토록 악한 일을 저지르게 되었는가?

  그렇게 선하고 온화하고 정직하며 바르게 살았던 다윗이 왜 이토록 커다란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일까? 물론 거대한 안목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면, 이 사건은 아무리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할지라도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에게는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사건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의 직접적인 요인을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은 3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 근 10년 동안 계속해서 전쟁에서 승리하다 보니 이제는 그것을 누릴 때가 되었다고 자만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는 30세에 왕이 되어 숱한 전쟁을 치렀으며 그리고 모두 승리하였다. 그리고 부하 장수의 권유로 그랬는지 아니면 스스로 선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전쟁에 나가지 않게 되었고 자신의 부하 장수들만 전쟁터에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이러한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때 다윗은 자신은 이제 이만한 삶을 누리고 살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평안히 궁에 거하다가 이런 사건과 마주한 것이다. 아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죽는 그날까지 자신의 삶에 만족하거나 누리며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러다가 죄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그의 영적인 긴장이 풀렸기 때문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피비린 내나는 전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가 진정 부하와 나라를 사랑하는 왕이었다면 그는 그 시간에 제사를 드리든지 기도하고 있어야 옳다. 하지만 그는 낮잠을 잤고 밤에 일어나 옥상을 산책하다가 그만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에게 영적인 긴장이 풀린 시각에 그러한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렇다. 사탄은 디윗이 영적인 해이에 빠져 있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셋째, 다윗에게 권력이 주어져서 수많은 부인들을 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생각에 부인을 한 명 더 두는 것은 그리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아니다. 아무리 권력을 쥐고 있다고 할지라도 한 남자의 한 아내라는 결혼 원칙을 어기면 아니 되는 것이다. 다윗은 이 원칙을 어겼기에 왕자들의 난을 직접 보게 되는데, 그는 자기가 살아 있는 동안에 최소 3명의 아들들이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4.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다윗의 간음죄와 살인죄 그리고 탐욕죄가 가르쳐 주는 영적인 교훈은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 아무리 경건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죄를 지을 수 있으며, 죄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고 말했다. 아무리 성화되고 위대한 성군으로 인정을 받은 자라도 얼마든지 다시 범죄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둘째, 통치 권력이 잘못 사용되었을 때에는 큰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 개인의 권력 남용이라고 할지라도 이 죄는 나라의 통치자가 지은 죄이기 때문에 다윗 자신 뿐만 아니라 온 나라가 큰 고통을 겪게 된다. 셋째, 일단 한 번 범죄에 빠지게 되면 양심이 마비되기 시작하고 한 번 마비된 양심은 더 큰 죄를 서슴없이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다윗의 범죄는 비록 간음죄에서부터 시작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의 범죄는 아주 잔인한 형태의 범죄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5. 다윗이 저질렀던 이 사건 뒤에는 무슨 일이 뒤따르게 되었는가?

  아무리 은밀히 죄를 범하였더라도 하나님은 다 아시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죄는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배우겠지만 다윗의 이러한 중대한 범죄는 첫째, 엄청난 징계가 따라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어떠한 중대한 죄를 범하였어도 용서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회개'라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2022년 01월 21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155) 요셉의 형들로부터 진정한 회개가 시작이 되다(창42:1~38)_2021-07-20(화)

https://youtu.be/7k2DXEjeQX4  [혹은  https://tv.naver.com/v/21431167 ]

 

1. 형들의 곡식단이 요셉의 곡식단에게 절하는 꿈은 언제 어떻게 성취되었나요?

  요셉의 형들의 곡식단이 요셉의 곡식단에게 절하였던 20년전의 요셉의 꿈은 그가 총리가 된 후 7년이 지난 싯점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왜냐하면 7년 풍년 뒤에 흉년이 들기 시작했는데, 흉년 2년차에 야곱이 베냐민을 제외한 10명의 자식들을 애굽에 보내어 곡식을 사오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요셉의 형들이 애굽에 와서는 그 나라의 총리였던 요셉을 향하여 땅에 엎드리며 절을 하였습니다(창42:6). 여기서 "절하다"는 히브리어 동사는 "솨하"인데, 이 단어는 창37:7과 9에 나오는 "절하다"라는 단어와 동일한 바로 그 단어입니다. 이는 요셉의 꿈이 이제 20년 뒤에 그대로 성취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요셉의 꿈이 성취되는 것을 형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들에게 기근이 찾아올 때에 비로소 요셉의 꿈이 성취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요셉의 형들은 언제 회개하기 시작했나요?

  요셉의 형들이 아버지의 명을 받고 곡식을 사기 위해 애굽으로 떠습니다. 그리고 요셉에게 절을 합니다. 그런데 요셉이 그를 정탐꾼으로 몰아갑니다. 곡물을 사러 왔다고 가장하고는 나라를 정탐하러 왔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아연실색합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의 한 사람의 아들들로서 막내아들은 가나안 땅에 있지만 하나는 없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요셉은 그들의 진실함을 증명해보이려면, 그들 중에서 한 사람을 가나안땅으로 보내어 막내동생을 데려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감옥에 가두게  됩니다. 그리고 사흘이 되던 날 요셉은 그들을 풀어주면서, 그들의 말이 과연 사실이라면 한 사람만 볼모로 잡혀 있고 나머지는 가서 굶주림으로부터 집안 사람들을 구하고 막내아우를 데려 오라고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들은 스스로 뉘우치면서 말합니다.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창42:21)" 그렇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어려움이 닥쳐와 죽음의 위협을 느낄 때에, 자신들이 과거 20년전에 저지른 죄악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그 벌을 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잘 회개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잘못이라도 그것을 덮어두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꺼내어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죄는 덮어둔다고 해서 그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것을 회개할 때 비로소해결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오늘날 우리 성도들로 하여금 회개를 막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늘날에 들어와서 대부분의 성도들은 과거에 있었던 자신의 잘못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아니합니다. 처음 예수 믿었을 때에 그 이전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죄는 다 용서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들었고 그렇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할 때에,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주었기 때문에, 더이상 회개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침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왜냐하면 다는 그렇지 않지만, 죄를 지을 때마다 하나의 영(귀신, 정확히는 뱀)이 우리 몸 속에 들어오게 되는데, 한 번 회개했다고 해서 그놈들이 다 한꺼번에 나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죄목당 한 개의 영이 들어온 것이므로, 수 백 수 천 번 지었던 죄를 회개하라면 수 백 수 천 번을 자백해야 그 놈들이 하나씩 하나씩 나가는 것이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교회에서는 과거의 죄들을 놓고 회개한다고 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행위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죄는 요셉의 형들의 경우처럼 어느 순간에 꼭 생각나게 되어있습니다. 즉 요셉의 형들도 자신이 어려움에 처하게 되자, 즉시 자신들이 지었던 20년전의 죄를 떠올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용서받아야 할 죄는 반드시 생각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렇지만 교회에서는 그러한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으면, 믿음이 없는 행위라고 가르치니, 회개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회개를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이요 교리입니다. 한 번 회개하면 더 이상 회개할 것이 없다고 가르치는 교리가 바로 회개를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성경에서는 제대로 말씀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만든 교리가 사람을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서 얼마든지 저주마저 다 처리하고 형통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대로 살아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자신이 지은 죄들 뿐만 아니라 자기 조상들이 지은 죄들 때문에, 그 저주가 오늘날 자기와 자기 자식과 손자들을 꽉 동여매어 옴쭉딸싹을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조상들이 지은 죄를 회개할 때에라야 비로소 자기의 앞 길이 열리고 물질이 열리고 자녀가 잘 된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4. 요셉의 형들은 어떻게 회개를 하게된 것일까요?

  요셉의 형들은 사실 곡식을 사러갔을 때에 잘못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결코 정탐하러 애굽에 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셉은 그의 형들을 시험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자기 동생 베냐민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확인해보기 위해 그들을 정탐꾼이라고 몰아세웠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렇지 않다고 자기들의 결백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3일동안 옥에 갇히게 됩니다. 하지만 요셉의 배려로 인하여 그들은 시므온만을 애굽의 감옥에 놔둔 채, 굶주린 가족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왜 요셉의 형들이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일까요? 왜 요셉의 형들 중에 시므온이 볼모로 잡혀 거기에 남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이 모든 이유를 다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알 수 있는 사실은 한 그들이 지난 날에 지은 죄들 때문에 그러한 일이 발생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창42:21~22). 17세 당시 형들에 의해 펼려서 애굽으로 끌려가는 요셉의 그 애원을 형들이 결코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형들도 역시 자신의 하소연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시므온이 결박되어 애굽에 남게 된 것은 그가 지은 죄 때문일 것입니다. 그때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성 주민들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우리와 통혼하기 위해서는 너희 성의 모든 남자는 다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시므온과 레위가 일어나 그 성 사람들이 가장 아파하던 3일째 되는 날에 그 성 안의 모든 남자들을 싹 다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저질렀던 죄들을 다시 생각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요셉의 형들이 회개를 하게 된 데에는 자기들도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 자기들이 과거에 저질렀던 죄를 추억해 냈기 때문입니다. 

 

5. 회개는 왜 해야 하며,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요?

  요셉의 형들의 경우를 보니, 회개는 왜 해야 하며 어떻게 하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첫째, 회개는 왜 해야 할까요? 회개없이는 천국에도 못 들어갈 뿐더러 이기는 자가 결코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결국 그들의 운명은 불보듯 뻔합니다. 요셉에게는 죄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의 형들은 죄가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그것은 잊혀질래야 잊혀질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가깝게는 요셉을 인신매매로서 이스마엘 상인에게 팔아버린 것 때문이요, 좀 더 멀리는 세겜성 사람들을 살해하고 그 성을 약탈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회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회개는 3단계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첫째로는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인식하는 단계입니다. 이 때에는 정확히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아뢰는 것이 중요합니다(요일1:9). 그리고 둘째로는 자신이 지은 죄를 애통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그때 비로소 가슴을 치면서 자신의 잘못을 아파했던 것입니다. 셋째로는 결단력 있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에 애굽에서 식량을 가지고 돌아온 르우벤이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데리고 가야 한다고 했을 때, 아버지 야곱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르우벤은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내 두 아들을 죽이소서"라고 말했습니다(창42:37). 그렇습니다. 이것은 바로 회개에 의지적인 영역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고로 우리가 회개할 때에는 3단계가 필요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정확히 무슨 무슨 죄를 지었습니다 라고 자신의 죄를 자백해야 합니다(눅18:13). 그리고 그것을 마음 아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르우벤과 유다가 전면에 나섬으로 실행되었습니다. 

 

2021년 07월 20일(화)

정병진목사

 

누가 과연 자신이 미워하는 원수같은 사람을 뛰어넘을 수 있는가? 누가 과연 미움의 죄를 이겨내어서 사탄에게 자기자신을 내어주지 않게 되는 것일까? 사람이 살다보면 자기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거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에 보통 자기를 그렇게 만들었던 당사자를 용서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그를 미워하는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을 수는 없지 아니한가? 그래서 오늘은 미움의 죄를 다스리는 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020-12-18(금) 금요기도회
제목: 바른 회개(25) 회개할 자범죄는 무엇인가?(06) 미움(증오)의 죄(창4:1~8)_2020-12-18(금)
https://youtu.be/jqPuXala_8U [혹은 https://dongtanms.kr/67118  ]

 

 

1. 들어가며

  사람이 짓는 죄들 중에는 자범죄들이 있다. 자기 스스로 불러들인 죄들을 가리킨다. 이러한 자범죄들에는 혈기 분노의 죄, 우울의 죄, 거짓의 죄, 교만의 죄가 있고, 음란의 죄가 있고 미움의 죄가 있다. 그 외에는 수많은 자범죄들이 있다. 그중에서 오늘은 미움과 증오의 죄를 다루려고 한다. 미움의 죄는 가슴아픈 죄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아무 이유도 없는데 누군가를 미워한다든지 하나님을 미워한다든지는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해로 빚어진 일이든지, 진짜 억울한 일을 당했거나 차별대우를 받았다든지 하여 미움이 싹이 트고 그래서 결국 미움의 영에 사로잡혀 죄를 짓는 것이 바로 미움의 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은 미움의 죄가 왜 가슴 아픈 죄라고 말하는지 그리고 미움의 죄를 해결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움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2. 미움의 죄란 어떤 죄를 가리키는가?

  미움의 죄는 어떤 대상을 미워하고 용서하지 않는 죄를 가리킨다. 내 상처와 아픔만을 생각한 채 상대방을 미워하는 것이다. 그리고 용서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미움은 곧이어 증오로 발전한다. 그리고 이 죄가 혈기 분노의 죄와 만나게 되면 살인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미움의 죄를 찬찬히 살펴보면, 자기가 아닌 다른 원인들에 의해서 미움이 시작된 것들이다. 사실 모든 미움은 죄가 아니다. 죄와 마귀는 우리가 미워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원인에 의해 생겨난 미워하는 마음이 미움의 영의 지배를 받고 그래서 미움과 증오에 빠져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가슴아픈 죄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미움에 대하여 사도요한은 마음으로 살인하는 죄라고 명명하고 있다(요일3:15). 미움에 사로잡혀 있으면 반드시 마귀에게 속한 자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가 하늘에서 쫓겨내려올 때 미움을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요일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3. 사람이 미워하는 대상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지가가 미워하는 대상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보통 4가지 정도가 있다. 첫째, 가장 많은 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으로서 "가족"이 있다. 부모와 형제 자매 그리고 배우자에 대해서 미워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창37장에 보면,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미워했던 최초의 이유는 요셉에게 있지 않았고 그의 아버지에게 있었다. 아버지가 요셉을 특히 아끼고 편애했기 때문이다. 자식들을 감히 아버지를 미워할 수는 없다보니, 동생 요셉을 미워했던 것이다. 그래서 기회좋은 날이 왔을 때 그들을 요셉을 죽여 없애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장자 르우벤과 네째형이었던 유다의 기지로 인해 죽음은 면할 수가 있었다. 이처럼 가족간의 차별대우 때문에 미움이 생기고 여기에 혈기과 분노, 시기와 질투의 죄가 달라붙게 되면 살인으로까지 발전하는 것이다. 둘째, 나 자신을 싫어하는 자와 나에게 무정하게 대하는 자들을 미워한다. 나는 그들을 미워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나를 미워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그를 미워하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미움을 받을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나도 그를 미워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이것은 요즘 들어와서 많아진 것으로서, 나와 생각과 이념과 사상이 다른 자들을 미워하는 것이다. 이때에는 보통 팩크체그(사실확인)을 해야 함으로 불구하고, 소문만으로 남을 정죄하고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정치적인 편향성이 많이 작용한다. 넷째,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미워하고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거의 오해다. 하나님께서는 나만 싫어하고 내 인생을 힘들게 했다고 오해하는 것이다. 사실 내 조상들이 지은 죄들과 내가 불러들인 죄들을 회개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귀신들이 우리 인생을 붙잡고 있어서 꼼짝 못하고 있는 것을 하나님이 했다고 오해하는 것이다. 

 

4. 사람이 미워하는 마음을 해결받지 못하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사람은 육체만을 가진 동물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동물과는 달리 영이 있고 또한 혼이 있기 때문이다. 영과 혼이 만날 때 마음이라는 것이 생긴다. 그런데 이 마음이 남을 사랑하도록 존재하는 기관인데, 남을 사랑하지 못하고 반대로 미워하는 것이 문제다. 자신이 어렸을 적에 받은 학대와 상처로 인하여 미워할 수도 있고, 나와 생각과 사고가 달라서 미워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어찌되었든 자기 마음에 남은 미워하는 마음을 처리하지 못한 채 그것을 내버려 둘 경우,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그때에는 보통 3가지 증상이 나타난다.

  첫째, 몸이 자주 아픈데 잘 낫지를 않는 것이다. 미워하는 마음은 우리의 육체를 힘들게 한다. 그래서 내 몸의 면역기능을 잘 작동하지 않게 만든다. 그러므로 아픈 자가 미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면 잘 낫지를 않는 것이다. 둘째, 미워하는 마음을 빌미로 귀신이 내 속에 치고 들어오는데, 한 번 들어온 악한 영들은 좀처럼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워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용서하지 않는 한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들어온 귀신은 잘 떠나지 않는다. 셋째, 삶에 풀리지 않는 어려운 일들이 자주 발생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심장에 미움의 영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 우리가 미워할 때 들어온 귀신들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넷째, 결국 이 문제를 해결받지 못한 사람은 남을 미워했던 죄를 용서받지 못할 뿐더러, 죽은 후에도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던져지고 말 것이다(계21:8). 그러므로 남을 미워하는 마음도 결국 우리를 지옥으로 끌어가는 무서운 죄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5. 미워하는 죄를 짓지 않고 미워하는 마음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알 것은 처음에 미워하는 것은 비록 나 자신에 의해 시작될 수 있지만, 그것을 계속해서 풀지 아니하고 갖고 있으면 그것을 빌미로 귀신이 치고 들어온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미워했던 마음을 회개하고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 

  하지만 미워하는 죄를 처리하기 위해서 몇 가지 도움 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총 5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고로 우리에게 혹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거들랑 이 다섯 가지 방법도 사용해 볼 가치가 충분히 있을 것이다. 첫째, 상대방을 긍휼히 여기는 것이다(마5:7). 아니면 그러한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그때 우리가 가져야할 마음가짐은 "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이 여김을 받을 것(마5:7)"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둘째, 상대방을 용서해버리는 것이다(마6:14~15). 내가 상처받지 아니하고 장차 내가 지옥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가 우선 상대방을 용서해주는 것이다. 용서할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해보는 것이다. 만약 우리도 우리 자신이 미워하고 있는 사람을 용서해주지 않는다면 그것 때문에 심판 때에 심판받게 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어떤 죄든지 상대방을 용서해주는 것이다. 주님께서도 우리가 마지막 심판에 우리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 줄 것을 말씀하셨다(마6:14~15). 

마6:14-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지옥갈 큰 죄를 용서받은 자로서 우리는 응당 용서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에게 지은 죄를 용서해주지 않는다면, 결국 심판의 때에 우리가 행한 대로 그날 우리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날 우리가 받을 심판의 기준은 우리가 행한 대로라는 것이다. 그날 주님께서는 우리가 행한대로 우리를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죄를 지은 자에 대해 관대해질 필요가 있으며, 어떤 죄라도 용서해줄 필요가 있다. 그것이 또한 나의 심판기준이 될 것이니 말이다. 

  셋째, 사람을 미워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 미워하는 마음을 부추기고 있는 악한 영들을 미워하는 것이다(롬12:9). 우리가 미워할 대상은 사실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그 사람도 사탄마귀에게 당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미워할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을 미워하도록 꼬드긴 악한 영들이어야 한다. 여기서 "악한 자들"은 곧 귀신들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고 있을 때에 그것은 그가 악한 영에 잡혀있는 것임을 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고로 우리가 미워해야 할 대상은 그 사람 속에 들어가서 역사하고 있는 영들을 미워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는 "저들의 죄를 용서하옵소서.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잘 모르나이다"고 하셨다. 또한 사도바울로 로마서에서 말씀하시기를 악(악한 자)를 미워하라고 하였다. 우리가 미워할 대상은 악한 영들인 것이지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롬12:9~10). 

롬12:9-10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넷째, 오히려 나를 악하게 대하는 자 곧 나를 미워하고 있는 자를 끝까지 선대(축복하고 기도하고 사랑)해주는 것이다(눅6:27~28).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원수를 대하는 방법을 말씀하실 때에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즉 자신의 원수를 사랑하며, 자기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해주고, 자기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해주며, 자기를 모욕하는 자가 있다고 할지라고 그를 축복해주라고 말씀하셨다(눅6:27~28, 마5:44).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주고, 속옷을 달라하면 겉옷까지라도 벗어주라고 하셨다(마5:40~41). 

눅6:27-28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다섯째, 그래도 안 되면 원수를 내가 처리하려고 하지 말고 오직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맡겨버리는 것이다(롬12:19~21). 내가 원수갚기 위해 애쓰지 말고, 원수를 하나님께서 맡겨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원수를 처리하려고 하면 우리 또한 또 원수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수는 하나님께서 처리하도록 그분의 손에 맡기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다윗의 경우다. 사울왕이 다윗을 미워하여 다윗을 죽이려했을 때에,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찬스들이 찾아왔어도 끝내 그를 해치지 아니하였다. "내가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내 주인을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다(삼상24:6)"고 말하면서 끝내 사울을 보호해주었던 것이다. 남을 해하려 하는 것은 자기에게 부메랑이 되어 자기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그 때를 인내하고 참으면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처리해주신다는 믿어야 한다. 우리는 심판자가 될 수 없고 우리는 다만 끝까지 상대방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롬12:19-21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6. 나오며

  미움은 사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버려야할 것이다. 오히려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사람을 용서해 줌으로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고 계속 가지고 있게 되면, 귀신들에 의해 내가 공격당하기 때문이요, 그들의 의해 공격당하면 당할수록 나 자신만 더 치명적인 해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아서 끝내 미워하는 마음을 청산하지 못했다고 하면, 우리가 주님께 심판을 받을 때에 불못에 던져지게 된다는 것을 항상 가슴에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미워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오히려 내가 미워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상대방을 긍휼히 여기고 용서해주고 선대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미움의 포로가 되어, 불못에 떨어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야 아주 작은 미움의 죄라도 자기의 마음에 품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그 작은 것이 걸림돌이 되어 마지막 심판의 때에 나 자신을 정죄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를 위해서라도 상대를 용서해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나를 위해서라도 그에게 긍휼을 베풀어주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나를 위해서라도 악한 자를 선대해주며, 그래도 정 안 되면 그를 하나님의 손에 내맡겨 드려야 한다. 그래야 나도 장차 천국갈 수 있고, 상대방도 나중에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한다면 그도 천국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더 날마다 회개하여 이미 내가 미움 때문에 들어온 악한 세력들을 내보내도록 하자. 귀신을 처리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회개하고 내가 남을 용서해주는 것이다. 나도 남에게 그렇게 될 수도 있으니까.

 

2020년 12월 18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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