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데도 이렇게 가난에 허덕이는 그리스도인들이 많고, 병에 걸려 고통받는 자들도 많으며, 자녀들의 앞 길이 열리지 않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가? 물론 우리가 게으른 탓도 있을 것이며, 우리의 잘못된 선택도 한 몫 하옜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 있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처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어떤 부지런과 노력도 사실 허사가 되고 말 것이다. 한 예로, 내가 아무리 좋은 병원에 가서 좋은 치료를 받고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할지라도 병이 또다시 재발하고 낫지않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놀라운 비밀을 푸는 열쇠는 슬픈 가족의 역사에 담겨있다.

 

2022-06-19(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슬픈 가족의 역사를 끝내기 위해 우리 주님이 행하신 일(삼하21:10~14)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qn0hytVKjvM  [혹은 https://tv.naver.com/v/27451024 ]

 

1. 들어가며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주목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는 구약도 있고 신약도 있다. 구약 말씀에 대해서는 보통 '율법'이라고 부르며, 신약 말씀에 대해서는 '복음'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것을 예수님과 관련지어 말한다면, 구약은 메시야에 관한 '예언'의 말씀이요, 신약은 메시야에 관한 '성취'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의 말씀이 어떻게 신약에 성취되었는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때로는 구약의 말씀을 그대로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적용하기 어려운 것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원리는 똑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서 어떤 원리를 찾아내야 한다. 대입하면 결과가 동일하게 나오게 하는 어떤 영적인 원리를 찾아내어 그것을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듣게 될 말씀도 일종의 영적인 원리가 들어 있는 귀중한 말씀이다. 만약 우리가 이 말씀의 원리대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이 매우 변화될 것이다. 특별히 우리가 모두 가난과 질병과 저주가 없는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다윗 시대에 일어난 3년 기근을 다윗은 과연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가를 살펴 볼 것이다. 여기에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계속되고 있는 악한 영들의 대물림이 왜 생기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끊을 수 있는지도 나온다. 그리고 우리들의 회개가 이 악한 영의 역사를 종식시키는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도 실감하게 될 것이다. 

 

2. 다윗이 말년에 겪은 3년의 기근, 다윗은 과연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 냈을까?

  다윗이 왕이 된지 약 30년이 흐르던 어느 날, 그러니까 그의 나이가 약 60세쯤 되었을 때에, 그 나라에 기근이 찾아왔다. 일 년은 그런대로 넘겼다. 하지만 이태를 계속해서 가뭄이 들었다. 좀 이상하다 싶었다. 그런데 가뭄은 3년을 채우고 있었다. 다윗은 이것은 분명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사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전쟁(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나라를 칠 경우에는 온 나라가 우상숭배를 했다든지 아니면 지도자가 큰 잘못을 범했을 때에 나타나는 징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아마도 자신을 뒤돌아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잘못인지를 그는 찾지를 못했다. 그러자 그는 하나님께로 이 문제를 가지고 간다. 그런데 하나님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것은 다윗이나 그의 백성들이 범죄한 어떤 잘못이 아니라 자신의 선왕이었던 사울왕과 그 집안의 잘못이라는 것이었다(삼하21:1). 그것은 사울왕이 계획적으로 이스라엘 땅에 살고 있는 기브온 거민을 살해하였고 또한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을 빼앗아 자기의 가문의 땅으로 병합을 시켰다는 것이다(삼하21:1,5). 그런데 참고로 기브온 거민은 사실 본래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시기에 미리 항복하여 목숨을 부지받은 후에 성막에서 나무패며 물 깃는 자로 약 400년간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을 집단으로 살해한 것이다. 그리고 그 땅까지 빼앗은 것이다. 

  그러자 다윗은 즉시 살아남은 기브온 거민을 부른다. 그때 다윗도 당사자가 아니며, 불려 온 사람들도 실은 당사자가 아니다. 한 세대 이전에 일어났던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윗은 억울하게 죽어간 기브온 거민들의 원한을 풀어 주고자 그들에게 "내가 어떻게 속죄해야 여호와의 기업을 위해 너희가 기도하겠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그들은 자기들과 사울왕과의 관계는 은금으로 해결하는 보상의 문제가 아니라, 목숨을 목숨으로 바꾸는 문제라고 하였다. 그러나 모든 것은 다윗왕의 허락 없이는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다윗은 그들의 요구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자기의 부모들을 살해하고 땅을 빼앗으려고 계획하고 행했던 사울왕의 후손들 일곱 명의 목숨을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들을 죽이고 그들을 사울의 고향 기브아의 산 위에서 나무 위에 매달아 놓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의 손자요 요나단의 독자였던 '므비보셋'은 내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도망칠 때 자신을 지켜 주었던 요나단과 맺은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아본 결과 사울왕에게는 한 명의 첩이 있었고 그의 첩 리스바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자 다윗은 그 두 명의 아들들 곧 알모니와 므비보셋을 취하였다. 그리고 사울의 본처가 낳은 첫째 딸 메랍에게서 태어난 5명의 아들들도 취하였다. 사울왕으로 본다면 첩의 아들들 2명과 외손자 5명을 취한 것이다. 그러자 기브온 거민들은 7명의 남자들을 죽여 나무 위에 매달아 놓는다. 그리고 얼마 후 이들에 대한 장례가 끝났을 때 하나님께서도 그 땅에 대한 기도에 응답해 주시어 3년간의 기근이 끝나게 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때 취했던 리스바의 행동이었다. 

 

3. 자신의 아들 두 명을 잃은 리스바는 어떤 행동을 취했는가?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두 명의 아들을 내주어 나무에 매달려 죽게 했던 리스바의 행동이었다. 보통 여인이라고 한다면, 다윗에게 쳐죽일 놈으로 욕을 했든지, 아니면 죄는 자신의 남편인 사울왕이 지었는데, 왜 자신의 아들들이 그 죄값을 치러야 하느냐면서 울고불고 난리를 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여인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 여인이 취한 행동은 2가지였다. 하나는 굵은 베옷을 가져다가 시신이 매달려 있는 바위 위에 펴놓았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시체에 낮에는 새들이, 밤에는 들짐승이 범하지 못하도록 계속 막는 일을 했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왜 그녀는 죄없는 자신의 아들들이 죽은 것에 대해 원망하지 않고, 그것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던 것인가? 그것은 그녀가 취했던 행동 속에 내포되어 있다.

  그것은 첫째로, 그는 자신의 남편의 잘못에 대해 하나님께 대신 회개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당시에 '굵은 베옷'은 슬픔의 표시이자 회개의 표시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합의 경우를 보자. 그도 사울왕처럼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자신의 아내 이세벨을 통해 나봇을 죽게 하였으며,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아 자신의 나물밭으로 삼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와 왕비를, 그들이 나봇을 죽인 것처럼 죽여서 개들이 아합의 피를 핧게 할 것이며, 개들이 이세벨의 살을 먹게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아합은 하나님께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는 의미로 굵은 베옷을 입고 그곳에 누우며 풀이 죽어 지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내리려고 한 징계를 당대에 내리지 아니하시고 후대에 내리신 일이 있었다(왕상21:27~28). 그렇다. 그녀는 조용한 회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자식이 죽어 슬픔 가운데 있었지만 그녀는 속으로 울면서 자신의 남편이 지은 죄를 용서받기를 기도했던 것이다. 그리고 시체에 동물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왜 그랬는가? 그것은 그 시체 위에 소나기처럼 빗물이 쏟아질 때까지 그렇게 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들과 외손자들의 죽음을 보시고 기브온 거민들의 억울함을 푸셨다는 것을 알려 달라고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속했을까? 다윗도 어느 날 그녀의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취한 행동에 감동했다. 자기 자식이 죽었는데도 왕이나 하나님에게 원망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인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인데, 비가 오기까지 회개의 기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다윗은 그녀의 행동을 하나님께서 받아 주셨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먼 곳에 파묻혀 있는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까지 가져온 후에 나무 위에 달려 죽은 7명의 뼈를 함께 모아서 사울왕의 선영에 장사 지내 주었다. 그러자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4. 하나님께서는 왜 사울왕에게 내릴 징계를 귀신에게 맡기지 않고 다윗과 남은 기브온 거민에게 맡겼는가?

  우리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신지 벌써 2천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간 것이다. 그러므로 악한 영들의 역사의 패턴이 확실히 달라진 상태에 있다. 구약 시대는 악한 영들의 집단 탈영이 없던 시절이었다. 사탄 마귀가 범죄했지만 여전히 하늘에서 하나님의 어전회의에 참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욥1:6~7, 왕상22:19~23, 슥3:1~5). 아직 하늘에서 쫓겨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2장을 읽어 보면 사탄과 그를 따르는 천사들이 하늘에서 쫓겨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는 아마도 예수님의 탄생 직전인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구약 시대에는 귀신들이 바글바글하지 않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다만 하늘에서 떨어진 몇몇의 악한 영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사울왕이 범죄했고 또한 그 죄로 그의 후손을 징계할 때에 하나님은 귀신들을 쓰지 않았다. 다윗과 남은 기브온 거민으로 하여금 사울왕의 가문에게 심판을 행하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에만 해도 한 번의 징계로 범죄가 용서되는 시기였다. 한 번 누군가 징계를 받으면 더 이상 그의 후손들에게 징계가 내려가지 않는 시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는 달라졌다. 사탄과 귀신들이 쫓겨 내려와 사탄의 왕국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들이 죄지은 사람들 속에 들어가서 온갖 가난과 질병과 재앙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만약 우리의 조상 중에 누가 살인죄를 저지르고 착취한 죄를 저질렀다면 그는 그 죄값으로 인하여 악한 영들을 자기 몸속에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그가 죽으면 그의 후손에게 계속해서 내려간다. 악한 영들의 대물림이 계속되는 것이다. 언제까지 그렇게 대물림 되는가? 그것은 누군가가 조상들이 지은 죄를 회개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그것이 지속된다. 

 

5. 리스바의 행동을 통해 주님께서 굳게 마음에 결정하신 것은 대체 무엇이었나?

  그때 주님께서는 그녀의 행동을 보고 계셨다. 그런데 사실 기브온 거민을 죽인 것은 사울왕이었다. 그러므로 벌을 받을 일이 있다면 그가 받았어야 옳다. 하지만 그는 그 벌을 받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그럼 왜 하나님께서는 사울왕이 살아 있을 때에 죄값을 묻지 않았는가? 그것은 아마도 그가 회개하기를 기다리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회개하지 않고 죽었다. 그렇지만 그렇더라도 그 죄값이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가 죽었다고 그 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에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우상숭배의 죄는 그 죄값을 묻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3~4대까지 묻겠다고 하셨다(출20:5). 그러므로 죄값을 조상이 받지 아니했다면 그의 3~4대의 후손이 받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울은 우상숭배의 죄를 지었는가? 그건 아니었다. 그는 살인죄와 남의 물건을 빼앗는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십계명의 제6계명과 10계명을 어긴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러한 죄도 역시 그 죄값을 그의 후손들에게 물리겠다고 말씀하셨다(출34:6~7). 고로 사울왕의 범죄에 대한 벌은 누군가는 반드시 받아야 하는 그러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조상들의 죄값을 그의 후손들 3~4대에게 물리는 것인가? 그것은 첫째, 조상들이 죄를 범하고 있을 때에 후손들도 역시 씨로서 그 조상의 허리에서 같이 범죄한 것이기에 그러한 것이다. 둘째, 그때는 대가족제였기에 한 집에 3~4대가 함께 살았다. 그러므로 3~4대는 자기의 가족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를 분명히 아는 시대였기 때문에 죄값을 물릴 때에는 3~4대까지 함께 물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셋째, 비록 후손들이 어떤 죄에 동참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그때 지은 죄로 인한 결과들에 대해서는 후손들도 좀 개입하고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울이 빼앗은 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울왕의 아들들과 손자들 역시 사울왕이 빼앗은 땅에서 나고 자랐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오는 곡식을 먹고 자랐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직접적인 죄의 당사자라고는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조상들이 지은 죄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는다.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아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율법 말씀에 의거하여(원래의 취지는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누군가는 사울이 지은 죄값을 받아야 했다. 그러므로 그의 핏줄이 그 죄값을 치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 주님은 그 죄값을 리스바나 그의 두 아들들이나 외손자 다섯 명이 받는 것을 보시고는 마음에 결정을 하신다. 그녀의 눈물 어린 회개를 보시고 또한 담담히 죄값을 받고 있는 그 여인의 고귀한 마음을 귀하게 보신 것이다. 그러자 주님은 언젠가는 당신이 내려가셔서 십자가에 매달림으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여 죽을 것이지만, 그 여인처럼 자신이 비록 잘못한 것은 아니더라도 가족이기에 대신이라도 회개한다면 그 죄값을 더 이상 묻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그리고 악한 영들도 더 이상 후손에게 대물림되지 않게 하시겠다고 결정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의 조상들의 지은 죄값을 대신 담당하시겠다고 결정하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그날 나무에 달리실 때에, 우리 대신 조롱과 멸시 천대를 받으시고 옷벗김을 당하셨다. 그리고 대신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의 질병의 죄값도 받으셨다. 또한 우리가 우상숭배할 때 머리 숙여 절한 죄를 대신하여 머리에 가시 면류관으로 찔리셨다. 그리고 우리의 가슴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어기고 신내림을 받은 죄를 대신하여 자신의 심장과 옆구리에 창을 맞으셨다. 또한 우리가 자기 조상들에게 제사하기 위해 음식을 만든 손이 받을 저주를 대신하여 자신의 손에 못이 박히셨으며, 무당 점쟁이를 찾아가 물어보았던 우리의 발 대신에 당신의 그 발이 직접 대못에 박히는 것을 담당하셨던 것이다. 

 

6. 나오며

  왜 하나님께서는 사울왕의 범죄를 다윗왕으로 하여금 처리하도록 일부러 기근을 통해 알게 하신 것인가? 그것은 다윗이 장차 오실 메시야의 조상으로서, 하나님은 사람이 지은 죄는 결코 그냥 용서하지 않으시며 반드시 벌을 받게 하시되, 장차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그렇게 하실 것을 알게 하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왜 기브온 거민으로 하여금 사울왕에 대한 속죄를 나무에 매달아 죽이는 것으로 요구하게 하셨는가? 그것은 장차 메시야가 오셔서 조상들이 지은 범죄의 댓가를 당신이 친히 나무에 달려 지불하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그날, 사울왕의 후손들을 죽여 나무에 매달면서, 장차 메시야가 오셔서 십자가에 매달려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대신 죽게 될 것을 미리 본 것이다. 그리고 리스바의 행동을 통해서는 가족이라면 가족이 지은 죄를 대신하여 회개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신 것이요, 비록 본인이 죄지은 것을 회개하지 못해 악한 영들이 그의 후손에게 계속해서 내려가지 않도록, 가족이 대신 회개하더라도 그 회개를 받아 주시겠다고 알려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자는 시댁과 남편의 죄를 대신 회개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사울왕이 범죄한 죄값을 그의 아들들과 외손자들이 대신 받는 것을 통해 오늘날도 우리 조상들이 지은 십계명의 죄들은 그의 후손이 받게 된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친가 뿐만 아니라 외가의 후손들이 그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은 어찌하든지 우리 조상들이 지은 죄를 대신하여 회개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조상들이 지은 죄로 인한 악한 영들의 대물림을 끝마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회개는 조상들이 지은 죄에 대한 벌도 안 받게 할 뿐만 아니라 악한 영의 대물림도 막는 놀라운 영적 무기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회개를 시작해 보자. 회개할 때 죄용서가 일어나기 때문이요, 그러면 후손들이 벌을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귀신들을 떠나보낼 수가 있어서, 더 이상 귀신들의 대물림이 자신의 가문에서 계속되는 것을 막을 수가 있는 것이다. 

 

 

2022년 06월 19일(주일)

정병진목사

 

2022-06-17(금) 금요기도회

제목: [우상숭배죄회개(21)] 회개와 천국복음의 관점에서 본 사울왕의 죄와 그 결과(삼하21:1~14)_2022-06-17(금)

https://youtu.be/B-nh1R7aJpc  [혹은 https://tv.naver.com/v/27450810 ]

 

1. 들어가며

  사울왕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스라엘 최초의 왕이었다. 그런데 그만 그는 자신의 명예와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말았다. 그는 버림받은 후 악한 영으로부터 괴롭힘을 받았고 하나님의 뜻과 역행하는 삶을 살다가 전쟁을 맞이했다. 답답한 마음에 그는 엔돌에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점을 쳤다. 이때 주님은 매우 크게 진노하였다. 사울은 길보아 전투에 나가 블레셋의 병사가 쏜 화살에 맞아 큰 부상을 입었고, 결국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 자살을 선택한다. 그리고 정권은 다윗에게 이양되었다. 그런데 그가 정권을 이양받은 후 어느 해 3년간 해를 거듭하여 기근이 찾아온다. 다윗은 그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갔고 답을 얻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선왕 사울과 그 집안의 죄라고 하셨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내가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내가 해를 받게 되는 어떤 영적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울왕의 숨겨진 범죄가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사울의 범죄 때문에 그의 아들과 외손자들이 죽어 나가게 된다. 그래서 오늘은 회개와 천국복음의 관점에서 사울왕의 범죄와 그 결과를 살펴보고자 한다. 사람이 만약 범죄한다면 어떤 악한 영이 역사하는지 그리고 자신이 그 벌을 받지 아니하면 누가 그 벌을 받게 되는지 그리고 다윗 시대에 임한 3년간의 기근을 통해서 죄와 벌에 관한 영적 비밀과 법칙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다윗 시대에 드러난 숨겨진 사울왕의 범죄는 무엇이었는가?

  다윗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3년간 기근이 들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앞에서도 잠깐 살펴보았지만 그것은 선왕 사울과 그의 집안의 숨겨진 범죄 때문이었다(삼하21:1). 그렇다면 사울왕이 범했던 죄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사무엘하 21장 1절의 말씀에 의하면, 그것은 사울과 그의 집안이 피를 흘린 죄 때문이었다고 나온다. 그러므로 그와 그의 집안이 살인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그 뒤의 내용까지 쭉 읽어 보면, 그가 기브온 거민을 죽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브온 거민은 원래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었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시기에 살았던 사람들로서, 이스라엘을 속여서 목숨을 건져내었던 가나안 일곱 족속 중의 한 족속이었다. 그런데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한다는 핑계로,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한 민족을 죽여 없애버린 것이다. 아마도 명분은 가나안 일곱 족속을 몰아내고 그 땅을 차지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수행한다는 핑계였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 시대에 기브온 거민은 자신들의 기지로 간신히 살아남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기꺼어 허드렛일 곧 나무패며 물긷는 일을 시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왕이 기브온 거민을 그만 죽인 것이다. 그러자 살아남은 기브온의 후손들은 그 억울함을 하늘의 하나님께 호소하게 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다윗 시대에 기근을 내리신 것이다. 

  그런데 사울왕의 범죄는 단지 기브온 거민을 죽인 것만이 아니었다. 또 하나의 죄가 있었다. 그것은 기브온 거민의 땅을 사울과 그의 집안이 차지해 버렸다는 것이다(삼하21:1, 5). 다시 말해 기브온 거민의 땅까지 빼앗아 강제로 사울의 집안에 편입시켜 버린 것이다. 한 마디로 사울은 기브온 족속을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그 땅까지 빼앗아 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사울의 범죄는 기브온 거민을 학살하고 살해한 죄와 더불어 또한 그 땅을 빼앗은 죄가 같이 있었던 것이다. 

 

3. 왜 사울왕의 죄값을 다윗 시대에 비로소 받아야 했는가?

  그런데 문제는 왜 사울왕의 죄값을 다윗 시대에 비로소 받아야 했는가 하는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그리고 당대에 벌을 내리시지 않고 다음 시대에 벌을 내리신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회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벧후3:9). 사실 사울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 은총을 입은 사람이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라는 지위와 권력이다. 그런데도 그는 끝내 자기가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죄값을 받지 않은 채 죽고 말았다. 그러자 다윗 시대에 그 벌이 내려온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남은 기브온 후손을 불러다가 자초지종을 묻게 된다. 그리하여 다윗은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니까 다윗은 지금 한 세대가 흘러간 뒤의 기브온 후손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이 사건은 다윗도 당사자가 아니며, 기브온 거민도 당사자가 아니다. 그런데 그 둘 사이에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4. 사울왕의 범죄로 인하여 어떤 악한 영이 사울왕의 후손에게서 나타나게 되었는가?

  그렇다면 사울왕의 범죄로 인하여 어떤 영이 사울왕에게 오게 되었는가?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우상숭배의 죄와 그의 후손들이 받을 벌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사람이 저지르는 우상숭배의 죄는 4가지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조상 제사의 죄, 부처와 불교를 섬긴 죄, 무당 점쟁이가 되고 무당 점쟁이를 섬긴 죄, 미신 잡신을 섬긴 죄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죄를 짓게 되면 반드시 그 죄로 인하여 악한 영들이 사람 속에 들어오게 되고, 그 죄를 회개하지 않고 죽으면 그 악한 영들의 약 30%가 고스란히 다음 후손에게 내려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울왕이 범죄한 것과 그 때 역사하여 다음 후손에게 내려갈 수밖에 없는 영들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무당 점쟁이의 죄가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무당 점쟁이의 죄를 짓게 되면 아래와 같은 영들이 역사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살인의 영이다. 이는 사울왕이 기브온 거민을 죽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살인의 영이 달라붙는다. 이러한 죄는 결국 사울왕의 아들들 2명과 외손자 5명이 담당하게 된다. 

  둘째는 빼앗고 빼앗기는 영이다. 왜냐하면 사울왕이 기브온 거민의 땅을 강제로 빼앗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울왕은 자신의 나라를 빼앗기게 되고(블레셋에게), 왕권도 빼앗기게 되고(사울 집안에서 다윗에게로), 자식의 생명도 빼앗기게 되고, 땅의 풍년까지도 빼앗기게 되었기 때문이다(3년 기근).

  셋째는 억압과 착취의 영이다. 왜냐하면 사울왕이 기브온 거민의 땅을 빼앗고 기브온 거민을 죽인 것은 그들의 생명을 억압하고 그들의 소유를 착취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사울의 아들들과 그의 외손자들은 자기의 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준 땅에서 먹고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빼앗은 땅에서 먹고 살았으며 빼앗은 땅에서 집짓고 산 것이다. 그러나 기브온 거민을 죽이고 그 땅을 빼앗은 것은 자기들이 아니었지만(그의 아버지였고 외할아버지였던 사울왕이었다), 그 후손들이 벌을 받게 된 것이다. 

 

5. 사울왕의 범죄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영적인 비밀(법칙)은 무엇인가?

  우리는 사울왕의 범죄를 통해 몇 가지 영적인 비밀을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은 죄를 지은 자라도 그 사람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하기만 하면 당대에 그 벌을 내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왕이 회개하기를 다음 한 세대까지 기다리신 것이다. 

  둘째, 죄를 지었으면 반드시 누군가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벌은 자신이 받지 않은 채 죽었다면 자기의 자식과 후손들이 받게 된다는 것이다. 사울왕의 범죄는 그의 2명의 아들들과 딸 메랍의 아들들 곧 외손자들 5명이 고스란히 받았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그 벌을 그의 후손 3~4대에게 내리시는 것인가?(출20:5) 그것은 아마도 한 가족의 범위가 3~4대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옛날에는 한 가족의 범위가 3~4대여서, 3~4대가 한 집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최고 꼭대기에 있는 사람의 죄를 그 집안 사람 모두에게 물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셋째, 하나님은 죄를 지었다고 곧바로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찼을 때에 심판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둘 다 살인의 죄를 지었다고 치자. 그런데 그가 회개하지 않고 죽게 된다면 그 후손들이 받는데, 어떤 경우는 그 다음 대에서 받지만 어떤 경우는 더 내려가서라도 반드시 벌을 받는다. 그것이 죄가 가득 찬 여부 때문이다. 죄가 가득 찼으면 바로 그 아들대에서 벌을 받는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그 다음 다음의 세대로 내려가면서 그 죄가 가득 차게 될 때에 벌을 받는 것이다. 

  넷째, 누군가는 반드시 열조의 죄값을 받아 벌이 끝난다는 것이다. 열조가 지은 죄는 누가 회개하지 않는 한 반드시 그 벌을 받게 된다. 그것도 아들과 딸의 후손에게 동시에 내려가 아들의 후손과 딸의 후손 중에 누군가가 받는 것이다. 

  다섯째, 왕과 같은 지도자가 범한 죄는 차기의 왕이 그 벌을 받고 그 나라의 백성들까지 그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사울왕의 범죄는 사울왕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울이 자신의 그 죄값을 받지 못하고 죽었기에 그 다음 세대와 그의 후손에게 내려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사울왕의 핏줄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다윗왕이 그 벌을 받았고 다윗왕의 백성도 그 벌을 받는다. 이는 지도자가 지은 죄는 그 지도자의 대를 이은 자가 그리고 그 나라의 백성이 받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6. 나오며

  우리는 사울왕의 범죄와 다윗 시대에 임한 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것은 일종의 '영적 법칙'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다윗왕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고 다윗왕의 범죄는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윗은 자신이 지은 죄를 철저히 회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 시대에 가서 다윗과 그의 백성이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것은 다윗과 다윗 백성이 지은 죄 때문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선조가 지은 죄를 누군가가 회개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벌을 반드시 물으신다는 것을 이 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렇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비단 구약 시대의 일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가? 아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도 똑같이 그러한 일이 발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조들이 지은 죄를 그냥 지나쳐 버릴 수가 없다. 그것을 처리하지 않고 놔둔다면 우리의 후손 누군가는 그 죄값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나라 성도들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 회개를 시작하여 20~30년을 회개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이 나라는 조상의 저주가 사라진 정말 깨끗한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후손들이 얼마나 더 복을 받겠는가? 그러므로 이 사실을 알게 된 우리부터라도 회개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시작하면 20~30년이 지나면 그 결과들을 우리 후손들이 받을 것이고, 그러면 그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고 따르며 하나님을 전하는 자들이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오늘부터 회개기도문으로 회개 기도를 시작해 보자. 나와 우리 후손과 우리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2022년 06월 17일(금)

정병진목사

 

조상들의 지은 죄값을 과연 후손들이 받게 된다는데 그게 사실인가? 왜 한 나라와 민족의 지도자의 범죄는 위험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리고 하나님께는 왜 기브온 거민들의 학살에 대한 속죄를 사람이 갚도록 허락하셨는가? 다윗이 당한 3년기근과 그의 속죄를 통하여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날에도 조상들이 지은 죄값을 후손들이 받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여기에 그 해답들이 있다.

 

2022-02-06(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사무엘하강해(28) 사울왕이 지은 죄값을 왜 다윗시대에 받아야 했는가?(삼하21:1~14)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_G6n8_BklRs [혹은 https://tv.naver.com/v/24990954 ]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는 왜 선왕이었던 사울왕 때에 저지른 죄의 댓가를 다윗왕에게 물으신 것일까? 다윗은 처음에는 왜 자기 시대에 3년동안이나 연거푸 기근이 발생하는지를 잘 몰랐다. 그래서 3년차 되던 해에는 하나님께서 물었다. 왜 기근이 해년마다 찾아오는지를 말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사울과 그의 집안이 기브온 거민에게 행한 일을 알려주셨다. 그것은 기브온 거민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부르짖게 기도를 하게 했고 하나님께 그들의 억울함의 보셨으나 끝내 사울왕이 그 억울함을 풀지 못한 채 죽자, 다윗왕 시대에 기근을 내리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다윗이 말년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단지 배치를 뒤에 했을 뿐이다. 이 사건은 다윗왕의 초기에 일어난 사건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울은 기브온 거민들을 살해한 것인가? 그리고 이 사건은 어떻게 해서 해결이 되어 기근이 사라지고 그 땅에도 비가 내리게 되었는가? 어떤 이야기는 원인만을 이야기할 뿐 그 해법과 과정이 생략되기도 하지만 이 사건은 에필로그로 기록된 사건으로서 그 모든 전 과정을 소개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사건을 통하여 조상들이 지은 죄값을 후손이 진짜 받는 것인지 그리고 한 민족의 지도자의 범죄가 자기 민족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 그리고 조상들이 지은 죄는 어떻게 풀 수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2. 사울의 시대를 이은 다윗의 통치 초기에 왜 기근이 연거푸 이스라엘 땅에 찾아온 것인가?

  다윗의 통치 초기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다윗이 범죄하지도 않았는데, 이스라엘 땅에 연거푸 3년 동안이나 기근이 찾아온 것이다. 1년 정도야 그럴 수 있다고 하겠지만 연거푸 지속되는 가뭄소식에 다윗은 하나님께 그 이유를 묻기로 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를 그것은 다윗이 지은 죄가 아니라 선왕이었던 사울왕이 지은 죄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사울왕이 자기의 왕권강화를 위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기브온 땅을 차지하려고 그랬는지 기브온 거민을 칼로 죽인 일이 있었던 것이다(삼하21:1). 그런데 사실 기브온 거민은 하나님께서 멸하라고 했던 가나안 일곱족속 중의 하나였다. 히위족속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정복하면서 이 민족만큼은 죽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민족이 이스라엘을 찾아와 화친을 청하였는데, 그 전후 속사정을 모른채 그들과 화친하는 바람에 그들을 죽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들과 화친한 상태에서 그들이 가나안 일곱 족속 중 하나라는 것을 3일 후에 알게 된다. 그들은 자기들이 죽지 않기 위해 이스라엘과 화친을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죽임을 당하지 않는 대신에 나무패며 물긷는 자로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민족을 사울왕 시대에 와서 거의 전멸시키다시피 살해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때에는 이미 기브온 거민도 이스라엘 사람이었기에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억울한 사정을 들으시고 그 땅에 비가 내리지 못하게 막아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연거푸 3년동안이 하늘이 막혀 비가 오지 않았던 것이다. 

 

3. 한 나라에 기근이 연거푸 발생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 나라에 집중적으로 기근이 임하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민족이 범죄하여 그 민족을 치실 때에 칼(전쟁)과 기근(가뭄)과 전염병으로 치신다고 율법으로 아예 선포하셨기 때문이다(레26:23~26). 아니나 다를까,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공동체를 민족적으로 치시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때에는 꼭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을 사용하셨다(겔6:4~8, 5:11~12). 그러므로 다윗은 자기 시대이지만 기근이 3년동안 지속된 것은 분명 하나님께서 민족적으로 치시는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사울과 그의 집안이 지은 죄를 민족적으로 치신 것인가? 그것은 죄는 사울과 그의 집안이 지은 것이지만 실은 한 나라와 민족의 지도자가 되어 그 일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죄를 민족의 죄로 보시는 것이다. 이처럼 한 나라와 민족의 지도자가 짓는 죄는 그만큼 큰 죄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러한 죄값을 물으실 때에는 민족적으로 죄값을 물으신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땅에 기근이 들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도자의 잘못과 실수가 한 나라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잘 알고 나라와 민족의 지도자가 범죄하거나 실수하지 않도록 기도를 해야 함을 명실할 필요가 있다. 

 

4. 다윗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취한 방법은 무엇이었는가? 

  그렇다면 다윗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취하였는가? 그것은 기브온 거민을 불러다가 드르에게 어떠헥 속죄해야 그들이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축복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삼하21:3). 그런데 그들에게서 나온 대답은 뜻밖의 것이었다. 그들은 이 죄는 속죄의 예물을 바치는 것 정도로 끝낼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오히려 자기의 민족을 이스라엘 땅에서 살지 못하도록 학살을 자행하였고 멸하였던 사울의 자손 일곱 사람을 달라고 하였다. 그들을 나무에 매달라 그들 조상들이 억울하게 죽었던 죄값을 받게 하겠다고 하였다. 그것도 사울의 고향이자 왕도였던 기브아에서 말이다.

  그런데 예상외로 다윗은 그것을 승낙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딱 잘라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 사람이 지은 죄값을 사람으로 담당하게 하겠느냐고 묻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다윗도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맹세한 것이 있어서,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살리고, 사울의 첩 리스바가 난 두 아들들인 알모니와 므비보셋(동명이인)과 사울의 딸 메랍이 시집가서 낳은 아드리엘의 다섯 아들을 그들에게 내주었다. 그러자 그들이 일곱 명을 붙잡아 기브아 산 위에서 그들을 나무에 매달아 죽이게 된다. 죄를 지은 자는 사울이었데 그의 아들들과 손자들 7명이 대신 죽임을 당한 것이다. 

 

5. 조상들이 지은 죄값을 후손들이 담당하게 된다는 데 과연 그게 사실인가?

  우리는 이상의 사실을 통하여 조상들이 지은 죄값을 그의 후손들이 담당한다는 것을 여실이 알 수 있다. 사울이 기브온 거민을 억울하게 죽인 일은 아무도 그 죄값을 담당하는 사람이 없자, 한 나라의 지도자가 죄를 지은 것이었기에 이스라엘 전역에 기근이 찾아오게 하였다. 그렇더라도 그 죄값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율법말씀으로, 억울하게 다른 사람을 고의로 죽인 죄에 대해서는 샘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반드시 그를 죽여 히흘린 죄값을 그 사람에게 담당시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민35:30~34). 이것이 율법규정이다. 그러므로 사울왕이 억울하게 기브온 거민을 학살한 죄값은 사울왕이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러나 사울왕이 그 죄값을 받지 못한채 다른 죄값으로 전쟁으로 죽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기근을 통해 사울의 죄를 찾아내게 하셨고, 이제는 그의 후손들이 그 죄값을 치르게 하심으로 기브온 거민의 억울한 마음을 사라지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죄값을 7배로 물으신 것이다.

  그렇다. 자기 조상들이 죄은 죄값을 후손들이 받게 되는 경우가 성경에도 여러번 나온다. 대표적인 예로서,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아 자기의 나물밭을 삼기 위해 이세벨을 통하여 나봇을 죽인 일이 있었다. 그때 이세벨은 나봇이 왕과 하나님을 저주하였다고 하는 거짓말로 뒤집어씌어 그를 억울하게 죽게 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나봇의 포도원에 흘린 피값을 고스란히 아합왕에게서 찾았으니, 아합의 첫째 아들 아하시아와 둘째 아들 여호람이 질병으로 죽어나갔고, 둘째 아들의 42명의 손자들과 아합의 자손 70명이 하루 아침에 죽어나갔다. 그리고 이세벨은 신하들이 밑으로 떨어뜨려 해골이 깨지고 사지가 터져 죽어 개들이 그의 시체를 핥게 되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그렇다. 남을 억울하게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러면 반드시 그 후손이 그 댓가를 치르게 되기 때문이다. 

 

6. 기근의 문제는 결국 어떻게 해결되었는가?

  다윗시대에 임한 3년간의 기근은 사울의 아들들과 손자들 7명이 죽었다고 곧바로 해결되지 아니했다. 그것으로 곧장 기브온 거민들의 억울함이 풀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속죄사건은 이 일이 있은 후 약 6개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비가 내림으로 막을 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6개월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는가? 그것은 그들이 6개월 동안 나무에 매달려 살이 썩어 내려 뼈만 앙상하게 남을 때까지 지속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사울의 첩 리스바가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그녀는 자기의 아들들과 조카들이 나무에 매달려 있는 동안 바위 위에 굵은 베옷을 펴놓고 애곡을 하였다. 그리고 그 시체에 낮에는 공주의 새가 앉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들짐승이 범하게 못하게 지켜내었다. 그 시작은 보리를 베기 시작할 때부터였는데, 그녀의 애곡은 그 땅에 비가 내릴 때까지 계속되었던 것이다. 4월에 시작된 애곡이 10월에 가서야 비로소 끝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때 비로소 그 땅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것을 지켜본 다윗은 그녀의 깊은 슬픔을 위로해주고 싶어했다. 그전에 죽었던 사울왕의 뼈와 요나단의 뼈를 길르앗 야베스의 거민에게 받아서 이번에 죽은 사울왕의 아들 둘과 외손자 5명과 함께 가족묘지를 만들어 준 것이다. 그리하여 사울의 아버지 기스의 묘에 모두가 합장된 것이다. 사울이 지은 죄로 인하여 자기 아들 요나단과 알모니와 므비보셋이 함께 묻혔고, 자기의 외손자 다섯명도 함께 그 묘에 묻힌 것이다. 이처럼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죽인 죄는 그 죄값을 크게 물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7. 사울의 범죄에 대한 속죄는 왜 동물의 희생제물로서는 아니 되고 꼭 사람이 죽었어야 했는가?

  이것은 조금 전에도 살펴보았듯이 사울이 기브온 거민을 죽인 죄는 우연히 죽인 죄가 아니라 고의로 살해한 죄이기 때문에 그 피값을 사람이 치러야 한다는 율법규정에 따라 시행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보면, 이러한 속죄 행위가 장차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사건으로, 흠없는 속죄양이 아니라 직접 사람 제물로서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예시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장차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속죄하실 때에 동물의 희생제물이 아니라 인간제물로서 주님이 직접 죽으실 것을 미리 짐작케 하는 사건을 미리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윗은 이 사건을 통해 장차 그리스도가 직접 속죄제물로 죽으실 것을 예상하였을 것이다. 

 

8. 나오며

  왜 사울왕이 범죄했던 것을 다윗 시대에 온 백성이 받게 되었는가? 그것은 사울왕의 범죄행위는 단지 개인적인 일탈행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범죄행위는 국가적인 죄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한 나라의 지도자가 저지르는 범죄행위를 너무 쉽게 보려고 해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국가적인 재앙을 초래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윗은 지기 시대에 임한 기근재앙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였고, 그것은 사울왕이 고의로 사람을 살해한 죄에서 비롯된 것을 깨닫고 그것에 대한 속죄를 행함으로 결국 그 땅에 기근의 재앙이 사라지게 할 수 있었다. 결국 이 사건은 조상들이 지은 죄값을 후손들이 톡톡히 치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후손들이 그 죄값을 받게 될 때에는 7배로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고의로 범한 죄는 동물의 희생제물이 사용되는 속죄제사로는 절대 아니 되며 직접 사람이 죽임당하여 그 죄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 인류의 죄값을 대신 담당하기 위해 직접 사람으로서 성육신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죄악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지은 죄는 동물이 대신 죽어서는 아니될 만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죽임당하셨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오늘날에 들어와서 조상들이 지은 죄값을 후손들이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배워야 한다. 조상들이 지은 죄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이제는 그의 후손들이 회개함으로 없앨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만약 이러한 죄들이 예수께서 인류의 죄값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의 상황이라면 우리 모두는 엄청난 재앙에 직면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이미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우리 조상들이 지은 죄들을 우리가 회개하는 것만으로 제거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런데도 이와같은 사실조차도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성도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조상들이 지은 살인죄라도 이제 그의 후손들이 얼마든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음에 감사하면서 속히 낱낱이 그러한 죄들을 회개하여 저주로부터 온전히 해방받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022년 02월 06일(주일)

정병진목사

 

헤렘전쟁에 대해서 들어보았는가? '헤렘'이란 '진멸함' 혹은 '온전히 바침'이라는 뜻이다. 전쟁을 할 때에 보통은 전부다 죽이지는 않는다. 남자만 죽이고 여자나 아이들은 사로잡고 노예로 부린다. 하지만 헤렘전쟁으로 선포되면 그때는 적을 절대 불쌍히 여겨서는 아니 된다. 사람이나 가축까지 다 죽여 없애버려야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여리고성의 전투다(수6장). 그런데 헤렘의 명령을 쉽게 생각했다가 자신이 오히려 헤렘이 되어버린 사례들이 있다. 헤렘전쟁이 오히려 자신을 파멸로 이끌어간 경우들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헤렘전쟁을 명하셨던 것인가? 헤렘전쟁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가르쳐주시려고 명하시는 전쟁인가? 오늘 이 시간에는 성경에 가끔씩 등장하는 헤렘전쟁의 의미를 살펴보고, 이 전쟁을 통해서 알려주시려는 진짜 하나님의 속뜻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자, 헤렘전쟁이 무엇인지 만나보러 가자.

 

1. 들어가며

  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께서 편애하시는 것은 아닌가? 혹은 하나님께서 너무 하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장면을 만나게 된다. 예를 들어, 둘 다 똑같이 범죄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사울왕은 금방 버려버리시고 다윗왕은 끝까지 버리지 않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신약성경 사도행전5장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부부가 일부를 숨겨놓고 하나님께 드린 것 때문에 당일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너무 잔혹하게 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가 잘 몰라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을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왜 사울왕은 그리 큰 죄를 지은 것 같지도 않은데 왜 그렇게 쉽게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아나니바와 삽비라 부부도 큰 잘못을 범한 것 같지 않는데 왜 그날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는지를 살펴봄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당신의 소유에 대해서 어떠한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사울왕은 왜 한 번의 실수로 버림받은 왕이 되어버렸고 비참하게 죽어간 왕이 되었을까?

  이제는 사울왕에 대해 왜 한 번의 실수로 그렇게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하나님께서는 사울왕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여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삼상15:2~3)" 그래서 사울왕은 백성을 소집하였고 군대로 거느리고가서 하윌라에서 애굽앞에 있는 술까지 쳐서 아말렉의 모든 백성들을 다 죽이고, 아각왕을 사로잡고, 아각의 양과 가장 좋은 것과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것을 남겨두었다. 그것은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신다. 아니 사울왕을 단칼에 버리신다. 왜 하나님은 이다지도 사울왕에게 몰인정하게 대우하시는 것인가? 그 정도면 잘했다고 칭찬해주어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사울왕은 그 일로 말미암아 폐위되었고 결국에는 비참한 모습으로 그의 일생을 마치게 된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혹시 하나님께서는 사울왕은 미워하시고 다윗왕은 사랑하신 것은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이 명령 뒤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원칙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것을 알면,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자기의 백성들을 아끼고 사랑하시는지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3. 헤렘전쟁이란 무엇인가?

  사실 하나님께서 사울왕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신 명령은 헤렘전쟁이었다. 헤렘전쟁이란 군사적인 전쟁이 아니라 종교적인 전쟁에 속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전쟁을 말한다. 왜냐하면 헤렘전쟁은 모든 것을 진멸해야 하는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헤렘전쟁에서는 아까워해서는 아니 된다. 헤렘은 '진멸하다(하람)'이라는 동사에서 온 것으로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 위해 그리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릴 목적으로 부정한 것을 제거하거나 저주받은 물건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전쟁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헤렘전쟁을 통해서 온전히 바쳐진 것들은 결코 다른 용도로서는 쓰여질 수가 없었다. 오직 하나님의 공의의 만족을 위해 반드시 헤렘의 법칙에 따라 시행되어야 했다. 따라서 만일 헤렘전쟁이 시작되면, 첫째, 산 것은 그것이 사람이든 짐승이든, 어른이든 아이이든 다 죽여야 했으며, 둘째, 그 밖의 물건들은 불로 다 태워버려야 했다. 그리고 셋째, 불로 태울 수 없는 귀중품들 즉 금과 은과 같은 것들은 성소에 귀속시켜 하나님께 봉헌되어져야 했다(레27:28, 신13:16, 수6:17). 만약 그것을 어길 경우에는 자신도 온전히 바쳐진 것이 되어, 사람이라면 자기가 오히려 죽임을 당하고, 물건은 불로 태워지거나 하나님께 귀속되어야 했다.

 

4. 여리고성 전투는 매우 중요한 헤렘전쟁이었다.

  하나의 실례를 들어보자. 출애굽후 40년이 지나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민족과 치른 첫번째 전쟁은 여리고성전투였다. 그런데 이 전쟁에 대해 하나님은 헤렘을 명령하셨다. 즉 여리고성에 있는 모든 사람과 짐승들은 긍휼히 여기지 말고 다 죽이라고 명령하셨으며, 나머지는 불태우라고 하셨고, 금은과 동철기구들은 하나님께 구별하여 바치라고 하셨다(수6:17~19). 만일 바쳐야 할 것을 바치지 못하게 되면 자신과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재산이 헤렘이 된다고 하셨다(수7:12). 그런데 아뿔싸! 유다지파의 사람 아간이 그만 바쳐야 할 것 중에 일부를 자신의 장막에 숨기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는 탐이 나서 시날산의 외투 한 벌과 은 200세겔과 50세겔되는 금덩이 하나를 자신의 장막에 몰래 숨겼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고 말았으니, 여리고성 다음 전투인 아이성전투에서 패하여 여러사람이 죽고 말았기 때문이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고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이 왔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헤렘을 실천하지 않은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를 헤렘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결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나중에 제비를 뽑아 살펴보니, 아간이 물건을 숨겨둔 것이 발견되었다. 그리하여, 아간과 아간이 숨겨둔 3가지 것들이 아간의 아들들과 딸들 그리고 아간의 소들과 나귀들, 아간의 양들과 그의 장막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그날 사람들에 의해 돌로 내리쳐졌으며, 다 불태워지고 말았다. 그렇다. 헤렘전쟁은 좀 특별한 전쟁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자신이 해를 받는 것이 이 헤렘전쟁인 것이다.

 

5. 주님께서 헤렘전쟁을 명령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헤렘전쟁을 명하시는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권위를 철저히 세우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실행된다는 것과 하나님의 소유를 손댔다가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서, 온 천지간에 오직 하나님만이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는 분이신 것을 알게하시기 위함이다. 그래야 하나님의 공의 앞에 모든 만물이 복종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헤렘전쟁은 대부분 첫번째 전쟁이거나 첫번째로 부여된 임무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어떤 경우는 그 사례가 첫번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헤렘은 일종의 본보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누군가가 헤렘의 명령에 불순종하게 된다면 그것은 자신이 헤렘이 되는 엄청난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세우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성취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며, 하나님의 소유는 그 누구도 손을 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스라엘민족이 애굽에서 출애굽할 때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그것은 아말렉에게 공격을 당하게 된 것이다. 사실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몰랐던 바로와 애굽백성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자신들에게 내려진 10가지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군지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그러자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냥 내어주고 말았다. 하나님의 백성을 건드렸다가는 큰 일 난다는 것을 10가지 재앙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떠나보내놓고 허탈한 상태에 놓였던 바로가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 앞에 금ㄴ 갇혀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병거 전차부대 600승을 거느리고 달려갔다. 하지만 하나님의 소유이자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백성들은 감히 누가 건드릴 수 있다는 말인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잘 건너게 하신 다음, 애굽군대는 홍해에 빠뜨려 한 사람도 살지 못하게 수장시켜 버리셨다. 그리하여 그 어떤 민족도 감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셨다. 그러니 소문을 들은 가나안 백성들은 간담히 서늘하게 되었다.

 

6. 아말렉족속은 왜 진멸당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런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을 향하여 가던 중에 그만 아말렉족속의 공격을 받게 된다. 세계최강의 애굽나라와 애굽군대로 건드리지 못했던 이스라엘민족을 그들이 그만 건드린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했고 장차 하나님의 성막에 드려야할 은금패물을 빼앗아갔으며, 몇몇 사람들은 칼로 죽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 일에 대노하셨다. 당신의 백성을 감히 누가 건드리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모세더러 산에 올라가 기도하게 하고서는 여호수아를 시켜 아말렉을 쳐부수도록 했다. 하지만 그때 낙타를 타고 도망치는 기마민족을 다 없이하지는 못했다. 그러자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천하에서 아말렉이라는 이름이 없어질 때까지 반드시 그들을 쳐서 없애버리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출17:14,16).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당신의 소유로 여기셨기 때문이다(출19:5~6). 그래서 앞으로도 당신의 허락없이는 당신의 백성을 절대 건드릴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 감히 겁도 없이 아말렉족속이 이스라엘을 쳐버린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천하에서 아말렉이름을 멸절시킬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7. 자신에게 내려진 헤렘전쟁의 특명을 사울은 어떻게 했는가? 

  그리고 약 400년이 지난 어느날 이스라엘나라도 이제는 왕이 세워지게 되었다. 그때 세워진 이스라엘의 초대왕이 바로 사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사울왕에게 첫번째 임무(미션)을 수행케 하신다. 그것은 바로 아말렉족속을 천하에서 멸절할 시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서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께서는 사울왕에게 이 전쟁은 헤렘전쟁이라고 말씀하셨다(삼상15:3). 그러나 사울왕은 하나님의 명령을 소홀히 여겼다. 그에게 헤렘전쟁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왕은 그것을 단순한 전쟁으로 취급했다. 그래서 아말렉백성들은 다 죽여 없앴지만 아각왕은 살려두었고, 제사드린다고 소나 양 등도 살려두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러면 사울왕과 사울왕의 자녀들과 집안 모든 것이 오히려 헤렘이 되는 것임을 그는 미처 몰랐다. 결국 사울왕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헤렘을 수행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곧 왕위에게 폐위되었으며,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고 만다. 헤렘을 해야할 대상을 헤렘을 행하지 않음으로 인해, 자기가 오히려 헤렘을 받아버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 헤렘에 대해서는 규정대로 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 공의를 세우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특별한 공의전달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울왕의 죄는 얼핏 보기에 그리 나쁜 죄같아보이지 않지만 헤렘을 수행하지 않아서 결국 자신이 헤렘을 받는 사례가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사도행전5장의 아나비아와 삽비라사건은 일종의 헤렘의 사례인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이 땅에 첫번째 교회가 세워질 때에 나타난 중요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하나님께 바치려고 했던 의 일부를 감추게 두었다. 그러자 그것으로 인하여 오히려 자신이 헤렘이 되어버린 것이다.

 

8. 헤렘의 양면성

  그러나 헤렘이 항상 나쁜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뒤집어놓고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지극히 아끼고 보호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하나님의 백성을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큰 일 나는 것이다. 아말렉족속이 이스라엘백성을 잘못 건드렸다가 아작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항상 되어있느냐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 된다면, 그 어떤 존재도 우리를 건드릴 수 없다. 우리를 건드렸다가는 자신이 헤렘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마귀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다. 만약 죄없은 그리스도인들을 함부로 건드리거나 죽였다가는 자기도 그렇게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마귀도 함부로 사망권세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9. 나오며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도 날마다 자신이 하나님께서 바쳐진 사람이이 되도록 늘 노력해야 한다. 그 방법은 출19장에 나와 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출19:5)" 그렇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주님의 보호를 받게 된다. 죄를 짓지 아니하면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죄를 짓는 순간 우리는 마귀에게 속하게 된다(요일3:8). 그러므로 혹시 우리가 실수하게 되고, 약하여져서 혹 범죄하였다 하더라도 즉시 회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회개하기만 하면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속해주므로 더이상 마귀도 우리에게 어떻게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건드렸다가는 그의  때가 더 단축될 것이고 나중에는 더 강력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도 잘 알고 있다. 출애굽때에 유월절의 양의 피를 바름으로 탈출한 죄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건드던 아말렉족속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가? 천하에서 그 이름이 멸절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마귀도 죄없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죽게하면 자신도 그렇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함부로 죽이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법칙이다.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히 보호를 받으려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약을 믿고 지킬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이상 죄를 범치 말라. 죄를 범하면 마귀가 틈을 타고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혹 죄를 범하게 되었다면 즉시 회개하라. 그리하여 하나님께 속하는 자가 되라. 그러면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우리를 지켜주시되, 털끝만큼도 상하지 못하도록 지켜주실 것이다(요일5:20).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우리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우리를 만지지도 못하는 것이다. 이것을 믿으라. 이것이 믿음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고 아끼는 방식임을 믿으라. 그러면 우리의 사명이 끝나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하심을 받게 될 것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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